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이 온 궁에 퍼져도, 봉구안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추석 연회 준비와 출궁 계획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녀 혼자만 나가면 그만이지만, 지금은 봉가도 생각해야 했다. 그녀가 홀연히 사라지면 봉가가 곤경에 처할 것이 뻔했다. 가장 안전한 방법은 죽음을 가장하여 탈출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봉가나 소욱 황제 모두 더는 그녀를 찾지 않을 것이고, 그녀 또한 뒷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터였다. 하지만, 멀쩡한 몸으로 갑자기 죽게 된다면 분명 사람들의 의심을 살 것이었다. 그러니 시기를 고르는 것이 중요했다. 그녀는 그 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황제 폐하, 납시오!"봉구안은 서둘러 정돈한 뒤 일어나 맞이하였다. 소욱은 영화궁에 들어서서 그녀의 눈 밑에 엷은 다크서클이 진 것을 보고 며칠간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것을 짐작하였다. 그녀가 이 추석 연회를 준비하느라 분명 마음과 힘을 쏟고 있는 것이리라. 하지만 소욱은 그녀가 그렇게 애쓰는 것이 사실은 출궁을 위한 준비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폐하, 무슨 분부가 있으신지요?" 봉구안의 눈빛은 평온하고 일렁임이 없었다. 소욱은 주상에 앉아 소매의 주름을 매만지며 무심히 말하는 듯하였다."짐이 그 연회 참석자 명단을 보았도다."봉구안은 그가 폐태자의 일에 관해 물을 줄 알고 준비하고 있었으나, 그는 뜻밖의 말을 꺼냈다."가족을 그리워한다 하니, 이번 추석 연회에 그대의 부모도 궁에 들 수 있도록 하겠소.”봉구안은 약간 놀랐다. 그녀가 전에 외가에 가고 싶다는 뜻을 내비친 적은 있었으나, 부모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그들 곁에서 자라지 않아 애틋한 정이나 끌림도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욱은 원래 세심하거나 배려심 깊은 사람이 아니었다.그녀가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자, 소욱은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어찌된 일인가, 기쁘지 않은가?"그가 봉가 사람들을 궁에 들게 하겠다고 한 것은 사실 혈육임을 확인하기 위해 혈흔 검사
맹가.다행히 봉구안이 제때에 알려주어, 맹 부인이 미리 준비할 수 있었기에 노부인은 손주의 요절을 모른 채 지낼 수 있었다. 노부인은 침상에 기대어 며느리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내 이 늙은 몸뚱이를 왜 그리도 생각해주느라 먼 길을 돌아 추석에 나를 보러 왔느냐."맹 부인은 담담히 웃으며 대답했다. "부군 또한 어머님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이 3년 동안 한 번도 돌아오지 못해, 바라건대 용서해주시옵소서.""군주에 충성을 다하는 것이 우리 맹가 자손들의 본분이지. 성주는 어찌 되었느냐? 이번에 양 나라와의 전쟁에서 상처를 입은 건 아니겠지?"노부인은 손주를 걱정하며 초조한 눈빛으로 맹 부인을 바라보았다. 맹 부인은 안심시킬 마음에 기쁜 소식만을 전하며 애써 슬픈 마음을 숨겼다.잠시 후, 노부인은 다시 말했다."성주도 이미 관례를 치렀으니, 이제 부모 된 이들이 성주의 혼사를 챙겨야 하지 않겠느냐."맹 부인은 내심 슬픔을 억누르며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어머님의 말씀대로입니다. 남편과 의논해보겠습니다. 다만 성주의 눈이 높아서 누구를 고를지 고민이 많습니다."노부인은 손주를 아끼며 말했다."좋은 말은 좋은 안장을 만나고, 영웅은 미인을 만나는 법이지. 성주는 분명 최고의 짝을 만날 거야!"노부인은 병상에 지친 몸을 기대고 있었기에 말하다가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맹 부인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하인들에게 엄하게 당부했다."잘 모셔드리되, 절대 입이 가볍지 않도록 하거라.""네, 부인."맹 부인이 밖으로 나오자, 한 구석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하녀 이화가 보였다. 맹 부인은 이화의 마음을 알고 있었으나, 이 아이가 좋아하는 구안 또한 여인이었기에 이 기회에 단념시키려 했다.…황성.만호후를 책봉하는 것에 대해 소욱은 깊이 생각하였으나, 아직까지 확고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본래 그는 맹성주를 염두에 두었으나, 그녀는 이제 맹교먹이 되었고, 여인이 장군이 되는 것 자체가 파격적인 일인만큼, 다시 후에 봉하는 것은
“세상에나! 피야!” 겁이 많은 장빈이 가장 먼저 반응하며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모두가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그 궁녀가 들고 있던 도자기 조각이 그만 황후의 손을 벤 것이었다. 황후의 얇은 손가락에서는 피가 방울방울 흘러내리고 있었다. 궁녀는 더욱 두려움에 떨며 다시 땅에 엎드렸다. 연상이 분노하여 말했다. “너 일부러 그런 게 아니냐!” 용상에 앉아 있던 소욱은 냉랭한 얼굴로 죄를 지은 궁녀를 바라보았다. “건방진 것, 끌어내라!” 궁녀는 목숨만 살려달라 애원했지만, 이내 다른 궁녀가 나서서 봉구안의 상처를 치료했다. 봉구안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 궁녀의 작은 행동을 못 본 척하며 담담하게 대응했다. 봉 대인과 봉 부인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쪽을 지켜보았다.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봉 대인의 곁에 있던 시녀가 은침을 손에 들고 술을 따르는 척하며 봉 대인이 음식상에 얹은 손을 노렸다. 그녀의 손놀림은 너무 빨라 도무지 방어할 틈이 없었다. 봉 대인은 갑작스러운 통증에 본능적으로 손을 들어 올렸고, 바닥에 딱딱한 딱정벌레가 한 마리 있는 것을 보고는 그저 벌레에 물린 줄로만 여기고 신경 쓰지 않았다. 소욱이 봉구안에게 말했다. “황후는 옷을 갈아입고 오시오.” 그의 표정은 여전히 무심하고, 높고 오뚝한 콧날 아래 얇은 입술에는 냉혹함이 담겨 있었다. “예.” 봉구안은 자리를 일어나 옷을 갈아입으러 갔고, 연상만을 데리고 떠났다. 봉 부인은 그런 딸을 염려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궁중에는 겉과 속이 다른 싸움과 온갖 수단이 난무하고 있었다. 구안이 베인 것이 혹여 누군가의 의도적인 짓이 아닐까? 편전 안. 연상이 추측했다. “마마, 저 궁녀는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어전에서 모시는 사람이 그렇게 서투를 리가 없습니다.” 봉구안은 손에 감긴 붕대를 보며 차가운 눈빛으로 담담하게 말했다. “아무 일도 아니다.” 이 모든 것이 소욱이 준비한 일이었다. 봉
연회장에서 그 향낭과 손수건을 보자, 소탁의 얼굴빛이 변하며 자신과 황후가 모함당했음을 직감했다. 좌중의 봉 대인과 봉 부인은 서로를 바라보며 불안해했다. 추석 선물을 뒤엎은 궁인은 자신이 실수를 저질렀음을 알고 허둥지둥 정리하기 시작했다. 한편 종친 중 어린 소세자가 장난스럽고 활발하게 앞으로 뛰어나와 그 손수건을 집어 들었다. 배운 한두 글자가 있다고 여긴 그는 아직 어린 목소리로 읊기 시작했다. “두 기슭 푸른 산이 서로 보내고 맞이하니, 누가 이별의 슬픔을 알겠는가. 그대 눈물 가득하고, 내 눈물 또한 가득하네. 오색 끈으로 맺은 마음의 매듭은 아직 이루지 못했건만, 강머리의 조수가 이미 평온해졌네.”“아버지, 이 시는 참으로 애달파요! 전혀 추석의 단란함과는 다르네요!” 비빈들은 입을 떡 벌린 채 서로를 바라보며 놀라워했다. 이 시는 마음이 통했으나 인연을 이루지 못한 슬픔을 표현한 애절한 사랑의 시였다. 이 추석 선물은 황후가 폐태자를 위해 준비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황후가 폐태자에 대한 그리움을 잊지 못했다는 것이 아닌가! 소욱은 싸늘한 시선으로 봉구안을 바라보았다. 황후가 어찌 폐태자에게 정을 품을 수 있다는 말인가?! 봉구안은 아무런 표정 없이 듣고 있었으며, 아무도 그녀의 마음속 생각을 알 수 없었다. 봉 부인은 참지 못하고 급히 일어나 설명했다. “폐하, 이것은 분명 누군가의 계략이옵니다…” 쾅! 상좌의 태황태후가 갑자기 상을 내리치며 엄한 눈빛으로 봉구안을 응시하며 질책했다. “황후, 네가 말해 보아라! 이는 대체 무슨 일이냐!” 봉구안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태황태후마마, 신첩은 이 물건이 어디서 온 것인지도 모릅니다.” 태황태후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모른다고?”“이 추석 선물은 네가 친히 준비한 것이 아니더냐!” 봉구안의 모친은 딸을 변호하려 했으나, 옆에 앉은 봉 대인이 그녀의 옷소매를 살짝 당겨 앉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이때, 녕비가 마치 물에
황제가 명을 내리자, 모두 어쩔 수 없이 각자 받은 선물 상자를 열게 되었다. 그러나 열기 시작하는 순서가 엇갈리며 곧 누군가가 외쳤다. "동상고야! 여기 제 추석 선물 속에 동상고가 한 상자 더 들어 있사옵니다!" 모용선은 이 말을 듣자 눈빛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마침 그녀와 같은 편인 녕비가 나서서 말했다."폐하, 설령 무언가 발견되었다 하여도, 그것이 곧바로 황후마마와 연관된다 단정할 수는 없사옵니다..." “녕비, 이것이 대체 무엇입니까!” 옆에 있던 가빈이 손이 빠르게 움직여 녕비의 추석 선물 상자를 열었고, 그 속에 의심스러운 물건을 발견하였다.“아니, 어쩌다 죽은 쥐가 들어 있는 것이오?” 녕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연이어 다른 후궁들도 비명을 지르기 시작하였다.“이 추석 병과가 쥐에게 갉아먹힌 듯하오! 불결하구나!” “이건 또 무엇이오?” 심지어 태후의 추석 선물 속에는 호위의 허리띠가 들어 있었다. 태후는 태황태후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황제에게 말했다.“소첩은 이 나이 먹도록 후궁을 더럽히는 행위는 결코 하지 않았사옵니다! 황상, 반드시 철저히 조사해주시옵소서!” 순식간에 궁 안은 혼란에 휩싸였다. 모용선은 모두의 반응을 보며 손에 쥔 수건을 꽉 움켜쥐었다. 그녀는 곧바로 봉구안을 바라보았다.어찌하여 이리 되었단 말인가? 황후가 꾸민 짓인가? 봉구안은 그녀를 바라보며, 마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을 띠었다. 그 눈빛은 모용선의 겉으로 드러나는 자애로운 모습 속에 감춰진 어두운 속내를 비추는 듯하였다. 모용선은 깜짝 놀라 얼굴을 돌려 녕비를 바라보았다. 녕비는 모용선을 향해 비웃음 가득한 미소를 지었으니, 그 속에는 계산이 깃들어 있었다. 그랬다. 그녀가 모용선을 배신한 것이다. 아니었더라면, 황후가 어찌 이런 일을 미리 짐작하고 이렇듯 큰 소동을 일으켜 여러 사람을 연루시켜 상황을 뒤흔들 수 있었겠는가. 녕비는 황후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황후에게 특별히 두려움
용상 위에서 소욱은 상소문을 자세히 살피며 한 자도 놓치지 않았다. 잠시 후 그는 고개를 들었고, 처음 시선을 둔 곳은 황후였다. 봉구안은 고개를 숙이며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 “신첩은 이 상소문이 누가 가지고 온 것인지, 어찌 정 귀인의 추석 선물에 들어간 것인지 알지 못하옵니다.” 녕비는 황후를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그녀는 황후에게 모용선이 폐태자의 추석 선물에 손을 쓸 계획이라고 알렸다. 그 때문에 황후가 다른 사람의 추석 선물에 손을 대어 혼란을 일으키고자 한 것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고, 이쯤에서 끝내려는 줄 알았다. 그러나 이 상소문은 그녀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 상소문을 모용선의 추석 선물에 넣다니… 황후의 독한 한 수에 혀를 내둘렀다. 이 순간, 그녀는 황후와 적이 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늦게나마 알아차린 그녀는 봉구안과 함께 교묘히 입을 맞추었다. “폐하께서 추석 선물을 열어보라 하지 않으셨더라면 이 상소문은 정 귀인이 그대로 가져갔을 것이옵니다. 오라버니에게 불리한 물건을 어떻게 처리했을지 뻔하지 않사옵니까.” 모용선은 돌연 일어섰다. “폐하, 신첩…신첩은 알지 못하옵니다.” “정녕 모르는 일이옵니다.”그녀의 눈물이 맺히자, 이는 오히려 녕비를 독살스러운 여인으로 보이게 했다. 소욱은 침착히 입을 열었다. “죄 없는 자는 억울하게 하지 않을 것이나, 죄 있는 자는 결코 용서치 않으리라!” 그의 엄중한 눈빛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모용선은 목이 메여 말을 잇지 못했다. 태황태후는 황제의 이 상소문에 대한 태도를 알아차리고 먼저 의견을 내놓았다. “황상, 이 상소문에 적힌 일이 진위가 어찌 되었든 내일 조정에서 신하들이 조사하도록 해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지금 당장 잡아야 할 자는 바로 이 추석 선물에 손을 댄 자라 생각하나이다.”태후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태황태후의 말씀이 지당하옵니다. 이 자는 심보가 흉악하여, 어쩌면 모용 장군을 모
"폐하를 지켜라!" 진한길이 황제 앞에 나서며 외쳤다.소욱은 자리에서 일어나 상황을 내려다보며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전 안의 다른 사람들은 전혀 그렇지 못했고, 곧 혼비백산하여 숨을 곳을 찾기 시작했다.소욱은 명령을 내렸다. "우선 태황태후를 모시고 나가라!"그 말을 들은 태후는 마음이 서늘해졌다. 봉 부인은 제일 먼저 딸을 떠올렸으나, 봉 대인이 억지로 끌어내며 질타했다. "여기 수많은 호위들이 있는데 무엇을 걱정하는 겁니까, 부인!"봉구안은 자주 암살을 겪었기에 주위를 살피며 이 암살이 치밀하게 계획된 것임을 예감했다. 어지럽게 쏘는 화살들은 아마도 눈속임이고,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려는 수법일 터였다. 진정한 살수는 예상치 못한 곳에 숨겨져 있을 것이다.문득, 그녀의 눈에 그것이 보였다! 어수선한 틈을 타 기둥 뒤에 숨어 있던 내시 차림의 자가 황제를 겨냥해 소매 안에서 은밀히 화살을 드러낸 것이다.봉구안의 얼굴에서 더 이상 평정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뇌리에는 오직 '호위' 한 단어만 떠올랐다. 그녀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곧장 소욱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소욱 또한 무공이 높은 자였다. 암살자의 화살이 날아오는 순간, 그는 그것을 보았다.그러나 순식간에 한 사람의 그림자가 그 앞으로 날아들었다. 다른 후궁들이 모두 제 목숨을 구하는 데에만 급급할 때, 황후는 굳건히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이내, 그녀는 마치 끊어진 연처럼 중상을 입고 그 앞에 쓰러졌다.찰나의 순간, 그 화살이 마치 그의 가슴을 찌르는 듯해 소욱의 눈동자가 급격히 수축했다.몸은 이미 그 어떤 의지보다 먼저 움직였고, 그는 황후를 받쳐 들었다."마마!" 군중 속에서 연상은 경악하여 외쳤다. 그녀는 봉구안이 언제 그리로 달려갔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봉 부인은 그 광경을 보고 그 누구도 통제할 수 없을 만큼 크게 소리쳤다.이때 봉구안의 의식은 매우 또렷했다. 자신이 목숨을 잃을 위기는 없을 것이다.
비록 황후가 직접 나서서 화살을 빼야 한다고 말했으나, 그녀의 몸은 황제의 것이었으므로 어의는 황제의 명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소욱의 얼굴은 얼음같이 차갑게 굳어 있었고, 잠시 후 고개를 끄덕였다. “빼거라.”황제의 허락이 떨어지자, 어의는 정확한 각도와 힘으로 그 화살을 뽑아냈다. 봉구안은 몸 밑의 이불을 단단히 움켜쥐고, 단 한 번 억눌린 신음만 내었을 뿐, 더 이상의 고통스러운 소리는 내지 않았다. 굵은 땀방울이 그녀의 관자놀이와 머리카락을 적셨다. 어의는 곧 그 철촉을 검사하더니, 갑자기 손을 떨며 소욱에게 말했다. “폐하, 역시 소인의 예상대로 이 화살에는 독이 묻어 있습니다!” “목숨에 지장은 없겠느냐?” 소욱이 물었다. 어의가 대답했다. “다행히 빨리 뽑아내어, 마마께서는 큰 위험에 처하지 않으실 것입니다.”어의는 곧 상처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소욱은 침상 곁에 서서 차가운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어의가 봉구안의 등을 드러내기 위해 옷을 자르고, 특제 약수를 몇 차례 뿌려 상처에 남은 독을 씻어낸 후 약가루를 뿌려 붕대로 감쌀 참이었다.“중궁마마, 상당히 아프실 수 있습니다. 참아주십시오.” 봉구안은 옆으로 고개를 돌려 베개에 반쯤 얼굴을 기대고, 창백하고 쇠약해진 모습이었으나 눈빛은 굳건했다. 약수가 상처에 닿자 수천 마리의 개미가 피부를 물어뜯는 듯한 고통이 몰려왔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주먹을 꽉 쥔 채 한마디의 비명도 내지 않았다. 어의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사내도 참기 힘든 고통을 여인이 이렇게 잘 참다니…그는 동작을 재빨리 마무리하고 독혈을 짜내기 시작하였다. 마침내 정상적인 붉은 피가 나오자 멈췄다. 봉구안은 결국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의식을 잃고 말았다. 어의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의사로서 남녀 구분 없이 환자를 돌보아야 한다지만, 필경 상대는 황후였다... 상처를 붕대로 감싸려면 가슴 둘레를 한 바퀴 감아야 했기에, 황후의 옷을 벗겨야 했다. 어
세상일이란 참 아이러니했다. 열무신은 한 발 늦게 도착했다. 그가 천옥에 도착했을 때, 모용길은 이미 숨을 거둔 후였다.모용길의 시신을 바라보며 열무신은 주먹으로 벽을 내리쳤고, 낮은 포효를 내뱉었다. 사람들은 착한 사람은 일찍 죽고 재앙은 천 년을 간다고 했는데, 정말 그랬다! 모용길 같은 자는 200살이 넘게 살다가 죽었는데, 맹성주 같은 이는 관례도 치르기 전에 죽임을 당했다. 이를 생각하니 열무신의 증오심이 하늘을 찔렀지만, 이 빚을 누구에게 갚아야 할지 알 길이 없었다.너무 감정이 격해져서, 열무신은 천옥을 나서자마자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기절해버렸다.황궁. 봉구안은 임시로 자진궁에 거처하고 있었다. 그녀는 회임 중이었고, 점차 배가 불러오기 시작하자 회임이 실감 났다.정말로 아이가 서서히 자라고 있었다. 소욱이 정해준 태의는 매일 그녀에게 와서 맥을 짚었다. 최근 그녀의 태상은 안정되어, 더 이상 안태약을 마실 필요가 없고 그저 조용히 쉬기만 하면 되었다.아이의 일에 대해서, 봉구안은 걱정하지 않았다. 약쟁이 사건도 이미 해결되어, 그녀의 큰 근심을 덜어주었다. 현재 유일하게 장미에 대해서만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장미의 옛 병이 재발할까 걱정되었다.그것이 만약 재발한다면, 그녀의 몸과 마음에 좋지 않을 터였다.봉구안이 이 일을 생각하고 있을 때, 황제가 도착했다. 소욱은 약쟁이 사건의 최신 진전을 가져왔다. 그는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열무신이 붙잡은 그 사람들이 증명할 수 있다는구나. 이미 200년 전에 태조는 돌아가셨고, 부활한 흔적은 전혀 없었다 하엿다. 모든 것이 모용길의 환상이었던 거야.”“짐은 이 사건의 모든 세부 사항을 대중에게 공개할 생각이다. 모용길이 남긴 큰 돈은 모두 약쟁이 매매로 얻은 것이야. 짐은 이 돈을 피해자들과 그 친척들을 위로하는 데 쓸 것이다.”“이에 대해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그는 걱정이 가득했다.봉구안은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의 이 조치는 백성
마지막으로 태조를 다시 보았을 때, 그는 이미 병석에 누워 숨이 끊어질 듯했다. [모용길... 내 아우야, 너는 내 마음을 알지. 짐에겐 아직 이루지 못한 일들이 많다. 새 정치를 세우지 못했고, 태자는 아직 어리지. 난 단지 하늘이 인색해서 짐에게 몇 년을 더 주지 않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단 일 년이라도 짐이 일 년만 더 산다 해도 좋을 텐데... 남쪽의 수해, 북쪽의 기근, 남제는 사방에서 적에 둘러싸여 있고, 북연은 우리를 업신여기며, 내부에는 반적이 있는데... 어찌할까, 염라대왕이 목숨을 거두어 가니, 짐은... 그저 손을 놓을 수밖에 없구나. 아우야, 나라의 일을 모두 네 손에 맡기노니, 너는 태자를 보필하라. 너는 그의 고모부이자, 또한 그의 상부이니. 아우야, 짐은 오직 너만 믿는다.]기억 속의 태조가 눈앞의 그와 겹쳐졌다. 모용길은 낮은 목소리로 흐느꼈다. 그의 눈에 태조의 뒷모습은 무척이나 수척했다."형님! 형님께서 원하던 것을 제가 마침내 이루어냈습니다! 형님께서는 불로장생할 것이고, 이 남제는 반드시 형님의 통치 아래 번영하며, 장차 천하를 통일하여 대업을 이룰 것입니다!"당초 남제가 새로 세워졌을 때 태조는 약속대로 그에게 강산의 절반을 주려 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태조의 뜻이 천하에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태조와 계속해서 사방을 정벌하고 싶었다. 하지만 운명은 어쩔 수 없었다. 이제 태조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볼 수 있게 되어, 그는 마침내 모든 짐을 내려놓고 평안히 떠날 수 있게 되었다.모용길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 바닥에 쓰러졌다. 눈물로 가득 찬 시선 속에서,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난 아내의 모습을 보았다. 그녀가 그를 데리러 온 것이다. 그는 팔을 뻗어 마치 어린아이처럼 울었다.여인은 몸을 숙여 그의 손을 잡아 자신의 얼굴에 대고, 그에게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대인, 남은 길은 제가 당신과 함께 걸을게요." 모용길은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우리 함께..."
열무신은 이번에도 큰 공을 세웠다.그가 아니었다면, 또 누군가 새로운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그는 사로잡은 자객들을 직접 데리고 돌아와 천옥에 넘긴 뒤, 단 한숨도 쉬지 않고 곧장 심문에 들어갔다.자객들은 처음엔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하지만 모용길이 이미 붙잡혔다는 소식을 듣자, 그들의 희망도 이미 무너진 셈이었다.이내 하나둘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저희는 명령을 따랐을 뿐입니다… 폐태자를 노린 건 그 분의 ‘혈’ 때문이었습니다.”그들은 태조 황제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불로장생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태조 황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백골이었습니다. 이백 년 전, 모용길이 시신을 도굴해갔을 때부터 이미 시체에 불과했습니다. 살려낼 수 있을 거라는 건, 망상이었어요!”“애초에 죽은 자였다고요!”그들이 그 이야기를 꺼낼 때, 말투에는 모용길을 조롱하는 기색이 역력했다.이백 년이라는 세월 동안 쓸모없는 일에 목숨을 건 그를 그들은 미련한 바보로 여겼다.같이 심문을 진행하던 관리가 물었다.“너희는 어떻게 아는 것이냐?”“태조 황제께서 살아난 적이 없다는 걸 말이다.”“모용길이 그렇게까지 집착한 이유가 뭐였지?”자객들 중 한 명이 비웃듯 코웃음을 치며 답했다.“모용길이 약쟁이를 만든 건, 그들로 실험해 불로장생의 약을 완성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약을 제조한 의원들은 손수 기록을 남겼고, 그 손책들엔 분명히 쓰여 있었죠. 이백 년 동안 그들이 상대한 건 단 한 번도 움직이지 않은 ‘시체’였다고요.”“아무리 약을 먹여도 살아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말입니다.”다른 자객 하나는 공포 어린 얼굴로 말을 이었다.“모용길은… 이미 오래전에 미쳐 있었습니다. 그는 자주 아무도 없는 허공을 향해 말을 걸었어요. 마치… 마치 그 자리에 태조 황제가 서 있기라도 한 듯이 말이에요.”또 다른 자객이 덧붙였다.“그 자는 단지 태조 황제를 살리려 한 게 아닙니다. 자신도 불로장생 하고 싶었던 거에요.”“그리고 그게… 그 자는 정말로 성공했
태황태후는 직접 선조를 만나기 위해 천옥으로 향하려 했다.하지만 황제의 명이 내려져 있었다.그의 허락 없이는 누구도 모용길을 접견할 수 없었다.하는 수 없이, 태황태후는 궁으로 전갈을 보냈다.하지만 설령 황제가 허락하더라도 모용길이 누구를 만나려 하지 않았다.그는 오직 태조는 아직 살릴 수 있다는 집념 하나에 사로잡혀 있었다.그런 그가 천옥에 갇힌 지금, 마음은 타들어가듯 초조했다.“그 어린 황제놈은 어딨느냐! 어서 나를 뵈러 오라 하지 못할까!”모용길에게 후손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그는 생각했다.이 나라 남제는, 태조와 자신이 함께 세운 나라였다.그런 자신을 막고 있는 소욱 따위가 어찌 감히 군림한단 말인가.천옥에 갇힌 날부터,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소리쳤다.“태조를 살려야 한다! 어서 황제를 데려와라!”하지만 그는 몰랐다.그의 그 모든 고함과 분노는 소욱이 의도적으로 시간을 끌며 그를 흔들기 위한 계략이었단 사실을 말이다.그리고 다섯째 날.천옥의 간수가 냉정한 얼굴로 명을 전했다.“폐하의 어명이십니다.”“모든 죄를 자백하고 문서에 서명하지 않는 한, 이곳을 나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죽을 때까지 말입니다.”모용길은 두 눈을 부릅뜨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허튼소리 마라! 그 어린놈이 과연 알기나 한단 말이냐, 내가 이 모든 짓을 왜 해왔는지를 말이다!”간수는 능청스럽게 웃었다.“나으리, 뭐가 그리 두렵습니까?”“자백했다고 당장 목을 치는 것도 아니잖습니까.”“태조께서 하사하신 면사금패는 아직도 가지고 계시잖아요?”그 말에 모용길의 눈매가 가늘게 휘어졌다.그렇다.면사금패만 있으면, 그는 죽지 않는다.황제 따위가 그를 처형할 권한은 없었다.지금 가장 중요한 건 태조를 다시 살려내는 것이었다.결심이 선 그는 주저하지 않았다.“종이와 붓을 가져오너라!”두 시진 후.모용길이 쓴 자백서가 궁으로 들여졌다.그 문서는 곧장 어전으로 올라갔다.문서를 넘겨받은 소욱은 한 장, 또 한 장 페이지를 넘길수
염 신의가 모용길의 상태를 진찰한 결과, 그의 몸은 웬만한 노인들보다 훨씬 건장했고, 외견상으로도 특별한 이상은 보이지 않았다.“폐하, 이 자가 망언을 일삼는 이유는… 실성, 즉 정신 착란 증세로 보입니다.”“나는 미치지 않았다! 미친 건 너희들이다!”모용길이 즉각 반발하며 목소리를 높였다.그리고 소욱을 향해 고함쳤다.“어서 저놈들을 다 내쫓아라! 나는 태조 폐하를 반드시 살려낼 것이다!”“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모두 다 목이 날아갈 줄 알아라!”하지만 소욱은 모용길의 광언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그저 곁에 있던 병사들에게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붙잡아 두거라. 절대 도망 못 치게 해야 한다.”명령이 떨어지자 병사들이 달려들어, 모용길의 움직임을 단단히 제압했다.염 신의는 환자의 행동에 개의치 않으며 차분히 말을 이었다.“실성이란 곧, 마음의 병입니다.”“이 병은 뇌와 정신의 균형이 무너져,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들죠.”“예컨대, 저희는 백골을 보지만 이 자는 살아 있는 사람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그만큼 이 자의 마음속 집착이 깊고, 오래도록 그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입니다.”“이미 병이 뿌리 깊게 자리 잡았으니, 소인으로선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의술이란 외상이나 내상은 다스릴 수 있어도, 사람의 마음속 병, 특히 집착이라는 건 손쓸 수 없는 법이다.그건 눈에도 보이지 않고, 손으로도 만질 수 없는 것이기에. 소욱은 여전히 ‘태조를 살려야 한다’며 중얼거리는 모용길을 말없이 바라보았다.그는 수많은 악행을 저질러 온 자였다.그러나 유일하게 태조에 대해서만은 지극한 충성과 집착을 드러내고 있었다.“저 자를 별실에 따로 가둬라. 아무도 면회하지 못하게 하라.”“명 받들겠습니다!”……자진궁.봉구안은 모용길이 실성 증세를 보였다는 말을 듣고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오늘 제가 본 그 백골은 최근에 죽은 사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그 말인즉, 모용길은 이미 오래전부터 병들어 있었단 얘
봉구안의 한마디가, 마침내 모용길의 본모습을 드러나게 만들었다.그는 쇠창살을 움켜쥐고, 당장이라도 눈앞의 사람을 갈가리 찢어놓고 싶다는 듯이 이를 갈았다.“이놈이! 감히 태조 폐하를 저주하다니!”“태조 황제 폐하께서 이 강산을 개척하지 않으셨다면, 너희 같은 것들이 무슨 자격으로 오늘날을 누리겠느냐!”“특히 너! 소가의 자식! 네놈이 정말 태조께서 살아계시길 바란다면 당장 본좌를 풀어라!”소욱의 얼굴은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 “태조 황제께선 지금 어디 계시느냐.”모용길은 그를 믿지 않았다.“당장 날 풀어라! 그렇지 않으면 너는 만고의 죄인이 될 것이다!”소욱은 억눌린 분노를 담아 담담히 말했다.“태조께서 정말 살아계신다면, 그것은 분명 기쁜 일이겠지.”“하지만… 그 전에 말해보거라. 그분이 어디에 계신지, 반드시 밝혀야겠다.”모용길은 한참이나 소욱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그리고 망설임 끝에 마침내, 한 곳의 지명을 내뱉었다.“육지산.”그곳은 황성 내부에 있는 산이었다.소욱은 그 말을 듣자마자 직접 병사를 이끌고 현장으로 향했다.봉구안 역시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모용길이 함정을 파놓았을 가능성, 또는 산속에 기관 장치를 숨겨놓았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그녀도 소욱을 따라나섰다.한 시진이 지나, 일행은 육지산에 도착했다.하늘은 점점 어두워졌고, 구름이 몰려들어 햇빛을 가리며, 마치 용이 잠든 연못을 둘러싼 기운처럼 음침한 기색이 피어올랐다.거센 바람이 불어와 흙먼지를 일으키며 시야를 가렸다.소욱의 옷자락은 세차게 펄럭였고, 그는 고개를 들어 육지산을 올려다보았다. 눈빛은 칼날처럼 매서웠다.“산에 오른다. 태조를 찾아라!”“예!”그는 봉구안이 회임 중인 것을 고려해, 줄곧 옆에서 손을 뻗어 부축했다.혹시라도 발을 헛디뎌 넘어질까 봐서였다.그러나 봉구안은 전혀 허약하지 않았다.오히려 그녀는 날쌘 걸음으로 병사들보다 먼저 앞서 나갔다.해가 저물 무렵, 마침내 병사들이 한 구덩이 안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폐하!
봉구안은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둘째는 황실의 혈족을 해한 죄이다.”모용길은 헛웃음을 터뜨리며 비웃었다.“허, 무지한 계집이구나. 헛소리도 정도껏 하거라.”“폐하께서 절 죽이고 싶으시다 해도, 이렇게까지 억지로 죄를 뒤집어씌울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그 얼굴에는 오히려 당당함이 어려 있었다.그러나 봉구안의 시선은 흔들림 하나 없었다.“네가 해한 이는 바로 태조 황제 곁을 지키던 사람들이었다.”그 말에 소욱도 놀라 고개를 돌렸다.모용길이… 태조의 측근들을?그녀는 어떻게 그런 것을 알고 있단 말인가?모용길의 웃음은 사라졌고, 시선은 무겁게 봉구안에게 꽂혔다.봉구안은 단 한 순간도 주저하지 않았다.소욱이 언젠가 말했던 ‘옥비석의 재앙’.남제가 건국된 직후, 태조 황제를 지키던 측근들이 하나둘 기이하게 목숨을 잃어갔다.그 당시 사람들은 모두 그것이 옥비석의 반작용 때문이라 여겼지만… 봉구안은 단정했다.“그 죽음들은 전부 너 모용길이 꾸민 짓이 아니더냐.”그 말이 떨어지자, 모용길의 눈동자가 매섭게 떨렸다.봉구안의 목소리는 평온했지만, 그 안에 담긴 진실은 날카롭게 울렸다.그녀는 시선을 한 치도 피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내 짐작이 맞다면, 그 시절의 태조는 이미 병세가 깊었던 상태였을 거야.”“너는 불로장생의 방법을 찾기 위해 사술을 익혔고, 그 실험 대상으로 태조 곁에 있던 이들의 피를 썼지.”“다만 수많은 이들의 피를 말려 죽였는데도 아무런 효험이 없었을 거야.”“그러다 마지막으로 선택한 게… 옛 서왕, 지금의 서왕의 부친이셨던 거지.”그녀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그 피만이 태조의 몸에 반응을 보였을 거야. 그렇게 태조께서는 ‘살아 있는 시체’가 됐고, 넌 그때부터 계속해서 약쟁이를 만들어내기 시작했어. 진짜 목적은 태조를 살리는 거였지. 그저 상태를 유지하는 게 아니라, 다시 인간으로 되돌리는 것. 바로 그게 너의 최종 목표였을 거야.”모용길은 냉소 섞인 웃음을 흘렸다.그러나 봉구안은
그 노도사는 봉구안이 데려온 가짜 도사였다.사실 그는 타국의 평범한 백성일 뿐이지만, 실제로 삼백 년을 살아온 인물이기도 했다.이번 계책은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쓰였다.약쟁이 사건의 진짜 배후를 꾀어내기 위해서였다.봉구안은 확신하고 있었다.그 자의 진짜 목적은 불로장생.그렇기에 이번에는 반드시… 단번에 끝을 내야 했다.하지만 마음 한켠엔 조바심이 일었다. 그녀의 표정을 살핀 소욱이 조용히 말했다.“약이 식겠다. 먼저 약부터 마시거라.”……밤이 깊은 시각, 궁 밖에서 전갈이 날아들었다. 노도사를 찾았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소욱과 봉구안은 그 말을 듣자마자 눈빛을 교환했다.그리고 거의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폐하, 은이와 그 일행이 도사를 납치한 자를 붙잡았습니다! 지금 천옥으로 이송 중입니다!”소욱은 심장이 요동쳤다.진실을… 진실을 확인해야만 했다.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릴 이유가 없었다.그는 봉구안과 함께 곧장 천옥으로 향했다.반 시진쯤 지나, 천옥.두 사람은 마침내 그 사내와 마주했다.노도사를 납치했던 자이자, 어쩌면 약쟁이단의 진짜 주모자일지도 모를 인물이었다.봉구안은 호위복으로 변장한 채 소욱 옆에 서 있었다.언제 어떤 돌발 상황이 터질지 모르기에, 그녀는 단단히 경계하고 있었다.감옥 안의 남자는 매우 늙어 보였다.눈은 푸르스름하게 흐려졌고, 머리는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확실히 동방세가 그려낸 인물과 유사했다.그는 소욱을 바라보더니, 마치 이미 모든 결말을 알고 있다는 듯 두려움이라고는 없었다.“절 잡기 위해, 아주 큰 판을 짰다던데 과연 사실이었군요.”소욱은 감방 너머 그를 노려보며 물었다.“네 정체가 무엇이냐.”그 남자는 고개를 숙인 채,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모용길입니다.”소욱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지만, 그 이름을 직접 듣는 순간 잠시 멍해졌다.정말로… 이 남자가 그 전설의 모용길이란 말인가.이백 년을 살아온 그 인물이 맞다고?모용길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당당한 눈빛으로 말했다.“
사월 하순, 약쟁이 사건이 마침내 일단락되었다.진범은 모용욱. 모용가의 다른 사람들은 모두 무죄 방면되었고, 약쟁이단의 전원은 형장에서 참수당할 예정이라는 조서가 내려졌다.소식이 퍼지자 백성들은 너나없이 거리로 뛰쳐나와 입을 모았다.“아이고, 이 일도 드디어 끝났구먼!”“대리사에서 어지간히 수사를 잘했나 봐!”“모용가는 원래부터 수상했지. 다른 사람들은 몰랐다니,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그러게 말이야. 혹시 그 모용욱이라는 자, 그냥 바람막이 아니었을까?”이유야 어쨌든, 사건이 마무리되었다는 사실에 백성들은 안도했다.이제 다시는 길에서 납치당해 약쟁이로 끌려갈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해가 높이 뜬 봄날, 도성은 어느새 예전의 활기를 되찾았다.오월 초, 황성에 또다시 기이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술집과 찻집, 사람들 모이는 곳이면 어디서나 같은 이야기가 나왔다.“그거 들었어? 얼마 전에 도성에 도사가 나타났는데, 불로장생의 비법이 있다며. 사람들이 그 집 문턱을 닳도록 찾아간다더라!”“거짓말이지. 세상천지에 불로장생이 어디 있어.”“근데 말이야, 그 도사 무려 삼백 살이 넘었대.”“두 왕조를 거치며 살아온 살아 있는 신선이라잖아!”“그래, 나도 들었어. 요새는 대신들이며 귀족들까지 줄줄이 찾아간대.”“오늘은 심지어 궁에까지 불려 들어갔다더라고.”“폐하께서도 믿고 계신다는데… 그럼 뭔가 있긴 있는 거 아냐?”그때, 누군가 문 밖을 가리키며 외쳤다.“저기 봐! 도사님 오신다!”거리 끝에서 하얀 수염을 늘어뜨린 노인이 보였다.작은 가마에 올라타 있었고, 네 명의 제자들이 앞뒤로 가마를 들고 있었다.그 뒤를 수십 명의 도사들이 수행을 하고 있는 것처럼 따르고 있었고, 그가 지나가는 길목마다 백성들은 무릎 꿇고 고개를 숙였다.“도사님! 제발 불로장생의 길을 가르쳐 주소서!”“도사님, 전 장생은 바라지 않아요. 제 딸 좀 살려주세요. 병이 너무 깊어요.”“도사님은 백병을 다스리신다던데, 제발…”모두가 각자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