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log in이 남자는 정말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어 난 정신이 아찔하기까지 했다.
둘러보니 도국은 천막 앞에서 통화 중이었고, 이아준은 저만치 떨어진 어르신들에게 반찬을 나르고 있었다.
친구들에게는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회사 대표가 일개 직원의 사적인 일에 관심을 가질 리가 없는데.
“대표님, 여긴 어쩐 일이세요?”
“나도 식사 좀 하려고.”차준호는 능글맞은 미소를 띠며 갈비탕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사적인 곳을 다닐 때는 늘 혼자 다니는 그였다. 지난 3년간 몸이 가까운 사이였어도 주말 봉사에 얼굴을 내민 적이 없었건만, 왜 하필 지금 나타난 걸까.
너무 황당해 아무 말도 못한 채 멍하니 있던 그 순간.
땅, 땅!
국자가 들통을 두드리는 요란한 소리가 났다.
“이 동네 분 아니시면 가주십시오!”
밤 10시 반.어둠이 짙게 내린 프라이빗 공간 안, 차준호는 나지막한 클래식 음률 대신 최기범과의 통화를 스피커폰으로 켜둔 채 움직이고 있었다.신하늘이 도착하면 걸쳐 입을 포근한 로브를 정갈하게 정돈하고, 출출할 그녀를 위해 준비한 가벼운 야식을 보기 좋게 세팅하는 손길에는 기묘할 정도의 정성이 담겨 있었다.―신 과장, 얼른 퇴근시켜. 저러다 쓰러져.스피커폰 너머로 들려오는 최기범의 건조한 목소리에 차준호가 입꼬리를 얇게 말아 올렸다. 폭신한 거위털 이불의 날을 세워 정리하며 그가 넌지시 쏘아붙였다.“내 여자는 내가 알아서 챙겨. 상하이까지 출장 가서 나한테 전화 하다니.”―그냥 메신저로 또 보고서를 보냈기에 하는 말이야.“그나저나 신하늘 지지자 모임은 또 뭐야?”― ‘스카이 블루’ 바람을 일으키고 싶어서.차준호는 나지막한 한숨을 내쉬며 손을 털었다.은밀한 공간 내부의 온도계를 체크해 적정 온도를 맞추고, 건조하지 않도록 은은한 아로마 향이 퍼지는 가습기를 가동시켰다.정숙한 움직임 속에서도 그의 물음은 묵직하게 최기범을 향했다.“넌 너희 어머니랑 두 번 다시 안 볼 생각이야?”그러자 수화기 너머에서 최기범의 나른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아니. 나라도 나서서 여론을 희석시켜야 하니까. 이슈를 분산하기 위해서랄까.차준호는 피식 콧웃음을 흘렸다. 신하늘을 위한 최선의 환경을 갖추면서도, 그의 이성은 최기범이 쌓은 주춧돌의 진짜 의도를 정교하게 계산하고 있었다.“그런데 네가 대중의 관심을 신하늘에게 더 쏠리게 만들었잖아.”―맞아, 난 지금 신하늘의 역량을 시험하고 있어.
일요일 오전. 일본의 한 예능 프로그램 대기실.“여기가 진짜 일본이라니! 우리 진짜 성공했다, 그치?”하나의 들뜬 목소리가 적막한 대기실 안을 쾌활하게 울렸다.“게다가 3월 1일 신작 게임 출시 이벤트 무대에 우리가 메인 주인공이라니! 언니 너무 기뻐요!”거울 앞에서 메이크업을 수정하던 두나 역시 붉어진 볼을 감추지 못한 채 거듭 고개를 끄덕였다. 들뜬 기색이 역력한 것은 두 사람뿐만이 아니었다.세나 역시 뿌듯함에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하루빨리 더 높이 올라가 확실한 성공을 거둬야만 했다. 그래야 도국과 연예계 바닥에서 오래도록 같은 시선을 공유하며 연을 이어갈 수 있을 테니까.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그를 향한 아련한 마음이 가슴을 묵직하게 짓눌렀다.그때, 대기실 한쪽 모니터를 조용히 바라보던 나나가 입꼬리를 슬그머니 올리며 두 손을 꼭 쥐었다.“언니들, 그거 알아요? 도국 오빠가 예전에 일본 예능에 나와서······ 본인이 우리 팬이라고 직접 말해 줬었대요. 덕분에 일본에서 우리 인기가 갑자기 폭발적으로 뛴 거래요.”나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세나는 입 안쪽에 맺히는 씁쓸함을 참지 못하고 하-, 나지막한 한숨을 흘려보냈다. 단 한 사람, 도국의 말 한마디가 가진 영향력이 얼마나 막강하고 거대한지 새삼 뼈저리게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그러자 옆에 서 있던 하나가 입술을 삐죽거리며 불만스럽게 중얼거렸다.“그나저나 그 신 비서님도 처신 좀 똑바로 해야 할 텐데. 괜히 우리한테 피해 주지 말고 빨리 회사에서 나가줬으면 좋겠다.”하나의 투덜거림에 두나가 거울을 보며 무심하게 말을 받았다.“신 비서님은 어차피
[도움이 필요할 때면 언제든 연락 주십시오.]선우현을 마주했던 시간은 고작 10분 남짓이었으나, 그의 기세에 눌려 한동안 넋을 놓고 있었다.차준호가 사람을 시켜 호화로운 도시락까지 보내주었건만, 나는 제대로 된 감사 답신조차 보내지 못한 채 멍하니 선우현이 주고 간 명함 끝자락만 만지작거렸다.차진철 회장은 물론, 차준호조차 모르게 내 앞에 나타난 선우현.그가 사라진 뒤에도 여운처럼 남은 긴장감에 한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신 과장님, 점심 안 드세요?”옆에서 나정아가 물어올 때까지도 깊은 시름에 빠져 있던 나는, 그제야 번쩍 정신을 차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아······, 먹어야죠.” “오늘도 혹시······ 대표님이랑 드세요?” “아뇨, 오늘은 도시락 먹으려고요.”점심시간이 훌쩍 넘어가는 와중에도 영양가 없는 고민으로 시간만 흘려보낸 꼴이었다.뒤늦게 확인한 사내 메신저 창에는 수많은 알림이 깜빡이고 있었다. 보고서를 잘 전달받았다는 최기범의 메시지, 그리고 단연 시선을 사로잡는 차준호의 푸념까지.[신하늘, 감히 아침도 같이 안 먹고 사라지다니. 괘씸하네.]일개 직원과 달리 한가한 대표님은 더 쉬라는 의미였다고 가벼운 답장을 뒤늦게 보낸 뒤, 가슴 한구석의 찜찜함을 꾹 눌러 덮었다.파티션 너머로 나정아의 시선이 내 책상 옆에 놓인 고급 보온 백으로 향해 있었다. 연일 배달되는 정갈한 디저트와 요리에 내심 기대를 품은 눈치였다.“우리 어서 식사하러 가요.”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나정아의 눈동자가 반짝였다.“얏호! 매일 보신하는 기분이에요. 카페테리아로 가요!”아이처럼 밝게 웃는 그녀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며, 나는 나도 모르게 머리 위층에 있을 차준호를 떠올리며 천장을 흘끗 올려다보았다.
밤의 장막이 걷히고, 여명의 푸르스름한 새벽빛이 프라이빗 공간의 창을 타고 스며들었다.지난밤, 서로를 탐하며 모든 것을 터뜨릴 듯 열정을 포개고 난 뒤에야 우리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지독했던 고된 여정의 끝에서 찾아온 잠은 꿀처럼 달콤하고 안락했다.하지만 아침이 되어 창가로 흐릿하게 흘러드는 백색광에 눈이 적응해 가자, 어젯밤의 밀도 높은 열기는 아침의 민망함으로 변해 차가운 이성을 깨워냈다.나는 잠든 차준호를 깨우지 않은 채 욕실로 향했다. 물소리 사이로 생각을 조용히 정돈했다.그러고 보니, 대체 무슨 정신으로 회사 사옥 한복판에서 이런 낯 뜨거운 거사를 치른 것일까.조만간 허기찬이나 서진원이 출근할 것이고, 아래층에는 주말이어도 많은 직원들이 회사를 누빌 터였다.‘대표님이 변했어.’어젯밤 이곳에서 차준호와 입술을 겹치고 서로의 옷가지들을 하나씩 은밀하게 거두어낼 때마다, 시간은 전혀 다른 차원으로 흘러갔다. 그 강렬한 열기 앞에서 과거의 메마르고 건조했던 관계는 모래성처럼 무너졌다.나를 가득 품어 오던 그의 아주 작은 손길 하나조차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애틋함을 머금고 있었다.드디어 우리도 평범하고 평온한 연인이 된 것일까.‘살다 보니 정말 별일이 다 있네. 피임까지 하지 말자니.’입가에 번지는 나지막한 실소가 공기 중으로 산산이 부서졌다.수건으로 머리를 말리며 여전히 베개 깊숙이 얼굴을 묻고 잠든 그의 얼굴을 응시했다.평소의 견고한 철벽을 완전히 벗어던진 채, 순진무구한 아이처럼 무방비했다. 아마 나를 지키고 이 판을 짜느라 그 역시 며칠 동안 단 한순간도 편히 잠들지 못했을 것이었다.항상 먼저 깨어나 나를 내려다보던 건 차준호였는데, 이렇게 먼저 일어나 그를 지켜보는 것은
CH-컴퍼니 대표실 한편 리모델링을 한 은밀한 이곳에 정제된 침묵이 찾아왔다.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뜨거운 감정이 울컥 솟구쳐 올랐다.3월 1일.모든 미련을 털어내고 차준호에게서 완전히 등을 돌려 떠나겠노라 단단히 마음먹은 이후로, 내 마음은 잔잔한 호수처럼 유지하기 위해 갖은 애를 다 썼다.하지만 그가 매일매일 던진 수평선 너머의 파문은 지나치게 거대했다.그리고 오늘 드디어 역대급 거대한 물보라를 그가 일으켰다.“신하늘, 놀란 거야? 나는 너랑 닮은 아이를 원해.”차준호의 입에서 이런 명제가 흘러나올 줄은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성인 남녀가 밤을 지새우고 체온을 섞다 보면 자연스레 수순처럼 따라오는 일이라 해도, 늘 철벽을 세우고 거리를 둔 차준호가 나를 향해 건넨 그 말은 내 영혼을 송두리째 흔들었다.나는 아무런 말도 잇지 못했다. 다만 오늘은 이성도, 계산도 아닌 오롯이 본능에만 이끌리고 싶었다.이번에는 그에게 주도권을 내주지 않겠다는 듯, 그의 묵직한 입술을 내가 먼저 집요하게 덮쳐버렸다.거세게 요동치는 심장 소리가 귀가에서 사정없이 울려댔고, 시야는 이미 아득한 열감으로 일렁였다.내가 세워둔 서늘한 계획을 수정해야 하는 걸까. 기한으로 정해둔 날이 이제 겨우 일주일도 남지 않았는데.지금 이 순간만큼은 눈을 감은 채 차준호라는 남자를 오롯이 내 품에 가두었다. 그에게 안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에게 손을 뻗었다.참으로 알 수 없는 게 인생이었다.이래서 일단은 견디며 살아보아야 하는 건가.차준호의 목을 끌어 안은 채, 열기를 더욱 돋우며 밤은 그렇게 깊어져 갔다.***같
23층에서 25층, 익숙한 비서실을 지나 대표실로 향하는 길.“대표님, 참 가지가지 대단도 하시네요.”어느새 나는 차준호의 단단한 손에 이끌려 조용한 복도를 걷고 있었다. 게임 개발실이 위치한 층을 벗어나자 고요한 침묵만이 감돌았다.명절 직후의 주말인 데다 다른 부서 직원들은 연차를 몰아 쓴 덕에 사옥 안은 적막했다.“지난주에 대표실을 좀 리모델링했거든.”비서실을 지나자, 허기찬 대신 서진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대표님, 요청하신 자료는 메신저로 정리해 두었습니다. 전 이만 퇴근하겠습니다.”“그래, 고생했어.”나를 대신해 정식 비서 자리에 들어온 모양이었다. 총무과에 있을 때보다는 훨씬 나은 대우를 해주겠지. 그래도 여자 비서가 아니라 다행스러워하는 나 자신에게 허무한 콧웃음이 흘러나왔다.차준호가 나를 이끌고 들어간 곳은 대표실 안쪽 프라이빗 공간이었다.예전에 무심코 본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때와 확연히 달랐다.은은하게 깔린 간접 조명 아래, 세련된 소파와 미니바가 보였고, 그 옆으로 널찍한 킹사이즈 침대가 자리했다.원래 한남동 저택이나 호텔 스위트룸에 비하면 소박한 수준인 데다가 서재 같던 공간이 원룸처럼 꾸며져 있어 색다른 기류가 흘렀다.설마 나 때문에 호텔로 돌아가지 못하는 날이면 이곳에서 밤을 보내기 위해 이 판을 짜둔 걸까.황당함에 말을 잊은 나를 보며, 그가 입꼬리를 짓궂게 올려 세웠다.“차나 한잔할까. 내가 이제야 건강 좀 챙겨볼까 하고 술은 좀 줄였거든.”어느새 차준호는 미니바 앞에서 익숙하게 찻주전자를 꺼냈다. 나는 묘한 기분에 할 말을 잃은 채 털썩 소파에 몸을 묻었다.
[1월 1일, 재벌가 차준호와 톱여배우 강소희! 둘만의 밀월여행이었나· 강원도에서 추락 사고!][CC그룹 후계자 차준호·한류스타 강소희! 과연 현재 상태는?][사고 직후 불거진 비밀 연애 의혹· 관계자들은 어떤 입장을···][과연 차준호와 강소희 사고에 관한 진실은 무엇인가!]새해의 태양이 채 떠오르기도 전, 대한민국은 단 하나의 소식으로 들끓었다. 차준호는 강소희를 자신의 세단에 태운 채 1월 1일 새벽 강원도 산길을 달리던 중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십여 미터 아래 낭떠러지로 추락했다.단순한 교통사고인지, 범죄와 연관된
‘이 나쁜 자식!’지난 3년간 내게 보인 그 모든 다정함은 한낱 유희였을까? 차준호에 대한 배신감에 속이 문드러져 욕지거리가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나는 부서질지언정 굽히지 않는 자존심을 끌어모아, 끝까지 평정심을 유지하며 도도한 어조로 말을 이어 나갔다.“대표님은 그동안 절 어찌 보셨는데요?”나는 유리창 너머로 썰물처럼 번지는 화려한 야경을 사납게 응시하며, 심장에 박힐 날 선 말을 뱉어냈다.“네 주변에 남자가 들끓어 보였거든.”뻔질나게 전화를 걸어오는 남사친 둘을 두고 한 오해였을까. 설령 그렇다 해도, 그동안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의 정적을 깨우는 밤 11시 반 무렵.창밖으로는 하얀 눈꽃이 송이송이 흩날리며 세상의 모든 소음을 집어삼키고 있었지만, 강남 C 호텔 25층 로열 스위트룸 내부는 숨 막힐 듯 팽팽한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조도를 최대한 낮춘 짙은 어둠 속에서 나는 차준호라는 거대한 포식자에게 온전히 잠식당한 채, 밤을 녹여내는 은밀하고도 위태로운 시간을 보냈다.내 몸의 지도를 그보다 더 세밀하게 파악하고 있는 존재는 세상에 없었다. 귓가를 어지럽히는 그의 뜨겁고도 습한 숨결이 예민한 목덜미를 따라 부드럽게 흘러내
난 차준호의 지시를 이행하기 위해 오전에 회사에 들른 뒤 자료를 챙겨 버스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버스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은 진창에 처박힌 내 마음처럼 흐릿했다.가던 중에 벨이 울려 확인하니 반가운 도국이었다.-하늘아, 어디야?요즘 부쩍 날 챙겨 주는 도국과 이아준이었다. 회사 일로 바쁜 날 염려해 주는 동시에 고민이 있는 엉망인 내 상태를 눈치챘는지 여러모로 신경 써주니 고맙기만 했다.“바쁜데, 뭘 또 전화까지. 난 병원 가는 길.”-어제도 밤새 게임같이 해 놓고 피곤하겠네.“오늘 3시 출근이라 늦잠 잤어.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