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특별 외전]두꺼운 벨벳 로프 앞, 검은 정장을 입은 가드들이 암호화된 프라이빗 인비테이션을 일일이 스캔하고 있었다. 초대가 없으면 입구의 대리석조차 밟을 수 없는 완벽한 통제였다.겹겹의 보안을 거쳐 묵직한 방음문이 열리자, 바깥의 소음과는 철저히 단절된 우아한 밀실이 펼쳐졌다. 발소리조차 먹어 치우는 짙은 카펫 위로, 대한민국에서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정재계 인사들이 샴페인 잔을 쥔 채 거대한 캔버스를 응시하고 있었다.대한민국 현대미술계의 거장, 차연호의 비공개 신작 전시였다."차 작가."굴지 재벌가의 최 전무가 태블릿
15년.그 지독한 고독의 시간을 기꺼이 감내하겠다는 맹세였다."그러니 먼저 가 있어. 내 핏빛 업보를 다 씻어내는 날, 가장 깨끗하고 온전한 남자가 되어 기어이 널 다시 찾아갈 테니까."하륜의 숭고하고도 시린 맹세를 뒤로한 채, 미옥은 마침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렸다...자욱한 안개가 깔린 삼도천의 나루터.일렁이는 검은 물결 위로, 이승의 기억을 지우고 다음 생으로 인도할 낡은 나룻배 한 척이 고요히 흔들리고 있었다.미옥이 뱃머리에 조심스레 발을 내딛으려던 찰나였다.안개 속에 가려져 있던 배의 안쪽에서 누군가
[에필로그 : 삼도천의 기다림]무겁게 내려앉은 잿빛 안개. 발목을 적시는 검푸른 강물. 그리고 강둑을 따라 핏빛으로 흐드러지게 피어난 피안화(彼岸花).망자들이 생의 기억과 업보를 씻어내는 강, 삼도천(三途川)이었다.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제국의 핏빛 역사를 종식시키고 가장 찬란한 태평성대를 이룩한 철혈의 여제 미옥은, 마침내 백발이 성성한 노구가 되어 고요히 숨을 거두었다.무거웠던 흑의(黑衣)도, 숨 막히는 황좌의 무게도 훌훌 벗어던진 채 영혼이 되어 다다른 강기슭.자욱한 안개 너머로 익숙한 실루엣이 꼿꼿하게 서 있었다
연호는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몸을 애써 꼿꼿하게 세우려 안간힘을 썼다. 그리고 제 옆에 선 아름답고 거대한 여제를 향해, 마지막 애원을 뱉어냈다."그러니 다음 생에는……."마지막 숨을 쥐어짜 내는 그의 목소리가 지독하게 애달프고 다정했다."이리 무겁고 끔찍한 천하 따위는 쥐지 말고…… 피비린내 나는 황제와 비루한 노비가 아니라, 그저 온전하고 평범한 부부의 연(緣)으로 내게 오라."다음 생에서만큼은 너의 진짜 지아비가 되고 싶다는 서글픈 고백이었다."사랑하는 나의 비(妃)여. 이제 그만…… 이 지독한 의심의 지옥에서 나를
정전에서의 차가운 정무가 모두 끝난 늦은 밤.미옥은 머리를 짓누르는 거대한 가채와 칠흑 같은 관복을 벗지도 않은 채, 언제나처럼 연호가 갇혀 있는 서궁의 별전으로 향했다.자작나무 타는 냄새와 씁쓸하고 눅진한 탕약의 향기가 공기를 무겁게 짓누르는 고요한 침전.빛이 차단된 두꺼운 장막 너머로, 한때 제국을 호령하던 거대했던 그가 이제는 앙상한 몰골로 침상에 누워 있었다. 볕을 보지 못한 살갗은 밀랍처럼 창백했다.어의의 약기운에 취해 초점 없이 허공을 부유하는 두 눈동자만이, 그가 아직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알릴 뿐이었다.천하를
그 밤으로부터 어느덧 5년의 세월이 흘렀다."살, 살려주시옵소서, 태후 마마! 신이 바친 은자(銀子)가 수만 냥이온데, 어찌 이리 가혹하게……!"정전의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엎드린 탁지부 대신이 발악했다. 그러나 발(簾) 뒤에 앉은 여인의 눈동자에는 일말의 동요조차 없었다.그녀의 머리 위로 똬리를 튼 거대한 가채는 옥좌의 무게만큼이나 무겁고 위압적이었으며, 금실로 아홉 마리의 봉황을 수놓은 칠흑 같은 흑의(黑衣)는 궐 안의 모든 빛을 집어삼킬 듯 서늘했다.목숨을 부지하려 진흙탕에 납작 엎드렸던 노비의 비루함도, 궐 안에서 살
“새 이불과 옷을 챙겨왔습니다.”커다란 보따리에 가려 모습은 보이지도 않았지만, 얼어붙은 치맛자락이 미옥음을 알려주었다. 연호는 침상에 비스듬히 기대어 안개 같은 연기 너머로 걸어오는 그녀를 응시했다.“옷을 새로 짓기라고 한 것이냐? 머리만 나쁜 줄 알았더니, 손발까지 이리 더뎌서야.”그의 목소리는 갈라진 비단처럼 거칠고 낮았다. 하륜의 집 근처에서 습격을 당하고, 하필 이곳에 머물게 된 이 모든 상황이 누군가의 정교한 설계 같아 심사가 뒤틀렸기 때문이다.‘누군가가 있다면 하륜과 황후겠지. 그리고 그들이 보낸 이 계집 또한
“모실 아이를 보내었는데, 어찌 저를 찾으십니까.”문을 열고 들어선 하륜의 목소리에는 미세한 조소가 섞여 있었다.“네 놈의 집에서 네 놈을 찾는 게 그리 이상한 일인가.”“쓸모가... 없으셨습니까.”낮게 깔리는 하륜의 음성에는 묘한 박동이 섞여 있었다. 연호는 입술 끝을 비스듬히 올리며 답했다.“쓸모라…, 누구든 와서 대체 할 수 있는 거라면 없다고 봐야겠지.”하륜이 다가와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극진한 태도였으나, 연호를 바라보는 눈빛만은 사냥감을 살피는 맹수처럼 예리했다.“두통은 좀 어떠십니까. 안색이 눈에 띄게 좋
취명향 덕에 어깨의 고통은 둔감해졌지만, 이따금 머리를 찌르는 통증에 절로 눈살이 찡그려졌다. 다시 하륜을 부르려는 찰나, 문이 벌컥 열리며 미옥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이것 좀 보세요!”미옥은 품 안에 가득 찬 이름 모를 풀들을 한 움큼 들고 다가와 연호의 앞에 툭 내려놓았다.“……이게 뭐지?”연호의 미간이 깊게 패였다. 길쭉한 이파리에서는 모과처럼 상큼하면서도 박하처럼 매운 향이 훅 끼쳤다. 피와 취명향에 절여진 방 안의 공기를 뚫고 들어오는 생경한 냄새였다.“이름은 모릅니다. 하지만 천자님의 두통을 낫게 해줄 겁니다
'주인님을 놈이라고 부르다니 필시 높으신 분이구나.'미옥은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남자가 어느 정도의 신분일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시, 신선님입니까?”잔뜩 겁에 질린 목소리에 남자가 낮은 웃음을 터트렸다. 땀에 젖어 이마에 달라붙은 흑발 사이로, 갈증에 젖은 눈동자가 번뜩였다.“신선이라…… 하긴, 이 향에 취하면 이곳이 극락인지 지옥인지 분간이 안 가긴 하지. 가까이 와서 확인해 보거라. 내가 신선인지, 아니면 너를 잡아먹을 괴물인지.”미옥은 침을 꿀꺽 삼키고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었다. 발이 어찌나 무겁게 느껴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