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런던의 밤 Part 1}
2018년 8월 18일 오후 10시, <영국 -런던> 런던에 도착한 구범주 사제와 이사에르 부제는 그 날 처음으로 빅벤을 보았다. 어둠 속에서도 찬란하게 빛나는 거대하고도 아름다운 시계탑은 하나의 기둥처럼 이곳 런던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밤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웅장한 모습에 구범주 사제는 잠시 넋을 잃었다. “아직 그 놈이 이곳에 도착까지 않은 듯합니다. 불경한 자들이 행하는 죄악의 소리 외엔 특이한 움직임이 없습니다.” 이사에르 부제가 말했다. “그럼 그가 올 때까지 기다립시다.” 구범주 사제가 두 손을 쥐었다. 그의 두 주먹은 희미한 오라를 띠고 있었다. 구범주 사제에게도 영적인 힘이 있다. 천사의 은총이 가득 담긴 주먹에는 평범하지 않은 힘이 깃들어 있어 보통사제와는 다른 악마들에게 직접적인 물리 타격을 입힐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던 구범주 사제가 말했다. “아직 멀었습니까?” -띠리링- 이사에르 부제의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발신자는 ‘아가토 사제’ 였다. 이사에르 부제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전화를 받았다. “네. 사제님 말씀하십시오.” 이사에르 부제가 침착한 목소리로 용건을 묻는다. “지금 우리가 쫓고 있는 그 놈의 정체는 푸르푸르라는 솔로몬 72악마 중 하나인 존재입니다.” 이사에르 부제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의 표정은 두려움이 가득찬 얼굴이었지만 구범주 사제에게 보이지 않도록 애써 감정을 숨겼다. “아직 완전한 힘을 가진 상태는 아니라 지금이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아가토 사제의 떨림이 전화기 너머까지 울린다. “그가 지금 이곳 런던에 오고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사에르 부제가 묻자 아가토 사제는 잠시 고민을 하였다. “부제님 말씀처럼 푸른 영대와 관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푸르푸르는 본래... 푸른 영대 속에 나머지 영혼이 봉인되어 있다고 합니다. 미완성된 봉인으로 인해 분리된 그의 영혼이 지금 자신의 본체를 찾기 위해 그곳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이사에르 부제의 동공이 커졌다. 그는 푸르푸르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를 얼핏 들은 적은 있었으나 이처럼 명확하게 듣는 것은 처음이었다. 본체와 잔여 영혼의 재결합... 그것은 완전한 소멸을 막고 오히려 악마를 더욱 강하게 만들 터였다. 옆에 있던 구범주 사제를 슬쩍 보며 목소리를 가다듬은 이사에르 부제가 입을 열었다. “그렇군요... 그럼 저희는 푸른 영대가 있는 박물관 쪽으로 이동하겠습니다.” “네 부디 몸 조심하십시오 이사에르 부제님. 그리고... 구범주 사제님께는 너무 무모하게 나서지 마시라고 전해주십시오. 그 악마는... 결코 인간이 대적할 존재가 아닙니다.” 아가토 사제가 이야기를 끝 마치며 전화를 끊었다. 이사에르 부제는 전화기를 내리며 착잡한 표정으로 구범주 사제를 바라본다. 그의 어깨가 무거웠다. “구범주 사제님 저희는 박물관으로 가야 될 것 같습니다.” 이사에르 부제가 그에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출발하시죠. 대재앙을 막으러.” 이사에르 부제의 표정을 읽은 듯 작게 미소 짓는 그였다. 구범주 사제는 다시 한번 빅벤을 올려다본다. 그의 눈빛은 굳건했지만 가슴속에서는 알 수 없는 불길함이 차오르고 있었다. 그들은 거대한 시계탑을 뒤로하고 불길한 빛이 감도는 박물관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 천 년의 역사를 품은 박물관 앞 광장은 자정이 다 되어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파로 북적였다. 화려한 네온사인과 가로등 불빛 아래, 관광객들은 웃고 떠들며 런던의 밤을 만끽하고 있었다. 이 거대한 인파 속에 구범주 사제와 이사에르 부제는 그들의 존재를 감춘 채 다가올 악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박물관 입구에 가장 가까운 가로등 아래 구범주 사제는 긴장으로 굳어진 얼굴로 미동 없이 서 있었다. 이사에르 부제가 낮은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이런 많은 인파 속에서 그가 우리의 존재를 알게 되면 선량한 시민들의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을 겁니다. 우리가 움직이는 순간 그의 시선은 그곳으로 향하겠지요.” “저도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섣불리 움직였다 발각되면 그를 놓치거나 더 큰 혼란을 야기할 뿐입니다. 일단은 기다려보시죠... 숨죽여 기회를 엿보아야 합니다.” 구범주 사제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인파 속을 꿰뚫어보았다. “흐음.. 조금씩 느껴집니다... 사제님! 이 고통스러운 파동...” 이사에르 부제가 두 눈을 감으며 귀에다 신경을 집중시켰다. “방향이 어딥니까...! 어디에서 그 기운이...!!” 구범주 사제는 심각해진 그의 모습에 주위를 재차 주위를 둘러보았다. “동쪽 방향... 4차선 도로에서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습니다! 수많은 인간들 사이로 그의 끓어오르는 힘이 느껴집니다...!” 이사에르가 두려움이 섞인 목소리를 내며 그에게 말했다. “서두르시죠 부제님...! 시간을 끌어야 합니다!” 구범주 사제는 상의 안쪽 주머니에서 기다란 천 하나를 꺼내 오른손에 휘감았고 그 위에 성유를 펴발랐다. 그의 주먹은 더욱 묵직하고 단단해 보였다. “성수 준비하시고 최대한 사람이 없는 쪽으로 그 놈을 유인해야 합니다! 시민들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합니다!” 구범주 사제는 박물관 옆을 지나 가로등 불빛이 끊어진 어두컴컴한 길거리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의 발걸음은 망설임이 없었다. “사제님...!” 이사에르 부제는 그의 단독 행동에 경악했다. 푸르푸르라는 이름만으로도 공포가 밀려오는 대악마를 상대로 홀로 나선다는 것은 자살 행위와 다를 바 없었다. 그는 곧장 구범주 사제를 따라 길거리로 달렸다. “단독 행동은 절대 금지입니다! 더욱이 이렇게 위험한 상대와 싸울 때는 말입니다!” 이사에르 부제는 달리면서 구범주 사제에게 소리쳤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없습니다! 그가 푸른 영대에 닿기 전에...!” 구범주 사제는 전속력으로 뛰어 맞은편 상가까지 순식간에 이동했다. “이사에르 부제님! 지금 그놈의 위치는 어디입니까?!” 상가 기둥 뒤에 몸을 숨긴 그가 이사에르 부제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 놈이 도로를 지났습니다! 이 상가에서 두 건물 뒤에 그가 있습니다!” 숨을 헐떡이며 상가 모퉁이까지 따라온 이사에르 부제가 말했다. “그곳에 사람들은 얼마나 있습니까!? 시민들의 안전이 우선입니다!” 그가 결의를 다진 얼굴로 말했다. “다수의 관광객들이 있습니다! 이미 길거리를 꽉 채우고 있습니다! 위험합니다!” 이사에르 부제가 흐르는 땀을 닦으며 귀를 기울였다. “그렇다면 이 방법밖에..” 구범주 사제는 미리 준비해 온 작은 부싯돌을 상위 안주머니에서 꺼내 바닥에다 떨어뜨리며 성유를 뿌렸다. 그의 눈동자는 결연했다. 이미 선택을 다 끝마친 사제처럼. 신고 있던 구두를 바닥에 힘껏 쓸어내며 부싯돌에 일시적인 마찰을 일으켰다. 치지직- 작은 불꽃이 튀었고 그 불씨가 기름 묻은 낙엽을 시작으로 바람을 타며 거리를 쓸었다. 순간적으로 거리 한 귀퉁이에 화염이 일렁인다. “꺄아아아악! 불이야! 도망쳐!” 곳곳에서 시민들의 비명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놀라서 도망치는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구범주 사제는 주머니에서 성유를 듬뿍 바른 또 다른 천 하나를 더 꺼내 불을 옮겼다. 순식간에 불길은 작은 불꽃에서 거대한 화염으로 번져나갔고 혼란은 극대화되었다. 그 모습이 믿기지 않는 이사에르 부제는 소리쳤다. “지금 뭐하시는겁니까!!! 불을 지르다니요! 시민들의 안전은...!!” 그는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등지고 서서 흔들리는 동공으로 이사에르 부제를 응시했다. “진정하십시오 부제님! 그리고 제가 하는 말을 명심하십시오!” 불이 붙은 천을 흔들다 마른 낙엽들이 깔린 바닥에 던진 그가 흩어지는 불씨를 등진 채 큰소리로 말했다. “지금부터... 그를 이쪽으로 유인시킬 겁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단독으로 맞서 싸우는 것은 결사 반대입니다!” 이사에르 부제가 그를 말렸다. “그가 이곳에 온 이유가... 바로 영대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대로 두면 이곳의 모든 영혼이 위험에 처합니다.. 제가 시간을 끌 테니... 어서 푸른 영대를 지키세요...! 한 명이라도 미끼가 되어 시간을 벌어야 합니다!” 그의 말이 맞았다. 하지만 이사에르 부제는 망설였다. 그의 눈에는 구범주 사제의 단독 행동에 대한 당황과 아가토 사제의 경고가 떠올랐다. 그러나 구범주 사제에 눈에 담긴 결연함은 그 어떤 논리도 뛰어넘었다. “...알겠습니다! 사제님. 그러면 잠시 동안만 버텨주십시오... 제 모든 것을 걸고 영대를 지키겠습니다!” 그의 말에 구범주 사제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구범주 사제의 얼굴은 화염에 비쳐 붉게 물들어 있었다. “꼭 푸른 영대를 지키주십시오... 정 안되면... 불로 태우셔도 됩니다..” 이사에르 부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이사에르 부제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그는 다시 화염과 혼란속을 피해 박물관이 있는 쪽으로 서둘러 뛰어갔다. 그의 눈빛에도 구범주와 같은 비장함이 서려 있었다. 홀로 남은 구범주 사제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폐 속까지 차오르는 공기는 차갑지만 그의 심장은 뜨겁게 타오른다. 그리고 구범주 사제는 멀리서 이쪽으로 다가오는 '존재'를 향해 소리쳤다. “네 정체가 푸르푸르라고 하였나...? 푸른 영대를 얻고 싶다면... 이쪽으로 오는 게 좋을 것이다!” 비장한 그의 목소리가 길거리를 울렸다. 그가 이런 무모한 행동을 한 이유는 부마자가 누구인지 명확히 가려내기 위한 행위였고 그에게 싸움의 신호를 보내는 도발이었다. “날 방해하러 온... 사제인가...? 고작 인간 주제에...” 순간 그의 귓가에 낯선 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악마 주제에... 재주꾼이구만...’ 주먹을 꽉쥔 구범주 사제는 다시 한번 푸르푸르를 향해 외쳤다. “푸르푸르...! 이제 그 모습을 드러내라!! 인간의 껍데기에 숨어있지 말고!” 푸르푸르는 이미 오래전부터 사제들의 존재를 느끼고 있었다. 그들이 어떤 말과 생각을 하는지 그 모든 것을 진작 알아차리고 행동한것이었다. ‘바보같이... 미끼를 건넨 건 상대였었구만...’ 구범주 사제는 천으로 감싼 주먹을 쥐었다 피며 그를 감탄했다. 저 멀리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거리를 둔 채 동쪽 도로에서 이쪽으로 걸어오던 남자. 평범한 작업 복장 차림이었지만 그의 눈빛은 이미 인간의 그것이 아니었다. 그가 양손을 위로 치켜들자 어둡던 하늘에서 거대한 번개가 내리쳤다. 갑작스러운 번개에 주위에 있던 나머지 사람들 또한 비명을 지르며 거리에서 도망쳤다. 번개에 그을려 검게 변한 아스팔트 위에서 구범주 사제는 그 날 처음으로 악마가 깃든 부마자와 마주한다. “너였구나..” 그 남자의 목에 걸린 팬던트에서는 광기에 물든 붉은 오라가 뿜어나오고 있는중이었다.. --- 2018년 8월 18일 오후 10시 (동일 시), <대한민국 -서울>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간, 세주의 휴대폰이 병실 침대 옆 탁자에서 격렬하게 울렸다. 화면에 뜬 발신자는 아영이다. 전화를 받은 세주는 그녀가 먼저 말하기 전까지 휴대폰을 든 채 가만히 기다렸다. 그의 마음속에는 아버지에 대한 복잡한 감정들이 뒤섞여 있었다. 수화기 너머의 그녀는 긴장했는지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연다. “세주야...” “이번에는 또 무슨 말을 하시게...?” 세주의 장난이 섞인 말투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아니. 푸른십자회에 대해서 말할 건데... 진지하게 들어줘... 이건... 농담이 아니야.” “찾았어...?” 장난기가 사라진 그가 물었다. 순간적으로 그의 직감적인 감각이 평소와 다른 아영의 분위기에서 심상치 않은 무언가를 감지했다. “찾긴 찾았는데... 뭔가 좀 이상한 게 있어서...” “뭐가 이상하던데...?” 세주는 불길한 예감을 눈치챈다. “푸른십자회가... 너희 아버지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것 같아... 아니... 확실해.” 그녀의 예상치 못한 답변에 세주는 벙찐 얼굴로 맞은편 텅 빈 침대를 바라봤다. 방금까지 그의 머릿속을 헤집던 혼란이 거대한 진실 앞에서 무력해졌다. “그게 뭔 소리야...?” 그가 당황하자 그녀가 재차 설명을 했다. “너희 아버지가... 푸른십자회 일원이야... 직접 활동한 기록도 몇 차례 적혀있고... 이건... 그냥 평범한 종교 단체가 아니야. 악마와 싸우는... 비밀스러운 조직이라고.” 세주는 어이가 없었다. 그의 세상이 뒤집히는 것만 같았다. 그의 아버지는 그저 한없이 자상하고 평범한 신부였다고 믿어왔으니까. “그러니까...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을 좀 해봐...! 지금 나한테 농담하는 거 아니지?!” 세주의 언성이 살짝 높아진다. 그는 자신이 믿어왔던 세상의 전부가 산산조각 나는 듯한... 아버지의 진실을 마주한다. 수화기 너머로 아영의 다급한 설명과 범준의 불안한 한숨이 들려왔지만 그의 머릿속은 이미 폭풍우가 몰아치고 있었다. *** 세주 어머니는 병실 밖 복도 벤치에 쓰러진 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그녀는 20분 전부터 꿈을 꾸고 있었다. 극심한 과호흡과 식은땀이 그녀의 몸을 뒤덮었다. 꿈속에서는 평범한 시내 한복판을 그녀가 걷고 있었다. 길거리 상가에는 강렬한 네온사인이 현란하게 켜져 있고 그 주위를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까지모두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는 홀린 듯 이 모든 광경에 매료되어 그곳을 돌아다녔다고 한다. 말없이 걷다 보니 그녀는 어느새 시내를 한 바퀴 돌아 다시 원래 있었던 곳에 서 있었다. 똑같은 상가, 똑같은 사람들. “내가 언제 이만큼 걸었었지...” 그녀가 중얼거리며 걷고 있는데.. 멀리서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그것은 단순한 비명이 아니었다. 공포와 절망이 뒤섞인 아우성이었다. 멀리 있지 않은 곳에서 들리는 비명소리를 쫓아 그녀는 무작정 달려갔다. 빛과 혼란 속에서 그녀가 도착한 곳에는 몸에서 셀 수 없는 양의 피를 흘리고 있는 아버지가 쓰러져 있었다고 한다. 그의 얼굴은 이미 피투성이였고 눈은 희미하게 뜨여 있었다. “여보...!!!” 그녀가 비명을 내질렀다. “커헉...!” 아버지는 숨쉬기 힘드셨는지 피를 토해낸다. 어머니는 놀라서 아버지에게로 향했고 서서히 죽어가는 그를 양손으로 받쳐 들었다. 뜨거운 피가 그녀의 손바닥을 적신다. “여보... 안돼요... 제발 죽지 마요...!!!”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그를 막았다. 그는 힘겹게 숨을 내쉬며 흐려지는 시선으로 그녀를 응시한다. “이... 이사애...” 아버지의 입에서 나온 마지막 말은 어머니의 이름, 이사애였다. 그의 목소리가 사라지자 그의 몸에서 흘러내리던 피가 갑자기 멈추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의 몸은 회색빛 잿가루로 변하기 시작했다. 한없이 사랑했던 남편의 육체가 눈앞에서 모래처럼 흩어지는 끔찍한 광경이었다. 어머니는 비명을 지르며 잿가루를 움켜쥔다. “제발... 안 돼!!! 제발...!!” 그가 전부 사라져갈 때 암흑 같던 하늘에서 거대한 번개가 내리쳤다. 그 번개의 섬광과 함께 그녀는 끔찍한 꿈에서 깨어난다. “허억...!!! 허억...!” 숨을 헐떡이며 그녀는 병실 밖 복도 벤치에서 일어난다. 그녀의 온몸은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고 심장은 미친 듯이 발작했다. 아직 꿈의 여파가 가시지 않아 호흡은 진정되지 않았고 그녀는 힘없이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복도에서 나는 쿵 소리에 간호사 한 분이 곧장 소리가 난쪽으로 다가갔고 멀리 쓰러져있는 그녀를 부축하였다. “아주머니 괜찮으세요...!? 과호흡이 심하신 것 같아요..!” 간호사가 그녀의 몸 상태를 확인하며 말했다. 어머니는 순간적인 과호흡으로 의식을 잃었고 다행히 옆에있던 간호사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그녀의 의식이 꺼진 순간에도 그녀의 손은 마치 무언가를 놓치지 않으려 허공을 움켜쥐고 있었다.. *** “믿을 수 없어..” 세주는 아영의 전화를 끊은 뒤 곧장 아버지의 휴대폰 번호를 눌렀다. 불안감과 절망, 그리고 일말의 희망이 뒤섞인 감정이 그의 손끝을 타고 전해진다. “받아주세요... 제발... 아버지...” 전화기에 귀를 대며 기도했다. 연결음이 길게 울린다. 삑- 삑- 삑- 고요해진 병실에는 오직 아버지의 휴대폰에서 흘러나오는 통화음만이 메아리쳤다. 그 통화음은 세주의 심장을 거세게 조여왔다. 아버지.. 즉 구범주 사제 그는 지금 영국 런던에서 악마 푸르푸르와 마주하고 있는중이다. 하지만 나는 그 사실을 끝내 알지 못했다. 아버지의 휴대폰은 연결되지 않았다. 몇 번을 다시 걸어봤지만 돌아오는 것은 변함없는 통화음뿐. 세주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진다.{테이레시아스의 계백 Part 4}발생했던 일들을 정리한 이사에르 부제는 라이덴 사제와 미로 속으로 발을 들인다.“이렇게 된 이상 무작정 헤매는 것보단 방법을 찾아야겠어요.”이사에르 부제가 말했다.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었다.“맞습니다. 저를 따라오세요.”라이덴 사제가 앞장서며 벽면에 오른손을 짚었다.손가락으로 벽의 재질을 확인하며 조금씩 쓸어내리는 그의 표정에는 낯익은 무언가를 떠올리는 기색이었다.“예전에 일본 여행 중에 들렀던 미로 터널이 이곳과 구조가 비슷하네요.”“그런 곳까지 다녀보셨어요?”이사에르 부제가 놀란 눈으로 물었다.“그때는 그냥 관광이었는데 도움이 될 줄은 몰랐네요.”라이덴 사제는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벽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한쪽 벽면만 손으로 짚고 이어진 길을 걸으면 결국 출구를 찾을 수 있다는 원리였다.단순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는 유일하게 붙잡을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었다.“이 방법이면 언젠가는 빠져나갈 수 있을 거예요.”그의 말에 이사에르 부제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안도는 오래가지 못한다.이사에르 부제는 손목에 찬 시계를 확인하려다 멈칫하였다.“시간이..!”시계의 초침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몇 번이나 눈을 비비고 다시 확인해도 마찬가지였다.“라이덴 사제님 이것 좀 보세요.. 시간이 멈춰있습니다.”그가 손목을 내밀었다.라이덴 사제는 그의 시계를 확인하고는 멘탈이 나간다.자신의 시계도 꺼내 보았지만 마찬가지로 초침이 정지해 있었다.“정상적인 공간은 아니군요…”그의 목소리에 긴장감이 멤돈다.스르륵
{테이레시아스의 계백 Part 3}박쥐 떼가 지나간 자리에는 차갑고 축축한 침묵만이 남았다.“다들 괜찮으신가요..?”아가토 사제가 흐트러진 램프 불빛을 고쳐 잡으며 물었다.손등에는 박쥐 날개에 스친 자국이 붉게 남아 있었다.“네.. 놀라긴 했지만 괜찮습니다.”이사에르 부제가 헝클어진 머리를 정돈하며 답했다.네 사람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계단 끝에 도달하자 눈앞으로 더욱 깊은 어둠이 펼쳐진다.램프 하나의 빛으로는 도저히 그 끝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넓은 공간이었다.“여기가.. 지하실 전부인가요?”라이덴 사제가 물었다.목소리를 낮췄음에도 그 울림이 벽을 타고 이상하리만치 길게 퍼져나갔다.“기록에는 이 아래 예배당 하나가 더 있었다고 되어 있습니다.”자베르안 수도사가 답했다.그의 시선은 여전히 어둠 속 어딘가에 있었다.발걸음을 뗄 때마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서늘한 한기가 발목을 타고 올라온다.벽에 걸린 낡은 촛대들은 오래전에 불이 꺼진 채 방치되어 있었고 그 위로 거미줄이 두껍게 엉겨 있었다.이사에르 부제는 자신도 모르게 라이덴 사제의 소매 끝을 살짝 붙잡았다.그 손길에 라이덴 사제는 그를 돌아보았지만 아무 말 없이 걸음의 속도를 늦추며 그와 보폭을 맞췄다.그렇게 얼마나 또 걸었을까, 하나로 이어졌던 통로가 세 갈래로 갈라지는 넓은 공간으로 변해있었다.“이상하네요.. 지도에는 이런 갈림길이 없었는데..”자베르안 수도사가 미간을 좁히며 중얼거렸다.그 순간이었다.콰앙-!!발밑에서부터 시작된 굉음이 지하실 전체를 뒤흔들었다.천장에서 돌가루가 쏟아지고 벽
{테이레시아스의 계백 Part 2}2019년 10월 4일 오전 5시 44분(동일시), 아영은 책상에 앉아 고민에 빠진다.하고 있던 수업 노트를 손으로 덮고 긴 한숨을 내쉰다.책상 위 스탠드 불빛만이 방 안을 밝히고 있었고 창밖은 태양이 떠오르기 전이었다..그녀에게도 최근 들어 기이한 일들이 벌어졌다.가슴 한편에 묻어 세주와 범준이는 알지 못한다.처음으로 일어난 기이한 일은 그녀가 수업을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가던 도중이었다.밤공기가 유독 축축했고 가로등 불빛 아래 그녀의 그림자만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가로등이 비추는 길을 따라 걷다 옆에 있는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바스락’거리는 기분 나쁜 발소리가 들려온다.아영은 깜짝 놀라 품에 안고 있던 책과 노트북을 놓칠 뻔하였다.“범준아 좋은 말로 할때 나와라..!”그의 장난으로 생각한 아영은 애써 태연한 척 목소리를 높였지만 사실 심장은 빠르게 뛰고 있었다.소리가 난 곳으로 천천히 다가간다.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 앉을뻔하였다.바스락 바스락여러 명의 발소리가 동시에 들리자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확 끼친다.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기숙사까지 내달렸다.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멈출 수 없었다.야생 동물이나 친구들의 장난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정체는 확인하지 못해 이 일은 미궁 속으로 사라진다.두 번째 일은 그녀가 기숙사에서 양치하던 도중 욕실 위 작은 창문에서 누군가의 노크 소리를 들은 일이다.그날 밤도 유독 조용했다.물소리와 칫솔질 하는 소리만이 좁은 욕실 안을 채우고 있었는데 그 정적을
{테이레시아스의 계백 Part 1}2019년 10월 4일 오전 5시 23분, “자베르안 수도사님 반갑습니다.”경호원으로 보이는 두 사람 중 한명이 차에서 내린 그에게 인사를 건넨다.“네 반갑습니다.”“근데 옆에 분들은 누구시죠?”수도사 옆에 같이 타있던 나머지 사람들의 정체를 묻는 그였다.“저는 아시리스 사제의 아들 아가토 입니다.”아가토 사제가 흐트러진 복장을 말끔히 정돈하고 인사를 올린다.“아..! 아시리스 사제님이라면 전설적인..”놀란 경호원의 눈치를 본 아가토 사제는 진정하라는 손짓을 하며 일을 키우지 않았다.어찌저찌 성당 안으로 들어온 네 사람은 주변을 둘러보았다.“속죄의 구슬이 발견됐다는 뉴스가 뜬것 치고는 사람들이 없네요.”라이덴 사제가 궁금증을 입 밖으로 뱉었다.성당 안은 고요했다.스테인드글라스 너머로 새벽빛이 스며들었지만 아직 어둠이 짙게 깔린 내부는 촛불 몇 개만이 흔들리며 벽면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다.오래된 향냄새와 눅눅한 돌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아무래도 그래서 사람들이 없는 거 같네요.”아가토 사제가 말했다.“사실 속죄의 구슬을 처음 발견했다는 수도사는 지금 행방불명되어 연락이 닿지 않고 있습니다.”자베르안 수도사가 입을 열었다.“네!? 그러면 그 구슬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이사에르 부제가 당황한 말투로 그에게 답한다.그의 손이 무의식적으로 성호를 그었다.“저희도 모릅니다.. 단지 이곳에서 발견되었다는 사실밖에는…”자베르안 수도사가 고개를 숙이며 말끝을 흐렸다.그의 시선이 잠시 제단 쪽으로 이동하였다가 바닥으
{행운의 손길은 동쪽에서 Part 7}밤이 되어 세주와 이사벨은 한적한 호텔로 들어간다.서로의 발걸음은 미묘하게 달랐다.이사벨의 걸음은 가볍고 여유로웠지만 세주의 걸음에는 어딘가 불편한 기색이 묻어 있었다.“아가씨가 엄청 아리땁고 예쁘네요. 남자친구분이 전생에 나라를 구했어~~”호텔 카운터에서 일하던 중년의 아주머니께서 이사벨에게 키를 건네주며 반겼다.“그러게요ㅎㅎ”이사벨이 미소를 띠자 세주는 벙찐 채 숙연해졌다.귓불이 조금씩 달아오르는 걸 느꼈지만 애써 표정을 굳힌다.“사장님 저희 그런 사이 아닙니다.”선을 그으며 즐거워 보이는 그녀를 데리고 첫 계단을 밟고 올라서는 그였다.뒷목이 뻐근해지는 것 같아 손으로 슬쩍 문지른다.“아직 남자친구라는 단어는 좀 싫은가 봐??”이사벨이 세주를 떠보며 물었다.장난기 어린 눈빛이 그의 얼굴에 도달한다.“그게 사실이잖아..”세주는 시선을 회피하며 계단 손잡이만 바라보았다.“때로는 거짓이 사실보다 더욱 가치 있을 수 있거든?!”4층까지 힘겹게 올라간 두 사람은 키를 403호 방 도어락에 입력하며 문을 열었다.띠링문이 열리고 눈 앞에는 거대한 침대 하나가 보였다.“침대가 하나뿐이네.. 어쩔 수 없지.”이사벨이 심각한 고민을 하는 척 인상을 찡그렸다.“내가 밑에서 잘게 누나가 침대에서 자.”입구 근처에 위치한 화장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던 세주가 입을 열었다.등 뒤로 문을 닫는 손길이 다급했다.“흐음..”“내가 왜 따라서 호텔로 들어온거지..도대체 이유가 뭐야..?진짜 누나가 걱정돼
{행운의 손길은 동쪽에서 Part 6}2019년 10월 3일 오후 1시 19분, “어때요.. 제법 그럴싸하죠?”최아랑은 개인 수영장에서 비서인 임다미와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물결이 잔잔히 흐르는 수영장 위로 그의 여유로운 미소가 비쳤다.“네 기이한 느낌이 들어요.”비서는 최대한 그의 비위를 맞춘다.목소리는 굵고 단결하였다.“근데 다미씨 제가 편한 옷으로 입으라고 말하지 않았나요??”아랑은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을 지적하며 질문을 건넸다.나른한 말투와 달리 눈빛에는 서늘함이 깃들어 있었다.“최대한 얇은 옷으로 입고 왔습니다.”그녀는 민소매 하나를 걸친 채 그의 옆에 누워있었다.그녀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절 자극하지 못한다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사실을 아직 깨우치지 못하였나요?”아랑은 그녀가 입고 있는 나시를 손으로 찢으며 몰아붙인다.그의 표정에는 조금의 동요도 없었다.“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하겠습니다.”다미는 고개를 숙였다.“됐습니다. 오늘은 이만 가보세요.”그는 그녀의 찢긴 옷 내부의 속살을 훑어보다 질렸는지 임다미를 밖으로 내쫓았다.벌레를 치우는 무심한 인간처럼.“하아.. 버러지 같은 인간 주제에.”아랑은 머리를 물에 처박으며 생각에 잠긴다.물속에 잠긴 순간에도 그의 머릿속은 냉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그래 서서히 완성되어 가고 있구나..’그는 손을 물에다 휘저으며 오라를 내뿜었다.스르륵수면 위로 서늘한 기운이 번져 나갔다.“군주님 준비는 다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