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돌아갑니다!”봉명헌은 지금의 삶에 매우 만족하고 있었다.비록 봉가에서 귀하게 자라진 않았지만, 부인과 아이가 곁에 있어 매 끼니를 떳떳하게 먹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봉가에 있을 땐 그저 폐물 취급을 받았지만, 이 작은 집 안에선 부인과 아이에게 버팀목이 되어주는 진짜 가장이었다.가정을 꾸리고 나서야 그는 진정한 ‘남자’가 무엇인지 깨달았다.봉 대인의 방문을 단호히 거절한 뒤, 그는 집으로 돌아와 부인에게 그 일을 전했다.“봉가에서 또 사람이 오더라도, 상대하지 마시오. 문도 열어주지 말고.”영이는 아들을 품에 안은 채, 시어머니에게 당했던 수모가 떠올랐다. 당연히 봉가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따위는 없었다.하지만 아들을 생각하니 고민이 깊어졌다.두부 장사로는 계속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겠지만, 아이를 위한 미래는 불투명했다.“여보, 몇 해 지나면 우리 아이도 사숙에 들어가야 하잖아요. 두부를 팔아선 과거시험 준비는커녕 학비도 빠듯할 듯해요.”영이는 과거시험에 대해 강한 집착을 가지고 있었다.한때는 남편에게 과거를 보라고 재촉했지만, 끝내 그가 무능하다는 걸 깨닫고는 그 기대를 접었다.이제 아들이 생기니, 다시 그 꿈을 아이에게 걸기 시작한 것이다.“아무리 생각해도 글공부는 해야 할 듯 해요. 계산도 못 하는 장사꾼으론 살 길이 없어요.”그 말을 들은 봉명헌은 깊은 시름에 잠겼다.공부를 시키려면 정말 많은 돈이 들었기 때문이다.한참을 머뭇거리던 그는 말을 돌렸다.“그러면… 내가 아버지한테 사과하고, 봉가로 돌아갈까?”영이는 순간 어리둥절했다.“아니, 방금 전까지만 해도…”봉가 사람들을 싸잡아 욕하고는 두 번 다시 돌아가지 않겠다던 그가, 왜 갑자기?봉명헌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대장부란 굽힐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야. 우리 아들이 봉가에 들어가면 이런 고생 안 해도 되잖아.”“그래요, 고생은 안 하겠죠. 당신처럼 살찐 돼지처럼 살게 될 거예요. 일은 하나도 안 하면서 말이죠.”영이는 빈정거리며 독설을 퍼부었다.그
두 아이가 너무 피곤했던 탓에, 돌잡이는 순조롭지 못했다.봉구안은 아이들을 더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 유모에게 안겨 재우라고 했다.그때 녕비가 분위기를 풀며 말했다.“두 분 마마께서는 정말 우애가 깊으시네요.”소욱은 아이들 돌 사진을 남기고 싶어 화공까지 불렀다.하지만 화공이 들어왔을 땐, 이미 두 아이는 잠든 상태였다.동생이 형의 팔을 안고 자는 모습이 무척이나 서로를 의지하는 듯했다.다른 건 몰라도, 그 한 장면만큼은 참으로 따뜻하고 평화로웠다.봉구안은 그 그림을 보고 마음이 말랑해졌다.그녀는 그 한 폭의 장면이 마음에 쏙 들었다.……대전 안.연회가 끝난 후, 맹건 부부가 영화궁으로 불려왔다.두 사람은 처음으로 두 황자를 가까이서 보게 되었고, 그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봉구안은 궁인들을 물리고, 두 사람만 아이들을 볼 수 있도록 했다.그때도 두 아이는 여전히 잠든 채였지만, 보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었다.“코는 황후마마를 닮으셨네요.”“다리도 길고, 앞으로는 키도 더 많이 크겠습니다.”“쌍생아라 해도 똑 닮진 않았구려. 큰 황자마마깨선 이마가 넓고, 작은 황자 마마께서는 인상이 순해 보이시는군. 마치 속이 편한 아이 같소.”두 사람은 목소리를 낮췄지만, 그 말소리에 한 아이가 눈을 떴다.또랑또랑한 눈망울로 두 사람을 바라보며 울지도 않고 조용히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심장을 녹였다.……외전.봉구안과 소욱은 나란히 앉아, 서여국에서 보낸 여섯 성의 문서를 살펴보고 있었다.소욱은 솔직히 말했다.“장미말이다. 보기엔 물러빠진 것 같아도, 일 처리 하나는 칼같이 하는구나. 겨우 왕위에 오른 지 얼마나 됐다고, 땅을 그렇게 많이 내주다니. 반란이 안 나면 다행이겠어.”봉구안은 차분하게 대답했다.“장미는 그냥, 숙씨 가문의 나라만 지키면 돼요. 소주국이나 정국 땅은 원래도 관심이 없었답니다.”그게 오히려 다행이었다.봉장미가 서여국에서 할 일이 있다면, 과거에 얽매여 자신을 괴롭히는 일은 없을 테니까.대전 안.
봉구안이 놀란 건 두 가지였다.첫째는 봉장미가 빠르고 순조롭게 황제의 자리에 앉았다는 점이었다.둘째는 두 개의 성을 돌잔치 축하 선물로 준다는 게 너무 과하다는 것이었다.그에 반면 소욱은 아무 부담 없이 그 선물을 받았다.그에겐 많을수록 좋다는 말이 진리였으니, 하물며 그게 아들들 몫이라면 더더욱 반가운 일이 아니겠는가.봉장미는 외숙모로서 제 몫을 톡톡히 해냈다.봉구안이 그녀와 유아를 위해 서여국에서 그 많은 장애물을 제거해 준 보람이 있었던 것이다.그들은 이 선물을 떳떳하게 받을 자격이 있었다.소욱이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내자, 유사양이 즉시 서여국의 대례를 넘겨받았다.한편 봉 대인은 아직도 서여국의 새 황제가 자기 딸 봉장미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그는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서여국 새 황제란 자는 어쩌자고 저리 미련한 짓을? 설마 남제를 두려워해 아부를 떠는 건가?’그는 투덜댔다.“저래서야 어디 황제 노릇을 하겠나? 역시 여자는 국정을 맡아선 안 돼. 남자처럼 대의명분을 세울 수가 없으니 말이야.”봉 부인은 딸이 그리워졌다.그녀는 서여국 사신에게 물어보고 싶었다.‘장미는 그곳에서 잘 지내고 있을까? 심히 걱정이 되는구나…’이번 돌잔치는 서여국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에도 알려져, 각국에서 사절이 속속 도착했다.특히 북연과 양나라는 속국의 입장이기에, 예물을 풍성히 준비해왔다.이를 지켜보던 강림은 감탄했다.“역시 태어날 때부터 잘 태어나야 한다니까.”그 옆에 있던 늙은 범진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아니, 배부른 놈이 배고픈 놈 심정 모른다더니. 남제 최고 부자의 아들도 그리 말할 자격은 없지 않소?”강림은 웃으며 물었다.“형님은 무슨 선물을 준비하셨습니까?”늘 눈웃음을 짓는 동방세가 웃으며 말했다.“황후 마마께서 아예 예물 들고 오지 말라고 하셨소. 안 지키면 교류 끊겠다고까지 하셨으니 안 들을 필요가 없지. 자네들은 서신을 못 받았나 보오?”강림은 눈썹을 찡그리며 되물었다.“진짜입니까?”자신만
소욱이 태자를 책봉하겠다고 결심한 건, 단순히 충동적으로 내린 결정이 아니었다.사실 두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그는 이미 그런 마음을 품고 있었다.그 당시에는 설령 봉구안이 낳는 아이가 딸이라 해도, 모든 반대를 무릅쓰고 황위 계승자로 키울 생각이었다.하지만 지금은 두 아들을 두고, 누구를 태자로 삼을지 고민해야 했다.곰곰이 생각한 끝에, 역시 큰아들이 더 믿음직하고 안정적이었다.게다가 ‘장자를 태자로 삼는다’는 건 조상 대대로 내려온 규범이기도 했다.쌍생아의 불길하다는 소문도 이제 거의 사라졌고,지금이야말로 태자를 세우기에 가장 적기였다.봉구안과 미리 상의하지 않은 건, 그녀에게 기분 좋은 ‘깜짝 선물’을 주고 싶기 때문이었다.하지만 정작 봉구안은 기쁜 감정보다는 놀란 기색이 더욱 역력하였다.기쁜 감정보다, 이렇게 큰 일을 그녀 몰래 결정했다는 당혹감이 먼저 밀려온 것이다.이 정도로 큰일을 감췄다면, 그 외에 또 얼마나 많은 것을 숨기고 있는 건지···오늘 밤, 반드시 따져 물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조정 대신들은 태자 책봉에 대해 아무 이의도 없었다.몇 해 전까지만 해도, 황실 후계자 문제는 모두의 고민거리였다.그토록 기다려온 태자였기에, 모두가 기꺼이 술잔을 들었다.문신들은 길하고 화려한 축사를 쏟아냈고, 무장들은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오십이 넘은 어느 장군은 자리에서 일어나 검무를 펼치며, 온몸으로 기쁨을 표현해 박수를 받았다.소욱 품에 안긴 작은 태자는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날인지 아직 알지 못했다.그저 어른들이 시끄럽고 우스꽝스러워 보일 뿐이었다.하지만 아무도 모르게, 오늘부터 나라의 운명은 그 어깨 위에 놓이게 된 것이다.물론 지금은 아버지인 황제가 그 무게를 함께 짊어지고 있기에, 그는 아직 그 무게를 느끼지 못할 뿐이었다.그에 비해 작은 황자는 아무 생각 없었다.아버지가 갓 태자를 책봉한 그 순간, 그는 봉구안 품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끝내 잠들었다.일찍 일어나 너무 피곤했던 탓이니, 이 정도면 아버
이른 아침, 두 황자는 이미 일어나 세수와 몸단장을 마쳤다.유모들과 궁녀들이 분주히 옷을 갈아입히고 있었다.평소 장난기 많고 대강대강하던 작은 황자는 오늘따라 유난히 생기가 넘쳤다.한 궁녀가 낮은 목소리로 웃으며 말했다.“전엔 늘 아이같아 보이셨는데, 오늘은 정말 황자마마처럼 늠름하시네요, 마마.”작은 황자의 유모는 늘 그를 친자식처럼 보살펴 왔고, 감히 불경하다 할 수 있겠지만 마음속으론 이미 자신의 아들처럼 여겼다.“우리 마마는 본래도 잘나셨답니다. 무엇을 입어도 곱지요.”옆방에서는 큰 황자의 유모가 이미 준비를 마치고 황자를 안고 이쪽으로 들어섰다.“작은 마마는 아직도 준비 안 됐나요? 태중에서도 늘 형님한테 밀리더니, 이젠 좀 앞서야 하지 않겠어요?”작은 황자의 유모는 즉각 반격했다.“말씀 잘 하셨어요. 우리 마마는 형이 있어 든든하고 복 많은 아이거든요.”형이라는 존재는 아무래도 더 많은 짐을 짊어지게 마련이다.요즘처럼 매일 황제께서 대황자를 어전으로 데리고 다니는 걸 보면, 그 무게를 실감할 수 있었다.그 탓인지 대황자는 늘 졸려 보였다.그때, 궁녀 만추가 다가와 물었다.“두 황자마마 다 준비 되셨나요?”“곧 끝납니다.”모두가 눈빛을 교환하며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주전.봉구안은 몸소 소욱의 허리띠를 매주고 있었다.그 모습은 더없이 정숙한 아내의 모습이었다.소욱은 그런 그녀가 낯설기까지 했다.“좀 더 자도 되는데… 이런 건 혼자 할 수도 있다.”십 년을 하루같이 새벽마다 무공을 연마해온 그녀에 비해 자신은 아침잠 많은 황제로 보일 뿐이었다.궁인들조차 슬슬 눈치를 챘다.봉구안은 고개를 숙인 채, 허리띠에 달린 옥패를 가지런히 정리했다.“늦게 자는 게 더 문제죠.”“봉가는 대대로 현명한 황후들이 많았죠.”“전 제일 게으른 황후로 남기 싫답니다. 그중에서도 제일 현명한 황후로 남을 거거든요.”그 말에 소욱은 속으로 황후는 자기를 너무 과소평가한다고 생각하였다.그녀는 다른 어느 황후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완부옥이 남강으로 돌아가려 하자, 서왕은 그리 탐탁지 않게 여겼다.비록 자신이 그녀와 함께 간다 해도 언제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르고, 늘 그녀를 지켜줄 수는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그는 진지하고 인내심 있는 눈빛으로 그녀에게 말했다.“예전 같았으면, 바로 널 따라나섰을 것이다. 반대할 이유도 없었겠지.”“하지만 폐하께서 북연의 계략에 휘말린 이후, 난 하나를 깨달았다.”“말도 앞발을 헛디딜 수 있다는 거지.”“그 후로는 어떤 일이든 조심스럽게, 경계를 늦추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네가 네 사부가 걱정된다면, 내가 사람을 보내 구하게 하마.”“굳이 네가 위험을 무릅쓸 필요는 없지 않느냐.”완부옥은 그가 이렇게 그럴싸한 말을 줄줄이 내뱉을 줄은 몰랐다.“지당하신 말씀입니다.”“하지만 제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은 절대 사부님을 찾을 수 없을 겁니다.”“심지어 그분이 만들어 놓은 독기 장막조차 못 뚫을 걸요?”서왕은 잠시 생각하더니 제안을 내놓았다.“그건 어려운 일 아니다.”“네가 말해준 대로 그들이 움직이면 돼.”“그리고 우리 둘이 국경 지대까지 동행하면, 상황에 따라 바로 연락도 할 수 있지 않겠느냐.”완부옥은 그의 설득에 조금씩 마음이 흔들렸다.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좋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죠.”이렇게 하면 서로에게 가장 좋은 방법이 될 터였다.······봉구안은 완부옥을 만난 후, 곧장 염신의를 궁으로 불러들였다.이 염신의는 약이나 독의 해독제를 만든 인물로 뛰어난 의술을 지녔고, 세상 기이한 독을 연구하길 즐기고 능했다.약쟁이 사건이 마무리된 뒤, 염신의는 궁을 떠날 뜻을 내비쳤다.늘 자유롭게 살아온 그였기에, 황성에 오래 머무는 게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하지만 사람의 뜻은 하늘 뜻을 거스를 수 없다고 했던가. 그는 병을 얻고 말았다.해독제를 만들기 위해 밤낮없이 연구에 몰두한 탓에 그의 나이로는 버티기 어려웠고, 고뿔과 같은 병에도 여러 증상이 덧붙었다.봉구안은 그에게 거처를 마련해주고, 매일 태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