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 관리들의 갑작스러운 움직임은 곧바로 운산파에도 전해졌다.운산파 정당 안.장문과 장로들이 심각한 얼굴로 회의를 하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어두웠다.한 장로가 낮고 굵은 목소리로 장문에게 말했다. “장문, 서둘러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아무래도 황제가 강주에 온 것 같습니다.”다른 장로도 급히 덧붙였다. “저도 똑같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황제의 장인이 최근 유독 부산을 떨고 있으니, 분명 황제가 강주에 머무는 것이 확실합니다.”운산파 장문은 수염이 희끗희끗한 육십 대 노인이었다. 그의 눈빛에는 차가운 기운이 서렸다.“죽산진 쪽 상황은 어떤가?”곧 누군가가 답했다. “아직 소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암살이 실패한 듯합니다.”장문이 싸늘하게 웃었다.“뻔하지 않느냐? 틀림없이 실패했겠지. 게다가 우리 내부에 배신자가 있는 것도 분명하다.” “아니면 그 황제 놈이 어찌 강주까지 직접 찾아왔겠느냐? 이건 분명히 우리 운산파를 겨냥한 거다!”모두가 근심스러운 눈길로 장문을 바라봤다. 장문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잠시 고민하더니 천천히 지시했다. “제자 몇 명을 내려보내서 황제가 정말 강주에 왔는지 확실히 알아보도록 하고, 다른 이들을 시켜 뒷산의 물건들을 서둘러 처리해라. 나머지 제자들은 움직이지 말고 이틀 뒤 있을 비무대회 준비에만 집중하도록 하여라.”장로들이 즉시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장문.”……전진파.차선아는 명상을 하려 했으나, 마음이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눈을 뜨고 앞을 응시했다. 숨소리가 약간 거칠었다.어둠이 내린 후, 봉구안이 우물가에서 물을 긷고 있을 때 여제자 몇 명이 그녀를 에워쌌다. 새로 들어온 사매가 궁금했던 것이다.“요즘 같은 때 전진파에 들어오다니 신기하네!” “사매는 어디서 오셨습니까? 왜 가면을 쓰고 있는 거죠? 같이 온 다른 사매는 하루 종일 안 보이던데… 어디에 계십니까?” “부장문님이랑 무슨 관계십니까? 어떻게 시험도 없이 바로 입문할 수 있었던 거죠?”쉴 새 없이 쏟
봉구안은 이미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가면 아래의 얼굴에도 약간의 변장을 더해 두었다.가면을 벗은 후에도 그녀는 당당했고, 눈빛은 흔들림 없이 단호했다.“지금 뭐 하는 짓이야!”전진파의 한 여제자가 부끄러움과 분노를 참지 못하고 소리치며 자기 몸에 함부로 손을 대던 운산파 제자를 밀쳐냈다.그러나 상대는 오히려 당당했다.“그건 내가 할 말이지! 당당하지 못하니까 제대로 검사를 못 받는 거 아냐?”“내가 뭐가 당당하지 못하단 거야? 분명히 네가 검사하는 척하면서 날 함부로 만졌잖아…!” 전진파의 여제자는 참을 수 없는 듯 항의했다.그러자 주변의 다른 운산파 제자들이 즉시 그녀에게 반박했다.“헛소리 마라! 우린 정당하게 신분 확인을 했을 뿐이야. 네가 마음에 찔리는 게 있으니 괜히 그러는 거겠지!”주변에 있던 다른 문파 사람들도 슬슬 모여들어 그녀들을 보며 수군거렸다.“전진파 여자들은 하나같이 고고한 척 하더니 결국은 남자들 관심 받고 싶은 거 아니야?”“그러게 말이야. 그냥 신분 검사하는 건데 왜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지 몰라. 자기들이 그렇게 매력적인 줄 아나 봐!”“강호에 남녀가 따로 있나? 자기들이 속이 더러우니까 남들도 그런 줄 아는 거지. 남자 손 타기 싫으면 무림대회엔 뭐하러 나오나 몰라.”“그래 맞아, 무술 대결하면 당연히 신체 접촉은 불가피한데, 이런 여자들이랑은 싸우기도 싫다니까. 잘못하면 책임지라고 할지도 몰라, 하하!”운산파 제자들은 점점 더 우쭐해졌다.“잘 들었지? 신분 검사받기 싫으면 애초에 무림대회에 나오지 말고 절에나 들어가! 거기엔 남자 없으니까 말이야!”전진파 제자들은 분노와 수치심으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성미 급한 방민이 참지 못하고 나서려 하자, 차선아가 손을 내밀어 그녀를 제지했다. 일이 커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하지만 그 순간, 그녀 옆에서 그림자 하나가 빠르게 튀어나가 좀 전의 운산파 제자를 단숨에 발로 차버렸다.차선아는 보지 않아도 그 사람이 봉구안임을 알 수 있었다. 늘 평온
비무대회가 시작되기 전, 운산파의 부장문이 무대 위로 올라섰다.“오늘 운산파는 이 자리에서 강호의 여러 영웅호걸들을 모시고,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비무대회를 개최하여 무림의 패자를 가리고자 합니다. 최강자의 인도로 강호의 위세를 한층 더 떨치고자 하니, 여러분들의 많은 협조를 바랍니다!”“대회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몇 마디 덧붙이겠습니다.”“비무의 규칙은 여러분 모두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어느 문파든 먼저 15승을 거두면 승리하는 것으로 간주합니다.”“학문에 우열이 없고 무예에는 두 번째가 없다고 하지만, 오늘 대회는 어디까지나 친선 비무이니 목숨을 걸고 싸우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승리를 얻기 위해 동료의 목숨을 빼앗는다면 설령 이긴다 해도 사람들의 인정을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옳소!” 군중들 사이에서 동조하는 소리가 들렸다.부장문은 군중을 둘러보며 다시 말했다.“더 이상 질문이 없다면, 지금부터 비무대회를 정식으로 시작하겠습니다!”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은 운산파의 장문인 구학이었다. 그의 이마엔 깊은 주름이 새겨져 있어 연로해 보였지만, 눈빛만큼은 매섭고 날카로운 기운을 띠고 있었다.그때 한 제자가 장문 곁으로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장문님, 현재까지는 수상한 인물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구학은 별다른 반응 없이 입술만 가볍게 움직였다. “알겠다. 물러가라. 대회가 시작되었으니 산문을 닫고 외부인의 출입을 금하도록 하라.”“알겠습니다, 장문님!”하지만 그들은 알지 못했다. 이미 들어올 사람은 모두 군중 속에 섞여 있다는 것을 말이다.봉구안과 소욱 외에도 열무신 일행은 작은 문파로 위장하여 운산파 내부를 몰래 탐색하는 중이었다.비무대 위에서는 모두 늦게 출전할수록 유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선뜻 첫 번째로 나서는 자가 없었다. 결국 운산파가 먼저 자기 문파 제자를 내보내며, ‘벽돌을 던져 옥을 이끌겠다’고 했다.그 상대는 벽력당의 제자였다.벽력당은 암기 사용에 능숙했으나, 이번엔
오늘은 비무대회가 열리는 날이라 운산파 제자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부엌에서는 제자들이 점심 식사 준비로 분주했다.“혹시 내 족발 못 봤어? 방금 쪄서 솥 위에 올려놨는데 어디 갔지?” 한 제자가 당황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족발을 찾고 있었다.다른 제자들은 자기 일로 정신이 없었다.“어디 다른 곳에 뒀겠지.” “넌 항상 뭘 그렇게 잘 잃어버리냐.” “앞마당으로 누가 가져갔을 수도 있지.”부엌 밖 담장 아래에서는 열무신이 족발을 손에 들고 뼈만 남기고 맛있게 뜯고 있었다. 그는 남은 뼈를 마당을 지키는 개에게 던져줬다.개가 뼈를 물고 달아나자 열무신은 즉시 담을 뛰어넘어 안으로 들어갔다.땅에 내려선 그는 손에 묻은 기름을 풀잎에 쓱쓱 닦으며 경계하듯 주위를 살폈다.이곳은 운산파의 고위 제자들이 머무는 구역이며, 조금만 더 들어가면 장문의 처소가 있는 곳이었다.그런데 몇 걸음 걷기도 전에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숨을 곳이 마땅치 않아 그는 재빨리 나무 위로 몸을 날렸다.뜻밖에도 나무 위에는 이미 사람이 있었다.오백이었다. 그는 열무신을 보자 히죽 웃으며 속삭였다.“이거 참 우연이군.”열무신은 아무 대꾸 없이 기름이 묻은 손을 오백의 옷에 쓱 닦았다.바로 그때 나무 아래를 지나던 운산파 제자들이 코를 킁킁거렸다.“어디서 좋은 냄새 나지 않아? 엄청 향긋한데!” “너 배고파서 그러는 거 아니야? 부엌 근처라 냄새가 풍기나 보네.”그들이 지나간 뒤, 오백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멀리 운산파 장문의 방을 가리켰다. 열무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둘의 목적이 같았던 것이다.오백이 다시 손짓하며 말했다. “내가 여기서 망 볼 테니, 자네가 안으로 들어가시오.”한편, 봉구안은 누군가 자신을 따라오는 것을 눈치채고 몇 번이나 따돌리려 했지만 실패했다. 미행이 붙었으니 더는 위험한 행동을 할 수 없었다.결국 길을 잃은 척 운산파 제자 하나를 붙잡았다. “실례합니다만, 변소가 어디에 있습니까?”잠시 후 그녀는 다시 비무장
오백은 의아했다. 이 상황에서 불을 지르면 오히려 더 쉽게 들키지 않을까?하지만 오랜 세월 봉구안을 따라온 그였기에 금방 의도를 깨달았다.“마마, 혹시 일부러 일을 키워 상황을 파악하시려는 겁니까?”사방에 불을 내면, 중요한 곳일수록 많은 사람이 몰려들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움직임을 보고 어디를 조사해야 하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한편, 비무대회장에서는… 최근 강호에서 급부상한 신검종이 연이어 두 번 승리를 거머쥐었다.“신검종 승리!”“신검종 두 번째 승리!”소욱은 여전히 미동 없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지금 그가 나서면 너무 일찍 경기가 끝나, 구안에게 충분한 시간을 줄 수 없기 때문이었다.신검종이 세 번째 승리를 가져가자, 다른 문파들은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이에 비설산장이 다시 제자를 내보내 겨우 한 판을 가져왔다.다음 상대는 운산파의 제자였다.운산파 장문 구학은 경기 승패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자기 방에 침입한 도적이 더 마음에 걸렸다. 철통같이 경비했건만, 결국 방어를 뚫리고 만 것이었다.구학의 표정은 한겨울의 얼음처럼 차가웠다.비무가 한창 진행되던 중, 한 제자가 급히 달려왔다.“장문! 큰일났습니다. 불이 났습니다!”구학이 즉시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어디에 불이 난 것이냐?”제자는 숨을 헐떡이며 대답했다.“너무 많아서… 부엌, 동쪽 뜰, 뒷마당까지 여러 군데에서 불이 났습니다. 다 세지도 못했습니다.”구학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졌다.그 순간, 비무대 위에서 경기를 치르는 두 사람을 제외한 모두의 시선이 운산파 장문에게 쏠렸다.“구 장문, 이렇게 불이 났는데 괜찮겠소?”“산에 불이 번지면 큰일이오! 얼른 가서 불부터 끄는 게 어떻겠소?”“구 장문, 제자들을 보내 불을 끄시오. 비무대회는 걱정 마시오.”이들은 겉보기엔 걱정해주는 듯했으나, 실제로는 운산파가 빠져 경쟁 상대가 줄어들길 바라고 있었다.운산파가 어찌 그들의 뜻대로 움직이겠는가?장문 구학은 억지 미소를 지으며 태연히 말했
봉구안은 천천히 그 인골을 살펴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점점 싸늘하게 가라앉았다.불길은 여전히 맹렬했지만, 몰려드는 제자들의 노력으로 점차 진압되고 있었다.그러나 빠르게 불길이 잡힌 곳은 동쪽 뜰뿐이었다.다른 곳은 쉽게 불길이 잡히지 않아 결국 마당 전체가 다 타버렸다.운산파의 한 제자가 급히 비무장으로 달려와 장문에게 상황을 보고했다.장문 구학은 아래를 내려다보며 날카롭게 물었다.“동쪽 뜰은 어떤가?”“장문님, 동쪽 뜰의 불길은 이미 진압되었습니다.”구학은 이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동쪽 뜰을 계속 철저히 지켜라. 그곳의 물건은 단 하나도 잃어서는 안 된다.”“예, 장문!”한편 비무장 위에서는 이미 승부가 결정되었다.이 시점에서 운산파가 다시 한 판을 이기면서 총 여덟 번의 승리를 거둬 파죽지세였다.구학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운산파의 제자들은 하나같이 뛰어났으니, 이런 약소 문파들이 어찌 상대가 되겠는가?벽력당은 이미 승산이 없는 상황에서 겨우 한 번 승리했을 뿐이었다. 그들은 우승 가능성이 사라졌음을 알면서도, 분한 마음에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였다.“구 장문! 귀파의 제자들은 승리만을 위해 집안에 불이 났는데도 신경조차 쓰지 않다니. 그런 제자들을 가르친 당신한테 스승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소이다!”구학은 전혀 흔들림 없이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지금 여러 곳에서 난 불은 누군가가 비무대회를 방해하기 위해 우리 문파 제자들의 주의를 분산시키려는 수작입니다. 무인이란 마땅히 경기에 모든 정신을 집중해야 하는 법입니다. 무엇이 문제란 말입니까?”벽력당 제자들의 얼굴은 분노로 굳어졌다.“좋소! 자네들은 정말 독한 놈들이구려! 하지만 이번 대회의 승자가 누가 될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지 않소!”구학은 코웃음을 쳤다.지위가 높은 자가 어찌 하찮은 자와 이런 말다툼으로 격을 떨어뜨리겠는가? 그는 그런 것으로 감정을 드러낼 사람이 아니었다.비무대 위에서는 여전히 운산파의 제자가 승자로 남아 있었다.
각 문파마다 내공 심법과 무공 수법은 저마다 달랐고, 어떤 것은 한눈에 알아볼 만큼 특징이 뚜렷했다.소욱은 전진파의 검법을 정식으로 익힌 적이 없었으니, 보는 사람들이 그 차이를 알아채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차선아는 자리에서 차갑게 말했다.“전란 이후 각 문파는 새로운 제자를 받아들여 타 문파의 장점을 흡수하고 있습니다. 이 자는 이미 전진파의 제자입니다.”“구 장문께서는 언제부터 이렇게 승부에 집착하게 되셨습니까?”그녀의 말은 명확하고 논리적이었다.구학은 굳은 표정으로 자신의 제자를 꾸짖었다.“졌으면 깨끗이 인정할 것이지! 어서 내려오지 못하겠느냐!”소욱은 계속해서 비무장 위에 서서 다음 상대를 기다렸다.차선아는 차분히 그를 바라보며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어쩌면 저 사람은 여자가 아닐지도 모른다고………소욱은 무애산의 현릉풍을 스승으로 둔 사람이었다.그의 무공은 결코 허풍이 아니었다.무대에 오른 그는 연달아 다섯 명의 상대를 쉽게 쓰러뜨렸다.상석에서 지켜보던 운산파 장문 구학의 얼굴이 점점 굳어갔다. 방금 전까지의 여유로운 모습은 사라졌다.전진파는 이전 두 번의 승리를 포함해 총 일곱 번이나 승리를 거두며 운산파를 바로 뒤에서 따라붙고 있었다.옆에 있던 부장문이 걱정스럽게 말했다.“장문님, 저 여자를 상대하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서두르지 마라. 아직 비무가 끝난 건 아니다.”구학은 차분하게 자신을 진정시켰다.각 문파의 고수들이 많으니, 전진파가 쉽게 우승하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을 것이다.무엇보다도, 어떤 문파도 여인들에게 지배당하고 싶어 하지는 않을 것이었다.“이번엔 내가 나서겠다!”신검종의 한 고수가 무대에 오르며 강렬한 검기를 뿜어냈다.검법에 있어 신검종은 스스로를 강호 제일이라 자부하는 문파였다.그들은 전진파가 자신들 위에 서는 것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소욱의 표정이 싸늘히 굳었다.지금쯤 봉구안 일행은 얼마나 조사를 진행했을지 알 수 없었다.소욱은 그들에게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체력
소욱이 위급한 것을 본 차선아는 아직 무대 위에서 승부가 끝나지 않았다는 것도 잊은 채 즉시 소매에서 암기를 꺼내 은사성의 손목을 향해 던졌다.하지만 은사성은 재빨리 소욱을 놓고 몸을 틀어 가볍게 피했다.차선아의 개입에 다른 문파들이 곧바로 불만을 터뜨렸다.그들은 먹잇감을 발견한 들개처럼 한꺼번에 고함을 질렀다.“전진파가 규칙을 어겼다!”“두 사람의 비무에 제삼자가 개입하다니 말이 되느냐! 전진파는 패배를 인정하라!”“옳소! 나도 똑똑히 봤소! 전진파는 엄청난 금기를 범했소!”운산파 장문 구학은 싸늘한 얼굴로 차선아를 바라보았다.차선아는 자신이 저지른 일을 피하지 않았다.그녀는 단호히 자리에서 일어났다.“이번 승부는 전진파가 졌습니다.”그녀는 안타까운 시선으로 소욱을 바라보았다.그가 방금 전 비무하던 모습을 보니 명백히 독에 당해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자신이 개입하지 않았더라도, 경기가 계속됐다면 그는 교활한 은사성을 이기기 어려웠을 것이다.그의 무공은 뛰어났지만, 강호의 험악한 술수를 몰랐다.물론 그를 탓할 수는 없었다.은사성이 독을 쓰는 속도가 너무나 빨라 그조차도 언제, 어떻게 독을 썼는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으니까 말이다.소욱이 무대에서 내려오자, 진한길이 본능적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소욱은 자리로 돌아가 앉아 마음을 진정시키며 조용히 운기를 시작했다.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눈빛에는 깊은 분노가 숨겨져 있었다.정원아가 물주머니를 내밀며 말했다.“사매, 물 좀 마시세요. 덕분에 우리 전진파가 이렇게 많은 승리를 얻었습니다. 정말 대단했어요!”소욱은 싸늘한 눈으로 그녀도, 그녀가 건넨 물도 쳐다보지 않았다.지금 막 독에 당한 직후였기에 주변의 모든 것에 경계를 늦출 수 없었다.정원아는 그가 마음을 몰라줘도 화내지 않았다.그녀는 어색하게 웃으며 조용히 물을 그의 옆에 두고 물러났다.소욱이 물러난 뒤 전진파 제자들이 연이어 무대에 올랐다.최종 승리를 얻기까지 단 두 판의 승리만이 남아 있
"공자님,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곧 다 됩니다!" 연상은 즐겁게 부산을 떨며, 자신의 이런 행동이 소탁에게는 부담이 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곧, 음식들이 다 되었다. 연상은 미역국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기대에 찬 표정으로 소탁을 바라보았다. "소 공자님, 오래도록 장수하시길 기원합니다. 모용길처럼...""아, 이런! 제 입이 이렇게 험합니다. 모용길 같은 악인과 소 공자님은 전혀 다르시죠." 소탁은 국을 먹지 않고 연상에게 물었다."너는 행복하니?" 연상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저야 당연히 행복하죠. 나쁜 사람들이 인과응보로 벌을 받지 않았습니까.""게다가 오늘 의원께서 말씀하시길, 공자님의 눈이 점차 나아지고 있다고 하였어요.""전 공자님께서 곧 다시 빛을 볼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연상아, 너와 나는 이뤄질 수 없는 사이야."소탁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도 결국에는 이런 말까지 하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연상은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담담하게 웃었다. "공자님, 저도 알고 있어요. 공자님은 황실의 귀한 분이시고, 저는..." "네 신분 때문이 아니야. 연상아, 난 너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 너에게 짐이 되고 싶진 않다."이 말을 듣자마자 연상의 눈에 갑자기 한 줄기 빛이 어렸다. "단지 절 걱정하시는 것 뿐이지, 절 싫어하시는 건 아니군요?" 소탁의 목이 갑자기 조여들었다. "나는..." 그의 일생은 큰 기복이 있었고, 혼자 살아가게 될 운명이었다. 한 번도 인연을 찾을 생각을 해본 적 없었고, 누군가와 평생을 함께할 생각도 해본 적 없었다. 연상이란 아이는 그에게 있어 더 과분한 존재였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이 시간 동안 그녀가 곁에 있어 그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는 사실이었다. "난 너에게 남녀 간의 사랑을 품고 있지 않아. 설령 내가 여자를 찾는다 해도, 그건 아내지 시녀가 아니야." 연상은 그의 말을 듣고 눈이 크게 떠졌다. 시녀? 소탁은 선의로 그녀에게 일깨워주었다
완부옥은 예로부터 여자를 좋아했다. 남자를 대할 때조차도, 가볍게 희롱하거나 농을 던질 뿐이었다.그런 그녀 앞에 서왕이 호의를 드러내자, 그녀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게다가… 분명 그도 남자를 좋아하지 않았던가.서왕은 그녀의 반응이 예상보다 격해 당황하며 서둘러 설명했다.“우리는 비슷한 처지가 아니더냐? 같이 사는 건… 서로에게 나쁘지 않지 않느냐.”“네가 떠나면, 난 또 다른 이와 혼인해야 할 텐데… 너처럼 내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여인은 없을 것이다.”“또다시 나 자신을 숨기며 살아야 할 테니… 차라리 그냥 이렇게 지내는 게 낫지 않겠느냐?”그 말을 들은 완부옥은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그 말씀이셨군요.”그가 정말 자신에게 마음이 있는 줄 알고 긴장했건만… 그게 아니라니 다행이었다.……한편 모용길의 죄행이 세상에 밝혀지자, 남제 전역이 발칵 뒤집혔다.백성들 또한 믿기 어려워했다.“그 자가 그렇게 오래 살았다고? 분명 불로장생의 술법이 있었던 게지. 폐하께서 그걸 두려워해 제거한 거야.”“약쟁이 사건도 정말 복잡하군. 처음엔 모용욱이 범인이라더니… 이번엔 왜 모용길이 나와? 설마 이번에도 헛다리 짚은 건 아니겠지?”“뭐가 어쨌든 간에 약쟁이는 전부 모용가 짓이란 말이잖아. 그런 집안은 몰아내야지!”분노한 백성들은 결국 모용가로 몰려가 돌과 썩은 달걀을 던지며 고함쳤다.“남제에서 당장 꺼져라!”“모용가 놈들은 천벌 받아야 마땅해! 죄 없는 사람들 고통받게 했잖아!”며칠째 모용가는 백성들의 소란에 시달려, 누구 하나 문밖을 나서지 못했다.……성 외곽의 한 촌락.낡은 농가 안, 여인이 낮은 목소리로 다급히 말했다.“들었어? 약쟁이 사건 피해자한텐 조정에서 보상금을 준다더라. 장순이네도 그랬잖아. 우리도 당장 관청 가자고, 장대복! 내 말 듣고 있는 거야?”장대복은 장순의 친삼촌이었다. 어린 조카를 생각하면 늘 미안함이 앞섰다.“형님은 일찍 돌아가셨고, 그 모자 둘이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지 당신도 알잖아.”
소욱은 미소를 지었다.“부창부수라 하지 않느냐. 함께 손잡고 세상을 다스릴 것이다. 황부도 결국 한 여자의 지아비이지 않겠느냐.”그 말을 들은 서왕은 한껏 조이던 가슴이 결국 힘없이 내려앉았다.그는 즉시 두 손을 모아 절하며 간언했다.“폐하, 그건 절대 안 됩니다!”“폐하께서는 일국의 군주이십니다. 어찌 여인의 그늘 아래 계시겠습니까?”“이 일이 만에 하나라도 세상에 알려진다면, 조롱과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평소 성정이 온화한 서왕이지만, 마음에 걸리는 일이 생기면 은근히 고집이 세지는 성격이었다.소욱은 목소리를 날카롭게 높였다.“그래서 말이지. 이 일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아.”서왕은 속으로 중얼거렸다.‘폐하도 이게 창피한 줄은 아시는구나…’“황후 마마께서는 폐하께서 황부가 되겠다는 걸 허락하셨습니까?”소욱은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황후가 왜 반대하겠느냐? 설마 다른 사내를 맞이해야한단 말이냐?”서왕은 잠시 헷갈려 그 말에 말려들 뻔했다.“그런 뜻이 아니라, 황후마마께서도 이 일이 폐하께 불리할 수 있다는 걸 알고 계신지 여쭈려는 것입니다.”소욱은 눈을 좁히며 말했다.“내 너를 형제로 생각하니까 이런 말도 하는 것이다.”“이미 내가 결정한 일이야. 누구도 바꿀 수 없어.”“너는 그저 국정을 맡아 잘 처리하거라. 내가 황후와 함께 돌아올 때까지 말이다.”그러자 서왕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하지만 폐하 신도 이번에는 휴가를 청하려 했습니다.”매번 국정을 떠맡는 것도 지치는 일이었다.아무리 가까운 형제라도 지켜야 할 선이 있지 않겠는가.‘이 나라는 분명 소씨 가문의 일국이지 않는가.’ ‘잠깐… 순간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서왕은 방금 스쳐간 생각에 스스로 놀랐다.감히 황제에게 이런 불만을 품다니. 마음으로도 짜증을 내다니, 감히 내가?’소욱은 인내심을 다잡으며 물었다.“휴가를 내겠다고? 무슨 연유냐?”서왕은 몇 초간 머뭇거리다, 정색하며 대답했다.“왕비와 함께할 시간이 필요합니다.”소욱은
서왕의 심문이 시작되자, 손추의 수하였던 자객은 결국 모든 사실을 고백했다.“그… 그 일은 저희가 꾸민 일입니다.”“모용길이 왕가의 피를 원했고, 손추가 직접 그 일을 맡았습니다.”“하지만 그분은 왕이셨고, 무공도 출중하셨습니다. 손추는 선제를 이간질해 부친을 의심하게 만들었고, 결국 모반의 증거를 조작했습니다.”그 뒤의 이야기는 서왕도 이미 알고 있었다.그의 아버지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도 조정에 충성을 다했다.군주의 명이 떨어지면, 신하는 죽는 수밖에 없었다.유배길에 올라서도 그의 아버지는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다.그는 끝까지 선제가 자신의 결백을 밝혀주리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그러나 그 희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약쟁이단이 아버지의 목숨을 노릴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진실이 드러났을 때, 서왕은 마치 천근 무게의 짐을 내려놓은 듯 가슴이 후련해졌다.그러나 죽은 자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 사실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쓰라림으로 번져왔다.그가 정원으로 돌아오자, 멀리 나무 아래서 완부옥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서왕은 한 걸음에 달려가 그녀를 와락 안아 올렸다.“이번 일을 해결해줘서… 정말 고맙다!”“드디어 모두가 알게 되었어. 부친께서 얼마나 억울하게 누명을 썼는지…”“선제도 진범을 찾고자 했었지만, 결국 오늘에서야 제대로 밝혀졌어. 정말, 정말 고맙다…”서왕은 거듭 고마움을 표현했고, 완부옥은 조금은 지겨워하며 그를 말렸다.무엇보다 이 남자가 이렇게까지 그녀를 직접 껴안을 줄은 몰랐다.조금 불편한 표정이었지만, 완부옥은 조용히 손을 들어 그의 등을 토닥였다.“됐습니다. 됐어요. 그렇게 큰일도 아닌걸요.”“정말 제게 보답하고 싶다면, 폐하께 소환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여쭤봐 주세요.”서왕은 그녀를 놓고, 놀라움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아직도 포기 못 한 것이냐?!”완부옥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런 게 아닙니다.”“그저 소환이 어떻게 지내는지 알고 싶은 것뿐입니다.”“정인이 아니더
세상일이란 참 아이러니했다. 열무신은 한 발 늦게 도착했다. 그가 천옥에 도착했을 때, 모용길은 이미 숨을 거둔 후였다.모용길의 시신을 바라보며 열무신은 주먹으로 벽을 내리쳤고, 낮은 포효를 내뱉었다. 사람들은 착한 사람은 일찍 죽고 재앙은 천 년을 간다고 했는데, 정말 그랬다! 모용길 같은 자는 200살이 넘게 살다가 죽었는데, 맹성주 같은 이는 관례도 치르기 전에 죽임을 당했다. 이를 생각하니 열무신의 증오심이 하늘을 찔렀지만, 이 빚을 누구에게 갚아야 할지 알 길이 없었다.너무 감정이 격해져서, 열무신은 천옥을 나서자마자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기절해버렸다.황궁. 봉구안은 임시로 자진궁에 거처하고 있었다. 그녀는 회임 중이었고, 점차 배가 불러오기 시작하자 회임이 실감 났다.정말로 아이가 서서히 자라고 있었다. 소욱이 정해준 태의는 매일 그녀에게 와서 맥을 짚었다. 최근 그녀의 태상은 안정되어, 더 이상 안태약을 마실 필요가 없고 그저 조용히 쉬기만 하면 되었다.아이의 일에 대해서, 봉구안은 걱정하지 않았다. 약쟁이 사건도 이미 해결되어, 그녀의 큰 근심을 덜어주었다. 현재 유일하게 장미에 대해서만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장미의 옛 병이 재발할까 걱정되었다.그것이 만약 재발한다면, 그녀의 몸과 마음에 좋지 않을 터였다.봉구안이 이 일을 생각하고 있을 때, 황제가 도착했다. 소욱은 약쟁이 사건의 최신 진전을 가져왔다. 그는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열무신이 붙잡은 그 사람들이 증명할 수 있다는구나. 이미 200년 전에 태조는 돌아가셨고, 부활한 흔적은 전혀 없었다 하엿다. 모든 것이 모용길의 환상이었던 거야.”“짐은 이 사건의 모든 세부 사항을 대중에게 공개할 생각이다. 모용길이 남긴 큰 돈은 모두 약쟁이 매매로 얻은 것이야. 짐은 이 돈을 피해자들과 그 친척들을 위로하는 데 쓸 것이다.”“이에 대해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그는 걱정이 가득했다.봉구안은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의 이 조치는 백성
마지막으로 태조를 다시 보았을 때, 그는 이미 병석에 누워 숨이 끊어질 듯했다. [모용길... 내 아우야, 너는 내 마음을 알지. 짐에겐 아직 이루지 못한 일들이 많다. 새 정치를 세우지 못했고, 태자는 아직 어리지. 난 단지 하늘이 인색해서 짐에게 몇 년을 더 주지 않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단 일 년이라도 짐이 일 년만 더 산다 해도 좋을 텐데... 남쪽의 수해, 북쪽의 기근, 남제는 사방에서 적에 둘러싸여 있고, 북연은 우리를 업신여기며, 내부에는 반적이 있는데... 어찌할까, 염라대왕이 목숨을 거두어 가니, 짐은... 그저 손을 놓을 수밖에 없구나. 아우야, 나라의 일을 모두 네 손에 맡기노니, 너는 태자를 보필하라. 너는 그의 고모부이자, 또한 그의 상부이니. 아우야, 짐은 오직 너만 믿는다.]기억 속의 태조가 눈앞의 그와 겹쳐졌다. 모용길은 낮은 목소리로 흐느꼈다. 그의 눈에 태조의 뒷모습은 무척이나 수척했다."형님! 형님께서 원하던 것을 제가 마침내 이루어냈습니다! 형님께서는 불로장생할 것이고, 이 남제는 반드시 형님의 통치 아래 번영하며, 장차 천하를 통일하여 대업을 이룰 것입니다!"당초 남제가 새로 세워졌을 때 태조는 약속대로 그에게 강산의 절반을 주려 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태조의 뜻이 천하에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태조와 계속해서 사방을 정벌하고 싶었다. 하지만 운명은 어쩔 수 없었다. 이제 태조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볼 수 있게 되어, 그는 마침내 모든 짐을 내려놓고 평안히 떠날 수 있게 되었다.모용길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 바닥에 쓰러졌다. 눈물로 가득 찬 시선 속에서,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난 아내의 모습을 보았다. 그녀가 그를 데리러 온 것이다. 그는 팔을 뻗어 마치 어린아이처럼 울었다.여인은 몸을 숙여 그의 손을 잡아 자신의 얼굴에 대고, 그에게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대인, 남은 길은 제가 당신과 함께 걸을게요." 모용길은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우리 함께..."
열무신은 이번에도 큰 공을 세웠다.그가 아니었다면, 또 누군가 새로운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그는 사로잡은 자객들을 직접 데리고 돌아와 천옥에 넘긴 뒤, 단 한숨도 쉬지 않고 곧장 심문에 들어갔다.자객들은 처음엔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하지만 모용길이 이미 붙잡혔다는 소식을 듣자, 그들의 희망도 이미 무너진 셈이었다.이내 하나둘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저희는 명령을 따랐을 뿐입니다… 폐태자를 노린 건 그 분의 ‘혈’ 때문이었습니다.”그들은 태조 황제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불로장생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태조 황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백골이었습니다. 이백 년 전, 모용길이 시신을 도굴해갔을 때부터 이미 시체에 불과했습니다. 살려낼 수 있을 거라는 건, 망상이었어요!”“애초에 죽은 자였다고요!”그들이 그 이야기를 꺼낼 때, 말투에는 모용길을 조롱하는 기색이 역력했다.이백 년이라는 세월 동안 쓸모없는 일에 목숨을 건 그를 그들은 미련한 바보로 여겼다.같이 심문을 진행하던 관리가 물었다.“너희는 어떻게 아는 것이냐?”“태조 황제께서 살아난 적이 없다는 걸 말이다.”“모용길이 그렇게까지 집착한 이유가 뭐였지?”자객들 중 한 명이 비웃듯 코웃음을 치며 답했다.“모용길이 약쟁이를 만든 건, 그들로 실험해 불로장생의 약을 완성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약을 제조한 의원들은 손수 기록을 남겼고, 그 손책들엔 분명히 쓰여 있었죠. 이백 년 동안 그들이 상대한 건 단 한 번도 움직이지 않은 ‘시체’였다고요.”“아무리 약을 먹여도 살아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말입니다.”다른 자객 하나는 공포 어린 얼굴로 말을 이었다.“모용길은… 이미 오래전에 미쳐 있었습니다. 그는 자주 아무도 없는 허공을 향해 말을 걸었어요. 마치… 마치 그 자리에 태조 황제가 서 있기라도 한 듯이 말이에요.”또 다른 자객이 덧붙였다.“그 자는 단지 태조 황제를 살리려 한 게 아닙니다. 자신도 불로장생 하고 싶었던 거에요.”“그리고 그게… 그 자는 정말로 성공했
태황태후는 직접 선조를 만나기 위해 천옥으로 향하려 했다.하지만 황제의 명이 내려져 있었다.그의 허락 없이는 누구도 모용길을 접견할 수 없었다.하는 수 없이, 태황태후는 궁으로 전갈을 보냈다.하지만 설령 황제가 허락하더라도 모용길이 누구를 만나려 하지 않았다.그는 오직 태조는 아직 살릴 수 있다는 집념 하나에 사로잡혀 있었다.그런 그가 천옥에 갇힌 지금, 마음은 타들어가듯 초조했다.“그 어린 황제놈은 어딨느냐! 어서 나를 뵈러 오라 하지 못할까!”모용길에게 후손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그는 생각했다.이 나라 남제는, 태조와 자신이 함께 세운 나라였다.그런 자신을 막고 있는 소욱 따위가 어찌 감히 군림한단 말인가.천옥에 갇힌 날부터,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소리쳤다.“태조를 살려야 한다! 어서 황제를 데려와라!”하지만 그는 몰랐다.그의 그 모든 고함과 분노는 소욱이 의도적으로 시간을 끌며 그를 흔들기 위한 계략이었단 사실을 말이다.그리고 다섯째 날.천옥의 간수가 냉정한 얼굴로 명을 전했다.“폐하의 어명이십니다.”“모든 죄를 자백하고 문서에 서명하지 않는 한, 이곳을 나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죽을 때까지 말입니다.”모용길은 두 눈을 부릅뜨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허튼소리 마라! 그 어린놈이 과연 알기나 한단 말이냐, 내가 이 모든 짓을 왜 해왔는지를 말이다!”간수는 능청스럽게 웃었다.“나으리, 뭐가 그리 두렵습니까?”“자백했다고 당장 목을 치는 것도 아니잖습니까.”“태조께서 하사하신 면사금패는 아직도 가지고 계시잖아요?”그 말에 모용길의 눈매가 가늘게 휘어졌다.그렇다.면사금패만 있으면, 그는 죽지 않는다.황제 따위가 그를 처형할 권한은 없었다.지금 가장 중요한 건 태조를 다시 살려내는 것이었다.결심이 선 그는 주저하지 않았다.“종이와 붓을 가져오너라!”두 시진 후.모용길이 쓴 자백서가 궁으로 들여졌다.그 문서는 곧장 어전으로 올라갔다.문서를 넘겨받은 소욱은 한 장, 또 한 장 페이지를 넘길수
염 신의가 모용길의 상태를 진찰한 결과, 그의 몸은 웬만한 노인들보다 훨씬 건장했고, 외견상으로도 특별한 이상은 보이지 않았다.“폐하, 이 자가 망언을 일삼는 이유는… 실성, 즉 정신 착란 증세로 보입니다.”“나는 미치지 않았다! 미친 건 너희들이다!”모용길이 즉각 반발하며 목소리를 높였다.그리고 소욱을 향해 고함쳤다.“어서 저놈들을 다 내쫓아라! 나는 태조 폐하를 반드시 살려낼 것이다!”“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모두 다 목이 날아갈 줄 알아라!”하지만 소욱은 모용길의 광언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그저 곁에 있던 병사들에게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붙잡아 두거라. 절대 도망 못 치게 해야 한다.”명령이 떨어지자 병사들이 달려들어, 모용길의 움직임을 단단히 제압했다.염 신의는 환자의 행동에 개의치 않으며 차분히 말을 이었다.“실성이란 곧, 마음의 병입니다.”“이 병은 뇌와 정신의 균형이 무너져,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들죠.”“예컨대, 저희는 백골을 보지만 이 자는 살아 있는 사람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그만큼 이 자의 마음속 집착이 깊고, 오래도록 그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입니다.”“이미 병이 뿌리 깊게 자리 잡았으니, 소인으로선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의술이란 외상이나 내상은 다스릴 수 있어도, 사람의 마음속 병, 특히 집착이라는 건 손쓸 수 없는 법이다.그건 눈에도 보이지 않고, 손으로도 만질 수 없는 것이기에. 소욱은 여전히 ‘태조를 살려야 한다’며 중얼거리는 모용길을 말없이 바라보았다.그는 수많은 악행을 저질러 온 자였다.그러나 유일하게 태조에 대해서만은 지극한 충성과 집착을 드러내고 있었다.“저 자를 별실에 따로 가둬라. 아무도 면회하지 못하게 하라.”“명 받들겠습니다!”……자진궁.봉구안은 모용길이 실성 증세를 보였다는 말을 듣고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오늘 제가 본 그 백골은 최근에 죽은 사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그 말인즉, 모용길은 이미 오래전부터 병들어 있었단 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