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 connecter사흘간의 바칸에서의 칩거를 마쳤다.쇼는 마침내 1년 만에 사츠마로 귀환했다.그가 도성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 칠흑 같은 그늘이 온 땅을 덮쳤다.그의 위압적인 등장과 동시에.사츠마의 권력 정세는 가공할 만한 속도로 급격하게 뒤집히기 시작했다.‘쇼군이 돌아온다.’그 서늘한 통문을 받기가 무섭게 가장 먼저 발작한 것은 그의 부인이었다.목숨이 두려웠던 여인은 핏기 없는 창백한 얼굴로 자신의 아비인 천황에게 달려갔다.붉은 비단 치맛자락을 적시는 눈물로 올린 상소.켄지가 자신을 강제로 범하여 찬탈했다는 고발.그의 등장이 두려워 파랗게 질려버린 천황 또한 쇼가 사츠마를 피로 물들이기 전 서둘러 움직였다.바로 다음 날 아침.대죽도의 바다에서 쇼의 등에 칼을 꽂았던 켄지는 천황의 하명에 의해 광장에서 비참하게 목이 베여 처형당했다.바닥을 적신 검붉은 핏물 위로 반역자의 머리통이 굴렀다.그리고 사츠마의 도성 시마즈로 향하는 쇼에게 자신을 배신한 켄지의 처형 소식이 제일 먼저 귀에 들어왔다.허망하게도 제 손으로 칼을 휘둘러 수하의 목을 치는 진부한 복수 따위는 없었다.그저 쇼라는 이름 석 자에 세상이 알아서 쥐새끼의 목을 따다 바쳤을 뿐.제 손으로 칼을 휘두를 가치조차 없는 배신자에게 쇼는 서늘한 자조만을 보낼 뿐이었다.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쇼는 오직 자신의 존재감만으로 완벽한 정치적 도륙을 이루어냈다.그와 동시에, 한동안 와해되었던 그의 가문의 저택 앞은 장관을 이루었다.사방에서 몰려든 수천 명의 정예 무사들이 옻칠한 검은 갑주를 입고 산처럼 빽빽하게 인산인해를 이루었다."쇼군을 뵙습니다!"지축을 울리는 함성과 함께.거친 바닥에 이마를 짓찧는 수하들의 압도적인 충성심.사츠마의 시마즈 왕실은 이미 공포로 하얗게 질려 있었다.그렇게 1년 만에 살아 돌아온 쇼.그가 어두운 저택의 내실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였다.핏빛 노을이 들이치는 툇마루 끝.그의 발밑에 치정을 저지른 그의 부인이자 천황의 자식인 그녀가 바닥에 납작 엎드려
바칸의 가장 화려하고 은밀한 기방 뒤 장막.그곳에서 쇼는 미친놈처럼 술을 들이켜고 방탕한 정욕에 찌들었다.칼날 같던 체통과 고고함을 지키며 술과 여색에는 단 한 자락의 관심도 두지 않던 예전의 쇼는 사라져 있었다.지금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체통이나 고고함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술과 여색을 마다하지 않았다.완전히 만취해서라도, 다른 여인을 안고서라도.그 달콤하고 아린 살구꽃 향기를, 그 여인의 황금빛 눈동자를 깨끗이 지워내고 싶었다.그날은 저 바다 건너 여민국의 낙성에서, 정명공주와 대사헌 장남과의 화려한 국혼(國婚)이 치러질 예정이었다.그러나 비참하게도.아무리 잔인한 독주를 들이켜도 이성의 끈은 사납도록 선명해져만 갔다.단 한 순간도 취할 수가 없었다.심장이 뜯겨 나가 정말이지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지금 이 순간 여민국의 궁궐 은밀한 어딘가에서.다른 사내의 품에 안겨 비단 치마를 걷어 올리고, 그 가녀린 손목을 잡힌 채 숨결을 내어주고 있을 유진의 정경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가 않았다.자신의 여인이 다른 사내의 소유가 된다는 잔인한 상상.쇼의 하복부는 광기의 분노와 독점욕으로 딱딱하게 굳어 들어갔다.그리고……결코 채워지지 않을 여인에 대한 육체적 허기와 지독한 갈증에 몸부림쳤다.쇼는 기방의 안주상을 발로 걷어차며, 눈앞에 보이는 창부들의 비단 옷자락을 가차 없이 찢어발겨 거칠게 끌어안았다.여인들의 살결을 헤집고, 향락의 단맛을 입술로 짓이기며 날것의 정욕을 분출했다.하지만 그 어떤 매혹적인 여인도.자신의 여인이 은밀하게 내어주던 살향과 부드러운 온기를 조금도 대신할 수 없었다.몇 명의 여인들의 몸을 난폭하게 탐하고 정복한 후에도.쇼의 전신을 지배하는 극도의 불안감과 가슴앓이는 멈출 줄을 몰랐다.그녀의 구원이 사라진 지옥.홀로 숨을 쉬며 버텨내야 하는 사내의 남은 인생은 그 자체로 가혹한 형벌이었다.그녀를 다시 자신의 품 안에 되찾아오지 못한다면, 그의 끔찍한 생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었다.[넌 날 살
여민국을 침략했던 전쟁이 일어나기 삼 년 전.쇼는 결국 홀로 청사(靑蛇) 항구에 당도했다.그곳에서 주위를 경계하며 자신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던 타카오와 마주했다.“쇼군! 정녕 살아계셨던 겁니까?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쇼군!”삿갓을 깊게 눌러쓴 채 손에 쥔 칼자루를 풀지 않는 쇼.자신의 여인을 낙성에 묻어두고 청사로 돌아온 쇼의 검은 안광에는 핏빛 경계심이 도사리고 있었다.그는 주변을 무섭게 살폈다.미리 서신으로 지시한 대로.타카오는 아무도 대동하지 않고 홀로 완벽하게 그와 독대했다.“아직, 이곳 여민국 땅에 남아 있었군.”“약조하셨던 정월 초하루에 쇼군을 뵐 수 없어, 혹여 변고라도 당하신 게 아닌지 매우 심려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혹여 다음 배편에라도 돌아오실까 싶어 계속 이곳 부두를 지키고 있었습니다.”“당부한 대로, 아직 본국의 그 누구도 내 생존 소식을 알리지 않았겠지?”“네. 아직은 그 누구도 쇼군의 생사를 모릅니다.”“알겠네. 지체 없이 대죽도로 움직이지.”본국으로 돌아가 준비를 마칠 때까지.쇼는 자신의 살붙이를 포함한 그 누구에게도 흔적을 들키지 않았다.그리고 유일하게 동행한 타카오조차 배신의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항상 손에 칼자루를 쥔 채, 그는 살벌한 경계태세를 절대 늦추지 않았다.이 세상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었다..본국에 도착 후 권력의 중심인 시마즈 성으로 향하기 전.그는 은밀히 기방에 몸을 숨렸다. 그리고 자신의 귀향을 가문의 심복들에게만 조용히 알렸다.“쇼군, 그동안의 정세에 대해 상세히 보고 드리겠습니다.”기방의 은밀한 밀실 안.타카오 비롯 몇몇 세도가의 정예무사들이 무릎을 꿇은 채 무거운 음성을 뱉어냈다.“쇼군께서 대죽도 근해에서 실종되신 이후, 가문 내부에 불미스러운 격변이 몹시 많았습니다.”“쇼군의 지휘 하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던 지부들 역시 전부 뿔뿔이 흩어져 와해되었고, 그나마 몇몇의 세력만이 가까스로 살아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입니다.”“그리고 켄지군이 쇼군의 오쿠
전쟁의 거대한 포화가 휩쓸고 간 여민국의 조정은 그야말로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 직면해 있었다.사츠마가 내밀어 온 화친의 조건을 둘러싸고, 궐 안은 시끄럽게 끓어 올랐다.조서 외면에 새겨진 국한문은 분명 군신(君臣)의 예가 아닌 대등한 ‘형제 관계의 화친’이라 적혀 있었다.그러나 그 가식적인 이면에는 차후 사츠마국이 본토나 대륙에서 벌일 그 어떤 전쟁에서도, 여민국이 무조건 군량미와 막대한 정예 병력을 아낌없이 지원해야 한다는 잔혹한 군사적 구속 조항이 사슬처럼 붙어 있었다.여기에 쐐기를 박듯, 세자 부안대군을 여민국의 새로운 왕(王)으로 공식 추대하라는 사츠마국의 명백한 내정간섭 조항까지 더해졌다.환궁(還宮)길에 오른 왕실과 도성은 그야말로 갈기갈기 찢겨 나가며 분노로 핏대를 세웠다.“정녕 적국이 내리꽂은 꼭두각시를 왕으로 추대해야 한단 말입니까! 이 무슨 천인공노할 반역이란 말입니까!”조정의 고지식한 학자들과 신국의 눈치를 보던 간신 무리들이 도성 한복판에 엎드려 핏대를 세우며 울부짖었다.하지만 백성들과 조국을 버리고 야반도주했던 나약한 여민국 왕실에게는 사츠마의 가혹한 화친을 거절할 힘도, 자격도 없었다.만약 이 굴욕적인 형제 조약을 걷어차고 사츠마를 다시 노하게 한다면, 장차 여민국은 지도 위에서 흔적도 없이 지워지게 될 운명이었다.사츠마의 동맹이라는 이름 아래 사느냐, 영원히 소멸하느냐.선택지가 없는 잔인한 기로였다.그 숨 막히는 정적의 틈을 타.신국에서 뒤늦게 복귀한 의빈(懿嬪) 세력 무리들이 권력을 빼앗기지 않으려 도성 안팎으로 치명적인 유언비어를 은밀하게 퍼뜨리기 시작했다.“세자 부안대군이 애초부터 반역을 꾀하려 사츠마와 내통(內通)했던 게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적국의 계획을 3년 전에 미리 알았으며, 제 입으로 자신을 왕으로 추대하겠는가!”무시무시한 역모의 소문이 칠흑 같은 궐 안을 뒤흔들었다.하지만 부안대군의 눈동자는 흔들리지 않았다.오히려 무섭도록 서늘한 핏빛 기운을 띠며 번뜩였다.“감히 조국을 구
“고작 내 누이 정명을 손아귀에 넣겠다고, 이 강토를 이토록 처절하게 도륙하셨단 말입니까!”부안대군의 목소리에 형용할 수 없는 분노와 참담함이 고스란히 묻어났다.“여민국은 그 아이의 고결한 조국입니다. 그리고 정명은 이 강토의 유일한 공주이고. 한데 그런 끔찍한 살육을 제 손으로 저지른 당신을…… 정명이 장차 얼마나 증오하고 소름 끼쳐 할지는, 대관절 단 한 번이라도 생각 안 해보신 겁니까?”“……상관없습니다.”요스케 쇼는 찻잔을 천천히 내려놓으며, 안면 하나 바꾸지 않고 차갑고 서늘한 말을 뱉어냈다.“원망이든 저주를 하든.”“정명의 생각 따위는 안중에도 없단 말씀이군요.”부안대군이 기가 차다는 듯 실소를 내뱉었다.“3년 전 청사(靑蛇) 땅에서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쇼군을 치료해 살렸던 내 누이의 희생이 얼마나 어리석고 가련한 것이었는지…… 그런 아이를 옆에서 미처 말리지 못한 제 무능이 통탄스러울 뿐입니다.”쇼는 여전히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미동조차 없는 사내의 태도에, 부안대군은 비통함을 입술로 깨물며 물었다.“만약…… 우리 여민국이 끝까지 정명을 내어드리지 않는다면, 장차 이 강토는 어찌 되는 것입니까.”“여민국과 왕실은, 그 어떤 거절의 선택도 하실 수 없습니다. 특히…… 부안대군은 더더욱.”쇼군의 서슬 퍼런 경고에 부안대군은 입술을 피가 나도록 짓씹었다.“제 야망과 왕권을 위해 친누이마저 포기하라는 말씀을 아주 당당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어찌합니까. 내드리고 싶어도…… 내 누이 정명공주는 이미 죽었습니다. 당신들의 칼날과 도륙의 현장에서……!”그녀의 사망을 고하는 부안대군의 청천벽력 같은 비보.그러나 쇼는 눈빛 하나 흔들리지 않았다.그는 도리어 차분하게 입술을 열었다.“제가…… 유진을 데리고 있습니다.”사내의 입술을 뚫고 나온, 정명공주의 사가(私家)의 이름.부안대군은 사색이 되었다.황급히 내실 문밖으로 나가, 사방의 경계를 한 번 더 처절하게 확인한 뒤 문을 단단히 걸어 잠갔다.“그 아이가…… 정녕 당신과
철컥, 스르륵—.“……쇼군께서 뵙기를 희망하십니다.”차디찬 안주성 감옥 문이 열리며, 이국 무사의 서늘한 음성이 좁은 감방 안으로 흘러들었다.어두운 바닥에 웅크리고 있던 부안대군은 가만히 감고 있던 눈을 떴다.사츠마 최고 총사령관이자 이 전쟁의 잔혹한 정복자.그 사내가 자신과의 독대를 청했다는 소식.부안대군은 마침내 이 강토와 여민국 왕실의 처참한 마지막이 목전에 당도했음을 직감했다.사츠마의 호위 무사들을 따라나선 곳은, 서안성 외곽에 위치한 어느 작은 가옥의 내실이었다.창문 너머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방 안.부안대군은 초조한 정적 속에서 침을 바싹 삼키며 사내를 기다렸다.이윽고,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스르륵 열렸다.쿵, 쿵―.방 안으로 천천히 스며드는 압도적인 아우라.허리춤에 차가운 흑색 장검을 찬 낯익은 거구의 사내가 위압적인 발소리를 내며 걸어 들어왔다.눈앞에 당당히 걸어 들어온 정복자의 정체를 확인한 순간, 부안대군의 전신에 소름이 쫙 끼쳐왔다.“……대관절 당신이 어떻게……!”칠흑 같은 군복을 입은 사내의 눈빛은 깊고 어두웠다.“……오랜만이군요, 부안대군.”사내의 입술을 뚫고 나온 낮고 묵직한 이국의 언어.과거 제 손으로 목숨을 구해 귀환시켰던 이국의 무사.그 사내가 온 강토를 피바람으로 물들인 잔혹한 정복자가 되어 들어선 순간.부안대군의 전신에 소름이 돋아나며 핏발 선 안광이 사정없이 흔들렸다.그러나 쇼는 여유로웠다.그는 찻상 위에 따스한 차를 커다란 손으로 들어 한 모금 느리게 들이켰다.찻잔 너머로 하얗게 피어오르는 김 사이로 쇼의 차가운 안광이 비쳤다.부안대군이 이를 악물며 분통 터지는 폭언을 쏟아내었다.“처음부터 나를, 그리고 나의 소중한 누이 정명을 철저히 기만하고 속였던 게로군요!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해 온 이 침략 전쟁을 기어이 승리로 이끌어 정점에 서셨는데…… 대관절 망국의 세자인 내게 독대까지 청하며 원하는 게 무엇입니까!”달칵—.쇼는 들고 있던 찻잔을 찻상 위에 툭 내려놓았다.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