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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화 — 사냥당하는 척

Author: 8489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5-24 11:24:43

휴게소 불빛이 가까워질수록 차 안의 공기는 더 조용해졌다.

도망치는 사람들의 침묵이 아니었다.

누군가를 속이기 직전의 침묵이었다.

도윤이 운전대를 꺾으며 낮게 말했다.

“진입합니다. 주차장 오른쪽 끝, 화물차 구역이 시야가 제일 적습니다.”

서아는 하윤을 품에 안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서 갈라져.”

태준은 노트북 화면을 보며 말했다.

“복사 94퍼센트.”

지연이 창밖을 보며 물었다.

“민서윤은?”

도윤이 답했다.

“추적 신호 계속 따라오고 있습니다. 거리상 12분 뒤 접근 가능성 있습니다.”

지연이 피식 웃었다.

“생각보다 급하네.”

서아가 낮게 말했다.

“하윤을 놓쳤으니까.”

짧은 침묵.

“그리고 자기가 흔들린 걸 들켰으니까.”

태준이 고개를 들었다.

“복사 끝났다.”

그 한마디에 모두의 시선이 태준에게 향했다.

도윤이 바로 말했다.

“원본에서 추적 태그 분리합니다. 저장장치 본체는 제가 회수하고, 태그만 송출기로 옮기겠습니다.”

차가 화물차 구역 가장 끝에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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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타는 집은 생각보다 오래 타지 않았다.겉으로는 작은 불길뿐이었다. 하지만 땅 아래에서는 무너지는 소리가 계속 났다. 지하 기록실이 하나씩 주저앉는 소리였다.태성의 피를 승인하고, 지우고, 분류해온 기록들. 엄마들의 이름. 아이들의 코드. 유지, 관찰, 폐기라는 말로 사람을 나눴던 문서들.그중 일부는 사라졌다.하지만 전부는 아니었다.도윤의 장비 안에는 피해자 인덱스가 남았다. 회장의 손에는 Y-01 봉투가 있었다. 서아의 품에는 Y-00, S-01, N-12 파일이 있었다.그리고 하윤은 민유라의 품 안에서 조용히 숨 쉬고 있었다.서아는 불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지연이 옆에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언니, 여기 오래 있으면 안 돼. 불 났다고 신고 들어가면 경찰이든 소방이든 올 거고, 그 전에 위원회 쪽도 다시 붙을 수 있어.”태준도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이동해야 해.”서아는 하윤을 바라봤다.“엄마.”민유라는 하윤을 꼭 안은 채 대답했다.“응.”“괜찮아?”민유라는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괜찮아. 하윤이도… 아직은 괜찮아.”그 말이 끝나자마자 하윤이 작게 몸을 뒤척였다. 서아는 본능적으로 손을 뻗었다가 멈췄다. 조금 전, 자신의 목소리에 반응한 하윤이의 작은 손이 떠올랐다.그 반응은 하윤을 구했다.하지만 동시에 또다시 시스템 안에서 사용될 뻔했다.서아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다시는 안 돼.”태준이 그녀를 봤다.“뭐가.”“하윤이 반응.”짧은 침묵.“다시는 저 사람들 조건값으로 쓰이게 안 해.”민유라의 눈가가 젖었다.“서아야…”서아는 엄마의 손을 잡았다.“엄마도 마찬가지야. Y-00, 민유라, 한서윤. 저 사람들이 어떤 이름을 붙였든 이제 우리가 정해.”민유라는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그때 도윤이 장비를 들여다보다가 낮게 말했다.“서아 씨.”모두의 시선이 도윤에게 향했다.도윤은 복사된 인덱스 파일을 화면에 띄웠다.“Y-01 아이 기록, 일부 더 열렸습니다.”

  • 핏빛 유산   98화 — 300초의 이름들

    285.숫자가 내려가고 있었다.지하 기록실의 모든 화면이 붉게 깜박였다. 캐비닛 안의 오래된 문서들, 벽면을 채운 서버 장치, Y-00과 S-01, N-12로 이어진 파일들.그리고 그 아래 묻힌 수많은 이름들.강도현은 화면 앞에 서 있었다.“네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다 가져갈 순 없다.”서아는 그를 보지 않았다.“도윤.”“네.”도윤은 단말 앞에 주저앉듯 앉아 장비를 연결했다. 손이 빠르게 움직였지만 얼굴은 굳어 있었다.“전체 복사는 불가능합니다. 5분 안에 이 기록실 전체를 긁는 건 무리예요. 우선순위 정해야 합니다.”태준이 바로 말했다.“Y, S, N 라인 전체.”회장이 벽에 기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아니. 혈연 승인권 원본과 Founder Line 프로토콜도 같이 가져가야 한다. 그게 없으면 강도현이 개인 일탈로 빠져나간다.”지연이 계단 위에서 소리쳤다.“그럼 다 가져가! 왜 자꾸 고르래!”도윤이 이를 악물었다.“시간이 없습니다!”267.서아는 화면을 봤다.“도윤, 이름부터.”도윤의 손이 멈췄다.“네?”서아가 말했다.“코드 말고 이름.”강도현의 시선이 서아에게 향했다.서아는 차갑게 말했다.“Y-00, S-01, N-12처럼 숫자로 묻힌 사람들. 그 이름부터 긁어.”도윤의 눈빛이 바뀌었다.“전체 문서가 아니라 인덱스.”“응.”“코드와 실명 매칭표를 먼저 빼내면, 나중에 다른 자료가 일부 손상돼도 피해자 목록은 남습니다.”태준이 바로 이해했다.“그리고 승인권 문서와 연결하면 누가 지웠는지도 남아.”회장이 낮게 말했다.“그걸 가져가라. 그게 뿌리다.”강도현의 얼굴이 처음으로 날카롭게 굳었다.“그 명단은 안 된다.”서아가 그를 봤다.“왜.”“그 이름들이 밖으로 나가면 살아 있는 사람들까지 다친다.”서아는 한 걸음 다가갔다.“당신이 언제부터 그 사람들 걱정했어?”강도현은 낮게 말했다.“이름은 보호이기도 하다.”서아가 웃었다.“아니.”짧은 숨.“당신한테 이름은 목줄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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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LOAD COMPLETE.그 문장이 지하 기록실 모든 화면에 떠오른 순간, 강도현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완전한 평정이 사라졌다.그는 분노하지 않았다. 소리치지도 않았다. 다만 아주 오래 관리해온 질서가 손끝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본 사람처럼,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서아는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Blood Approval Authority leaked.Signatory: Kang Do-hyun.강도현의 이름. 태성의 피를 승인하고 지우던 자의 이름. 그 이름이 마침내 세상 밖으로 나갔다.위쪽 계단에서 발소리가 거칠게 쏟아졌다.“언니!”지연이 먼저 뛰어 내려왔다. 손에는 부서진 잠금장치 조각이 들려 있었다. 그 뒤로 도윤이 장비 가방을 메고 내려왔고, 숨을 헐떡이며 주변을 빠르게 훑었다.“서아 씨, 괜찮습니까?”서아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엄마랑 하윤이는?”지연이 바로 답했다.“차 안. 내 사람 둘이 붙어 있어. 문 잠그고 있어. 지금은 안전해.”그제야 서아의 어깨에 아주 짧은 힘이 빠졌다.하지만 태준은 여전히 강도현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끝난 거 아닙니다.”강도현은 조용히 웃었다.“그래. 끝난 게 아니지.”그 목소리가 너무 차분해서, 지연의 얼굴이 구겨졌다.“아니, 이름 까였는데도 왜 이렇게 여유로워?”강도현은 지연을 보지 않았다. 시선은 오직 서아에게 고정돼 있었다.“강서아.”서아는 차갑게 대답했다.“내 이름 부르는 거 허락한 적 없어.”“네가 방금 뭘 했는지 알고 있나.”“당신 이름을 공개했지.”“아니다.”강도현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너는 유산의 문서를 열었고, 네 생체키로 원본에 접근했으며, 외부망으로 전송했다.”서아의 눈이 가늘어졌다.도윤이 급히 단말을 확인했다. 몇 초 뒤 그의 표정이 굳었다.“서아 씨.”태준이 바로 물었다.“뭔데.”도윤은 화면을 확대했다.“전송된 파일에 접근 로그가 같이 붙었습니다. S-01 생체 접근, 원본 권한 열람, 외부 전송 승인.”지연이

  • 핏빛 유산   96화 — 묻힌 이름들

    바닥 아래로 열린 계단은 생각보다 깊었다.집 안의 불은 꺼졌고, 현관문은 잠겼다. 밖에서는 지연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언니! 들려? 강서아!”도윤의 목소리는 이어폰 속에서 끊겨 있었다. 잡음만 희미하게 튀었다.태준은 서아의 팔을 잡은 채 현관 쪽을 한 번, 열린 계단을 한 번 바라봤다.“지금 내려가면 저 사람 뜻대로 움직이는 거야.”서아는 어둠 속 계단을 내려다봤다.“이미 여기까지 오게 만든 것도 저 사람 뜻이었어.”“그러니까 더 조심해야지.”“조심할 거야.”서아는 태준을 봤다.“근데 피하면 안 돼.”태준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서아.”“하윤이를 지키려면 이 안에 뭐가 있는지 알아야 해. 엄마가 숨긴 집이 왜 관찰점이 됐는지, 강도현이 왜 나를 기다렸는지, 왜 나더러 유산을 받으라고 했는지.”짧은 숨.“그 답이 저 아래 있잖아.”태준은 반박하지 못했다.그때 뒤쪽에서 회장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내가 먼저 내려가겠다.”서아가 돌아봤다.회장은 아직도 이마에 피가 말라붙어 있었고, 얼굴은 창백했다. 하지만 눈빛만큼은 이상하게 또렷했다.서아는 차갑게 말했다.“몸 상태로요?”회장은 강도현을 노려봤다.“저 사람은 내 형이다.”강도현은 계단 입구에 서서 조용히 웃었다.“그래. 그래서 네가 제일 늦게 내려와야 한다, 무진아.”회장의 얼굴이 굳었다.강도현은 천천히 말했다.“너는 늘 바닥을 보지 않으려 했다. 위에서 명령을 내리고, 중간에서 모른 척하고, 마지막엔 인정하지 않은 채 물러섰지.”짧은 침묵.“오늘은 끝까지 봐라.”서아가 그 말을 잘랐다.“회장님은 뒤에 계세요.”회장이 서아를 봤다.서아는 단호하게 말했다.“이번엔 회장님이 먼저 막는 그림 필요 없어요. 제가 보고, 제가 판단할 거예요.”“위험하다.”“계속 위험했어요.”짧은 정적.“다만 지금은 제가 위험한 이유를 알고 싶을 뿐이에요.”그 말에 회장은 입을 다물었다.태준은 서아 옆에 섰다.“그럼 같이 내려가.”서아는 짧게

  • 핏빛 유산   95화 — 유산의 규칙

    “그럼 그 문, 내가 열게.”서아의 말이 떨어지자 강도현의 눈빛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그는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오래 기다리던 대답을 들은 사람처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좋다.”서아는 바로 말했다.“대신 먼저 조건이 있어.”강도현의 입가에 희미한 웃음이 걸렸다.“조건을 거는 버릇이 있군.”“당신이 나를 필요로 하니까.”서아는 하윤이 있는 차를 가리켰다.“엄마랑 하윤이를 우리 쪽 차로 옮겨. 그다음 내가 들어가.”강도현은 곧장 대답하지 않았다.그의 시선이 민유라가 탄 차량으로 향했다. 차 안에서 민유라는 하윤을 품에 안은 채 창밖을 보고 있었다. 창백한 얼굴, 떨리는 손. 그러나 아이를 안은 팔만큼은 단단했다.강도현이 낮게 말했다.“유라는 늘 도망칠 곳을 만들었다.”서아가 차갑게 답했다.“당신은 늘 그 도망칠 곳까지 따라왔고.”강도현은 서아를 보았다.“그 집을 남겨둔 건 나다.”“그러니까 이번엔 당신 뜻대로 안 들어가.”짧은 정적.“엄마랑 하윤이 먼저.”태준이 서아 옆으로 다가왔다.“내가 데려올게.”서아는 그를 보지 않은 채 말했다.“아니. 지연이가 가.”태준의 표정이 굳었다.“서아.”“넌 내 옆에 있어.”짧은 침묵.“저 사람은 네가 움직이는 것도 보고 있을 거야.”태준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지연이 피식 웃으며 앞으로 나섰다.“나 또 쓰네.”서아가 낮게 말했다.“이번엔 믿어서.”지연의 얼굴이 아주 잠깐 멈췄다.“…그런 말 갑자기 하지 말라니까.”“가.”지연은 대답 대신 민유라의 차 쪽으로 걸어갔다. 걸음은 가벼워 보였지만, 손은 언제든 움직일 수 있게 준비돼 있었다.강도현은 막지 않았다.그가 뒤에 서 있던 사람들에게 짧게 손짓했다.“물러서라.”검은 옷의 남자들이 몇 걸음 뒤로 빠졌다.민유라가 차 문을 열고 내렸다. 하윤은 그녀의 품 안에서 잠든 채 작은 숨을 쉬고 있었다. 지연이 얼른 다가가 주변을 확인한 뒤, 낮게 말했다.“괜찮아요. 빨리 움직여요.”민유라는 서아

  • 핏빛 유산   94화 — 안전한 집은 없었다

    강릉으로 향하는 길은 이상할 만큼 조용했다.차 안 누구도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민서윤은 문지기였고, Core-2는 강도현. 회장의 형. 태성의 피 안쪽에서 사람의 이름과 혈연을 유산처럼 관리해온 사람.그리고 그가 있는 곳이 강릉이었다.서아는 창밖을 바라보며 하윤의 작은 손을 떠올렸다. 조금 전까지 품 안에 있던 따뜻한 체온. 이제 겨우 이름을 되찾은 아이.그 아이가 향하는 곳이 정말 은신처인지, 아니면 더 오래된 덫인지 알 수 없었다.도윤이 운전대를 잡은 채 말했다.“민유라 씨 차량 위치 잡았습니다. 강릉 외곽 진입 직전입니다. 아직 추격 차량은 붙지 않았습니다.”서아가 바로 물었다.“근데?”도윤은 잠깐 망설였다.“강도현 접속 위치와 거리가 계속 가까워집니다.”지연이 뒷좌석에서 낮게 욕을 삼켰다.“우연일 리 없지.”태준은 노트북 화면을 보며 말했다.“Core 방에서 새 메시지 떴어.”서아가 돌아봤다.“읽어.”태준은 화면을 한 번 확인하고, 낮은 목소리로 읽었다.“Core-2: Y-00 귀환 가능성 상승. Garden House 관찰 단계 유지.”차 안 공기가 얼어붙었다.서아가 천천히 되물었다.“Garden House?”도윤이 바로 검색을 돌렸다.“공식 시설명은 아닙니다. 하지만 강릉 쪽 태성문화재단 산하 시설 중 비공식 명칭으로 Garden 계열이 붙은 곳이 있습니다.”지연이 눈을 가늘게 떴다.“G-17, Garden Line, Garden House.”태준이 낮게 말했다.“전부 같은 계열이야.”서아는 회장을 봤다.“아세요?”회장은 대답하지 못했다.그 잠깐의 침묵만으로도 서아의 얼굴은 차갑게 굳었다.“또네요.”회장이 낮게 말했다.“이름은 들어봤다.”서아는 웃지 않았다.“그 말, 이제 지겨워요.”회장은 고개를 숙였다.“강도현이 쓰던 말이다. Garden. 보호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관찰과 격리 사이를 뜻했다.”도윤이 말했다.“그러면 강릉 집이 단순 은신처가 아니라 Garden

  • 핏빛 유산   69화 — 너를 살린 게 아니라, 분류에서 뺀 거야

    문이 아주 조금 열렸고, 안쪽 어둠 사이로 한 사람의 얼굴이 드러났다.김하령은 바로 문을 완전히 열지 않았다. 체인까지 걸린 상태에서 밖을 내다보던 그녀의 시선은 제일 먼저 태준에게 가 닿았다. 그 눈빛엔 반가움도, 안도도 없었다. 오히려 오래 눌러둔 경계와 피로가 먼저 있었다.“왜 왔어요.”첫마디부터 차가웠다.태준은 문 앞에서 한 발도 더 다가가지 않고 낮게 말했다.“확인할 게 있어.”김하령이 짧게 웃었다.“확인?”짧은 정적.“지금 와서 그 말이 나와요?”서아는 그 짧은 대화만으로도 느꼈다. 이 둘은 분명

  • 핏빛 유산   66화 — 유지, 관찰, 폐기

    연구동 안쪽 보관실 공기는 차가웠다.벽면 서버 팬 돌아가는 소리만 낮게 울리고 있었고, 선반 위에 남겨진 작은 이송 태그는 손전등 불빛 아래에서 더 선명하게 보였다.N-12 / Transit / Infant서아는 그 태그를 한동안 내려다보다가 아주 낮게 말했다.“그 애가 여기까지 왔다는 뜻이네.”도윤이 단말기에 케이블을 연결하면서 답했다.“적어도 이 보관실을 경유했다는 뜻입니다. 최종 위치는 아닐 수 있습니다.”서아가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물었다.“왜.”도윤이 손을 빠르게 움직이며 말했다.“Transit 표기는

  • 핏빛 유산   63화 — 네가 아는 건 거기까지지

    회장실 앞 응접실 문이 열리자마자 서아의 걸음이 아주 잠깐 멈췄다.윤지연이 먼저 와 있었다. 소파에 기대앉아 있던 지연은 서아를 보자마자 천천히 웃었다.“왔네, 언니.”서아는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왔다.“그 호칭 쓰지 마.”지연이 웃음을 지우지 않은 채 말했다.“왜, 들을 때마다 짜증 나?”“응.”“그래도 사실이잖아.”서아는 소파 쪽으로 가지 않았다. 문에서 몇 걸음 떨어진 자리에 그대로 선 채 지연을 내려다봤다.“회장님 어디 계셔.”지연이 턱으로 안쪽 문을 가리켰다.“안에. 통화 중이래.”짧은 침묵

  • 핏빛 유산   55화 — 단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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