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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74화

Author: 일설연우
짧은 몇 시진 동안, 소동은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에게 호의를 보이던 황제가 이제는 자신을 죄인 취급하며 심문하고 있었다.

소동은 목이 바싹 마르고, 숨이 막힐 듯했다.

"미천한 소자는... 소자는 황제 폐하를 사모하여, 오래전부터..."

소욱이 냉소를 흘렸다.

"아직 정신을 못 차린 모양이군. 좋다, 우선 물에나 담궈 정신부터 차리게 해주지."

말이 끝나자마자, 진한길이 거칠게 소동을 끌어냈다. 그 동작은 가히 거칠고 무자비했다.

"황제 폐하! 제발! 소자는 폐하를 해치려는 마음은 없습니다! 모든 건 오 대인이... 오 대인께서 저더러 황제 폐하를 정성껏 모시라 하신 것뿐입니다!"

소동은 마차 문틀을 꽉 붙들고 필사적으로 외쳤다.

봉구안은 가볍게 손짓해 진한길에게 멈추라는 신호를 보냈다.

8월의 강렬한 햇살은 잔인할 정도로 뜨거웠다. 소동은 입술이 바짝 타들어 가며, 온몸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그는 무릎을 꿇고, 마차 안을 향해 간절히 고개를 들었다.

"황제 폐하, 소자는 정말 다른 마음이 없습니다! 황제 폐하를 모실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소자에겐 영광입니다. 이 모든 것은 오 대인께서 소자에게 주신 기회였습니다!"

겉모습은 단회욱을 빼닮았지만, 소동은 단회욱처럼 침착하거나 단단하지 않았다. 봉구안이 조금만 압박을 가하자, 그는 모든 것을 실토했다.

결국, 오양련의 지시를 받았다는 것 외엔 별다른 비밀도 없었다.

봉구안의 눈빛은 겨울 한파처럼 차가워졌다.

그녀는 차가운 손으로 마차 창문을 닫아, 밖에 있는 소동을 시야에서 차단했다.

"궁으로 돌아가자."

오백이 조심스레 물었다.

"폐하, 그럼 저 아이는…”

"본래 집으로 다시 돌려보내라."

소동은 안절부절못하며 애원했다.

"폐하! 제발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소자는 진심으로 폐하를 사모하고 있습니다!"

소욱의 얼굴빛은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진심? 그깟 진심 따위, 결국 모두 부귀영화를 위한 핑계일 뿐이겠지.'

소욱은 봉구안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오양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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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175화

    단정은 소욱의 지시에 따라 체포된 것이었다. 소욱은 단정이 아직 서여국에 남아 있을 것이라 예상하고 은밀히 사람을 보내 추적하게 했다. 그리고 뜻밖에도, 그가 바로 오양부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황제께서 직접 명한 일이라, 오양련도 막을 수 없었다. 게다가, 오양련 자신조차 처지가 위태로웠다.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단정이 붙잡힌 건 모두 소동 사건 때문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다음 차례는 아마 자신이 될 터였다. 그래서 오양련은 속수무책으로 단정이 끌려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단정은 궁으로 끌려와, 봉구안을 대면했다. 하지만 그의 태도에는 전혀 죄책감이 없었다. 봉구안은 용좌에 앉아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네 잘못을 너는 알고 있느냐."단정은 고집스럽게 입을 열었다."이건 제 뜻이 아닙니다.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이 저지른 일이죠. 저는 단지 사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폐하께서 저더러 형님과의 일을 비밀로 하라고 말씀하신 적도 없었지 않습니까."그야말로 강변이었다. 봉구안의 표정은 한층 더 싸늘해졌다."끌어내라. 삼십 대의 형벌을 내려라."단정은 순간 머리털이 쭈뼛 섰다. 삼십 대? 너무 심하잖아? 자기가 뭘 그렇게 큰 잘못을 했다고? 하지만 항변할 틈도 없이, 단정은 호위들에게 끌려나갔다.삼십 대. 살이 터지고 피가 튀는 고통이었다. 그럼에도 단정은 끝까지 이를 악물고, 비명 한 번 지르지 않았다. 끝내 정신을 잃고 쓰러질 때까지 말이다."폐하, 계속 진행할까요?" 오백이 안으로 들어와 조심스럽게 물었다.봉구안의 눈빛은 얼음처럼 매서웠다. "물을 끼얹어 깨우고, 계속하라!"소욱은 처마 밑에 서서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속이 후련하지는 않았다. 사랑하니까 더 엄하게 다스리는 것이었다. 모든 게 다 단회욱 때문이었다. 봉구안은 오래전부터 단정을 친동생처럼 여기고 있었다. 그녀가 진노한 것은 단정의 철없음 때문이었다.조금 후 단정의 옷은 피로 물들었고, 형벌이 끝났다. 봉구안은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174화

    짧은 몇 시진 동안, 소동은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에게 호의를 보이던 황제가 이제는 자신을 죄인 취급하며 심문하고 있었다.소동은 목이 바싹 마르고, 숨이 막힐 듯했다. "미천한 소자는... 소자는 황제 폐하를 사모하여, 오래전부터..."소욱이 냉소를 흘렸다. "아직 정신을 못 차린 모양이군. 좋다, 우선 물에나 담궈 정신부터 차리게 해주지."말이 끝나자마자, 진한길이 거칠게 소동을 끌어냈다. 그 동작은 가히 거칠고 무자비했다."황제 폐하! 제발! 소자는 폐하를 해치려는 마음은 없습니다! 모든 건 오 대인이... 오 대인께서 저더러 황제 폐하를 정성껏 모시라 하신 것뿐입니다!"소동은 마차 문틀을 꽉 붙들고 필사적으로 외쳤다.봉구안은 가볍게 손짓해 진한길에게 멈추라는 신호를 보냈다.8월의 강렬한 햇살은 잔인할 정도로 뜨거웠다. 소동은 입술이 바짝 타들어 가며, 온몸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그는 무릎을 꿇고, 마차 안을 향해 간절히 고개를 들었다."황제 폐하, 소자는 정말 다른 마음이 없습니다! 황제 폐하를 모실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소자에겐 영광입니다. 이 모든 것은 오 대인께서 소자에게 주신 기회였습니다!"겉모습은 단회욱을 빼닮았지만, 소동은 단회욱처럼 침착하거나 단단하지 않았다. 봉구안이 조금만 압박을 가하자, 그는 모든 것을 실토했다.결국, 오양련의 지시를 받았다는 것 외엔 별다른 비밀도 없었다.봉구안의 눈빛은 겨울 한파처럼 차가워졌다.그녀는 차가운 손으로 마차 창문을 닫아, 밖에 있는 소동을 시야에서 차단했다. "궁으로 돌아가자."오백이 조심스레 물었다. "폐하, 그럼 저 아이는…”"본래 집으로 다시 돌려보내라."소동은 안절부절못하며 애원했다. "폐하! 제발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소자는 진심으로 폐하를 사모하고 있습니다!"소욱의 얼굴빛은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진심? 그깟 진심 따위, 결국 모두 부귀영화를 위한 핑계일 뿐이겠지.'소욱은 봉구안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오양련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173화

    봉구안의 눈빛이 살짝 변했다. 후궁 문제는 이미 충분히 그녀에게 경고했었다. 오양련의 팔순 잔치에서 단회욱을 빼닮은 인물을 본다는 것은 결코 우연일 리 없었다.그녀는 자리 너머 오양련을 바라보았다. 오양련은 아무 일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 순간 소욱 역시 춤추는 청년을 매섭게 노려보며 손에 쥔 술잔을 꽉 움켜쥐었다. 그 눈빛엔 싸늘한 살기가 서려 있었다.'어찌 저리도 닮았단 말인가!'그가 분노하는 이유는 질투 때문이 아니었다. 봉구안의 마음이 흔들릴까 봐서도 아니었다. 소욱은 누군가 봉구안과 단회욱의 과거를 샅샅이 파헤쳐 이런 짓을 벌였다는 사실에 분노한 것이었다.검무를 추는 청년들은 무척이나 열정적이었다. 그들의 동작 하나하나가 흐트러짐 없이 우아했다. 특히 가운데 선 청년은 마치 신선처럼 아름다웠고, 눈빛엔 짙은 연정이 어려 있었다.봉구안조차 속으로 탄복했다. '정말이지 이 정도로 닮은 사람을 찾아냈다니, 고생했겠구나.'그녀는 일부러 감탄하는 척하며 말했다. "상을 내리라."오양련은 그 모습을 보고 속으로 가볍게 안도했다. 역시 단정이 말한 대로였다. 황제 폐하의 마음속에는 아직도 단회욱이 자리하고 있었다. 남자 하나쯤이야, 서여국엔 넘쳐나는데!서여국에서는 여자가 여러 남편을 둘 수 있지만, 남제에서는 여자가 남편을 다른 여자와 나눠야 했다. 오양련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황제 폐하께서는 굳이 남제로 돌아가려 하는 걸까? 그녀로서는 그렇게 애써 계획을 짤 필요가 없었을 텐데 말이다.오양련은 술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신 후, 중앙의 청년을 향해 은밀히 눈짓을 보냈다. 좀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라는 신호였다.이윽고 검무가 끝났다.단회욱을 쏙 빼닮은 그 청년은 앞으로 나와 예를 표했다. "미천한 소인 소동, 황제 폐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금은보화는 바라지 않고, 오로지 폐하를 모시고 싶사옵니다!"소욱의 눈빛이 번뜩이며 어두워졌다.'이 뻔뻔한 놈이, 감히 내가 보는 앞에서 황제를 유혹하다니!'그는 봉구안이 당연히 거절할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172화

    북연.황제는 어전에 앉아 노발대발하고 있었다. "천하의 죽일 놈! 감히 그놈을 변경 관리로 임명하다니!"신하가 나서서 진정시켰다. "폐하, 부디 노여움을 거두시옵소서. 북연은 이미 정국을 함락시켰습니다. 조금만 더 힘을 모으면 소주까지 손에 넣어 서여국을 견제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남쪽의 몇몇 성은 남제에 넘겨주었으나, 저희에게 큰 타격은 아닙니다."븍연황제는 여전히 음침한 얼굴을 하고 중얼거렸다. "그 역적 자식이 아직도 미련을 못 버릴까 걱정이 되는 거야. 남제가 그놈을 풀어준 것도 북연을 어지럽히려는 수작이 분명해."그는 명을 내렸다. "곧바로 전하라. 그 역적 자식과 관련된 소식은 단 한 건도 빠짐없이 내게 보고하라."절대로 다시는 그 자식이 북연 땅을 밟게 두지 않겠다는 결심이었다.신하는 고개를 숙이며 받들었다. "명심하겠습니다, 폐하."곧이어 신하가 조심스럽게 또 물었다. "폐하, 칠황자께서 이번 전공을 세운 공로가 지대하옵니다. 머지않아 북연으로 돌아올 텐데, 이참에 태자 책봉을 서두르는 것이 국본을 다지는 길이라 사료됩니다."그는 황제의 최측근 신하였기에 이렇게 직언할 수 있었다.연황제는 그의 말을 듣고 깊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부터 그는 칠황자를 눈여겨 보고 있었다."좋다. 북연 군이 소주를 평정하면, 그때 공을 논하고 상을 내릴 것이다."신하는 얼굴에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황제의 뜻이 확실해진 이상, 태자 책봉은 이미 기정사실이나 다름없었다.한편, 사황자는 밀실에 신하들을 모아놓고 깊은 상의를 하고 있었다. "칠황자는 정말 운이 좋구나!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정국을 손에 넣다니. 조만간 소주까지 북연 수중에 들어가면, 태자 자리는 칠황자 것이겠지."사황자는 상석에 앉아 음울한 표정을 지었다. 장자 순서로 보, 공로로 보나, 태자 자리는 원래 자기 몫이었다. 아니 차라리 자기가 아니라도, 그 자리가 칠황자 차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참모 하나가 몸을 일으키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폐하, 칠황자의 승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171화

    서왕은 곧장 완부옥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같이 침상을 쓰자고 한 것은 너였지 않느냐?"완부옥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전하께서는 제가 그렇게 길게 말씀드렸는데, 결국 같이 침상을 쓰자는 말만 들으셨습니까?"그녀는 단숨에 그의 팔뚝을 세게 내리쳤다. "누가 전하와 같이 자겠다고 했습니까! 헛된 꿈은 꾸지 마십시오!"서왕은 오히려 그녀의 손을 과감히 움켜잡았다. 그 행동이 너무나 대담하여 완부옥은 얼떨결에 멈칫했다."전, 전하, 지금 무슨 짓을 하시는 겁니까?" 완부옥이 당황하며 물었다. "설마 병이 더 심해지신 것입니까?"서왕은 한껏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우리는 부부다. 한 침상을 쓰는 것이 어찌 이상한 일일 수 있겠느냐."완부옥은 입꼬리를 부들부들 떨더니, 홱 다른 손으로 그의 머리를 세게 후려쳤다.바로 그때 호위 유화가 방으로 들어왔다. 그는 서왕이 맞는 모습을 목격했다. 더 어이없는 것은 서왕이 맞고도 웃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혹시 맞아서 정신이 나가신 것일까?'완부옥은 벌떡 일어나 유화를 향해 소리쳤다. "어서 의원을 불러오거라! 전하의 상태가 심각해 보이는구나!"유화가 떠난 뒤, 서왕은 겨우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는 유화에게 원망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어찌 이리 함부로 들어오느냐."유화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더듬거렸다. "그럼... 소신은 물러가겠습니다."서왕은 대꾸도 없이 완부옥에게 얻어맞은 곳을 만지작거리며 멍하니 있었다. 유화는 전하의 저 비참한 꼴을 보며 마음이 불편했다.완부옥은 자신의 뜰로 돌아가자마자 익숙한 인물과 마주쳤다. 바로 그녀의 사제인 '갈십칠'이었다.갈십칠은 한껏 능글맞은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사매, 왕비 노릇이 그리 좋습니까? 스승님께서는 늘 사매를 걱정하시는데 말입니다."완부옥의 얼굴은 금세 구름이 낀 듯 어두워졌다. "살고 싶으면 입을 다무십시오. 제가 무엇을 하든 사형이 상관할 바가 아닙니다."갈십칠은 전혀 긴장하지 않고 능청스럽게 말했다. "사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170화

    소욱은 후궁에 머물고 있었지만, 그의 정보력은 넓고도 깊었다.그러나 방금 봉구안이 한 말의 진의를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다.북연이 정국을 점령했는데, 도대체 누가 그들보다 더 조급하다는 걸까?봉구안이 조용히 설명했다.“오늘 북연의 칠황자를 만났습니다.”“그가 한 말은 진실과 거짓이 섞여 있었지만,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짚어낼 수 있었어요.”“북연 황제는 태자를 세우려 하면서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칠황자가 정국까지 와서 군영에서 참모로 활동한 진짜 목적은 정국의 성을 북연이 빠르게 점령하도록 도와 큰 공을 세우기 위한 것이었죠.”“지금처럼 북연이 정국을 거세게 점령했을 때, 그 공로는 누구에게 돌아가겠어요?”소욱은 곧바로 이해했다.“그렇다면 그 칠황자가 결정적인 공을 세운 셈이니… 태자의 자리는 그가 가장 유력하겠구나.”봉구안은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꼭 그렇지만은 않아요.”“너무 눈에 띄면, 그만큼 시기와 견제를 받기 쉬워요. 북연엔 다른 황자들도 많으니, 그들 입장에서는 칠황자가 독주하는 걸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그녀는 말에 힘을 담았다.“그래서 제가 그렇게 말했던 거예요. 우리보다 더 조급한 사람들이 있다고… 그들은 북연이 소주와 정국을 삼키는 걸 보고만 있진 않을 거예요.”이것이 바로 봉구안이 그 칠황자를 풀어주기로 결정한 이유 중 하나였다.그가 무사히 돌아가 봉작을 받는 순간, 다른 황자들은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황위 계승의 다툼이란 언제나 피바람이 부는 법이다.형제라 해서 예외는 없었다.누군가 칠황자보다 위에 서려면, 소주와 정국에서부터 그 싸움은 시작될 것이다.봉구안은 확신하듯 말했다.“북연군이 남하하며 거침없이 정국을 점령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뒤에 훨씬 더 큰 장애물이 기다리고 있어요.”그 장애물은 다름 아닌 북연 안에서 일어나는 내란이었다.소욱은 그녀의 설명을 조용히 듣고 난 후, 고개를 끄덕이며 혼잣말처럼 말했다.“…그렇다면 우리는 멀리서 그들의 내란을 지켜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169화

    북연의 칠황자는 더 이상 여유로운 얼굴이 아니었다.표정은 무겁고, 눈빛엔 복잡한 감정이 서려 있었다. “형님은 처음에 동산국의 이간질에 넘어가 여러 나라와 함께 남제를 포위 공격했습니다.”“하지만 정작 전쟁이 터지자, 동산국은 병사 한 명 보내지 않았죠.”“서여국이 동맹을 저버린 것보다, 동산국이 더 미운 이유입니다.”그는 눈을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동산국은 각국을 이용해 천하를 노리고 있습니다.”“만약 남제가 ‘거미줄’ 체제를 활용해 지원을 하지 않았더라면, 동산국의 간계는 틀림없이 성공했을 겁니다.”“이제 아바마마께서 태자를 세우려 하시는데, 동산국은 몰래 제 형들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결국 북연 조정을 장악하려는 수작인 거죠.”그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고개를 들고 담담하게 말했다.“저는 태자 자리를 두고 형제들과 싸움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동시에 저는 제 안전도 지켜야 했죠.”“그래서 스스로 북연을 떠나, 북연이 소주와 정국을 차지하도록 도운 것입니다.”봉구안은 동산국의 야욕이 오래전부터 거슬렸지만, 이 북연의 칠황자 역시 절대 순수한 인물은 아니었다.그가 해온 일은 철저히 자기 자신과 북연을 위한 계산이었다.“서여국과 동산국 사이에는 거대한 남제가 버티고 있소.”“내가 굳이 서둘러 동산국과 적이 될 필요는 없지 않소.”봉구안의 말은 일종의 시험이었다.칠황자의 속마음을 떠보려는 수였다.그러자 칠황자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웃었다.“동산국이 지금은 남제와 맞서기 어려워도, 다른 나라들 상대로는 별의별 수단을 다 동원할 겁니다.”“북연도 그들에게 조종당하고 있는데, 서여국이라고 다르겠습니까?”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오백이 분노를 터뜨렸다.“무례하구나!”사람이 남의 지붕 아래 있으면 머리를 숙이는 게 예의이거늘, 이 칠황자는 상황을 모른 채 목소리만 높이고 있었다.하지만 칠황자는 봉구안만 뚫어지게 바라봤다.“폐하, 이 혼란스러운 세상에선 공존할 방안을 모색해야 합니다.”“남제가 서여국을 지켜줄 거라 생각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168화

    대옥 내부.이른바 북연의 첩자가 이곳에 갇혀 있었다.황제의 허가 없이는 그 누구도 그를 면회할 수 없었다.오백은 특별히 황제의 명을 받아 북연의 첩자를 심문하러 왔다.그런데 뜻밖에도 그자는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나는 북연의 칠황자요.”“귀국이 나를 감옥에 가둔 이유를 도통 모르겠소.”너무나도 당당했지만, 의심을 거둘 순 없었다.만약 그가 단순한 첩자였다면, 체포든 처형이든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그는 북연 황제의 아들이었다.이 문제는 단순히 넘길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오백은 즉시 이 사실을 황제에게 보고했다.봉구안은 보고를 듣고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그 자를 다시 북연으로 돌려보내라.”그를 붙잡아두는 것은 서여국에 쓸데없는 분란만 불러올 뿐이었다.자칫 북연에게 전쟁 명분을 줄 수도 있었다.오백은 불안한 기색으로 그녀를 설득했다.“폐하, 아직 이 자의 진짜 의도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서여국에 위해를 끼치려는 음모가 있었다면, 그를 돌려보내는 건 호랑이를 산에 풀어주는 꼴입니다.”그러나 봉구안은 흔들림이 없었다.어젯밤 소욱에게 들은 말이 그녀의 판단을 굳혔다.북연 황제는 태자를 세우려 조급해하고 있었다.그 흐름을 흔들어야 북연이 내부 문제에 집중하게 될 것이었다.그날 정오, 칠황자는 감옥에서 풀려났다.하지만 그는 곧장 북연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서여국 황제 폐하를 뵙고 싶소.”“내 의사를 꼭 전해주시길 바라오.”오백의 얼굴은 어두워졌다.‘이 칠황자, 도대체 무슨 꿍꿍이지?’지금 서여국과 북연은 사이가 좋지 않앗다..이런 미묘한 시점에, 그가 직접 국주를 찾다니… 의심스럽기 짝이 없었다.봉구안은 잠시 고민하더니, 그를 직접 만나기로 결정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칠황자는 황궁 대전으로 들어섰다.봉구안은 용좌에 앉아 있었고, 좌우엔 문무백관들이 늘어서 있었다.이는 분명 북연의 칠황자를 외교사절로 대우하기 위함이었다.자칫 실수하면, 북연에게 외교적 빌미를 줄 수 있었기 때문이

  • 폭군의 장군 황후   제1167화

    단정은 마침내 서여국에 도착했다.그는 단 한 번이라도 봉구안을 직접 만나고 싶었다.왜 형과의 약속을 저버렸는지, 왜 자신을 버렸는지 묻고 싶었다.궁인의 안내를 받아 어전에 들어섰을 때, 단정은 마침내 그녀를 보았다.하지만 가슴속에 담아왔던 원망의 말들은 끝내 삼킬 수밖에 없었다.코끝이 시큰해지고, 눈가가 뜨거워졌다."그들이 모두 저를 속이고 있었어요…"봉구안은 그가 왜 여기까지 왔는지 알지 못했다.그녀의 눈빛은 차갑고, 담담했다."다리는 좀 괜찮아졌니?"단정은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그 모습은 여전히 어릴 적 그대로였다.작고 연약한, 형의 뒤에 숨어 있던 아이."저… 너무 외로워요.""형이었다면, 절대 저를 혼자 두지 않았을 거예요…"봉구안은 숨김 없이 말했다."네 형이라도 평생 너 곁에 있어줄 순 없어. 단정, 너는 이제 성장해야 해. 자유각을 너에게 남겨줬잖아. 그걸로 충분하지 않니?""설마 내가 네 곁을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돌봐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야?"단정의 얼굴에 일순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양팔을 힘없이 늘어뜨린 채, 주먹을 살짝 쥐었다."전 그냥… 형수님을 보러 왔을 뿐이에요.""형수님이 어디 있는지, 무사한지 확인하고 싶었어요.""귀찮게 하려는 게 아니에요. 정말로…""형이 죽은 뒤, 저한텐 이제 형수님밖에 남지 않았어요.""형수님은 이제 저를 가족이라 생각하지 않으실 수도 있지만… 전 다시는 버려지고 싶지 않아요."봉구안은 그의 말을 들으며, 죽어가던 단회욱의 얼굴이 떠올랐다."임종 직전에 나는 네 형에게 너를 잘 돌보겠다고 약속했어.""하지만, 돌본다는 건 널 키우겠다는 의미가 아니었어.""정말 필요할 때 스스로 날아오를 수 있게 손을 내밀어 주는 거지.""네 나이면 이미 가정을 이루고, 나라를 위해 일에 충실해야 할 시기야."단정은 얌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알고 있어요.""저도 빨리 가정을 이루고, 일에 집중하고 싶어요.""형이 하지 못했던 일들을 제가 대신 다 이루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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