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은 급한 마음에 적당한 핑계를 둘러댔다.“폐하, 마마께서 땀을 많이 흘리신 것 같으니 소인이 몸을 좀 닦아드리겠나이다.”곧이어 소욱은 침전을 떠났다.연상은 살며시 봉구안의 허리띠를 풀고 겉옷을 벗겼다.역시나 상처가 벌어져 있었다. 당장 처리하지 않으면 피가 스며나왔을 것이다.연상은 늦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바삐 움직였고 소욱은 밖에 앉아 싸늘한 눈빛으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는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자진궁으로 돌아갈 생각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그러다가 구석진 곳에 있는 무언가가 눈에 띄었다.황후의 혼수품이 든 상자였는데 용과 봉황이 같이 하늘을 나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궁에서조차 흔히 볼 수 없는 정교한 공예였다.그는 저도 모르게 그것에 이끌려 다가갔다가 발 밑에서 이상한 느낌을 느끼고 걸음을 멈추었다.바닥에 깔린 벽돌 하나가 느슨해져 있었다.그는 어둡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시선을 아래로 떨구었다.봉구안의 상처는 그리 심각한 게 아니었지만 독을 해독하는 것은 아주 힘든 작업이었다.며칠 동안 매일 피를 쏟아내야 완전히 독을 제거할 수 있었다.그래서 그녀의 안색은 유난히 창백했다.게다가 밤낮을 쉬지 않고 말을 타고 달렸으니 몸에 무리가 온 것은 당연했다.그래도 회복력은 빨랐다.다음 날 아침 날이 밝자 그녀는 정신을 차렸다.침상 옆에서 지키고 있던 연상은 그녀가 눈을 뜬 것을 보고 기쁨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마마!”눈을 뜬 봉구안이 갈린 목소리로 물었다.“여긴… 영화궁이냐?”연상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네, 영화궁이에요! 마마께서 어제 의식을 잃고 고열에 시달리셨는데 민간 의원들이 이렇다 할 방도를 찾지 못해서 폐하께서 마마를 모시고 궁에 돌아왔어요. 그래도 태의의 약이 잘 듣네요. 적어도 열은 내렸으니까요.”봉구안은 애써 어젯밤 기억을 떠올렸지만 기억은 그녀가 쓰러지기 전에 머물러 있었다.“마마, 이따가 약이 다 달여지면 가져올 거예요. 며칠 더 드셔야 한다고 했어요. 그런데 상처는… 간단히 붕대로 감
아침 조회가 끝난 후, 소욱은 곧장 영화궁으로 왔다.연상은 급급히 약을 달여 침전으로 가져가다가 황제의 대오를 보고 놀라서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폐… 폐하를 뵈옵니다!”소욱은 조용히 그녀를 지나쳐 대전 안으로 들어갔다.황제가 영화궁을 방문해서 가장 기쁜 사람은 최 상궁이었다.연상은 다시 약을 가지러 가고 최 상궁은 남아서 황제의 시중을 들었다.그녀는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다과를 들고 나왔다.그런데 내전에 들어서자마자 문밖을 지키고 있던 유사양이 그녀를 저지했다.최 상궁이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자 유사양이 낮은 목소리로 경고하듯 말했다.“폐하께서는 마마와 할 이야기가 있다고 아무도 들지 말라 하였습니다.”최 상궁 입가에 걸렸던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졌다.연상도 자신을 말리며 황후의 주변에 얼씬도 못하게 하고 이제는 유 태감마저 자신을 막아서자 영화궁의 최고 상궁으로서 너무 서럽고 억울했다.한편, 침전 안.소욱은 봉구안이 앉아 있는 침대에 다가가서 앉았다.“몸은 좀 어떠하냐.”그의 질문에 봉구안은 담담히 답했다.“많이 좋아졌습니다.”곧이어 소욱은 사무적으로 말했다.“맹성주가 황성으로 돌아올 것이다. 전공이 혁혁한 개선장군이니 환영연회는 황후가 맡아서 하는 게 마땅하나…”그는 잠시 뜸을 들이고는 말을 계속했다.“몸이 많이 안 좋아보여서 녕비한테 주관하라고 하였다.”누가 장군 환영연회를 주관하는지 봉구안은 관심이 없었다.단지 곤혹스러운 게 있었다.“맹 소장군은 많이 다치셨다 하지 않았습니까?”그녀는 돌아오기 전에 스승에게 부탁해서 이번 일을 핑계로 오래도록 쉴 생각이었다.“아침에 완쾌되었다는 서신을 받았다. 보름 안에 황성에 당도한다는군.”말을 마친 소욱은 무심한 듯, 봉구안의 안색을 살폈다.봉구안은 고개를 들고 생각을 정리하느라 그의 미묘한 눈빛을 인지하지 못했다.분명 그녀 본인은 여기 있는데 보름 후에 황성에 당도할 자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황후.”사내가 갑자기 그녀를 불렀다.뒤늦게 정신을 차린 봉구안은
영화궁.북부가 안정되었으니 봉구안은 계속해서 그 배후의 인물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다.하지만 단서는 그 두 통의 서신을 제외하고 아무것도 찾아낼 수 없었다.그녀는 마치 막다른 골목에 갇힌 기분이 들었다.“마마, 약 드실 시간입니다.”연상이 약을 들고 들어와서 조용히 아뢰었다.봉구안은 한손으로 약그릇을 들고 단숨에 마셔버렸다.연상은 빈그릇을 보며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이렇게나 쓴 약을 한숨에 마셔버리다니!봉구안은 담담히 고개를 들고 창밖을 바라보았다.영화궁 내부에 그림자 시위가 또 추가된 것이 확인되었다.소욱은 왜 또 의심병이 도진 것일까?다음 날.봉 부인이 입궁했다.그녀는 딸의 창백한 안색을 보고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마마, 건강이 우선입니다.”남제에는 수많은 장령들이 있고 굳이 여인인 봉구안이 선봉에 설 이유가 없었다.어머니로서 봉 부인은 자식들이 평온하기만을 바랐다.봉구안은 모친의 걱정 어린 표정을 보고 부드럽게 말했다.“며칠 쉬면 괜찮아질 것입니다.”봉 부인은 연상을 바라보며 말했다.“마마와 단둘이 할 얘기가 있으니 넌 나가서 망 좀 보고 있거라.”“예, 부인.”연상이 나간 후, 봉 부인은 조심스레 주변을 살피고 약병 하나를 꺼냈다.봉구안은 상처 치료제인 줄 알고 받으려 했지만 봉 부인이 말했다.“나으리께서 거금을 들여 구해온 약입니다. 이걸 드시면… 평범한 여인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겁니다.”봉구안은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돼 인상을 찡그리며 물었다.“이게 뭔가요?”봉 부인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내력을 모두 잃게 하는 약입니다.”봉구안은 갑자기 등골에 소름이 돋고 항시 평온하던 얼굴도 균열이 생겼다.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그녀는 싸늘한 눈빛으로 봉 부인을 바라봤다. 채 아물지 못한 상처가 다시 벌어졌지만 아픈 느낌은 들지 않았다.육신의 아픔보다 아버지가 친히 그녀의 내력을 폐하려고 약을 구해왔다는 사실이 그녀의 마음을 싸늘하게 했다.따라서 자리에서 일어선 봉 부인은 그녀의 손을 잡고 애원
소욱은 음침한 눈을 하고 말 등에서 정신을 잃은 여인을 바라보았다.그녀는 마치 술에 취한 사람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밑으로 드리운 손은 뻘건 피가 흥건했다.급급히 어마장으로 달려온 연상은 황제가 황후를 안고 오는 모습을 보고 놀라서 예를 취했다.“폐하! 마마!”소욱은 그녀를 영화궁으로 안고 간 후에 태의를 불렀다.연상은 바닥에 납작 엎드려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침대가에 앉은 소욱의 주변으로 강압적인 기운이 풍기고 있어 감히 고개조차 들 수 없었다.태의는 봉구안의 상처를 붕대로 감은 후에 황제의 앞에 무릎을 꿇고 말했다.“폐하, 큰 상처는 아닙니다. 다만 기력이 회복되기 전에는 말을 타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태의를 물린 후, 소욱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연상을 바라봤다.“황후는 어쩌다 다친 거지?”연상은 떨떠름한 얼굴을 하고 답했다.“저… 저는 그냥 봉 부인을 궁 밖으로 배웅하라는 명을 받고 나갔다 오느라 자세한 과정은 보지 못했나이다.”“봉 부인이 황후에게 뭐라고 했느냐?”소욱의 차갑고 준수한 얼굴에 한기가 감돌고 있었다.연상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부인께서 나가 있으라고 하셔서 소인도 상세한 건 듣지 못했나이다.”소욱은 그 말을 듣고 얼굴을 찡그렸다.“이만 나가보거라!”연상이 밖으로 나간 후, 침전에는 소욱과 혼수상태의 봉구안만 남았다.소욱은 침울한 눈빛을 하고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단순히 기혈 부족과 몸살기운이라면 여러 번 혼수상태에 빠질 수는 없었을 것이다.‘몸에 다른 부상이 있지 않는 한은...’소욱은 침전에 고이 숨겨져 있던 채찍이 생각 나서 눈빛이 어두워졌다.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허리띠를 잡았다.허리띠가 풀리면서 옷섶이 느슨해지고 그녀의 하얀 피부와 가녀린 쇄골이 드러났다.소욱은 천천히 상의 옷섶을 향해 손을 뻗었다. 살짝만 잡아당기면 몸 어디에 상처가 있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그런데 그때, 그는 동작을 멈추고 말았다.이유는 설명할 수 없었다. 그날 밤 마차에서 그녀가
성격 온화한 맹 장군마저도 이번에는 참을 수가 없었다.그는 서신을 구겼다가 그래도 분이 안 풀려 불에 태워버렸다.“부인, 신경 쓰지 마시오. 구안이는 우리 딸이고 그 아이가 우릴 버리지 않는 한, 우린 평생 그 아이의 부모요!”맹 부인은 그런 그를 보고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약간 기분이 풀린 그녀가 물었다.“교먹이 구안이를 대신하여 황성에 복귀하기로 하였으니 곧 돌아오겠네요?”맹장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며칠 안에 당도할 것이오.”맹 부인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사실 난 동의할 생각이 없었는데 이제는 일이 순조롭게 풀리기만 기도해야겠네요.”맹 장군은 부드러운 어조로 부인을 달랬다.“폐하께서 매번 구안이를 황성에 부를 때마다 변방이 안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는데 그것에 불만을 가진 자들이 우릴 공훈을 믿고 교만하다고 탄핵 상서를 올렸지 않소.”“이번에 양나라와의 전장에서 대승을 거두었고 변방은 이미 안정되었다고 폐하께서 환영연회를 베푸셨으니 다른 장령들이 다 가는데 우리만 안 가면 더 많은 비하 발언들이 쏟아질 거요.”“하물며, 안 그래도 북대영에 불만을 품은 장령들이 많은데 이번에도 거절하면 구안이의 명성에 좋지 않소. 특히나 조카를 잃은 손덕방 장군은 호시탐탐 구안이의 공훈을 빼앗을 기회만 노리고 있으니!”“북대영의 전사들이 피 흘려 세운 공훈을 그런 간신배한테 빼앗길 수는 없지 않겠소.”맹 부인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하긴, 꾀병을 부리는 것도 방법은 아니지요.”“다른 건 다 괜찮아도 수십 년만에 드디어 장령들 사이에서 후작이 탄생하는데 일을 그르칠까 걱정되오.”맹 장군의 진지한 말에 맹 부인은 미소를 지었다.“부군께서는 언제면 후작 자리 하나 꿰차서 저에게 귀부인 자리를 누리게 해주실 건가요?”그렇게 농담하듯 말하고 있었지만 맹 부인은 여전히 불안했다.맹 장군도 그녀의 초조함을 눈치채고 부드럽게 위로했다.“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교먹이 나이는 어려도 똑똑한 아이이니 실수하지 않을 것이
소욱은 벌떡 몸을 일으키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자진궁으로 돌아간다.”그는 더 이상의 설명도 없이 그대로 영화궁을 떠났다.봉구안은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이유를 모르는 연상이 물었다.“마마, 폐하께선 식사 잘하시다가 어찌 갑자기 가신 건가요?”봉구안은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해시 초, 장신궁에 불이 켜졌다.소욱은 대전 안에 앉아 한 시진을 기다렸다.늦은 시간이 되자 진길이 말했다.“폐하, 안 올 것 같습니다…”이때, 문밖에서 조심스레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진길의 눈빛이 순간 빛났다.여자객이 과연 황후인 걸까?소욱이 눈짓하자 진길은 재빨리 가서 문을 열었다.하지만 문밖에 나타난 사람은 여자객이 아닌 어린 태감이었다.어린 태감은 황제를 보자 울먹이며 무릎을 꿇었다.“소… 소인… 폐하를 뵈옵니다.”소욱의 눈이 어둡게 빛났다.진길이 태감에게 물었다.“여긴 무슨 일로 들어왔느냐!”태감이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소인은 장신궁을 지나가다가 불이 켜져 있는데 지키는 사람이 아무도 없길래 혹시 궁녀가 청소를 하나 하여…”진길은 매섭게 상대의 말을 자르고 턱을 치켜올렸다.“폐하의 안전에서 거짓말을 하다니! 참수형에 처할 것이다!”태감이 당황하며 납작 엎드렸다.“폐하,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소인은… 사실 궁녀와 여기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는데… 장신궁에 불이 켜져 있기에 궁녀가 약속 시간 전에 미리 도착한 줄 알고… 잘못했습니다!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폐하!”자리에서 일어선 소욱은 태감 앞으로 다가가서 싸늘한 눈빛으로 상대를 주시하며 말했다.“형자사로 보내거라.”“예!”태감은 곧장 큰절을 올리며 애원했다.“목숨만 살려주십시오, 폐하!”소욱은 애원의 소리를 무시한 채, 밖으로 향하며 목에 있는 은사의 흔적을 닦았다.‘역시 너무 허술해서 안 속았나.’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가까이에서 눈으로 직접 봐야 눈치챌 수 있는 것이었다.소욱은 마치 어둠 속에서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눈
소욱은 냄새에 민감한 편이 아니었기에 그 여자객의 향기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지는 않았다.그녀의 목을 조르고 손목을 잡은 적은 있지만 자로 잰 것도 아니고 여인의 손목과 목덜미의 굵기는 거의 비슷해서 정확한 추측은 판단을 내릴 수는 없었다.이는 단지 그가 황후를 자극하기 위한 수단이었다.이런 방식은 다른 사람에게는 통할지 몰라도 수많은 전장을 겪으며 수많은 포로들을 상대한 봉구안에게는 통하지 않았다.소욱이 진짜로 그녀가 여자객이라고 확신했다면 이렇게 빙빙 에둘러서 떠볼 리가 없었다.그가 유일하게 장악하고 있는 단서는 그 채찍뿐이었다.그녀는 호수처럼 고요한 표정으로 담담히 그에게 말했다.“그것에 대해서는 설명드릴 수 있습니다. 신첩의 신변에는 연상을 제외하고도 여자 그림자 호위가 한 명 있습니다. 신첩이 황궁에 입궁할 때 신첩을 보호하려고 같이 들어왔지요. 그 물건들은 그 호위의 것입니다.”소욱의 눈매가 가늘어졌다.“그림자 호위라?”봉구안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그 아이는 신첩이 우연한 기회에 목숨을 구해준 아이이고 신분이 불분명한 아이입니다. 너무 불쌍해서 신첩이 옆에 두기로 했지요. 아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입궁한 뒤, 능연이를 몰래 조사하라고 지시를 내렸었습니다. 능연이의 죄명을 밝히는데 가장 큰 도움을 준 아이입니다.”소욱의 인상이 눈에 띄게 찌푸려졌다.처음 그 자객을 만났을 때, 그녀가 도망간 방향도 영화궁이었다.들어보니 앞뒤가 맞는 말이긴 하나, 소욱은 그 말을 그대로 믿을 수는 없었다.“그 아이는 어디 있느냐.”소욱이 물었다.봉구안은 침착한 어조로 대꾸했다.“신첩은 그 아이와 노예 계약을 하지 않았기에 출입이 자유롭습니다. 신첩이 기도를 올리러 출궁하기 며칠 전에 저에게 작별을 고하더군요. 북부로 가보고 싶다 하였습니다.”소욱이 싸늘하게 말했다.“그대로 보내주기는 아쉬운 재능 아니더냐?”봉구안은 짐짓 한숨을 쉬며 답했다.“본디 우연한 만남이었고 그 아이는 신첩을 도와 능연이의 죄증을 밝혀냈
성문이 열리고 개선군대가 성 안으로 들어오자 수많은 백성들이 마중을 나왔다.“맹 소장군은 어느 분일까?”“말을 타고 맨 앞에 계신 분이겠지!”“그런데 왜 가면을 쓰고 있지? 이러면 얼굴을 볼 수가 없잖아!”“자네가 몰라서 하는 소리야. 소문에 맹 소장군은 너무 준수하게 생겨서 강압적인 분위기를 망친다고 가면을 쓰셨대.”“아니야. 얼굴에 못난 흉터가 있어서 가면을 쓴다는 소문도 있어!”사람들의 대화의 주제는 모두 개선하고 돌아온 맹 소장군이었다.현재 맹 소장군으로 위장한 교먹은 말 위에서 자신을 환대하는 백성들을 굽어보고 있었다.북부에서 이곳으로 오는 길목마다 그녀에게 감사인사를 표하기 위해 백성들이 마중나와 큰절을 올리고는 했다.“북부에서 맹 소장군은 신성불가침의 존재입니다!”“맹 소장군은 진정한 전신강림입니다!”백성들의 열정은 황성에 도착했을 때도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그들은 병사들을 위해 신선한 야채와 과일을 들고 나왔고 돈 좀 있는 상인들은 아예 옥패나 보석을 들고 나와 장령들의 목에 걸어주었다.교먹은 그 모든 것을 바라보며 마치 가면과 혼연일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지금은 그녀가 바로 맹성주인 것이다.그녀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백성들의 경배를 당연하게 받았다.처자들은 수줍게 얼굴을 붉히면서 비명을 질렀다.“맹 소장군께서 날 봐주셨어!”“아니야! 장군은 날 본 거야!”사내들이 맹성주를 향한 경외심도 여인들에 비해 전혀 뒤처지지 않았다.“소장군, 저도 북영군에 가입하고 싶습니다!”교먹은 그들을 향해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나라를 위해 싸우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자라면 북영군의 대문은 언제나 열려 있을 것이다!”역관에 입주하기 전에 장령들은 일단 먼저 궁으로 가서 보고를 해야 했다.성문에서 황궁까지 가는 길목에서는 장군을 찬양하는 목소리가 끊이지를 않았다.황궁 안.소욱은 대전에서 대신들과 함께 장령들을 맞았다.두터운 갑옷으로 무장한 장령들이 근엄한 분위기를 풍기며 안으로 들어섰다.하지만 문무백
"공자님,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곧 다 됩니다!" 연상은 즐겁게 부산을 떨며, 자신의 이런 행동이 소탁에게는 부담이 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곧, 음식들이 다 되었다. 연상은 미역국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기대에 찬 표정으로 소탁을 바라보았다. "소 공자님, 오래도록 장수하시길 기원합니다. 모용길처럼...""아, 이런! 제 입이 이렇게 험합니다. 모용길 같은 악인과 소 공자님은 전혀 다르시죠." 소탁은 국을 먹지 않고 연상에게 물었다."너는 행복하니?" 연상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저야 당연히 행복하죠. 나쁜 사람들이 인과응보로 벌을 받지 않았습니까.""게다가 오늘 의원께서 말씀하시길, 공자님의 눈이 점차 나아지고 있다고 하였어요.""전 공자님께서 곧 다시 빛을 볼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연상아, 너와 나는 이뤄질 수 없는 사이야."소탁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도 결국에는 이런 말까지 하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연상은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담담하게 웃었다. "공자님, 저도 알고 있어요. 공자님은 황실의 귀한 분이시고, 저는..." "네 신분 때문이 아니야. 연상아, 난 너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 너에게 짐이 되고 싶진 않다."이 말을 듣자마자 연상의 눈에 갑자기 한 줄기 빛이 어렸다. "단지 절 걱정하시는 것 뿐이지, 절 싫어하시는 건 아니군요?" 소탁의 목이 갑자기 조여들었다. "나는..." 그의 일생은 큰 기복이 있었고, 혼자 살아가게 될 운명이었다. 한 번도 인연을 찾을 생각을 해본 적 없었고, 누군가와 평생을 함께할 생각도 해본 적 없었다. 연상이란 아이는 그에게 있어 더 과분한 존재였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이 시간 동안 그녀가 곁에 있어 그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는 사실이었다. "난 너에게 남녀 간의 사랑을 품고 있지 않아. 설령 내가 여자를 찾는다 해도, 그건 아내지 시녀가 아니야." 연상은 그의 말을 듣고 눈이 크게 떠졌다. 시녀? 소탁은 선의로 그녀에게 일깨워주었다
완부옥은 예로부터 여자를 좋아했다. 남자를 대할 때조차도, 가볍게 희롱하거나 농을 던질 뿐이었다.그런 그녀 앞에 서왕이 호의를 드러내자, 그녀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게다가… 분명 그도 남자를 좋아하지 않았던가.서왕은 그녀의 반응이 예상보다 격해 당황하며 서둘러 설명했다.“우리는 비슷한 처지가 아니더냐? 같이 사는 건… 서로에게 나쁘지 않지 않느냐.”“네가 떠나면, 난 또 다른 이와 혼인해야 할 텐데… 너처럼 내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여인은 없을 것이다.”“또다시 나 자신을 숨기며 살아야 할 테니… 차라리 그냥 이렇게 지내는 게 낫지 않겠느냐?”그 말을 들은 완부옥은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그 말씀이셨군요.”그가 정말 자신에게 마음이 있는 줄 알고 긴장했건만… 그게 아니라니 다행이었다.……한편 모용길의 죄행이 세상에 밝혀지자, 남제 전역이 발칵 뒤집혔다.백성들 또한 믿기 어려워했다.“그 자가 그렇게 오래 살았다고? 분명 불로장생의 술법이 있었던 게지. 폐하께서 그걸 두려워해 제거한 거야.”“약쟁이 사건도 정말 복잡하군. 처음엔 모용욱이 범인이라더니… 이번엔 왜 모용길이 나와? 설마 이번에도 헛다리 짚은 건 아니겠지?”“뭐가 어쨌든 간에 약쟁이는 전부 모용가 짓이란 말이잖아. 그런 집안은 몰아내야지!”분노한 백성들은 결국 모용가로 몰려가 돌과 썩은 달걀을 던지며 고함쳤다.“남제에서 당장 꺼져라!”“모용가 놈들은 천벌 받아야 마땅해! 죄 없는 사람들 고통받게 했잖아!”며칠째 모용가는 백성들의 소란에 시달려, 누구 하나 문밖을 나서지 못했다.……성 외곽의 한 촌락.낡은 농가 안, 여인이 낮은 목소리로 다급히 말했다.“들었어? 약쟁이 사건 피해자한텐 조정에서 보상금을 준다더라. 장순이네도 그랬잖아. 우리도 당장 관청 가자고, 장대복! 내 말 듣고 있는 거야?”장대복은 장순의 친삼촌이었다. 어린 조카를 생각하면 늘 미안함이 앞섰다.“형님은 일찍 돌아가셨고, 그 모자 둘이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지 당신도 알잖아.”
소욱은 미소를 지었다.“부창부수라 하지 않느냐. 함께 손잡고 세상을 다스릴 것이다. 황부도 결국 한 여자의 지아비이지 않겠느냐.”그 말을 들은 서왕은 한껏 조이던 가슴이 결국 힘없이 내려앉았다.그는 즉시 두 손을 모아 절하며 간언했다.“폐하, 그건 절대 안 됩니다!”“폐하께서는 일국의 군주이십니다. 어찌 여인의 그늘 아래 계시겠습니까?”“이 일이 만에 하나라도 세상에 알려진다면, 조롱과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평소 성정이 온화한 서왕이지만, 마음에 걸리는 일이 생기면 은근히 고집이 세지는 성격이었다.소욱은 목소리를 날카롭게 높였다.“그래서 말이지. 이 일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아.”서왕은 속으로 중얼거렸다.‘폐하도 이게 창피한 줄은 아시는구나…’“황후 마마께서는 폐하께서 황부가 되겠다는 걸 허락하셨습니까?”소욱은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황후가 왜 반대하겠느냐? 설마 다른 사내를 맞이해야한단 말이냐?”서왕은 잠시 헷갈려 그 말에 말려들 뻔했다.“그런 뜻이 아니라, 황후마마께서도 이 일이 폐하께 불리할 수 있다는 걸 알고 계신지 여쭈려는 것입니다.”소욱은 눈을 좁히며 말했다.“내 너를 형제로 생각하니까 이런 말도 하는 것이다.”“이미 내가 결정한 일이야. 누구도 바꿀 수 없어.”“너는 그저 국정을 맡아 잘 처리하거라. 내가 황후와 함께 돌아올 때까지 말이다.”그러자 서왕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하지만 폐하 신도 이번에는 휴가를 청하려 했습니다.”매번 국정을 떠맡는 것도 지치는 일이었다.아무리 가까운 형제라도 지켜야 할 선이 있지 않겠는가.‘이 나라는 분명 소씨 가문의 일국이지 않는가.’ ‘잠깐… 순간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서왕은 방금 스쳐간 생각에 스스로 놀랐다.감히 황제에게 이런 불만을 품다니. 마음으로도 짜증을 내다니, 감히 내가?’소욱은 인내심을 다잡으며 물었다.“휴가를 내겠다고? 무슨 연유냐?”서왕은 몇 초간 머뭇거리다, 정색하며 대답했다.“왕비와 함께할 시간이 필요합니다.”소욱은
서왕의 심문이 시작되자, 손추의 수하였던 자객은 결국 모든 사실을 고백했다.“그… 그 일은 저희가 꾸민 일입니다.”“모용길이 왕가의 피를 원했고, 손추가 직접 그 일을 맡았습니다.”“하지만 그분은 왕이셨고, 무공도 출중하셨습니다. 손추는 선제를 이간질해 부친을 의심하게 만들었고, 결국 모반의 증거를 조작했습니다.”그 뒤의 이야기는 서왕도 이미 알고 있었다.그의 아버지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도 조정에 충성을 다했다.군주의 명이 떨어지면, 신하는 죽는 수밖에 없었다.유배길에 올라서도 그의 아버지는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다.그는 끝까지 선제가 자신의 결백을 밝혀주리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그러나 그 희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약쟁이단이 아버지의 목숨을 노릴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진실이 드러났을 때, 서왕은 마치 천근 무게의 짐을 내려놓은 듯 가슴이 후련해졌다.그러나 죽은 자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 사실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쓰라림으로 번져왔다.그가 정원으로 돌아오자, 멀리 나무 아래서 완부옥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서왕은 한 걸음에 달려가 그녀를 와락 안아 올렸다.“이번 일을 해결해줘서… 정말 고맙다!”“드디어 모두가 알게 되었어. 부친께서 얼마나 억울하게 누명을 썼는지…”“선제도 진범을 찾고자 했었지만, 결국 오늘에서야 제대로 밝혀졌어. 정말, 정말 고맙다…”서왕은 거듭 고마움을 표현했고, 완부옥은 조금은 지겨워하며 그를 말렸다.무엇보다 이 남자가 이렇게까지 그녀를 직접 껴안을 줄은 몰랐다.조금 불편한 표정이었지만, 완부옥은 조용히 손을 들어 그의 등을 토닥였다.“됐습니다. 됐어요. 그렇게 큰일도 아닌걸요.”“정말 제게 보답하고 싶다면, 폐하께 소환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여쭤봐 주세요.”서왕은 그녀를 놓고, 놀라움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아직도 포기 못 한 것이냐?!”완부옥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런 게 아닙니다.”“그저 소환이 어떻게 지내는지 알고 싶은 것뿐입니다.”“정인이 아니더
세상일이란 참 아이러니했다. 열무신은 한 발 늦게 도착했다. 그가 천옥에 도착했을 때, 모용길은 이미 숨을 거둔 후였다.모용길의 시신을 바라보며 열무신은 주먹으로 벽을 내리쳤고, 낮은 포효를 내뱉었다. 사람들은 착한 사람은 일찍 죽고 재앙은 천 년을 간다고 했는데, 정말 그랬다! 모용길 같은 자는 200살이 넘게 살다가 죽었는데, 맹성주 같은 이는 관례도 치르기 전에 죽임을 당했다. 이를 생각하니 열무신의 증오심이 하늘을 찔렀지만, 이 빚을 누구에게 갚아야 할지 알 길이 없었다.너무 감정이 격해져서, 열무신은 천옥을 나서자마자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기절해버렸다.황궁. 봉구안은 임시로 자진궁에 거처하고 있었다. 그녀는 회임 중이었고, 점차 배가 불러오기 시작하자 회임이 실감 났다.정말로 아이가 서서히 자라고 있었다. 소욱이 정해준 태의는 매일 그녀에게 와서 맥을 짚었다. 최근 그녀의 태상은 안정되어, 더 이상 안태약을 마실 필요가 없고 그저 조용히 쉬기만 하면 되었다.아이의 일에 대해서, 봉구안은 걱정하지 않았다. 약쟁이 사건도 이미 해결되어, 그녀의 큰 근심을 덜어주었다. 현재 유일하게 장미에 대해서만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장미의 옛 병이 재발할까 걱정되었다.그것이 만약 재발한다면, 그녀의 몸과 마음에 좋지 않을 터였다.봉구안이 이 일을 생각하고 있을 때, 황제가 도착했다. 소욱은 약쟁이 사건의 최신 진전을 가져왔다. 그는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열무신이 붙잡은 그 사람들이 증명할 수 있다는구나. 이미 200년 전에 태조는 돌아가셨고, 부활한 흔적은 전혀 없었다 하엿다. 모든 것이 모용길의 환상이었던 거야.”“짐은 이 사건의 모든 세부 사항을 대중에게 공개할 생각이다. 모용길이 남긴 큰 돈은 모두 약쟁이 매매로 얻은 것이야. 짐은 이 돈을 피해자들과 그 친척들을 위로하는 데 쓸 것이다.”“이에 대해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그는 걱정이 가득했다.봉구안은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의 이 조치는 백성
마지막으로 태조를 다시 보았을 때, 그는 이미 병석에 누워 숨이 끊어질 듯했다. [모용길... 내 아우야, 너는 내 마음을 알지. 짐에겐 아직 이루지 못한 일들이 많다. 새 정치를 세우지 못했고, 태자는 아직 어리지. 난 단지 하늘이 인색해서 짐에게 몇 년을 더 주지 않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단 일 년이라도 짐이 일 년만 더 산다 해도 좋을 텐데... 남쪽의 수해, 북쪽의 기근, 남제는 사방에서 적에 둘러싸여 있고, 북연은 우리를 업신여기며, 내부에는 반적이 있는데... 어찌할까, 염라대왕이 목숨을 거두어 가니, 짐은... 그저 손을 놓을 수밖에 없구나. 아우야, 나라의 일을 모두 네 손에 맡기노니, 너는 태자를 보필하라. 너는 그의 고모부이자, 또한 그의 상부이니. 아우야, 짐은 오직 너만 믿는다.]기억 속의 태조가 눈앞의 그와 겹쳐졌다. 모용길은 낮은 목소리로 흐느꼈다. 그의 눈에 태조의 뒷모습은 무척이나 수척했다."형님! 형님께서 원하던 것을 제가 마침내 이루어냈습니다! 형님께서는 불로장생할 것이고, 이 남제는 반드시 형님의 통치 아래 번영하며, 장차 천하를 통일하여 대업을 이룰 것입니다!"당초 남제가 새로 세워졌을 때 태조는 약속대로 그에게 강산의 절반을 주려 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태조의 뜻이 천하에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태조와 계속해서 사방을 정벌하고 싶었다. 하지만 운명은 어쩔 수 없었다. 이제 태조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볼 수 있게 되어, 그는 마침내 모든 짐을 내려놓고 평안히 떠날 수 있게 되었다.모용길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 바닥에 쓰러졌다. 눈물로 가득 찬 시선 속에서,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난 아내의 모습을 보았다. 그녀가 그를 데리러 온 것이다. 그는 팔을 뻗어 마치 어린아이처럼 울었다.여인은 몸을 숙여 그의 손을 잡아 자신의 얼굴에 대고, 그에게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대인, 남은 길은 제가 당신과 함께 걸을게요." 모용길은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우리 함께..."
열무신은 이번에도 큰 공을 세웠다.그가 아니었다면, 또 누군가 새로운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그는 사로잡은 자객들을 직접 데리고 돌아와 천옥에 넘긴 뒤, 단 한숨도 쉬지 않고 곧장 심문에 들어갔다.자객들은 처음엔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하지만 모용길이 이미 붙잡혔다는 소식을 듣자, 그들의 희망도 이미 무너진 셈이었다.이내 하나둘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저희는 명령을 따랐을 뿐입니다… 폐태자를 노린 건 그 분의 ‘혈’ 때문이었습니다.”그들은 태조 황제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불로장생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태조 황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백골이었습니다. 이백 년 전, 모용길이 시신을 도굴해갔을 때부터 이미 시체에 불과했습니다. 살려낼 수 있을 거라는 건, 망상이었어요!”“애초에 죽은 자였다고요!”그들이 그 이야기를 꺼낼 때, 말투에는 모용길을 조롱하는 기색이 역력했다.이백 년이라는 세월 동안 쓸모없는 일에 목숨을 건 그를 그들은 미련한 바보로 여겼다.같이 심문을 진행하던 관리가 물었다.“너희는 어떻게 아는 것이냐?”“태조 황제께서 살아난 적이 없다는 걸 말이다.”“모용길이 그렇게까지 집착한 이유가 뭐였지?”자객들 중 한 명이 비웃듯 코웃음을 치며 답했다.“모용길이 약쟁이를 만든 건, 그들로 실험해 불로장생의 약을 완성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약을 제조한 의원들은 손수 기록을 남겼고, 그 손책들엔 분명히 쓰여 있었죠. 이백 년 동안 그들이 상대한 건 단 한 번도 움직이지 않은 ‘시체’였다고요.”“아무리 약을 먹여도 살아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말입니다.”다른 자객 하나는 공포 어린 얼굴로 말을 이었다.“모용길은… 이미 오래전에 미쳐 있었습니다. 그는 자주 아무도 없는 허공을 향해 말을 걸었어요. 마치… 마치 그 자리에 태조 황제가 서 있기라도 한 듯이 말이에요.”또 다른 자객이 덧붙였다.“그 자는 단지 태조 황제를 살리려 한 게 아닙니다. 자신도 불로장생 하고 싶었던 거에요.”“그리고 그게… 그 자는 정말로 성공했
태황태후는 직접 선조를 만나기 위해 천옥으로 향하려 했다.하지만 황제의 명이 내려져 있었다.그의 허락 없이는 누구도 모용길을 접견할 수 없었다.하는 수 없이, 태황태후는 궁으로 전갈을 보냈다.하지만 설령 황제가 허락하더라도 모용길이 누구를 만나려 하지 않았다.그는 오직 태조는 아직 살릴 수 있다는 집념 하나에 사로잡혀 있었다.그런 그가 천옥에 갇힌 지금, 마음은 타들어가듯 초조했다.“그 어린 황제놈은 어딨느냐! 어서 나를 뵈러 오라 하지 못할까!”모용길에게 후손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그는 생각했다.이 나라 남제는, 태조와 자신이 함께 세운 나라였다.그런 자신을 막고 있는 소욱 따위가 어찌 감히 군림한단 말인가.천옥에 갇힌 날부터,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소리쳤다.“태조를 살려야 한다! 어서 황제를 데려와라!”하지만 그는 몰랐다.그의 그 모든 고함과 분노는 소욱이 의도적으로 시간을 끌며 그를 흔들기 위한 계략이었단 사실을 말이다.그리고 다섯째 날.천옥의 간수가 냉정한 얼굴로 명을 전했다.“폐하의 어명이십니다.”“모든 죄를 자백하고 문서에 서명하지 않는 한, 이곳을 나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죽을 때까지 말입니다.”모용길은 두 눈을 부릅뜨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허튼소리 마라! 그 어린놈이 과연 알기나 한단 말이냐, 내가 이 모든 짓을 왜 해왔는지를 말이다!”간수는 능청스럽게 웃었다.“나으리, 뭐가 그리 두렵습니까?”“자백했다고 당장 목을 치는 것도 아니잖습니까.”“태조께서 하사하신 면사금패는 아직도 가지고 계시잖아요?”그 말에 모용길의 눈매가 가늘게 휘어졌다.그렇다.면사금패만 있으면, 그는 죽지 않는다.황제 따위가 그를 처형할 권한은 없었다.지금 가장 중요한 건 태조를 다시 살려내는 것이었다.결심이 선 그는 주저하지 않았다.“종이와 붓을 가져오너라!”두 시진 후.모용길이 쓴 자백서가 궁으로 들여졌다.그 문서는 곧장 어전으로 올라갔다.문서를 넘겨받은 소욱은 한 장, 또 한 장 페이지를 넘길수
염 신의가 모용길의 상태를 진찰한 결과, 그의 몸은 웬만한 노인들보다 훨씬 건장했고, 외견상으로도 특별한 이상은 보이지 않았다.“폐하, 이 자가 망언을 일삼는 이유는… 실성, 즉 정신 착란 증세로 보입니다.”“나는 미치지 않았다! 미친 건 너희들이다!”모용길이 즉각 반발하며 목소리를 높였다.그리고 소욱을 향해 고함쳤다.“어서 저놈들을 다 내쫓아라! 나는 태조 폐하를 반드시 살려낼 것이다!”“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모두 다 목이 날아갈 줄 알아라!”하지만 소욱은 모용길의 광언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그저 곁에 있던 병사들에게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붙잡아 두거라. 절대 도망 못 치게 해야 한다.”명령이 떨어지자 병사들이 달려들어, 모용길의 움직임을 단단히 제압했다.염 신의는 환자의 행동에 개의치 않으며 차분히 말을 이었다.“실성이란 곧, 마음의 병입니다.”“이 병은 뇌와 정신의 균형이 무너져,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들죠.”“예컨대, 저희는 백골을 보지만 이 자는 살아 있는 사람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그만큼 이 자의 마음속 집착이 깊고, 오래도록 그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입니다.”“이미 병이 뿌리 깊게 자리 잡았으니, 소인으로선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의술이란 외상이나 내상은 다스릴 수 있어도, 사람의 마음속 병, 특히 집착이라는 건 손쓸 수 없는 법이다.그건 눈에도 보이지 않고, 손으로도 만질 수 없는 것이기에. 소욱은 여전히 ‘태조를 살려야 한다’며 중얼거리는 모용길을 말없이 바라보았다.그는 수많은 악행을 저질러 온 자였다.그러나 유일하게 태조에 대해서만은 지극한 충성과 집착을 드러내고 있었다.“저 자를 별실에 따로 가둬라. 아무도 면회하지 못하게 하라.”“명 받들겠습니다!”……자진궁.봉구안은 모용길이 실성 증세를 보였다는 말을 듣고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오늘 제가 본 그 백골은 최근에 죽은 사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그 말인즉, 모용길은 이미 오래전부터 병들어 있었단 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