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해외 시상식 의상 피팅.서율이 검은 드레스를 입고 커튼을 열었다.태혁은 말이 없었다.“왜.”“다른 거 입어.”“또?”등이 거의 전부 드러나는 디자인이었다.“예쁜데.”“그래서 문제입니다.”스타일리스트가 눈치를 보며 물러났다.서율이 웃었다.“질투?”“네.”이제는 숨기지도 않았다.서율은 커튼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그리고 잠시 뒤.“차태혁.”“왜.”“지퍼 안 내려가.”태혁이 들어갔다.좁은 피팅룸.서율은 거울을 향해 서 있었다.“여기.”등 뒤의 지퍼.태혁의 손이 올라갔다.지퍼를 잡았다.그리고—천천히 내렸다.서율이 거울 속으로 그를 봤다.“왜 이렇게 천천히 해.”“걸렸습니다.”“거짓말.”지퍼는 멀쩡했다.손끝이 맨 등에 아주 살짝 닿았다.서율의 호흡이 달라졌다.“차태혁.”“네.”“일부러지.”“조금.”서율이 웃었다.“손.”태혁이 멈췄다.“내려.”손이 떨어졌다.서율은 거울을 통해 그를 바라봤다.“아쉽지?”“많이.”“그럼 참아.”“언제까지.”서율이 몸을 돌렸다.좁은 공간이라 둘 사이가 지나치게 가까웠다.“시상식 끝날 때까지.”태혁의 얼굴이 굳었다.“진심입니까?”“응.”“그 드레스 입고?”“응.”“잔인하네.”서율이 그의 넥타이를 한번 당겼다가 놓았다.“착하게 기다려.”그리고 커튼을 열었다.태혁은 혼자 피팅룸에 남았다.밖에서 서율의 목소리가 들렸다.“그 드레스로 할게요.”태혁이 눈을 감았다.[제163조.][기다림도.][플레이의 일부다.]
서율은 새로운 조항을 추가했다.[제6조. 업무 중 사적 접촉 금지.]태혁이 노트를 내려다봤다.“왜.”“어제 회의 늦었잖아.”“17분.”“그게 늦은 거야.”“대표가 둘인데 누가 뭐라고 합니까.”“내가.”태혁은 펜을 들었다.[수정 요청.]“기각.”[재심 요청.]“기각.”태혁이 펜을 내려놓았다.“알겠습니다.”너무 쉽게 포기했다.서율이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진짜?”“네.”문제는 오후였다.회의실.서율이 발표하는 동안 태혁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평소처럼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회의가 끝나도 마찬가지.엘리베이터에서도.차 안에서도.저녁 식사에서도.결국 서율이 먼저 물었다.“너 오늘 왜 그래.”“업무 중 사적 접촉 금지.”“지금 업무 끝났거든?”태혁이 시계를 봤다.“아직 공식 일정 4분 남았습니다.”“…….”정확히 4분 뒤.차가 지하주차장에 들어왔다.태혁이 시계를 확인했다.“끝.”“뭐가.”안전벨트가 풀렸다.서율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 태혁의 손이 좌석 옆을 짚었다.거리가 순식간에 가까워졌다.“업무.”“야.”“이제 사적 시간입니다.”서율이 웃었다.“그걸 기다렸어?”“하루 종일.”“미쳤네.”“누구 때문에.”태혁이 입을 맞추려 하자 서율이 손바닥으로 막았다.“벌칙.”“왜.”“업무시간에 나 계속 쳐다봤잖아.”“접촉 금지였지 시선 금지가 아닙니다.”“말대꾸.”“규칙의 허점입니다.”서율의 눈이 가늘어졌다.“좋아.”그녀가 안전벨트를 완전히 풀었다.그리고 태혁에게 가까이 다가갔다.이번에는 태혁이 기다렸다.서율은 입술 바로 앞에서 멈췄다.“오늘 보상 없음.”그대로 차에서 내렸다.태혁은 혼자 남았다.잠시 후.“……제6조 폐기해야겠네.”앞좌석 기사가 아무것도 듣지 못한 척 정면만 바라봤다.[제162조.][금지는.][욕망을 없애지 않는다.][기다리는 시간을 늘릴 뿐이다.]
아침 일곱 시. 서율은 침대 옆에 떨어진 노트를 발견했다. [제5조. 보상의 횟수에는 제한을 두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글씨. [조건부 승인.] “……내가 이걸 언제 썼지.” 욕실 문이 열렸다. 차태혁이 젖은 머리를 털며 나왔다. “기억 안 납니까?” “안 나.” “섭섭하네요.” “뭐가.” “어젯밤에는 상당히 적극적으로 승인하셨는데.” 서율이 베개를 던졌다. 태혁이 받아냈다. “죽을래?” “좋은 아침입니다.” “그 노트 내놔.” “싫습니다.” “차태혁.” 태혁은 노트를 등 뒤로 숨겼다. 서율이 침대에서 내려왔다. “마지막 경고.” “뺏어보십시오.” 서율의 눈이 가늘어졌다. “도발?” “제안.” 서율이 그대로 달려들었다. 노트를 잡으려 했지만 태혁이 팔을 들어 올렸다. 키 차이 때문에 손끝조차 닿지 않았다. “야!” “조금만 더.” “진짜 죽인다.” 서율이 그의 셔츠를 잡고 몸을 끌어당겼다. 그 순간 균형이 무너졌다. 둘이 그대로 침대 위로 쓰러졌다. 서율이 위. 태혁이 아래. 움직임이 동시에 멈췄다. “…….” “…….” 태혁이 먼저 웃었다. “이 방법도 나쁘지 않은데.” “입 닫아.” 서율은 노트를 빼앗으려 했지만 태혁이 손목을 잡았다. “놓으라고.” “조건 하나.” “뭔데.” “제5조 정식 승인.” “기각.” “그럼 못 줍니다.” 서율이 그의 손목을 침대에 눌렀다. “누가 지금 협상권 있다고 했어?” “현재 노트 소유자.” 서율은 잠깐 그를 노려봤다. 그러다 갑자기 웃었다. “좋아.” 태혁의 눈빛이 달라졌다. 서율은 몸을 낮췄다. 입술이 그의 귀 가까이. “정식 승인.” “정말?” “대신.” “조건.” “보상 결정권은 나한테 있어.” 태혁이 잠시 생각했다.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없어.” 태혁의 표정이 굳었다. 서율이 웃으며 노트를 빼앗았다. “협상 끝.” “사기 아닙니까?” “계약서 안 읽은 네 잘못.” 서율이
세 달 후.MIRROR 사건은 세계적인 스캔들이 됐다.회원 11명 중 생존자 전원이 수사 대상이 됐고.관련 기업들은 무너졌다.서율은 또 한 번 살아남았다.아니.이번에는 살아남은 정도가 아니었다.판 자체를 없애버렸다.밤.펜트하우스.서율은 새 노트를 펼쳤다.태혁이 와인잔을 들고 다가왔다.“뭡니까.”“가이드라인.”태혁의 표정이 묘해졌다.“또 만듭니까?”“응.”“이번엔 몇 조까지.”“몰라.”서율이 첫 페이지에 적었다.[NEW PLAY GUIDELINE.]태혁이 맞은편에 앉았다.“제1조는?”서율은 잠깐 생각했다.그리고 적었다.[제1조. 어느 한쪽도 상대의 선택을 대신하지 않는다.]태혁이 고개를 끄덕였다.“좋습니다.”[제2조. 위험한 일은 가능한 한 함께한다.]“가능한 한?”“내가 혼자 하고 싶을 수도 있잖아.”“수정 요청합니다.”“기각.”“벌써?”서율이 웃었다.그리고 제3조.펜이 멈췄다.태혁이 물었다.“왜.”“이건 네가 써.”노트를 밀었다.태혁이 펜을 들었다.잠시 생각하더니 적었다.[제3조. 싫으면 언제든 멈춘다.]서율이 바라봤다.“그건 예전부터 있었잖아.”“제일 중요하니까.”서율의 표정이 조금 부드러워졌다.“그럼 제4조.”“뭡니까.”서율은 노트를 다시 가져왔다.[제4조. 잘한 사냥개에게는 보상을 준다.]태혁의 시선이 멈췄다.“지금도 적용됩니까?”“왜.”“오늘 잘한 것 같은데.”“뭘 했다고.”“세 달 동안 사고 안 쳤습니다.”“그게 잘한 거야?”“나한테는.”서율이 웃었다.태혁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 앞에 섰다.“보상.”“뭐 원하는데.”“말해야 합니까.”“응.”태혁의 시선이 입술로 내려갔다.서율이 눈을 가늘게 떴다.“하나?”“처음에는.”“욕심 많네.”“누구 사냥개인데.”서율은 그의 넥타이를 잡았다.“좋아.”가까이 끌어당겼다.“제4조 적용.”입술이 겹쳐졌다.이번에는 카메라도 없었다.관객도.게임을 설계한 사람도.누가 위이고 아래인지
MIRROR 중앙 서버.한서인이 기다리고 있었다.“결국 왔네.”서율은 대답 대신 USB를 꽂았다.“뭐 하는 거야?”“게임 끝내려고.”한서인의 표정이 변했다.“키 없이 서버는 못 건드려.”“알아.”태혁이 반대편 단말기에 두 번째 장치를 연결했다.한서인이 뒤늦게 알아챘다.“PLAYER를 삭제하려고?”서율이 웃었다.“응.”“그러면 지금까지의 모든 기록이—”“남아.”“뭐?”“증거는 따로 복사했어.”회원들의 범죄 기록은 수사기관과 언론으로.서율과 태혁의 사적 기록은 완전 삭제.“네가 만든 선택지에는 없었지?”한서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너는 원래 내 대역이었어!”서율의 손이 멈췄다.그리고 천천히 돌아봤다.“맞아.”“그런데 감히—”“그래서 고맙다고 했잖아.”서율이 웃었다.“네 자리에 서봤으니까.”한 걸음.“그 자리가 얼마나 작은지 알게 됐거든.”삭제 진행률.71%.83%.한서인이 서버 전원을 끄려 했다.태혁이 막았다.“끝났습니다.”99%.100%.화면이 검게 변했다.그리고 마지막 문장.[NO PLAYER EXISTS.]서율은 한동안 화면을 바라봤다.끝이었다.몇 년 동안 자신을 따라다녔던 카메라.관객.가짜 규칙.전부.한서인이 주저앉았다.서율은 그녀 앞에 섰다.“한서인.”고개가 올라왔다.“대역이 원본을 이기면 뭐가 되는지 알아?”“…….”서율이 웃었다.“본인.”그리고 돌아섰다.태혁이 기다리고 있었다.“갈까?”“네.”서율이 그의 손을 잡았다.이번에는 명령하지 않았다.태혁도 묻지 않았다.손가락이 자연스럽게 얽혔다.뒤에서—거대한 MIRROR 로고가 꺼졌다.[제159조.][대역은 끝났다.][서율은 서율이다.]
허점은 서율이 발견했다.[한 PLAYER의 모든 데이터.]“플레이어 자격을 없애면?”태혁의 눈빛이 변했다.“삭제 대상이 없어집니다.”“빙고.”MIRROR 시스템에서 PLAYER라는 개념 자체를 제거한다.게임을 이기는 게 아니라—게임판을 없애는 방법.문제는 중앙 서버에 직접 들어가야 했다.한서인의 본거지.진입 전날 밤.서율은 잠들지 못했다.태혁도 마찬가지였다.“무서워?”서율이 물었다.“네.”예상 밖의 대답.“너도 무서울 때가 있네.”“당신 잃는 건 무섭습니다.”서율이 그를 바라봤다.그리고 가까이 다가갔다.“그럼 오늘은.”손이 그의 셔츠 깃에 닿았다.“딴 생각 못 하게 해줄까.”태혁의 눈빛이 달라졌다.“그 말 책임집니까.”“왜 자꾸 책임지래.”“도망가니까.”“내가 언제.”태혁이 숫자를 세려 하자 서율이 입을 막았다.입술로.태혁의 손이 허리를 감쌌다.서율이 몸을 가까이 붙였다.입술이 떨어졌다.“오늘은.”숨을 고르며 말했다.“명령 없어.”태혁이 멈췄다.“확실합니까.”“응.”“그럼 나도?”“응.”잠깐의 침묵.태혁이 웃었다.“후회하지 마십시오.”이번에는 그가 먼저 입을 맞췄다.서율의 등이 침대에 닿았다.손이 허리선을 따라 움직였다.서율이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태혁아.”즉시 멈췄다.“왜.”“그냥.”서율이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이름 부르고 싶었어.”태혁의 표정이 순간 부드러워졌다.“다시.”“싫어.”“서율.”“한 번 했잖아.”“한 번 더.”서율이 웃었다.그리고 아주 작게 말했다.“태혁아.”그날 밤에는 누구도 가이드라인을 펼치지 않았다.다음 날.두 사람은 MIRROR의 마지막 무대로 향했다.[제158조.][규칙이 필요 없는 순간.][게임은 관계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