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log in저녁 무렵 라시엘이 찾아왔을 때, 엘로디아는 수첩을 두 권 펼쳐놓고 있었다. 하나는 황실 기록. 다른 하나는 앞으로 확인할 민간 거래 기록. 라시엘은 작업대 앞에 서서 두 권을 번갈아 봤다. “오늘은 장부가 둘이네.” “네.” “내일은 셋이 되는 거 아니야?” “그럴 수도 있어요.” 라시엘이 웃었다. 엘로디아는 그에게 오늘 확인한 내용을 설명했다. 계약 종료 당시 반환된 도구. 황실에 남은 시설. 정산된 재료. 그리고 별도 관리 대상으로 분류된 제17호 갑발. “제17호가 있었어?” 라시엘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목록에 이름은 있었어요. 그런데 실물이 어디 있는지는 안 나와요.” “르메르로 돌아간 건 아니고?” “그것도 몰라요.” 엘로디아는 수첩을 펼쳤다. “반환·인계 대상에서 제외됐다는 것만 확인했어요. 별도 관리 상태였다고요.” 라시엘은 잠시 생각했다. “그럼 그 관리 기록을 찾아야겠네.” “네. 문서 번호는 신청해뒀어요.” “잘했어.” 엘로디아는 그를 보다가 조금 웃었다. “전하, 오늘은 왜 안 놀려요?” “뭘?” “또 기록 찾는다고.” 라시엘는 어깨를 으쓱했다. “당신이 좋아하는 일이잖아.” “그릇 만드는 걸 더 좋아해요.” “알아.” 그는 작업대 위의 에밀 물잔을 봤다. “그건 완성됐어?” “아직요. 사용 확인을 받아야 해요.” “잘됐으면 좋겠네.” “저도요.” 엘로디아는 잠시 잔을 바라봤다. 그러다 말했다. “전하, 저 오늘 조금 기뻤어요.” “왜?” “에델리아가 자기 도구를 돌려받았더라고요.” 라시엘은 그녀를 가만히 봤다. “그게 그렇게 좋았어?” “네.” 엘로디아는 웃었다. “황실에서 더 이상 주문하지 않더라도, 자기 도구가 있으면 다른 그릇을 만들 수 있잖아요.” “가마는 필요하겠지만.” “맞아요. 그래서 그다음 기록도 찾아보려고요.” 라시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기록?” “르메르가 황실 밖에서 그릇을 팔았는지요.” 그녀는 조금 신이 나서 말을
예외 처리 목록은 생각보다 짧았다.처음 두 항목은 특별할 것이 없었다.파손되어 반환할 수 없는 측정 기구.사용 과정에서 소모된 시험편.각각 처리 사유와 정산 여부가 적혀 있었다.그리고 세 번째.엘로디아의 시선이 멈췄다.고내화 갑발 제17호.드디어.나왔다.그녀는 숨을 멈춘 채 다음 칸을 읽었다.반환·인계 대상 제외.사유.별도 관리 상태.엘로디아의 눈이 천천히 가늘어졌다.별도 관리.그 말은 너무 넓었다.황실에서 보관하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다.다른 기관으로 이관했다는 뜻일 수도 있다.시험 결과를 검토하는 동안 실물을 따로 두었다는 뜻일 수도 있다.엘로디아는 다음 칸을 봤다.실물 소재 — 본 목록에서 확인 불가.“…….”그녀는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찾았다.그런데.아직 찾지 못했다.제17호 갑발이 반환·인계 목록에서 빠진 이유는 확인했다.별도 관리 상태였기 때문이다.그러나 그 별도 관리가 어디에서 이루어졌는지는 이 문서만으로 알 수 없었다.엘로디아는 수첩에 적었다.제17호 갑발 — 계약 종료 당시 반환·인계 대상 제외.사유 — 별도 관리 상태.실물 소재 — 해당 목록에서 확인 불가.그리고 마지막에.르메르 사문서고에 실물이 있다는 증거는 아님.펜을 내려놓았다.조금 아쉬웠다.솔직히 말하면.많이.아쉬웠다.하지만 그 감정 때문에 없는 답을 만들어낼 수는 없었다.엘로디아는 문서를 다시 살폈다.예외 처리 목록의 오른쪽 끝.아주 작은 칸.처리 근거 문서.번호가 있었다.그녀는 그것을 옮겨 적었다.“이 번호로 별도 문서를 신청할 수 있나요?”기록관리관이 확인했다.“가능합니다. 다만 현재 어느 기록군에 보존되어 있는지는 확인이 필요합니다.”엘로디아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먼저 소재부터 확인하겠습니다.”갑발의 소재가 아니라.갑발에 관한 문서의 소재.지금은 그 순서가 맞았다.그다음에 확인한 것은 시험기물과 관련된 기록류였다.엘로디아는 여기서 또 하나의 차이를 발견했다.실물과 문서는
황실에서 돌려받은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일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일과 닮아 있었다.엘로디아는 황실 기록관리국에서 도착한 열람 승인서를 세 번 읽었다.황실 혼인도공 지정 계약 종료 당시 제작시설 및 시험기물 반환·인계 목록 — 부분 열람 승인.마침내 허가가 났다.지난번 에델리아의 계약 갱신 신청 철회서를 읽은 뒤, 엘로디아가 가장 궁금해했던 문서였다. 황실과의 계약이 끝났을 때 르메르가 어떤 물건을 돌려받았는지, 어떤 물건을 남겨두었는지, 그리고 그중에 제17호 갑발과 관련된 것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하지만 엘로디아는 바로 외투를 집어 들지 않았다.작업대 위에는 에밀 하르트의 물잔이 놓여 있었다.재벌 소성을 마친 잔이었다.“기록보다 그릇이 먼저.”그녀는 혼잣말을 하고는 잔을 들어 올렸다.유약은 예상했던 대로 얇고 균일하게 녹아 있었다. 안쪽에 유약이 고여 생긴 턱도 없었고, 입구 가장자리에도 거친 부분이 없었다. 다만 바닥에 가까운 곡면 한쪽에서 아주 작은 빛의 차이가 보였다.엘로디아는 창가로 이동해 잔을 기울였다.빛이 미끄러지듯 지나갔다.표면의 두께 차이였다.눈으로만 보면 흠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손끝에 걸리지 않았고 물을 담았을 때 세척을 방해할 정도도 아니었다.그녀는 검사표에 적었다.유약 두께 편차 — 경미. 사용성 영향 여부 확인 필요.그다음 물을 부었다.잔의 절반쯤 채우고 작업대 위에 놓았다. 바닥이 흔들리지 않는지 확인한 뒤 펜촉 모형을 물에 담갔다. 입구를 조금 넓힌 덕분에 손목을 지나치게 세우지 않아도 펜촉이 안쪽에 닿았다.“좋아.”이번에는 물을 비웠다.안쪽에 남은 물방울이 어디에 맺히는지 확인하고, 부드러운 천으로 닦았다. 좁은 입구 때문에 천이 걸리거나 손가락을 억지로 밀어 넣어야 하는 문제는 없었다.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제작자의 시험이었다.에밀이 실제로 사용했을 때도 같은 결과가 나오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엘로디아는 잔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교수님께 사용
황실 기록관리국에서 돌아온 엘로디아는 가장 먼저 제3도요원의 가마부터 확인했다.초벌을 마친 에밀 하르트의 물잔은 작업대 위에서 조용히 식고 있었다. 흙빛이 한결 옅어졌고, 손끝으로 가볍게 두드리자 맑지는 않지만 단단한 소리가 났다. 엘로디아는 잔을 들어 바닥부터 입구까지 천천히 살폈다. 균열은 없었고, 가장자리의 두께도 계획했던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갱신 보류.”입술 사이로 작은 말이 흘러나왔다.조금 전 확인한 기록 때문이었다.에델리아 르메르에게 내려졌던 임시 처분은 구십 일 만에 종료됐다. 당시 규정에 따라 두 차례 연장되었지만, 세 번째 연장은 승인되지 않았다. 절차는 끝났다.그런데 같은 날.황실 혼인도공 지정 계약의 갱신이 보류됐다.임시 처분이 끝났는데도 황실의 주문은 돌아오지 않았다.엘로디아는 물잔을 내려놓았다.“계약이 끝난 건지, 갱신을 기다리는 상태였던 건지부터 봐야겠네.”그녀는 수첩을 펼쳤다.확인된 사실 — 임시 처분 종료.확인된 사실 — 같은 날 지정 계약 갱신 보류.미확인 — 갱신 보류 사유, 보류 기간, 최종 계약 상태.그리고 마지막에 한 줄을 덧붙였다.황실 납품 지위 상실 ≠ 도공 기술자격 상실.그 문장을 쓰고 나니 조금 마음이 가라앉았다.르메르가 황실에서 밀려났다는 결과를 알고 있다는 이유로, 모든 과정을 하나의 추방 명령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 실제 기록에서는 서로 다른 행정 절차가 차례로 이어지고 있었다.그릇의 기술검수.신규 발주.임시 처분.지정 계약 갱신.각각의 목적도, 권한도, 판단 기준도 달랐다.그 차이를 구분하지 않으면 이백 년 전의 기록을 읽는 의미가 없었다.“아가씨.”로제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또 기록이에요?”엘로디아는 수첩을 덮었다.“응. 그런데 지금은 그릇부터.”“다행이네요.”“뭐가?”“드디어 가마가 기록관리국을 이겼잖아요.”엘로디아는 웃음을 터뜨렸다.“가마가 지면 안 되지. 내 본업인데.”그녀는 물잔을 다시
엘로디아는 기록관리국에서 돌아온 뒤에도 한동안 작업대 앞에 앉아 있었다.손에는 황실 혼인도공 자격 심의 관련 문서 목록을 옮겨 적은 수첩이 들려 있었다. 그중에서도 유독 눈에 밟히는 문장이 있었다.재심 보류 상태에서 별도 임시 처분 시행.임시.그 말은 원래 끝이 있다는 뜻이다. 어떤 문제가 확인될 때까지, 정식 결정을 내릴 때까지, 또는 정해진 기간이 지나기 전까지 잠시 적용하는 조치.그런데 르메르 가문은 이백 년 가까이 황실의 도자 제작에서 밀려나 있었다.엘로디아는 수첩을 덮었다가 다시 펼쳤다.“그렇다고 임시 처분이 이백 년 동안 이어졌다는 뜻은 아니지.”누군가 나중에 확정 처분을 내렸을 수도 있다. 계약이 만료됐을 수도 있고, 르메르가 재계약을 포기했을 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다른 제도가 생겼을 가능성도 있었다.지금 확인한 것은 임시 처분이 있었다는 사실뿐이다.그런데 사람은 이상하게도 끝을 먼저 알고 있으면 중간 과정까지 그 끝에 맞춰 해석하고 싶어진다.르메르는 쫓겨났다.그러니 임시 처분도 추방을 위한 수단이었을 것이다.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아직 읽지도 않은 문서에 이미 답을 써버리는 셈이었다.엘로디아는 붉은 잉크를 꺼냈다.임시 처분의 내용·기간·후속 결정 미확인.그리고 아래에 한 줄을 더 적었다.현재 결과로 과거의 의도를 단정하지 말 것.“또 기록이에요?”문가에서 로제의 목소리가 들렸다.엘로디아가 고개를 들자 로제는 차가 담긴 쟁반을 들고 있었다.“응. 그런데 오늘은 여기까지.”“정말요?”“정말.”로제는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찻잔을 내려놓았다. 엘로디아는 그 표정을 보고 웃었다.“왜?”“아가씨가 기록을 덮으실 때는 보통 다른 기록을 펼치시니까요.”“그 정도는 아니거든.”“지난번에는 가마 기록을 덮고 재료 장부를 펼치셨잖아요.”“그건 다른 일이었지.”“그 전에는 선발 평가서를 덮고 개인 주문 계약서를 펼치셨고요.”엘로디아는 찻잔을 들다가 멈췄다.“……그건 인정.”로제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황실 기록관리국의 열람실은 생각보다 밝았다.높은 창으로 들어온 햇빛이 긴 책상 위에 내려앉았고, 벽에는 습도와 온도를 확인하는 작은 계기가 걸려 있었다. 오래된 문서를 보관하는 곳이라 어둡고 차가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종이를 읽기에 알맞은 빛과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다.엘로디아는 그 점이 조금 마음에 들었다.기록을 보존하는 일도 결국 기술이었다.무엇을 남길지 결정하는 사람만큼이나, 남겨진 것이 상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사람도 중요하다.“엘로디아 르메르 영애.”담당 기록관리관이 그녀의 자격증과 열람 승인서를 차례로 확인했다.“이번 열람은 감독하에 진행됩니다. 원본에 직접 표기하거나 문서의 배열을 바꿀 수 없으며, 필사는 승인된 범위에서만 가능합니다.”“네.”“기술자격은 연구 목적을 확인하는 근거일 뿐, 제한기록 전체에 대한 열람권을 부여하지는 않습니다.”“알고 있습니다.”엘로디아는 자기 자격증을 받아 가방 안에 넣었다.황실도요원 특별 기술자격 도공 — 엘로디아 르메르.어제까지는 그 문장을 볼 때마다 웃음이 났다. 오늘도 기뻤지만, 기록관리관 앞에서 자격증을 내밀자 조금 다른 감정이 들었다.자격이 있다는 것은.아는 것이 많다는 뜻이 아니다.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 알고, 확인한 결과에 책임을 질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에 더 가까웠다.“먼저 열람 대상의 구성을 설명하겠습니다.”기록관리관이 목록을 펼쳤다.“황실 도자 조달대장 세 권, 품질검수대장 두 권, 정정·보충 기록의 색인 한 권입니다. 다만 이번에 승인된 기간은 르메르 혼인도공의 퇴출 전후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한정됩니다.”엘로디아의 손끝이 조금 굳었다.“정정·보충 기록도 볼 수 있나요?”“색인까지는 가능합니다. 개별 정정 명령서와 첨부 문서는 별도 승인 대상입니다.”“그렇군요.”엘로디아는 수첩을 펼쳤다.첫 장 맨 위에 이미 써놓은 문장이 있었다.확인된 사실만 기록할 것.그리고 그 아래.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남길 것.그녀는 펜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