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ICIAR SESIÓN[CC그룹 후계자 차준호·한류스타 강소희! 과연 현재 상태는?]
[사고 직후 불거진 비밀 연애 의혹· 관계자들은 어떤 입장을···]
[과연 차준호와 강소희 사고에 관한 진실은 무엇인가!]
새해의 태양이 채 떠오르기도 전, 대한민국은 단 하나의 소식으로 들끓었다. 차준호는 강소희를 자신의 세단에 태운 채 1월 1일 새벽 강원도 산길을 달리던 중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십여 미터 아래 낭떠러지로 추락했다.
단순한 교통사고인지, 범죄와 연관된 것인지, 혹은 세상을 등지려 했던 극단적인 시도였는지, 무책임한 추측성 보도가 해일처럼 쏟아졌다.
특히 새해 첫날이라는 상징적인 시기와 맞물려, 평소 스캔들 한 번 없이 결벽에 가까운 사생활을 유지하던 유명인의 사고 소식은 국민적인 광기를 불러일으켰다.
CC그룹 소유의 대한종합병원은 몰려든 기자들과 그룹 관계자, 가족들로 인해 인산인해를 이루며 아수라장이 되었다. 하지만 그 혼돈 속에서 정작 정신을 차리기 어려운 사람은 나였다.
그가 의식불명이라는 소식도 충격이었지만, 사고 당시 곁에 '다른 여자'가 있었다는 사실이 비수처럼 가슴에 박혔다.
크리스마스에 차인 뒤, 소꿉친구인 도국과 이아준을 불러 밤새 온라인 게임에 매달리며 잊으려 애썼던 노력들이 단숨에 물거품이 되었다. 부족한 잠과 뒤섞인 복잡한 머릿속은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게다가 나를 더 힘들게 하는 건 따로 있었다.
-신 비서! 미안해, 내가 지금 일본이라. 뒷수습 좀 부탁해.
“허기찬 비서 실장님, 설마 제가 지금 병원으로 가서 기자들을 상대하라는 말씀이세요?”
원래는 내가 해야 하지만 사정이 이렇게 됐어. 미안해. 홍보실이나 이사진도 신 비서가 적임자라고 임시 비상 회의에서 결론 났나 봐.
이게 말이 되나? 회사에 사람이 천 명도 넘는데, 왜 하필 가장 큰 상처를 입은 내가 이 스캔들의 전면에 서야 하는지.
-예전에도 나랑 대표님 해외 나갔을 때 국내에서 터진 일 생각 나지? 그때도 신 비서가 잘 틀어 막아 차진철 회장님이 인정하신 능력자잖아. 잘 부탁해!
계속 사정사정하는 허기찬의 말을 듣던 나는 통화를 종료하고 나서도 휴대전화기만 손에 쥔 채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아무리 미운 차준호였지만, 그의 생사조차 모른 척할 만큼 독해지지는 못했다. 기자들 상대하는 건 부담스럽지만, 그의 사고 소식을 듣고 가만히 있을 성격도 아니었다.
나는 옷장에서 그래도 제대로 옷을 골라 입고 집을 나섰다.
잔인한 운명의 수레바퀴가 나를 끌고 병원이라는 거대한 전쟁터로 몰고 갔다.
*** 대한종합병원 10층 VIP 병동 앞.차준호는 괜찮은지 전전긍긍하는 내 마음과 다르게 몰려드는 기자들 사이에서 가장 분주하게 움직여야 하는 사람은 단연 나였다.
CC그룹 관계자부터 가족, CH-컴퍼니 직원, 강소희의 소속사 인사, 의료진까지 모두가 나를 찾았다.
공식 석상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한 직원도, 사적인 비밀을 공유했던 사람도, 차준호의 개인 공간에 출입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인물이 나였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언론 대응을 앞두고 차준호의 어머니 고미주에게 다가갔을 때, 돌아온 것은 서슬 퍼런 호통이었다.
“왜 네가 설치는 거야? 기찬이는!”
“실장님은 오키나와로 휴가를 떠나신 상태입니다.”40대 초반으로 보일 만큼 우아하지만 날카로운 미모를 지닌 고미주는 아들의 안위보다 체면이 더 중요한 듯 보였다. 옆에는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동생 차진아가 불안한 기색으로 서 있었다.
“엄마, 무서워. 기자들이 계속 나한테 뭘 물어봐.”
“넌 이제 입 꾹 다물면 돼. 에휴, 기찬이 그놈은 이 와중에 여행이나 다니고, 쯧! 홍보 실장은? 다른 사람 없어?”당장이라도 사직서를 던지고 돌아가고 싶었지만, 나는 감정을 죽인 채 참아냈다.
“임시 회의 결과, 제가 대신 기자들을 상대하는 것으로 결정되었습니다.”
“강소희 그년이랑 우리 차 대표가 정말 사귄 거야? 정말 미치겠네!”미칠 것 같은 사람은 바로 나였다. 3년 동안 아무런 낌새도 느끼지 못했기에 그와 잠자리까지 나누지 않았겠는가.
블루 크리스마스의 악몽이 떠오르자 피가 거꾸로 솟는 듯했다.
“너 옷이 그게 뭐니? 패션쇼 왔어? 누가 비서 교육을 이따위로 한 거야?”
급하게 챙겨 입은 보라색 원피스가 그녀의 심기를 건드린 모양이었다. 차준호가 선물해준 세련된 명품이었으나, 지금의 내게는 주인의 변덕에 따라 입혀진 장식품의 허울처럼 느껴져 이 또한 할 말이 없었다.
“엄마는! 요새 유행하는 스타일이야. 빨리 비서 언니 내보내! 기자들 엄청 왔단 말이야!”
베일에 싸여 있던 가족들을 처음 마주하는 자리가 이런 지옥 같은 병원이라니. 고미주의 얼굴에 분노와 초조가 교차하다 끝내 체념이 깃들었다.
“신 비서, 어떻게 해야 하지?”
나는 비장한 각오를 다지며 답했다.
“우선 공식 입장은 추후에 밝히겠다고 기자들을 달래놓겠습니다.”
강소희의 소속사 관계자들마저 당황해 우왕좌왕하는 사이, 주치의 강진욱 박사가 의료진을 이끌고 나타났다.
“강 박사님! 상태는 좀 어떤가요?”
“아직 의식이 없으십니다. 그래도 차도는 있으십니다. 곧 깨어나실 것 같습니다.”차준호가 그래도 위독한 상황은 아니라니. 그건 천만다행이었다.
눈만 뜨면 따질 건 따지고 진실을 물어야지 생각하며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어머, 감사해요. 박사님. 늘 이렇게 신세만 지네요.”
순식간에 얼굴을 우아하게 바꾼 고미주는 의사에게로 몸을 돌리며 나를 향해 나가라는 손짓을 날렸다.
나는 고미주로부터 몸을 돌려 병실 문을 열고 나섰다.
수천 개의 눈동자가 나를 집어삼킬 듯 번뜩이는 플래시 세례 속으로 기꺼이 몸을 던졌다.
*** 한편, 신하늘의 절친이자 L그룹 후계 후보 1순위인 이아준은 전화를 받고 잠에서 덜 깬 채 멍하니 있었다.자신의 비서 실장 김정규의 다급한 보고에 꾸역꾸역 일어나 거실로 나왔다.
전날 밤, 그는 제대한 지 한 달도 안 된 친구 도국을 불러 세종동 하늘의 집에서 제야의 종소리를 들었다. 27살 나잇값도 못한 채 어린 시절처럼 게임으로 하얗게 밤을 불태운 뒤, 동이 틀 무렵 잠실의 300평 규모 레지던스로 돌아온 참이었다.
TV를 뉴스 채널에 맞춘 그는 식겁하며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화면 속엔 하늘이 기자들에 둘러싸여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그는 곧장 도국에게 전화를 걸었다.
“국아, 우리 하늘이 텔레비전에 나왔어.”
-나도 지금 봤어.
“이 와중에 하늘이는 왜 저렇게 예쁘고 난리냐, 마음 아프게.”
-···농담은.
이아준은 커피 머신의 버튼을 누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이게 뭔 일이래?”
-젠장. 오너가 친 사고 뒷감당을 왜 하늘이가 해?
도국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오자 이아준의 입매도 뒤틀렸다.
“이참에 하늘이는 이번에 물려받은 L-DS로 데려와야겠어. 애가 3년간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가, 최근엔 넋이 나가 있던데. 더는 못 참아.”
이아준의 목소리엔 날 선 결의가 서려 있었다.
-그래, 나도 하늘이 이제 관리 좀 해야겠어. 차준호가 분명 원인이야.
휴대전화 너머 도국의 목소리 역시 흉흉하게 울려 퍼졌다.
소중한 친구를 진창에 둔 대가가 무엇인지, 두 포식자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2월 28일 점심. 사내 카페테리아에는 평소보다 한결 가벼운 온기가 감돌고 있었다.그러나 사람들의 맑은 웃음소리와 대비되듯, 나의 내면은 지독한 악몽의 잔재로 까마득하게 가라앉아 있었다.한 번 뒤흔들린 입맛은 돌아올 줄 몰랐고, 정성스레 정돈된 차분한 대화 속에서도 온전히 그 온기를 누리지 못했다.직원들과 테이블에 둘러앉아 내일 정식 출시를 앞둔 게임의 최종 빌드를 실행했다. 앱 마켓 검수까지 완벽하게 끝마친 모바일 화면 위로 유려한 그래픽과 찰나의 화려함이 감각적으로 흘러나왔다. 가만히 화면을 응시하던 김강무가 나지막이 탄성을 뱉어냈다.“수백억을 쏟아부을 때만 해도 PC와 모바일을 동시에 잡는 게 가능할까 싶었는데······ 마켓 검수까지 무사히 넘기고 이렇게 눈으로 확인하니 정말 감개무량하네요.”김강무의 감탄에 나정아가 화면에서 시선을 거두고, 휴대폰 화면을 힐끔 바라보았다.“그나저나 전 이제 휴대폰 화면이 훨씬 더 익숙해진 것 같아요. 줄곧 PC로만 테스트를 해왔었거든요.”“요즘은 데스크톱이 없는 가구도 많습니다. 그래픽과 타협하지 않고 모바일 최적화에 과감히 사활을 건 게 결국 글로벌 시장의 흐름과 정확히 맞아떨어졌습니다. 사전 예약자만 해도 이미 300만을 가뿐히 넘어섰더군요.”옆자리의 최기범이 특유의 낮고 차분한 음성으로 말을 보탰다. 그러자 찻잔을 들고 있던 한규련이 은근히 분위기를 띄웠다.“게다가 이번에 에스텔라가 부른 메인 OST 반응이 그야말로 뜨겁던데요? 음원 차트 상위권은 물론이고 MV 조회수까지 폭발적이라 초기 유입은 확실히 잡은 셈이죠. 그건 그렇고·····&mi
[3선 중진 김희주, 당 노선 불일치 및 막말 논란으로 전격 공천 탈락 수모!][지역 민심 외면한 결과? 김희주 컷오프 충격··· 세종동 물갈이 신호탄 되나][‘새 술은 새 잔에’… 지지 세력 몰락에 무너진 중진, 2030 신진 세력 급부상][XX당 공천 기습 발표 후 여론 촉각··· 경합 지역 속전속결 선거 체제 돌입][‘대어’ 신하늘의 행보는? XX당 영입설 솔솔, 전격 공천 받게 되려나]김희주의 몰락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 되어가고 있었다.시시각각 업데이트되는 대한민국의 정치부 헤드라인은 김희주의 추락과, 그 반사이익의 중심에 선 신하늘의 기사로 도배되다시피 했다.잠실 L그룹 회장실.블라인드 사이로 비쳐 드는 창백한 햇살 아래, 이아준은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지 못한 채 입꼬리를 씰룩거렸다.정계 전체를 요동치게 만든 김희주의 컷오프 소식은 김희주에게 줄을 댔던 이아정의 코를 납작하게 누를 완벽한 호재였다.“할아버지, 김희주는 이제 완전히 끝났네요.”이아준이 신이 난 목소리로 말을 건넸어도 이왕춘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마치 거대한 둔기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사람처럼, 멍한 눈으로 식어가는 찻잔만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10년도 넘게 당에 공헌했는데, 공천조차 못 받다니······. 정말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다.”이왕춘의 목소리에는 환희가 아닌, 깊은 충격과 묘한 허탈감이 짙게 묻어났다.
밤 10시 반.어둠이 짙게 내린 프라이빗 공간 안, 차준호는 나지막한 클래식 음률 대신 최기범과의 통화를 스피커폰으로 켜둔 채 움직이고 있었다.신하늘이 도착하면 걸쳐 입을 포근한 로브를 정갈하게 정돈하고, 출출할 그녀를 위해 준비한 가벼운 야식을 보기 좋게 세팅하는 손길에는 기묘할 정도의 정성이 담겨 있었다.―신 과장, 얼른 퇴근시켜. 저러다 쓰러져.스피커폰 너머로 들려오는 최기범의 건조한 목소리에 차준호가 입꼬리를 얇게 말아 올렸다. 폭신한 거위털 이불의 날을 세워 정리하며 그가 넌지시 쏘아붙였다.“내 여자는 내가 알아서 챙겨. 상하이까지 출장 가서 나한테 전화 하다니.”―그냥 메신저로 또 보고서를 보냈기에 하는 말이야.“그나저나 신하늘 지지자 모임은 또 뭐야?”― ‘스카이 블루’ 바람을 일으키고 싶어서.차준호는 나지막한 한숨을 내쉬며 손을 털었다.은밀한 공간 내부의 온도계를 체크해 적정 온도를 맞추고, 건조하지 않도록 은은한 아로마 향이 퍼지는 가습기를 가동시켰다.정숙한 움직임 속에서도 그의 물음은 묵직하게 최기범을 향했다.“넌 너희 어머니랑 두 번 다시 안 볼 생각이야?”그러자 수화기 너머에서 최기범의 나른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아니. 나라도 나서서 여론을 희석시켜야 하니까. 이슈를 분산하기 위해서랄까.차준호는 피식 콧웃음을 흘렸다. 신하늘을 위한 최선의 환경을 갖추면서도, 그의 이성은 최기범이 쌓은 주춧돌의 진짜 의도를 정교하게 계산하고 있었다.“그런데 네가 대중의 관심을 신하늘에게 더 쏠리게 만들었잖아.”―맞아, 난 지금 신하늘의 역량을 시험하고 있어.
일요일 오전. 일본의 한 예능 프로그램 대기실.“여기가 진짜 일본이라니! 우리 진짜 성공했다, 그치?”하나의 들뜬 목소리가 적막한 대기실 안을 쾌활하게 울렸다.“게다가 3월 1일 신작 게임 출시 이벤트 무대에 우리가 메인 주인공이라니! 언니 너무 기뻐요!”거울 앞에서 메이크업을 수정하던 두나 역시 붉어진 볼을 감추지 못한 채 거듭 고개를 끄덕였다. 들뜬 기색이 역력한 것은 두 사람뿐만이 아니었다.세나 역시 뿌듯함에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하루빨리 더 높이 올라가 확실한 성공을 거둬야만 했다. 그래야 도국과 연예계 바닥에서 오래도록 같은 시선을 공유하며 연을 이어갈 수 있을 테니까.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그를 향한 아련한 마음이 가슴을 묵직하게 짓눌렀다.그때, 대기실 한쪽 모니터를 조용히 바라보던 나나가 입꼬리를 슬그머니 올리며 두 손을 꼭 쥐었다.“언니들, 그거 알아요? 도국 오빠가 예전에 일본 예능에 나와서······ 본인이 우리 팬이라고 직접 말해 줬었대요. 덕분에 일본에서 우리 인기가 갑자기 폭발적으로 뛴 거래요.”나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세나는 입 안쪽에 맺히는 씁쓸함을 참지 못하고 하-, 나지막한 한숨을 흘려보냈다. 단 한 사람, 도국의 말 한마디가 가진 영향력이 얼마나 막강하고 거대한지 새삼 뼈저리게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그러자 옆에 서 있던 하나가 입술을 삐죽거리며 불만스럽게 중얼거렸다.“그나저나 그 신 비서님도 처신 좀 똑바로 해야 할 텐데. 괜히 우리한테 피해 주지 말고 빨리 회사에서 나가줬으면 좋겠다.”하나의 투덜거림에 두나가 거울을 보며 무심하게 말을 받았다.“신 비서님은 어차피
[도움이 필요할 때면 언제든 연락 주십시오.]선우현을 마주했던 시간은 고작 10분 남짓이었으나, 그의 기세에 눌려 한동안 넋을 놓고 있었다.차준호가 사람을 시켜 호화로운 도시락까지 보내주었건만, 나는 제대로 된 감사 답신조차 보내지 못한 채 멍하니 선우현이 주고 간 명함 끝자락만 만지작거렸다.차진철 회장은 물론, 차준호조차 모르게 내 앞에 나타난 선우현.그가 사라진 뒤에도 여운처럼 남은 긴장감에 한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신 과장님, 점심 안 드세요?”옆에서 나정아가 물어올 때까지도 깊은 시름에 빠져 있던 나는, 그제야 번쩍 정신을 차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아······, 먹어야죠.” “오늘도 혹시······ 대표님이랑 드세요?” “아뇨, 오늘은 도시락 먹으려고요.”점심시간이 훌쩍 넘어가는 와중에도 영양가 없는 고민으로 시간만 흘려보낸 꼴이었다.뒤늦게 확인한 사내 메신저 창에는 수많은 알림이 깜빡이고 있었다. 보고서를 잘 전달받았다는 최기범의 메시지, 그리고 단연 시선을 사로잡는 차준호의 푸념까지.[신하늘, 감히 아침도 같이 안 먹고 사라지다니. 괘씸하네.]일개 직원과 달리 한가한 대표님은 더 쉬라는 의미였다고 가벼운 답장을 뒤늦게 보낸 뒤, 가슴 한구석의 찜찜함을 꾹 눌러 덮었다.파티션 너머로 나정아의 시선이 내 책상 옆에 놓인 고급 보온 백으로 향해 있었다. 연일 배달되는 정갈한 디저트와 요리에 내심 기대를 품은 눈치였다.“우리 어서 식사하러 가요.”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나정아의 눈동자가 반짝였다.“얏호! 매일 보신하는 기분이에요. 카페테리아로 가요!”아이처럼 밝게 웃는 그녀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며, 나는 나도 모르게 머리 위층에 있을 차준호를 떠올리며 천장을 흘끗 올려다보았다.
밤의 장막이 걷히고, 여명의 푸르스름한 새벽빛이 프라이빗 공간의 창을 타고 스며들었다.지난밤, 서로를 탐하며 모든 것을 터뜨릴 듯 열정을 포개고 난 뒤에야 우리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지독했던 고된 여정의 끝에서 찾아온 잠은 꿀처럼 달콤하고 안락했다.하지만 아침이 되어 창가로 흐릿하게 흘러드는 백색광에 눈이 적응해 가자, 어젯밤의 밀도 높은 열기는 아침의 민망함으로 변해 차가운 이성을 깨워냈다.나는 잠든 차준호를 깨우지 않은 채 욕실로 향했다. 물소리 사이로 생각을 조용히 정돈했다.그러고 보니, 대체 무슨 정신으로 회사 사옥 한복판에서 이런 낯 뜨거운 거사를 치른 것일까.조만간 허기찬이나 서진원이 출근할 것이고, 아래층에는 주말이어도 많은 직원들이 회사를 누빌 터였다.‘대표님이 변했어.’어젯밤 이곳에서 차준호와 입술을 겹치고 서로의 옷가지들을 하나씩 은밀하게 거두어낼 때마다, 시간은 전혀 다른 차원으로 흘러갔다. 그 강렬한 열기 앞에서 과거의 메마르고 건조했던 관계는 모래성처럼 무너졌다.나를 가득 품어 오던 그의 아주 작은 손길 하나조차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애틋함을 머금고 있었다.드디어 우리도 평범하고 평온한 연인이 된 것일까.‘살다 보니 정말 별일이 다 있네. 피임까지 하지 말자니.’입가에 번지는 나지막한 실소가 공기 중으로 산산이 부서졌다.수건으로 머리를 말리며 여전히 베개 깊숙이 얼굴을 묻고 잠든 그의 얼굴을 응시했다.평소의 견고한 철벽을 완전히 벗어던진 채, 순진무구한 아이처럼 무방비했다. 아마 나를 지키고 이 판을 짜느라 그 역시 며칠 동안 단 한순간도 편히 잠들지 못했을 것이었다.항상 먼저 깨어나 나를 내려다보던 건 차준호였는데, 이렇게 먼저 일어나 그를 지켜보는 것은
무슨 그런 거짓말을.내 머릿속에선 운명 교향곡이 요동쳤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한 거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수면 부족과 카페인의 부작용일까. 평소 차분함과 다혈질이 공존하던 내 감정은 이미 균형을 잃은 지 오래였다.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화살은 이미 날아갔고 물은 엎질러졌다.“재미있네. 나는 신 비서를 좋아하지도, 사귈 리도 없을 텐데?”차준호는 내 말을 믿지 않았는지 코웃음 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난 목에 닿은 펜던트를 무의식적으로 만지다가, 그의 손길이 닿았던 순간이 떠올라 몸을 떨었다.이걸 그가 크
사람들의 입을 통해 끊임없이 유령처럼 떠돌던 이름의 실체.신하늘, 신 비서. 차준호는 누워 있는 내내 의식의 수면 아래에서 울리던 그 이름이 내심 신경 쓰였다.하지만 드디어 눈앞에 나타난 실체를 마주한 순간, 관자놀이가 끊어질 듯 욱신거리며 지독한 두통이 밀려왔다.그녀의 이름 세 글자가 왜 이토록 심장 가장 깊은 곳을 거슬리게 긁어내리는 걸까. 기묘한 일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졸졸 쫓아다녀 철벽만 치기 바빴던 강소희랑 같이 사고가 났다니. 하지만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한 톨의 아쉬움도 일지 않았다.대신 눈앞의 신하늘
기자를 상대하는 동안 나 자신도 성장하고 있었다.카메라 앞에서 당당해지고, 브리핑하거나 질문에 응답하는 순간에도 능숙 능란해져 있었다.차분한 척, 완벽한 듯, 긴장감이 첫날보다는 옅어졌다. 사람은 역시 학습의 동물이라고 무슨 아나운서가 된 양 나는 그리 기자들을 상대했다. -차준호 대표님이 대화가 가능하다던데. 확실히 강소희와 사귀는 사이가 맞는지 확인하셨습니까? 답변 부탁드립니다!“차준호 대표님께서는 일체 사생활에 대하여 언급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회사 측에서도 이번 사건은 아는 바가 없습니다.”-언제 CH에서는 공식
종일 정신 없다가 이제는 머리가 하얗게 비어버린 것 같았다.커피에 의지해온 탓일까. 카페인의 날카로운 자극이 현기증을 부추겼다.그가 왜 하필 기억을 잃은 걸까.3년치 기억만 사라지다니. 비극 같으면서도 우습게 느껴졌다.빌어먹게도 나는 잊혀진 존재가 되어버린 것 아닌가.카메라 군단이 다시 몰려들었다. 간신히 버티던 나는 기계적인 목소리로 답변했다.그런데 병실 안에서 흘러나오는 고미주와 강진욱의 대화에 일순 어깨가 흠칫거려졌다.[강 박사님, 차 대표는 언제 일반 병동으로 이동하나요?][네, 최종 검사가 끝나는 대로 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