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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Author: 유월냥이
서이나는 결국 또 한 번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고 세 시간에 걸친 응급 처치 끝에 몸에 박힌 유리 파편들을 겨우 모두 제거할 수 있었다.

병실에서 며칠간 안정을 취한 서이나는 곧바로 퇴원 수속을 밟았다.

서둘러 끝마쳐야 할 일들이 아직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먼저 은행에 들러 거액의 현금을 인출했다. 그러고는 도심 외곽에 위치한 아주 작고 이름 없는 사설 요양원에 연락을 취해 요양원 리모델링 자금을 지원하고 최신 인공호흡기를 보급해 주는 조건으로, 서진우의 신원을 철저히 숨긴 채 은밀히 보살펴 달라고 부탁했다.

원장은 흔쾌히 수락했고 이제 그녀와 동생의 새로운 신분이 확보되는 대로 전원 계약을 맺기로 합의했다.

비록 당장 제힘으로 동생을 데리고 다닐 수는 없었지만, 서이나는 동생에게 평생 쓰고도 남을 따뜻한 보금자리와 재산을 남겨준 셈이었다.

서이나는 기쁜 소식을 하루빨리 전하고 싶어 서진우가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하지만 병실 복도에 들어서자마자, 서진우의 간병인이 웬 중년 부부와 거칠게 몸싸움을 벌이고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간병인은 온몸으로 병실 문을 사수하고 있었다.

“이나 씨, 드디어 오셨군요! 이 사람들이 기어코 병실 안으로 들어가서 도련님의 의료 장비를 뺏어 가려고 해요!”

서이나는 급히 달려가 두 사람을 밀쳐내며 분노를 터뜨렸다.

“지금 여기서 뭐 하시는 거예요!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함부로 행패를 부려요?”

“하씨 가문에서 개처럼 쫓겨난 년이 어디서 잘난 척이야? 당장 비켜! 내 사위한테 일러서 널 쥐도 새도 모르게 묻어버리기 전에! 저 송장 같은 동생 놈은 어차피 죽을 운명인데, 왜 멀쩡한 내 아들 살릴 인공호흡기를 독차지하고 있어!”

중년 여성이 서이나를 세차게 밀치며 소리를 질렀다.

서이나는 비틀거리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시야가 캄캄해져 가는 찰나, 고개를 들어 올린 그녀의 눈에 심효연의 의기양양한 표정이 들어왔다.

“서이나, 진짜 꼴사납네.”

심효연은 팔짱을 낀 채 서이나를 내려다보았다.

“우리 부모님 못 막아. 이 인공호흡기는 무조건 내거니까.”

“다들 안 들어가고 뭐 해요!”

심효연이 명령하자 하지혁의 경호원들이 간병인을 억세게 제압했다. 그 틈을 타 심효연의 부모가 병실로 난입해 서진우의 몸에 연결된 의료 장비들을 난폭하게 뜯어내기 시작했다.

“안 돼! 호흡기가 없으면 진우는 죽는단 말이야!”

서이나는 비명을 지르며 병실 안으로 미친 듯이 돌진했다.

가장 안쪽까지 파고든 그녀는 온몸으로 서진우를 덮치듯 감싸 안았다.

“다 꺼져! 내 동생 몸에 손대지 마!”

몸싸움 도중 심효연의 어머니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나동그라졌다. 깜짝 놀란 심효연은 어머니의 상태를 살피더니 악에 받쳐 서이나를 노려보았다.

“서이나 씨, 왜 우리 엄마를 밀쳐요? 이건 하 대표님이 가져가라고 하셔서 우리가 가지러 온 거란 말이에요! 억한 심정이 있으면 대표님한테 따지지, 왜 죄 없는 우리 엄마한테 화풀이인데요!”

“아이고, 나 죽네. 죽어.”

심효연의 어머니가 가슴을 쥐어짜며 가증스러운 곡소리를 냈다.

그때 하지혁이 병실 안으로 들어섰다. 소란을 들은 그의 미간이 찌푸려지며 심효연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무슨 일이야?”

그의 가라앉은 목소리에 불쾌감이 서려 있었다.

“하 대표님, 저 인공호흡기 안 가질래요.”

심효연은 속상한 기색을 가장하며 넌지시 덧붙였다.

“우리 오빠 상태가 심각한 것도 아니고 호흡기가 꼭 필요한 상황도 아니니까요. 더군다나 서이나 씨가 미친 사람처럼 악을 쓰면서 우리 엄마를 두 번이나 밀치는데 솔직히 무서워서 쓸 엄두도 안 나네요.”

상황을 파악한 하지혁이 경호원들을 매섭게 쏘아붙였다.

“겨우 여자 하나를 통제 못 해?”

경호원들은 그동안 사모님이었던 서이나를 거칠게 다루기 껄끄러워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있었다.

하지만 하지혁의 불호령이 떨어지자, 그중 한 명이 가차 없이 서이나의 팔을 잡아끌어 구석으로 사정없이 끌어당겼다.

“지혁아, 안 돼! 제발 저 사람들 좀 말려줘!”

서진우의 인공호흡기가 떼어지는 것을 본 서이나는 목이 터져라 비명을 지르며 간절히 애원하는 눈빛으로 하지혁을 바라보았다.

“하지혁, 제발 저 사람들 나가라고 해줘. 내 동생 몸에 손대지 마. 호흡기가 없으면 얜 정말 죽는단 말이야! 제발 부탁할게!”

하지만 하지혁의 안색은 한층 더 차갑게 가라앉았다. 서이나가 갈수록 고분고분하지 않고, 미친 여자처럼 동네방네 소리를 지르며 난동을 부리는 탓이었다. 그동안 공들여 가르친 예법은 온데간데없고 하씨 가문 사모님으로서의 교양은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천박한 모습이었다.

“이나야, 또 말썽이네. 왜 내 이름을 등에 업고 여기서 행패를 부리는 거지? 저번에 준 매질이 아직 부족했던 모양이야?”

하지혁이 불쾌하다는 듯 그녀를 매섭게 째려보았다.

서이나는 온몸을 사르르 떨었다. 마른침을 삼키며 입을 달싹였으나 더는 아무런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하지혁의 사람들이 동생의 산소 공급 장치를 무자비하게 앗아가는 과정을 그저 피눈물을 흘리며 지켜봐야 했다.

사람들에게 밀려 바닥으로 고꾸라졌던 서이나는 이내 악착같이 기어 일어나 서진우의 침대로 달려갔다. 서진우의 안색은 이미 시퍼렇게 변해가고 있었다. 사색이 된 그녀는 비상벨을 미친 듯이 눌러댔다.

하지만 수신기 너머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 찰나,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스쳤다. 하지혁이 자신을 길들이기 위해 의사들을 통제하고 동생을 그대로 죽게 내버려두려는 것이 분명했다.

“의사 선생님! 제발 살려주세요! 아무도 없어요? 제가 돈 드릴게요, 원하는 만큼 아주 많이 드릴 테니까 제발 와서 내 동생 좀 살려줘요!”

서이나는 이성을 잃은 채 텅 빈 복도를 달리며 울부짖었다. 하지만 해당 층은 불 꺼진 지옥처럼 아무도 없었다. 미친 듯이 엘리베이터 버튼을 두드렸으나, 불빛은 야속하게도 1층에 박힌 채 요지부동이었다.

그녀는 계단 아래로 무작정 내달렸다. 도중에 발을 헛디뎌 거칠게 굴러떨어졌지만, 온몸을 짓누르는 고통조차 느낄 새 없이 곧바로 일어나 앞으로 달렸다.

한 층, 한 층, 무려 다섯 개 층을 미친 듯이 내려가서야 겨우 의료진을 붙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마침내 의사를 데리고 서진우의 병실로 돌아왔을 때, 그는 이미 산소 부족으로 차갑게 숨을 거둔 뒤였다.

서이나는 서진우의 병상 앞에 굳어버렸다. 영혼이 증발해 버린 사람처럼 멍하니 동생을 바라보며 입을 가늘게 벌려 보았으나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정말 심장이 갈기갈기 찢어질 만큼 아플 때는 눈물조차 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녀는 비로소 실감했다.

후회가 물밀듯 밀려왔다. 참혹한 후회였다.

어린 날 하지혁을 따라 하씨 가문의 문턱을 넘어섰던 그 선택이 지독하게 후회스러웠고 하지혁이라는 사내를 목숨 바쳐 사랑했던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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