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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세자의 목욕 시중을 들게 되었습니다
폐세자의 목욕 시중을 들게 되었습니다
Author: 유월

프롤로그. 욕실에서 폐세자를 주웠습니다

Author: 유월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09 07:30:36

연서하는 남자의 옷을 벗길 생각이 없었다.

적어도 청운별궁의 욕실 문을 열기 전까지는.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문틈으로 뜨거운 수증기가 한꺼번에 밀려 나왔다. 습기를 잔뜩 머금은 공기에는 여러 약재의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당귀와 천궁, 말린 생강, 그리고 오래 끓인 황기 특유의 구수한 향까지. 평생 약재를 만지며 살아온 서하에게는 눈을 감고도 구별할 수 있을 만큼 익숙한 냄새들이었다.

그런데 그 사이에 낯선 향이 하나 섞여 있었다.

달았다.

꽃향이라고 하기에는 무겁고, 약향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부드러웠다. 처음에는 꿀을 태우는 듯한 단내가 났지만, 숨을 조금 더 들이마시자 코끝에 서늘한 기운이 남았다.

서하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이상한데.’

청운별궁에서 주문한 약재 가운데 저런 향을 내는 것은 없었다. 더욱 이상한 것은 향을 맡은 직후 혀끝이 아주 희미하게 저릿해졌다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곧장 소매로 코와 입을 가렸다.

약재를 다루는 사람에게 낯선 냄새란 두 가지 의미였다. 새로운 돈벌이가 될 물건이거나, 잘못 건드리면 목숨을 잃을 물건이거나.

그리고 지금 이 냄새는 아무래도 후자에 가까웠다.

“전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서하는 욕실 안쪽을 살피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애초에 그녀가 여기까지 들어올 이유는 없었다.

오늘 해야 할 일은 약재를 배달하고 돈을 받는 것뿐이었다. 황족의 사생활을 엿볼 생각도 없었고, 청운별궁에 무슨 비밀이 숨어 있는지 알아낼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도성 변두리에 자리한 연화약방으로 청운별궁의 주문서가 들어온 것은 사흘 전이었다.

당귀 두 근, 황기 한 근, 백출과 천궁 각 반 근, 그리고 최상품의 인삼 세 뿌리.

흔히 몸을 보하는 데 사용하는 약재들이었다. 다만 주문한 수량과 품질이 지나치게 까다로웠다. 특히 인삼은 뿌리 하나에 은자 몇 냥이 오가는 최상품만을 요구했다.

서하는 주문서를 세 번 읽고 나서야 고개를 들었다.

‘직접 가져오셔야 합니다.’

주문서를 전달한 늙은 내관이 그렇게 말했다.

‘제가요?’

‘그렇습니다.’

‘배달비는요?’

내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청운별궁의 주문입니다.’

‘그러니까요. 청운별궁까지 가려면 왕복으로 하루가 걸리는데, 그동안 약방 문을 닫아야 하잖아요.’

‘황족의 명을 받드는 일입니다.’

‘황족께서는 약재값만 내고 배달비는 안 주신답니까?’

내관은 한동안 서하를 바라보았다. 아마 황족의 주문을 받고도 배달비부터 따지는 약재상은 처음이었던 모양이었다.

결국 서하는 평소 배달비의 세 배를 받아냈다.

그때까지만 해도 꽤 괜찮은 장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청운별궁에 도착한 순간부터 그 생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별궁은 도성에서 반나절 떨어진 산기슭에 자리하고 있었다. 한때 황실의 피서궁으로 사용되었다는 건물은 규모만큼은 대단했다. 높다란 담장과 붉은 기둥, 처마 끝마다 매달린 풍경까지 어느 것 하나 평범하지 않았다.

문제는 그 화려함을 돌보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뜰에는 낙엽이 수북했고, 연못은 물이 절반쯤 말라 있었다. 오래된 회랑에는 먼지가 쌓였으며, 곳곳에 걸린 비단 장막은 빛이 바래 있었다.

무엇보다 사람이 없었다.

정문을 지키는 병사 둘과 늙은 내관 하나.

그것이 서하가 본 사람의 전부였다.

‘약재는 안쪽 행랑에 내려놓으시오.’

‘대금은요?’

‘잠시 기다리시오.’

그렇게 말한 내관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서하는 행랑 앞에서 한참을 기다렸다. 해가 기울기 시작할 때까지 아무도 돌아오지 않자 슬슬 화가 났다.

“돈을 주기 싫으면 처음부터 말을 하지 말든가.”

그녀는 약재 꾸러미 옆에 쪼그리고 앉아 장부를 펼쳤다.

청운별궁에서 주문한 물건의 값은 적지 않았다. 이대로 돌아가면 약방의 한 달 살림이 흔들릴 수도 있었다.

그래서 기다렸다.

그리고 기다린 것을 후회하게 되었다.

쨍그랑!

안쪽 건물에서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서하는 고개를 들었다.

“……뭐야?”

잠시 귀를 기울였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누군가 그릇을 떨어뜨렸겠거니 생각하고 다시 장부를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소리가 났다.

쿵!

이번에는 묵직했다.

사람이 바닥에 쓰러질 때 나는 소리와 비슷했다.

서하는 천천히 장부를 덮었다.

‘못 들은 척하자.’

남의 집안일에 끼어들었다가 좋은 꼴을 본 적이 없었다. 하물며 이곳은 황족이 머무는 별궁이었다.

그녀는 약재 꾸러미를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안쪽에서 낮은 신음이 들렸다.

“……윽.”

서하의 발이 멈췄다.

분명 사람 목소리였다.

그녀는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버지.”

돌아가신 아버지가 들었다면 분명 또 한소리했을 것이다.

사람 목숨이 달린 일 앞에서 계산기부터 두드리지 말라고.

“정말이지, 돌아가시고도 사람을 귀찮게 하시네요.”

결국 서하는 소리가 난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욕실 문을 열었다.

⸻

욕탕 옆 바닥에 남자가 쓰러져 있었다.

젖은 검은 머리카락이 얼굴 절반을 덮고 있었고, 얇은 속옷은 물을 잔뜩 머금은 채 몸에 달라붙어 있었다. 한쪽 팔은 욕탕 안으로 축 늘어져 있었으며, 바닥에는 깨진 백자 잔의 조각들이 흩어져 있었다.

서하는 문 앞에서 굳었다.

청운별궁에 머무는 황족은 한 명뿐이었다.

삼 년 전 황제를 시해하려 했다는 죄로 폐위된 전 황태자.

이현.

세상 사람들이 그를 부르는 이름은 따로 있었다.

폐세자.

“……설마.”

서하는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전하?”

대답이 없었다.

“저기요. 들리십니까?”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서하는 남자의 어깨를 손끝으로 건드렸다.

“죽으셨습니까?”

말하고 나서야 질문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죽은 사람이 대답할 리 없지 않은가.

그녀는 재빨리 무릎을 꿇었다.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목에 손가락을 대자 맥박이 느껴졌다.

살아 있었다.

다만 맥이 지나치게 빨랐다. 손등으로 이마를 짚자 뜨거운 열기가 전해졌고, 손끝은 그와 반대로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서하는 그의 손목을 잡고 맥을 다시 확인했다.

빠르다.

그러다 갑자기 느려진다.

맥이 고르게 이어지지 못하고 중간중간 끊기는 듯했다.

‘단순한 열병은 아닌데.’

열이 심하면 맥이 빨라질 수는 있다. 그러나 이 정도로 손발의 온도가 다르고 맥의 흐름까지 불규칙한 것은 이상했다.

더구나 남자의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서하는 그의 눈꺼풀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동공의 반응도 느렸다.

‘약물 때문인가?’

그녀의 시선이 욕탕으로 향했다.

갈색 물 위에 잘게 썬 약초들이 떠 있었다. 대부분은 익숙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수증기 사이로 올라오는 달콤한 향은 여전히 낯설었다.

서하는 욕탕 가장자리에서 물을 조금 떠 작은 백자 잔에 담았다.

물의 색은 생각보다 탁했다.

당귀와 황기를 오래 끓였다고 해도 이렇게 붉은 기운이 돌지는 않는다.

그녀는 잔을 내려놓고 깨진 그릇을 살폈다.

그릇 안쪽에 옅은 붉은 막이 남아 있었다.

‘이건 또 뭐야.’

서하는 손끝으로 만지려다가 멈췄다.

아버지는 모르는 약재를 확인할 때 절대로 함부로 맛보지 말라고 가르쳤다. 독인지 약인지 모르는 물건을 혀로 확인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했다.

그녀는 깨끗한 천으로 잔을 감싸 따로 밀어두었다.

우선 사람부터 살려야 했다.

서하는 남자의 몸을 욕탕에서 조금 더 떨어진 마른 자리로 옮겼다. 무거운 몸을 혼자 움직이느라 이마에 땀이 맺혔지만, 다행히 남자의 호흡은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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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서하는 결국 그날 밤 청운별궁의 침전에 머물기로 했다.물론 이현과 같은 침상에서 자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녀는 침상에서 세 걸음쯤 떨어진 곳에 작은 탁자를 옮겨 놓고, 그 옆에 두툼한 방석과 얇은 이불을 준비했다. 밤새 환자의 상태를 살피기 위한 자리였다.문제는 이현이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도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전하.”“말해라.”“그렇게 보고만 계시지 마시고 누우십시오.”“네가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서.”“보시면 모르시겠습니까?”“내 침전에 살림을 차리는 줄 알았다.”서하가 이불을 내려놓았다.“전하.”“왜.”“자꾸 그러시면 저는 나가겠습니다.”“알겠다.”이현은 순순히 침상에 누웠다.그러나 입가에는 여전히 웃음이 남아 있었다.서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남자는 분명 삼 년 동안 별궁에 갇혀 지냈다. 사람을 만나는 일도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대체 어디에서 이런 능청스러운 말투를 익혔는지 알 수 없었다.그녀는 작은 등불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오늘 밤에는 향을 피우지 않겠습니다.”“이미 알고 있다.”“대신 제가 한 시진마다 맥을 확인할 겁니다. 잠을 깨우더라도 놀라지 마십시오.”“네가 깨우는 것이라면 괜찮다.”“그런 말은 필요 없습니다.”“그럼 무슨 말을 해야 하지?”“그냥 주무시면 됩니다.”이현은 눈을 감았다.서하는 그제야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침전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바깥에서는 가을바람이 처마 끝을 스치고 있었고, 멀리서 야경꾼의 발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침상 곁에 놓인 작은 등불이 흔들릴 때마다 벽에는 두 사람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서하는 품에서 아버지의 약서를 꺼냈다.낡은 종이에는 오랜 세월 손때가 묻어 있었다. 몇몇 장은 가장자리가 닳아 글자를 읽기 어려웠고, 중간에는 물에 젖었다가 마른 흔적도 남아 있었다.그녀는 붉은 꽃잎에 관한 기록을 다시 펼쳤다.꽃이 완전히 피기 전에 막아야 한다.그 아래에는 먹으로 지워진 문장이 있었다.서하는 등불을 가까이 가져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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