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log in“송지아, 거기 서! 네가 나를 몰라? 어떻게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런 거짓말을 해!”설도윤의 어머니가 분을 이기지 못하고 고함을 질렀다. 격앙된 목소리가 길게 뻗은 복도에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이만 나가 주십시오.”앞을 막아선 경호원이 냉담하게 말했다.간신히 사람들의 눈을 피해 안으로 들어온 그녀가 순순히 물러날 리 없었다. 송지아를 쫓아가려 몸을 내밀었으나, 건장한 경호원이 한 치의 틈도 내주지 않고 길을 가로막았다. 결국 그녀는 발을 구르며 경호원에게 삿대질했다.“네가 뭔데 나를 막아? 내가 누군지 알아? 나는 설조경의 아내야!”그러나 경호원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다.“계속 나가지 않으시면 물리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억울하시다면 경찰에 신고하셔도 좋습니다.”“너…!”그녀는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고 입술을 부들부들 떨었다. 얼굴은 순식간에 시뻘겋게 달아올랐다.경호원은 그녀가 끝까지 버티자 어쩔 수 없이 팔을 붙잡았다. 그 순간, 저만치 멀어지던 송지아의 뒷모습이 복도 모퉁이 너머로 사라지려 했다.다급해진 설도윤의 어머니가 목이 터져라 외쳤다.“송지아! 네 추잡한 짓을 모조리 까발려도 괜찮겠어? 너 때문에 내 아들은 이미 인생을 망쳤는데, 내가 왜 너만 편히 살게 내버려 둬야 해! 이판사판이야! 죽더라도 너 하나는 반드시 끌고 갈 거야!”서슬 퍼런 외침이 등 뒤까지 쫓아왔지만, 송지아는 끝내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그녀의 걸음은 잠시도 흔들리지 않은 채 점점 멀어져 갔다.모진 말을 쏟아 낸 설도윤의 어머니는 뜻밖에도 더는 발버둥 치지 않았다. 순순히 물러나는 듯한 모습에 경호원도 비로소 긴장을 조금 풀었다. 그는 그녀의 팔을 붙잡은 채 출구 쪽으로 끌고 갔다.바로 그 순간이었다.설도윤의 어머니가 느닷없이 고개를 숙이더니 경호원의 팔을 힘껏 깨물었다.“윽!”살을 파고드는 통증에 경호원의 손에서 순간적으로 힘이 빠졌다. 그녀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몸을 홱 돌려 연회장을 향해 내달렸다. 급박한 발소리가 매끄
설도윤의 어머니는 송지아의 얼굴에 스친 미묘한 변화를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순간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역시 제대로 약점을 잡은 게 분명했다.아무리 영리한 척해도 아직 어린 티를 벗지 못한 계집애였다. 속내 하나 감추지 못하지 않는가.“대체 뭘 원하시는 거예요?”송지아가 미간을 찌푸렸다.설도윤은 자신과 허경빈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송지아는 설씨 집안사람들도 그 사실을 모두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굳이 라비엘 레지던스를 언급한 것은, 두 사람이 그곳에서 동거한다고 여기고 이를 빌미로 협박하려는 모양이었다.“내가 아까 말한 두 가지 조건을 들어줘.”설도윤의 어머니는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하며 희미하게 웃었다.그러나 송지아의 입꼬리도 천천히 올라갔다.그 미소에는 숨길 생각조차 없는 조소가 어려 있었다.“고작 그 일로 저를 협박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연세도 있으신 분이 어떻게 그렇게 순진하실 수 있죠?”설도윤의 어머니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눈을 부릅뜨고 송지아를 노려봤다.“내가 이 일을 세상에 폭로해도 정말 두렵지 않다는 거야?”“마음대로 하세요.”“송씨 집안의 체면은 생각하지도 않아?”송지아가 가볍게 비웃었다.“체면은 스스로 세우는 것이지, 남이 베풀어 주는 게 아니니까요.”설도윤의 어머니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그 일이 알려지면 송지아 혼자만이 아니라 송씨 집안 전체의 명예가 훼손될 터였다. 그런데도 어떻게 저토록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단 말인가.그녀 또한 알고 있었다.일이 세상에 알려져 송씨 집안이 궁지에 몰리면, 그들은 절대로 자신의 아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가장 좋은 방법은 조용히 만나 타협하는 것이었다.그런데 정작 송지아는 자신의 협박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예상과 전혀 다른 반응에 설도윤의 어머니는 순식간에 당황했다. 송지아의 팔을 붙잡고 있던 손에서도 저절로 힘이 빠졌다. 준비했던 수가 모두 어긋나자,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조차 알 수 없었다.그러나 두 사람은 아직 알지 못했
“민찬 오빠, 안녕.”송민정은 육민찬에게 반갑게 인사한 뒤 부모님을 돌아봤다. 두 사람이 허락하자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손을 맞잡고 한쪽으로 놀러 갔다.처음에는 두 아이 모두 어른들의 시야 안에 있었다. 그러나 인사를 건네러 오는 사람들을 잠시 상대하는 사이, 한눈을 판 것도 아닌데 어느새 아이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제가 찾아보고 올게요.”송지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온유란 곁에 얌전히 앉아 있던 연우진이 한쪽 문을 가리켰다.“두 사람, 아마 저 문으로 나간 것 같아요.”“고마워.”송지아는 자리를 떠나기 전 문득 뒤를 돌아봤다.오늘은 하씨 집안사람들도 모두 참석해 있었다. 그런데 연우진은 정작 부모 곁에 있지 않고, 마치 본래부터 한 가족이었던 것처럼 하씨 집안사람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었다.어린 나이답지 않게 조숙하고 침착한 성격까지 하이석과 무척 닮아 있었다.송지아는 문득 허경빈이 두 집안의 아이들을 장차 맺어 주려 한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직 어린아이들을 두고 벌써부터 혼담을 논한다는 것이 우습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 저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다.그러나 복도를 따라 한참을 찾아다녀도 육민찬과 송민정은 보이지 않았다.송지아는 조카가 차고 있는 어린이용 스마트워치로 전화를 걸려 했다. 바로 그때, 누군가가 불쑥 앞을 가로막았다.호텔 직원 제복에 마스크까지 쓴 여자였다.송지아는 그저 직원인 줄 알고 다가가 물었다.“혹시 이만한 아이 둘을 못 보셨나요?”그녀가 손으로 아이들의 키를 가늠해 보이자, 여자는 아무 말 없이 천천히 마스크를 벗었다.익숙한 얼굴이 드러나는 순간 송지아의 표정이 굳었다.“어떻게… 여기에 계세요?”“저를 보니 그렇게 놀라워요?”설도윤의 어머니였다.호텔 직원의 제복을 입고 있는 것을 보니 정식으로 초대받은 것이 아니라, 직원으로 위장해 몰래 들어온 게 분명했다.“가능하면 빨리 나가시는 게 좋을 거예요. 육씨 집안사람들에게 발각되면 이 상황을 해명하기도 어려울 테고, 그쪽에서도 그냥 넘어가지
허경빈의 낯간지러운 칭찬 세례는 그칠 줄 몰랐다.“형님은 제가 본받고 싶은 사람입니다. 학창 시절부터 누구보다 뛰어나셨고, 지금은 자기 사업도 탄탄히 일구신 데다 아내와 딸까지 끔찍이 아끼시잖아요. 정말 제 인생의 귀감이에요.”“솔직히 육씨 집안의 형제이나 이석이도 형님과는 비교가 안 됩니다. 제 마음속에서는 형님이 단연 최고예요.”송윤재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경련했다.“나를 칭찬하고 싶다고 해서 굳이 그 사람들을 깎아내릴 필요는 없어. 다들 충분히 좋은 사람들이야.”“누가 더 나은지는 지극히 주관적인 문제잖아요. 제게는 형님이 가장 훌륭한 사람입니다.”송윤재는 애초에 허경빈의 기선을 단단히 제압할 생각이었다.만약 직접 만나 본 허경빈이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 외진 교외에 내려놓고 혼자 시내까지 걸어가게 할 작정이었다.그런데 허경빈이 쉴 새 없이 쏟아 내는 아부에 도리어 자신이 얼떨떨해지고 말았다.솔직히 말해, 누군가 이렇게까지 자신을 치켜세우니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마음 한구석이 슬며시 흐뭇해졌다.한참 동안 칭찬을 늘어놓던 허경빈이 때를 놓치지 않고 웃으며 물었다.“형, 뭐 드시고 싶으세요? 이제 식사하러 가시죠.”처음에는 꼬박꼬박 ‘송 형님’이라 부르더니 어느새 ‘형님’으로 줄었고, 마침내는 자연스럽게 ‘형’이 되었다. 원래부터 말재주가 좋은 데다 자세까지 한껏 낮춘 허경빈은, 쉼 없이 다정하게 ‘형’을 불러 댔다.그 살가운 호칭이 거듭될수록 송윤재의 경계심도 자신도 모르게 느슨해졌다.결국 허경빈은 그렇게 무사히 위기를 넘겼다.겉보기에는 다소 허술하고 생각 없어 보일지 몰라도, 치열한 사업판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어찌 순진하기만 하겠는가. 허경빈 역시 속으로는 수십 가지 수를 굴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훗날 그날을 되짚어 본 송윤재는 자신이 완전히 속았다고 생각했다.허경빈은 어수룩한 척 상대의 경계를 풀어 놓고 결정적인 순간에 목적을 이루는 사람이었다. 자신은 그 교묘한 말솜씨에 휘말려 정신을 차리지 못한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예상하시는 하객은 몇 분 정도일까요?” 호텔 지배인이 물었다.“아직 정확히 정해지지는 않았어요. 명단이 확정되는 대로 최대한 빨리 연락드릴게요.”집으로 돌아온 한주미는 다시 한번 초대 명단을 꼼꼼히 확인하다가 서은주를 바라봤다.“네 외할아버지 말고, 이번에도 외삼촌과 외숙모는 두 분 다 안 오시는 거니?”“외삼촌은 못 오시고 외숙모만 오실 거예요. 외할아버지는 아마 한 사람을 더 데려오실 것 같고요.”“누구를?”한주미는 호기심 어린 얼굴로 눈을 빛냈다. 순간 강학용이 황혼의 반려라도 새로 만난 줄 알았다.하지만 이야기를 들어 보니 전혀 아니었다. 강학용이 얼마 전 어린 제자를 새로 들였다는 것이었다. 타고난 재능이 워낙 뛰어나 자신의 의술을 계승할 재목이라며, 어딜 가든 곁에 데리고 다닐 만큼 귀하게 여긴다고 했다.이번 팔순 잔치에 데려오는 것도 어린 제자에게 견문을 넓혀 주려는 뜻이 컸다. 물론 그토록 뛰어난 제자를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없지는 않았다.강학용이 제자를 들이겠다고 했을 때 강정한은 처음부터 탐탁지 않아 했다. 아이가 아직 너무 어린 데다, 연로한 할아버지가 제자를 가르치느라 몸을 상할까 걱정됐기 때문이다.하지만 강학용의 고집을 누가 꺾을 수 있겠는가. 그는 대뜸 역정을 냈다.“이 녀석아, 이제 좀 컸다고 제법이구나. 내가 제자 하나 들이는 것까지 네 허락을 받아야 해? 아예 네가 내 집안 어른 노릇까지 하려는 게냐!”그 말을 들은 강정한은 더는 반대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한주미가 웃으며 말했다.“그분은 정말 노익장이시네. 연세가 그만큼 드셨는데도 제자를 새로 들이시다니. 송씨 집안 쪽은 송윤재 부부도 돌아오기로 한 것 같으니, 당일에는 허씨 집안과 같은 테이블로 배정해야겠구나.”*육씨 집안에서 송윤재 부부의 이야기가 오가던 그때, 송윤재는 이미 남몰래 경성으로 돌아온 뒤였다.아내와 딸은 며칠 뒤에야 도착할 예정이었다. 그가 먼저 돌아왔다는 사실은 친동생인 송지아조차 모르고
박명숙의 팔순 잔치에 초대받는 이들은 대부분 육씨 집안과 각별한 가까운 친척이나 오랜 벗들이었다. 그런 만큼 육강민 부부가 직접 초대장을 들고 송씨 집안을 찾아오자, 송현근은 뜻밖의 환대에 적잖이 놀랐다.“사람을 보내셔도 됐을 텐데, 두 분이 직접 와 주시다니요.”송현근이 웃으며 말하자 육강민도 평소의 냉랭한 기색을 누그러뜨린 채 예의를 갖춰 답했다.“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두 분께서도 그날 꼭 참석해 자리를 빛내 주셨으면 합니다.”“저희 부부, 반드시 참석하겠습니다.”육강민은 사교계에서도 강단 있고 냉정하기로 이름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이토록 부드럽고 공손하게 나오는 데에는 아무래도 송지아와 허경빈의 관계를 염두에 둔 배려가 컸을 터였다.육강민이 이만큼 성의를 보이자 허경빈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는 직접 요리해 대접하겠다며 호기롭게 나섰다.육강민이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정말 요리하려는 거 맞아? 나한테 독 먹이려는 건 아니고?”“날 뭘로 보는 거야? 요즘 내 별명이 ‘허 셰프’라고.”*육강민과 서은주가 라비엘 레지던스로 향하던 날, 운전은 육지성이 맡았다. 아빠가 된 뒤로 육지성은 전보다 훨씬 악착같이 일했다. 이제는 분유값을 벌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어깨에 묵직하게 얹혀 있었기 때문이다.처음 방문하는 곳이라 출입 등록이 필요했다. 차를 세운 육지성은 등록을 하러 내렸다가 단지 입구 주변에 길게 늘어선 차량 몇 대를 유심히 살폈다.다시 차에 오른 그가 육강민을 돌아보며 말했다.“대표님, 단지 입구에 잠복해 있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누구를 기다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요.”그 말에 서은주가 대답했다.“여기 유명 연예인도 많이 산다고 들었어요.”“그럼 연예인을 기다리는 사람들인가 보네요. 요즘 기자들도 참 부지런합니다.”육지성이 혀를 내두르며 차를 출발시켰다.허경빈의 집에 도착했을 때, 주방에서는 벌써 뜨거운 열기와 고소한 음식 냄새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허경빈은 이마에 땀이 맺히도록 요리에 열중했고, 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