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새벽에 단비를 데리러 왔다.
병사는 손목에 걸 쇠고리를 숨기지 않았다. 폐후의 시녀도 석류청에 손댔을 가능성이 있으니 따로 묻겠다는 말이었다. 서련은 밤새 작성한 궁인 명단 위에 벼루를 올려놓았다.
“누구의 명이냐.”
“심문을 맡은 내관의 명입니다.”
“황제의 집행 유예는 보았느냐.”
“유예는 폐후께만 해당합니다.”
맞는 말이었다. 서련은 그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대신 문가에 밤새 머무른 명선의 시종을 불렀다.
“이 아이는 어제 독배와 청원을 함께 본 증인입니다. 지금 데려가는 시각, 데려가는 자의 이름, 심문 장소를 적어 주십시오.”
병사의 손이 멈췄다.
“저희는 명을 받았을 뿐입니다.”
“그래서 네 이름을 남기라는 것이다. 명을 내린 사람까지 적으면 네가 혼자 책임질 일이 없어지지.”
병사는 마침내 쇠고리를 내려놓았다. 명을 다시 확인하겠다는 말과 함께 물러났다. 단비는 문이 닫힌 다음에야 숨을 쉬었다.
“저 때문에 시간을 버리시면 안 됩니다.”
“너를 잃는 것이 시간을 버리는 일이다.”
서련은 단비에게 빈 종이를 내밀었다.
“석류청을 만든 날, 네가 직접 본 것만 적어라. 남에게 들은 말은 따로 표시하고.”
단비는 자신이 마지막으로 항아리를 본 때와 봉인을 묶은 궁녀의 위치를 적었다. 글씨는 삐뚤었지만 지워 쓴 곳이 없었다. 다 쓰고 나서 한참 종이 모서리를 만졌다.
“마마께 유리하게 쓰지 않아도 됩니까?”
서련의 가슴이 내려앉았다. 그녀를 지키려는 충성이 거짓말을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을 처음 제대로 했다.
“내가 하지 않은 일을 네가 했다고 해도 안 되고, 내가 한 일을 없애도 안 된다.”
단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침 햇살이 창살을 넘어올 무렵 명선이 방문했다. 공주는 어젯밤보다 차가운 얼굴이었다. 청원에 서명한 종친 둘이 황제를 거스르고 싶지 않다며 발을 뺐다고 했다.
“사흘 안에 말뿐인 억울함보다 나은 것을 내놓아야 한다.”
“중궁 주방을 봉쇄해 주십시오.”
“증거를 없애겠다는 뜻으로 들릴 수 있다.”
“그래서 제 손이 아닌 전하의 사람에게 부탁드립니다. 석류청은 같은 솥에서 작은 항아리 셋으로 나누었습니다. 귀비에게 보낸 것은 하나뿐입니다.”
명선의 눈길이 단비의 진술서에 닿았다.
“나머지는?”
“하나는 제 상에 올랐고, 하나는 창고에 남았습니다. 어제 궁인들을 끌고 간 뒤 누구도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공주는 그 자리에서 시종을 보냈다. 서련은 함께 가게 해 달라는 말을 삼켰다. 자신이 가면 무엇이 나오든 폐후가 손을 댔다고 할 것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무릎을 꿇은 이가 하나 들어왔다. 중궁에서 청을 끓이던 나이 든 궁녀였다. 뺨이 부었고 한쪽 신을 잃었다. 명선의 시종이 주방으로 가는 길, 뒷문에서 다른 곳으로 넘겨지던 여자를 붙들어 데려왔다고 했다.
궁녀는 서련을 보자 바닥에 엎드렸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손도장을 찍으라 해서, 살려 준다 하여…….”
서련은 달려가려는 단비를 붙잡았다. 궁녀 앞에 놓인 낮은 의자를 밀었다.
“먼저 앉아라.”
“감히 어찌.”
“서서 말하면 넘어지겠다.”
궁녀는 의자 끝에 겨우 걸터앉았다. 물을 두 번 흘린 끝에 삼켰다. 서련은 손도장을 찍었다는 종이의 내용을 물었다. 궁녀는 읽을 줄 몰랐다. 관리가 황후의 명으로 쓴 약을 받았느냐고 물었고, 아니라 하면 단비까지 잡아오겠다고 했다고 했다.
단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저는 마마를 팔지 않았습니다.”
궁녀가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서련은 그 말이 누군가의 용서를 구하는 소리가 아니라, 제 몸을 다시 때리지 말라는 애원임을 알았다.
“네가 무엇을 말했는지부터 다시 들을 것이다. 지금은 밥을 먹어라.”
명선이 서련을 바라보았다. 서련은 공주에게 요청했다. 심문받은 궁인들은 다시 분리 수용하더라도 먹을 것과 치료를 주고, 공주의 시종이 소재를 확인하게 해 달라고.
“그것까지 내가 맡아야 하느냐.”
“전하께서는 어제 제 청원에 손을 대셨습니다. 오늘 증인이 죽으면 그 먹 자국도 함께 지워집니다.”
명선의 입술이 굳었다. 그러나 거절하지 않았다.
오후에 주방에서 항아리 두 개를 가져왔다. 한 개는 거의 비었고 다른 하나는 봉인이 온전했다. 그 뒤로 의녀가 약상자를 들고 들어왔다.
“정온입니다. 공주 전하의 명을 받아 살펴보겠습니다.”
정온은 서련에게 절한 뒤 곧바로 궁녀의 부은 손부터 보았다. 상처에 붙은 천을 적셔 천천히 떼는 동안, 궁녀가 처음으로 울음을 터뜨렸다. 서련은 그 소리를 피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 단비의 연행을 보류한다는 명이 왔다. 다른 궁인들도 명선이 지정한 방으로 옮겨졌다. 사형이 취소된 것은 아니었고 동생의 생사도 몰랐다.
그래도 열린 문이 하나 있었다.
단비는 밥상을 나르다 말고 웃었다. 웃으면서 또 울었다. 서련은 숟가락을 쥔 아이의 손을 잠시 덮었다.
정온이 항아리 곁에서 일어났다.
“이 청에 관해서는 더 살펴야 합니다. 다만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그녀는 약재 주문서의 사본을 펼쳤다.
“귀비마마께 쓰였다는 약과, 여기 적힌 약이 다릅니다. 누군가 두 일을 하나로 묶었습니다.”
서련은 붉은 인장을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이름으로 찍힌 도장이, 그녀가 모르는 일을 명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긴 것보다 받을 것을 믿지 못했다.다음 날 아침 침방의 작업자들은 순서표대로 앉았다. 앉기는 했다. 그러나 해가 지면 손을 놓으라는 말을 아무도 믿지 않았다. 손을 놓은 다음에 무엇이 오는지 그들은 알았다. 밀린 일과, 밀린 일에 대한 책망과, 책망 뒤에 사라지는 수당.젊은 작업자 하나가 채운에게 속삭였다.“정말 해 지면 가도 돼?”“가 봐. 뭐가 오는지.”“뭐가 와?”“아침이.”“종이를 보여 드리지요.”단비가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냈다. 수선방의 지급표였다. 이름, 한 일, 값. 한 장에 한 사람. 옥분의 것은 귀퉁이가 닳아 있었다.“이건 우리 객사 겁니다. 옥분 아주머니가 처음 받으신 날 우셨어요. 글을 못 읽으시는데도요.”나이 든 작업자가 종이를 받아 들었다. 뒤집어 보고, 불빛에 비춰 보았다.“도장이 있네.”“서련 님 도장이요. 받은 사람 손도장도요. 두 개가 있어야 지급이에요.”“이게 침방에서도 된다고?”“됩니다. 제례 준비 비용 안에서, 이번 달 것부터요.”서련이 말했다. 방 안이 조용했다.“다 드리지는 못합니다. 지금 제 손에 있는 만큼만. 어젯밤 일한 사람 셋, 오늘 저녁부터 사흘. 그 뒤는 공주께 청해서 받습니다.”“못 받으면요?”“그러면 제가 여러분 앞에서 못 받았다고 말합니다. 이름을 걸고 한 약속은 그렇게 끝내야 합니다.”지급은 그날 저녁에 이루어졌다. 종이 세 장. 은자는 얼마 되지 않았다. 서련이 첫 장을 내밀며 물었다.“이름을 읽어 드릴까요?”“내가 읽소. 내 이름은 읽을 줄 아오.”나이 든 작업자는 종이를 받고 한참 서 있다가 소매 안에 넣었다. 접지 않았다.해가 지자 젊은 작업자가 바늘을 놓고 문 앞까지 갔다. 거기서 돌아보았다. 채운이 손을 저었다.“가.”“정말?”“내일 아침에 뭐가 왔는지 말해 줘.”젊은 작업자가 나갔다. 다음 날 아침,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제자리에 앉았다. 밀린 일도, 책망도 없었다. 그것이 대답이었다.이틀 뒤 태후전에서 전갈이 왔다. 종이 한
시연은 새벽에 시작됐다.침방 큰 방에 탁자 두 개가 마주 놓였다. 같은 자줏빛 옷감, 같은 본, 같은 실. 다른 것은 사람뿐이었다. 왼쪽에 채운과 보늬, 그리고 소례. 오른쪽에 민유정과, 태후전에서 빌려 왔다는 작업자 둘. 그들의 손은 빨랐고 채운은 그것을 알았다.민유정이 탁자 너머로 말을 건넸다.“짐은 싸 두었느냐.”“짐은 늘 싸 둡니다.”채운이 답했다. 실을 고르는 손이 멈추지 않았다.예관 하나가 입회했고, 명선이 뒤늦게 들어와 벽에 기댔다.“새벽에 사람을 부르는 재주는 그대뿐이군.”“공주께서 오신다 하셨습니다.”“왔지. 잠은 못 잤고.”민서경은 문 옆에 섰다. 시작을 알리는 말은 없었다. 민유정이 먼저 가위를 들었고, 그것으로 시작이었다.오른쪽은 빨랐다. 재단이 끝나기도 전에 한 사람이 안감을 잡았고, 다른 사람이 옆솔기를 시작했다. 세 사람이 동시에 움직였다. 천이 세 방향으로 당겨졌다.왼쪽은 느렸다. 채운이 재단을 마칠 때까지 보늬와 소례는 손을 놓고 있었다. 단비가 서련의 소매를 잡았다.“왜 안 하고 있어요?”“순서가 아니니까.”명선이 벽에서 한마디 했다.“왼쪽은 아직도 가위질인가.”“왼쪽은 옷을 짓고 있습니다. 오른쪽은 시간을 짓고 있고요.”“그 말, 지면 내가 돌려주겠네.”채운이 재단을 마치고 겉감을 보늬에게, 안감을 소례에게 넘겼다. 그제야 세 사람이 움직였다. 그러나 천은 한 방향으로만 당겨졌다.해가 창에 닿았다. 오른쪽에서 웃음소리가 났다. 민유정의 옷이 먼저 형태를 갖췄다. 소매가 달렸고 옷깃이 섰다.“반나절이면 되겠습니다, 고모님.”민서경은 대답하지 않았다.단비가 손톱을 물었다. 서련이 그 손을 잡아 내렸다.“왜 그렇게 태연하세요?”“태연한 게 아니야.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어.”“그게 태연한 거 아니에요?”“그게 제일 힘든 거야.”왼쪽에서는 채운이 옆솔기를 잡았다. 그녀의 손이 어제보다 느렸다. 서련은 그것이 잠을 잔 손이라는 것을 알았다. 느린 것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것이었다.
민유정은 바늘을 잡아 본 지 삼 년이 넘었다고 채운이 말했다.“책임자가 되고부터입니다. 장부를 잡으면 바늘은 놓는 법이라고요.”“누가 그러던가요?”“책임자가요.”사무방 창틀에서 단비의 종이꽃이 바람에 흔들렸다. 채운은 내보내겠다는 말을 듣고도 침방에 돌아가 낮일을 마쳤다. 내보낸다는 말과 내보냈다는 말은 다르니까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서련은 그 말을 오래 기억해 두기로 했다.민서경은 해 질 무렵에 왔다. 태후전에서 바로 온 옷차림 그대로였다.“조카가 소란을 겪었다더군요.”“채운이 소란을 겪었습니다. 조카분은 명을 내리셨고요.”“같은 말이오.”“매를 맞는 쪽에서는 다릅니다.”민서경은 앉지 않았다. 앉으면 이야기가 길어진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었다.“서련 님. 침방의 인사는 내 소관이오. 공주께서 맡기신 건 제례 준비지 침방 살림이 아니지 않소.”“그렇습니다. 그래서 인사를 말하지 않겠습니다. 순서를 말하지요.”서련은 종이를 한 장 밀었다. 이름은 없었다. 날짜와 작업 단계만 있었다. 재단, 안감, 옆솔기, 소맷단, 마무리.“제례복 여덟 벌이 이 순서로 지어졌습니다. 옆솔기가 누구 손에 있었는지는 침방 장부에 있겠지요. 저는 그 장부를 보자고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찢어진 옷이 보늬 손에 간 것이 소맷단 차례였다는 것은 장부에도 그렇게 적혀 있을 겁니다.”“그래서.”“혈연은 제가 따질 일이 아닙니다. 순서는 따질 수 있습니다.”민서경의 입가가 움직였다. 웃음은 아니었다.“말씀은 잘하시오. 그런데 서련 님, 말로 옷이 지어지오?”“아니지요.”“그럼 지어 보이시오.”민서경이 조건을 내놓았다. 내일 새벽부터 하루. 같은 옷감, 같은 본. 채운이 한 벌, 민유정이 고른 사람들이 한 벌. 예관이 입회하고 명선공주가 원한다면 보아도 좋다. 채운의 옷이 낫다면 보늬의 매는 없던 일로 하고 채운도 침방에 남는다.“조카분은 사람을 빌려도 됩니까?”“태후전에서 둘 빌리겠소.”“빌리십시오. 이름을 적으시고요.”“채운의 옷이 못하면.”
옷을 뒤집으면 만든 사람이 보인다.서련은 여섯 해 동안 중궁에 앉아 그것을 배웠다. 겉은 입는 사람의 것이고 안은 지은 사람의 것이라는 것을. 소매 끝을 다 보기도 전에 태후전 내관이 민서경을 불러 갔다. 연회 옷감 일이라 했다. 민서경은 문턱에서 한 번 더 말했다. 겉만이오. 남은 것은 옷걸이의 자줏빛 제례복과, 지켜보라고 남겨진 침방 궁인 하나와, 문틀에 기댄 채운이었다.“이 옷은 누구 이름으로 되어 있습니까?”침방 궁인이 장부를 넘기지도 않고 답했다.“보늬입니다.”“그럼 보늬에게 묻지요.”서련은 구석에 서 있던 아이를 불렀다. 열여섯. 어제 사무방에서 손가락을 내밀던 아이는 오늘 두 손을 소매 속에 감추고 있었다.“보늬 이름으로 된 옷입니다. 뒤집어 봐도 되겠습니까?”보늬가 침방 궁인을 보았다. 궁인은 눈을 피했다.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민서경은 침방의 일이라 했지만, 옷에는 보늬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상궁께서 겉만 보라 하셨는데요.”침방 궁인이 말했다.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상궁께서는 제게 하신 말씀이지요. 저는 옷 임자에게 물었습니다.”채운이 옷걸이에서 옷을 내려 탁자에 놓고 뒤집었다. 단비가 등불을 안감 쪽으로 옮겼다. 안감이 드러났다. 왼쪽 옆솔기, 찢어진 자리는 손바닥 길이였다. 그 위로 급하게 꿰맨 땀이 굵은 실로 지나가 있었다. 한 땀이 보리알만 했다.“이게 찢어진 이유입니다.”채운이 손가락으로 땀을 짚었다.“땀이 크면 실 하나가 버티는 폭이 넓어집니다. 그 상태로 당기면 여기부터 갑니다. 제례복은 절을 할 때 옆이 당겨집니다.”“보늬가 꿰맨 건가요?”“아닙니다.”채운은 대답을 망설이지 않았다. 서련이 아이를 돌아보았다.“보늬가 한 곳은 어디입니까?”보늬가 소맷단을 가리켰다. 소맷단의 땀은 촘촘했다. 조금 비스듬하게, 그러나 간격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아이의 손은 아직 어렸지만 손의 버릇은 이미 생겨 있었다.“찢어진 뒤에 누가 손을 댔습니까?”침방 궁인이 입을 다물었다. 채운
보늬의 손가락에는 바늘 자국보다 매 자국이 먼저 있었다.손등에 가는 줄 셋. 오래된 것과 새것. 바늘 자국은 그 아래에 있었다. 서련은 아이의 손을 잡아 뒤집어 보았다. 손바닥에 굳은살이 없었다. 바늘을 잡은 지 얼마 안 된 손이었다.“매는 왜 맞았습니까.”“실을 늦게 꿰어서요. 그리고 한 번은… 이유를 못 들었습니다.”“바늘 자국은요.”“밤에 연습하다가요. 낮에는 찔리면 안 됩니다. 피가 옷감에 묻으면 그것도 맞습니다.”단비가 헝겊을 가져와 아이의 손가락을 하나씩 쌌다. 아이는 손을 빼지 않았다. 남이 제 손을 싸 주는 것을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제례복은 어떻게 찢어졌습니까.”“모릅니다. 제가 마지막에 갰습니다. 갤 때는 멀쩡했습니다. 아침에 펴니까 안감이…”보늬가 말을 멈췄다. 단비가 물을 가져다주었다. 아이는 물을 받아 들고 마시지 않았다.“누가 보늬 이름을 말했습니까.”“민유정 마마님이요. 마지막에 만진 사람이 책임진다고요. 그게 침방 법이랍니다.”“내일 매를 맞는 것도 그분이 정하셨고요.”“…예.”서련은 붓을 놓았다. 아이의 눈이 그 붓을 따라갔다.“보늬. 저는 매를 멈추게 할 수 없습니다.”아이의 얼굴에서 무언가 빠져나갔다.“침방은 공주마마의 관할이 아닙니다. 제가 여기서 무슨 종이를 써도 침방 문은 안 열립니다.”“그럼… 왜 오라고…”“누가 오라고 했습니까.”“채운 언니가요. 여기 가면 적어도 듣기는 한다고요.”서련은 그 말을 오래 두었다.“들었습니다. 그리고 매를 멈추는 것과 매를 맞을 이유를 보는 것은 다릅니다. 이유는 볼 수 있습니다.”“어떻게요?”“찢어진 것이 제례복이니까요.”보늬가 문턱에서 돌아섰다.“헝겊은 풀지 마세요. 내일 아침에 옷을 보러 갈 겁니다. 보늬가 아니라 옷을요.”“…옷을요.”“옷은 거짓말을 못 합니다.”명선은 저녁상 앞에 있었다.“종친 제례복이 찢어졌다? 처음 듣소.”“종친 쪽 제례 준비를 공주마마께서 살피신다 들었습니다.”“살피지. 옷이 다 되면 보러 가겠다고
명선이 내민 것은 방 열쇠였다.작은 쇠 열쇠였고 끈이 새것이었다. 서련은 받지 않았다.“먼저 무슨 방인지 듣겠습니다.”“객사 손님이 열쇠도 그냥은 안 받는군.”명선이 열쇠를 탁자에 놓았다. 아침 햇살이 마루에 길게 들어와 있었다. 그 뒤에 시종이 종이 뭉치를 안고 서 있었다.“석 달이오. 내 관할의 고충을 받으시오. 객사 사람, 장원 사람, 내 이름으로 움직이는 사람들. 접수하고, 정리하고, 내게 올리시오. 처분은 내가 하오.”“고충이 무엇까지입니까.”“급료, 물품, 사람 배치. 그대가 지난 넉 달 동안 한 일이 다 그것 아니오?”“그것을 이름 없이 했지요. 이름을 붙이면 청구서가 따라옵니다.”“그래서?”“범위를 먼저 적겠습니다.”서련이 시종에게서 붓을 받았다. 명선은 말리지 않았다. 서련이 적는 동안 마루는 조용했다.접수하는 것과 접수하지 않는 것. 체포와 형벌은 관아. 궁 안 처소의 일은 그 처소 상궁. 공주의 관할이 아닌 것은 돌려보낸다. 보수는 석 달치를 미리 정한다. 종이와 등불과 심부름 값은 따로. 그리고 마지막 줄.“언제든 그만둘 수 있다. 공주께서도 언제든 거둘 수 있다.”명선이 종이를 당겨 읽었다. 눈이 한 줄에서 멈췄다.“궁 안 처소 일은 안 받겠다?”“공주마마의 관할이 아닙니다.”“내가 받으라 하면?”“그때는 공주마마께서 그 처소 상궁과 먼저 다투셔야 합니다. 저는 그 뒤에 갑니다.”명선이 시종을 보았다. 시종이 고개를 끄덕였다.“보수는 얼마를 적었소.”“객사 방값과 같게 적었습니다. 그 이상이면 제가 공주마마께 빚지고, 그 이하면 공주마마께서 제게 빚지십니다.”“방값을 방값으로 갚는군.”“빚이 안 남는 값이 그것뿐이라서요.”“권한을 더 달라 하지 않소? 그대라면 궁 전체 고충을 받겠다고 할 줄 알았는데.”“권한은 청구서와 함께 옵니다. 지금은 받을 만큼만.”“받을 만큼이 왜 이만큼이오.”“그 권한을 받으면 그 권한이 저를 씁니다.”“석 달 뒤에는.”“석 달 뒤에 다시 적습니다. 그때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