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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Author: 유월냥이
서진우의 마지막 얼굴을 하얀 천으로 가려주고 나서야, 서이나는 비로소 발끝의 감각을 찾았다. 신발도 신지 못한 채 엉망으로 짓이겨진 두 발은 이미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차가운 바닥에 주저앉아 휴지로 거칠게 발을 닦아냈다. 하지만 엉겨 붙은 핏자국과 흙먼지는 닦아낼수록 사방으로 번지며 더 더러워질 뿐이었다.

그 순간, 팽팽하게 버티던 감정의 끈이 마침내 처참하게 끊어졌다. 가슴팍의 옷자락을 뜯어낼 듯 움켜잡으며 비명을 지르려 목구멍을 열었지만,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저 소리 없는 오열만이 소나기처럼 눈 밑을 타고 끊임없이 흘러내릴 뿐이었다.

얼마나 긴 정적이 흘렀을까. 서이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깨끗이 씻고 단정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연하게 화장을 했다.

서진우의 마지막 길을 가장 아름답고 단정하게 배웅해 주고 싶었으니까.

서이나는 서진우의 사망진단서를 챙겨 화장터로 향했다.

모든 과정 동안 그녀는 단 한 마디도 입을 열지 않았다.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껍데기 같았다.

유골함을 마주했을 때 그녀는 붉어진 눈으로 허탈하게 웃어 보였다.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동생은 이제 더는 고통받지 않아도 되었고, 그녀 역시 이 세상에 아무런 미련이 남지 않았으니 이제 그를 데리고 함께 멀리 떠나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서이나는 결국 양지바른 곳에 좋은 묫자리를 장만해 서진우의 가묘를 만들어 주었다. 하지혁이 의심할까 걱정스럽기도 했고 타지인 해주에서 동생의 영혼이 갈 곳 없이 떠돌까 염려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녀는 서진우의 유골함을 가슴에 꼭 안은 채 묘비 앞에 앉아 하루 낮밤을 꼬박 보냈다.

어린 시절 함께 나눴던 즐거웠던 일들부터 차마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속마음까지, 동생에게 참 많은 이야기를 건넸다.

이윽고 동이 터 올 때쯤 서이나는 유골함을 안고 쓸쓸히 묘원을 걸어 나왔다.

저택으로 돌아와 문을 열려던 순간, 안에서 새어 나오는 노골적이고 끈적한 신음 소리에 그녀의 손끝이 일순 멈칫했다.

몇 초간 망설이던 그녀는 이내 비밀번호를 누르고 안으로 발을 들였다.

문을 열자마자 눈 앞에 펼쳐진 것은 그야말로 난잡한 광경이었다. 사방에 옷가지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고, 갈가리 찢긴 실크 잠옷은 그녀가 그토록 아끼던 크리스마스트리에 걸려 있었으며, 콘돔 빈 곽들은 그녀가 가장 좋아하던 과일 접시 위에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었다.

공기 중에는 끈적하고 야릇한 체취와 독한 향수 냄새가 뒤섞여 진동했다.

하지혁의 무릎 위에는 심효연이 앉아 있었다. 온몸에 남은 붉은 키스 마크를 숨기지도 않은 채, 그녀는 요염한 몸짓으로 그의 목을 감싸 안으며 쉴 새 없이 그의 이름을 불러댔다.

“지혁 씨, 너무 좋아요... 자기 최고야.”

서이나는 시선을 정면에 고정한 채 묵묵히 계단을 올랐다. 이미 죽어버린 가슴엔 일말의 통증조차 일지 않았다.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교성은 한참 동안 그치지 않았다. 하지혁은 흥취가 극에 달한 듯했고, 심효연은 연신 울음을 터뜨리며 애원했다.

시간이 제법 흐른 뒤 마침내 방문이 열리고 하지혁이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의 깊은 눈동자에서 욕정은 이미 말끔히 가라앉아 있었다. 갓 씻고 나온 몸에선 향긋한 바디워시 냄새가 났으나 셔츠 깃 너머로 목덜미에 남은 붉은 흔적은 감추지 못했다.

거실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떠올리자 서이나는 속이 미친 듯이 뒤집혔다. 말할 수 없는 혐오감에 그녀는 급히 입을 틀어막고 고개를 돌려 헛구역질을 했다.

그 모습에 하지혁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내가 역겨워?”

서이나는 대꾸하지 않았지만, 얼굴에 떠오른 표정이 이미 대답을 대신하고 있었다.

하지혁은 그녀의 턱을 거칠게 움켜쥐고 고개를 숙여 입을 맞추려 들었다. 서이나가 몸부림치자 그는 별안간 힘을 더해 그녀를 침대에 완전히 결박했다.

“네 기분이 안 좋은 건 알겠는데, 내 놀이가 끝나면 전부 보상해 줄 테니까 조금만 참아. 이혼 서류는 장난에 불과해. 우린 어차피 다시 합치게 될 테니까. 하지만 네가 자꾸 내 심기를 거스르면 고생하는 건 네 동생이야.”

서이나의 심장이 사정없이 떨려왔다.

‘진우는 이미 죽었는데 설마 그 애의 차가운 유골마저 파헤쳐 짓밟겠다는 소리인가?’

하지만 그가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이제 그녀에게는 그 어떤 약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하지혁, 난 다시 합칠 생각 추호도 없어. 우린 법적으로 갈라섰으니 제발 날 보내줘. 나 진짜 더는 못 견디겠어.”

그녀는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애원하듯 말했다.

하지혁의 매서운 눈빛이 싸늘하게 빛났다. 그는 턱을 쥔 손을 풀고는 자신이 붉게 움켜쥐었던 그녀의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여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날 떠나서 네가 갈 수 있는 곳이 어디 있겠어? 그러니까 착하게 굴어야지. 자꾸 내 화를 돋우지 마. 넌 날 못 떠나고, 나 역시 널 보내주지 않을 거야. 말했잖아, 난 그냥 밖에서 잠깐 한눈파는 것뿐이라고. 결국 난 네 곁으로 돌아올 테니까 이번 생에 넌 영원히 내 여자야.”

그의 집착 어린 병적인 사랑 고백을 들으며, 서이나는 문득 오래전 목격했던 한 장면을 떠올렸다.

과거 하지혁은 자신에게 대들었던 한 사내를 지하실에 감금했었다. 그는 사내가 뱀을 극도로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이용해 방 안에 수십 마리의 뱀을 풀어놓게 했다. 끊임없이 울려 퍼지던 처절한 비명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잦아들었고, 결국 사내는 공포를 이기지 못한 채 쇼크 상태로 혼절하고 말았다.

그는 그런 남자였다. 제 집착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미친 사람. 지금 당장 자신에게 이런 가학적인 짓을 저지르지는 않겠지만, 그가 놓아줄 의지가 없는 한 그녀가 제 발로 탈출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온몸에 소름 끼치는 한기를 느끼며 서이나는 슬그머니 눈을 내리깔았다. 그리고 그를 상대로 두 번째 거짓말을 속삭였다.

“알았어. 네 말이 맞아. 난 너 없인 안 돼. 앞으로 네 말 잘 들을게.”

하지혁은 그제야 만족스러운 듯 입꼬리를 끌어올려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그녀의 입술에 짧게 입을 맞추었다.

“여보, 푹 쉬도록 해. 요 며칠 그 죽은 사람 같은 얼굴을 보고 있자니 정말 신물이 나거든. 곧 결혼기념일인데, 그때까지는 그런 병든 몰골 좀 치워줬으면 좋겠어.”

서이나는 억지로 입꼬리를 늘였다.

“응.”

그가 방 안으로 들어간 지 너무 오래되었다고 느꼈는지, 밖에 서 있던 심효연이 잔뜩 가시 돋친 목소리로 문밖에서 재촉했다.

“하 대표님, 미술 전시회 가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 안 갈 거예요?”

하지혁의 입꼬리가 순식간에 기분 좋게 솟아올랐다. 그는 서이나에게 이불을 꼭 덮어주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걸어 나가 심효연의 허리를 감싸 안고 사라졌다.

얼마 뒤 서이나는 구청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마침내 그녀의 주민등록 말소 신고가 완전히 끝난 것이었다.

서이나는 간단히 필요한 짐을 챙겨 서진우의 유골함을 안고 빠른 걸음으로 저택을 나섰다.

그녀는 서진우의 주민등록 말소를 확실히 매듭짓고, 자신은 새로운 신분을 발급받았다.

그녀는 새 신분으로 타지 은행에서 새로운 계좌를 개설해 카드를 만들었고 곧바로 보르스크행 비행기 표를 구매했다.

비행기에 발을 내딛는 그 순간, 서이나는 생전 처음 느껴보는 해방감과 가벼움을 맛보았다.

서진우의 유골함을 품에 꼭 안은 그녀는 자신을 영혼까지 가두었던 이 도시를 마지막으로 내려다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제부터 그녀는 더 이상 하지혁의 부속품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만의 삶을 살아갈 것이고, 드디어 완전한 자유를 얻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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