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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장군 황후
폭군의 장군 황후
Author: 일설연우

제1화

Author: 일설연우
“장군! 급보입니다! 장미 아가씨께서 치욕을 당해 자결하셨으니 속히 경성으로 복귀하여 큰아가씨 대신 혼인하라는 노부인의 명이 있으셨습니다!”

남제(南齊)의 변경, 준마가 금방 녹은 시냇물을 힘차게 밟으며 미친 듯한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말을 탄 봉구안(鳳九顏)이 최전방에서 달리고 있었다. 흰색 소복에 검은 머리를 대충 비녀로 틀어 올린 그녀의 주변으로 귀티 나면서도 날카로운 분위기가 풍기고 있었다.

그녀와 동생 봉장미는 쌍둥이였지만 이 시대에 여자 쌍둥이가 태어나면 불길한 징조였기에 그녀는 어릴 때부터 바깥을 떠돌며 자랐다.

성품이 온화한 봉장미는 누구에게 원한을 살 여인이 아니었다.

봉구안은 누가 그처럼 순수하고 착한 동생을 해하였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게 누구든, 범인의 가죽을 발라내서 개 먹이로 줄 것이다!

호위대는 그녀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뒤에서 애타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장군, 벌써 강행군으로 말 두 마리가 죽었습니다. 전방에 객잔이 있으니 가서 좀 쉬고…”

봉구안은 힘차게 채찍을 휘둘렀다.

“따라오지 못할 거면 군영으로 꺼지거라! 이랴!”

‘멍청한 놈들, 쉴 시간이 어디 있다고!’

그녀의 어깨에 짊어진 것은 봉씨 가문 백여 명의 목숨이었다.

호위대는 필사적으로 그녀의 뒤를 따랐다.

상대는 북대영(北大營)에서 가장 빠르고 신출귀몰하기로 소문난 봉 장군이었다!

그렇게 7일 후, 황성.

봉가에서 일국의 황후가 나왔다는 것은 지고무상한 영광이었다.

백성들은 천자의 혼인식을 구경하러 분분히 거리로 나왔다.

하지만 영친 대오가 도착했지만 새신부가 나오지 않고 있었다.

구경꾼들이 차츰 술렁이기 시작했다.

“봉가의 장녀는 얼마 전에 산적들에게 끌려갔다가 봉가의 친위대가 출동하여 겨우 구해왔다고 들었는데 순결을 잃었을지도 모르는 여인이 어찌 일국의 황후가 될 수 있단 말이오?”

“봉가의 여인들은 참 팔자도 좋소. 대대로 황후를 배출한 가문 아니오. 이런 든든한 집안이 우리 남제를 지켜주고 있어서 우리가 이런 태평 성세에 살고 있는 게지!”

“그런데 새신부가 왜 아직 안 나오지? 정말 무슨 일이 있는 거 아니야?”

사람들은 발꿈치를 들고 봉가의 담장을 기웃거렸다.

그 시각, 봉가의 대청 안.

명을 받고 새신부를 맞으러 온 상궁은 이미 석 잔째 차를 마시는 중이었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고 생각한 상궁은 봉 대인이 따라주는 차를 손사래 치며 거절했다.

“나으리, 혹시 새신부에게 무슨 변고라도 생긴 겁니까? 제가 신방으로 들어가서 확인해 봐도 되겠습니까? 이대로 기다리기만 하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길시를 어기면 저도 책임 못 집니다!”

일반 백성들마저 길시를 따져서 혼례를 올리는데 황가, 무려 이 나라의 제왕의 혼례라면 더 신중히 해야 했다.

상궁은 봉가에서 일부러 텃세를 부리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봉 대인은 신방에 들어가겠다는 상궁의 말에 안색이 급변했다.

그는 급기야 표정을 수습하고 짐짓 침착한 얼굴로 말했다.

“집사람이 딸을 보내기 아쉬워서 얘기가 길어지나 보오. 원래 그런 사람이니 내 사람을 보내 재촉하리다. 길시를 지체하는 일은 없을 테니 잠시만 더 기다려 주시오!”

말을 마친 그는 집사에게 눈짓했다.

집사가 바로 내원으로 달려갔다.

신방 앞에 도착한 집사는 조심스럽게 신방 문을 두드렸다.

“부인, 아가씨, 궁중에서 온 사람들이 빨리 나오라 재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방 안에 신부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봉 부인은 좌불안석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혼례복에 좀 문제가 생겨 수선 중이니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 전하거라.”

집사는 주변을 둘러보고는 창가에 대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부인,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습니다. 최 상궁이 벌써 몇 번째 재촉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신방으로 쳐들어올 기세입니다!”

봉 부인은 저도 모르게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를 어찌한단 말인가!

그들이 조바심을 태우고 있을 때, 날렵한 그림자가 측면의 창문을 넘어 신방 안에 들어왔다.

봉 부인은 경계 태세를 취하며 뒤로 물러났다.

“누… 누구냐!”

“저예요, 어머니.”

봉구안은 가면을 벗고 선녀도 울고 갈 아름다운 얼굴을 드러냈다. 딸을 알아본 봉 부인은 반가움에 눈물을 흘렸다.

“구안아! 우리 딸! 드디어 돌아왔구나!”

그녀는 다가가서 딸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며칠 전부터 타들어 가던 속이 드디어 안정을 찾았다.

“어머니를 뵙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어머니를 뵙는 거지만 봉구안은 불필요한 인사말을 건네지 않고 담담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기에 그녀는 입고 있던 옷을 벗고 틀어 올렸던 머리를 풀어 헤쳤다.

그 모습을 본 봉 부인은 다급히 다가가서 그녀에게 혼례복을 입혀주었다.

“미안하구나, 구안아. 구속을 싫어하고 자유를 원하던 너에게 이렇게 큰 짐을 지게 하다니…”

봉구안은 치맛자락을 살포시 들고 화장대에 마주 앉았다.

“죄책감을 가지실 필요는 없어요, 어머니. 자초지종은 서신에서 이미 봐서 알고 있습니다. 지금 시급한 것은 가문을 보전하는 것이지요.”

봉가의 사정으로 황가의 혼약을 파기하게 된다면 이는 아홉 대를 멸할 대죄였다.

봉 부인은 안타까운 마음에 한숨을 쉬었다.

“잘 돌아왔다, 아가. 떠나 있는 동안 어미도 네가 그리웠단다…”

“장미는 어떻게 되었나요?”

봉구안은 여전히 동요 없이 담담한 표정으로 물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주먹을 꽉 쥔 그녀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내심 속으로 봉장미가 자결에 실패하여 아직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고 싶었다. 그래서 어릴 때처럼 갑자기 나타나서 언니 왜 이제 왔냐고 투정이라도 부려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봉 부인의 슬픈 표정에서 그녀는 자신의 기대가 모두 헛된 것이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말았다.

“장미는… 이미 장례를 치렀어. 차라리 잘 된 거지. 아마 살아 있었어도 그날의 악몽이 떠올라 고통스러워했을 거야. 그날 밤, 장미는 저택 문 앞에 벌거벗긴 채로 버려져 있었어. 그리고 가슴에는…”

봉 부인은 흐느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봉구안은 싸늘하게 식은 표정으로 질문을 이어갔다.

“누가 한 짓인지 단서는 잡았나요?”

“그게… 폐하의 총애를 받는 황귀비였어! 그 요물이 장미를 해친 게야!”

우드득!

봉구안이 분노에 치를 떨자 손에 들고 있던 연지 함이 그대로 부서졌다.

봉 부인은 수심 가득한 얼굴로 딸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

“구안아, 어릴 때부터 군영에서 자란 네가 무예가 출중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후궁은 전장과 달라. 꼭 조심해야 한다. 황귀비는 폐하의 총애를 등에 업고 수많은 사람을 해치고 죽였다. 하지만 폐하의 총애는 나날이 깊어져만 갔지. 절대 황귀비와 충돌을 빚어서는 안 된다, 아가.”

장미를 잃었는데 또 다른 딸까지 잃고 싶지 않은 것이 봉 부인의 마음이었다.

하지만 가만히 있는다고 주변도 조용하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봉구안이 붉은 면사포를 머리에 쓰고 방을 나오려던 찰나, 밖에서 갑자기 앙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혼례를 잠시 중단한다! 이 몸은 황귀비 마마의 명을 받들어 몇 가지 조사할 것이 있어 왔노라!”

봉 부인은 봉구안의 손을 잡으며 다급히 말했다.

“일단 어미가 나가보마.”

황귀비의 측근인 태감은 기세등등하게 말을 이어갔다.

“봉가의 장녀는 얼마 전에 산적에게 포로로 잡혀간 적이 있다고 들었다. 황귀비는 황실의 명예를 생각하시어 궁중 여관을 보내 검사를 지시하셨다.”

“검사라니요!”

봉 부인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묻자 태감이 냉소를 지으며 답했다.

“당연히 순결을 검사해야겠지!”

“뭐라고요?”

새신부가 출가 당일 날 순결을 확인 받는 것은 전례 없던 치욕적인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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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9)
goodnovel comment avatar
박은주
뒷얘기가 궁금해서 못견딜 정도로 흥미롭습니다
goodnovel comment avatar
박은주
시작부터 흥미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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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주
시작부터 흥미롭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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