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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Author: 귀차니즘
“어?”

신예린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내, 내가 얘기 안 했었나? 내 동생이 농구하다가 다쳤거든. 그래서 병원에 데려다줬어.”

“너희 엄마 계시잖아.”

“엄, 엄마는 점심을 준비하셔야 하잖아.”

“너희 가족들은 네 남동생을 진짜 아낀다. 너 대학교 다니면서 한 번도 결석한 적 없잖아. 그런데 동생이 다쳤다는 이유로 수업도 보지 못하고 동생을 돌봐주러 가야 하다니.”

송지유가 툴툴거렸다.

신예린은 너무 켕겨서 마음이 불편했다.

만약 임정희가 신예린이 신민호를 저주했다는 걸 알게 된다면 아마 칼을 들고 학교까지 찾아올지도 몰랐다.

“참, 어제 교수님도 휴가 내셨다던데.”

송지유는 그 순간 손을 움찔 떨었다.

“사실 어제 교수님 수업 있으셨거든. 그런데 다른 교수님께서 대신 수업을 하셨대. 그 교수님이 주 교수님에게 뭐 하러 가냐고 물으니까 주 교수님이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일을 처리하러 간다고 하셨대.”

“그래?”

신예린은 웃으며 말했다.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일이 뭘까?”

신예린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송지유는 턱을 만지작거렸다.

“내 생각엔 결혼하러 가신 거야.”

콜록콜록.

신예린은 갑자기 사레가 들렸고 송지유는 신예린의 모습을 보고 크게 웃었다.

“뭘 그렇게 당황해하는 거야? 농담이야.”

전혀 재밌지 않은 농담이었다. 신예린은 식은땀이 흐를 것만 같았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만약 주 교수님께서 정말 결혼하셨다면?”

“말도 안 돼. 다른 교수님 말을 들어 보니 입사하실 때까지만 해도 미혼이었다고 하던데?”

어쩌면 어제 결혼한 걸 수도 있지 않은가?

“만약에 교수님이 정말로 결혼하셨다면?”

“나는 상관없어. 나는 그래도 이성적인 편이라서 말이야. 그냥 잘생기고 똑똑한 교수님을 보니까 부러운 거지. 하지만 다른 애들은 어떨지 모르겠어.”

송지유는 눈을 가늘게 떴다.

“예전에 들은 소문인데 우리 학교에서 이미 결혼한 교수님을 좋아한 학생이 있었대. 그런데 그 학생이 교수님의 아내를 납치해서 교수님과 이혼하라고 협박한 일이 있었대.”

신예린은 그 말을 듣고 덜컥 겁이 났다.

지금 이혼하면 안 되는 걸까?

송지유는 신예린을 힐끔 보았다.

“왜 무서워 해? 주 교수님이랑 결혼할 사람이 너일 리도 없는데.”

“내, 내가 언제 무서워했다고 그래?”

신예린은 인정하지 않았다.

“하하하.”

송지유는 신예린의 뺨을 꼬집었다.

“귀엽긴. 사실은 내가 꾸며낸 말이야.”

신예린은 송지유를 주먹으로 퍽퍽 쳤다.

두 사람이 장난을 치고 있는데 기숙사 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들어왔다.

그 여학생은 두꺼운 앞머리와 커다란 안경으로 예쁘지도, 못생기지도 않은 이목구비를 가렸고 온몸에서 우울한 기운을 내뿜었다.

신예린과 송지유는 시선을 주고받은 뒤 장난을 멈췄다.

“소윤아, 왔어?”

신예린이 먼저 인사를 건넸지만 정소윤은 대답하지 않고 조용히 자신의 자리에 앉은 뒤 책을 펼쳤다.

분위기가 조금 어색해졌다. 송지유는 몰래 신예린을 쿡쿡 찌르면서 문 쪽을 바라보았고 신예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소윤아, 나랑 지유는 수업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송지유는 신예린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

“간다.”

그들은 계단 쪽에 도착해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무섭다니까. 벌써 2년이 됐는데 아직도 저 모습엔 익숙해지지 못하겠어.”

송지유가 입을 열었다.

“나도.”

사실 그들의 기숙사는 4인실이었다. 서다연은 3학년 개강 때 중도 퇴실을 신청했고 정소윤은 그들과 같은 과 학생이었는데 성적이 매우 좋았다. 그러나 성격이 아주 음침한 데다가 늘 혼자 다녀서 2년 동안 함께 지냈어도 말을 섞은 적이 거의 없었다.

신예린과 송지유는 정소윤과 함께 있는 것이 조금 두려웠다.

오늘은 병리학 수업이 있는 날인데 교수님께서 10분 정도 늦을 수 있다고 미리 공지를 해서 신예린은 참지 못하고 조금 전 캡처했던 화장대 사진을 주시우에게 보냈다.

[이 화장대 사도 돼요?]

주시우는 빠르게 답장을 보냈다.

[수업 시간에 휴대전화 보고 있었던 거야?]

신예린은 억울했다.

주시우는 너무 교수님처럼 굴었다.

[저 수업 있는 거 어떻게 아셨어요?]

[나한테 네 시간표가 있거든.]

신예린은 그가 보낸 메시지를 본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주시우가 왜 그녀의 시간표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앞으로 수업을 빼먹는다면 거짓말을 할 수도 없었다.

[교수님께서 아직 오지 않으셨어요.]

[그래. 네 마음에 드는 거면 다 좋아.]

신예린은 그것이 조금 전 화장대를 사도 되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잠깐 고민하다가 물었다.

[베란다에 식물 길러도 돼요?]

[그럼. 너는 그 집의 안주인이야. 네가 꾸미고 싶은 대로 꾸며도 돼.]

안주인이라는 말에 신예린은 얼굴이 화끈거렸다.

곧이어 휴대전화가 진동했고 주시우가 200만 원을 입금했다는 알림이 떴다.

[???]

[사고 싶은 거 다 사.]

[아까 카드 주셨잖아요.]

[그걸 쓸 생각은 있고?]

비록 안 지 얼마 되지 않았으나 주시우는 신예린이 어떤 성격인지 대충 알고 있었다. 그는 신예린이 자신의 카드를 쓰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저도 돈 있어요.]

[넌 아직 어리잖아. 돈은 어른이 내면 돼.]

신예린은 저도 모르게 볼을 부풀렸다.

주시우는 그를 애처럼 대했다.

그러나 그가 애처럼 생각하는 신예린은 지금 배 속에 그의 아이를 품고 있었다.

신예린은 어떻게 답장을 보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바로 그때, 주시우에게서 또 메시지가 왔다.

[지금 너는 학업이랑 아이에게만 신경 쓰면 돼. 다른 건 걱정하지 마. 알겠지?]

신예린은 그 메시지를 본 순간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빨개졌다.

주시우는 별 뜻 없이 한 말이겠지만 신예린은 자기도 모르게 그가 감미로운 목소리로 자신에게 그런 얘기를 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너무 다정하잖아!’

신예린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심호흡을 몇 번 하면서 감정을 갈무리한 뒤 답장을 보냈다.

[알겠어요.]

그리고 돈도 받았다.

주시우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수업 열심히 들어.]

신예린은 경례하는 얼굴 이모티콘을 보냈다.

그 뒤로 주시우는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고 신예린은 채팅 기록을 다시 한번 보았다. 왠지 모르게 얼굴이 자꾸만 뜨거워졌다.

“예린아, 왜 그래? 너 얼굴이 왜 이렇게 빨개?”

송지유는 이상함을 눈치채고 물었다.

신예린은 송지유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으면서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그 뒤로 신예린은 수업할 때만 가끔 주시우를 보게 되었고 그 외에는 거의 메시지로 연락했다.

두 사람이 가장 많이 나눈 대화 주제는 가구였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주시우가 물었다.

[퇴실 신청은 했어?]

신예린은 시간이 충분할 거라고 생각해서 아직 신청하지 않았다.

[아직 못 했어요.]

[얼른 해. 다음 주면 입주할 수 있으니까.]

[네.]

[신청서 있어?]

[아뇨...]

[그러면 수업 끝나고 내 사무실로 와서 가져가.]

[네.]

주시우의 사무실에 가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지난번에는 그냥 죽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이번에는 교수님과 몰래 연애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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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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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화
다음화도 궁금한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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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영
의대생 맞음? 너므 멍청.... 읽기 힘듬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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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터닝포인트   제45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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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터닝포인트   제45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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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터닝포인트   제45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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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터닝포인트   제45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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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터닝포인트   제45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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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터닝포인트   제449화

    네 사람이 굳이 차를 두 대 몰고 갈 필요는 없어서 주시우는 출발할 때 소지훈을 태우기로 했다.곧장 소지훈의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그는 이미 짐을 내려놓고 기다리고 있었다.신예린은 바닥에 놓인 짐이 제법 많은 걸 보고 눈길을 주었다.“차 안에 있어. 내가 가서 같이 짐을 옮길게.”주시우가 말하고는 차에서 내려 소지훈에게 다가갔다.신예린이 창문을 내리자 주아윤이 몸을 앞으로 쑥 내밀며 반가운 목소리를 외쳤다.“대부님!”“아, 아윤아!”소지훈은 짐을 옮기던 손을 멈추며 대답했고 목소리가 저절로 높아졌다.신예린이 차창에 손을 얹고 물었다.“근데 왜 텐트를 두 개나 챙기고 매트까지 들고 오셨어요?”소지훈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혹시 이정현 씨가 안 챙겼을까 봐...”신예린은 그 말을 듣자 깊게 웃음을 터뜨렸다.“역시 지훈 씨는 세심하시네요.”“이정현 씨?”주아윤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대부님이 좋아하는 그 이정현 선생님 말씀하시는 거예요? 같이 오셨어요?”“그럼.”신예린은 눈을 굴리더니 주아윤의 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주아윤은 눈을 크게 뜨더니 곧장 신나게 고개를 끄덕였다.소지훈은 조수석에 탔고 세 시간 남짓한 여정을 두 남자가 번갈아 운전했다. 신예린과 주아윤은 뒷좌석에서 과자를 먹으며 놀았고 가끔 앞자리의 두 사람에게 하나씩 건네주기도 했다.한참을 달린 뒤, 신예린은 몸을 뒤로 기대며 배를 쓸어내렸다.“아, 피곤하네.”주아윤도 신예린의 배 위에 드러누우며 힘없이 중얼거렸다.“저도 피곤해요.”앞자리에 있던 두 남자는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운전하는 사람은 멀쩡한데 먹기만 한 모녀가 피곤하다는 게 우스웠기 때문이다.잠시 뒤, 소지훈이 운전대를 잡고 나서 뒷좌석은 금세 조용해졌다.주시우가 고개를 돌려 보니 신예린은 잠든 채 기대 있었고 주아윤은 엄마 품에 파묻혀 쌔근쌔근 자면서 손에 쥔 과자 봉지를 놓치고 있었다.“툭.”봉지가 바닥으로 떨어졌다.주시우는 미소를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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