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소은지는 완전히 분노했다.그런데 통통한 아주머니가 만류했다. “지금 이수연 집에 간 사람들은 전부 그 무뢰한한테 맞았어요. 지금 완전히 미쳤다니까요.”그 남자는 집에 이수연이 있을 때만 해도 밖으로 나와 미친 척하지 않았다.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이수연이 떠난 뒤 쌓인 분노를, 주변 마을 사람들에게 모조리 쏟아붓고 있었다.그런 미치광이를 대체 어떻게 지금까지 용납해 왔단 말인가.소은지가 생각을 가다듬기도 전에, 아주머니가 다급히 말했다. “이젠 온 마을이 그 남자를 못마땅해해요. 전... 당신이 이수연 양을 좀 도와줬으면 해서요.”소은지가 마음씨 고운 아가씨라는 걸 안다. 그래서 지금 이수연 일에 누구도 나서려 하지 않지만, 소은지는 다를 거라고 믿었다.“마지막으로 한 번만, 도와줘요... 제발.”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떨렸다.아주머니 역시 이수연이 가엾어 죽겠다는 표정이었다.이수연이 살아 있을 땐 모두 그 남자가 무서워 선뜻 나서지 못했지만, 지금은 이수연이 떠났는데도 그 남자는 여전히 막무가내였다. 마을 다른 남자들까지 분노로 들끓을 지경이었다.소은지는 잠시 침묵했다.당연히 도와야 했다.“제가 할게요.”“하지만 지금은 그 집에 가지 마요. 거긴 지금도 다투고 있어요.” 소은지가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결국은 젊은 여자다. 이수연의 남편은 이미 이성을 잃었다. 지금 가면 소은지도 봉변을 당할지 몰랐다.아주머니의 만류에 소은지는 자기의 작은 집으로 돌아왔다.이수연의 남편을 찾아가겠다는 생각은 접었다.대신 외투를 집어 들고 곧장 시내로 운전해 갔다.그 남편은 천하의 망나니였다. 병원 쪽 비용 정산도 아직 끝나지 않아, 시신을 인수해 갈 자격조차 없었다.소은지는 이수연의 장례를 직접 치르기로 했다.살아서 그 지옥에서 함께 벗어나게 하지는 못했지만, 지금만큼은 그 악마의 손아귀에서라도 확실히 떼어 내 주고 싶었다.병원에 도착했을 때, 수납 창구로 가던 소은지의 시야에 강이한이 급히 들어오는 모습이 비쳤다. 이정이 엘리
소은지에게 잘해 준 건가, 아니면 마음이 있는 건가.하지만 그게 무엇이든, 지금 소은지의 눈빛에는 오만과 경멸만이 떠올랐다.엔데스 명우는 소은지가 뱉은 말에 등골이 서늘해졌다.“나 혼자만의 생각이라고?”“아닌가? 우리 사이에서 벌어진 건 전부 네가 혼자 벌인 일이야. 나랑 너는 원래 서로 아는 사이도 아니었어.”원래 둘은 서로 남남이었다. 눈이 흩날리던 그날 이후로 원한이 꼬여 버렸을 뿐.찬바람 속에서 엔데스 명우의 어깨가 분노 때문에 부르르 떨렸다. “그래, 일방적이었다는 말인 거지?”“그러니까 지금 분명히 말해둘게. 난 처음부터 네가 싫었고, 지금도 그래. 앞으로도 똑같아. 나한테 시간 낭비하지 마.”예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소은지의 대답은 한결같았다.심지어 엔데스 명우가 가끔 잘해 줬던 순간에도, 소은지는 줄곧 단호하게 거절했다.지금은 더더욱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러니 앞으로도 둘 사이에 가능성은 없다.거절은 참으로 명쾌했다.“좋아. 잘한다, 정말.”엔데스 명우에게 이렇게까지 대드는 사람은 한 번도 없었다.오늘 소은지는 단단히 못을 박았다.마치 둘 사이에 어떤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전부 깔끔하게 지워 버렸다....엔데스 명우는 분노에 떠밀려 떠났다. 여기서 더 버티면 정말로 소은지의 목을 움켜쥘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들었기 때문이다.엔데스 현우가 앞으로 다가왔다. 그 행동에는 여전히 기품이 묻어 있었다. 방금 난투에서 당한 기색은 티끌만큼도 없었다.하지만 소은지는 곧장 자기 작은 집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끝났다. 비너스 타운에서의 모든 게 끝났다.두 걸음 내디딘 순간, 손목이 탁 붙잡혔다. “저 집은 추워요. 여기서 지내요, 네?”소은지는 엔데스 현우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며 말했다. “난로는 내가 뗄 수 있어요.”엔데스 현우는 미간을 좁혔다.눈에 잠깐 불쾌함이 스쳤지만, 떨리는 소은지의 등을 보자 이수연 일의 갑작스러움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었다.지금 소은지에게 필요한 건, 혼자 있을 시간이었
눈밭에서 뒤엉켜 싸우는 두 사람을, 소은지는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두 사람도 뭔가를 눈치챘는지 행동을 멈추고 문 쪽을 돌아봤다. 소은지의 차가운 눈빛이 보이자, 둘의 몸싸움은 완전히 그쳤다. 엔데스 명우가 엔데스 현우를 거칠게 밀쳐 내고 성큼성큼 소은지에게 다가왔다.“나랑 돌아가.”마치 소은지가 당연히 자기 사람이라도 되는 양 익숙하고도 자연스러운 말투였다.하지만 소은지의 손목을 붙잡는 순간.짝.소은지는 온몸의 힘을 실어 엔데스 명우의 뺨을 후려쳤다. 엔데스 명우의 몸이 그대로 굳어버렸다.소은지가 냉담하게 쏘아봤다. “꺼져.”엔데스 명우가 말했다. “그 여자의 죽음은 나랑 상관없어. 내가 시킨 게 아니야.”엔데스 명우는 늘 한 말을 끝까지 책임지는 남자였다.그런데 지금 소은지의 눈에 떠오른 냉담과 적의를 보자 엔데스 명우는 당황하고 말았다.엔데스 명우는 고개를 저으며 덧붙였다. “정말 나랑 상관없어.”그런 엔데스 명우를 보자, 소은지는 이수연의 죽음이 더 서럽게 느껴졌다.특히 방금 같은 반응은, 진한 혐오를 샀다.그 혐오가 오히려 엔데스 명우의 신경을 거칠게 긁었다. “그 눈빛 치워. 말했잖아, 내가 아니라고!”“하...” 소은지는 설명을 늘어놓는 남자를 바라보며 웃었다. 싸늘했고 쓸쓸했다.설명이라고는 절대 하지 않는 엔데스 명우가 지금 소은지 앞에서 변명을 하고 있었다.하지만 그 변명이 대체 무슨 소용이 있을까.“내가 직접 손대지 않았어도, 내 탓으로 사람이 죽을 수 있지. 그게 지금 아니야?”이 모든 일이 엔데스 명우를 중심으로 돌고 있는데, 이제 와서 엔데스 명우 탓이 아니라고 한다니.엔데스 명우는 말을 잃었다.소은지의 서늘한 냉소를 마주하는 순간,가슴 한가운데로 거대한 손이 파고들어 심장을 거칠게 움켜쥐는 듯한 감각을 받았다.아프고, 가슴이 텅 비는 느낌이었다.처음 겪는 감각이었다.엔데스 명우의 세계에는 원래 느낌 같은 게 없었다.그런데 소은지 앞에서는 모든 것이 뚜렷했다.“먼저 돌아가자.”
엔데스 명우.이수연은 두 사람 사이의 원한을 알게 된 그때부터 더 이상 소은지에게 도와 달라고 하지 않으려 했다.자유를 되찾는 대가로, 소은지가 그 남자 곁에 돌아가 지옥 같은 삶에 빠지는 일만은 바라지 않았다.너무 많은 세월을, 너무 많은 고통을 견뎌 왔고, 그 고통이 어떤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정말 아팠고, 지쳐 있었다. 그래서 소은지가 그 수렁으로 끌려 들어가는 건 원치 않았다.소은지의 몸이 세차게 떨렸다.소은지는 편지를 한 번 꾸깃하게 움켜쥐었다가, 이내 조심스럽게 펼쳤다. 마치 종이를 망가뜨린 것에 대해 스스로를 나무라는 것 같았다.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려 단정한 획 위로 뚝뚝 떨어져, 잉크 자국이 번졌다.엔데스 가문의 남자들 앞에서 소은지는 언제나 강했고 꺾이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엔데스 현우 앞에서는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마치 바로 이 순간 온전히 짓눌려 버린 사람처럼.“권중호한테... 고맙다고 전해 줘요.”엔데스 현우가 낮게 말했다. “뛰어내렸대요.”소은지는 말문이 막혔다.가슴이 더 아려 왔다.조금만 더 일찍 끝냈다면 이수연이 궁지에 몰려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텐데. 결국, 엔데스 명우의 집요함 때문이다. 이수연도 그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았을 테니까.그 수렁으로 소은지를 밀어 넣지 않기 위해, 가장 극단의 결정을 내려 버린 것이다.“어쨌든... 권중호 씨에게 고맙다고 전해 줘요.”적어도 권중호가 있어, 마지막 가는 길이 궁상맞고 초라하진 않았을 테니.엔데스 현우가 얼음처럼 식은 그녀의 손을 감쌌다. 소은지는 고개를 푹 떨군 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엔데스 현우가 말했다. “조금은... 마음을 놓아요.”놓다니, 어떻게 놓으란 말인가.몇 번이나 깊게 숨을 들이마셔도 가슴 속의 통증은 가라앉지 않았다.‘이제 곧 모든 게 끝날 거였는데.’왜 그렇게 조금의 시간도 기다려 주지 못한 걸까.‘내가 그렇게 약해 보였을까. 엔데스 현우와의 관계를 타협적으로 정리했다고 해서, 엔데스 명우
소은지는 이수연 곁을 오래, 아주 오래 지켰다. 꼬박 하룻밤을 새웠다.그저 그렇게 이수연을 바라보았다. 마치 그 얼굴을 머릿속 깊이 새겨 두려는 듯 말이다.그리고, 이수연 덕분에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더 또렷해졌다.무엇은 타협할 수 있고, 무엇은 절대로 타협할 수 없는지,무엇이 자신의 것이며, 또 무엇이 자신의 것이 아닌지 알 것 같았다.엔데스 현우가 찾아와 억지로 소은지를 밖으로 데리고 나왔고, 소은지는 결국 엔데스 현우의 품에서 완전히 기절해 버렸다.엔데스 명우가 도착했을 때는, 엔데스 현우가 기절한 소은지를 안고 병원에서 막 나오던 참이었다.“내려놔.”엔데스 명우의 목소리는 싸늘했고 위험으로 가득했다.권중호가 엔데스 현우의 뒤에서 그 소리를 듣고 경계심을 세웠다.엔데스 현우는 엔데스 명우의 목소리를 듣고도, 눈만 차갑게 번뜩였을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소은지를 안은 채 몸을 돌렸다.엔데스 명우가 반사적으로 뒤쫓으려는 찰나, 권중호가 엔데스 명우와 강혁 사이를 가로막았다.“도련님, 자중하십시오.”자중이라니.그 말 두 글자가 명우의 신경을 건드렸다. 엔데스 명우는 바로 주먹을 들어 그대로 권중호를 향해 휘둘렀다.하지만 권중호의 몸놀림은 민첩했다.엔데스 명우가 손을 뻗는 순간, 권중호는 가볍게 비켜섰다.그 짧은 틈에 엔데스 현우는 소은지를 품에 안고 무사히 빠져나갔다.엔데스 명우의 분노가 치솟았다.“강혁!”“네!” 강혁의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엔데스 명우가 소은지를 향해 품고 있는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편이지만, 지금 이건... 도대체 뭐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게다가 조금 전 소은지가 보인 싸늘함을 떠올리니, 이렇게까지 집착하는 게 과연 값어치가 있나 싶었다.그러나 엔데스 명우의 분노는 이미 참을 수 없는 정도였다.“저자를 막아.”가로막으라는 건 권중호였다.예전 같았으면, 엔데스 명우 앞에서 이런 태도를 보인 사람은 살아서 돌아가긴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엔데스 명우에겐 시비 걸 시간
두 다리는 납을 부어 넣은 듯 무겁기만 했다. 들어가야 했다. 그런데 발이 도무지 떨어지지 않았다.“대체 무슨 일인데요?”한참 만에 겨우 입을 떼었지만, 목소리는 자기 것이 아닌 듯 멀게 들렸다. 머릿속은 여전히 새하얗게 비어 있었다.왜 이렇게 된 걸까.어제 돌아설 때만 해도 분명 멀쩡했는데.엔데스 현우와는 완전히 이혼했고 엔데스 명우와 정면으로 맞서는 판으로 들어갔다. 이수연이 그 남자 곁에 머무는 시간을 가능한 한 줄이려 했다.이수연을 데리고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작은 가게를 내주겠다고 했고 퇴근할 때마다 그 작은 가게에 들러서 음식을 먹겠다고도 했다.그 눈동자에는 분명 희망의 빛이 떠오르고 있었는데 왜, 왜 고작 하루 만에 이렇게 된 걸까.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듯했다. 그런데도 누구를 원망해야 할지조차 알 수 없었다.어쩌다 일이 이렇게 흘러가 버렸을까.권중호가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병상 옆 탁자에 놓여 있었습니다. 아마 소은지 씨한테 드리려고 한 것 같습니다.”소은지는 말문이 막혔다.숨이 막혀 가슴을 치며 봉투를 받아서 들었다.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봉투에는 핏자국이 묻어 있었다.아마... 이수연의 것일 것이다. 소은지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 남자가 다녀갔어요?”그 남자. 이수연의 남편. 원래라면 가장 가까운 사람이어야 했지만 존재 자체로 늘 이수연을 위협해 온 사람.두 사람이 온 힘을 다해 도망치고 피하려 했던 바로 그 존재가 이수연의 삶 한가운데에 박혀 있었다.권중호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오지 않았습니다.”오지 않았다고? 그렇다면 이수연이 왜 갑자기...살고자 하는 마음이 그렇게 강했는데, 그럴 리가 없는데. 어쩌다 하룻밤 사이에 이런 일이...소은지 쪽도 문제투성이였지만, 그럼에도 이수연만큼은 이런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게 하려고 애써 왔다.그런데 왜. 정말 왜...소은지가 길게 숨을 들이켰다. 그러나 세상은 이미 완전히 뒤섞여 있었다.어떻게 영안실 문 앞까지 걸어왔는지조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