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같은 시각, 깊은 밤이 내려앉은 연화당.미옥은 거울 앞에 앉아 제 얼굴을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었다.거울 속 여인의 입술은 붉게 퉁퉁 부어올라 있었다. 조금 전, 하륜이 집요하게 짓이기고 삼켜낸 지독한 흔적이었다. 살짝 스치기만 해도 혀끝이 아릿할 정도로 통증이 선명했다.미옥은 화장대 한구석에 놓인 작은 백자 합을 집어 들었다. 얼마 전, 하륜이 직접 옥안(玉顔)을 가꿀 때 쓰라며 쥐여주었던 연고였다.손가락 끝에 덜어낸 투명한 연고를 부르튼 입술 위에 얇게 펴 발랐다."……!"그 순간, 미옥의 두 눈이 기이함에 커졌다.상
물건이 도착하기도 전에 미리 싼값에 사들일 권리를 확보하고, 값이 오르자 그 권리 자체를 팔아 막대한 이문을 남겼다. 하륜도 혀를 내두를 만큼 기민하고 계산적인 수완이었다.“대단한데……. 값이 오를 거라는 것을 어떻게 미리 알았지?”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사혁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알 리가 있겠습니까. 그저 도박이었을 뿐입니다. 틀려도 본전은 하겠지 싶은.” “그렇다면 더욱 대단하군. 내가 없었으면 큰 상단의 주인이 되고도 남았겠어.”‘여기서 더 말리면 결국 말이 막힐 터.’사혁은 재빨리 말을 돌렸다."덕분에 사병들과
어스름한 저녁놀이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짙은 어둠이 내려앉은 하륜의 사가(私家).적막이 감도는 방 안, 사혁은 희미한 촛불에 의지해 탁상 위에 펼쳐진 장부를 넘기고 있었다. 사각거리는 붓끝이 종이 위를 스칠 때마다 막대한 액수의 은자가 수치화되어 기록되었다.[서역산 최상품 비단 오십 필. 은자 삼천 냥으로 환전 완료.]얼마 전, 미옥이 조운선에게 받은 것을 넘겨준 물건이었다. 사혁은 이 눈에 띄는 사치품을 도성에 점조직으로 깔아둔 유령 상단을 통해 완벽하게 은자로 세탁했다.서역에서 넘어온 귀한 밀무역품이라는 소문 하나에,
오후의 햇살이 비스듬히 떨어져 내리는 연화당.단정한 관복 차림의 하륜은 흠잡을 데 없는 상선의 얼굴로 미옥에게 고했다."이곳 연화당에 편전을 더하라는 황명(皇命)이 떨어졌습니다. 조만간 대대적인 공사가 진행될 터이니, 처소를 잠시 옮기시는 것이 좋겠습니다."미옥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나른하게 휘어지는 눈웃음을 지었다. 오늘 아침 편전에서 자신이 꽂아 넣은 개가 대신들의 밥그릇을 완벽하게 박살 냈다는 소식을 익히 들은 참이었다.그저 요직에 앉혀주었을 뿐인데, 조운선이 제 기대 이상으로 아주 쓸만한 사냥개 노릇을 해주었다고 여겨
“폐하께서 옥체를 수고롭게 하시며 매일같이 연화당으로 행차하시니, 저들이 저리 귀비 마마를 물고 늘어지는 것 아닙니까!”조운선은 편전이 떠나가라 눈을 부릅뜨고 외쳤다."그러니 아예 정무를 보시는 편전을 귀비 마마께서 계신 연화당으로 옮기십시오! 마침 저 무능한 자들에게서 거둬들일 막대한 재물이 있지 않습니까! 그 재물로 연화당을 황국에서 가장 화려하게 보수하시어, 귀비 마마를 향한 폐하의 애정을 만천하에 과시하십시오!"조운선의 피를 토하는 듯한 뻔뻔한 주청이 끝나자, 편전에는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기괴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높은 단상 위, 화려한 황좌에 깊숙이 몸을 기댄 연호가 말없이 단상 아래를 훑어내렸다. 고조되는 언성 속에서도, 그의 붉은 입술 사이로는 희미한 비웃음만이 새어 나올 뿐이었다.오늘 아침, 연호가 던진 한 장의 조서(詔書)가 편전을 발칵 뒤집어 놓은 참이었다.[실무 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고관대작들의 명예직 녹봉을 전면 삭감하고, 면세 혜택을 받던 세습 영지를 국고로 환수한다.]능력을 증명하지 못하는 자는 가문을 불문하고 밥줄을 끊어버리겠다는, 황국의 오랜 악습을 도려내는 날 선 칼날이었다."폐하! 재고(再考)해 주십시오!
취명향 덕에 어깨의 고통은 둔감해졌지만, 이따금 머리를 찌르는 통증에 절로 눈살이 찡그려졌다. 다시 하륜을 부르려는 찰나, 문이 벌컥 열리며 미옥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이것 좀 보세요!”미옥은 품 안에 가득 찬 이름 모를 풀들을 한 움큼 들고 다가와 연호의 앞에 툭 내려놓았다.“……이게 뭐지?”연호의 미간이 깊게 패였다. 길쭉한 이파리에서는 모과처럼 상큼하면서도 박하처럼 매운 향이 훅 끼쳤다. 피와 취명향에 절여진 방 안의 공기를 뚫고 들어오는 생경한 냄새였다.“이름은 모릅니다. 하지만 천자님의 두통을 낫게 해줄 겁니다
'주인님을 놈이라고 부르다니 필시 높으신 분이구나.'미옥은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남자가 어느 정도의 신분일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시, 신선님입니까?”잔뜩 겁에 질린 목소리에 남자가 낮은 웃음을 터트렸다. 땀에 젖어 이마에 달라붙은 흑발 사이로, 갈증에 젖은 눈동자가 번뜩였다.“신선이라…… 하긴, 이 향에 취하면 이곳이 극락인지 지옥인지 분간이 안 가긴 하지. 가까이 와서 확인해 보거라. 내가 신선인지, 아니면 너를 잡아먹을 괴물인지.”미옥은 침을 꿀꺽 삼키고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었다. 발이 어찌나 무겁게 느껴지는
눈은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이 쏟아졌다. 하늘과 땅의 경계가 사라진 백색의 지옥이었다.북방의 잔혹한 겨울바람이 여인의 비단 옷자락을 무자비하게 파고들었다. 겹겹이 껴입은 비단옷이 종잇장처럼 얇게 느껴질 정도의 혹한이었다. 드러난 살결은 이미 감각이 마비된 지 오래였고, 눈꺼풀 위로 내려앉은 서리는 속눈썹을 무겁게 짓눌렀다.하지만 미옥은 추위를 느낄 수 없었다. 손끝에서부터 전해지는 금속의 소름 끼치는 서늘함, 그리고 그 칼끝에 매달린 누군가의 지독하게 뜨거운 생명력 때문이었다. 자신의 손을 타고 흐르는 액체는 차가운 대기와 만나
“옷을 지을 줄 아나?”“바느질은 꽤 합니다만, 천자님의 마음에 들만한 옷을 지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꿈도 야무지구나. 누가 너 같은 것이 만든 옷을 입고 싶다더냐. 버리기 아까운 이불이니 홑청으로 옷이나 한 벌 지어보아라.”“이 귀한 비단 이불을 버린다고요? 차라리 빨아서 쓰심이.”“내 심기를 건드리지 말라고 경고했거늘!”화들짝 놀란 그녀는 입을 꾹 다물었다.“한번은 그냥 넘어가나, 앞으로 내 말에 어떤 토도 달지 말아라.”“저…, 그러면 누구의 옷으로 할까요?”“그런 것까지 알려주랴? 그냥 네 마음대로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