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ICIAR SESIÓN“다음에는 기계 없이.”서율이 태혁의 귀 가까이 속삭였다.“내가 직접 알아낼게.”태혁이 움직이지 않았다.“뭘.”“주인님이 어디까지 흔들리는지.”몇 초.먼저 움직인 건 서율이었다.벤치 위 휴대폰을 집었다.연결 종료.DUAL MODE OFF화면이 꺼졌다.기기들도 모두 상자 안으로 돌아갔다.서율이 뚜껑을 닫았다.찰칵.“됐어.”“뭐가.”“이제 핑계 없잖아.”“무슨 핑계.”“아까는 숫자가 알려줬으니까.”서율이 태혁 앞에 섰다.“이번에는 내가 볼 거야.”“뭘 어떻게 보려고.”“그건 내가 알아서 하지.”태혁이 웃었다.“자신만만하네.”“주인님한테 배웠거든.”서율의 손이 태혁의 셔츠 깃에 닿았다.단추 하나.천천히 풀었다.태혁은 막지 않았다.두 번째.이번에도 그대로였다.서율이 올려다봤다.“아무렇지도 않은 척할 거야?”“아직 아무것도 안 했는데.”“그래?”세 번째 단추에 손을 올렸다가.서율은 갑자기 멈췄다.대신 태혁의 목 가까이에 입술을 댔다.짧게.태혁의 턱에 힘이 들어갔다.서율이 바로 떨어졌다.“하나.”“뭐가.”“방금.”“뭐.”“여기 힘들어갔어.”서율이 그의 턱을 손끝으로 가리켰다.태혁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그것도 세려고?”“응.”“오늘 밤새겠네.”“좋지.”이번에는 서율이 그의 목선을 따라 천천히 입을 맞췄다.한 번.조금 아래.다시 한 번.태혁이 짧게 숨을 내쉬었다.서율이 멈췄다.“둘.”“은서율.”“왜.”“일부러 이러지.”“당연하지.”서율은 숨길 생각조차 없었다.“오늘은 내가 알아낸다고 했잖아.”“그러다 후회하지 마.”“왜.”서율이 웃었다.“주인님이 뺏어가려고?”태혁의 눈이 서율에게 고정됐다.“그럴 수도 있고.”“안 돼.”“왜.”“오늘은 내 차례야.”서율이 태혁의 손을 잡았다.그리고.등 뒤로 가져갔다.“손 쓰지 마.”태혁의 눈썹이 올라갔다.“지금 나한테 명령해?”“응.”“많이 컸네.”“주인님이 키웠잖아.”태혁이 결국 웃었다
“다음에는 주인님도.”서율이 태혁의 셔츠를 잡아 가까이 당겼다.“나만큼 솔직한지 보면 되겠네.”태혁이 웃었다.“자신 있어?”“왜 내가 자신 있어야 해.”“먼저 하자고 한 건 당신이잖아.”“주인님이 숨겨놨잖아.”서율은 휴대폰을 다시 켰다.DUAL MODE화면 아래에는 비어 있는 연결창 두 개가 떠 있었다.서율이 첫 번째를 눌렀다.조금 전 사용했던 기기가 바로 연결됐다.DEVICE 1 — CONNECTED그리고 두 번째.검색 중이라는 표시가 돌아갔다.서율이 태혁을 봤다.“두 번째 거.”“응.”“어디 있어?”태혁은 잠시 말이 없었다.“왜 대답 안 해.”“생각 중.”“뭘.”“오늘 여기까지 하려고 했거든.”서율이 바로 웃었다.“겁먹었네.”“내가?”“응.”“은서율.”“왜.”“그 말 책임질 수 있어?”서율이 휴대폰을 태혁 가슴에 툭 갖다 댔다.“주인님도 맨날 나한테 책임지라며.”그리고 웃었다.“오늘은 주인님 차례.”태혁의 시선이 달라졌다.“좋아.”짧은 대답.그가 드레스룸을 나갔다.“어디 가?”“기다려.”“또 혼자 뭐 가져오려고?”“응.”서율이 따라가려 하자 태혁이 돌아봤다.“거기 있어.”서율이 멈췄다.“왜.”“당신이 시작하자고 했으니까.”태혁이 문틀에 손을 얹었다.“준비는 내가 할게.”몇 분 뒤.태혁이 돌아왔다.손에는 작은 회색 케이스가 들려 있었다.“또 있어?”“응.”“대체 몇 개를 산 거야?”“많지는 않아.”“그 말을 어떻게 믿어.”태혁이 케이스를 열었다.서율이 안을 들여다봤다.이번 것은 아까 것과 전혀 달랐다.검은색의 작은 웨어러블 기기.그리고 얇은 센서 밴드.서율이 밴드를 집었다.“이건 뭐야.”“내 쪽.”“이걸 어디에 써?”“손목.”“손목?”태혁이 직접 착용했다.센서가 피부에 닿자 작은 표시등이 켜졌다.서율이 눈을 깜빡였다.“그냥 심박수 재는 거 같은데.”“비슷해.”“그럼 주인님 반응 읽는다는 게 심장 뛰는 거?”“그것도.”“또
“해볼래?”서율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휴대폰 화면에 떠 있는 글자를 다시 읽었다.VOICE REACTION“진짜 내 목소리에 반응한다고?”“응.”“아무 소리에나?”“설정할 수 있어.”태혁이 휴대폰을 가져갔다.화면을 몇 번 건드렸다.“지금은 주변 소음은 최대한 제외하고.”그가 서율을 봤다.“가까운 목소리에만 반응하게.”서율의 얼굴이 다시 뜨거워졌다.“왜 하필 이런 걸 샀어?”“새로운 거 해보고 싶다며.”“이런 걸 생각했다는 게 문제지.”“싫어?”서율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그리고 손을 내밀었다.“줘봐.”휴대폰을 받아 설정 화면을 직접 살폈다.반응 단계.민감도.그리고 정지 버튼.서율이 마지막 버튼을 확인한 뒤 휴대폰을 다시 돌려줬다.“해.”“바로?”“응.”서율이 한발 물러났다.“대신.”“응.”“주인님이 일부러 말시키면 반칙.”태혁이 웃었다.“왜.”“내 목소리에 반응한다며.”“그러니까.”“그런데 자꾸 대답하게 만들면 주인님 마음대로 세지는 거잖아.”“알았어.”“진짜?”“응.”태혁이 휴대폰을 벤치 위에 올려놓았다.그리고 두 손을 보였다.“아무것도 안 할게.”서율이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그 표정 뭐야.”“못 믿겠어서.”“시작하기도 전에?”“주인님이잖아.”“그게 이유야?”“충분하지.”태혁이 결국 웃었다.“시작한다.”화면이 바뀌었다.VOICE MODE ON처음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서율이 가만히 기다렸다.“……이게 끝이야?”짧은 목소리가 떨어진 순간.우웅—“어?”반응이 돌아왔다.서율의 눈이 커졌다.그리고.방금보다 조금 선명해졌다.“잠깐.”우웅—또 달라졌다.서율이 입을 다물었다.태혁의 입꼬리가 올라갔다.서율이 바로 손가락으로 그를 가리켰다.하지만 말하지 않았다.태혁이 물었다.“왜.”서율은 고개만 저었다.“할 말 없어?”또 고개를 저었다.태혁이 웃었다.서율의 눈이 가늘어졌다.말시키지 않겠다고 해놓고.지금 정확히 자신이 대답하기
“궁금해?”서율은 태혁의 손에 놓인 기기를 한참 바라봤다.“……응.”“아까보다 대답 빠르네.”“궁금한데 어떡해.”태혁이 웃었다.이번에는 정말 처음 보는 형태였다.리모컨도 없었다.버튼이라고 해봐야 전원 하나.측면에는 가느다란 표시등만 있었다.서율이 손을 내밀었다.“줘봐.”태혁이 순순히 건넸다.“이게 내가 움직이는 만큼 달라진다고?”“응.”“어떻게?”“센서.”“무슨 센서?”태혁이 서율의 손에 들린 기기를 가리켰다.“움직임을 읽어.”서율이 손목을 살짝 흔들었다.아무 반응도 없었다.한 번 더.여전히 조용했다.“안 되는데?”“지금은 전원만 켠 거니까.”“그럼 어떻게 해야 되는데.”“그건.”태혁이 벤치에 앉았다.그리고 너무 태연하게 말했다.“당신이 알아내.”서율이 황당한 얼굴로 쳐다봤다.“뭐?”“이번에는 내가 안 알려줄 거야.”“주인님이 준비했잖아.”“그래서.”“그럼 설명도 해줘야지.”“싫어.”서율이 기가 막혀 웃었다.“진짜 못됐어.”“오늘 몇 번째 듣는지 모르겠네.”“계속 들을 만하니까.”서율이 다시 기기를 내려다봤다.잠시 뒤.작은 작동음이 울렸다.서율의 표정이 달라졌다.“어.”태혁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정말이었다.손에는 리모컨도 없었다.서율이 조금 움직였다.반응이 달라졌다.멈추자.조용해졌다.“……진짜네.”다시 움직였다.이번에는 조금 다르게.반응도 달라졌다.서율의 입술이 천천히 벌어졌다.“미쳤다.”태혁이 웃었다.“왜.”“이상해.”“싫어?”서율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아니.”그리고 다시 한번 움직였다.우웅—“읏…….”이번에는 예상보다 확실했다.서율이 그대로 멈췄다.그러자 기기도 잠잠해졌다.서율이 눈을 크게 떴다.“잠깐.”“응.”“그럼 내가 가만히 있으면.”“멈춰.”“움직이면?”“다시 시작하고.”“주인님은 아무것도 안 하고?”태혁이 두 손을 펼쳐 보였다.“오늘은.”서율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러다 웃음이 터졌다.
“아…… 주인님…….”서율의 손이 태혁의 셔츠를 단단히 붙잡았다.방금 전까지 웃으며 도발하던 얼굴은 온데간데없었다.태혁은 그걸 보고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그게 더 얄미웠다.“왜 아무 말도 안 해요.”“뭘 말해.”“아까는 그렇게 잘 떠들더니.”“지금은 볼 게 있어서.”“뭘.”태혁이 턱으로 거울을 가리켰다.서율이 거울을 봤다가 곧바로 얼굴을 돌렸다.“아, 진짜.”“왜.”“내 얼굴 보지 마.”“싫어.”“주인님.”“응.”“지금 되게 못됐어.”“당신이 해보라며.”맞는 말이었다.그래서 더 할 말이 없었다.서율은 결국 태혁의 가슴에 이마를 기댔다.잠시 뒤.움직임이 잦아들었다.서율이 고개를 들었다.“끝?”“아니.”“또?”“응.”“사람 긴장시키는 게 취미야?”“당신한테만.”서율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그런데 태혁은 리모컨을 내려놓았다.벤치 위.서율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따라갔다.“왜 내려놔.”“이번엔 그거 안 써.”“……갑자기?”“응.”“왜.”태혁이 가까이 왔다.“그것만 기다리고 있잖아.”서율이 뜨끔했다.“아닌데.”“맞는데.”“아니거든.”“그럼 신경 쓰지 마.”그렇게 말해놓고 태혁은 리모컨을 상자 안에 넣어버렸다.뚜껑까지 닫았다.찰칵.서율의 눈썹이 올라갔다.“진짜 끝?”“아쉽네.”“누가.”“당신.”“아니라니까.”“그래.”태혁이 너무 쉽게 인정했다.서율이 입을 다물었다.잠시 정적.결국 먼저 입을 연 건 서율이었다.“근데.”“응.”“저거 버튼 더 있었잖아.”태혁이 웃음을 참았다.서율이 바로 그의 팔을 때렸다.“웃지 마.”“아쉽다며.”“궁금한 거랑 아쉬운 건 다르지.”“그래?”“응.”“그럼 다음에.”“지금 하면 되잖아.”말이 먼저 튀어나왔다.서율이 스스로 멈칫했다.태혁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몇 초 뒤.서율이 괜히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왜.”“아무 말 안 했는데.”“표정이 말하잖아.”“뭐라고.”서율은 대답하지 않았다.태혁
“이걸 언제 준비했어?”태혁이 웃었다.“좀 됐어.”“좀 된 게 언젠데.”서율은 상자 안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안에는 작은 검은 기기가 들어 있었다.지난번 데이트 때 사용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양이었다.손바닥 안에 들어올 만큼 작고 매끈한 본체.그리고 별도의 얇은 리모컨.서율이 기기를 집어 들었다.“또 무선이네.”“응.”“주인님 이거 재미 들렸지?”“당신 반응이 재미있어서.”서율이 바로 태혁을 노려봤다.“역시.”“싫어?”“그건 아닌데.”서율이 리모컨을 뒤집어봤다.버튼이 생각보다 많았다.“지난번 거랑 다른 거야?”“완전히.”“뭐가 다른데.”태혁이 상자를 받아 벤치에 내려놓았다.“직접 알아봐.”서율이 웃었다.“또 이런다.”“아까 누가 그랬지.”태혁이 리모컨을 가져갔다.“내가 알아서 해보라고.”서율이 입을 다물었다.자기가 한 말이었다.“……그건 아까 얘기고.”“난 아직 안 끝났는데.”태혁이 버튼 하나를 눌렀다.짧은 진동음.서율이 기기를 내려다봤다.“생각보다 세네.”“아직 제일 약한 거야.”“뭐?”태혁은 대답 대신 전원을 껐다.그게 오히려 더 신경 쓰였다.서율이 그를 빤히 바라봤다.“왜 꺼.”“벌써 아쉬워?”“아니거든.”“그럼 됐네.”태혁이 리모컨을 주머니에 넣었다.서율이 황당하다는 듯 웃었다.“보여주기만 하고 끝?”“당신이 먼저 원한다고 할 때까지.”그 말에 서율이 조용해졌다.483화 내내 태혁이 자신에게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원하는 걸 숨기지 않는 것.부끄러워도 말하는 것.그리고 무엇보다.태혁 앞에서는 굳이 아닌 척하지 않는 것.서율이 기기를 다시 상자 안에 넣었다.“그래.”“뭐가.”“안 해.”태혁이 눈썹을 올렸다.“진짜?”“응.”서율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옷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태혁도 더 묻지 않았다.그게 더 얄미웠다.셔츠 하나.재킷 하나.옷걸이에 걸었다.삼십 초.일 분.결국 서율이 먼저 돌아봤다.“진짜 안 물어봐?”“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