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서울을 떠나 해남으로 향하는 길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지루하게 이어졌다.
고속도로를 벗어나자 풍경이 달라졌다. 빌딩 숲이 사라지고 낮은 산과 논밭이 펼쳐졌다. 차창 밖으로 흘러가는 풍경은 조용하고 한적했다. 억지로라도 긍정적인 생각을 붙잡아보려 했지만 가슴 속의 무거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경쾌한 노랫소리조차 어딘가 공허하게 메아리쳤다.
그곳에 닿았을 때는 이미 오후 햇살이 서쪽으로 기울고 있을 때였다.
지청 건물 앞에 내리자 회색빛 외벽이 낯설게 다가왔다. 정문을 들어서자 곧
다음 날 아침, 인천공항 출국장 앞에 섰다.분주한 소음이 사방에서 들려왔지만 그 순간만큼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지은이는 캐리어 손잡이를 잡은 채 나를 봤다. 울지 않으려고 버티는 얼굴이었다.나는 번호가 적힌 메모지를 건넸다."도착하면 이 번호로 전화해. 사람이 나와 있을 거야."그녀가 메모지를 받아 꽉 쥐었다."얼마나 걸려.""모르겠어.""거짓말이라도 해주지."나는 웃으려다 실패했다."오빠, 조심해."지은이는 내 품에 안겼다. 나는 그 등을 감쌌다. 평소보다 오래 안고 있었다.&nb
뭔가 이상했다.한 사장 집을 나서고 수원역 방향으로 차를 몰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백미러에 검은 차 한 대가 붙어 있었다.처음에는 같은 방향으로 가는 차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큰 도로로 나와도, 신호에 멈춰도 그 차는 거리를 그대로 유지했다.수원역 69번 보관함. 그 봉투가 지금 내 안주머니에 있었다.나는 아무 말 없이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길을 벗어나 좁고 어두운 골목으로 핸들을 꺾었다.기계음이 차 안에 울렸다."경로를 이탈했습니다."지은이가 말했다."왜 갑자기 이상한 길로 가?"나는 대답 대신 백미러를 봤다.검은 차가 골목으로 따라 들어오고 있었다.
예식이 끝난 후 가족사진 촬영이 시작됐다.카메라맨이 위치를 잡는 동안 하객들이 주변에 모여들었다. 회장님이 수아와 민호를 가운데 세우며 환하게 웃으셨다.그때 지은이가 회장님께 조용히 다가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아버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무슨 얘긴데?""저 임신했습니다."회장님의 얼굴이 활짝 밝아졌다."드디어 우리 태양그룹에 대를 이을 아이가 태어나는구나!"그 말이 수아의 마음을 건드린 듯 그녀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잠시 침묵이 흐른 뒤 민호가 앞으로 한 발 나섰다."아버님, 사실 수아도 임신했습니다. 결혼 전에 가진 아이라 말씀을 일찍 드리지 못했습니다."
차 안.민호는 옆에 앉은 수아를 조심스레 바라봤다.그녀는 차창 너머 어두운 거리를 응시한 채 한마디 말도 없었다. 회장님 댁을 나서고 한참이 지났는데도 그 침묵이 깨지지 않았다. 민호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한참이 지나서야 그는 말했다."괜찮아?"수아는 눈길을 돌리지 않은 채 입술을 열었다."우리 집······ 엉망이지? 엄마랑 동생은 세상 떠나고 아빠는 딴 여자랑 또 아이까지 가지고······."민호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혁수도 지금 아이도 혼외 자식은 아니잖아."수아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회장님이 누군가를 불렀다."난티아."그 부름에 그녀가 조용히 걸어 들어왔다. 익숙한 듯 담담한 표정이었으나 그 눈빛은 조금 떨리고 있었다. 난티아는 회장님 옆에 서서 눈을 내리깔았다.나는 이미 회장님의 마음이 그녀에게 향해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녀가 들어서는 것 자체로는 크게 놀라지 않았다. 하지만 이 자리에 그녀를 부른 이유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식탁 위의 공기가 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수아의 표정이 굳기 시작했다. 민호는 어색하게 시선을 내렸고, 지은이는 숨을 참으며 회장님을 바라봤다.회장님은 모두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난티아가······ 내 아이를 임신했다."그 순간 공간이 얼음처럼 굳어버렸다.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식탁 위의 음식들이 그대로였지만 그것들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태양호텔을 맡은 후 실적은 서서히 살아나고 있었다.미국 현지 파트너사와의 협업이 본격화되면서 투자와 지원이 물처럼 흘러들어왔고, 그 흐름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자 호텔 전체의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예약률이 조금씩 올라갔고 직원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아직 완전한 회복은 아니었지만 방향만큼은 분명했다.그날 오후 사무실에서 보고서를 검토하던 중 회장님의 전화가 걸려왔다."오늘 저녁 며느리랑 같이 집으로 오거라."나는 잠시 머뭇하다가 차분히 대답했다."네, 아버님."전화를 끊고 나서 잠시 화면을 바라봤다. 단순한 식사 자리라면 이렇게 직접 전화를 하실 분이 아니었다. 무언가 하실 말씀이 있다는 뜻이었다. 나는 보고서를 덮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퇴근 후 나는 지은이를 태우고 회장님 댁으로 향했다.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도로를 달리며 지은이가 조심스레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