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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지옥의 대리인

Author: silver구슬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5-17 15:02:05

[1월 1일, 재벌가 차준호와 톱여배우 강소희! 둘만의 밀월여행이었나· 강원도에서 추락 사고!]

[CC그룹 후계자 차준호·한류스타 강소희! 과연 현재 상태는?]

[사고 직후 불거진 비밀 연애 의혹· 관계자들은 어떤 입장을···]

[과연 차준호와 강소희 사고에 관한 진실은 무엇인가!]

새해의 태양이 채 떠오르기도 전, 대한민국은 단 하나의 소식으로 들끓었다. 차준호는 강소희를 자신의 세단에 태운 채 1월 1일 새벽 강원도 산길을 달리던 중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십여 미터 아래 낭떠러지로 추락했다.

단순한 교통사고인지, 범죄와 연관된 것인지, 혹은 세상을 등지려 했던 극단적인 시도였는지, 무책임한 추측성 보도가 해일처럼 쏟아졌다. 

특히 새해 첫날이라는 상징적인 시기와 맞물려, 평소 스캔들 한 번 없이 결벽에 가까운 사생활을 유지하던 유명인의 사고 소식은 국민적인 광기를 불러일으켰다.

CC그룹 소유의 대한종합병원은 몰려든 기자들과 그룹 관계자, 가족들로 인해 인산인해를 이루며 아수라장이 되었다. 하지만 그 혼돈 속에서 정작 정신을 차리기 어려운 사람은 나였다.

그가 의식불명이라는 소식도 충격이었지만, 사고 당시 곁에 '다른 여자'가 있었다는 사실이 비수처럼 가슴에 박혔다. 

크리스마스에 차인 뒤, 소꿉친구인 도국과 이아준을 불러 밤새 온라인 게임에 매달리며 잊으려 애썼던 노력들이 단숨에 물거품이 되었다. 부족한 잠과 뒤섞인 복잡한 머릿속은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게다가 나를 더 힘들게 하는 건 따로 있었다.

-신 비서! 미안해, 내가 지금 일본이라. 뒷수습 좀 부탁해.

“허기찬 비서 실장님, 설마 제가 지금 병원으로 가서 기자들을 상대하라는 말씀이세요?”

원래는 내가 해야 하지만 사정이 이렇게 됐어. 미안해. 홍보실이나 이사진도 신 비서가 적임자라고 임시 비상 회의에서 결론 났나 봐.

이게 말이 되나? 회사에 사람이 천 명도 넘는데, 왜 하필 가장 큰 상처를 입은 내가 이 스캔들의 전면에 서야 하는지.

-예전에도 나랑 대표님 해외 나갔을 때 국내에서 터진 일 생각 나지? 그때도 신 비서가 잘 틀어 막아 차진철 회장님이 인정하신 능력자잖아. 잘 부탁해!

계속 사정사정하는 허기찬의 말을 듣던 나는 통화를 종료하고 나서도 휴대전화기만 손에 쥔 채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아무리 미운 차준호였지만, 그의 생사조차 모른 척할 만큼 독해지지는 못했다. 기자들 상대하는 건 부담스럽지만, 그의 사고 소식을 듣고 가만히 있을 성격도 아니었다. 

나는 옷장에서 그래도 제대로 옷을 골라 입고 집을 나섰다. 

잔인한 운명의 수레바퀴가 나를 끌고 병원이라는 거대한 전쟁터로 몰고 갔다.

***

대한종합병원 10층 VIP 병동 앞. 

차준호는 괜찮은지 전전긍긍하는 내 마음과 다르게 몰려드는 기자들 사이에서 가장 분주하게 움직여야 하는 사람은 단연 나였다.

CC그룹 관계자부터 가족, CH-컴퍼니 직원, 강소희의 소속사 인사, 의료진까지 모두가 나를 찾았다. 

공식 석상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한 직원도, 사적인 비밀을 공유했던 사람도, 차준호의 개인 공간에 출입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인물이 나였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언론 대응을 앞두고 차준호의 어머니 고미주에게 다가갔을 때, 돌아온 것은 서슬 퍼런 호통이었다.

“왜 네가 설치는 거야? 기찬이는!”

“실장님은 오키나와로 휴가를 떠나신 상태입니다.”

40대 초반으로 보일 만큼 우아하지만 날카로운 미모를 지닌 고미주는 아들의 안위보다 체면이 더 중요한 듯 보였다. 옆에는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동생 차진아가 불안한 기색으로 서 있었다.

“엄마, 무서워. 기자들이 계속 나한테 뭘 물어봐.”

“넌 이제 입 꾹 다물면 돼. 에휴, 기찬이 그놈은 이 와중에 여행이나 다니고, 쯧! 홍보 실장은? 다른 사람 없어?”

당장이라도 사직서를 던지고 돌아가고 싶었지만, 나는 감정을 죽인 채 참아냈다.

“임시 회의 결과, 제가 대신 기자들을 상대하는 것으로 결정되었습니다.”

“강소희 그년이랑 우리 차 대표가 정말 사귄 거야? 정말 미치겠네!”

미칠 것 같은 사람은 바로 나였다. 3년 동안 아무런 낌새도 느끼지 못했기에 그와 잠자리까지 나누지 않았겠는가. 

블루 크리스마스의 악몽이 떠오르자 피가 거꾸로 솟는 듯했다.

“너 옷이 그게 뭐니? 패션쇼 왔어? 누가 비서 교육을 이따위로 한 거야?”

급하게 챙겨 입은 보라색 원피스가 그녀의 심기를 건드린 모양이었다. 차준호가 선물해준 세련된 명품이었으나, 지금의 내게는 주인의 변덕에 따라 입혀진 장식품의 허울처럼 느껴져 이 또한 할 말이 없었다.

“엄마는! 요새 유행하는 스타일이야. 빨리 비서 언니 내보내! 기자들 엄청 왔단 말이야!”

베일에 싸여 있던 가족들을 처음 마주하는 자리가 이런 지옥 같은 병원이라니. 고미주의 얼굴에 분노와 초조가 교차하다 끝내 체념이 깃들었다.

“신 비서, 어떻게 해야 하지?”

나는 비장한 각오를 다지며 답했다.

“우선 공식 입장은 추후에 밝히겠다고 기자들을 달래놓겠습니다.”

강소희의 소속사 관계자들마저 당황해 우왕좌왕하는 사이, 주치의 강진욱 박사가 의료진을 이끌고 나타났다.

“강 박사님! 상태는 좀 어떤가요?”

“아직 의식이 없으십니다. 그래도 차도는 있으십니다. 곧 깨어나실 것 같습니다.”

차준호가 그래도 위독한 상황은 아니라니. 그건 천만다행이었다.

눈만 뜨면 따질 건 따지고 진실을 물어야지 생각하며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어머, 감사해요. 박사님. 늘 이렇게 신세만 지네요.”

순식간에 얼굴을 우아하게 바꾼 고미주는 의사에게로 몸을 돌리며 나를 향해 나가라는 손짓을 날렸다. 

나는 고미주로부터 몸을 돌려 병실 문을 열고 나섰다.

수천 개의 눈동자가 나를 집어삼킬 듯 번뜩이는 플래시 세례 속으로 기꺼이 몸을 던졌다.

***

한편, 신하늘의 절친이자 L그룹 후계 후보 1순위인 이아준은 전화를 받고 잠에서 덜 깬 채 멍하니 있었다. 

자신의 비서 실장 김정규의 다급한 보고에 꾸역꾸역 일어나 거실로 나왔다.

전날 밤, 그는 제대한 지 한 달도 안 된 친구 도국을 불러 세종동 하늘의 집에서 제야의 종소리를 들었다. 27살 나잇값도 못한 채 어린 시절처럼 게임으로 하얗게 밤을 불태운 뒤, 동이 틀 무렵 잠실의 300평 규모 레지던스로 돌아온 참이었다.

TV를 뉴스 채널에 맞춘 그는 식겁하며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화면 속엔 하늘이 기자들에 둘러싸여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그는 곧장 도국에게 전화를 걸었다.

“국아, 우리 하늘이 텔레비전에 나왔어.”

-나도 지금 봤어.

“이 와중에 하늘이는 왜 저렇게 예쁘고 난리냐, 마음 아프게.”

-···농담은.

이아준은 커피 머신의 버튼을 누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이게 뭔 일이래?”

-젠장. 오너가 친 사고 뒷감당을 왜 하늘이가 해?

도국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오자 이아준의 입매도 뒤틀렸다.

“이참에 하늘이는 이번에 물려받은 L-DS로 데려와야겠어. 애가 3년간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가, 최근엔 넋이 나가 있던데. 더는 못 참아.”

이아준의 목소리엔 날 선 결의가 서려 있었다.

-그래, 나도 하늘이 이제 관리 좀 해야겠어. 차준호가 분명 원인이야.

휴대전화 너머 도국의 목소리 역시 흉흉하게 울려 퍼졌다. 

소중한 친구를 진창에 둔 대가가 무엇인지, 두 포식자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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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명적인 거짓말(The Dearest Lie)   #109. 어디 한번 하얀 거짓말을 파헤쳐 볼까

    세나는 잘게 떨리는 손으로 최기범의 SNS 게시물을 살피고 또 살폈다.소외된 세종동 판자촌을 배경으로 좋은 일을 해놓고, 정작 일반인 여성의 집 거실에서 도국과 함께 발그스레 취기가 오른 모습이라니.대중과 언론이 그냥 넘어갈 리 없는 대단한 파격이었다. 일단 발단은 이 눈부신 눈 오는 날의 봉사 활동이 우선이었고, 그 끝은 은밀한 뒤풀이였다.하지만 본론은 따로 있었다.‘설마··· 게임 홍보를 하려고 짠 판인가?’새로이 출시될 게임에 관한 이야기로 밤을 지새웠다는 기범의 코멘트 때문에 온라인은 이미 걷잡을 수 없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멤버들 역시 온통 게임 이야기만 늘어놓으며 호들갑을 떨었다.“도국 오빠, 우리 회사 게임 데모 버전 벌써 만렙 유저래!”두나의 말에 가만히 입술을 다물고 있던 세나는 눈을 깜빡이며, 유독 게임을 좋아하는 나나의 반응까지 살폈다.“나도 도국 오빠랑 파티 맺고 싶네요. 와, 그나저나 신 비서님은 좋겠어요. 옛날부터 항상 같은 길드였다잖아요.”다들 왜 저리 신하늘이라는 이름 석 자에 실없이 설치는 건지.차준호 대표와 뜻대로 잘 안 풀리니까, 이제는 도국을 붙잡고 더 끈끈하게 얽혀들려는 심산일까.세나는 휴대전화를 쥔 손끝이 차갑게 떨려왔다.제어할 수 없는 호기심과 지독한 질투가 뒤섞인 채로 SNS 게시물을 스크롤하는 손가락이 점점 더 거칠고 빨라졌다. *** 깊은 밤, 거리에 쏟아지는 폭설의 양은 상당했지만 주말의 새벽인 탓인지 창밖의 풍경은 기묘할 정도로 고요하기만 했다.차준호를 태운 검은 세단은 묵직한 엔진음을 내며 세종동을 벗어나 한남동을 향해 미끄러지듯 달리고 있었다.차준호는 타오르는 이마를 짓누르듯

  • 치명적인 거짓말(The Dearest Lie)   #108. 불쑥 나를 휘저어 놓다니

    도움은 무슨.그 역시 눈밭을 구르며 봉사라도 하고 싶었던 걸까. 하지만 그에게 도와달라는 나약한 말 따위, 절대로 건넬 리 없는 나였다.그때 최기범과 도국은 조심스레 현관 문을 열고 나갔다.그들도 짐작했는지 편안하게 통화하라고 비켜준 것 같았다.“대표님도 술 드셨어요?”민망함에 얼굴에 스며들어 나도 모르게 날 선 말이 튀어나왔다.- 그래.어쩐지. 차준호와 와인잔을 부딪친 적은 셀 수도 없이 많았고, 그가 제법 깊게 취한 날도 곁에서 지켜본 적이 있었다.지난 3년간 그를 지켜본 결과, 술에 취했다고 해서 주사를 부리거나 천박하게 실수를 저지르는 적은 한 번도 없었다.하지만 길고 무겁게 숨을 뱉어내는 것은 제법 많은 술이 들어갔을 때만 나오는 그만의 은밀한 버릇이라는 것쯤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수화기를 쥔 손끝에 닿는 그의 숨소리에 귓가가 간지러웠다. 나는 어느새 당황함을 억누르기 위해 마당이 내려다보이는 거실 유리창 앞으로 느리게 발걸음을 옮겼다.“왜 전화하셨어요? 이 늦은 시간에.”사적인 연락은 아무리 몸이 가깝게 지내는 동안에도 먼저 하는 법이 없던 남자였다. 회사에 기어이 무슨 일이라도 터진 걸까. 아니면 취기를 빌려 그 역시 꽁꽁 숨겨둔 진실 한 자락을 내비치고 싶어진 걸까.나는 크게 숨을 삼키며 온 신경을 귓가로 쏟아부었다.- 눈이 많이 왔는데, 봉사 활동을 했더군.“네.”- 최기범과 도국하고 있었나 봐?그건 또 어떻게 알고.문득 아까 집 근처에 정차해 있던 낯선 차량의 잔상이 머릿속을 스쳤다.설마, 차준호였나. 그가 내 그림자라도 된 것처럼 주변을 맴돌며 감시라도 했다는 뜻인가. 날카로운 위화감에 감정이 섞인 목소리가 서리처럼 차갑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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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명적인 거짓말(The Dearest Lie)   #106. 위태롭게 아름다운 유리 같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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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명적인 거짓말(The Dearest Lie)   #105. 술잔 속에 스며든 진실

    차준호는 프라이빗 룸의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즐기며 예전에 있었던 일들을 가만히 떠올렸다.예전에는 늘 허기찬과 함께 다녔던 곳이었고, 아주 희미하게나마 신하늘과도 함께 왔던 일들이 이제야 조금씩 되살아나는 그였다.“내 기분 같아서는 한두 달 만에 다시 온 것 같군.”“그건 대표님 입장이시고요, 전 무려 3년 만입니다. 그전에는 맨날 신 비서랑만 여기서 저녁을 드셨으니까요. 이제 기억이 대충은 돌아오신 것 맞죠?”허기찬은 참 집요했다. 여전히 요즘의 그는 기승전결이 모두 기억 타령으로 이어지기 일쑤였다.“그 말 좀 그만해. 기억이 있고 없고가 허 실장하고 무슨 상관이야?”핀잔을 주자 역시나 허기찬이 발끈하고 나섰다.“그거 만능 치트키처럼 하실 말씀 없으면 남발하시던 사람이 누구시더라? 어휴, 됐고요. 저 술 시켜도 되죠? 요즘 하도 힘들어서 이 정도 술은 얻어먹을 자격이 차고 넘치는 것 같거든요.”허기찬은 입술을 삐죽이고는 차준호의 대답을 듣지도 않은 채 정종을 주문했다.차준호 역시 잔을 기울이며 깊어가는 방 안의 편안한 공기에 몸을 맡겼다. 정갈한 음식과 그윽한 술이 곁들여지자, 토요일 밤은 빠르게 무르익어갔다.술기운이 적당히 오른 허기찬의 목소리가 낮아졌을 때, 비로소 마음속 깊은 진솔한 대화가 시작되었다.***“아, 대표님···. 신 비서의 빈자리가 너무 큽니다. 저 진짜 죽을 것 같아요.”새 비서를 남자로 뽑겠다는 차준호의 지시에 따라 이제야 겨우 채용 공고를 올린 상태였기에, 그간의 업무 공백은 고스란히 허기찬의 몫이었다.“사람 그리 쉽게 안 죽어.”

  • 치명적인 거짓말(The Dearest Lie)   #104. 흐려지는 경계가 두려운 순간

    내가 정차하려던 차를 빤히 바라보자, 그 차는 그저 갈 길을 가기 위해 골목을 바로 벗어나는 지나가던 차량일 뿐이었다.누가 더 올 사람이 있다고.사실 설마 하는 마음에 차준호의 차가 아닐까 생각한 건 참 바보 같은 짓이었다.“하늘아, 서둘러.”“어, 그래.”칼바람이 뺨을 아리게 에었지만 발걸음은 한결 가벼웠다. 모든 집을 다 돌고 나서도 두 사람은 뭐가 아쉬운지 다시 몇몇 집을 재방문했다.이대로 끝내기엔 마음이 안 놓였던 모양인지, 근처 마트로 전력 질주해 자재들을 사 와서는 덜덜 떨리는 창문에 뽁뽁이를 새로 붙이고 욕실과 주방의 부서진 곳까지 뚝딱 보수해 주었다.방문한 집마다 사진을 찍어두고 스마트폰에 보수가 필요한 세부 사항들을 꼼꼼히 기록하며, 다음에도 또 올 것처럼 구는 두 남자의 모습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두 분 덕분에 어르신들 한파 걱정을 많이 덜었어요. 감사해요.”내 인사에 최기범은 환하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거리기까지 했다. 꽤나 뿌듯한 기색이었다.“신 과장, 나 이래 봬도 공대 출신입니다. 다음에도 날 불러 주십시오.”“하늘아, 너도 고생 많았어.”사실 아침에 믹스 커피 한 잔만 마시고 채 정신없이 일하다 보니, 모든 일과가 끝나고 그제야 아찔할 정도로 허기가 밀려왔다. 자연스럽게 카트를 밀어 마당을 지나 집 안까지 들여다 주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이대로 그냥 돌려보내자니 너무 미안하고, 그렇다고 집 안으로 초대하자니 묘하게 어색했지만, 살벌한 추위 속에서 고생한 이들을 그냥 모른 척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저··· 다들 잠깐 들어와서 요기라도

  • 치명적인 거짓말(The Dearest Lie)   #5. 뒤틀린 소유욕: 폭풍 전야

    종일 정신 없다가 이제는 머리가 하얗게 비어버린 것 같았다.커피에 의지해온 탓일까. 카페인의 날카로운 자극이 현기증을 부추겼다.그가 왜 하필 기억을 잃은 걸까.3년치 기억만 사라지다니. 비극 같으면서도 우습게 느껴졌다.빌어먹게도 나는 잊혀진 존재가 되어버린 것 아닌가.카메라 군단이 다시 몰려들었다. 간신히 버티던 나는 기계적인 목소리로 답변했다.그런데 병실 안에서 흘러나오는 고미주와 강진욱의 대화에 일순 어깨가 흠칫거려졌다.[강 박사님, 차 대표는 언제 일반 병동으로 이동하나요?][네, 최종 검사가 끝나는 대로 오늘

  • 치명적인 거짓말(The Dearest Lie)   #4. 폭풍의 눈이 열리다

    이아준은 통화 도중, 수면 위로 떠오르는 신하늘과 도국과의 옛 기억 속에 깊게 잠겼다.화려한 마천루가 즐비한 강남의 이면, 세종동 서쪽 끝자락에는 시간이 멈춘 듯한 빈민가가 있었다. 그곳에 위치한 ‘하늘 보육원’은 세 사람의 유년이 뿌리내린 곳이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고 나이도 제각각이었지만, 그들은 서로에게 유일한 세계이자 가족이었다.이아준은 태어나자마자 차가운 보육원 앞마당에 버려진 신세였다. 그러나 운명은 잔인하고도 변덕스러웠다. 뒤늦게 그가 국내 최고 재벌가인 L그룹의 잃어버린 혈통임이 드러났고, 하루아침에

  • 치명적인 거짓말(The Dearest Lie)   #7. 완벽한 타인의 숨결

    사람들의 입을 통해 끊임없이 유령처럼 떠돌던 이름의 실체.신하늘, 신 비서. 차준호는 누워 있는 내내 의식의 수면 아래에서 울리던 그 이름이 내심 신경 쓰였다.하지만 드디어 눈앞에 나타난 실체를 마주한 순간, 관자놀이가 끊어질 듯 욱신거리며 지독한 두통이 밀려왔다.그녀의 이름 세 글자가 왜 이토록 심장 가장 깊은 곳을 거슬리게 긁어내리는 걸까. 기묘한 일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졸졸 쫓아다녀 철벽만 치기 바빴던 강소희랑 같이 사고가 났다니. 하지만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한 톨의 아쉬움도 일지 않았다.대신 눈앞의 신하늘

  • 치명적인 거짓말(The Dearest Lie)   #6. 천하의 나쁜 남자

    기자를 상대하는 동안 나 자신도 성장하고 있었다.카메라 앞에서 당당해지고, 브리핑하거나 질문에 응답하는 순간에도 능숙 능란해져 있었다.차분한 척, 완벽한 듯, 긴장감이 첫날보다는 옅어졌다. 사람은 역시 학습의 동물이라고 무슨 아나운서가 된 양 나는 그리 기자들을 상대했다. -차준호 대표님이 대화가 가능하다던데. 확실히 강소희와 사귀는 사이가 맞는지 확인하셨습니까? 답변 부탁드립니다!“차준호 대표님께서는 일체 사생활에 대하여 언급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회사 측에서도 이번 사건은 아는 바가 없습니다.”-언제 CH에서는 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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