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재벌가의 가짜 딸로 몰려 집에서 쫓겨난 지도 벌써 6년째였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피를 팔아 겨우 목숨을 이어가고 있었다. 손에 쥔 지폐 몇 장을 바라보며 약을 받기 위해 의사에게 연락하려던 그때, 갑자기 경호원이 뒤에서 내 무릎 뒤를 거칠게 걷어찼다. 다리가 힘없이 꺾이며 그대로 바닥에 무릎을 꿇은 순간, 고막을 찢는 듯한 비명이 들려왔다. “이 배은망덕한 것아! 넌 왜 또 여기 나타난 거야? 우리 서율이까지 죽일 셈이니!” 곧이어 매서운 손바닥이 얼굴을 세게 후려쳤다. 그제야 알았다. 눈앞의 여자는 보물처럼 아끼는 딸 강서율의 수혈용 혈액을 구하러 온 엄마라는 걸. 그리고 옆에 서 있던 오빠는 무너져 내린 엄마를 바라보더니 곧바로 경호원들에게 명령했다. “당장 끌어내.” 오빠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듯 나를 바라보고는 내 손에 들린 현금을 보며 차갑게 비웃었다. “몇 년이 지나도 성질은 그대로네. 고작 몇십만 원 때문에 허영심을 못 버리고 피까지 팔고 다니고.” “보름 뒤면 서율이는 졸업하고 해외 유학을 떠날 거야. 그때쯤이면 집안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것도 끝이겠지. 네가 더 괴롭힐 일도 없을 거고.” “그때 가서 내가 부모님께 다 설명하고 다시 집으로 데려올게. 넌 여전히 우리 집 공주니까.” “집, 공주?” 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다 끝내 고개를 저으며 웃어버렸다. 루게릭병 진행 속도는 너무 빨랐고, 나는 한 달도 버티지 못할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가난한 장학생이었던 강서율의 말만 믿고 오빠가 나를 가짜라고 지목했던 그날, 그 순간부터 내게는 이미 돌아갈 집이 없었다.
더 보기강한서는 곧바로 부모님에게 연락했다.집에서 강지민에게 어떻게 사과하고 보상할지 이야기하던 두 사람은, 그 소식을 듣는 순간 거의 혼이 빠져나갈 듯한 얼굴이 됐다.급히 영안실로 달려온 부모님은 관 앞에 무너져 울고 있는 강한서를 보자마자 그대로 다리가 풀렸다.두 사람은 동시에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고, 서하란은 세상이 무너진 얼굴로 울부짖었다.“한서야! 너 분명 지민이가 연기하는 거라고 했잖아! 그런데 왜 우리 지민이가 여기 누워 있어!”서하란은 오열하며 강한서를 마구 때렸다.“우리 지민이 돌려내! 내 딸 돌려내!”강한서는 그대로 무릎을 꿇은 채 아무 저항도 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숙이고 모든 걸 받아냈다.늘 침착하던 강기택도 결국 참지 못하고 소리 내 울었다.“지민아, 아빠가 미안하다.”나는 허공에 떠서 그 모습을 바라봤다.처음에는 담담했지만 눈앞의 세 사람이 우는 모습은 너무나 처연했다.영혼조차 떨릴 정도였다.참으로 이상했다.‘애초에 내 말을 믿지 않았잖아. 가장 미워한 사람도 나였고 가장 사랑한 사람은 강서율이었잖아.’‘그런데 왜? 내가 죽고 나서야 이렇게 무너지는 걸까?’강한서는 한참을 울고 난 뒤 오히려 가장 조용해졌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강한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때가 가장 괴로운 사람이었다.장례를 치른 뒤, 부모님은 매일 울며 지냈다.그리고 강한서는 짐을 챙겨 다른 별장으로 거처를 옮겼다.넓은 집 안에는 오직 강한서 혼자뿐이었고 손에는 내 사진 한 장이 들려 있었다.강한서는 매일 창밖만 멍하니 바라봤다.너무 조용했고 너무 차분했다.마치 감정이 전부 죽어버린 사람 같았다.그러던 어느 날, 비서가 해외에 있던 강서율을 강제로 데려와 별장 안으로 밀어 넣었다.그제야 강한서는 장례식 이후 처음으로 감정을 드러냈다.강한서는 채찍을 들고 망설임 없이 강서율을 내리쳤다.한 번. 또 한 번, 채찍이 내려쳐 질 때마다 피부가 터져나갔다.순식간에 강서율의 몸은 피투성이가 됐고 울부짖으며 빌었다.“오빠, 잘못했어요.
강한서는 가장 먼저 파티장에 도착해 있었고 아직 강지민의 친구들은 아무도 오지 않았다.강한서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한 채 계속 손목시계를 확인했다.‘왜 아직도 지민이를 데려오지 못한 거지?’H시가 그렇게 넓은 것도 아니니 벌써 도착했어야 정상이었다.시간이 지날수록 강한서의 마음도 조금씩 조급해지던 그때, 파티장 문이 열리며 한 여자가 먼저 들어왔다.백아현이었다.예전에 강지민과 함께 영상을 찍었던 그 여자.사실 강한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강지민에 대한 분노가 거의 사라진 상태였다.그래서 백아현을 대하는 태도 역시 예전보다 훨씬 누그러져 있었다.“무슨 일로 왔죠?”강한서가 조용히 물었다.“그때 내가 입힌 피해는 전부 열 배로 보상해 줄 거예요.”나는 허공에 떠서 고개를 끄덕였다.‘아직 양심이 완전히 썩어버린 건 아니었네.’하지만 백아현은 그 말에 답하지 않았다.그저 USB 하나를 꺼내 강한서 앞에 내려놓았다.“이건 지민 언니가 죽기 전에 저한테 맡기고 간 거예요.”백아현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지민 언니는... 정말 너무 불쌍했어요.”백아현은 눈물을 참으며 말을 이었다.“아직도 지민 언니를 동생이라고 생각하신다면 부탁을 드릴게요.”“장례식장 영안실에 있는 지민 언니 좀 데려가 주세요. 제대로 묻어주세요.”“저는 지금 대표님 때문에 모든 게 다 막혀버렸어요. 할머니 병원비도 감당 못 하고 있어서 지민 언니 장례까지는...”말끝을 흐리자, 내 텅 빈 가슴 안쪽이 욱신거리듯 아파오는 것 같았다.고작 한 번 만난 인연이었다.오히려 강지민 때문에 피해까지 본 사람임에도 백아현은 한 번 만났던 여자를 위해 여기까지 와준 것이다.강한서의 미간이 점점 깊게 일그러졌고 눈빛에는 짙은 짜증과 혼란이 섞여 있었다.“무슨 소리죠?”강한서가 차갑게 되물었다.“지민이가 죽었다는 게 무슨 뜻이에요? 시체는 또 무슨 말이고요?”백아현은 움찔 떨었지만 결국 아무 말없이 USB를 강한서 앞으로 더 밀어놨다.“직접 보시면 아실 거예요.”
강한서는 비서에게 강지민의 귀가 파티를 준비하라고 지시했다.예전에 강지민을 가짜라고 몰아세웠을 때,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강지민은 웃음거리가 됐다.그러니 이번에는 모두에게 강지민이야말로 진짜 강씨 집안의 딸이라는 걸 알려야 했다.강한서는 직접 강지민이 좋아하던 취향에 맞춰 파티 소품들을 하나하나 골랐다.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었고 예전부터 강지민만 사용하던 공주방도 다시 비워두었다.강한서는 방 구석구석을 직접 정리했다.천천히 먼지를 닦아내며 예전 모습 그대로 되돌려 놓았다.그리고 나는 공중에 뜬 채 조용히 그 모습을 바라봤다.생각해 보면 강한서는 여전히 나를 신경 쓰고 있었다.‘그런데 왜 강서율 하나 때문에 그렇게까지 나를 몰아붙였을까?’‘왜 한 번도 내 말을 믿지 않았을까?’‘왜 끝내 나를 죽음 직전까지 몰아넣었을까?’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아니, 이제는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그렇게 생각하던 그때, 강한서가 상자 하나를 뒤적이다가 내 어릴 적 사진들을 꺼냈다.강한서는 사진 한 장 한 장을 조심스럽게 닦아 원래 있던 자리에 다시 세워두었다.그러다 한 사진을 바라보며 무심코 웃음을 흘렸다.나는 강한서의 시선을 따라 그 사진을 바라봤다.첫눈을 본 날이었다.눈이 신기해서 펄쩍 뛰며 웃고 있는 어린 내 모습이 담겨 있었다.나는 강한서가 어릴 적에 납치당해 냉동창고에 갇힌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그 이후로 누구보다 추위를 무서워했지만 그날은 웃으며 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영하 10도가 넘는 눈 내리는 밤이었다.강한서는 장갑도 끼지 않은 채 손을 밖으로 내놓고, 내 표정을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처럼 계속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잠시 후, 강한서는 다른 사진 한 장을 집어 들고는 한참 동안 멍하니 바라봤다.그 사진 역시 나는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학교 다닐 때, 골목 안에서 여자아이가 끌려 다니며 괴롭힘을 당하는 걸 봤다.나는 그때 처음으로 용기를 냈다.태권도 학원에서 배운 서툰 동작으로 남
강한서는 순간 며칠 전 강지민이 인터넷에 루게릭병 이야기를 올렸던 일을 떠올렸다.불안감이 서서히 가슴을 파고들면서 강한서는 휴대폰 화면을 확대했다.그렇게 사진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여다봤다.열 번도 넘게 확인했지만, 사진 속 시신은 일부가 모자이크 처리되어 있었고 얼굴은 이미 살이 전부 빠져 있었다.거의 해골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도무지 저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하지만 잠시 후 강한서는 고개를 저었다.‘누구여도 상관없어. 강지민일 리 없어.’강한서는 누구보다 강지민을 잘 안다고 생각했다.강지민은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무슨 방법이든 찾는 사람이었다.희망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절대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게다가 루게릭병 같은 희귀병에 그렇게 쉽게 걸릴 리도 없었다.집안에 가족력조차 없었으니까.그때 강한서가 불러들인 부모님이 여행지에서 급히 돌아왔지만 집 안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그리고 강한서의 무거운 표정을 본 서하란이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한서야, 무슨 일이야? 갑자기 왜 우리를 부른 거니?”“무슨 일이 생긴 거야?”강한서는 휴대폰 화면을 끄고는 입술을 꾹 다문 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한참 동안 말을 고르던 강한서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엄마, 아빠.”강한서의 목소리는 나지막하고 무거웠다.“사실 지민이야말로 두 분 친딸이에요.”순간 두 사람의 얼굴이 동시에 굳어지더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곧 강한서는 서류 한 장을 강기택에게 건넸다.“이게 진짜 유전자 검사지예요. 서율이 거는 제가 사람을 시켜서 조작한 거예요.”강한서는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일을 하나도 숨기지 않고 털어놨다.부모님은 유전자 검사지 위의 결과를 바라봤다.손끝이 떨릴 정도로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강한서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계속 말했다.“서율이는 고아였어요. 부모도 없었고 어릴 때부터 또래들한테 괴롭힘을 당했고요.”“우울증 있는 것도 두 분이 아시잖아요. 사실 우리 집에 오기 전부터 이미 상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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