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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화

Author: 양순이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2-26 17:17:10

'주인님을 놈이라고 부르다니 필시 높으신 분이구나.'

미옥은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남자가 어느 정도의 신분일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시, 신선님입니까?”

잔뜩 겁에 질린 목소리에 남자가 낮은 웃음을 터트렸다. 땀에 젖어 이마에 달라붙은 흑발 사이로, 갈증에 젖은 눈동자가 번뜩였다.

“신선이라…… 하긴, 이 향에 취하면 이곳이 극락인지 지옥인지 분간이 안 가긴 하지. 가까이 와서 확인해 보거라. 내가 신선인지, 아니면 너를 잡아먹을 괴물인지.”

미옥은 침을 꿀꺽 삼키고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었다. 발이 어찌나 무겁게 느껴지는지, 바닥에서 손이 올라와 자신의 발목을 움켜쥐는 것이 아닌지 착각마저 들었다.

‘별채가 이리 컸었나?’

열 걸음 정도를 앞으로 나가니, 사내의 모습이 또렷이 보였다. 그의 앞에 놓인 화로에서 끝없이 피어나는 연기 때문에 이따금 흐려지긴 했지만, 선명한 이목구비까지는 가리지 못했다.

서늘할 정도로 매끄러운 콧날은 마치 잘 벼려진 백자의 선 같았고, 짙게 그늘진 눈매 아래로 길게 뻗은 속눈썹은 창백한 뺨 위에 정교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땀에 젖어 흐트러진 흑발이 어깨 위로 흘러내려 그의 비현실적인 안색을 더욱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의원이 아닌 자신이 보기에도 아픈 사람인 것 같았으나, 환자라기엔 지나치게 수려하고, 고결한 기품이 흐르는 얼굴이었다.

그는 바로 앞에선 미옥의 전신을 느릿하게 훑었다.

발갛다 못해 금방이라도 피가 배어 나올 것 같은 볼과 마디마디가 불거진 손을 가진 여인.

‘칼바람에 얼어 터져도 본판은 그대로구나.’

형편없는 꼴이었지만, 황갈색 눈동자가 그의 시선을 끌었다.

‘하륜이 혼자서 저지를 일은 아니고, 분명 황후가 뒤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지? 아무리 미색이 있다 해도 노비라니.'

취명향(醉冥香) 때문인지 연호는 생각을 깊게 하기가 어려웠다.

그는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아직도 내가 신선으로 보이느냐?”

“아닙니다.”

멍하니 그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던 미옥은 급하게 고개를 조아렸다.

“그러면?”

“신선보다 훨씬 높은 천신의...... 아들인 천자 같습니다.”

“천신이면 천신이지, 그의 아들은 또 무엇이란 말이냐, 내가 천신만큼은 아닐 거란 생각인가?”

“그게 아니라….”

“어서 답해 보아라.”

미옥이 머뭇거리자, 그는 다시 대답을 독촉했다.

"왜지?"

“그야... 천신이라기엔 너무 젊으니까요.”

정지된 공기 속에서 연호의 낮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취명향의 몽롱한 기운 때문일까, 눈앞의 계집이 내뱉는 맹랑한 찬사가 평소보다 자극적으로 들렸다.

“하하하... 으윽!"

어깨를 들썩이는 바람에 천으로 감아놓은 팔이 건드려진 모양이었다. 핏기가 가신 그의 얼굴에 고통과 희열이 묘하게 뒤섞였다. 느슨하게 풀어진 적삼 사이로 붕대가 감긴 탄탄한 가슴팍 드러났고, 위로 땀방울이 타고 흘러내렸다.

“괜찮으십니까.”

연호는 손을 들어 보이며 다시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이름이 뭐지?”

“미옥이라고 합니다.”

“미옥…, 어울리는 이름이구나. 먹어라.”

“예?”

별안간 먹으라는 그의 명에 미옥은 고개를 돌려 두리번거렸다.

“송구하오나 무엇을 먹으라는 말씀이신지….”

“이 방안에 먹을 것이 반상에 올려진 것밖에 더 있느냐.”

연호가 턱 끝으로 가리킨 것은 반상 위의 약과였다.

“이, 이것을 먹으라는 말씀입니까?”

무릎을 꿇고 상 앞에 앉긴 했지만, 쉽사리 손이 올라가지 않았다.

‘간혹 주인들이 먹물이나 종이를 먹인다는 소리는 들어봤는데, 떡과 약과라니!’

더구나 약과는 상시의 집에서도 제삿날에나 볼 수 있는 음식이었다.

‘독이라도 넣은 건가? 아무리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지만….’

침이 꼴딱꼴딱 넘어갔지만,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걸 집는다고 해서 제 손가락을 자르신다거나 흡!”

벌어진 입 사이로 무언가가 쑥 하고 들어왔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이내 입안 전체에 달콤한 맛이 사르륵 퍼져 나갔다.

[꼬르륵!]

목구멍으로 단물이 넘어가자, 배 안에서 천둥보다 큰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놈의 몸뚱이가 정신이 나간 건가?

창피하고 어이도 없었지만, 눈을 꼭 감고 입안에 든 것을 깨물었다.

“하나 더 먹으련?”

연호의 목소리는 낮고 자박했다.

“예? 아닙니다.”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매 끝으로 입술을 닦았다.

“날 더러 또 먹여달라는 말이냐?”

그가 길고 수려한 손가락을 뻗어 약과 한 조각을 집어 들려 하자,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재빨리 약과를 움켜쥐어 자신의 입안으로 가져갔다.

하륜이 보낸 선물이라니.

분명 밤시중을 들라 보낸 것일 텐데, 이 계집은 제 처지도 모른 채 약과를 씹어 삼키기 바빴다. 연호는 오히려 그 모습에서 기이한 충동을 느꼈다.

“그래서 네 주인 놈은 널 왜 보낸 것이냐?”

그 말을 듣고서야 미옥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제가 쓸모 있는 것인지 확인하라 하셨습니다.”

“쓸모라…."

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눈 앞의 몸뚱이를 취해 고통을 잊으라는 하륜의 의도는 명백했다.

"그래, 여기서 네가 쓸모 있을 것 같으냐? 내가 먹지 않는 것을 대신 먹어주는 것 외에 말이다.”

그녀의 가느다란 목덜미로 시선을 내렸다. 손을 뻗어 저 맥박이 뛰는 곳을 짓누르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하지만 이어지는 미옥의 행동은 연호의 기대를 완전히 빗나갔다.

“네!”

자신만만하게 대답한 미옥이 달려간 곳은 연호의 품이 아니라, 구석에 처박힌 피 묻은 천들과 지저분한 바닥이었다.

뒤이어, 그녀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대야를 들고 와 바닥을 박박 닦기 시작했다.

“뜨거우니 손대지 마십시오. 따뜻한 증기가 호흡을 편안하게 해 줄 겁니다.”

연호는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날 앞에 두고 한다는 게 고작 청소...라니. 하륜, 이 미친놈이...'

무슨 생각으로 눈치라곤 약과 말아 먹은 것 같은 계집을 들여보냈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런데 묘했다. 바닥을 닦느라 엉덩이를 치켜들고 분주히 움직이는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머리를 찌르던 통증이 조금은 가시는 기분이었다.

“흐음..., 딱히 안을 마음도 없었지만, 하륜이 말한 것이 이런 쓸모가 아닐 텐데."

신음 섞인 혼잣말을 내뱉으며 미간을 짚었다. 취명향의 연기 속에서 미옥의 움직임이 잔상처럼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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