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ICIAR SESIÓN북부의 눈보라는 멎었지만, 제국의 심장부인 황궁은 오히려 더 시리고 날카로운 긴장감에 잠식되어 있었다. 칼리안은 수도로 돌아온 직후부터 광기에 가까운 집착으로 엘로라를 단속했다. 그는 엘로라의 처소로 향하는 모든 복도에 기사들을 겹겹이 배치했고, 그녀의 시중을 드는 하녀들조차 칼리안이 직접 심사한 이들로 교체했다. 황궁은 이제 아름다운 성이 아니라, 오직 엘로라 한 사람만을 가두기 위해 설계된 거대한 화강암 감옥이나 다름없었다.“칼리안, 대체 언제까지 저를 이 방 안에만 가두실 건가요?”엘로라가 창틀을 붙잡으며 밖을 내다보려 했지만, 칼리안은 그녀의 허리를 낚아채듯 끌어당겨 자신의 무릎 위에 앉혔다. 그의 팔은 마치 강철 사슬처럼 엘로라의 몸을 조여왔고, 그의 고개는 그녀의 가느다란 목덜미에 깊숙이 묻혔다. “말했지. 네가 내 눈앞에서 사라지는 순간, 이 제국은 피바다가 될 거라고.”“그건 협박이에요.”“아니, 맹세다.”칼리안은 엘로라의 귓가에 낮게 으르렁거리며 그녀의 어깨에 남은 흉터를 손가락으로 매만졌다. 자객의 칼날이 스쳤던 그 자리는 이제 칼리안에게 있어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소유의 낙인이 되었다. 그는 북부에서 태워버렸던 로이센 백작의 서신을 떠올렸다. [엘로라 그레이스는 그레이스 대공의 딸이 아니다. 그녀의 혈관에 흐르는 마력은 로이센 왕실도, 제국 대공가도 아닌—.]칼리안은 그 뒤의 내용을 읽자마자 종이를 태워버렸다. 서신에 적힌 진실이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그녀가 뻐꾸기이든, 아니면 그보다 더 비천하거나 위험한 존재이든 칼리안에게는 중요치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지금
칼리안은 천천히 일어나 엘로라의 뺨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그녀의 코끝이 닿을 거리까지 얼굴을 밀착했다.“엘로라, 내가 말했지. 너는 아무것도 알 필요 없다고.”“하지만 제 혈통에 대한 이야기였잖아요. 제가 진짜 누구인지….”칼리안은 엘로라의 말을 자르면서 입을 열었다.“너는 내 황후다. 그 이상의 진실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그렇게 말하는 그의 목소리가 강압적으로 변했다.그는 그녀의 입술을 엄지손가락으로 거칠게 문지르며 말을 이어갔다.“만약 네 혈관에 흐르는 피가 무엇인지가 너를 내게서 멀어지게 만든다면, 나는 네 몸 안의 피를 전부 쏟아내고 내 피로 채워서라도 너를 곁에 둘 거다.”그것은 광기 어린 집착의 정점이었다.엘로라는 그의 숨결에서 느껴지는 절박함에 숨이 막혀왔다.그는 단순히 그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라는 존재 자체를 제 영혼에 박제하려 하고 있었다.“…알겠어요. 더는 묻지 않을게요.”엘로라가 항복하듯 눈을 감았다.칼리안은 그제야 만족스러운 듯 낮게 웃었다.그리고는 그녀의 이마에 깊게 입을 맞췄다.“착하군. 그렇게 내 품 안에서만 숨 쉬어라. 그러면 너는 제국에서 가장 고귀하고 안전한 꽃으로 살게 될 테니까.”칼리안이 방을 나선 뒤, 엘로라는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화려한 보석으로 치장된 드레스.또한 목에 걸린 황가의 목걸이.그게 마치 마치 보이지 않는 사슬처럼 느껴졌다.그때였다.유모가 조심스럽게 방 안으로 들어와 엘로라의 곁으로 다가왔다.“로웰!”엘로라가 다급하게 그녀엑 다가가 외쳤다.로웰의 얼굴은 평소보다 훨씬 더 창백하고 수척해져 있었다.“아가씨,
뻐꾸기가 찾은 둥지는 이토록 찬란하고도 잔혹한 안식처였다. 그녀는 이제 자신의 진짜 정체가 무엇이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이미 이 폭군이 만들어낸 거대한 세계에 완벽하게 갇혀버렸으니까. “가지 마라, 엘로라. 절대로 나를 떠나지 마라.” 칼리안은 그녀의 귓가에 끊임없이 애원하듯 명령했다. 그는 알고 있었다.태워버린 서신 속에 담긴 진실이 엘로라를 이 제국으로부터.그리고 자신으로부터 멀어지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선대 황제 카시안이 숨겨둔 비밀은 단순한 혈통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칼리안의 정당성을 뿌리째 흔들 수도 있는 파멸의 씨앗이었다. 하지만 칼리안은 상관없었다. 오직 이 품 안의 작은 새만은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제국이 무너지고 황좌가 피로 물든다 해도.그는 엘로라의 손가락 마디마디에 입을 맞추었다.그렇게 그녀를 더욱 깊은 집착의 수렁으로 끌어당겼다. 북부의 밤은 길었다.그리고 두 사람의 맹세는 핏빛 눈보라가 되어 설원을 뒤덮었다. *다음 날 아침.칼리안의 군대가 요새를 떠났다.그들의 분위기는 전보다 더 삼엄하고 서늘한 기운을 뿜어냈다.엘로라는 마차 안에서 칼리안의 품에 안긴 채였다.그렇게 멀어지는 북부의 눈을 바라보았다. 이제 돌아갈 곳은 황궁뿐이었다.그곳은 그녀에게 영원히 깨지 않을 지독하고도 아름다운 감옥이 될 것이었다. 칼리안은 마차 창문을 닫았다.그리고는 엘로라의 이마에 깊은 입맞춤을 남겼다. “이제 시작이다, 엘로라. 우리의 진짜 낙원이.” 그의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그와 함께 제국으로 향하는 마차 바퀴가 대지를 울리며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했다. 진실을 묻어버린 폭군과, 그 진실의 조각을 품은 채 각성한 황녀. 두 사람의 운명은 이제 되돌릴 수 없는 파국의 정
북부의 눈보라는 더욱 거세게 몰아치며 요새의 창문을 사정없이 두드려댔다.그 소리는 마치 곧 닥쳐올 거대한 파국의 서곡처럼 들려왔다.칼리안은 엘로라의 귓가에 다시 한번 낮게 읊조렸다.“걱정 마라, 네가 누구이든 너는 내 것이다.”그것은 구원이자 동시에 영원히 깨지 않을 지독한 구속의 선언이었다.*북부 요새의 밤은 삼킬 듯한 어둠과 날카로운 비명 같은 바람 소리로 가득했다. 요새의 창틀을 사정없이 두드리는 눈보라는 마치 방금 전 접견실에서 터져 나온 로이센 백작의 폭로가 불러올 파국을 예고하는 서곡 같았다. 칼리안은 제 손바닥 아래에서 파르르 떨리는 엘로라의 눈꺼풀을 느끼며, 그녀의 귓가에 다시 한번 낮게 읊조렸다. “걱정 마라, 네가 누구이든 너는 내 것이다.” 그것은 구원이자 동시에 영원히 깨지 않을 지독한 구속의 선언이었다. “……칼리안, 그 서신에 뭐라고 적혀 있었나요? 저 백작이 말한 진실이라는 게 대체 뭐죠?” 엘로라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지만, 칼리안은 대답 대신 그녀의 머리칼을 거칠게 헤집으며 그녀를 제 가슴팍으로 더 강하게 끌어당겼다. 그의 품 안에서는 비릿한 피 냄새와 타오르는 듯한 열기가 동시에 느껴졌다. “네가 알 필요 없는 쓰레기들이다. 그저 너를 내게서 떼어놓으려는 하이에나들의 수작일 뿐이지.” 칼리안은 바닥에 쓰러진 채 목숨을 구걸하는 로이센 백작을 향해 잔혹한 시선을 던졌다. 그의 적안에는 이미 이성이 한 조각도 남아있지 않은 광기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칼리안은 구겨진 서신을 바닥으로 내던지지 않고, 제 손안에서 일렁이는 마력의 불꽃으로 단숨에 태워버렸다. “아, 안 됩니다! 그 서신은
“그들은 헬레네의 정당한 후계자인 엘로라 공주를 만나러 왔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세드릭의 보고에 칼리안은 비릿한 웃음을 터뜨리며 엘로라의 턱을 들어 올려 자신만을 보게 만들었다.“공주라니, 이 여자는 내 둥지에 떨어진 내 것이고, 제국의 유일한 황후다.”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엘로라의 어깨 위에 자신의 정복 외투를 덮어주며 소유욕을 과시했다.“엘로라, 너는 이곳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마라, 그 하이에나 놈들은 내가 직접 찢어발겨 주마.”“아니요, 제가 가야겠어요, 칼리안.”엘로라는 자신의 손목에 남은 푸른 각성 문양을 응시하며 떨리는 숨을 내뱉었다.“어머니를 죽였던 그들이 왜 이제 와서 저를 찾는지, 직접 그 위선을 확인해야겠어요.”칼리안은 그녀의 단호한 눈빛에 잠시 침묵하더니, 이내 그녀의 손을 부서질 듯 꽉 잡았다.“좋다, 대신 내 품 안에서 한 발자국이라도 멀어지는 순간, 나는 로이센이라는 나라를 지도에서 지워버릴 거다.”요새의 접견실로 향하는 복도에는 수천 명의 흑기사가 도열해 황제와 황후의 행차를 호위했다.접견실 문이 열리자 화려한 로이센의 문장을 가슴에 단 백작이 오만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하지만 칼리안과 엘로라가 내뿜는 압도적인 위압감에 백작은 순간적으로 숨을 들이키며 무릎을 굽혔다.“제국의 태양과, 로이센의 잃어버린 보석을 뵙습니다.”“그 더러운 입으로 내 여자를 보석이라 부르지 마라, 죽여버리기 전에.”칼리안이 보좌에 비스듬히 앉아 턱을 괴며 낮게 읊조리자, 접견실의 공기가 일순간에 얼어붙었다.로이센의 백작은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품 안에서 붉은 봉인이 찍힌 낡은 가죽 서신을 꺼냈다.“헬레네 마법사가 남긴 유산에 대한 권리는 혈통을 보존하고
네가 이대로 잠든다면 나는 네가 지킨 이 제국을 내 손으로 멸망시킬 것이다.” 그것은 협박이자 애원이었다. “네가 사랑하던 백성들, 네가 아끼던 유모, 그리고 너를 이렇게 만든 이 북부의 요새까지 전부 피로 씻어내 버릴 거야.” 그의 목소리가 젖어 있었다. “그러니 제발…… 나를 혼자 두지 마라. 이 지옥 같은 세상에 나를 버리고 가지 마.” 그때였다. 칼리안의 손안에 있던 엘로라의 손가락이 아주 미세하게 경련했다. 그의 눈동자가 커졌다. “엘로라?” 감겨 있던 그녀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더니, 마침내 그 안의 투명한 벽안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직 초점이 맞지 않는 흐릿한 눈동자가 천천히 움직여 칼리안의 얼굴을 찾았다. “……칼리안?” 갈라진 목소리가 들려온 순간, 칼리안의 세계가 다시 조립되기 시작했다. 그는 무너지듯 그녀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살아있군. 살아있어.” 그의 어깨가 떨리는 것을 느끼며, 엘로라는 힘겹게 손을 들어 그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피 냄새와 땀 냄새, 그리고 지독한 집착의 향기가 그녀의 감각을 메웠다. “울어요……? 폐하가?” “시끄럽다. 죽었다 살아난 주제에 말이 많군.” 칼리안이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여전히 광기가 서려 있었지만, 그보다 더 깊은 곳에는 형언할 수 없는 안도감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이마에 거칠게 입을 맞추며 낮게 읊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