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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황후는 죄가 없었다

Autor: 설월
last update Data de publicação: 2026-10-16 19:54:40

형부의 관리들은 이미 대부분 퇴청한 뒤였다. 복도에는 등잔 몇 개만 희미하게 밝혀져 있었고, 바깥에서는 금군들의 발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박원길은 당직 관리에게 장부를 내밀었다.

“폐하께 올려야 할 문서가 있소.”

당직 관리는 장부를 펼쳤다가 얼굴이 굳었다.

“이것이 무엇이오?”

박원길은 마른 입술을 적셨다.

“황후마마의 구휼 장부 원본이오. 형부에 제출된 것은 조작된 문서요.”

당직 관리는 황급히 주변을 살폈다.

박원길은 그의 소매를 붙잡았다.

“부디 폐하께 올려 주시오. 황후마마께서는 아무 죄가 없으셨소.”

그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내가 죽더라도 이 장부만큼은 반드시 전해 주시오.”

당직 관리는 장부를 품에 넣은 뒤, 박원길의 신변을 보호해야 한다며 금군을 불렀다. 그러나 형부의 좌시랑과 연결된 자들이 아직 관청 안에 남아 있었으므로, 박원길은 외부와 접촉하지 못한 채 형부 옥사의 별실에 머물러야 했다.

그는 자신이 보호받는 것인지, 다시 입을 막히게 되는 것인지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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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후가 죽던 날, 황제는 미쳐버렸다   49화 지난번에는 믿지 않으셨으면서

    안쪽 방의 문이 열리자 오래된 종이 냄새가 밀려왔다. 벽장에는 여러 개의 상자가 쌓여 있었고, 그중 하나에는 중궁전의 문서에 사용하는 것과 비슷한 붉은 봉랍이 들어 있었다.건휘는 봉랍을 살펴본 뒤 곁에 놓인 작은 나무함을 열었고, 그 안에서 황후의 인장을 본뜬 목각을 발견했다.정식 인장과 달리 세부 문양이 조금 거칠었지만, 종이에 찍으면 쉽게 구별하기 어려운 형태였다.건휘는 그것을 집어 들었다.지난 생에 서화의 죄를 증명한다며 자신에게 제출되었던 문서들이 떠올랐다. 그때도 황후의 인장이 찍혀 있었고, 서화가 아니라고 말했음에도 건휘는 인장이 진짜인지 확인하지 않았다.그는 손에 든 목각을 내려다보다가 천천히 유채령을 돌아보았다. 그녀는 문가에 서서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이것이 무엇이냐?”유채령은 입술을 달싹이며 처음 보는 물건이라고 대답했으나, 건휘는 네 방에 있던 물건을 처음 본다고 말할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 그녀가 누군가 자신을 모함하려고 물건을 가져다 놓았을 것이라고 변명하자, 건휘는 목각 인장을 그녀의 발치에 내려놓았다.“그렇다면 누가 이곳에 들여놓았는지 밝혀라. 네가 쓰는 향을 지닌 자가 황후의 궁녀를 끌고 갔고, 네 별궁으로 들어온 마차가 상한 곡식 사건과 연결되어 있으며, 이제는 황후의 인장을 흉내 낸 물건까지 나왔다.”유채령의 무릎이 꺾였고, 그녀는 바닥에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건휘는 그 울음을 내려다보면서도 손을 내밀지 않았다. 지난 생의 자신이었다면 그녀를 일으켜 세우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정하게 물었을 테지만, 이번에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짐이 마지막으로 묻겠다.”건휘는 그녀의 앞에 몸을 낮췄다.“누가 황후를 죄인으로 만들라고 하였느냐?”유채령의 울음이 멈췄다.그녀는 한동안 고개를 들지 않다가, 폐하께서는 황후마마를 그리도 믿으시느냐고 낮게 물었다. 건휘는 대답하지 않았고, 유채령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눈물로 젖은 얼굴에 묘한 웃음을 걸었다.“지난번에는 믿지 않으셨으면서.”건휘의 숨이 멎었다.방

  • 황후가 죽던 날, 황제는 미쳐버렸다   48화 황후의 죄를 만든 여자

    조덕수가 아직 황후를 모함한 자들이 모두 밝혀지지 않았으므로 경계를 늦추었다가 다시 일이 생기면 곤란하다고 간언하자, 건휘는 눈을 감은 채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금군을 두면 서화가 두려워하고, 금군을 물리면 서화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어느 쪽을 택해야 할지 결정할 수 없었다.마침내 그는 궁문 안쪽에는 금군을 들이지 말고 바깥에서 지키되 황후가 그들을 보지 않도록 하라고 명했다.조덕수가 명을 받들자 건휘는 서안 위에 놓인 황후의 서찰을 다시 펼쳤다. 서화의 글씨는 단정했으나, 그는 손끝으로 글씨를 따라가다가 문득 강무현이 그녀에게 보낸 서찰을 떠올렸다.그 사내는 서화에게 어떤 말을 적어 보냈을까. 황후마마의 안위를 걱정한다는 말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이 알지 못하는 다정한 말을 건넸을까.건휘는 그 생각을 견디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강무현의 거처에 사람을 보내라.”조덕수가 고개를 들자 건휘는 북방군의 운송 기록을 모두 제출하게 하고, 황후에게 보낸 서찰 가운데 구휼미와 관련된 것은 병부에 사본을 남기게 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그가 정말 보고 싶은 것은 구휼미의 기록이 아니었다.서화가 그 사내에게 어떤 마음을 보였는지 알고 싶었으나, 그것을 확인하는 순간 자신이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었다.“사적인 서찰은 건드리지 마라.”건휘는 이를 악물었다.“짐이 그 내용을 알게 되면 그자를 죽일 것이다.”그날 밤, 건휘는 별궁으로 향했다.유채령은 황제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단장을 마친 듯 머리에는 진주 장식을 꽂았고, 연한 분홍빛 비단 치마에서는 달콤한 향이 풍겼다. 그녀는 건휘를 보자 환하게 웃으며 예를 올렸으나, 건휘는 인사를 받는 대신 별궁의 안쪽을 천천히 둘러보았다.방 안에는 새로 들여온 비단과 약재 상자가 쌓여 있었고, 창가에는 황실 물품 관리 부서의 인장이 찍힌 운송 상자가 놓여 있었다.건휘가 상자의 뚜껑을 열자 안에는 비단과 향료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으며, 그중에는 연희가 말한 향과 같은 향을 풍기

  • 황후가 죽던 날, 황제는 미쳐버렸다   47화 이번에는 짐이 안다

    건휘는 그녀를 바닥에 눕히지 않고 금군에게 의원을 부르라 명한 뒤, 황후는 무사하며 자신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알려 주었다. 연희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고, 그녀는 황후에게는 말씀드리지 말아 달라며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소매를 움켜쥐었다.건휘는 무엇을 말하지 말라는 뜻인지 물었다.연희는 한동안 숨을 고르다가, 자신을 붙잡은 자들이 중궁전의 인장을 내놓으라며 황후가 곡식을 빼돌렸다는 문서에 증언하라고 강요했다고 털어놓았다.건휘의 얼굴이 굳어지자 연희는 얼굴을 가린 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유채령의 별궁에서 쓰는 향을 지니고 있었다고 덧붙였다.건휘는 숨을 멈췄다.유채령.그 이름이 다시 나타났다.연희는 마지막 힘을 다해 황제의 소매를 붙잡고, 황후마마께서는 아무 죄도 없으시다고 말했다. 건휘는 그 손을 바라보았다. 지난 생에 자신이 끝내 듣지 않았던 말이었으며, 이번 생에는 반드시 지키겠다고 맹세한 말이었다.“안다.”그는 연희의 손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이번에는 짐이 안다.”연희를 의원에게 맡긴 뒤 창고 밖으로 나온 건휘 앞에는 연희를 끌고 간 금군 두 사람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도 명령서를 받았을 뿐이라며 용서를 빌었으나, 건휘는 문서의 출처를 확인하기 전까지 그들의 말을 믿을 생각이 없었다.“명령서를 내놓아라.”금군 하나가 떨리는 손으로 접힌 종이를 내밀자 건휘는 그것을 펼쳐 보았다. 자신의 명령을 대신한다는 문구와 함께 황실의 인장이 찍혀 있었으나, 문서에 적힌 명령은 자신이 내린 적이 없는 것이었다.위조된 명령서였다.건휘는 문서를 한동안 바라보다가 금군의 턱을 들어 올렸다.“너희는 이 문서 하나를 믿고 중궁전의 궁녀를 끌고 갔느냐?”금군이 울먹이며 고개를 끄덕이자 건휘는 그의 얼굴을 놓아주고, 명령을 내린 자를 찾아낼 때까지 옥에 가두되 거짓말을 하거나 입을 맞춘 흔적이 드러나면 살려 두지 말라고 명했다.금군들이 끌려가자 그는 문서를 움켜쥐었고, 지금 당장 그들을 죽이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진실을 먼저

  • 황후가 죽던 날, 황제는 미쳐버렸다   46화 소첩이 지키려는 사람들까지 죽이지 마소서

    “짐이 찾고 있다.”서화는 손에 든 노리개를 내려다보며, 연희가 열여덟 살에 자신을 따라 궁에 들어온 뒤 황후가 되기 전부터 곁을 지켰으며 궁에 들어와서는 단 하루도 자리를 떠난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그녀는 노리개의 붉은 매듭을 손가락으로 매만지다가, 오늘 아침 금군이 연희를 데려가면서 폐하의 명령이라고 했고 연희는 곧 돌아오겠다고 약속했으나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고 덧붙였다.건휘는 그녀의 목소리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오히려 두려웠다.그는 한 걸음 다가서며 연희를 잡아들이라고 명한 적이 없다고 설명했으나, 서화는 잠시 그를 바라본 뒤 누군가 황제의 이름을 빌려 중궁전의 사람을 데려갈 수 있다는 뜻이라며 조용히 답했다.그녀의 눈빛에는 안도보다 피로가 먼저 스쳤고, 건휘가 손을 잡으려 하자 한 걸음 물러서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건휘의 손은 허공에 멈췄다.지난 생에는 서화가 자신에게 손을 뻗었으나 자신은 그 손을 잡지 않았다. 이번 생에는 자신이 손을 뻗었고 서화가 피했다는 사실을 깨닫자, 건휘는 숨이 막히는 듯 가슴을 움켜쥐고 싶어졌다.“서화야.”그가 황후의 이름을 부르자 서화는 고개를 숙였다.“폐하, 소첩은 지금 연희를 기다리고 있사옵니다.”건휘는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 자신을 보라고 명하고 싶었다. 다른 사람을 생각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자신을 바라보라고 요구하고 싶었으나, 서화의 손에 들린 노리개를 보는 순간 그럴 수 없었다.그녀는 연희가 살아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런 여인에게 자신의 고통을 먼저 알아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이었다.건휘는 천천히 손을 내렸다.“짐이 데려오겠다.”서화는 그제야 고개를 들고 부디 살아서 돌아오게 해 달라고 청했다. 건휘는 그녀의 얼굴을 오래 바라보았다. 그녀가 자신에게 부탁하는 것은 사랑도 용서도 아니었으며, 그저 한 사람을 살려 달라는 말뿐이었다.“반드시.”건휘는 자신이 반드시 살아서 데려오겠다고 약속했다.그가 돌아서려는 순간 서화가 다시 입을 열었다.“폐하, 구

  • 황후가 죽던 날, 황제는 미쳐버렸다   45화 황제가 지키려던 여자가 무너졌다

    그는 조덕수에게 구휼소의 문을 열라고 명하며 금군을 물리고 호조의 관리들을 보내 서화가 정한 절차대로 곡식을 나누게 하라고 지시했다.조덕수가 이미 백성들 사이에서는 황후가 곡식을 빼돌렸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다고 보고하자, 건휘는 서안 위의 찻잔을 집어 벽에 던졌다.찻잔이 산산이 부서졌다.“그 소문을 퍼뜨린 자를 찾아라.”조덕수는 무릎을 꿇은 채 백성들의 입을 모두 막을 수는 없다고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건휘는 깨진 찻잔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웃었고, 소문을 막을 수 없다면 입을 막을 필요가 없도록 만들어야겠다고 말했다.그는 구휼소 앞에 황후의 이름으로 새 곡식을 내어놓으라고 명했다. 내탕고의 곡식이 부족하면 황실의 창고를 열고, 그래도 부족하면 자신의 사재를 쓰라고 덧붙였으나, 그 명령을 내리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자신이 아무리 곡식을 내어놓아도 백성들은 황후가 아니라 황제가 구휼소를 살렸다고 말할 것이며, 서화는 그 사실을 알고 또다시 자신을 원망할지도 몰랐다.건휘는 그 원망을 견딜 수 있다고 생각했다.그러나 그녀가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 것은 견딜 수 없었다.승정전으로 돌아온 건휘에게 조덕수가 봉인된 서찰을 내밀었다.서화의 글씨였다.*폐하께서 구휼소의 증거를 보존하라 명하신 뜻은 받들겠사오나, 오늘 아침 중궁전의 궁인 셋이 별도의 조사 명목으로 끌려갔다는 말을 들었사옵니다. 그 가운데 연희도 포함되어 있다 하오니, 누구의 명령으로 그리하였는지 밝혀 주시옵소서.*건휘는 서찰을 읽고도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연희를 잡아들이라고 명한 적은 없었으며, 오히려 중궁전의 인장을 조사하되 궁인들에게 손대지 말라고 지시했는데도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빌려 서화의 사람을 끌고 간 것이었다.건휘는 서찰을 접어 품에 넣었다.“연희를 데려간 자들을 찾아라.”조덕수가 이미 금군을 보냈다고 대답하자, 건휘는 그들을 찾지 못하면 어찌할 것이냐고 되물었다.조덕수가 대답하지 못하자 건휘는 그를 내려다보며, 황후에게 그 아이를 지키겠다고 했는데 황후가 믿는

  • 황후가 죽던 날, 황제는 미쳐버렸다   44화 황후를 의심한 자의 대가

    “절차라는 말로 황후의 목을 베려는 자들을 짐은 이미 한 번 보았다.”건휘는 자신도 모르게 지난 생의 일을 입 밖에 내뱉었으나, 대신들이 의아한 눈빛을 주고받는 것을 보고도 설명하지 않았다.대신 네 이름으로 발행된 문서 가운데 거짓이 하나라도 발견되면 네가 황후에게 요구하려던 것과 같은 절차를 밟아 주겠다고 경고했고, 호조판서는 바닥에 엎드려 용서를 빌었다.건휘는 금군을 불러 호조판서의 직인을 거두고 집안을 수색하되, 조사가 끝날 때까지 가족의 출입도 금하라고 명했다.조덕수가 아직 호조판서가 사건에 관여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조심스럽게 간언했으나, 건휘는 그를 돌아보며 증거를 찾으라고 명했을 뿐이라며 말을 끊었다.이어 대신들을 향해 황후를 의심하려면 먼저 자신을 설득해야 할 것이며, 그러지 못한다면 황후에게 손을 뻗은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목소리는 높지 않았으나 승정전의 공기는 칼날처럼 차가워졌고, 건휘는 대신들이 두려움에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보며 비로소 숨을 조금 편하게 쉴 수 있었다.적어도 이곳에 있는 자들은 자신의 명령을 거역하지 못했다.서화만이 달랐다. 그녀는 황제의 명령을 듣고도 눈을 피하지 않았으며, 부당하다고 생각하면 조용히 거절했다.건휘는 그 사실을 떠올리는 순간 다시 손목이 아파 오는 것을 느꼈고, 자신이 온 나라를 무릎 꿇릴 수 있어도 서화의 마음 하나는 굴복시킬 수 없다는 사실이 황제라는 지위를 조롱하는 것 같아 손을 움켜쥐었다.그때 병부의 관리가 북방군의 운송 기록을 가져왔다.강무현의 서명이 적힌 원본이었다.건휘는 그 이름을 보는 순간 손을 멈췄다. 황후에게 서찰을 보내고, 그녀와 같은 장부를 살피며, 자신이 알지 못하는 웃음을 끌어낸 사내였다.건휘는 문서를 펼쳐 강무현이 북방에서 출발한 곡식의 수량과 봉인 상태를 상세히 기록해 두었으며, 중간 창고를 통과한 뒤 수레 네 대의 봉인이 바뀌었다는 사실까지 별도로 표시해 놓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서화가 찾아낸 사실과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기록이었다.건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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