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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화

Penulis: 양순이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02-26 17:19:09

취명향 덕에 어깨의 고통은 둔감해졌지만, 이따금 머리를 찌르는 통증에 절로 눈살이 찡그려졌다. 다시 하륜을 부르려는 찰나, 문이 벌컥 열리며 미옥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이것 좀 보세요!”

미옥은 품 안에 가득 찬 이름 모를 풀들을 한 움큼 들고 다가와 연호의 앞에 툭 내려놓았다.

“……이게 뭐지?”

연호의 미간이 깊게 패였다. 길쭉한 이파리에서는 모과처럼 상큼하면서도 박하처럼 매운 향이 훅 끼쳤다. 피와 취명향에 절여진 방 안의 공기를 뚫고 들어오는 생경한 냄새였다.

“이름은 모릅니다. 하지만 천자님의 두통을 낫게 해줄 겁니다. 제게는 만병통치약 같은 거니까요.”

“내가 머리가 아픈 건 어찌 알았지?”

“당연한 것을 물어보십니다.”

“뭐라?”

연호의 눈이 서늘하게 빛났으나 미옥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이 방에 들어온 지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은 저도 머리가 아픈걸요. 보나 마나 저 독한 향 연기 때문이겠지만, 추위 때문에 환기를 할 수도 없으니. 이 풀을 코 가까이에 대고 맡으세요. 상처 부위에 올려두셔도 시원하실 겁니다.”

들뜬 목소리의 미옥과 달리, 연호의 표정은 급격히 가라앉았다.

하륜이 보낸 여인이라기에 어떤 대단한 수작을 부릴까 싶었더니, 고작 산천에 널린 풀떼기를 가져와 수작을 부린단 말인가.

“이제 네 할 일은 다 한 것이냐?”

“예? 네... 행여 더 시키실 일이라도 있습니까?”

천진하다 못해 멍청해 보이기까지 하는 대답. 연호는 허탈함 섞인 실소를 삼켰다.

“가서 네 주인 놈이나 불러오너라.”

자신이 가져온 풀을 들여다보지도 않는 냉담한 태도를 보며, 미옥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밖으로 나갔다.

문이 닫히자마자 연호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

“취명향의 부작용이 이딴 풀로 해결될 것 같으면 의원들이 왜 필요하겠느냐.”

그는 바닥에 떨어진 풀잎 하나를 발끝으로 툭 쳤다.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으나, 행동거지를 보니 영락없는 노비였다. 아무리 고운들, 색과 향이 없는 꽃이라면 종이로 접은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연호는 등 뒤를 서늘하게 적시는 황후의 그림자를 떠올렸다. 하륜을 움직여 자신에게 여인을 붙이려는 그녀의 속내가 못내 불쾌했다.

‘태후가 그리도 신경이 쓰였나?’

지아비로서 온전한 마음을 줄 수 없었기에, 황후가 내명부에서 휘두르는 서슬 퍼런 질투 정도는 묵인해 왔다.

그녀의 투기에 죄 없는 궁녀가 매를 맞을 때도, 자신을 유혹하려던 어린 계집이 얼어붙은 시체로 발견되었을 때도 그는 늘 황후의 편이었다.

하지만 감히 침소에 비천한 노비를 밀어 넣어 자신을 조롱하는 것만큼은 용납할 수 없었다. 차라리 제 가문의 여인을 맞으라 정면으로 부딪혔다면 기꺼이 받아주었을 것을.

“이번 일은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야.”

연호는 미옥이 놓고 간 풀을 거칠게 만지작거렸다. 손가락 끝에 으깨진 풀 향기가 코끝을 찔렀다. 기분 나쁠 정도로 청량한 향이었다.

날이 선 눈매로 문밖을 노려보던 연호는, 어느새 손바닥에 묻은 풀 향기를 깊게 들이마시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짓궂게 입술을 깨물었다.

**

“황후마마, 하상시가 왔습니다. 들일까요?”

그녀는 힘들게 침상에서 몸을 일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유모는 잠시만 나가 있어 주게.”

황후의 말에 강유모는 눈을 부릅뜨며 다부지게 다문 입술을 열었다.

“아니 될 말씀입니다. 상시들이 얼마나 교활한 자들인데요!”

“그러니 하 상시만큼 적당한 인물이 없지 않은가. 상이를 지켜야 해.”

“그럼 저도 자리에 있겠습니다.”

커다란 덩치만큼이나 황소 같은 고집을 부리는 강유모의 모습에 황후의 입에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실로 오랜만에 나오는 웃음이 어색한지 곧 표정을 가다듬었다.

“유모가 여기 있으면 밖은 누가 지키지?”

그녀의 물음에 강유모는 머쓱한 표정을 짓더니 못 이긴 척 꼬리를 내렸다.

“그럼, 밖은 제가 단단히 지키고 있을 테니, 마마께선 신중 또 신중히 생각해서 말씀을 전하세요.”

강유모가 밖을 지키기 위해 물러나자, 곧이어 열린 문 사이로 하륜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환관의 의관을 제대로 갖춰 입은 그의 가늘고 긴 눈매 아래로 서늘한 눈동자가 빛났고, 굳게 다문 붉은 입술이 가학적인 매력을 풍겼다.

“부르셨습니까, 황후마마.”

하륜의 목소리는 낮았으나, 매끄러웠다. 그녀는 그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심장이 저릿하게 조여오는 것을 느꼈다.

"찾았는가... 꼭 상이를 지켜줄 여인이어야 하네. 기댈 곳이라곤 오직 자네뿐인, 비천하나 폐하의 마음을 사로 잡을 수 있는 여인.“

그는 대답 대신 황후의 침상 곁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 그가 가까워질수록 황후의 호흡이 가빠졌다.

하륜은 무릎을 굽혀 그녀와 시선을 맞췄다. 그의 긴 손가락이 황후의 창백한 턱끝을 부드럽게, 그러나 거부할 수 없는 위력으로 들어 올렸다.

"걱정할 것 없습니다. 본성이 미련할 정도로 선한 계집을 이미 폐하의 곁에 두었습니다."

"아이는... 좋아하는가?"

"시키는 것은 무엇이든 할 계집이니, 마마의 아들을 위해 죽으라 하면 기꺼이 그리할 도구입니다.”

도구라는 단어를 뱉는 그의 입술이 우아하게 호선을 그리며 휘어졌다.

턱끝에서 천천히 목선을 타고 내려오는 그의 손길에 황후의 몸이 잘게 떨렸다. 죽어가는 육심임에도 불구하고, 사내로서의 하륜이 뿜어내는 농밀한 열기에 본능적인 전율이 일었다.

"폐하께선...“

그녀는 급하게 말을 돌렸다.

"많이 다치셨는가?"

"겨우 어깨 한쪽에 화살이 스친 것뿐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실행한 자는 그 자리에서 찢겨 죽었지요. 마마, 지금 누구를 걱정해야 할까요? 상처뿐인 폐하입니까, 아니면 이미 시체가 된 자입니까.”

하륜은 황후의 귓가에 입술을 바짝 다가대고 속삭였다. 차가운 숨결이 닿을 때마다 황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차마 참지 못한 그녀가 먼저 하륜의 소매자랏을 부여잡았다.

"진정... 내게 한 톨의 마음도 없었습니까?“

절박함이 스며든 목소리를 들은 하륜의 손이 그녀의 가느다란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힘을 주지는 않았으나, 언제든 꺾어버릴 수 있다는 위압감이 느껴지는 손길이었다.

“제게 진심이라는 게 있었다면, 마마께서 이렇게 죽어가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그는 황후의 눈물을 무심하게 지켜보았다.

“그럼 날 도와주는 이유가 뭔가? 무엇을 위해 이 위험한 도박을 하는 거지?”

“글쎄요. 이번엔 또 다른 곳을 향하는… 제 나름의 진심이라고 해두죠.”

하륜은 잡고 있던 손을 거칠게 놓아버렸다. 마치 흥미가 떨어진 장난감을 던져버리는 포식자처럼 가차 없었다.

“폐하의 그늘 때문에 꽃봉오리가 피어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시들어버렸군요. 이제 제 눈을 미혹시키지 못하시니, 저 또한 아쉬울 따름입니다.”

돌아보지 않고 문을 향해 걸어가는 하륜의 뒷모습을 보며 황후는 깨달았다.

하륜은, 단 한 번도 그녀를 사내로서 대했던 적이 없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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