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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Author: 귀차니즘
신예린은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렇게 그녀는 며칠 동안 영혼을 빼앗긴 사람처럼 넋을 놓고 다녔다.

그녀는 아직 대학을 졸업하지도 못했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지만, 감히 부모님에게 얘기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수술하려면 가족들의 동의가 필요했고 수술을 끝마친 뒤에는 몸조리도 해야 했다. 만약 다른 친구들에게 임신 사실을 들킨다면 학업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었다.

신예린은 살면서 처음으로 엄청난 두려움과 불안감을 느꼈다. 심지어 송지유 또한 이상함을 눈치채고 걱정스럽게 물었다.

“예린아, 무슨 일 있어?”

신예린은 며칠 동안 안색이 창백하고 혼이 빠져나간 사람 같았다.

신예린은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괜찮아.”

그렇게 말하는 얼굴이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얘기해. 내가 도와줄게.”

송지유는 신예린이 걱정돼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여도준 일 때문에 그래?”

지금 신예린에게 여도준은 신경 쓸 가치가 없는 사람이었다.

송지유도 아직 학생이었기에 만약 그녀에게 임신 사실을 얘기한다면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송지유까지 넋을 놓고 다닐지도 몰랐다.

그래서 신예린은 억지로 미소를 지어냈다.

“난 정말 괜찮아. 걱정하지 마.”

송지유는 신예린이 얘기하려고 하지 않자 더는 강요할 수 없어 화제를 돌리려고 했다.

“잠시 뒤 마지막 수업은 주 교수님 해부학 수업이야. 우리 일찍 가서 좋은 자리에 앉자.”

그런데 신예린은 그 말을 듣자마자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나 수업 보러 가지 않으면 안 돼?”

“안 돼. 주 교수님 엄격한 분인 거 너도 알잖아. 거의 수업 때마다 출석 체크를 하는걸. 나는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말이야. 그리고 다른 수업은 모르겠지만 주 교수님 수업에 빠지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걸.”

신예린은 빠지고 싶었다.

그러나 감히 그럴 수가 없었다. 그녀는 지난 2년 동안 단 한 번도 결석한 적이 없는 데다가 주시우도 이젠 그녀의 존재를 알고 있으니 송지유에게 대리 출석을 해달라고 한다면 오히려 자기 무덤을 파는 꼴이었다.

아직 수업 시간이 되지 않았는데 송지유는 신예린을 끌고 교실로 향했다. 게다가 운이 나쁘게도 가장 앞자리에 앉게 되었다.

“지유야, 우리 뒤에 앉자. 뒤에도 자리 있잖아.”

신예린은 그녀를 설득했다.

주시우와 잤을 뿐만 아니라 그의 아이까지 임신하게 된 신예린은 주시우를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안 돼. 여기가 명당이야.”

송지유는 자리에 앉았다.

“여기가 딱 좋아. 가까운 거리에서 주 교수님의 외모를 감상할 수도 있고 말이야.”

신예린은 혼자라도 뒤에 앉고 싶었다. 그러나 고개를 돌려 보니 다들 이미 자리를 차지해서 어쩔 수 없이 첫 번째 줄에 앉아야 했다.

잠시 뒤 수업 종이 울렸고 신예린은 송지유의 뒤에 숨으려고 하면서 최대한 자신의 존재를 지우려고 했다.

주시우는 한결같이 잘생긴 얼굴로 긴 다리를 내뻗으며 교실 안으로 들어왔고 늘씬한 자태로 단상 위에 섰다. 카키색 트렌치코트를 걸친 그는 마치 모델 같아 보였다. 아름다운 눈매와 짙은 이목구비, 평온한 표정을 한 그가 교실 안으로 들어오자 교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는 단상 아래를 쭉 둘러보면서 감미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수업 시작하겠습니다.”

이번에 신예린은 감히 집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주시우가 얘기한 요점을 전부 노트에 받아 적었고 수업에 집중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주시우는 신예린이 봐왔던 사람들 중에서 가장 매력적이었는데 차분하면서도 절제된 분위기를 지녔다.

배운 것이 많은 사람은 분위기도 남다르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주시우의 수업 방식은 굉장히 훌륭했다. 그는 어려운 것도 이해하기 쉽게 설명했고 학생들은 그의 수업에 완전히 몰두하여 그가 얘기한 것들을 열심히 생각했다.

신예린도 매우 진지하게 수업을 들으며 주시우를 주시했다.

그러다 주시우가 시선을 옆으로 돌린 순간,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신예린은 순간 눈에 띄게 당황하며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

그녀는 문득 주시우가 자신이 임신한 사실을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주시우는 그녀 배 속에 자리 잡은 아이의 친부인데 그에게 이 사실을 얘기해야 하지 않을까?

신예린은 고민되어 입술을 깨물었다.

사실 그녀는 더는 주시우와 엮이고 싶지 않았다.

드디어 수업이 끝났다. 주시우는 PPT를 끄고 입을 열었다.

“오늘 수업은 여기서 끝낼게요.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지금 질문하도록 하세요.”

“교수님, 저요!”

“저도 질문 있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주시우를 둘러쌌다. 주시우는 학생들의 질문에 대답해 주면서 곁눈질로 첫 번째 줄에 앉은 신예린이 마치 누군가에게 쫓기기라도 하듯이 가방을 챙기고 빠르게 떠나는 모습을 보았다.

그동안 두 사람은 학교에서 여러 번 마주쳤었는데 그때마다 신예린은 화들짝 놀라며 빠르게 다른 길로 돌아갔다. 그를 피하는 게 분명했다.

주시우는 신예린의 기록을 본 적이 있었다.

신예린은 올해 21살이고 그동안 한 번도 결석한 적이 없으며 성적은 늘 상위권이어서 매년 장학금을 받았다.

그녀는 누가 봐도 모범생 스타일이었다.

주시우는 시선을 내려뜨리면서 계속하여 학생들의 질문에 대답했다.

...

신예린은 주말에 집에 돌아갈 때가 드물었다. 그러나 최근 발생한 일들 때문에 불안감이 심해져 힘이라도 얻을 겸 금요일 저녁에 집으로 돌아갔다.

문을 열자마자 맛있는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고 주방에서 임정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민호야, 왔어? 저녁 거의 다 됐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신예린은 가방을 내려놓고 주방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엄마, 저 왔어요.”

임정희는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리더니 신예린을 본 순간 멈칫했다.

“집에는 왜 온 거야?”

“내일 주말이잖아요.”

신예린의 대답에 임정희는 미간을 찌푸렸다.

“올 거면 미리 얘기해야지. 네 몫은 준비 못 했단 말이야.”

“저 어제 연락드렸어요.”

“그래?”

임정희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내가 깜빡했나 보다. 사람이 그걸 어떻게 계속 기억하고 있어? 그리고 넌 평소 집에 잘 안 오잖아.”

신예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송지유의 부모님은 매주 주말이 되기 전에 먼저 송지유에게 연락해 이번 주에는 집에 돌아올 거냐고 묻는다. 그러나 신예린의 부모님들은 신예린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뭘 넋 놓고 있어? 가서 수저라도 놔. 그리고 아빠한테 집에 올 때 햇반 좀 사 오라고 해.”

“네.”

신예린은 서둘러 손을 씻고 수저를 놓은 뒤 신경무에게 연락했다.

임정희가 저녁 준비를 마쳤을 때 신경무가 햇반을 들고 돌아왔다. 그는 신발을 벗으면서 투덜댔다.

“집에 올 거면 미리 연락해야지. 요즘 물가가 얼마나 비싼데. 이 햇반도 1500원이야.”

“물가는 점점 비싸지는데 당신 월급은 아직도 쥐꼬리만 하네요. 우리 이제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워요.”

임정희는 그에게서 햇반을 빼앗아 들면서 말했다.

“봉투는 왜 샀대요? 봉투도 비싼데 말이야. 그냥 들고 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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