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퇴근하고 돌아온 승우는 저택의 분위기가 어딘지 모르게 달라졌음을 느꼈다. 평소라면 아이들이 제멋대로 뛰어다녀야 할 시간인데, 거실에서는 평온한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아이들은 이슬의 지도 아래 얌전하게 독서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저녁 식탁이었다. 승우가 좋아하는 해산물을 곁들인 지중해식 식단이 준비되어 있었다.
"강이슬 씨, 오늘 유치원에서 큰 사건이 있었다면서요? 민혁 엄마한테 연락받았습니다. 가방 도둑을 잡았다고요."
승우의 말에 이슬은 수저를 놓으며 덤덤하게 대답했다.
"그저 몸이 먼저 반응했을 뿐입니다. 대단한 일 아닙니다."
"대단한 일이 아니라고요? 유치원 엄마들 사이에서 지금 난리가 났습니다. '차승우 대표네 보모는 007 영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다'고요."
승우는 웃으며 말했지만, 그의 눈은 진지했다. 그는 이슬에게 다가가 테이블 너머로 그녀의 손을 살짝 덮었다. 이슬은 예상치 못한 신체 접촉에 흠칫 놀랐다. 평소라면 반사적으로 손목을 꺾었겠지만, 승우의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그녀를 멈추게 했다.
"이슬 씨, 정말 고맙습니다. 당신이 온 뒤로 우리 집이 진짜 '집' 같아졌어요. 당신의 정체가 무엇이든... 나는 당신을 믿기로 했습니다."
승우의 진심 어린 고백에 이슬의 심장이 미세하게 요동쳤다. 전장에서 총알이 빗발칠 때도 차분하던 그녀였다. 하지만 승우의 부드러운 눈빛 앞에서는 자신의 심장 박동을 조절하기가 힘들었다.
'위험해. 감정은 작전에 방해만 될 뿐이야.'
이슬은 차갑게 마음을 다잡으며 손을 뺐다.
"식사 식겠습니다. 어서 드시죠. 그리고 오늘 밤에는 서재에서 업무 보지 마시고 일찍 주무시는 게 좋겠습니다. 제가 '청소'할 게 좀 있어서요."
승우는 그녀가 말한 '청소'의 의미를 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밤 12시. 온 가족이 잠든 시간. 이슬은 다시 검은 복면을 썼다. 그녀는 낮에 설치해둔 역정보를 믿고 저택 담벼락을 넘으려던 두 명의 그림자를 발견했다.
"청소 시작해 볼까."
어둠 속에서 이슬의 눈이 서늘하게 빛났다. 소음기 장착된 권총의 노리쇠를 당기는 소리가 고요한 밤공기를 갈랐다. 그녀는 사랑받는 보모의 탈을 벗어 던지고, 다시금 무자비한 사냥꾼으로 돌아갔다.
저택 앞마당에서 벌어진 짧은 교전은 3분 만에 끝났다. 이슬은 침입자들을 결박해 지하실에 처박아두고, 바닥에 묻은 핏자국 한 방울까지 완벽하게 닦아냈다. 그녀는 다시 부엌으로 돌아와 내일 아침 아이들이 먹을 빵 반죽을 치댔다.
'내일은 블루베리 잼을 곁들여야겠어. 서아가 좋아하니까.'
피 냄새를 비누 향기로 지운 이슬은, 다시 평온한 보모의 얼굴로 돌아와 거실 불을 껐다. 창밖엔 여전히 폭풍전야의 고요함이 감돌고 있었다.
* 수호자의 휴일
간밤의 소란은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지하실에 구속해 두었던 불청객들은 이미 이슬의 연락을 받고 출동한 정보사 소속 청소팀이 수거해 간 뒤였다.
이슬은 거실 소파 밑에 떨어진 작은 단추 하나까지 찾아내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그녀의 사전에 증거를 남기는 실수는 존재하지 않았다.
시계가 오전 7시를 가리키자, 이슬은 부엌으로 들어가 앞치마를 질러맸다. 어제의 킬러는 죽고, 오늘의 보모가 깨어날 시간이었다.
주방에서는 고소한 전복죽 냄새가 피어올랐다. 기력이 떨어진 승우와 성장기 아이들을 위해 이슬이 새벽부터 준비한 보양식이었다. 계단을 내려오던 승우는 거실 입구에서 멈춰 섰다. 앞치마를 두르고 능숙하게 그릇을 세팅하는 이슬의 뒷모습이 아침 햇살 속에 녹아들고 있었다.
승우는 어젯밤 꿈결에 들었던 것 같은 금속성 파열음이 환청이었는지 잠시 헷갈렸다. 하지만 눈앞의 풍경은 그 어떤 현실보다 평온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차승우 씨. 주스부터 드시겠어요?"
이슬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승우의 기척을 알아챘다. 승우는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며 식탁에 앉았다.
"이슬 씨는 잠도 안 잡니까? 어떻게 매일 이 시간에 완벽하게 준비가 되어 있는 거죠?"
"군기가 바짝 들어있어서 그렇습니다. 아니, 습관이 되어서요."
이슬은 실언을 할 뻔한 입술을 살짝 깨물며 싱긋 웃었다. 승우는 그녀의 농담 같은 진담에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은 2년 전 아내를 잃은 뒤 그가 지었던 그 어떤 표정보다 자연스러웠다.
식사가 시작되자 아이들이 하나둘 식탁으로 모여들었다. 평소라면 밥투정을 하며 도망 다녔을 예준이도, 이슬이 만든 하트 모양의 당근 조각을 보며 즐겁게 숟가락질을 했다.
서아는 이슬의 곁에 꼭 붙어 앉아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을 재잘거렸다. 민준은 말없이 죽을 먹었지만, 이슬이 건네는 반찬을 거절하지 않고 묵묵히 받아먹었다.
승우는 그 광경을 보며 가슴 한구석이 뻐근해지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평범한 가정'의 모습이 이 낯선 여자 한 명으로 인해 완성되고 있었다.
"오늘 주말인데, 다 같이 근처 공원에 나들이라도 갈까요?"
승우의 제안에 아이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이슬은 잠시 머릿속으로 공원의 지형과 도주로, 그리고 엄폐물을 계산했다. 주말의 공원은 인파가 많아 저격이나 기습의 위험이 컸다. 하지만 아이들의 해맑은 미소를 보자 '안 됩니다'라는 말이 차마 나오지 않았다.
"좋습니다. 제가 도시락을 준비하죠. 대신 차승우 씨는 아이들 안전 장구류만 잘 챙겨주세요."
승우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기가 막혀서 말이 나오지 않는 듯했다. 평생 전장에서 살상 무기와 전투 기술만을 익혀온 전직 특전사 상사에게 '태교'라는 개념은 일반적인 요가나 음악 감상이 아니었던 것이다.승우는 무릎을 굴려 소파에 앉은 이슬의 눈높이를 맞추었다. 그리고 그녀의 두 손을 꼭 감싸 잡았다. 그의 깊은 눈동자 속에는 이슬을 향한 감출 수 없는 열망과 오한이 들 정도의 과보호가 넘쳐흐르고 있었다."이슬 씨, 잘 들으세요. 당신은 더 이상 707 특수임무단 상사가 아닙니다. 에이전트 실드의 총괄 안보 이사이자, 내 약혼녀이며, 내 아이의 엄마입니다.""알고 있습니다, 승우 씨.""앞으로 당신이 할 수 있는 운동은 내 손을 잡고 저택 정원을 아주 천천히 거니는 것뿐입니다. 턱걸이, 푸쉬업, 전술 구보 따위는 내 눈에 흙이 들어가지 전까진 절대 불가능합니다. 내 말 알아들었습니까?"승우의 단호하고 진실된 과보호에 이슬은 가슴 한구석이 간지러운 듯 부풀어 올랐다. 이 남자에게 자신은 그 어떤 장갑차나 탄환보다 소중한 존재였다. 이슬은 가만히 손을 뻗어 승우의 단단한 턱선과 뺨을 쓸어내렸다."알겠습니다, 승우 씨. 당신이 그렇게 불안해하면 앞으로 철봉은 안 할게요.""약속하는 겁니다. 만약 한 번만 더 철봉에 매달려 있는 걸 내가 발견하면... 내가 당신을 하루 종일 침대 밖으로 안 내보낼 테니까요."승우의 거침없고 달콤한 협박에 이슬의 뺨이 발갛게 물들었다. 승우는 이슬의 입술에 깊고 다정하게 입을 맞춘 뒤, 그녀를 다시 공주님 안기로 안아 들고
승우의 단호하고 진실된 선언에 웨딩 팀 직원들조차 부러움 어린 탄성을 터뜨렸다.서로의 검과 방패가 되어준 두 사람의 사랑은 마침내 세 아이와 새로 찾아온 기적 같은 아기,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찬란한 결혼식을 향해 완벽하고 아름다운 결실을 맺어가고 있었다.햇살이 화사하게 내리쬐는 회의실 안에서 두 사람의 반지가 영원히 시들지 않을 사랑의 빛을 발하고 있었다.새벽을 비추는 은은한 아침 햇살이 저택 마스터 베드룸의 창가를 부드럽게 밝히고 있었다.시트 위로 부서지는 햇빛 속에서 승우는 눈을 떴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품 안을 가득 채우던 이슬의 따뜻하고 정갈한 체온이 느껴져야 할 자리였다. 그러나 손을 뻗은 곳에는 차가운 빈 침대 시트만이 매끄럽게 만져질 뿐이었다."이슬 씨?"승우의 깊은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서늘하게 식어 내렸다.불과 얼마 전까지 스위스 제네바와 서울을 넘나들며 사선을 헤맸던 기억이 뇌리를 스쳤다.적들은 모두 소탕되었고 국방부 훈장 수여식까지 무사히 마쳤건만, 이슬이 눈앞에서 사라졌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남자의 이성은 순식간에 마비될 듯한 긴장감에 휩싸였다.승우는 실크 로브를 대충 걸쳐 매고 서둘러 침실 문을 열고 나섰다."이슬 씨! 어디 있습니까?"승우의 높고 나직한 음성이 복도를 울렸다. 2층 복도를 지나 1층 거실로 내려오자, 마당 쪽으로 연결된 프라이빗 전술 훈련실 문이 살짝 열려 있
승우는 이슬의 어깨 위에 턱을 괴고, 그녀의 왼손을 가져가 왼손 약지에서 반짝이는 다이아몬드 반지를 가만히 어루만졌다."오늘 하루 피곤하진 않았습니까?"승우의 낮고 깊은 음성이 이슬의 귓가를 울렸다."전혀요, 승우 씨.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너무 가득 차올라서 피곤할 겨를이 없었어요."이슬이 고개를 돌려 남자를 마주 보자, 승우는 이슬의 매끄러운 턱끝을 부드럽게 감싸 잡았다. 그의 깊고 어두운 눈동자에는 이슬을 향한 감출 수 없는 지독한 애정과 소유욕이 거세게 일렁이고 있었다."아이들도 중요하지만, 내게는 당신의 건강과 마음이 언제나 1순위입니다."승우는 이슬의 안경을 조심스럽게 벗겨 협탁 위에 내려놓았다. 안경이 사라지자 맑고 깊은 그녀의 눈동자가 달빛을 받아 투명하게 드러났다.승우는 이슬의 몸을 자신 쪽으로 부드럽게 돌려세우고, 그대로 그녀의 입술을 깊고 뜨겁게 덮쳐왔다.달콤하면서도 짙은 열정이 담긴 키스가 이어졌다. 승우의 커다란 두 손이 이슬의 허리와 목덜미를 꼭 감싸 안아 자신의 품으로 밀착시켰고, 이슬 역시 남자의 넓은 어깨를 끌어안으며 그의 깊은 숨결을 받아냈다.아이가 생겼다는 기쁨과 서로를 향한 절절한 사랑이 두 사람의 숨결 속에서 온전히 녹아내려 갔다. 승우의 손길이 이슬의 허리선을 따라 부드럽게 쓸어내려갈 때마다 전신으로 미세한 전율이 흘렀다.입술이 떨어진 후, 승우는 이슬의 아랫배 위에 가만히 손을 올리고 그녀의 이마에 정성스럽게 입을
오후 6시, 저택으로 돌아오는 검은색 마이바흐 세단 안은 묘한 신선함과 다정한 온기로 가득 차 있었다.승우는 세단 뒷좌석에서 단 한 순간도 이슬의 손을 놓지 않았다. 그는 한 손으로 이슬의 오른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이슬의 아랫배 위에 자신의 커다란 손바닥을 살포시 얹어 두고 있었다.남자의 커다란 손길에서 전해지는 따뜻한 온기가 이슬의 복부를 온화하게 덥혀주었다."아이에게 벌써 이야기라도 하고 계신 겁니까?"이슬이 소곤거리자 승우는 깊은 눈동자로 이슬을 바라보며 나직하게 속삭였다."내 아이에게 미리 경고하고 있는 겁니다. 엄마를 너무 힘들게 하거나 아프게 하면, 아무리 내 자식이라도 그냥 두지 않겠다고요.""승우 씨도 참...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한테 질투를 하시는 건 아니겠죠?""질투가 맞습니다. 당신의 온 신경이 나 대신 그 작은 아이에게로 쏠릴까 봐 벌써부터 불안하니까요."승우의 솔직한 고백에 이슬의 뺨이 발갛게 물들었다. 승우는 이슬의 붉어진 귓볼을 살짝 깨물며 그녀를 자신의 품 안으로 더욱 깊숙이 끌어당겼다. 남자의 단단한 품 안에서 이슬은 세단이 저택 정문으로 진입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저택 문이 열리고 세단이 잔디 마당에 정차하자, 거실 문이 벌컥 열리며 세 아이와 올빼미가 마당으로 뛰어 나왔다."엄마! 아빠! 병원 잘 다녀왔어? 엄마 어디 많이 아파?"첫째 민준이가 어두워진 얼굴로 이슬의 차 문을 열며 걱
"이슬 씨."침대 곁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던 승우가 나직하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차콜 그레이 슈트의 넥타이를 풀어 헤친 남자의 조각 같은 얼굴에는 평소의 서늘하고 오만한 지성 대신, 평생 단 한 번도 보인 적 없는 깊은 울컥함과 감격이 가득 차 있었다.승우는 이슬의 왼손을 가져가, 그녀의 왼손 약지에서 영롱하게 빛나는 다이아몬드 약혼반지 위에 정성스럽게 입을 맞추었다. 그의 뜨거운 입술이 반지를 거쳐 그녀의 피부로 전해질 때마다 이슬의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손가락 하나도 함부로 움직이지 마십시오."승우의 낮게 잠긴 목소리가 이슬의 귓가를 울렸다. 그의 커다란 두 손이 이슬의 마른 손을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약한 보석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감싸 쥐었다."당신과 우리 아이에게 작은 부담이라도 가해지는 것은 내 영혼이 용납하지 않을 겁니다. 앞으로 회사의 모든 업무와 저택의 일들은 내가 완벽하게 통제할 테니, 당신은 그저 내 품 안에서 쉬기만 하세요.""승우 씨, 저 이제 막 6주 차예요."이슬이 안경 너머의 눈동자를 반짝이며 작게 미소를 지었다."전투를 치르던 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까는 갑자기 혈당이 떨어져서 순간적으로 어지러웠던 것뿐이에요. 제 몸은 최정예 특전사 기준으로 건강하니까 너무 유난 떨지 마세요.""유난이 아닙니다."승우가 단호하게 이슬의 말을 끊었다. 그의 깊은 눈동자에 사나울 정도로 지독한 소유욕과 보호 본능이 짙게 일렁이
"만약 이슬 씨에게 작은 이상이라도 있다면... 이 병원 전체를 매장시켜 버리겠다."승우의 서늘한 중얼거림이 복도를 얼려버릴 듯했다.그때, VIP 전용 진료실의 문이 열리고 원장 겸 수석 주치의가 밝은 표정으로 걸어 나왔다.승우가 번개처럼 원장의 옷깃을 잡아채려 하자, 원장은 황급히 손사래를 치며 기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차 대표님! 정밀 검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강 이사님의 몸에는 그 어떤 이상이나 질병도 없습니다!""그럼 왜 비틀거린 겁니까!"승우가 소리치자, 원장은 허허 웃으며 차트를 승우에게 보여주었다."축하드립니다, 차 대표님. 강이슬 이사님께서... 현재 임신 6주 차이십니다. 새로운 생명이 건강하게 자리를 잡으면서 일시적인 아침 입덧과 어지럼증이 나타난 것입니다!""임... 신?"승우의 굳어있던 얼굴이 순간적으로 정지했다.그 천재적인 머릿속이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거대한 충격과 감격으로 정지해 버린 것 같았다."임신이라니... 내 아이가... 이슬 씨의 몸 안에 있단 말인가?"승우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원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승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서 있다가, 번개처럼 진료실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진료실 안, 이슬은 침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