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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Author: 양념
어둠이 드리워진 밤.

거실 TV에서 시상식이 방송되는 가운데, 참석하지 못한 유시아는 끝내 수상을 하게 되었다.

MC는 다른 사람이 대신 수상할 거라고 전했고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장내에 박수갈채가 터졌다. 다들 이 대리 수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이 바닥에서 유시아가 은지호의 첫사랑인 걸 모르는 자가 없다. 학교부터 직장까지 둘은 너무나 애틋한 사이였지만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은지호는 심지어 연예기획사를 차린 후 처음으로 계약한 사람이 유시아였고 항상 그녀 뒤에서 든든하게 지켜주는 버팀목이었다.

다만 나는 사랑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랄한 여자, 계략을 피워서 은지호의 와이프가 된 서브 여주나 다름없었다.

내가 이 선남선녀 커플을 매정하게 찢어놓은 격이 됐다.

그럼에도 나는 줄곧 은지호의 태도를 더 중시했다. 그는 한때 내가 맹세했었다. 유시아와는 단지 상하급 관계일뿐 그녀의 일에 일절 간섭하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했었다.

유시아는 오늘 수상에 충분히 다른 어시를 대신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곧이어 화면에 등장한 남자는 늠름한 체구에 훤칠한 외모를 지닌 나의 남편이었다. 인파들 속에서 우뚝 일어서더니 정장 단추를 매만지며 뭇사람들의 애틋한 시선 하에 무대로 올라와 상을 대신 받았다.

그는 목소리를 내리깔고 수상소감을 발표했다.

“유시아 씨 대신 인사를 전합니다. 항상 응원해주시는 팬분들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제 마음속에서도 시아는 늘 최고였어요!”

이 인간은 아예 딴사람들이 나를 향할 시선 따위 안중에도 없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온 신경이 유시아였다.

창밖에 어둠이 드리워지고 별빛이 은은하게 빛났다. 이제 고작 8월인데 나는 왜 한겨울의 한파가 느껴지는 걸까?

이때 은가영이 불쑥 방에서 나오더니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휴대폰을 낚아챘다.

아이는 식탁 위에 놓인 풍성한 음식과 케이크를 발견하지 못했다. 아직 풀지 않은 리본은 질질 휴지통 옆으로 끌고 갔고 또다시 나의 하얀색 신발을 힘껏 짓밟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신발이란 걸 뻔히 알면서 일부러 내가 좋아하는 물건들을 전부 무너뜨리려고 한다. 은가영은 이제 대놓고 내게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휴대폰을 열어보았지만 도착한 메시지가 한 통도 없었다. 오늘이 내 생일이란 걸 다들 잊어버렸나 보다.

문득 작년 생일이 떠올랐는데 그때도 은지호는 일이 바쁘다고 핑계를 둘러댔고 은가영은 방 안에서 나오질 않았다. 결국 나 홀로 커다란 케이크를 먹어야만 했다.

모든 이의 생일을 정성껏 챙겨주었건만 정작 내 생일엔 말도 안 되는 원맨쇼가 돼버렸다.

이런 내 꼴이 너무 우스울 따름이었다. 소파에서 일어나 거실에 달아놓은 풍선을 모조리 뜯고 케이크와 음식까지 전부 휴지통에 버렸다.

모든 일을 마치자 휴대폰 메시지 음이 울렸다.

은지호한테서 온 문자였는데 회사에서 회의한다며 늦게 돌아온다는 내용이었다.

이제 막 답장하려 할 때 유시아가 인스타그램에 피드를 하나 올렸다.

[시간이 흐르고 많은 게 변해도 사랑하는 사람은 늘 그 자리에.]

그녀의 손 옆에는 리본 매듭의 정교한 속옷 선물 상자가 고스란히 놓여 있었다.

굳이 확대하지 않아도 어젯밤에 은지호에게 설명했던 브랜드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곧이어 또 다른 피드가 하나 올라왔는데 딸 가영이가 올린 문장이었다.

[유시아 여신님의 백선 여우주연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해요. 여신님이 우리 엄마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땐 우리 가족 세 명이 단란하게 보낼 텐데!]

이와 함께 셀카 사진을 네 장 올렸는데 그중 한 장은 유시아와 은지호가 나란히 앉아있고 두 사람 앞엔 4층짜리 케이크가 놓여있었다. 또한 주변에는 수많은 스태프들이 둘러싸여 그녀를 축하해주는 분위기였다.

은지호가 말한 회의가 유시아의 축하파티였구나.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사진 속 유시아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차오르는 굴욕도 마다한 채 말이다.

그녀는 나보다 세 살 어리다. 매력적인 외모와 농염한 눈빛, 날씬한 몸매를 지닌 그녀는 만인에게 사랑받는 미인 여배우였다.

문득 어느 해 내 생일이 떠올랐다. 그날 유시아가 페이스북에 글을 하나 올렸더니 은지호가 서둘러 핑계를 둘러대며 집을 나섰다.

[이런 날엔 푹 취해야지.]

바로 이 문구를 보고 달려나가는 남편, 폭우가 내리던 그 날 밤, 나는 우산을 챙겨주겠다고 그를 찾아갔는데 정작 남편이란 자는 유시아를 껴안고 바에서 나오고 있었다. 어깨가 비에 맞아 흠뻑 젖었지만 여전히 외투를 그녀에게 덮어주고 품에 꼭 끌어안은 모습이었다.

그 순간 나는 차창에 비친 퉁퉁 부은 내 몸을 쳐다보며 이런 나 자신이 너무 우스웠다.

내가 아니길 다행이지, 안 그러면 저 외투로 이 뚱뚱한 몸을 커버할 수도 없었을 테니까...

나도 한때는 연예계에서 손꼽히는 미녀였다. 아름다운 외모에 어떤 스타일도 소화 가능했고 몸매는 또 이 바닥에서 보기 드문 완벽한 S라인이었다. 그땐 모델 회사에서도 직접 찾아와서 어마어마한 출연료를 제안하며 쇼에 참석해달라고 내게 부탁했었다.

그랬던 내가 딸을 낳고 나니 몸매가 망가져 버렸다. 아무리 헬스를 해도 소용이 없었고 결국 이젠 90킬로가 임박했다.

나를 향한 은지호의 태도가 확연히 달라지고 있다는 걸 충분히 느낄 수가 있다. 애초의 다정함과 지금의 건성으로 임하는 태도, 더 나아가 혐오로 변질되어 가고 있었다.

게다가 이젠 1년 넘게 나를 터치하지 않는다. 아무리 이 가정을 위해 최선을 다해도 나의 노고는 남편과 딸에게 당연한 일로 돼버렸다.

진심으로 사랑했기에 이 사랑이 서서히 변해가고 있다는 걸 느낄 수가 있다.

나는 그 두 사람에게 ‘좋아요’를 눌러주고 캡처해서 남편에게 보냈다.

[세트로 사면 20% 할인받을 수 있어. 살림살이 진짜 엉망이네.]

이어서 휴대폰 전원을 끄고 캐리어에 짐을 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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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명피해까지 입게 되자 둘러싸인 기자들도 재빨리 촬영해서 SNS에 기사를 올렸다.그날 실검 순위는 난리도 아니었다. 유시아의 여신 이미지는 하루 사이에 천국에서 지옥으로 나락했고 이를 지켜보는 네티즌들은 그 어떤 영화보다도 흥미진진할 따름이었다.백선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대스타가 투표 조작에 댓글 알바, 찌라시 배포까지 한 방에 터졌으니 청순했던 여신 이미지는 일락 천장이 되어버렸다.일부 네티즌들은 이 기세에 힘입어 유시아가 전에 신인들을 괴롭힌 증거들까지 찾아내게 되었는데 무너진 담에 뭇 사람들이 달려든다고 한때 유시아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연예인들도 하나둘씩 나와서 그녀의 악행을 까발렸다.나와 이주리는 강 건너 불구경만 할 뿐이었다.문득 이주리가 내게 은가영 면회를 하러 가겠냐고 물었다. 고의상해죄로 며칠간 감방에 갇혔으니 제대로 먹고 자기 힘들 거라면서 말이다.나는 고개를 돌리고 그녀를 쳐다봤다.“은가영이 나랑 뭔 상관이지? 난 이젠 한유진 아니야. 엄연한 유진이라고.”이 사건은 일주일 동안 SNS를 뜨겁게 달구었고 좀처럼 종식될 기미가 안 보였다.이때 뜻밖에도 은지호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유진아, 제발 시아 한 번만 용서해주면 안 돼?”“내가 왜?”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그래도 우리 한때 부부였잖아. 내 면을 봐서라도...”이에 내가 차갑게 되물었다.“너도 체면이란 게 있었니? 얼어 죽을! 너만 아니었으면 난 진작 더 잘 됐을 거야. 그해 유시아가 SNS에 나에 관한 루머를 퍼뜨리고 가영이가 댓글 알바 시켜서 나 악플 테러 당한 거 다 잊었어? 왜 유시아한테는 나 한 번만 봐주라는 말 안 했어?”“넌 또 내게 호르몬 약을 타고 투표 조작으로 여우주연상 기회까지 앗아갔어. 이 모든 게 나한테 어떤 의미인지 누구보다 잘 알면서 왜 단 한 번도 날 놓아줄 생각은 안 했던 거니? 네가 그러고도 인간이야?”“12년 동안 우리 가족을 위해서 묵묵히 헌신만 해왔어. 그래야만 네가 안심하고 회사 돌볼 테니까. 근데 정작 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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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물간 와이프?   제8화

    촬영 현장에 온 후에야 나는 그녀가 말한 서프라이즈가 뭔지 알게 됐다.이 브랜드 모델이 유시아였던 것이다.내가 왔을 때 유시아는 한창 흔들의자에 앉아있었고 은지호는 그녀 옆에서 머리를 푹 숙이고 휴대폰만 만져댔다.잠시 후 내 휴대폰이 울렸는데 은지호한테서 온 메시지였다.[오늘 내 생일이야. 저녁에 집으로 돌아와. 케이크 주문했어. 우리 얘기 좀 해.]나는 메시지를 확인하고 머리를 들었다.이때 유시아가 은지호를 잡아당기며 웃고 떠드는 중이었다. 둘은 주변 사람들의 이상한 시선 따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꼭 달라붙어 있었다.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실소를 터트리고는 메시지를 지우고 휴대폰 전원까지 꺼버렸다.사진작가가 우리더러 옷을 갈아입고 나오라고 했다. 다 갈아입고 나오자 현장에서 누군가가 휘파람을 불어댔다.그 소리에 우리 두 사람 모두 머리를 들었다.은지호는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아예 내 몸에 시선이 꽂혀버렸다.한편 나는 얼굴을 반쯤 가린 가면을 쓰고 있어서 그가 알아볼 걱정은 전혀 없었다.거울에 비친 내 몸매는 완벽 그 자체였다. 늘씬한 기럭지에 탄탄한 근육, 잘록한 허리와 날씬한 다리가 여러 모델들 사이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존재였다.은지호는 여전히 내게 시선이 고정됐다. 나는 그런 그를 흘겨보며 미간을 살짝 구겼다.이때 유시아가 갑자기 우리 사이를 가로막으며 애교 조로 속삭였다.“오빠, 얘 신경 쓰지 마.”누가 할 소리?! 내가 그냥 스쳐 지나가려 할 때 이 남자가 덥석 손목을 잡았다.“한유진, 너 맞지? 우리가 12년을 함께 잤는데 내가 널 못 알아볼까 봐?”순간 나는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이젠 그와의 접촉이 이토록 역겨워졌다는 걸 그제야 알아챘다.나는 대뜸 큰 소리로 외쳤다.“으악, 이거 놔! 뭐야 이 사람!!”다들 우리 쪽으로 시선을 돌렸고 나는 손을 뿌리치며 눈물을 터뜨렸다.“스폰서가 웬 말이야? 나 그런 사람 아니거든! 그쪽은 유시아랑 잘 어울려. 둘이 딱이겠네!”나는 노골적인 말투로 둘을 비꼬았다.

  • 한물간 와이프?   제7화

    기사 하단에 사진 한 장 덧붙였는데 유시아가 은가영의 손을 잡고 은씨 저택으로 들어가는 장면이었다.사진을 본 이주리가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진짜 뻔뻔스럽네. 기자들 매수했잖아. 다 내가 아는 기자들이야. 대놓고 널 집에서 내쫓는 격이네 뭘. 유진이 넌 대체 이혼을 한 거니 안 한 거니?”이 일만 언급하면 머리가 지끈거렸다.나도 당연히 이혼하고 싶고 빈 몸으로 나가겠다고까지 말했지만 은지호가 기어코 사인을 안 해준다. 게다가 하루가 멀다 하게 전화해서 애원했다가 협박했다가 쳇바퀴 돌 듯이 반복하는데 난 또 이혼 때문에 그 자식 번호를 차단할 수조차 없었다.정말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내가 자리를 내주겠으니 두 년놈더러 당당하게 함께하라고 하는데 대체 왜 사인을 안 하는 걸까?역시 양반은 못 된다고 은지호한테서 또 전화가 걸려왔다.나는 깨질듯한 머리를 부여잡고 전화를 받았다.엄청 시끄러운 걸 보니 회사인 듯싶었다.“기사 봤어? 그거 다 오해야. 가영이가 아파서 시아가 집까지 바래다준 거야.”이 말을 들은 나는 어이가 없었다.“해명할 필요 없어. 관심 없으니까. 대체 언제 이혼합의서에 사인할 거야?”은지호는 한참 침묵하다가 속상한 어투로 말했다.“그것 말곤 나한테 더 할 얘기 없어?”“네가 없는 동안 가영이가 다이어트 한다면서 밥도 잘 안 먹고 매일 밤늦게까지 휴대폰에 컴퓨터만 놀고 있어. 애가 입만 열면 험한 말을 내뱉고 있어. 가영이 네 딸이잖아. 진짜 아예 걱정 안 되는 거야?”“내 딸 아니고 네 딸이지. 이혼합의서에 양육권 포기하겠다고 똑똑히 적어뒀어.”“한유진! 대체 언제까지 고집 피울래? 몇 번을 말해? 시아는 단지 우리 회사 소속 연예인일 뿐이야. 나 걔랑 아무 일도 없었다니까. 왜 사람 말을 안 믿어?!”이에 내가 덥석 말을 잘랐다.“은지호 대표님, 당신 딸은 유시아 말을 더 잘 들으니 앞으론 더 이상 나한테 전화하지 마.”수화기 너머로 물건을 깨부수는 소리가 울려 퍼지자 나는 곧장 전화를 끊었다.그랬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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