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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비밀의 밤, 잔인한 선물

Auteur: silver구슬
last update Date de publication: 2026-05-17 14:11:26

‘이 나쁜 자식!’

지난 3년간 내게 보인 그 모든 다정함은 한낱 유희였을까? 

차준호에 대한 배신감에 속이 문드러져 욕지거리가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나는 부서질지언정 굽히지 않는 자존심을 끌어모아, 끝까지 평정심을 유지하며 도도한 어조로 말을 이어 나갔다.

“대표님은 그동안 절 어찌 보셨는데요?”

나는 유리창 너머로 썰물처럼 번지는 화려한 야경을 사납게 응시하며, 심장에 박힐 날 선 말을 뱉어냈다.

“네 주변에 남자가 들끓어 보였거든.”

뻔질나게 전화를 걸어오는 남사친 둘을 두고 한 오해였을까. 설령 그렇다 해도, 그동안 나를 그저 몸만 즐기는 파트너로 취급했다는 그의 확신에 가슴이 난도질당했다.

“전 아무하고나 침대를 달구지는 않아요.”

바에서 생수를 들고 걸어온 차준호는 내게 슬그머니 병을 내밀었다. 마치 ‘냉수 먹고 속 차려라’ 하는 무언의 조롱 같아 속내가 뒤틀리다 못해 뒤집어질 것 같았다. 

안 그래도 화가 치밀어 올랐기에 신경질적으로 병을 뺏어 들어 크게 한 모금 마셨다.

“그래서 오늘은 그리 섹시한 옷도 입고 와서 나에게 고백하려고 했어?”

숨이 탁 막히는 순간이었다. 일순 목에 사레가 들려 볼썽사납게 헛기침이 터져 나왔다. 

완벽하게 고백 성공 시나리오를 쓰고, 오늘부터 진정한 연인 1일이 될 거라 철석같이 기대했던 나였기에 타격이 컸다. 단칼에 차인다는 예상은 전혀 못 했기에 당황스러움에 눈앞이 아찔했다.

“놀랐어? 귀엽긴.”

진심으로 이 상황이 흥미롭고 즐거운지, 그의 입가에는 호선이 만개했다. 

그리고 그는 갑자기 로브 주머니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 들고 내게 다가왔다. 온몸 가득 베인 시원하고 고급스러운 머스크 향이 코끝을 자극하며 머릿속을 하얗게 마비시켰다.

딸깍. 정적을 깨는 소리와 함께 상자가 열렸다. 

차준호는 길고 곧은 손끝으로 내용물을 조심스럽게 더듬어 꺼내더니, 얼어붙은 내 목에 차가운 금속성 이물감을 선사했다.

“······대표님?”

그가 내게 선사한 것은 바로 근사한 다이아몬드가 박힌 목걸이였다.

***

그의 행동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애초에 내게 주려고 미리 준비했다는 건데, 이 모순적인 남자는 지금 내게 왜 이러는 거지?

“메리 크리스마스.”

가까이서 내 목덜미를 바라보는 그의 짙은 시선은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난 천천히 고개를 숙여 목에 걸린 물건의 정체를 내려다보았다. 가느다란 체인 끝에 매달린 목걸이였다. 붉은 기운이 은은하게 도는 펜던트는 구름, 별, 달 모양이 다이아몬드로 정교하게 세공되어 있어서, 마치 그동안 우리가 남몰래 나눈 비밀스러운 밤을 새겨놓은 것처럼 보였다.

특히 펜던트 속 달 모양이 마치 그가 깊숙이 숨겨둔 진심을 투영하는 거울 같아, 혼란스러운 상념만 머릿속을 어지럽게 맴돌았다. 

나랑 연애도 안 하고, 고백도 하지 말라고 원천 차단하면서 왜 목걸이는 이토록 다정하게 쥐여주는 걸까?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크리스마스잖아. 선물 주는 거지. 신하늘이 예뻐서.”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나는 말문이 막혀 버렸다.

이건 또 무슨 행동일까. 방금 난 매몰차게 차인 게 아니었나. 

그는 통유리창 너머로 무수히 흩날리는 눈발을 바라보며, 입가에 걸린 알 수 없는 미소를 끝내 거두지 않았다.

그때 Rrrr Rrrr.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리자 그는 내게서 벗어나 통화에 집중했다. 

“허 실장, 뭐라고? 일치한다고?” 

전화를 받는 그의 얼굴이 점점 굳어졌다. 난 펜던트를 만지작거리며 창에 비친 그의 냉정한 실루엣만 응시했다.

몇 마디 주고받던 통화를 황급히 끊은 그가 무표정한 얼굴로 다가왔다.

“급한 일이 생겼어. 다음 주 스케줄 비워.”

차준호의 목소리에 서늘함이 묻어났다.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나는 얼른 나갈 채비를 서둘렀다. 당연히 오늘 같은 날, 급한 일이 아니더라도 더 붙어 있을 명분이 없었다.

“데려다줄게. 허기찬 불렀어.”

“아시잖아요. 여기서 세종동은 가까워요.”

이렇게 나의 크리스마스이브 고백은 대실패로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룸을 나가기 위해 가방을 들자 평소와 다른 무게라 잠시 몸을 움찔했다.

그에게 선물로 줄 [당신 덕분에 매일 행복했습니다]라고 적힌 신간 도서가 지금의 나를 조롱하듯 가방 속에서 존재감을 내비쳤다.

“대표님. 오늘 이곳에서 나눴던 대화는··· 없었던 일로 생각해 주세요.”

난 표정을 가다듬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감정을 죽인 채 억지로 웃어 보이자,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답했다.

“그래. 오늘 일은 깨끗이 잊어 줄게.”

차준호의 목소리 끝에는 묘한 여운이 맴돌았다.

***

역시 내 인생은 이런 식이지. 다시 블루 크리스마스로 돌아왔다.

도국과 이아준 두 친구 녀석 덕분에 남자를 모르고 살았던 내 모태솔로 인생이었건만.

갑자기 3년 전, 운명처럼 등장한 차준호라는 사람과의 3D로 펼쳐진 혼자만의 핑크빛 로맨스는 착각으로 끝이 났다. 

고개 위로 눈발이 하늘에 아름답게 수를 놓았지만, 발밑은 질척하고 칙칙한 풍경뿐이었다. 

따뜻하고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환상이었으나 현실은 이리 춥고 진창인 것을.

핑크 스틸레토 힐에 튀어 오른 흙탕물이 발목을 휘감으며 신경질을 자극했고, 입안의 온기는 하얗게 부서져 얼굴마저 얼게 했다. 

니트 원피스가 보기엔 따뜻해 보여도 보온과는 거리가 멀었기에 코트 깃을 바짝 세웠다. 한기를 고스란히 맞으며 열이 오른 머리를 식혔다.

주말도 없이 야근을 밥 먹듯 한 3년. 그래도 그와 함께여서 즐거웠다. 비서는 회사의 이미지라며 좋은 옷도 선물 받고 국내외 대단한 출장길도 함께여서 행복했는데.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또래보다 험난한 길을 걸어온 나. 물려받은 보육원 땅을 지키고 빚을 갚을 수 있었던 건 오직 입사 덕분이었다.

고개를 돌려 C호텔을 바라보자, 유리창의 찬란한 불빛은 내 것이 아니라고 거부하는 것 같아 아득했다. 

차준호와 함께할 따뜻한 봄을 기대했지만, 지금은 엉망인 땅바닥처럼 추운 겨울이나 신경 써야 했다. 잊어 달라 했지만, 이제 그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연봉 협상 시기가 다가오는데 그만둬야 하나 마음이 뒤숭숭해 한숨만 터져 나왔다.

그에게 받은 목걸이 펜던트만 만지작거리며 기계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의 굴욕을 지워버리려 해도 목덜미에 닿은 목걸이의 서늘한 감각이 굴욕적인 기억을 자꾸만 되새김질하게 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나도록 차준호는 연락 두절이 되었다. 그의 소식은 새해 아침 언론 보도를 통해 전해졌다.

***

1월 1일.

차준호가 사라진 지 일주일째, 그의 이름이 갑자기 속보로 떠올랐다.

대한민국의 재벌가의 황태자 차준호와 독보적인 한류 스타 강소희. 두 사람의 세기의 스캔들이 터진 것이다. 그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세기의 스캔들? 굴지의 CC그룹 황태자 차준호와 글로벌 톱 여배우 강소희 사고!]

[현재 차준호와 강소희는 대한종합병원 중환자실에서 의식불명 상태!]

silver구슬

·가운데 점을 수정하였습니다. 먼저 읽으신 분들 불편드려 죄송합니다. 최대한 하루 1~2회차는 올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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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명적인 거짓말(The Dearest Lie)   #176. 모든 일에는 대가가 걸려 있지

    그때 고미주는 그 말이 일리가 있다 여겼는지, 떡국을 뜨던 숟가락을 놓더니 차진아의 흘러내린 머리칼을 가만히 뒤로 넘겨주었다.“엄마, 오빠가 비밀로 하는 게 뭐가 있긴 있나 보구나?”“그냥 때가 되면 다 밝혀질 거야.”차진아는 떡국을 삼키며 장난기 어린 애교를 담아 눈매를 휘어 접었다. 그러고는 생글생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세상에 영원한 비밀이 어디 있겠어? 거짓말도 결국 다 밝혀진다고.”“입은 똑똑한 내 딸이라니까.”고미주는 그리 말하며 피식 웃고는 주방으로 향해 문어를 더 가져왔다. 국자로 차진아의 그릇에 문어를 듬뿍 얹어주며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이 카페는 다음 달부터 내가 운영 잘할 테니까 나한테 맡겨. 엄마는 이제 새 출발해도 돼.”그 소리에 고미주는 냄비를 내려놓자마자 손바닥으로 찰싹! 차진아의 등짝을 후려쳤다.“새출발? 게다가 카페 운영을 지금 한다고? 공부나 열심히 해서 대학이나 가!”“아우, 아파! 알았어, 알았다고!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외국인 손님들이 욕하겠네! 한국사람 이상하다고!”고미주는 외국인 손님들의 눈치를 살피며 어깨를 찔끔 움찔거렸다.그러고는 차진아를 향해 눈을 한번 흘기고는 따뜻한 국물까지 그릇에 가득 채워주었다.“나중에 엄마 나이 들면 이 카페 너 줄 테니까, 아프지나 마. 난 너만 행복하면 되니까.”고미주의 나지막한 한숨에는 자식을 향한 깊은 모정과 지나온 세월에 대한 탄식이 엉켜 있었다.“우리 엄마, 명절 아침부터 딸을 울릴 작정이야?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내가 나중에 성공해서 이 건물 3층

  • 치명적인 거짓말(The Dearest Lie)   #9. 빌런을 좋아한 건가. 이런 망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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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명적인 거짓말(The Dearest Lie)   #8. 내가 미쳤지.

    무슨 그런 거짓말을.내 머릿속에선 운명 교향곡이 요동쳤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한 거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수면 부족과 카페인의 부작용일까. 평소 차분함과 다혈질이 공존하던 내 감정은 이미 균형을 잃은 지 오래였다.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화살은 이미 날아갔고 물은 엎질러졌다.“재미있네. 나는 신 비서를 좋아하지도, 사귈 리도 없을 텐데?”차준호는 내 말을 믿지 않았는지 코웃음 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난 목에 닿은 펜던트를 무의식적으로 만지다가, 그의 손길이 닿았던 순간이 떠올라 몸을 떨었다.이걸 그가 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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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의 입을 통해 끊임없이 유령처럼 떠돌던 이름의 실체.신하늘, 신 비서. 차준호는 누워 있는 내내 의식의 수면 아래에서 울리던 그 이름이 내심 신경 쓰였다.하지만 드디어 눈앞에 나타난 실체를 마주한 순간, 관자놀이가 끊어질 듯 욱신거리며 지독한 두통이 밀려왔다.그녀의 이름 세 글자가 왜 이토록 심장 가장 깊은 곳을 거슬리게 긁어내리는 걸까. 기묘한 일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졸졸 쫓아다녀 철벽만 치기 바빴던 강소희랑 같이 사고가 났다니. 하지만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한 톨의 아쉬움도 일지 않았다.대신 눈앞의 신하늘

  • 치명적인 거짓말(The Dearest Lie)   #6. 천하의 나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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