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오전 5시 41분.은서율은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을 떴다.창밖은 아직 어두웠다.옆에서 잠든 최태혁을 바라보던 그녀가 조심스럽게 속삭였다.“주인님.”태혁이 눈을 감은 채 대답했다.“응.”“일어나셨어요?”“방금.”“해 뜨는 거 보러 가야죠.”태혁은 팔을 뻗어 그녀를 끌어안았다.“5분만.”“어제도 그러셨잖아요.”“오늘이 마지막 휴가잖아.”서율은 웃으며 그의 가슴을 톡톡 두드렸다.“그럼 3분만요.”“협상 안 돼?”“안 돼요.”태혁은 결국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오전 6시 19분.두 사람은 따뜻한 커피를 들고 해변에 도착했다.수평선 끝이 서서히 붉어지고 있었다.서율은 태혁의 팔짱을 꼈다.“주인님, 저기 봐요.”바다 위로 햇빛이 조금씩 번졌다.태혁은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예쁘네.”“그렇죠?”서율은 한참 동안 말없이 풍경을 바라봤다.그러다 태혁을 돌아봤다.“주인님, 우리 소원 하나씩 빌어요.”“어제 등대에서도 빌었잖아.”“소원은 많을수록 좋죠.”태혁이 웃었다.“이번에는 뭐 빌 건데?”서율은 눈을 감았다.“비밀이에요.”잠시 뒤 눈을 뜬 그녀가 물었다.“주인님은요?”“이미 이루어졌어.”“뭔데요?”태혁은 서율의 손을 들어 입을 맞췄다.“너랑 여기 있는 거.”서율은 얼굴을 붉혔다.“주인님, 아침부터 그러시면 어떡해요.”“싫어?”“아니요. 너무 좋아서요.”오전 10시 47분.숙소에서 짐을 챙기던 서율이 갑자기 가방을 뒤졌다.“어?”태혁이 물었다.“왜 그래?”“우리 사진첩에 넣으려고 모아둔 것들이 없어졌어요.”“뭘 모았는데?”“비행기 탑승 기념 카드랑 등대에서 받은 엽서요.”태혁은 침대 옆 작은 탁자를 가리켰다.“여기 있잖아.”서율은 탁자 위의 봉투를 발견했다.“아, 여기 있었네.”태혁이 웃었다.“이번에는 뭘 잃어버린 줄 알았어?”“안 잃어버렸거든요.”“그래.”“주인님, 방금 놀리셨죠?”“조금.”서율은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그럼 벌칙이에요.”“무슨 벌칙?”“
오전 7시 38분.은서율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주인님! 일어나세요!”최태혁이 눈을 뜨며 웃었다.“아직 7시 반이야.”“아아 빨리빨리 오늘 비행기 타잖아요!”“예약은 9시인데.”“늦으면 어떡해요?”태혁은 팔을 뻗어 서율을 끌어안았다.“늦지 않아. 여기서 비행장까지 20분이면 돼.”“그래도 준비해야죠.”“그럼 5분만 이러고 있자.”서율은 그의 품에 안긴 채 웃었다.“주인님이 늦잠꾸러기시네.”“휴가잖아.”오전 8시 51분.해안 관광 비행장에 도착한 두 사람은 운항 안내를 받았다.직원이 설명했다.“오늘은 기상 상태가 좋아 예정대로 운항합니다. 비행시간은 약 25분이고, 조종사와 함께 탑승하십니다.”서율은 작은 경비행기를 바라봤다.“주인님, 생각보다 작아요.”“무서워?”“조금요. 그런데 기대돼요.”태혁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안전 안내 잘 듣고 타자.”서율은 고개를 끄덕였다.안전벨트를 착용하고 헤드셋을 쓰자 조종사의 목소리가 들렸다.“이제 출발하겠습니다.”서율은 태혁을 돌아봤다.그가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오전 9시 12분.비행기가 활주로를 달리기 시작했다.“주인님!”서율이 놀라 외쳤다.잠시 뒤 바퀴가 땅에서 떨어졌다.창밖의 건물들이 빠르게 작아졌다.푸른 바다가 시야를 가득 채웠다.“와…….”서율은 말을 잃었다.해안선을 따라 하얀 파도가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어제 두 사람이 걸었던 모래사장도 보였다.“주인님, 저기요!”서율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우리 어제 저기 걸었잖아요!”태혁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네.”“사람들이 이렇게 작게 보여요.”그녀는 창밖을 한참 바라봤다.“주인님, 저 이거 평생 기억할 것 같아요.”태혁은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나도.”오전 10시 03분.비행을 마친 두 사람은 근처 카페에 앉았다.서율은 방금 찍은 사진을 넘겨봤다.“주인님, 이 사진 보세요.”사진 속 서율은 창밖을 바라보며 입을 크게 벌리고 있었다.태혁이 웃음을 터뜨렸다.“표정이
오전 8시 42분.은서율은 침대 위에 여행 가방을 펼쳐놓고 있었다.“주인님, 이 옷도 가져갈까요?”최태혁이 고개를 돌렸다.“어제도 물어봤잖아.”“그때는 흰색이었고, 이건 하늘색이에요.”“둘 다 가져가.”“그럼 짐이 너무 많아지는데요?”태혁은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왔다.“서율아, 우리 2박 3일 가는 거야.”“알아요.”“일주일 치 옷을 챙길 필요는 없어.”서율은 가방을 내려다보다 웃음을 터뜨렸다.“주인님, 저 여행만 가면 왜 이럴까요?”“신나서 그렇지.”그가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이제 출발할까?”“네!”오전 11시 26분.두 사람은 바다가 보이는 작은 숙소에 도착했다.통유리 너머로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서율은 가방도 내려놓기 전에 창가로 달려갔다.“주인님! 여기 너무 예뻐요!”태혁은 그녀의 뒤로 다가왔다.“마음에 들어?”“네. 완전요.”“그럼 잘 골랐네.”서율은 돌아서서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주인님, 고마워요.”태혁이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이번 여행에서는 일 얘기 금지.”“네. 약속!”“노트북도 없지?”“없어요.”“대본은?”“안 가져왔어요.”태혁은 만족스럽게 웃었다.“좋아.”오후 2시 17분.두 사람은 해변을 따라 걸었다.서율은 신발을 벗고 모래 위에 발을 디뎠다.“앗, 차가워!”태혁이 웃었다.“아직 바닷물이 차갑지?”“네. 그런데 좋아요.”서율은 파도가 밀려오자 태혁의 팔을 붙잡았다.“주인님, 저 좀 잡아주세요.”“잡고 있잖아.”“더 꽉이요.”태혁은 그녀의 손을 단단히 잡았다.서율은 웃으며 파도 가까이 다가갔다.그러다 갑자기 태혁의 신발 쪽으로 물을 튀겼다.“은서율.”그가 낮게 부르자 서율이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실수예요!”“정말?”“네!”태혁이 한 걸음 다가왔다.“그럼 나도 실수 좀 할까?”“주인님!”서율은 웃으며 도망쳤고, 태혁은 천천히 그녀를 따라갔다.오후 6시 38분.숙소로 돌아온 두 사람은 테라스에 앉아 저녁을 먹었다.노을
오전 7시 36분.은서율은 거울 앞에서 머리를 묶었다.오늘은 《없는 역에서 내리는 여자》의 마지막 장면을 촬영하는 날이었다.최태혁이 뒤에서 그녀를 끌어안았다.“벌써 준비 끝났어?”“네. 오늘은 늦으면 안 되니까요.”“아직 시간 많아.”“그래도 빨리 가고 싶어요.”태혁은 거울 속 서율과 눈을 맞췄다.“많이 기다렸잖아.”“맞아요. 그런데 끝난다고 생각하니까 조금 아쉬워요.”“오늘은 잘 보내주고 와.”서율은 돌아서서 그의 품에 안겼다.“주인님도 같이요.”오전 10시 18분.폐역 촬영장에는 마지막 장면을 위한 준비가 끝나 있었다.4시 17분에 멈춘 시계.0번 보관함.그리고 출구로 이어지는 긴 복도.한유리는 촬영용 명부를 펼쳐놓고 있었다.“작가님, 오늘은 정말 이름을 쓰네요.”서율이 웃었다.“네. 드디어요.”“그런데 카메라에는 안 보이는 거죠?”“맞아요. 손이 움직이는 모습까지만 보여줄 거예요.”유리는 펜을 들었다.“그럼 저만 해온이 이름을 쓰는 거네요.”“저도 알고, 주인님도 아세요.”서율이 장난스럽게 대답하자 유리가 웃었다.“그럼 우리끼리만 아는 비밀이네요.”오후 1시 42분.“레디, 액션!”해온은 0번 보관함을 열었다.안에 있던 녹음테이프를 잠시 바라봤다.그러나 가져가지 않았다.보관함 문을 닫은 그녀는 방문자 명부 앞으로 걸어갔다.첫 번째 기록에는 이름이 있었다.두 번째에는 숫자 0.세 번째는 빈칸이었다.그 아래에는 오래된 문장이 남아 있었다.《이번에는 혼자 나가겠습니다.》해온은 마지막 줄에 펜을 가져갔다.잠시 망설이던 손끝이 움직였다.카메라는 명부 대신 그녀의 얼굴을 비췄다.해온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그녀는 손등으로 눈물을 한 번 닦았다.그리고 웃었다.오후 3시 09분.마지막 촬영은 역의 출구였다.해온은 복도 끝으로 걸어갔다.뒤쪽에서 희미한 소리가 들렸다.마치 누군가 이름을 부르는 듯했다.그녀의 걸음이 잠깐 느려졌다.하지만 돌아보지 않았다.열린 문 너머로 햇빛이
오전 10시 16분.은서율은 제작사에서 보내온 특별 영상 촬영 계획서를 읽었다.한유리가 극 중 주인공에게 편지를 읽어주는 영상이었다.정이현이 물었다.“작가님, 편지는 배우님이 직접 읽으시는 걸로 확정됐어요.”“좋아요. 촬영은 언제예요?”“오늘 오후예요. 시간 괜찮으시면 오셔도 됩니다.”서율은 곧바로 대답했다.“갈게요. 직접 보고 싶어요.”오후 2시 38분.촬영 스튜디오에는 의자 하나와 작은 조명만 놓여 있었다.한유리는 평범한 흰 셔츠를 입고 있었다.“작가님, 오늘은 해온이가 아니라 한유리로 읽으려고요.”서율이 웃었다.“그래서 더 좋아요.”“그런데 마지막에 제가 한 문장 덧붙여도 될까요?”“어떤 문장이요?”유리는 접어둔 종이를 펼쳤다.“당신을 연기하는 동안, 저도 제 이름으로 사는 법을 다시 생각했습니다.”서율은 잠시 그녀를 바라봤다.“좋아요. 그 문장은 꼭 넣어요.”오후 3시 12분.카메라가 켜졌다.유리는 편지를 천천히 읽었다.“나는 네 이름을 알고 있지만, 네가 어떤 사람이 될지는 아직 모른다.”그녀는 잠시 숨을 골랐다.“그러니 앞으로의 이야기는 네가 직접 써줘.”카메라를 바라보던 유리가 작게 웃었다.“당신을 연기하는 동안, 저도 제 이름으로 사는 법을 다시 생각했습니다.”“컷!”촬영 감독이 엄지를 들어 보였다.서율은 조용히 박수를 쳤다.유리가 다가와 물었다.“작가님, 괜찮았어요?”“네. 정말 좋았어요.”“마지막 촬영 때는 저도 울 것 같아요.”서율이 웃었다.“그때는 저도 울지도 몰라요.”오후 6시 24분.최태혁은 서율과 함께 작은 수족관 전시관을 찾았다.푸른 조명 아래 해파리들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서율은 유리 앞에 멈춰 섰다.“주인님, 저것 좀 보세요.”“예쁘네.”“물속에서 춤추는 것 같아요.”태혁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오늘은 일 생각 안 해?”“조금은요.”“얼마나요?”서율은 손가락으로 작은 틈을 만들었다.“이만큼?”태혁이 웃었다.“생각보다 적네.”“주인
오전 10시 23분.은서율은 제작사에서 보내온 홍보 일정을 확인했다.《없는 역에서 내리는 여자》의 첫 공식 포스터가 공개되는 날이었다.정이현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작가님, 포스터 최종본 보셨어요?”“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요.”“뭔데요?”“주인공 이름을 공개하지 않는 대신 등장인물 소개에는 뭐라고 적나요?”“현재는 ‘이름을 잃어버린 여자’로 되어 있어요.”서율은 잠시 생각했다.“잃어버렸다는 표현은 바꾸고 싶어요.”“어떻게요?”“‘자신의 이름을 선택하려는 여자’는 어떨까요?”이현이 웃었다.“그게 훨씬 좋네요.”오후 12시 41분.공식 포스터가 공개됐다.짙은 남색 배경에 텅 빈 승강장이 펼쳐져 있었다.한유리는 출구를 등지고 서 있었다.그 아래에는 짧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당신이 기억하는 나는, 정말 나일까?》서율은 휴대전화로 공개된 반응을 살펴봤다.‘설정 독특하다.’‘한유리 표정부터 분위기 장난 아닌데.’‘6부작이면 전개 빠르겠다.’그때 한유리에게 메시지가 도착했다.한유리: 작가님, 포스터 봤어요? 드디어 공개됐네요!은서율: 네. 정말 멋지게 나왔어요.한유리: 그런데 저만 알고 있는 이름이 있다는 게 묘하게 기분 좋아요.서율은 웃으며 답장했다.은서율: 마지막 촬영까지 우리 둘만 알고 있어요.오후 3시 18분.최태혁은 서율을 데리고 작은 향수 공방에 들렀다.“주인님, 우리 향수는 이미 만들었잖아요.”“오늘은 다른 걸 만들어보려고.”“뭔데요?”“차량용 방향제.”서율이 웃음을 터뜨렸다.“주인님, 이제 차에서도 제 향기 맡으시려고요?”“그럴까 생각 중이야.”두 사람은 향을 고르기 시작했다.서율은 은은한 꽃향기에 나무 향을 섞었다.태혁은 시원한 풀 향을 골랐다.“주인님, 이거 되게 좋다.”“네 것도 맡아봐.”태혁이 향을 맡더니 고개를 끄덕였다.“서율이 같다.”“제가 꽃향기 나요?”“편안한 향.”서율은 그의 팔에 매달렸다.“주인님, 그런 말씀 자꾸 하시면 제가 더 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