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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 시중은 계약에 없었는데요

Author: 유월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13 22:33:26

“그럼 전하께서 밤새 고통스러워하시면 어찌합니까?”

“제가 다른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그녀는 향로를 모두 치우게 한 뒤, 각각의 재를 별도 봉투에 담도록 지시했다. 향로 자체에도 작은 종이를 붙여 위치를 표시했다. 동쪽, 서쪽, 창가. 나중에 서로 다른 향이 사용되었는지 비교하기 위해서였다.

그러고는 약탕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오늘 사용할 약재는 어제보다 단순했다. 자극적인 향을 내는 약재를 제외하고, 피부를 진정시키는 약재와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는 물만 준비했다. 적련향이 정말 몸속에 남아 있는 독이라면 무턱대고 강한 해독약을 쓰는 것은 위험했다. 무엇이 원인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여러 약재를 섞으면 오히려 증상을 구별하기 어려워질 수 있었다.

서하는 작은 놋그릇에 물을 떠 손등으로 온도를 확인했다.

“조금 더 식혀 주세요.”

“평소보다 많이 미지근합니다만.”

“오늘은 일부러 그렇게 하는 겁니다.”

뜨거운 물이 이현의 몸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따라서 처음부터 고온의 약탕을 사용하는 대신 미지근한 물에서 시작해 반응을 살필 생각이었다.

그때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목욕하는 데 이리 많은 준비가 필요했나?”

서하가 돌아보았다.

이현이 욕실 입구에 서 있었다.

그는 평소 입던 검은 겉옷 대신 얇은 흰색 중의를 걸치고 있었다. 머리카락은 느슨하게 묶여 있었고, 창백한 얼굴에는 여전히 피로가 남아 있었다. 그러나 눈빛만큼은 조금 전보다 또렷했다.

서하는 자연스럽게 그의 얼굴과 손끝을 살폈다.

“열은 조금 내리셨습니까?”

“네가 확인해 보지.”

이현이 손을 내밀었다.

서하는 익숙하게 손목을 잡고 맥을 짚었다. 어제보다 맥이 안정되었지만, 일정한 간격으로 한 번씩 불규칙하게 뛰었다. 마치 무언가가 몸속에서 다른 박자를 만들어 내는 것 같았다.

“아직 무리하시면 안 됩니다.”

“그래서 얌전히 목욕하러 왔지 않나.”

“전하께서 얌전하신 적이 있었습니까?”

“네 앞에서는 제법 얌전한 편인데.”

서하가 고개를 들었다.

이현은 그녀를 내려다보며 태연하게 웃고 있었다.

“그렇습니까?”

“아직 사람을 내쫓지도 않았고.”

“어제 저를 내쫓으려 하셨습니다.”

“그랬나?”

“기억 안 나십니까?”

그 말이 떨어진 순간이었다.

이현의 웃음이 사라졌다.

서하도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기억.

그에게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단어였다.

“……죄송합니다.”

이현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사과할 필요 없다.”

“하지만…….”

“사실이니까.”

그는 천천히 손목을 빼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어디 하루 이틀 일이겠느냐.”

서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이현은 아무렇지 않은 듯 욕조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나 서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저 남자가 기억을 잃었다는 사실보다 더 괴로운 것은, 자신의 기억을 믿을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일지도 모른다고.

이현이 욕조에 들어간 뒤, 서하는 일부러 등을 돌렸다.

“들어가셨습니까?”

“이미.”

“그럼 말씀을 하셨어야죠.”

“네가 보지 않겠다고 했으니 기다렸지.”

“전하께서는 꼭 그런 식으로 말씀하셔야 합니까?”

“어떤 식?”

“사람을 곤란하게 만드는 식이요.”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서하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치료보다 이 남자와 말다툼을 하는 데 더 많은 기운을 쓰게 될 것 같았다.

“등을 확인하겠습니다.”

“돌아봐도 좋다.”

서하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이현은 욕조 가장자리에 팔을 걸친 채 앉아 있었다. 물은 가슴 아래까지 차올라 있었고, 젖은 검은 머리카락 몇 가닥이 목덜미에 달라붙어 있었다. 수증기가 옅게 피어오르는 가운데 드러난 어깨에는 오래된 상처들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서하는 시선을 곧장 그의 등으로 옮겼다.

붉은 흔적은 어제보다 조금 더 선명했다.

꽃잎 하나가 완성된 자리에서 새로운 선이 뻗어 나오고 있었다.

“……이상하네요.”

“무엇이?”

“어제는 분명 여기까지였는데.”

서하는 기록지를 펼쳤다.

붉은 선의 길이를 비교하려고 몸을 조금 숙였다. 그 순간 이현이 고개를 돌렸다.

“연서하.”

“잠시만요.”

“너무 가까운 것 아닌가?”

“움직이지 마세요. 정확히 확인해야 합니다.”

“내가 움직이면?”

“다시 측정해야죠.”

이현은 입을 다물었다.

서하는 작은 자를 꺼내 붉은 선의 길이를 재고, 그 주변 피부의 온도를 손등으로 확인했다. 다른 부위보다 약간 뜨거웠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현은 통증을 호소하지 않았다.

“아프지 않으십니까?”

“아프지는 않다.”

“가렵거나 따갑지는요?”

“그것도 아니다.”

“그럼 어떤 느낌입니까?”

이현은 잠시 생각했다.

“……뜨겁군.”

“어디가요?”

“네 손이 닿은 곳.”

서하의 손끝이 멈췄다.

그녀는 천천히 이현을 바라보았다.

“그건 제 손이 차가워서 상대적으로 그렇게 느끼시는 걸 수도 있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런데 왜 웃으십니까?”

“네가 진지해서.”

“진찰 중입니다.”

“알고 있다.”

이현의 눈이 가늘게 휘어졌다.

“그래서 참고 있는 중이다.”

서하는 더 묻지 않았다.

대신 기록지에 새로운 내용을 적었다.

접촉 부위 열감 호소. 통증 없음. 피부 온도 차이 확인 필요.

그때 이현이 갑자기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잠깐.”

서하가 놀라 고개를 들었다.

“왜 그러십니까?”

이현의 표정이 변해 있었다.

조금 전까지 느긋하던 눈빛이 날카롭게 굳었다.

“……향.”

서하는 곧장 주변을 살폈다.

“향로는 모두 치웠습니다.”

“아니.”

이현이 눈을 감았다.

“지금 맡은 것이 아니다.”

그의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

“기억이…….”

서하는 숨을 멈췄다.

“무엇이 기억나십니까?”

이현의 호흡이 조금씩 빨라졌다.

“붉은…….”

“붉은 무엇이요?”

“향로.”

서하의 심장이 뛰었다.

“그다음은요?”

이현의 눈꺼풀이 떨렸다.

“누군가 있었다.”

“누구입니까?”

“흰 옷을 입은…….”

그 순간 이현이 고통스럽게 얼굴을 찌푸렸다.

서하는 급히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전하, 무리하지 마세요.”

“조금만…….”

“지금은 멈추셔야 합니다.”

“기억날 것 같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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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폐세자의 목욕 시중을 들게 되었습니다   목욕 시중은 계약에 없었는데요

    연서하는 자신이 작성한 계약서를 세 번째 읽고 있었다.정확히는 계약서에 적혀 있지 않은 일을 시키려는 남자를 앞에 두고, 어디까지 참아야 할지 고민하는 중이었다.“전하.”“말해라.”“제가 이곳에 들어온 이유를 기억하십니까?”“내 병을 고치기 위해서겠지.”“정확히는 약탕의 제조와 관리, 독성 여부 확인, 그리고 전하의 건강 상태를 살피기 위해서입니다.”“그래서?”서하는 계약서의 세 번째 항목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청운별궁의 안채는 아침부터 분주했다. 밤새 폐세자의 열이 다시 올랐다는 소식에 내관들이 약재를 나르고 있었고, 바깥에서는 병사들이 교대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와중에도 침상에 비스듬히 기대앉은 이현은 세상에서 가장 한가로운 사람처럼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목욕 시중에 관한 내용은 어디에도 없습니다.”“그렇군.”“그렇군이 아니라요.”“그럼 추가하면 되겠네.”서하는 잠시 말을 잃었다.“계약서를 무슨 장부처럼 생각하십니까? 필요할 때마다 항목을 추가하게요?”“약방에서는 손님이 약재를 더 주문하면 장부에 추가하지 않나?”“그것과 이게 같습니까?”“다른가?”이현은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서하는 그 얼굴을 보며 자신이 왜 이 남자의 병을 고치겠다고 나섰는지 잠시 후회했다. 물론 이유는 있었다. 적지 않은 치료비, 아버지가 남긴 약서의 비밀, 그리고 삼 년 전 황궁에서 벌어진 사건. 무엇보다 이현의 등에 나타난 붉은 꽃잎이 문제였다.그 흔적은 단순한 피부병으로 보기 어려웠다. 어제까지만 해도 세 갈래로 흩어져 있던 붉은 선이 하룻밤 사이 하나의 꽃잎을 이루었다. 게다가 향로에 남아 있던 붉은 알갱이를 보자 이현은 삼 년 전의 기억 일부를 떠올렸다.그것이 우연인지, 특정한 자극에 의한 반응인지 확인해야 했다.문제는 그 확인을 위해 이현의 몸을 다시 살펴야 한다는 것이었다.“제가 약탕을 준비하겠습니다. 전하께서는 평소처럼 목욕하시면 됩니다.”“평소처럼?”“예.”“나는 평소 혼자 목욕하지 않는다.”서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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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폐세자의 목욕 시중을 들게 되었습니다   프롤로그. 욕실에서 폐세자를 주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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