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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Author: 귀차니즘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뒤, 신예린은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 주시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세요.”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방 안에는 주시우 말고도 다른 교수 한 분이 함께 있었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신예린은 급히 인사했다.

그 교수는 신예린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시우에게 말했다.

“학생이 찾아왔네요.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까 말씀하신 대로 진행하죠.”

그는 그렇게 말한 뒤 자리를 떠났다.

사무실에는 다시 두 사람만 남게 됐다.

“우선 앉아.”

주시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맞은편을 가리켰다.

“괜찮아요... 신청서만 받아 가려고요.”

신예린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앉았다가 가. 요즘 얼굴도 잘 못 봤는데.”

주시우는 그 말을 마치고 찻잔 쪽으로 가더니 지난번처럼 캡슐 밀크티 한 상자를 꺼내 포장을 뜯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난 신예린은 조용히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곧 방 안에는 달콤한 밀크티 향이 퍼졌다.

주시우는 정성스레 탄 밀크티 한 잔을 건네며 말했다.

“뜨거우니까 조심해.”

“고마워요.”

신예린은 조심스럽게 찻잔을 받아서 들었다.

신예린은 단 음식을 유난히 좋아했다. 묘하게도 달콤한 맛은 언제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힘이 있었다.

조심스레 밀크티 한 모금 마신 순간, 마주 앉은 주시우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걸 느끼고는 괜히 민망해졌다.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어색하게 눈을 피했다.

평소 그와 문자를 주고받을 때는 편하게 웃고 농담도 던졌는데, 막상 이렇게 직접 마주 앉으니 ‘교수’라는 그의 직위 때문인지 괜히 긴장되어 몸까지 굳는 느낌이었다.

그런 그녀의 어색함을 눈치챘는지, 주시우가 먼저 말을 꺼냈다.

“요즘 컨디션은 어때?”

신예린은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이며 손에 든 찻잔을 꼭 붙잡았다.

“아기는?”

주시우의 시선이 그녀의 아랫배로 자연스레 내려갔다.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 신예린은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괜찮은 것 같아요.”

그건 진심이었다.

검진 결과만 아니었다면 자신이 임신 중이라는 사실조차 실감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기름진 음식을 잘 못 먹는 것 말고는 별다른 변화도 없었기에, ‘엄마가 된다’는 말이 아직도 실감 나지 않았다.

“그럼 다행이고.”

주시우는 말끝을 흐리며 책상 서랍을 열어 A4 용지를 한 장 꺼냈다.

“신청서야. 미리 제출해 두고 집으로 옮기면, 나도 옆에서 잘 챙겨줄 수 있으니까.”

서류를 받아서 든 신예린은 순간 말을 잃었다.

이미 이름, 연락처, 신청 사유까지 전부 작성되어 있었고, 그녀가 서명만 하면 되는 상태였다.

“감사해요.”

그녀는 작게 중얼거리며 서류를 받았다.

“이따가 바로 학생처에 제출할게요.”

“응. 고마울 건 없고.”

다시금 공기가 조용해졌다.

신예린은 더는 버티기 힘든 듯,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이제 그만 가봐도 될까요?”

감금이라도 당한 사람처럼 묻는 말에 주시우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몸조리 잘하고...”

신예린은 자리에서 일어나 몇 발짝 걷다가, 잠시 멈춰서 고개를 돌렸다.

“교수님... 밀크티 잘 먹고 갑니다.”

그녀가 문을 닫고 나가자, 조용히 닫힌 사무실 문을 바라보던 주시우는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

‘교수님이라고? 아직도 우리 관계를 그냥 교수와 학생 사이로만 생각하는 건가?’

신예린은 주시우와의 동거가 이렇게 빨리 벽에 부딪힐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서둘러 학생처 담당자 한영빈을 찾아가 기숙사 퇴사 신청서를 냈지만, 예상치 못한 제약이 기다리고 있었다.

“요즘 학교 규정이 바뀌었어요. 외부 거주 신청하려면 보호자 서명이 꼭 필요합니다.”

한영빈이 그녀가 낸 신청서를 살펴보며 말했다.

신예린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

‘서다연이 기숙사 나갈 땐 보호자 서명 같은 건 필요 없었던 것 같은데...’

“개강 전에 제 룸메이트가 신청서를 제출했을 때까지도 그런 말 없었는데요...”

“맞아요. 그땐 없었죠.”

한영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덧붙였다.

“최근에 한 학생이 보호자 동의 없이 몰래 기숙사 퇴사 신청을 하고 나갔다가 사고를 당했어요. 그 일 때문에 보호자분이 학교에 항의하셔서... 이번에 규정이 바뀌었어요.”

의기소침해진 신예린은 풀이 죽은 얼굴로 학생처를 나섰다.

계단을 내려가는 중 휴대폰이 진동했고 화면에는 주시우의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신청서는 잘 제출했어?]

눈앞이 캄캄해진 신예린은 별다른 말도 못 하고, 울상 이모티콘 하나만 덜렁 보냈다.

[학생처에서 보호자 서명 없이는 신청서를 받아주기 어렵대요...]

답장을 확인한 주시우는 곧바로 전화를 걸어왔다.

“여보세요? 교수님...”

기운 없는 그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며칠 동안 예쁜 화장대도 고르고 베란다에 둘 식물까지 다 생각해 뒀는데... 기숙사에서 못 나간다니...’

신예린에게는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다.

“지금 어디에 있어?”

주시우 특유의 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학생회관 학생처 사무실 앞이에요.”

“조금만 기다려 줄래? 금방 갈게.”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전화를 끊었다.

무슨 이유로 오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신예린은 조용히 그 자리에 서서 그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정말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주시우의 모습이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

멀리서 긴 다리를 뻗으며 여유롭게 걸어오는 주시우는 마치 시간을 천천히 밀어내듯 느긋한 걸음이었다.

깔끔하게 떨어지는 콧날과 조각 같은 얼굴은 괜히 시선을 끌었다.

그가 가까이 다가오자, 신예린은 손을 들어 올리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교수님, 여기요...”

표정에도, 목소리에도 근심이 잔뜩 묻어 있었다.

그런 그녀의 얼굴을 본 주시우는 더는 ‘교수님’이라는 호칭에 대해 뭐라 하지 않았다.

“그렇게 얼굴까지 찡그릴 일 아니거든? 금방 해결해 줄게.”

주시우는 그녀 손에 들려 있던 신청서를 자연스럽게 받아서 들며 말했다.

“들어가자.”

그가 바로 옆에 바짝 붙어 서자 신예린은 왠지 모르게 든든한 기분이 들었다.

꼭 등을 떠밀어 줄 어른이 생긴 아이처럼 저도 모르게 허리를 곧게 펴고 그의 옆을 따라 걸었다.

그녀가 다시 학생처 문을 열고 들어서자, 한영빈이 다소 놀란 듯 고개를 들었다.

“예린 학생,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보호자 서명 없이는 절대 안 됩니다. 억지 부린다고 해결될 일...”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신예린의 뒤로 주시우가 조용히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문 너머로 쏟아지던 햇살이 그의 큰 키에 가려졌다. 순간 사무실 안 공기가 묘하게 바뀌었다.

한영빈은 순간 눈이 동그래지더니 벌떡 일어났다.

“교수님? 여긴 어쩐 일이세요?”

학교에서 주시우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러자 주시우가 신예린의 신청서를 책상 위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 일 때문에 왔어요.”

한영빈은 서류를 훑어본 뒤 신예린을 슬쩍 쳐다봤다.

‘아... 아까 나간 게 교수님 모시러 갔던 거였구나. 왜 주 교수님이 굳이 이런 일에 나서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규정은 규정이야...’

괜히 잘못 처리했다가는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된다는 생각에 한영빈은 다시 한번 규정을 설명했다.

“교수님, 저도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요... 최근 사건 이후로 학교에서도 조심스러운 분위기라 서류 없이 진행하긴 어렵습니다.”

그 말을 들은 주시우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신예린 학생 보호자입니다.”

한영빈은 당황한 듯, 주시우와 신예린을 번갈아 바라봤다.

‘혹시... 친척 관계라도 되는 건가?’

한영빈이 말을 잇지 못하자, 주시우가 준비해 온 A4 용지를 꺼내 그의 앞에 내려놓았다.

“가족관계증명서입니다. 기숙사 퇴사는 제 허락을 받은 거고, 서명은 제가 할 거예요. 책임도 제가 지겠습니다.”

가족관계증명서를 본 한영빈은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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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는 주시우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신예린은 용기를 낼 수 있었다.더 이상 침대에서 밀려날지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주시우도 역시 신예린을 좋아했고 함께 있고 싶어 했다.이 기쁨은 누구도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벅찼다. 심지어 꿈속에서조차 주시우를 끌어안고 입을 맞췄으니 마치 요괴가 마침내 삼장 법사를 손에 넣은 것처럼 있는 힘껏 주시우를 꿀꺽 삼켜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다음 날 아침, 신예린은 아직도 어젯밤의 꿈을 곱씹으며 천장을 바라보고 멍하니 웃고 있었다.옆자리는 이미 비어 있었고 늘 그렇듯 주시우가 더 일찍 일어나 있었다.신예린은 옆에 놓인 베개를 바라보다가 문득 장난기가 발동했다.살며시 들어 올려 코끝에 대니 은은하게 스며드는 주시우의 향기가 남아 있었다.그 달콤한 기운이 가슴속 깊이 차올라 신예린의 입꼬리는 하늘 끝까지 닿을 듯 솟구쳤다.그러던 순간, 방문이 열리고 주시우가 들어왔고 베개를 끌어안은 채 앉아 있던 신예린과 눈이 마주쳤다.순간, 하늘과 나란히 오르던 신예린의 입꼬리는 딱딱하게 굳었고 공기는 얼어붙은 듯 멈췄다.신예린의 얼굴은 순식간에 붉게 달아올랐고 서둘러 베개를 내려놓으며 더듬거리듯 변명했다.“아, 아니에요. 그냥... 그게...”사실 신예린은 남의 베개를 끌어안고 냄새 맡는 변태 짓을 한 것뿐이었다.주시우는 피식 웃으며 오히려 다정하게 신예린의 체면을 살려 주었다.“혹시 내가 자는 동안 침 흘렸는지 확인해 주는 거야?”“...”‘교수님은 자기 이미지까지 깎아가면서까지 날 위해 변명을 만들어주다니...’그러자 신예린은 곧바로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네. 맞아요. 바로 그거예요.”순간 위기를 모면하는 재주만큼은 기가 막혔고 주시우는 빙긋이 웃으며 시계를 흘긋 보더니 말했다.“출발까지 30분도 안 남았어.”신예린은 눈을 크게 뜨며 시간을 확인하더니 조금 전까지의 달콤한 상상을 잊은 채 허둥지둥 일어나 슬리퍼를 끌고 화장실로 뛰어갔다.곧 닫힌 문 너머에서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터닝포인트   제148화

    신예린은 자기도 모르게 입술을 달싹였다.그냥 가볍게 흘린 말이 이렇게 진지한 대답으로 돌아올 줄은 몰랐다.사람은 흔히 자신의 장점을 잘 보지 못하지만 남의 장점만 크게 보는 법이었다. 신예린도 예외는 아니었다.신예린은 성격이 조용하고 잘하는 것이라고는 공부밖에 없었고 게다가 예전에 여도준이 강효은을 택했을 때는 스스로 매력조차 없는 게 아닐지 의심했었다.하지만 주시우는 달랐다.주시우는 신예린을 부정하지 않았고 오히려 인정했다. 주시우 눈 속의 신예린한테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새로운 자신이 비쳐 있었다.‘혹시 나도 내 생각만큼 너무 떨어지는 존재는 아닌 걸까...’신예린은 속으로 놀라며 조심스럽게 감탄하면서도 섣불리 대답을 못 하자 주시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사실 나도 걱정이 있긴 해.”그 말에 신예린은 의아한 눈으로 주시우를 바라봤다.“내가 너보다 나이가 많잖아. 혹시 그래서 네가 싫어할까 봐 걱정했어.”신예린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곧바로 받아쳤다.“교수님, 아까는 나이 많은 게 좋다고 하셨잖아요. 연금도 저보다 먼저 받을 거라고요.”“...”주시우는 헛기침하며 시선을 피했다.“그건 그냥 스스로 위로하려고 한 말이지.”“하하.”신예린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고 웃음소리 덕분인지 방 안에 깔렸던 긴장과 불안은 눈 녹듯 사라졌다.주시우도 따라 미소를 지으며 낮게 말했다.“그럼... 내가 비밀을 하나 더 말해 줄까?”“뭔데요?”신예린은 호기심에 고개를 들며 가까이 다가갔다.둘 사이의 거리가 좁혀지자 주시우는 신예린의 뽀얀 피부에 비친 고운 솜털까지 선명히 볼 수 있었다.잠시 목울대를 울린 주시우는 낮게 속삭였다.“사실... 내 방의 보일러는 고장 안 났어.”“뭐라고요?”신예린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아니... 이걸 아무렇지 않게 말해 버리다니.’“혹시라도 네가 다른 데로 가 버릴까 봐... 나도 나름 별의별 수단을 다 쓴 거지.”신예린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멍하니 주시우를 바라봤다.주시우는 그런 신예린의 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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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터닝포인트   제146화

    거실은 은은한 노란 불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신예린은 아직도 카펫 위에 힘없이 누운 채 방금 주시우와 나눈 키스의 여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잠시 후, 부엌에서 주시우의 긴 그림자가 드리워졌고 그는 손에 물 한 잔을 들고 신예린 앞으로 다가왔다.조명 아래 비친 신예린의 얼굴은 투명한 옥처럼 빛났고 작은 코와 촉촉하게 빛나는 입술 주변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그건 분명 주시우의 흔적이었다.평소라면 언제나 차분하고 절제된 모습이었지만 방금은 도저히 제어할 수 없었다.주시우는 신예린을 여러 번 안아 버렸고 혹시 겁을 주지는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뒤늦게 밀려왔다.주시우는 신예린한테 잔을 건네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물 좀 마셔.”그 한마디에 신예린은 비로소 정신이 돌아왔다.신예린은 입안이 바싹 말라 있었고 볼에 닿는 열기도 여전히 뜨겁게 남아 있었다.신예린은 잔을 받아 들어 조심스럽게 몇 모금 삼켰다.긴 속눈썹이 눈 밑에 그림자를 드리우자 주시우의 목젖이 미묘하게 흔들렸다.바로 그때 신예린이 갑자기 고개를 들어 올려 주시우를 바라봤다.주시우의 붉어진 뺨과 까만 눈동자에는 묘한 기운이 어려 있었다.“아까... 누가 자기 키스 못 한다고 했죠?”그 말에 주춤한 주시우는 어색하게 기침을 흘렸다.“음... 아마 본능이었던 것 같네.”‘본능이라니... 교수님이 말한 본능이 결국 날 이렇게 정신없이 흔들어 놓았잖아...’잔을 다 비우자 주시우는 신예린의 앞에 무릎을 굽혀 시선을 맞추며 물었다.“먼저 샤워할래?”신예린은 눈길을 피하며 작게 대답했다.“네... 알겠어요.”신예린은 갑작스러운 관계의 변화가 아직은 익숙하지 않았다.특히 조금 전까지 그토록 뜨겁게 입맞춤을 나눴다는 사실이 자꾸만 떠올라 얼굴이 달아올랐다.평소의 주시우는 마치 욕망과는 거리가 먼 사람처럼 절제된 수도승 같은 느낌이었는데 조금 전처럼 붉어진 눈가로 자신을 삼킬 듯 바라보던 모습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평소의 주시우랑 차이가 너무 커서 신예린의 심장은 아직도

  • 터닝포인트   제145화

    그러자 주시우가 가볍게 웃었다.“내가 왜 널 속이겠어. 원한다면 증명해 줄까?”신예린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어떻게... 증명해요?”“예린이가 조금 전에 나한테 한 것처럼 말이야.”그 순간 신예린의 뇌리에는 방금 장면이 스쳤고 얼굴이 곧장 붉게 달아올랐다.주시우의 눈빛은 점점 깊어졌다.“예린이가 날 좋아해서 키스했다면 내가 예린한테 하는 키스는 똑같은 마음 때문이겠지.”주시우의 굵직한 목소리가 귀에 파고드는 순간, 신예린은 마치 몸이 둥실 뜨는 듯 어지러웠다.“증명해 줄까?”‘세상에... 누가 키스를 이런 식으로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신예린은 두 손을 만지작거리며 얼굴을 붉혔다.“네.”하지만 신예린의 목소리는 너무 작아 거의 들리지 않는 정도였다.“뭐라고?”주시우가 몸을 조금 더 가까이 기울이자 얼굴이 바로 신예린의 앞에 닿을 듯 가까워졌다.반쯤 그림자에 잠긴 주시우의 옆모습은 몹시 점잖았고 길게 드리운 속눈썹과 날렵한 콧날, 단정한 입술 선은 숨이 막히도록 매혹적이었다.신예린은 알 수 없는 용기가 솟구쳤고 그 순간 살짝 고개를 들어 주시우의 입술에 짧게 입을 맞췄다.가벼운 입맞춤이 이어졌고 이건 곧장 말이 필요 없는 대답이었다.공간을 가득 메운 공기는 순식간에 달아올랐고 뜨겁고 조용한 기류가 두 사람 사이에 퍼졌다.주시우는 눈빛이 불길처럼 이글거렸고 신예린을 끌어안았다.두 사람의 시선이 맞닿은 순간, 전류가 튀듯 강렬한 불꽃이 스쳤다.“내 키스는 좀 서툴지도 몰라.”주시우의 목소리는 낮게 잠겨 있었고 신예린은 볼이 활활 달아올랐다.“만약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으면 말해. 우리 둘 다 배우는 거에는 자신 있잖아. 잘 안되면 몇 번이고 연습하면 되지.”그 한마디에 신예린은 온몸이 전율하며 숨조차 가빠왔고 수치스러움과 설렘이 뒤섞여 머릿속이 하얘졌다.“그럼... 시작할까?”키스하면서도 먼저 허락을 구하는 주시우의 태도에 신예린은 어이없으면서도 웃음이 나왔다.하지만 다가오는 주시우의 얼굴이 눈앞에 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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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시우의 목소리는 단호했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통화를 끊어 버렸다.신예린의 등줄기가 순간적으로 서늘해졌다.주시우의 목소리를 한 번이라도 들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단박에 알아챌 것이다.이건 사실상 두 사람의 관계를 드러낸 것이나 다름없었다.아니나다를까 전화를 끊긴 채 멍하니 휴대폰만 바라보던 여도준은 머리가 하얘졌다.‘방금... 주시우 교수님의 목소리를 들은 게 맞아?’하지만 주시우는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신예린을 개의치 않고 휴대폰을 무음으로 돌려놓았다.앞으로의 시간을 어떤 방해도 허락할 수 없다는 듯 무심히 옆에 내려놓고 시선을 다시 신예린에게로 맞췄다.신예린은 눈이 휘둥그레졌고 여전히 조금 전의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멘탈이 흔들리고 있었다.“아직 대답 안 했잖아.”주시우의 손끝이 신예린의 손목을 따라 미끄러지듯 움직였고 그의 낮게 울리는 목소리는 귓가에 파문처럼 퍼져 나갔다.“왜 날 몰래 키스한 거야? 날 좋아해서 그래?”신예린의 얼굴은 금세 달아올라 불길처럼 붉게 타올랐고 도무지 주시우와 시선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아 고개를 숙이고는 아주 작지만 확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 순간, 주시우의 눈빛은 유리 조각처럼 반짝이며 빛을 품었고 그동안 마음속을 짓누르던 온갖 망설임과 걱정이 모두 사라졌다.나이가 많든 세대 차이가 있든 그 순간 이제는 아무 상관 없었다.주시우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눈앞에 있는 신예린이 자신을 똑같이 좋아한다는 사실이 세상 무엇보다 소중했다.신예린이 입술을 대던 그 찰나부터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다.‘예린이를 절대 놓쳐서는 안 돼.’목울대를 울리며 주시우는 쉬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속삭였다.“신기하네. 나도 그래.”늘 그렇듯 담담한 어투였지만 주시우의 그 한마디는 신예린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신예린은 숨이 멎을 듯 가슴이 요동치며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물었다.“방금 뭐라고 하셨어요?”그러자 조명 때문에 빛을 띤 주시우의 눈동자가 깊이 흔들렸다.“나도 널 좋아한다고.”신예린은 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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