Masuk첫 셔터를 누른 뒤에도 유리의 손끝에는 미세한 떨림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두 번째, 세 번째 사진이 저장될수록 폐극장에서 들었던 기계적인 셔터음은 조금씩 멀어졌다. 지금 카메라 안에 들어오는 것은 자신도 모르게 촬영된 일상이 아니었다. 시온은 유리가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관객들은 사전에 촬영 범위를 안내받았다. 모두가 서로의 존재를 알고 동의한 장소에서 각자의 순간을 나누고 있었다.유리는 뷰파인더 안의 시온을 따라 움직였다. 첫 곡은 루미너스의 데뷔곡을 새롭게 편곡한 노래였다. 일곱 해 전에는 불안하게 흔들리던 목소리가 이제는 공연장을 단단히 채웠다. 시온이 무대 중앙으로 걸어 나오자 붉은 조명이 그의 어깨와 머리카락 위로 쏟아졌다.찰칵.유리는 시온의 얼굴만 당겨 찍지 않았다. 무대 위로 길게 뻗은 빛과 그 앞에 선 사람, 객석에서 일제히 들리는 응원봉까지 한 장면에 담았다. 오래전 첫 쇼케이스에서 담고 싶었던 것과 같은 구도였다. 다만 그때는 비어 있는 객석을 숨기기 위해 프레임을 좁혔고, 지금은 가득 찬 자리를 보여 주기 위해 렌즈를 넓혔다.시온이 노래하는 동안 관객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같은 박자로 응원봉을 흔들었다. 어두운 객석 위로 작은 빛들이 물결처럼 움직였다. 유리는 사전에 촬영 동의한 구역으로 렌즈를 돌렸다. 노래를 따라 부르다 눈물을 닦는 사람, 친구와 손을 맞잡은 사람, 무대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면서도 옆 사람의 떨어진 응원봉을 주워 주는 사람이 보였다.그중 한 명과 눈이 마주쳤다.스무 살이 채 되지 않아 보이는 관객이 유리의 출입증을 확인한 뒤 조심스럽게 웃었다. 두 손으로 응원봉을 쥔 모습에서 일곱 해 전의 자신이 겹쳐 보였다. 유리는 카메라를 들기 전 입 모양으로 물었다.찍어도 될까요?관객은 눈물을 닦고 고개를 끄덕였다.찰칵.셔터가 눌렸다. 사진 안에는 완벽하게 정돈된 얼굴 대신 눈물로 번진 화장과 떨리는 입술, 무대에서 돌아온 사람을 바라보는 안도감이 담겼다.그 순간 유리는 자신이 이 사진 에세이
태준과 함께 살기 시작한 지 사흘째 되던 아침, 유리는 자신의 머그잔을 찾는 데만 오 분을 썼다. 분명 전날 밤 식기세척기에 넣어 두었는데 찬장에는 같은 모양의 흰 컵만 줄 맞춰 놓여 있었다. 손잡이가 별 모양인 연보라색 머그잔은 어느 칸에도 보이지 않았다.“정태준 씨.”식탁에서 서류를 읽고 있던 태준이 고개를 들었다. 출근 준비를 마친 그는 한 손으로 넥타이를 정리하고 있었고, 실밥을 아직 풀지 못한 왼팔은 움직임이 불편해 보였다.“왜요?”“내 컵 어디 있어요?”“오른쪽 위에서 두 번째 칸입니다.”“없는데요.”“안쪽을 보십시오.”유리가 발끝을 들고 찬장 안쪽을 확인하자 흰 컵들 뒤에 연보라색 머그잔이 숨어 있었다. 일부러 가장 손이 닿지 않는 자리에 밀어 넣은 것처럼 보였다.“왜 여기다 뒀어요?”“색이 튀어서요.”“컵은 원래 색이 다를 수도 있죠.”“같은 종류끼리 정리하는 게 효율적입니다.”“그러니까 태준 씨 컵하고 내 컵을 같이 두면 되잖아요.”“색상과 형태가 다릅니다.”유리는 머그잔을 꺼내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나랑 같이 살고 싶은 건 맞아요?”“그 질문과 컵의 배치는 관계가 없습니다.”“있어요. 내 물건이 들어오면 태준 씨 집이 전처럼 완벽하게 정돈될 수는 없잖아요.”그사이 집 안에는 유리의 흔적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현관에는 태준의 검은 구두 옆으로 흰 운동화가 놓였고, 거실 소파에는 보라색 담요가 생겼다. 서재 한편에는 미처 정리하지 못한 원고와 촬영 기획서가 쌓여 있었으며, 욕실 선반에는 태준이 한 번도 사용한 적 없는 향의 샴푸와 작은 머리끈들이 자리를 잡았다.태준은 정돈된 공간을 좋아했다. 물건의 위치가 바뀌는 것도 싫어했고, 사용한 컵이 식탁 위에 오래 놓여 있는 것도 참지 못했다. 그런데도 유리의 짐이 들어온 뒤 한 번도 치우라고 말한 적은 없었다. 말없이 수납장을 비우고 책장을 추가했을 뿐이었다.“불편합니까?”태준이 묻자 유리는 머그잔을 두 손으로 감쌌다.“조금요.”“제가 컵을 안쪽에 둬서?
〈다음에는 카메라가 아니라 나를 보게 한다.〉사진 속 문장은 짧았지만 유리는 한동안 휴대전화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일곱 해 전 남기혁이 자신이 잃어버린 별을 주워 들고 그런 문장을 적었다는 사실이 쉽게 현실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가 유리의 집에 들어오고 위치 추적기를 달기 훨씬 전부터, 유리가 이름조차 모르던 시절부터 그녀의 시선을 자신에게 돌릴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다.태준이 유리의 손에서 휴대전화를 가져갔다. 화면을 끄려 했지만 유리가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조금만 더 볼게요.”“계속 본다고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알아요. 그런데 지금 눈을 돌리면 이 문장이 더 무서운 것으로 남을 것 같아요.”태준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 휴대전화를 돌려주었다. 대신 유리의 허리를 감싼 팔은 풀지 않았다. 따뜻한 손바닥이 옆구리에 닿아 있었고, 일정한 체온이 지금 자신이 안전한 곳에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저 장식은 어떻게 처리돼요?”“우선 증거물로 보관됩니다. 남기혁의 지문과 디엔에이, 보관 장소, 메모의 작성 시기까지 감정할 겁니다.”“재판이 끝나면요?”“피해품으로 확인되면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유리는 투명한 봉투 안의 작은 별을 바라봤다. 예전에는 카메라가 허전해 보여 별 두 개를 나란히 달았다. 작은 별이 떨어졌다는 것을 알았을 때도 아깝다는 생각만 했지, 누군가 그것을 가져가 오랫동안 보관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나는 돌려받고 싶지 않아요.”“그럼 폐기를 요청하면 됩니다.”“남기혁 씨가 가지고 있었다는 이유로 무서운 물건이 된 것 같아서요.”“그 사람이 만졌다고 해서 처음부터 그 사람 물건이었던 건 아닙니다.”태준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단호했다.“유리 씨가 직접 고르고 카메라에 달았던 장식입니다. 돌려받을지 버릴지도 남기혁이 아니라 유리 씨가 결정해야 해요. 지금 당장 정하지 않아도 됩니다.”유리는 다시 사진을 바라봤다. 태준의 말이 맞았다. 남기혁은 별을 주워 갔지만 그 별에 담긴 처음의 의미까지 가진 것은 아니었다.
유리는 눈을 뜨자마자 자신을 감싸고 있는 팔부터 느꼈다. 허리 위에 놓인 단단한 손과 목덜미에 닿는 고른 숨결, 등 뒤로 밀착된 체온이 밤이 끝났다는 사실을 믿기 어렵게 만들었다. 낯선 침대에서 깨어났는데도 불안하지 않았다. 오히려 오래전부터 이 자리에서 아침을 맞았던 것처럼 몸이 자연스럽게 태준에게 기대어 있었다.조심스럽게 몸을 돌리자 잠든 태준의 얼굴이 가까이 보였다. 늘 빈틈없이 정돈돼 있던 머리카락은 이마 위로 흐트러져 있었고, 단정한 인상도 잠든 동안에는 한결 부드러워져 있었다. 유리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얇은 티셔츠 아래로 드러난 쇄골과 목덜미에는 자신이 남긴 옅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뒤늦게 얼굴이 뜨거워졌다.어젯밤에는 분명 자신이 먼저 침실로 데려왔다. 두려워서가 아니라 원해서라고 말했고, 태준은 그 말을 몇 번이나 확인한 뒤에야 그녀를 안았다. 다친 팔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조심하느라 오히려 유리가 더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했고, 그때마다 태준의 절제된 표정이 무너지는 것을 보며 이상한 만족감까지 느꼈다.유리는 기억을 멈추려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자 허리에 놓인 손에 힘이 들어왔다.“깼습니까?”잠이 묻은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서 울렸다. 유리가 눈을 뜨자 태준은 이미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언제부터 깨어 있었어요?”“민유리 씨가 제 얼굴을 구경하기 시작했을 때부터.”“그럼 말을 하지 그랬어요.”“흥미로워 보여서 방해하지 않았습니다.”“자는 척한 거예요?”“눈을 감고 있었을 뿐입니다.”유리가 몸을 빼려 하자 태준의 손이 허리를 단단히 붙잡았다. 다치지 않은 오른팔 하나뿐인데도 쉽게 벗어날 수 없었다.“어디 갑니까?”“일어나려고요.”“아직 이릅니다.”“아침 아홉 시가 넘었어요.”“보호 휴가 중이잖아요.”“태준 씨는 출근해야 하잖아요.”“저도 다쳤습니다.”“어제는 환자 아니라고 했으면서.”“상황에 따라 판단을 달리할 수 있습니다.”“변호사가 말을 그렇게 쉽게 바꿔도 돼요?”“의뢰인에게
“안 돼.”태준의 단호한 대답에 시온은 마스크 위로 드러난 눈을 가늘게 떴다. 유리에게 건네려던 죽 봉투는 어느새 두 사람 사이에 끼인 채였고, 태준은 마치 시온이 위험한 계약서라도 내민 것처럼 못마땅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형이 왜 안 된다고 하는데?”“합리적인 우선순위에 어긋나니까.”“사진 찍는 순서에 합리적인 기준이 어디 있어?”“있어.”“설마 형부터 찍어야 한다는 거야?”태준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침묵만으로도 충분했다. 시온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형, 누나는 내 홈마였어. 나를 찍으면서 유명해진 사람이 나부터 찍는 게 당연하잖아.”“그건 온리원일 때 이야기고, 앞으로는 민유리라는 이름으로 찍을 겁니다.”“그래서? 민유리 누나도 날 좋아하거든?”“좋아했습니다.”“누가 과거형이래?”“정시온.”낮아진 태준의 목소리에 시온의 눈썹이 올라갔다. 두 사람이 또다시 서로를 노려보자 유리는 한 손에는 기획서를, 다른 손에는 죽 봉투를 든 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전까지 기자들 앞에서 떨리지 않고 말했던 자신이 우스울 만큼 이 형제를 중재하는 일은 어려웠다.“둘 다 그만해.”유리가 끼어들자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그녀에게 향했다.“우선 내가 이 기획을 맡을지부터 결정해야 해. 아직 카메라를 다시 제대로 들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시온의 표정이 즉시 누그러졌다.“카메라가 무서워요?”“조금.”유리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카메라를 떠올리면 오래 익숙했던 그립의 감촉보다 폐극장에서 울리던 셔터음과 자신의 일상을 몰래 담은 사진들이 먼저 떠올랐다. 셔터를 누르는 행위와 누군가의 사생활을 빼앗는 행위가 전혀 다르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았다. 하지만 남기혁이 자신의 사진과 카메라를 이용한 뒤부터는 오래 사랑했던 도구까지 낯설게 느껴졌다.시온은 잠시 망설이다 손에 든 약국 봉투를 태준에게 떠넘겼다.“그럼 나를 찍는 건 나중에 해도 돼요.”태준이 의외라는 듯 동생을 바라봤다.“방금 전까지 네가 먼저라며.”“누나가 무서
다온북스 건물 앞은 평소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출근 시간이 지난 평일 오전인데도 현관과 주차장 입구를 기자들이 에워싸고 있었고, 방송사 차량까지 도로 한쪽을 차지하고 있었다. 검은 승용차가 모퉁이를 돌아 건물 가까이 다가가자 몇몇 기자가 번호판을 확인하며 카메라를 들었다.조수석에 앉아 있던 유리의 손끝이 굳었다.“아직 차를 발견한 건 아닙니다.”태준이 운전대를 잡은 채 차분하게 말했지만 유리는 창밖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커다란 카메라와 망원렌즈, 누군가를 먼저 발견하려 분주하게 움직이는 눈동자들이 보였다. 자신도 오랫동안 카메라를 들고 누군가를 기다렸다. 그러나 렌즈가 자신을 향하자 그 무게가 얼마나 위협적일 수 있는지 선명하게 느껴졌다.“시온이도 매번 저 사이를 지나갔겠죠?”“그래서 경호원이 붙습니다.”“나는 저 앞을 지나가야 하고요.”“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가면 됩니다. 회사 측에서 차량 번호를 등록해 뒀으니 바로 출입할 수 있어요.”유리는 무릎 위에 놓인 손을 내려다봤다. 태준의 말대로 지하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타면 기자들과 마주치지 않아도 됐다. 대표와 면담을 마친 뒤에도 다른 출입구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범죄 피해자에게 당연히 허용되어야 할 보호였다.그런데 자신이 숨어 들어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기자들은 회사에 남아 다른 직원들을 붙잡을 것이다. 한나와 편집장,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동료들에게 질문을 쏟아 내며 유리의 생활을 캐물을지도 몰랐다.“정문에서 내려 주세요.”태준의 시선이 곧장 유리에게 향했다.“안 됩니다.”“도망치듯 들어가고 싶지 않아요.”“기자들 앞에 서겠다는 것과 무방비하게 둘러싸이는 건 다른 문제입니다.”“짧게라도 내가 직접 말하면 동료들을 붙잡고 물어보지는 않을 거예요.”“그들이 그렇게 합리적으로 움직일 거라고 생각합니까?”“아니요. 그래도 아무 말 없이 피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아요.”유리는 창밖을 바라보다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폐극장에서는 경찰이 준비한 송신기를 달고 남기혁의 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