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수 씨, 지금 웨딩드레스 고르는 건 너무 이른 거 아니야? 우리 아직 약혼도 안 했는데.”“이르긴. 약혼하고 나면 결혼은 시간문제인데.”그녀의 말에 그가 다정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두 사람 사이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지켜보고 있던 매니저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소월 씨의 걱정도 이해가 되긴 하네요. 소월 씨는 아직 나이가 어려서 몸이 자라고 있을 시기라 지금 웨딩드레스를 맞추면 나중에 몸에 맞지 않을 수도 있고 드레스 착용 효과에도 영향을 줄 수 있어요. 결혼식 날짜가 잡히면 그때 웨딩드레스를 맞추는 게 어떠할까요?”강영수는 그녀의 손을 잡은 채 그녀의 손등을 쓰다듬으며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그래 그럼. 오늘 아버님께서 오셔서 결혼 날짜 정해지면 그때 다시 고르는 걸로 하자.”“응.”장소월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남천그룹, 기성은이 문을 두드리고 대표 사무실로 들어왔다.“대표님, 공사 비용에 관한 서류들 대표님께서 사인해 주셔야 합니다.”전연우는 서류들을 살펴보고는 서류에 서명했다. “오늘 장 회장님께서 돌아오는 날입니다. 남원별장 쪽은 대표님께서 분부하신 대로 준비해 두었습니다. 회장님의 식사와 일상을 책임질 가사도우미도 8명 추가했고요. 그중 영양사 한 분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건 도우미분들 자료입니다.”전연우는 고개조차 들지 않고 말했다.“이런 건 안 보여줘도 돼. 다음 일정 보고해 줘.”“네, 대표님. 두 시간 뒤 회의 일정이 잡혀있습니다. 남해 토지 개발 프로젝트에 관한 회의입니다. 저녁 6시쯤에는 합작 개발업체와의 연회가 있을 예정이고 은성그룹의 대표도 참석한다고 합니다.”“한진그룹에 또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한진그룹 최대 주주인 황준엽이 사망했고 장례식은 어제 마쳤다고 합니다. 그의 회사 지분은 이미 대표님의 다른 신분으로 넘어온 상태입니다.”“현재 한진그룹은 그룹을 이끌어갈 사람이 없고 지분에 따르면 한진그룹은 황준엽의 여동생 황유나가 맡게 될 것입니다. 조사한 바로 황유나는 호주에서 MBA 과정
“네, 대표님.”그 여인은 성큼성큼 앞으로 다가와 기세등등하게 힘껏 책상을 두드렸다.“이름은 전연우, 나이는 스물여섯, 장씨 가문에서 입양한 아들. 99년도에 음악학원의 퀸카를 스폰했고 작년 스키장에서 그 여인은 의문의 사고로 죽게 되었죠. 죽기 전에 당신과 말다툼이 있었고요. 두 달 전, 당신은 남해의 개발권을 우리 오빠에게 넘겨주었고 한진그룹과 남해 공동 개발 프로젝트의 계약을 체결하였어요. 계약을 체결한 지 3개월도 되지 않아 오빠는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고 당신이 면회하러 가기 하루 전날, 우리 오빠는 감옥에서 의문의 죽임을 당하게 되었어요.”기성은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황유나 씨, 말조심하세요. 여긴 회사입니다. 이리 계속 소란을 피운다면 경찰에 신고할 겁니다.”그의 말에 황유나는 웃으며 대답했다.“그래요. 경찰에 신고해요. 마침 잘됐어요. 경찰이 오면 우리 오빠 사건 제대로 조사해 보라고 할 거예요. 멀쩡하던 사람이 감옥에는 왜 갇히게 되었고 왜 감옥에서 갑자기 죽었을까요?”이때, 전연우가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으며 기성은을 향해 말했다.“일단 나가 있어.”“네, 대표님.”기성은은 사무실을 나오면서 문을 닫았다. 잠시 후, 전연우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입을 열었다.“조사 제대로 했군요. 계속 말해봐요.”이내 책상 위에 놓인 서류를 발견한 황유나가 언성을 높였다.“감히 날 조사한 거예요?”“싸움에서 이기려면 상대를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그는 호주머니에서 담배 한 갑을 꺼내 담배 하나를 입에 물었다.“황유나 씨는 나한테 이런 걸 물으려고 온 건가요?”“그러니까 지금 인정한 거예요? 우리 오빠의 죽음이 당신과 관련 있다고?”황유나는 앞으로 다가와 그를 향해 따져 물었다. 선글라스 아래 그녀의 눈빛은 날카로운 검 같았고 그녀가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그의 뒷모습을 훑어보았다. 아까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처음 이 남자를 봤을 때부터 이 남자는 위험할 뿐만 아니라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생각
이 남자에게 첫눈에 성형한 얼굴이라는 걸 들킬 줄은 몰랐고 뜻밖에도 사진 속의 여인과 비슷하게 생길 줄은 더더욱 몰랐다. 다만 눈 수술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눈이 약간 부어있는 상태라서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쉽게 알아차릴 수 없었다.황유나는 시선을 피하며 팔짱을 낀 채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당신이랑 무슨 상관이에요? 도대체 나에 대해 얼마나 조사한 거예요?”그녀는 책상 위에 놓여있는 사진이 들어있는 서류봉투를 보며 물었다. 전연우가 말을 꺼내도 전에 그녀는 서류봉투를 뜯어 그 안에 있는 사진들을 꺼냈다. 사진을 본 그녀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진 속 그녀의 모습은 성형하기 전의 모습이었고 초등학교부터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의 모습이 다 담겨 있었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손을 떨었다.“이 사진들... 어떻게 구한 거예요?”‘이 사람이 어떻게 내 예전 사진들을 구한 거야?’“내가 말했죠. 황유나 씨가 나에 대해 조사하면 나도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당연히 당신에 대해 알아두어야 하지 않겠어요? 게다가... 황유나 씨는 외국에서 학위까지 받은 재원인데. 이런 것들을 조사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어요.”전연우는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쳐다보더니 손목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언제까지 여기 있을 거예요? 난 시간이 귀중한 사람이에요. 당신과 여기서 낭비할 시간 없어요.”그 말에 황유나가 책상을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진실을 말해줘요. 오빠는 내가 잘 알아요. 착한 사람은 아니지만 절대 아무 이유도 없이 다른 사람을 해치는 사람은 아니에요. 멀쩡하던 사람이 왜 감옥으로 끌려가게 된 건지? 이 모든 게... 당신이 한 짓 아닌가요?”전연우의 인내심은 점점 바닥을 보이게 되었다. “2분 줄 테니까 혼자 여기서 나가든지 아니면 내가 끌어낼 거예요.”“황유나 씨, 귀국하자마자 이리 다짜고짜 날 찾아와 죄를 묻는 건 아니죠. 일을 크게 만드는 건 당신한테도 아무런 이득이 없을 거예요. 황유나 씨... 생각 잘 해봐요.”바로 이때, 그의
두 사람은 사무실을 나와 회의실로 향했다. 저녁 6시 반쯤, 장소월은 특별히 차려입지 않고 강영수와 같은 스타일의 커플 옷을 입었다. 이 옷 또한 강영수가 직접 고른 옷이었다. 잠시 후, 장해진과 강만옥이 들어왔고 강만옥은 장소월의 손을 붙잡고 거실로 와서 다정하게 입을 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써 약혼까지 하게 될 줄이야. 아줌마가 너한테 줄 건 없고. 널 위해 특별히 산 거니까 이 옥팔찌를 받거라.”“아줌마, 고마워요.”장소월은 거절하지 않았다. 강만옥과 사이좋게 지내는 건 여전히 익숙지 않았다. 핏빛 옥팔찌는 반짝반짝 빛났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액체가 흐르고 있는 것이 딱 봐도 비싸 보였다. 아마도 아버지가 산 것 같다. 지금 강만옥은 장씨 가문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이고 게다가 아들을 임신하고 있어 장해진은 강만옥의 말이라면 뭐든 다 들어주었고 돈을 쓰는 데 대해서도 제한하지 않았다. 몸매가 잘 드러나는 짙은 녹색의 치파오를 입고 있는 강만옥은 우아해 보였고 볼록한 아랫배가 눈에 띄게 드러났다. 장해진과 강영수는 서재로 들어가 한참 동안 얘기를 나누었고 식사 준비가 다 되어서야 서재에서 나왔다. 장해진의 시원시원한 웃음소리가 위층에서 들려왔다.“하하하, 소월이를 자네한테 맡기면 당연히 안심이 되지. 어릴 때부터 내가 너무 오냐오냐하게 키워서 성격이 온순하지는 않을 거야. 그래도 자네가 너그럽게 봐주게나.”“걱정하지 마십시오. 장인어른.” 소파에 앉아있던 장소월이 일어나서 강영수에게로 다가갔다.“얘기 다 했어?”“응.”강영수는 그녀의 손을 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얘기 했어?”“저녁에 알려줄게.”그가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강만옥이 장난스럽게 입을 열었다.“어머, 귓속말까지 다 하고? 우리가 들으면 안 되는 얘기라도 있는 거야?”그 말에 장소월은 이내 귀가 빨갛게 달아올랐다.“아무 얘기 안 했어요. 아버지, 아줌마. 일단 식사부터 해요.”“네, 일단 식사부터 하시죠.” “오
백윤서가 전연우의 팔짱을 낀 채 걸어들어왔다.“죄송합니다. 차가 막혀서 조금 늦었습니다.”백윤서는 고개를 숙인 채 조심스럽게 전연우를 따라 들어왔고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함부로 둘러보지도 않고 어색한 모습을 보이며 전연우를 따라 옆에 긴 테이블에 착석했다. 맨 마지막에 온 박순옥은 장해진과 함께 가운데로 앉았다. 장해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맞이했다.“어르신, 오랜만입니다. 몸은 어떠하십니까?”박순옥은 강씨 가문의 손주며느리가 될 장소월의 체면을 봐서 장해진의 말에 대답했다.“나쁘진 않네. 아직은 죽을 때가 아닌가 보지. 다들 오래 기다린 것 같은데 식사부터 하자고.”박순옥은 젓가락을 들고는 옆에 있던 장소월에게 수육을 집어주었다. “요즘 살이 빠진 것 같아. 네가 좋아하는 음식들로 준비했으니 많이 먹거라.”“감사해요, 할머니.” “천운사의 주지 스님한테 너와 영수의 약혼식 날짜를 받아왔어. 시험이 끝나고 3일째 되는 날이 좋은 날이라고 하니 약혼날짜를 그날로 정하는 게 좋겠다. 넌 어떠하냐?”가슴이 떨려온 장소월은 왼손으로 치맛자락을 꽉 잡았다. 굳이 확인해 보지 않아도 지금 이 순간, 모든 사람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향하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네, 할머니 뜻에 따를게요.”강영수는 장소월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며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저랑 소월이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할머니께서 그리 결정하셨으니 할머니 뜻에 따를게요.”“장인어른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그 자리에서 가장 기쁜 사람은 바로 장해진이었다. 강영수의 물음에 그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소월이가 장씨 가문의 큰 사랑을 받으며 시집을 가는 건 소월이의 복이네. 난 당연히 동의하지.”한편, 옆에 있던 박순옥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넌 우리 집안의 며느리야. 가문의 법도에 따라 난 청담 빌리지에 있는 별장을 약혼선물로 소월이 너한테 줄 생각이다. 영수 네 생각은 어떠하냐?”“그렇게 하세요.”그 말을 들은 장소월
사람들은 각자 다른 꿍꿍이를 가지고 저녁 식사를 했다. 박순옥은 몇 숟가락 들고는 먼저 자리를 떴다.한편, 장해진과 강영수 두 사람은 술을 꽤 많이 마셨다. 장소월은 승낙했을 때부터 가슴이 막힌 것처럼 답답하고 어쩐지 생각만큼 즐겁지도 않았다. 이유는 그녀도 알 수가 없었다. 어쩌면... 모든 것이 너무 급히 이루어진 것 같다...잠시 후, 백윤서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오빠, 나 다 먹었어요.”전연우는 그녀의 그릇을 가져와 국 한 그릇을 담아주었다.“국 조금만 더 먹어. 이따가 배고플 거야.”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장소월은 두 사람과 멀지 않은 곳에 앉아있었고 얼마 후, 그녀 앞에 누군가 국 한 그릇을 가져다주며 입을 열었다.“국 괜찮아. 한번 먹어봐.”고개를 들어보니 그 사람은 전연우였고 그를 보니 마음이 설렜다.“고마워... 오빠.”“응.”그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고 차가운 그의 눈빛을 마주치게 된 장소월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기분이 좋아진 강영수는 장소월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이건 단맛이어서 소월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모르고 있는 것 같군.”그 말 한마디에 식탁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영수야, 많이 취했어. 방으로 들어가자. 응?”전연우는 성격이 어둡고 소심하고 마음에 원한을 잘 담아두는 사람이었다. 특히 뒤에서 사악한 수법을 잘 쓰는 사람이었다. 전생에서 전연우는 강씨 가문을 무너뜨리고 강한그룹을 장악했다. 비록 그가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는 모르겠지만 장소월은 이번 생에도 같은 비극이 일어나는 건 두고 볼 수가 없었다.그리고 지난번 하마터면 교통사고가 났을 뻔한 그 큰 트럭도 분명 전연우가 직접 계획한 짓일 것이다. 지금은 전연우가 강씨 가문을 대적할 수 없고 강씨 가문의 권위가 높다 하지만 사실 그가 마음만 먹으면 한 사람을 무너뜨리는 건 그에게 쉬운 일이었다.전연우는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그래? 소월이가 집에 온 지 오래돼서 오빠가... 다 잊어버렸
“남천그룹을 인수한다고?”장해진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전연우를 쳐다보았다.그는 옅은 미소를 지은 채 차가운 눈빛을 보이며 담담하게 말했다.“결국 나도 남천그룹에서 일하는 직원일 뿐이에요. 이 일에 관해서는 저희 아버지와 얘기를 나누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난 이 일에 대해 결정할 권리가 없거든요.”“장소월...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장해진은 미간을 찌푸린 채 불쾌한 표정을 지었고 그녀는 몹시 당황스러웠다.“아버지, 이 일은 나도 잘 몰라요. 이 사람이 술에 취해서 괜한 소리를 한 것 같아요.”그녀는 강영수의 손을 잡으며 고개를 저었다.“영수야, 회사는 오빠가 알아서 잘 경영할 거야. 그 얘기는 그만 해. 방으로 들어가서 쉬자.”“그래, 알았어.”강영수는 마지막 잔에 담긴 와인을 마시고는 옆에서 굳은 표정을 짓고 있는 장해진은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이 일은 장인어른과 전연우 씨가 상의해 보고 언제든지 강한그룹으로 날 찾아와요. 난 남천그룹이 강한그룹 제2의 계열사가 되는 걸 기쁘게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에요.”장소월은 술에 취한 강영수를 방으로 데리고 왔다. 평소에 술 접대 자리에 거의 나가지 않는 사람이라 그는 술이 많이 약한 편이었다. 그녀는 그를 침대에 눕혔고 그는 침대에 뻗은 채로 손을 눈에 얹고 있었다. 그에게 이불을 덮어준 뒤 그녀가 입을 열었다.“해장국 끓여다 줄게. 힘들어도 잠깐만 참아.”자리를 뜨려고 할 때 강영수가 갑자기 그녀의 팔목을 잡았다.“왜 그래?”“방금 내가 한 말 때문에 화났어? 내가 남천그룹에서 전연우 씨의 직권을 빼앗는 게 싫어?”그가 이런 말을 할 줄을 몰랐던 장소월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침대 옆에 앉아 그의 손을 이불 속에 넣어주며 대답했다.“아니. 네가 쓸데없는 생각을 한 거야.”“거짓말.”강영수는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매번 대답하고 싶지 않은 거에 대해 말하거나 나한테 거짓말 할 때면 넌 항상 내 눈을 쳐다보지 않았어.”그에게
웃는 얼굴 뒤에 가려진 그의 잔인함. 그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장소월은 그가 지금 화가 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만약 그의 손에 넘어가면 그녀는 아마도... 뼈도 못 추릴 것이다.전연우는 처음부터 그녀가 강영수한테 접근하는 걸 원하지 않았다. 그는 강씨 가문의 권력을 꺼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씨 가문을 원했던 그는 언제든지 빼앗아 갈 수 있었다.장소월은 그저 평생을 편안히 사는 게 목표였다. 그녀는 그의 삶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 이번에는... 백윤서든 송시아든 그녀는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그를 쳐다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알았어.”잠시 후, 오부연은 기사들을 한 명씩 안배하여 그들을 남원별장으로 돌려보냈다.장소월은 그들을 본가 문 앞까지 배웅했다. 떠나기 전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않았다면 강영수가 자신 몰래 이렇게 많은 선물을 준비한 것을 몰랐을 것이다. 귀중한 액세서리, 티 그리고 영양품들까지 차 한 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올 때는 차가 두 대였는데 떠날 때는 차가 세 대가 되었다. 강영수가 그들을 매우 중시하고 있단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강영수를 사랑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그녀에게 또 다른 선택은 없었다.그가 자신을 존중해 주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이미 충분하다고 생각했다.강영수는 좋은 사람이었고 동반자로서도 적합한 사람이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고 자신이 걱정하고 있던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번 생은 오직 평안하게 보낼 길 바라고 있다. 장소월은 해장국을 들고 방으로 들어와 강영수에게 먹여주고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떠나기 전, 전연우가 그녀에게 메일을 보내왔는데 그녀는 읽어보지도 않고 그냥 삭제해 버렸다. 가든 아파트, 전연우가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고 있었고 백윤서가 그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오빠, 천천히 가요.”집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백윤서가 그의 앞길을 막아섰다.“오빠, 오는 내내 나
배가 고픈 데다 아기들이 발길질까지 하니 더욱 아팠다. “아가들아, 제발 차지 마. 규영 언니랑 미진 언니가 곧 맛있는 거 가져다줄 거야.” 그녀가 배를 쓰다듬으며 아이들을 달랬다. 규영과 미진은 그녀의 애처로운 눈빛을 견뎌낼 수가 없었다. 게다가 뱃속 두 녀석들이 워낙 시끄럽게 움직이고 있으니 더는 거절하기가 힘들었다. “알았어요, 아가씨. 간단히 드실 걸 가져다드릴게요. 여기 앉아서 절대 움직이지 마세요.” 그들은 걱정되는 마음에 거듭 당부했다. 소현아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여기 이렇게 많은 언니들이 지켜보고 있잖아요. 아무 일 없을 거예요. 절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을게요.” 규영과 미진은 사람들에게 다시 신신당부한 뒤에야 먹을 것을 가지러 자리를 떴다. 지난번 일 이후로 다른 사람은 믿을 수 없게 되어 소현아의 음식은 반드시 그들이 직접 준비해야 했다.소현아는 혼자 소파에 앉아서 작게 아기들과 이야기했다. “아가들아, 소월 이모가 전연우 그 나쁜 놈한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니면 내 전화를 왜 안 받은 거지?” “나 소월이가 너무 걱정돼. 근데 너희가 너무 무거워서 몰래 도망갈 수도 없어.” 그녀에게 돌아오는 답은 점점 잦아드는 태동뿐이었다. 소현아는 아기들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에 못마땅한 듯 입을 삐죽거렸다. 누군가 문을 열었는지 차가운 바람이 스며들었다. 얇은 연노랑 잠옷만 입고 있던 소현아는 추위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곧이어 도우미들의 공손한 인사 소리가 들렸다. “효연 아가씨.” 천효연은 거만한 눈빛으로 그들을 훑어 보고는 곧장 위층으로 향했다. “여기 뒀던 내 꽃병은 어디 갔어?” 계단 모퉁이에 있던 꽃병이 사라진 걸 발견한 천효연이 불쾌한 얼굴로 물었다. 도우미가 조심스럽게 설명했다. “현아 아가씨가 다치실까 봐 잠시 장식품들을 다 치웠습니다.” 소현아? 그 이름을 들은 순간 천효연의 눈동자에 냉기가 스쳤다. “그 바보는 지훈 씨가 방에 가둬놨잖아?” 도우미
엄마와 통화를 마친 뒤, 소현아는 장소월의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전연우 그 나쁜 놈이 소월이를 괴롭히지는 않았을까. 그리고... 혹시 소월이는 강용 소식을 알지 않을까... 소현아는 강지훈이 강용의 행방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장소월의 당부를 기억하며 감히 묻지 못했다. 통화음이 두 번 울린 뒤 전화가 연결되었다. 상대가 말하기도 전에 소현아는 흥분해서 조잘거리기 시작했다. “소월아! 드디어 전화 받았네! 있잖아, 강지훈 그 나쁜 놈이 나 계속 방에 가둬놓고 문밖으로 못 나오게 했어. 나 진짜 답답해 미치겠어!” “널 여기 데려와 같이 놀려고 했는데, 강지훈의 말이 전연우 그 나쁜 놈이 너 안 보낸다고 하더라고. 둘 다 진짜 짜증 나! 내가 간신히 휴대폰 구해서 전화한 거야. 소월아, 그 나쁜 놈한테 말하고 이쪽으로 놀러 와줄 수 있어?” 한참을 떠들었을 때, 저쪽에서 낮고 위험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강지훈이 내가 소월이를 나가지 못하게 했다고 말했다고? 언제 나한테 물어봤는데?” 소현아는 깜짝 놀라 입을 다물었다. 몇 초 뒤에야 머뭇거리며 다시 말을 꺼냈다. “전... 전연우 씨? 왜 당신이 전화를 받아요?” 전연우가 차갑게 웃음을 터뜨렸다. “나쁜 놈이 전화를 받아서 많이 실망했나?” 소현아는 겁을 먹고 눈알만 뒤룩뒤룩 굴렸다. “저 그런 말 한 적 없어요. 잘못 들었어요! 소월이는요? 이거 소월이 폰이잖아요. 빨리 소월이한테 돌려줘요!” 전연우가 말했다. “소월이는 전화 안 받아. 다시 전화하지 마.” “소월이한테 나라고 말해줘요. 소월이가 제 전화 안 받을 리 없어요.”소현아는 다급함을 감추지 못했다. “앞으로 다시는 소월이 찾지 마. 바빠서 너랑 소꿉놀이할 시간 없으니까.” “그리고 강지훈한테 전해. 내게 터무니없는 누명 씌우지 말라고.” 전연우는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소현아가 다시 걸어봤지만, 상대는 받지 않았다. “현아 아가씨, 이제 일어나서 운동할 시간이에요.” 규영과 미
소현아는 얼굴에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이빨 자국을 달고서 원망 어린 눈빛으로 강지훈을 바라보았다. 강지훈은 기분이 좋아졌는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 말을 들은 순간 소현아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내가 소월이한테 전화해도 돼요?” “그쪽에서 받기만 한다면야.” 소현아는 이제 아침에 있었던 불쾌한 일을 까맣게 잊은 듯했다. “저 밖에 나가서 놀고 싶어요!” 강지훈은 단칼에 거절했다. “안 돼.” 신이 나 붕방거리던 소현아는 김빠진 공처럼 순식간에 축 처져버렸다. “하지만 방에만 계속 있는 건 너무 따분하단 말이에요.” “절대 도망 안 갈게요. 여기 아기들도 있잖아요. 그냥 아래층에서 좀 돌아다니게만 해줘요, 네?” 그녀가 지금 머무는 방은 집에 있던 침실을 완벽하게 똑같이 복원한 곳이었다. 소현아는 이곳을 무척이나 좋아했었다.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최근 며칠 동안 줄곧 악몽에 시달렸다. 꿈속에서 그녀는 방안을 끝없이 걷고 또 걸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방은 갑자기 창고로 변해버렸고, 아무리 깨려고 해도 도저히 깨어날 수가 없었다. 강지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소현아는 못마땅한 얼굴로 밥을 한입 삼키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전연우 그 나쁜 놈도 소월이가 마당에서 그림 그리는 건 허락하던데... 강지훈 씨는 날 침실 밖에도 나가지 못하게 하네. 전연우보다도 더 나빠.” “...” “아래층에서만 놀아. 방을 나서면 규영과 미진이 따라갈 거야.”결국 강지훈이 한발 물러섰다. 소현아의 눈에 다시 별빛이 들어왔다. “음, 당신은 전연우 그 나쁜 놈보다 조금 나아요. 정말 아주 조금.” 아침을 먹고 난 뒤 소현아는 바로 휴대폰을 요구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는 거의 즉시 연결되었다. “현아니? 지금 어디 있는 거야?” 명세진의 목소리는 흥분을 애써 억누르고 있는 듯 조심스러웠다.오랜만에 엄마 목소리를 들으니 소현아는 코끝이 시큰해졌다. “엄마,
강지훈은 한밤중이 되어서야 짙은 피비린내를 풍기며 돌아왔다.옆방에서 샤워를 마친 강지훈은 잠옷을 입고 소현아의 방으로 들어갔다.소현아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 2.2미터나 되는 퀸사이즈 침대에서 편안하게 팔다리를 쭉 뻗은 채 말이다. 무슨 꿈을 꾸는지 웅얼거리며 입가에 흘린 침을 닦고 있었다.곤히 잠든 그녀의 모습을 본 순간, 강지훈은 장난기가 발동했다. 침대 곁으로 다가간 그는 이불을 끌어다 그녀의 배를 덮어주고는 코를 꼬집었다.“윽...”잠시 후 소현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불편한 듯 눈을 떴다.“강지훈 씨 너무 싫어요. 숨을 쉴 수가 없잖아요. 빨리 놔줘요.”침대 곁에 있는 사람을 본 소현아는 두 손으로 그의 손목을 잡고 떼어내려 했다.강지훈이 말했다. “말해 봐. 세상에서 누가 제일 좋아? 제대로 말하면 놔줄게.”소현아는 씩씩거리며 눈을 감고 어쩔 수 없이 입으로 숨을 쉬었다. 가슴이 뻐끔뻐끔 부풀어 오르는 모습이 마치 복어 같았다.강지훈은 몸을 기울여 그녀의 입까지 막아버렸다.몇 초 지나지 않아 소현아는 다시 웅얼거리며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강지훈은 그저 잠시 그녀에게 장난을 치고 싶었을 뿐이지만, 한번 맛을 보니 멈출 수가 없었다.그는 손을 떼어 그녀의 허리에 얹고 반바지를 벗기려 했다.소현아는 필사적으로 바지를 붙잡고 엉덩이를 비틀며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했다.강지훈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손 놔. 살살할게.”“저 졸려요. 자고 싶으니까 강지훈 씨도 빨리 자요.”그녀는 강지훈이 또 키스하려 할까 봐 입술을 굳게 다물고 낑낑거리며 그를 밀치고는 죽은 척 눈을 감았다.강지훈이 어떻게 하든 소현아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고, 나중에는 정말로 다시 잠이 들어버렸다.곤히 잠든 그녀를 바라보는 강지훈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다음 날 아침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강지훈의 몸에 꼭 안겨있었다. 그녀의 코끝에 그의 단단한 가슴이 닿아 숨을 쉬기조차 힘들었다.어젯밤 일이 떠오른 소현아는 그의 가슴을 힘껏 깨물었다.곧이어
분개하고 있던 천효연의 시야에 문득 옆 방문 앞에 놓인 목욕 가운이 들어왔다.목욕 가운 허리띠에는 검은색 은은한 무늬가 수 놓여 있었는데 누가 봐도 강지훈의 것이었다!강지훈이 그녀를 침대에 버려두고 저 바보 같은 여자를 찾아온 것이다!그 사실을 깨달은 천효연은 그야말로 미칠 지경이었다.강지훈은 바람기가 있긴 했지만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이라고 천효연은 당당히 말할 수 있었다. 하여 그녀는 강지훈이 바깥에서 몇 명의 여자를 만나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저 바보 같은 여자가 나타난 이후로, 강지훈은 그녀를 안고 있으면서도 정신이 딴 데 가 있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그 바보를 위해 그녀에게 손찌검까지 했다!설상가상으로 그 바보는 강지훈의 아이까지 가졌다...천효연은 간신히 벽에 몸을 기댄 채 바닥에 놓인 목욕 가운을 쏘아보았다. 동시에 숨을 죽이고 방 안에서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하지만 한참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도우미가 다가오자 천효연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일어서 요염한 자태로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아.”소현아는 입을 크게 벌리고 미진이 밥을 먹여주기를 기다렸다.그녀도 남의 손을 빌려 밥을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오늘 아침 일어났을 때부터 손목이 끊어질 듯이 아파 어쩔 수가 없었다.아침밥은 강지훈이 직접 먹여주었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생겼는지 규영과 미진에게 밥을 먹여주라고 지시하고 서둘러 떠났다.“아가씨, 오늘은 어디 불편한 곳 없으신가요?”어제 주인님의 모습은 너무나 무서웠다. 그가 아이를 해치지는 않았을까, 규영과 미진은 걱정이 태산이었다.그들의 마음을 알 리 만무한 소현아는 고개를 흔들었다가 다시 끄덕였다.“손목이 너무 아파요. 어떡하죠?”두 사람은 안도하며 미소를 띤 채 그녀를 달랬다. “이따가 저희가 마사지해 드리면 괜찮아지실 거예요.”소현아는 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점심 식사를 마친 후, 규영과 미진은 의사의 말에 따라 소현아를 데리고 방안을 걸어 다녔다.
강지훈의 움직임은 이전 그 어느 때보다 격렬했다.소현아는 배가 짓눌리는 느낌에 불안해졌다. 또한 콧속으로 불쾌한 향수 냄새가 흘러들어왔다.“윽...”너무나 불편하니 그만해달라고 강지훈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가 입을 틀어막고 있어 다급해진 소현아는 그의 입술을 꽉 깨물어 버렸다.순간 입안에 비릿한 피 냄새가 퍼져나갔다.강지훈이 통증에 약간 뒤로 물러섰다.“강지훈 씨 때문에 아기가 눌렸어요. 그리고 당신한테서 이상한 냄새 나요. 토할 것 같아요.”소현아는 찡그린 얼굴로 몸을 일으켜 앉아 퉤퉤 침을 뱉었다.강지훈의 서늘한 표정을 본 소현아는 토끼처럼 재빨리 배를 감싸 안고 구석으로 도망쳤다.험악한 인상에 입가에 피까지 묻히고 음침한 눈빛을 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사납기 그지없었다.소현아는 겁을 먹고 몸을 웅크렸다.“의사 선생님이 아기 다칠 수도 있다고 이러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 다른 사람 찾아가서 같이 자요. 하지만 자고 나서는 깨끗하게 씻고 저 찾아와야 해요. 낯선 냄새가 나면 토할 것 같단 말이에요.”그녀가 코를 찡그리며 말했다.“지금 당신 옷에서 이상한 냄새 나요. 도우미 언니들 몸에서 나는 향수 냄새 같아요. 저도 싫고 아기들도 싫어할 거예요.”강지훈은 그녀의 천진난만한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마음속의 욕망은 가라앉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격렬하게 끓어올랐다.눈앞의 이 토끼 같은 여자를 당장이라도 삼켜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그는 몸에 걸치고 있던 목욕 가운을 벗어 던지고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옷 벗으니까 냄새 안 나지? 이리 와.”소현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안 갈래요. 당신 때문에 아기가 다칠 수도 있으니까 다른 사람 찾아가세요.”강지훈의 눈빛이 험악하게 변했다. “네가 올래, 아니면 내가 갈까?”소현아는 밖으로 도망쳐 나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하지만 문까지 도착하기도 전에 강지훈에게 붙잡혀 다시 끌려가고 말았다.그의 무릎에 앉혀진 소현아가 또 울먹거리기 시작하자 강지훈이 소리쳤다.“울지 마!”강지훈도 어
“지훈 씨, 아랫부분으로 도와줄게요...”그녀의 말은 파편처럼 흩어져버렸다. 강지훈은 끝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천효연은 더 이상 요염한 표정을 유지할 수 없었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손가락으로 강지훈의 다리를 꽉 움켜쥐어 길게 할퀸 자국까지 남겼다.죽을 것 같이 괴로워하는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보면서도 강지훈의 마음속엔 조금의 파동도 일지 않았다.여전히 어딘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그는 짜증 섞인 얼굴로 천효연의 입에서 물건을 빼내고 그녀를 잡아 벽에 밀어붙인 다음 다시 아래로 밀어 넣었다.질식하기 직전, 천효연은 삽입을 알아차리고 재빨리 허리를 비틀며 그에게 맞춰 움직였다.“지훈 씨, 정말 대단하네요...”강지훈의 붉게 충혈된 두 눈엔 살기가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손에 잡히는 대로 천 조각을 그녀의 입에 쑤셔 넣었다.천효연의 목소리는 입안에 갇혀버렸다. 쾌감에 찡그려졌던 미간이 더욱 깊게 찌푸려졌다.왜 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는 걸까? 예전에는 분명 신음소리를 내는 걸 좋아했었는데...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천효연은 기진맥진하여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제서야 강지훈은 그녀의 몸에서 빠져나왔다. 하지만 흥분은 아직도 가라앉지 않았다.그는 침대에 널브러진 여자를 힐끗 보고는 미간을 찌푸린 채 일어나 욕실에서 간단히 씻은 뒤, 침대 머리맡에 놓인 새 잠옷을 아무렇게나 집어 들고 소현아의 방으로 향했다.소현아는 간신히 울음을 그치고 규영과 미진의 보살핌을 받으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강지훈이 옆에서 방해하지 않으니 밥상에 차려진 맛있는 음식을 와구와구 먹고 있었다.규영과 미진의 얼굴엔 걱정이 가득했다.“아가씨, 오늘 너무 많이 드셨어요. 의사 선생님께서 조금만 드시라고 하셨잖아요...”소현아는 퉁퉁 부은 눈으로 그들을 가련하게 바라봤다.“이번 한 번만 먹을게요. 강지훈 씨가 먹으라고 했어요. 못 믿겠으면 직접 물어보세요.”확실히 강지훈이 시킨 것이다. 하여 더 이상 말을 하진 않았지만, 걱정스러움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그때 강지훈
소현아의 울음은 좀처럼 멈출 줄을 몰랐다. 강지훈은 잠시 달래주다가 금세 인내심이 바닥났다.그는 탈옥수를 쫓느라 며칠 동안 뜬눈으로 지새웠음에도 부랴부랴 먼 길을 달려 집에 돌아왔다. 한시라도 빨리 이 여자를 품에 안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녀가 이토록 난동을 부릴 줄이야.“아직도 다 못 울었어?”강지훈은 그녀를 품에 가두고 한 손으로 턱을 쥐어 억지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소현아의 속눈썹은 눈물에 젖어 엉겨 붙어 있었다. 너무 심하게 울어서인지 딸꾹질이 멈추지 않아 괴로워진 그녀는 힘껏 입술을 깨물었다.딸꾹질을 멈추려는 그녀의 생각을 알아챈 강지훈은 손가락을 움직여 그녀의 입술을 벌리고 안에 집어넣었다.조금씩 훌쩍거리던 소현아가 또다시 울음을 터뜨렸다.“당신 싫어요. 당신은 전연우랑 똑같이 나쁜 놈이에요! 소월이한테 갈 거예요. 소월이는 나 굶기지 않을 거라고요...”“흐엉, 소월이가 해주는 밥 먹고 싶어요. 소월이가 만든 밥이 제일 맛있는데...”한참을 울고 나서도 머릿속엔 여전히 먹을 것뿐이다.강지훈은 욱신거리는 관자놀이를 문지르고는 한 손으로 그녀를 안고, 다른 한 손으로 전화를 걸었다.“요리사한테 다시 음식을 만들어 가져오라고 해!”잠시 후 따뜻한 음식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향긋한 냄새를 맡자 소현아의 울음소리가 서서히 멈추었다. 그녀는 강지훈의 몸에서 내려와 식탁에 앉아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분명 아까 일이 기분을 상하게 한 듯했다.“주인님, 아가씨께선 임신 중이십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임산부는 정서가 불안정하기에 기분을 잘 살펴줘야 한다고 하셨어요.”규영과 미진은 소현아의 붉어진 눈과 코를 보고 용기를 내어 조심스럽게 강지훈에게 말했다.강지훈은 섬뜩한 눈빛으로 그들을 쏘아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복도에서 여자 도우미가 새 목욕 가운을 들고 안방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한 아름다운 여인이 그녀 앞에 나타나 손에 들린 옷을 빼앗았다.“줘. 내가 가져다줄게.”도우미는 당황스
소현아는 접시를 끌어안고 좀처럼 내려놓지 않았다.“오늘 모처럼 입맛이 돈다고요. 규영 씨, 미진 씨, 저 조금만 더 먹으면 안 될까요? 아주 조금만 먹고 강지훈 씨에게는 말 안 할게요.”규영과 미진의 얼굴에는 난감한 기색이 가득했다.그들 역시 소현아를 좋아하는지라 마음껏 먹게 해주고 싶었지만, 그녀가 힘들어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그녀 때문에 주인님에게 혼나는 건 더더욱 싫었다.“아가씨, 배고프시면 제가 과일 좀 가져다드릴까요? 과일은 아기에게 좋을 거예요.”규영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와 협상했다.소현아는 고기가 가득 담긴 접시를 눈앞에 두고도 먹을 수 없다는 생각에 눈물까지 왈칵 차올랐다.하지만 배에서 또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하자 더는 고집을 부리지 못하고 결국 접시를 내려놓았다.“알겠어요. 그럼 과일 많이 먹을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저녁에 배가 고파서 잠이 안 오거든요.”규영과 미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식기를 치우고 과일을 잘라 가져다주었다. 그러고는 맛있게 먹고 있는 소현아의 모습을 지켜보았다.사실 소현아는 살이 잘 찌는 체질은 아니었다. 많이 먹어도 과도하게 뚱뚱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동글동글 귀여운 편이었다. 식사량을 줄이자 며칠 만에 눈에 띄게 체중이 줄어들기 시작했다.밖에서 돌아온 강지훈은 한눈에 그녀의 얼굴이 핼쑥해졌음을 알아챘다. 살이 빠져 더 커진 눈은 전보다 더욱 청순하고 순진무구해 보였다.“그동안 제대로 못 먹었어?”그가 손을 뻗어 뺨을 꼬집었다. 감촉도 예전만큼 부드럽지 않았고 손에 잡히는 살도 별로 없었다.소현아의 얼굴이 그의 손에 일그러졌다. 그녀는 배고픔에 가련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강지훈 씨, 저 배가 너무 고파요. 아기 낳는 거 너무 힘들어요. 그만두면 안 될까요? 아기 그냥 다시 돌아가게 해줘요!”강지훈은 어이없음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돌아가? 어디로 돌아가?”소현아는 눈알만 이리저리 굴릴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녀 역시 아기가 어디로 돌아갈 수 있는지 알 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