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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Author: 귀차니즘
신예린은 교실로 돌아가던 길에 여도준과 그의 친구들을 마주쳤다. 여도준은 친구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고 얼굴도 잘생겨서 유독 눈에 띄었다.

그들은 신예린의 앞으로 걸어갔는데 그녀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야, 도준아. 너 쫓아다니던 그 껌딱지 말이야. 개강한 이후로 널 찾아온 적이 없지 않아?”

“네가 연애한다는 말을 듣고 충격받아서 그러는 거 아니야?”

“오늘 주시우 교수님 수업 때도 넋을 놓고 있더라. 너랑 강효은이 마침 걔 앞에 앉아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는 게 괴로웠나 봐. 하하하.”

신예린은 그제야 그들이 본인 얘기를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신예린과 여도준은 의대에서 10위 안에 들 정도로 공부를 잘했다. 신예린은 여도준을 좋아해서 자주 그와 함께 공부를 했었는데 그의 친구들이 자신을 그의 껌딱지로 생각할 줄은 몰랐다.

신예린은 헛웃음이 나왔다.

여도준 친구들의 태도를 보니 평소 여도준이 그녀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것만 같았다.

그러나 매번 신예린이 함께 공부하자고 할 때 여도준은 한 번도 거절한 적이 없었고 함께 문제를 의논할 때도 유쾌한 시간을 보냈었다. 그래서 신예린은 자신에게 희망이 있을 거라고 착각했다.

여도준이 말했다.

“앞으로 효은이 앞에서 예린이 얘기 꺼내지 마. 효은이가 언짢아할 수도 있으니 말이야.”

“그래, 알겠어.”

여도준의 친구가 말했다.

“지금 네 여자친구는 강효은이지.”

“너는 참 운이 좋다. 강효은처럼 예쁜 여자친구가 있고 신예린처럼 공부 잘하는 애가 널 짝사랑하잖아. 둘과 다 사귀는 건 어때?”

“꺼져. 무슨 헛소리야? 신예린은 그냥 친구야.”

“너는 걔를 친구라고 생각하겠지만 걔는 네 여자친구가 되고 싶어 하잖아.”

“너희는 신예린이 아직도 여도준을 좋아할 거라고 생각해? 도준이가 효은이랑 헤어질 때까지 기다리려고 할까?”

“헤어지지 않을 수도 있지.”

“도준이가 효은이랑 헤어지지 않는다면 평생 도준이만 기다린다고 결혼을 안 할지도 몰라. 하하하하.”

“너 드라마 너무 많이 봤다.”

“우리 내기할래? 신예린이 여도준을 위해 몇 년 동안 솔로로 지낼지 말이야.”

“1년? 2년? 5년?”

여도준이 그들의 말허리를 잘랐다.

“됐어. 그만해.”

비록 그렇게 말했지만 여도준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었다. 의기양양한 모습이었다.

한 여자가 한 남자를 위해 몇 년 동안 솔로로 지낸다는 것은 그들에게 아주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그들이 점점 멀어졌고 그 자리에 서 있던 신예린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런 일로 한 사람의 본성을 알아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신예린은 오늘 하루 종일 많은 일을 겪었다. 우선은 자신과 원나잇을 한 상대가 교수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여도준과 친구들의 대화를 듣고 여도준을 향한 마음을 완전히 접었다.

수업이 끝나고 신예린은 송지유에게 자신의 교재를 기숙사로 가져가 달라고 부탁한 뒤 본인은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다.

“너는 대학교 1학년 때부터 매일 아르바이트를 했었지. 저녁에 따로 공부하는 것도 아닌데 계속 10등 안에 든 걸 보면 정말 대단해.”

송지유는 신예린이 가방을 챙기는 걸 보면서 감탄했다.

“어쩔 수 없어. 난 생활비를 벌어야 하니까.”

송지유는 신예린과 꽤 오랫동안 친구로 지냈기에 그녀의 가정 형편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너희 부모님도 참 너무하신다. 이렇게 훌륭한 딸을 지원해 주셔야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아들한테는 왜 자꾸 투자하신대?”

송지유는 그렇게 말해 놓고서 신예린 가족들의 흉을 본 것 같아 황급히 사과했다.

“미안해, 예린아. 내가 경솔했어.”

신예린은 그녀를 향해 웃어 보였다.

“괜찮아. 넌 내 편을 들어주고 싶었던 거잖아. 시간이 빠듯하네. 난 이만 가볼게.”

말을 마친 뒤 신예린은 가방을 챙겨 학교를 떠났다.

교문부터 카페까지 가는 길을 신예린은 1년 넘게 거의 매일 같이 걸었다. 그녀는 남들이 공부할 시간에 아르바이트를 했고 남들이 자고 있을 때는 공부를 했다.

남들은 그녀가 쉽게 장학금을 받는다고 생각했지만 신예린 본인만이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알고 있었다.

카페에 도착한 뒤 신예린은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낮에 일했던 근무자와 교대했다.

비록 아르바이트일 뿐이지만 이미 1년 넘게 일했으니 정직원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저녁에는 비교적 한가했기에 다른 직원에게 얘기하고 화장실로 갔다.

화장실에서 일어날 때 신예린은 눈앞이 어지러워 서둘러 벽을 짚고 중심을 잡았다. 심장이 쿵쾅대며 뛰었다.

그러다 그녀는 문득 아주 무시무시한 사실을 떠올렸다.

그녀는 이번 달에 아직 생리를 하지 않았다.

‘안 돼. 절대 안 돼.’

신예린은 그날 밤 주시우가 콘돔을 했던 것도 기억했다. 콘돔이 없었더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설마 콘돔에 문제가 생긴 것일까?

신예린은 불안감 때문에 퇴근하자마자 약국으로 가서 임신테스트기를 샀다. 차마 학교 근처에서는 살 수 없어 택시를 타고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약국으로 갔다.

임신테스트기를 손에 쥔 신예린은 긴장 때문에 손이 덜덜 떨렸고 결과를 기다릴 때는 화장실에 앉아서 두 손을 꼭 모으고 끊임없이 기도했다.

“제발... 절대 안 되는데... 앞으로는 절대 그러지 않을 테니까 제발 임신만은 아니길... 흑흑... 하나님, 예수님, 부처님,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신예린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신에게 기도하면서 조심스럽게 눈을 살짝 떴다.

임신테스트기 위에 빨간 줄 두 개가 떠 있는 걸 본 순간, 신예린은 세상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끝났어. 진짜 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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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터닝포인트   제9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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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터닝포인트   제9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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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터닝포인트   제96화

    ‘띡.’신예린은 손에 불이 난 것처럼 역대급 반사 신경으로 버튼을 눌렀다.“좋습니다. 이번 문제는 신예린 학생이 답해주세요.”“림프구입니다.”“정답입니다, 1점 추가!”“세 번째 문제입니다. 인체에서 가장 큰 장기는 무엇일까요?”‘띡.’“이번엔 김유진 학생이 빨랐네요. 자, 정답은요?”“피부입니다.”“정답입니다, 1점 획득.”...문제가 진행될수록 분위기는 점점 팽팽해졌고 난이도가 높아질수록 점수 차이도 벌어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어떤 학생들은 답을 알고 있어도 손이 느려서 속수무책으로 점수를 놓치기 일쑤였고 눈앞에서 문제를 뺏기는 좌절감이 그대로 표정에 드러났다.무대 위에선 긴장감이 흘렀고 관객석에서도 숨소리조차 아껴가며 지켜보는 분위기였다. 주시우는 조용히 앉아 있었고 그의 시선은 단 한 순간도 신예린에게서 벗어나지 않았으며 평소와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신예린은 대형 스크린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턱을 살짝 든 채 집중하고 있었고 눈빛엔 흔들림 하나 없이 날카로운 결심이 담겨 있었다.사실 남자나 여자나 진지할 때 묘한 매력이 느껴졌는데 주시우는 지금까지 똑똑한 사람들을 숱하게 봐 왔지만 그렇다고 해서 노력하는 사람을 보고 감탄하는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자신의 아내가 저렇게 열심히 하자 그는 그녀가 너무 자랑스러웠다.신예린이 점점 더 단단해지고 점점 더 빛나게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는 마음 한편에서 뿌듯함을 느꼈다.무대 위에서 퀴즈전은 계속 진행 중이었고 이미 점수가 크게 벌어진 몇몇 학생은 사실상 포기 상태였다. 심지어 참가자가 아닌 관전자처럼 앉아 있는 학생들도 있었다.그렇게 어느덧 1위권 경쟁은 세 명으로 좁혀졌는데 신예린, 여도준, 임동욱이었다.“자궁이 측후방으로 이동하는 걸 제한하는 구조는 무엇일까요?”‘띡.’“여도준 학생, 정답은요?”“자궁 광인대입니다.”“정답입니다!”이 한 문제로 여도준은 신예린과 나란히 공동 1위가 되었고 이어서 사회자의 목소리에 긴장감이 한층 더해졌다.“현재

  • 터닝포인트   제95화

    신예린은 집중해서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손가락으로 빠르게 정답을 터치하고 있었다.어느새 20분이 훌쩍 지나갔고 시험 화면은 자동으로 종료되며 곧바로 제출 처리되었다.“자, 1라운드 필기시험을 종료하고 이제 채점에 들어가겠습니다.”마이크를 든 사회자는 학생회 소속으로 무대 위에서 심사위원 교수들과 얘기를 나눴다.신예린은 긴장해서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가 손에 힘을 뺐고 점수가 나쁘지 않을 거란 자신이 있었다.그리고 곧 1라운드 결과가 발표되었다.“임상과 21학번 5반 장원희, 임상과 22학번 7반 신예린, 임상과 22학번 3반 여도준, 임상과 23학번 9반 조동민, 치의학 20학번 2반 임동욱, 간호학과 20학번 김유진... 이상 열 분이 2라운드 스피드 퀴즈에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무대 앞으로 나와 착석해 주세요!”사회자가 이름을 부를 때마다 박수 소리가 터졌고 신예린은 의자에서 일어나 무대로 향했다.무대 위엔 열 개의 자리가 반원 형태로 세팅돼 있었고 각 책상 위에는 빨간색 버튼이 하나씩 놓여 있었다.그런데 우연인지 고의인지, 여도준이 하필 그녀의 옆에 앉았다.“화이팅.”그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신예린은 아무 반응도 하지 않고 빨간 버튼에 손을 올려 눌러보며 감각을 익혔다.그런데 그때 관객석 쪽에서 웅성거림이 터져 나왔다.“어, 저기 주 교수님 아냐?”“헐, 진짜네. 주 교수님께서 여기 왜 오셨지?”“혹시 심사위원으로 오신 거 아니야? 아니면 누구 보러 온 건가?”관객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커지자 신예린도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 무대 아래쪽을 바라봤고 주시우를 발견했다.그는 교수석 한쪽에 앉았고 주변의 다른 교수님들은 조금 어두운 분위기였는데 그 가운데서 주시우 혼자 눈에 띄었다. 단정한 이목구비와 깊은 눈빛을 가진 그는 아무 말을 안 해도 존재감이 뚜렷했고 그의 차분한 모습은 마치 세월이 깃든 보석 같았다.그러다가 두 사람의 시선이 맞닿았고 신예린은 심장이 격렬하게 뛰었다. 바빠서 못 올지도 모른다고 했던 주시우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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