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소은지는 엔데스 명우의 말에서 피비린내를 맡았다.그 말에는 그녀를 상대하는 독기가 서려 있었다.예전에 소은지는 이미 이런 상황을 목격한 적이 있었다.하지만 지금의 상황을 보니 잠시 후는 더욱 독할 게 뻔했다...그렇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었을지라도 소은지의 눈에는 한 푼의 두려움도 없었다. 굳이 말하자면 전에 이유영을 놓아달라고 엔데스 명우에게 빌 때, 소은지는 그때... 딱 한 번 약한 모습을 드러냈을 것이었다.설유나가 떠난 후, 엔데스 명우는 덥석 소은지를 안아 들어 위층으로 올라갔다. 소월은 마음속으로 겁이 났지만, 소은지의 건강 상태가 염려되어 얼른 앞으로 두 발짝 뛰어가 말했다.“여섯째 도련님, 의사 선생님께서 은지 아가씨 몸이 많이 안 좋으시다고 하셨습니다. 도련님...”쿵 소리와 함께 계단 위에 놓여있던 화분이 뚝 떨어졌다. 그건 마치 소월에게 하는 경고 같았다.그리고 이에 화들짝 놀란 소월은 하려던 말을 다시 도로 삼켰다.엔데스 명우는 소은지를 카펫에 세게 내동댕이쳤다.그리고 그는 그녀에게 접근했다.소은지는 꼼짝 안 하고 바닥에 누워있었다. 엔데스 명우가 그녀에게 뭘 하든, 소은지는 마치 마음이 이미 죽은 것처럼 그에게 마음대로 좌우지 당하고 있었다. 허리에는 묵직한 힘이 전해왔다.“욱!”소은지는 아픈 나머지 끙끙 소리를 내었다.엔데스 명우에게 접혀온 뒤로 소은지가 매번 감당하는 아픔은 날이 갈수록 더 심해졌다.“난 당신이 아픔을 못 느끼는 줄 알았어!”말이 끝나자, 소은지는 엔데스 명우를 무섭게 째려보았다. 그녀의 완강함과 오만함은 아주 적당하게 한데 어우러져서 그녀의 눈 밑에 드러나 있었다.그 뒤로 엔데스 명우는 더욱 세게 했다!그는 마치 그녀가 용서를 빌어야 그만둘 것만 같았다.제일 뜨거운 타이밍에 엔데스 명우가 방심한 틈을 타 소은지는 그의 뺨을 짝하고 때렸다.이것이 바로 두 사람의 관계였다.엔데스 명우는 상대방이 빌도록 독하게 굴었고, 반대로 소은지도 꼭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격식으로 상대방을
정씨 가문에는 천지개벽의 변화가 일어났다!정국진이 다시 회사에 나타났고 그 당시 일에 관련된 모든 사람을 당연히... 한 명도 빠짐없이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백산 별장의 거실에서, 이유영은 자기 맞은쪽에 있는 키가 1.85m 되는,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그녀와 키가 비슷한 여진우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온몸에서 고귀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이틀 동안, 이유영은 여진우를 만나기만 하면 그의 얼굴 곳곳을 샅샅이 들여보곤 하였다. 그리고 그녀는 드디어 자기랑 똑같이 생긴 여진우는 얼굴을 빼면 자기와 같은 점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뭘 봐?”입을 연 여진우에게서는 타고난 날카로움이 묻어있었다.이유영은 순간 정신이 바짝 들었다.반대편의 여진우를 보며 그녀는 말하려다가 말았다. 여러 번 뜸을 들인 뒤에 이유영은 도저히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우리 둘 중에서 누가 먼저 태어났을까 생각 중이야.”“나!”이유영이 말을 마치자마자 여진우가 말했다.“너라고?”“응.”“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키를 봐서!”“...”이 말에 이유영은 순간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그동안 키는 줄곧 이유영의 트라우마였다.‘이틀 동안 지냈는데 이 사람한테 남의 고통을 밟기 좋아하는 습관이 있는 걸 왜 이제야 알았지?’“키가 나이랑 뭔 상관이야! 누가 그래?”‘이 사람도 뭐 이딴 논리가 있어.’여진우는 앞에 놓여있는 커피잔을 들어서 아주 우아하게 한 모금 마셨다.“그럼 우린 어떻게 가를 건데!?”필경 임소미는 그때 당시의 상황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이유영은 여진우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일이 이렇게 복잡하게 된 걸 안 후, 이온유의 학교로 찾아가 몰래 꼬맹이의 머리카락을 뽑았다. 그리고 그녀는 그것과 자신의 유전자 샘플, 여진우의 유전자 샘플을 함께 해외로 택배를 보냈다.이번에는 그 누구의 손도 거치지 않았다.이 배후에 도대체 누가 있는지 이유영은 이번 기회에 단단히 알아보려고 했다.“무슨 생각하는 거야?”여진우는 커피잔을 내려놓고 날카
이유영은 뾰로통한 얼굴로 강이한을 만났다.마찬가지로 강이한의 안색도 별로 좋지 않았다.이유영은 지금 그가 결과를 손에 쥐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외숙모가 손을 쓴다고 했으니 지금 그의 손에 들고 있는 결과는 아마 그가 원하던 것이 아니었다.‘설령 강이한이 원하던 결과를 손에 쥐고 있다고 하면 어쩔 건데? 이온유에 이어서 신지수! 하!’“결과가 나왔어?”이유영은 강이한을 보며 물었다.말이 끝나자, 그녀를 바라보는 강이한의 눈빛은 더욱 날카롭게 변했다.‘결과가 정말 나왔나 보네!’“서재욱에게 들킬까 봐 걱정된다면서? 왜 아이를 파리에 데리고 왔어?”날카로운 말투 속에는 질문들로 가득했다.”당신이 그렇게 대놓고 유전자 검사를 한 마당에 수단이 조금만 있는 사람이라면 알아내기 쉬운 죽 먹기잖아!”“...”“그러니까 제발 부탁이야. 검사 결과를 입 밖에 내지 말아 줘!”이유영이 당연한 말을 하자 강이한의 눈빛은 더욱 싸늘해졌다.지금 그는 냉랭하게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이 순간, 그들 사이에 있는 무언가가 이유영 때문에 철저하게 깨진 것처럼, 이유영은 강이한의 차가운 눈빛과 마주쳤다.“그런 눈빛으로 날 보지 마. 난 당신한테 미안한 짓 한 거 없어.”맞는 말이었다. 그들 사이에 있던 모든 것은 다 이유영의 잘못한 게 아니었다!말이 끝나자 강이한 눈 밑에는 날카로운 기운이 역력했다.“그날 밤은 정말 사고였어?”다시 입을 연 강이한의 말투에는 위험한 기운이 더 진해졌다.이유영은 말없이 그저 고개를 끄덕이었다. 그녀는 이 일에 대해 더 이상 얘기를 나누고 싶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기실은 말을 많이 하면 말실수를 할 까봐 이유영은 말을 아낀 것이었다,하지만 강이한의 눈에는 그녀가 더 이상 그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 않아 하는 것으로 보였다.강이한은 자리에서 슉 일어서더니 그윽한 눈빛으로 이유영을 한눈 쳐다보았다. 비록 오직 한 눈이었지만 이유영은 그의 눈 속에 깃든 무거운 아픔을 제대로 캐치했다.그 후, 강이한은 아무
일주일 뒤, 이유영은 유전자 검사 센터의 전화를 받았다. 전화 안에서 직원분은 이유영에게 말했다.“진 여사님 안녕하세요. 검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진시아 씨와 여사님은 전혀 혈연관계가 없으십니다. 그리고 진동욱 씨의 수치는 여사님과 고도로 일치하며 혈족관계가 있습니다!”“...”이 말을 들은 이유영은 굳어져 버렸다!그 후 이유영은 전화에 대고 말했다.“감사합니다.”전에 유전자 검사에 손을 쓴 사람이 있는 것 때문에 이유영은 이번에 비밀리에 유전자 검사 샘플을 택배로 센터로 보내기 전에 특별히 허위 신분을 사용하였다.역시 전에 검사 결과는 누군가가 손을 쓴 것이 분명했다.전화를 끊은 후 이유영은 바로 정국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시간에 정국진은 회사에 있었으며 그동안 로열 글로벌 내부에서는 대폭적인 인사 변동이 있었다.이뿐만 아니라 정국진은 갑자기 회장 자리로 돌아왔으며 갑자기 회사의 일에 관여하기 시작했다!서주의 프로젝트에 대해 정국진이 나서서 정리를 하는 것도 모자라 한 기업에 직격탄을 날려 그 회사를 파산하기 직전에 이르게까지 했다...정국진이 이렇게까지 독하게 손을 쓴 것을 보면 이 기업의 배후 사람이 그 당시 일에 엮인 사람인 것이 분명했다.“유영아.”그토록 기세등등한 정국진은 이유영의 전화를 받은 순간, 그의 말투 속에는 온통 온화함과 자상함이었다.“외삼촌, 얘기 드릴게 한 가지 있어요.”“뭔데?”“제가 회사로 찾아갈게요.”“그래.”전화를 끊은 이유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주방에서 나온 임소미는 이유영이 외출하려는 것을 보고 물었다.“유영아, 어디 가?”“네. 저 회사에 잠깐 다녀오려고요.”“아. 잠시만, 이걸 진우한테 가져다줘.”말을 마친 임소미는 손에 든 도시락통을 이유영에게 건네주었다.이유영은 임소미가 건네준 도시락통을 보고 잠시 멈칫했다!그녀는 원래 임소미에게 이렇게 고생하실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임소미의 행복이 가득 찬 눈을 보고는 입가까지 나온 말들을 다시 꾹 삼켜버
사실 이 2년 동안, 이유영 어깨의 부담이 크다는 것을 정국진도 보아낼 수 있었다. 이유영의 제일 큰 소원은 최대한 시간을 내서 아이의 곁에 있어 주는 것이었다.하지만 정국진의 건강 상태 때문에 철이 들고 마음이 착한 이유영은 이 일을 계속 마음속에만 담아두고 휴가 때만 퀘벡으로 가서 아이와 함께하곤 하였다.요 며칠 정국진이 계속 회사에 나왔으니, 이유영도 회사에 나올 생각이 없었으며 매일 아이의 곁에 붙어있었다.하지만 지금은 저녁까지 기다릴 수 없는 걸 보니 중대한 일인 것이 분명했다!“이온유의 일이에요.”이 말을 할 때 이유영은 목이 조금 잠겨 있었다.“...”이 말에 정국진은 순간 표정이 굳어졌다.정국진은 이유영이 전에 유전자 검사를 한 적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결과에서 이유영과 이온유가 혈족관계가 있다고 나왔다. 지금 와서 보면 그 검사 결과에 누군가가 비밀리에 손을 쓴 것이 분명했다!정국진은 한숨을 한번 내쉬었다.“우리 주변에 심란한 일이 한두 개가 아니네. 네가 줄곧 매사에 조심한 것이 옳았네!”아마도 한지음 때문인지 이유영은 줄곧 이온유의 일에 대해서는 매우 무관심한 태도였다.하지만 무관심한 건 맞지만 이번 일에 뒤에서 누군가가 손을 쓴 것이 분명했다! 이유영은 정국진을 보며 말했다.“저는 누가 한 짓인지 알아내고 싶어요!”“누가 있겠어? 서주 쪽에서 벌인 일 빼고는 그럴 사람이 없어!”서주!이 말을 들은 이유영은 표정이 또다시 굳어졌다.틀림없었다...일이 이 지경에 이른 이상 두 사람도 이유영과 강이한의 사이가 오늘 이 상황에까지 이른 것은 다 서주라는 곳과 떼어낼 수 없는 관계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분노가 솟구쳐 올랐다!사람에게는 다 성질이 있었다. 특히 이유영은 한지음의 일이 있고 난 뒤, 그녀는 누군가가 뒤에서 몰래 자기를 계산하는 것을 제일 못 견뎠다.하지만 이번 일의 배후 사람은 정말 선을 넘은 게 분명했다.“전 도대체 누가 한 짓인지 알아내야겠어요.”이유영의 뜻은
여진우가 몸을 돌려 회장 사무실로 들어가자, 정국진은 아까 이유영에게 들려있던 도시락통이 여진우의 품에 안겨있는 것을 보았다.“유영이가 방금 네게 뭐라고 했어?”조금 전, 블라인드를 투과해 정국진은 밖에서 일어난 일을 다 본 게 분명했다.이유영이 바로 전에 자신의 귀에 대고 한 말을 떠올리자, 여진우의 안색은 조금 어두워졌다.“당신들은 나를 찾아내고 날 안 믿는 거예요?”이 말을 들은 정국진은 순간 표정이 굳어져 버렸다.그러고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다소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너도 유영이를 이해해 줘야 해. 이 2년 동안, 유영이도 돌아온 후로 부담이 컸어. 주변에 일어난 일들은 다 그 아이가 못 보던 것들이어서 이토록 경비심이 강한 거야. 너도 이해해 줘!”여진우는 미간을 찌푸렸다.파리에 온 후로, 그는 정씨 가문의 모든 사람에 대해서 뒷조사했었다. 그래서 이유영의 상황도... 당연히 잘 알았다.청하시에 있을 때, 대학교를 졸업하고부터 이유영은 줄곧 강이한이 곁에 두고 기르는 카나리아에 불과했다!가정주부인 그녀는 남편에게 배신을 당한 뒤, 아주 힘겹게 자기 노력으로 다시 일어섰다. 그 과정 중의 아픔과 고통은 아마 한 여자에게 있어서, 경험해 본 사람만 알 것이었다.하지만 이유영은 남들보다 더 빠르게 걸었고 더 높이 섰다.특히 이 2년 동안 정국진의 몸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다.그래서 이유영은 아담한 체구와 작은 어깨로 거의 모든 부담을 다 자기 몸에 껴안았다. 아마도 한밤중이 되어야만 그녀는 낮에 사람들을 마주할 때의 가면을 벗어내고 자기의 귀여운 잠옷으로 갈아입고는 자신만의 공간에서 약한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서주 쪽에는...”정국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안절부절못하며 여진우를 바라보았다.여진우의 미간은 더욱 세게 찌푸려졌다!그리고 여진우는 입을 열었다.“죄송해요!”“...”이 말을 들은 정국진은 가슴이 한데 쪼여 드는 것만 같았다.다음 순간, 여진우는 계속해서 말했다.“아마 저는 유영이를 위해 부담을 나눠
“아니야. 내가 실수로 넘어진 거야.”“거짓말하지 마. 예전에 넌 10센티미터 되는 힐을 신고도 넘어진 적이 없었어.”‘지금에 와서 이렇게 쉽게 넘어진다고?’지난번에 강이한이 이유영에게 보여준 소은지의 사진에서도 소은지는 머리에 다섯 바늘 꿰맸다고 했다.‘그럼, 이번에는?’“유영아. 아무것도 묻지 말고 그저 이렇게 날 안아주면 안 돼?!”“은지야!”“내 몸에 상처를 못 본 척해줘. 내게 조금의 체면이라도 남겨줘. 응?”나긋나긋한 소은지의 말투에는 애잔한 기도가 깃들어 있었다.소은지는 이유영이 자기의 안식처가 되었으면 했지만, 또 반대로 이유영이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았으면 했다.소은지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으니, 이유영도 대충 마음속에 결론이 섰다!그리고 소은지가 엔데스 명우의 곁에 있으면서 두 사람 사이에 일어난 구체적인 일은 알 수 없었지만, 소은지가 온몸으로 엔데스 명우와 투쟁하고 있다는 것을 이유영은 알 수 있었다.“네가 떠날 수 있게 내가 안배해 줄게!”이유영은 쉰 목소리로 말했다.그녀는 소은지를 더는 엔데스 명우의 손에 놔둘 수 없었다. 이렇게 놔뒀다가 정말 소은지가 죽을까 봐 이유영은 걱정이 되었다!“나 안 떠날 거야!”“은지야!”이유영은 조급한 말투로 말했다.하지만 소은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유영아, 너 그거 알아? 난 모든 것을 잃었어. 전부 다 그 사람이 망가뜨린 거야. 난 그 사람을 가만 놔두지 않을 거야!”“...”이 순간, 소은지의 말투 속에는 온통 증오로 가득했다. 마치 엔데스 명우를 찢어버리고 싶은 그런 증오였다.이유영의 마음속 소은지는 높은 곳에 서 있는 빛나는 여자였다. 그녀에게서 나는 빛은 모든 사람의 마음을 밝히곤 하였다.혼인 속에서 고통을 받은 사람들은 소은지 때문에 구원과 해방을 받을 수 있었다.소은지의 사전에는 증오가 없었으며 그녀는 온전히 제일 공정하고 정직한 방식으로 혼인 속에 갇힌 피해자들을 구해주었다.‘그런 은지가 어떻게 짓밟힘을 당할 수 있지? 은지가 누굴 증오하다
“은지야!”이유영은 가슴이 답답해 났다.“됐어. 괜찮아. 조용히 하고 날 좀 제대로 안아줘. 응?”이유영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은지는 그녀의 말을 끊어버렸다.그리고 날씬한 허리에 힘을 더 주었다.이유영은 소은지를 안았다...이유영은 그녀가 자존심이 센 걸 알기에 지금 소은지는 엔데스 명우와 있은 일은 자기에게 알려주기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결국 이유영은 자기가 어떻게 계화정에서 걸어 나왔는지 모른다. 그녀는 엔데스 명우에게 전화를 걸어 예원산장에서 만나자고 약속했다.햇빛 아래, 트레이닝 복을 입고 골프채를 휘두르는 순간, 엔데스 명우의 행동에서 우러나온 우아함은 사람을 숨이 막히게 했다.처음 엔데스 명우를 만났을 때부터, 이유영은 하나님이 엔데스 명우를 말이 안 될 정도로 편애한다고 생각했다.엔데스 명우는 우아하게 골프채를 옆에 있는 하인에게 건네주고는 이유영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왔다.그는 입가에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난 당신이 지금 나랑 그 여자의 일에 끼어들 시간이 없는 줄 알았어요.”엔데스 명우는 이유영이 계화정에서 나온 것을 이미 안 눈치였다.이유영은 입술을 꾹 오므리며 그를 바라보았다.그리고 그녀의 눈 밑에는 쌀쌀한 기운이 맴돌았다.이유영은 앞에 놓인 레몬 물을 한 모금 마셨는데 식감이 별로 좋지 않아서 불쾌해하며 컵을 내려놓았다.그녀는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꺼냈다.“말해봐요. 어떻게 하면 은지를 놓아줄 건가요?!”“결혼 얘기는 이미 깨졌고 당신의 이 작은 몸뚱아리가... 내게 뭘 가져다줄 수 있는데요!?”엔데스 명우는 비꼬며 말했다.이 말을 들은 이유영은 기분이 나빴다.말하려면 제대로 하지 왜 매번 남의 인생을 공격하는 말을 하는지, 정말 정이 뚝 떨어졌다.이유영은 그의 이 점이 유독 싫었다.“당신이 원하는 게 뭔데요?”“그 여자가 당신한테 엄청 중요한가 보네요!”이 말을 하는 엔데스 명우의 말투는 아주 복잡했다.이유영은 입술을 꾹 다문 채 대답하지 않았다.소은지가 그녀의
공기가 얼어붙었다.“쾅!”잠시 후, 전화기 너머로 박연준이 탁자를 세게 내려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어서 박연준의 억눌린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가서 유영이를 백산 별장으로 데려가.”이유영은 미친 게 분명했다.‘감히 엔데스 셋째 도련님 같은 인물과 술집에 가?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모르는 건가?’정국진이라면 이유영이 엔데스 신우와 가까워지는 걸 절대 용납하지 않았을 것이다.특히 지금처럼 민감한 시기엔 더욱 반대가 심할 것이다. 박연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회의실을 나섰고 남은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 얼굴만 바라보았다.문기원이 급히 박연준을 따라나섰다.“네!”위험한 박연준의 모습에 용준은 식은땀을 흘리며 급히 대답했다.강이한이 각막을 이유영에게 이식해 주려고 할 때 왜 박연준이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되는 듯했다.지금 이유영 곁에 있는 사람들은 절대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었기에 그녀에게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과거의 그녀는 마치 강이한의 손바닥 위에서 반짝이는 천사 같았다. 하지만 혼란을 겪은 이후 그녀는 변했다.거만하고 방탕하게 아무하고도 거리낌 없이 어울렸다.지금 박연준이 생각했을 때, 이유영은 더 이상 고상하고 단정한 명문가의 며느리가 아니라 그저 자유롭게 떠도는 바람 같은 여자였다.최근 그녀는 서재욱과 엔데스 신우와 모호하기 짝이 없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서주에서.박연준이 차에 타기 전, 문기원이 그를 붙들었다.“선생님, 선생님!”“비켜.”“오늘 정말 중요한 회의입니다.”문기원은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지금은 서주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시기였기에 이유영을 생각하면 문기원은 머리가 지끈거렸다.정말 만만치 않은 여자였다.박연준 곁에 있는 문기원조차 그녀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박연준이 돌아서기를 기다렸다.박연준의 눈빛은 점점 어두워졌다.눈을 감은 순간, 그의 눈빛 속 날카로움은 잠시 가려졌지만 몸 전체에서 풍겨 나
옛날부터 많은 사람들은 고민에 휩싸일 때마다 이런 방식을 택했다.하지만 결국 이런 방식은 오히려 고민에 잠긴 마음을 더욱 괴롭힐 뿐이었다.한번 마음에 깊이 새겨진 근심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법이었다.“죄송합니다만 저는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그녀의 몸은 항상 술을 마시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예전에 건강이 좋지 않기도 했고 어렵게 다시 찾은 시력인 만큼 그녀는 술과 더욱 멀리하게 되었다.하지만 오늘 진영숙이 백산 별장에서 벌인 일을 생각하니 이유영의 마음속에서는 무언가가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하지만 결국 그녀는 그 감정을 억눌렀다. 그녀는 그 감정이 무엇인지 알고 싶지 않았다.회피하는 것인지 아니면 받아들인 건지 알 수 없었다.남자는 그 말을 놀란 표정으로 멍하니 있었다.“죄송해요. 제가 깜빡했네요.”남자의 목소리는 유난히 부드러웠다.“괜찮아요.”“...”“이제 가도 될까요?”“술을 마시지 않아도 즐길 수 있잖아요.”“...”하지만 이유영은 이런 곳을 좋아하지 않았다.특히 많이 노출된 옷을 입은 여자들을 보면 마음이 불편했다.하지만 남자는 그녀에게 반항할 기회를 주지 않았고 그녀를 향락의 세계로 이끌었다....한편 박연준은 서주에서 중요한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용준의 전화를 받은 그의 가슴이 쿵쾅거렸다.“그쪽은 괜찮아?”진영숙에 관해 묻는 것이었다.이유영이 인정사정없을 거라는 걸 박연준도 알고 있었다.과거 강이한 곁에 있을 때의 이유영을 떠올렸다. 그때의 그녀는 적어도 강이한에게 만큼은 너무 몰아붙이지 않았었다.그래서 진영숙이 아무리 이유영을 괴롭혀도 그녀는 어떻게든 참고 견뎠다.지금은 성격이 점점 더 나빠졌다고 해야 할까? 아예 참는 것을 포기한 것 같았다.용준은 진영숙의 현재 상황을 박연준에게 설명했고 이미 좋지 않았던 박연준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회의 끝나고 바로 갈게. 일단 진정시켜.”박연준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그런 일이 있었는데 과연 내가 진정시킬 수 있을까?’“네!”“유영이는
“박연준, 네가 강이한과 이렇게 가까운 사이였고 또 이제는 강이한 어머니까지 지키려 한다는 사실을 난 여태 몰랐네.”그 말은 날 선 조롱처럼 들렸다.동시에, 과거 강이한과 박연준의 사이가 이유영의 눈에 어떻게 비쳤는지 되새기게 했다.그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이유영의 냉정한 말에 박연준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어떤 말도 꺼내지 못했다.“다른 일 있어서 먼저 끊을게.”이유여은 박연준의 대답을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망설임 없이 전화를 끊어 버렸다.사랑이란 그저 우스운 감정에 불과했다.차는 천천히 백산 별장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지혁 씨.”“네.”“지혁 씨는 사랑해 본 적 있어요?”이유영은 지혁을 향해 불쑥 물었다.예전의 이유영은 사랑이란 존재를 믿어 왔지만 지금은 아니다. 누군가를 아무 이유도 없이 사랑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그토록 반짝이던 사랑이란 단어 뒤편에 어떤 진실이 숨어 있었는지 이젠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이유영의 말을 들은 지혁은 묵묵히 앞을 응시하며 손에 힘을 주었다. 핸들을 쥔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였다.이유영은 굳이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쾅!”그 순간, 갑작스러운 충격음과 함께 추돌 사고가 발생했다.이유영은 아픈 이마를 짚고 있었고 지혁은 차에서 내려 사고 처리를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차 문이 열렸다.“아가씨.”지혁이 이유영 앞에 공손하게 나타났다.“무슨 일이에요?”“셋째 도련님 차입니다.”“...”그 말을 듣고 그녀의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자꾸 나타나는 셋째 도련님의 존재에 우연한 사고인지 아니면 이미 계획된 일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이유영은 미간을 짚으며 말했다.“어떻게 된 거예요?”“셋째 도련님께서 아가씨를 만나고 싶다고 하십니다.”이유영은 이 전설 속의 셋째 도련님을 굳이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를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거렸다.특히 엔데스 가문과 정씨 가문의 관계를 생각하면 더 엮이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그는 밖에서 이유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이유영은 몰랐다. 그 아이가 결국 진영숙이 데려온 의사로 인해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게 될 줄은.과거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아!”분노가 치밀수록 이유영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고 진영숙은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그녀는 이유영이 이렇게까지 자신을 몰아세울 줄은 꿈에도 몰랐다.“놔, 놔 이 미친년아! 악!”“짝!”이유영의 손바닥이 진영숙의 뺨을 후려쳤고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방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말릴 용기를 잃고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이유영의 눈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에 다시 한번 움찔하고 말았다.이유영의 행동에 소리 내는 사람 하나 없이 모두가 숨을 삼켰다. 진영숙은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결국 이유영은 진영숙을 놓아주며 말했다.“주제 파악하라는 의미에서 그랬어요. 당신은 할머니라는 말을 입에 올릴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에요.”그렇다. 진영숙은 할머니가 될 자격이 없었기에 이유영도 그녀를 아무 감정 없이 내던질 수 있었다.진영숙의 귀에는 윙윙거리는 소리만 맴돌았다. 머릿속이 멍해진 채 한참을 그 자리에 얼어 있었다.그 사이 이유영은 조용히 자리를 떴다.“저년이 감히...”감히 뭐라고?예전엔 강이한 곁에서 순한 토끼처럼 보호받더니 지금은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이유영이 밖으로 나왔을 때, 차가운 밤바람이 그녀를 감쌌다.그 순간, 가슴속의 억눌린 감정이 스르르 풀리는 듯했다.지혁은 이유영이 모습을 드러내자 용준을 밀쳐내고 앞으로 다가왔다.“아가씨.”“가요.”용준은 여전히 당당한 이유영의 모습을 보며 급히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이유영의 휴대폰이 계속 울리기 시작했다.화면에 떠 있는 이름은 박연준이었다.차에 오르자마자 전화를 받은 이유영의 모습은 조금은 가벼워진 듯했다.“여보세요.”“어디야?”“풍산.”“유영아...”전화 너머의 남자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박연준은 지금 이유영이 강씨 집안을 어떤 태도로 맞서고 있을지 잘 알고 있었다.
과거 강씨 집안에서 강이한이 곁에 없는 동안에는 진영숙의 말에 고스란히 따를 수밖에 없었다.홍문동으로 이사한 이후도 마찬가지였다. 진영숙이 찾아오면 이유영은 그녀의 지시에 고분고분 따랐고 감히 그녀의 말에 거역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하지만 지금은 달랐다.‘도대체 언제부터일까?’아마 강이한과의 이혼을 결심한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그즈음부터 이유영은 진영숙의 말에 더 이상 고분고분 따르지 않았다.그땐 고작 진영숙의 지시를 어기는 정도였지만 지금은 전혀 달랐다.“감히 나한테 손을 대?”한참 뒤에야 겨우 말을 꺼낸 진영숙이 이유영을 노려보았다. 눈빛에는 이빨을 드러낸 짐승 같은 기세가 실려 있었다.이유영은 고작 이런 걸로 화를 내는 진영숙이 가소로웠다.이유영은 아직 다 마시지 않은 따뜻한 물이 담긴 잔을 들고 망설임도 없이 진영숙의 얼굴에 뿌렸다.“앗!”진영숙은 비명을 질렀고 얼굴이 화끈거리며 달아올랐다.“손을 댄다는 건 이런 거예요.”이유영은 바닥에 주저앉은 진영숙을 무표정하게 내려다보았다.“퍽!”손에 들고 있던 잔이 손끝에서 떨어지며 바닥에 산산조각 났다. 그 순간, 방 안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했다.예전의 풍산 사람들이 기억하던 이유영은 언제나 조용하고 온순한 여인이었다. 누가 감히 지금 이유영의 이런 모습을 상상이나 했겠는가?분노로 찬 이유영은 물불 가리지 않는 모습이었다.진영숙 역시 이유영을 증오 가득한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예전에도 이유영에게 자주 화가 났지만 오늘처럼은 아니었다.진영숙은 분노가 목 끝까지 치밀어 올라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이유영은 격하게 숨을 들이마신 진영숙을 향해 차갑게 쏘아붙였다.“다시 백산 별장에 가거나 우리 가족 근처에 얼씬거리면 그땐 당신 진짜 가만 안 둬.”그 마지막 한마디는 징벌처럼 무겁고 섬뜩할 만큼 냉정했다.월이는 이유영의 세상 전부이자 목숨과도 같은 존재였다.힘들게 월이를 낳으면서 강씨 가문은 이 아이와 아무 상관도 없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이제 와서 아
끊임없이 박연준을 나쁜 사람이라고 말하던 강이한의 모습을 이유영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그때 두 사람은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 난 사이였다.늘 서로를 원수처럼 대했고 그 모습을 본 이유영도 두 사람 사이에 과거의 악연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 악연이 한 여자 때문이라는 건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그 여자로 인해 두 사람의 관계가 틀어지기 전까지는 무척 가까운 사이였다는 사실은 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모든 게 이토록 명백했는데도 불구하고 이유영만은 자신에게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알지 못했다.그 7년 동안 강이한은 얼마나 다정했던가?그 친절함 속에 실은 다른 여인을 향한 마음이 숨겨져 있었다는 것을 이유영은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박연준은 강이한의 어머니를 보호하고 있었다.이건 과거의 이유영이라면 상상조차 못 했을 일이었다. 지금 이 모든 상황을 바라보며 자신이 얼마나 우스웠는지 다시 실감하고 있었다.“어쨌든 강이한 씨의 어머니잖아요.”조금 전 용준이 한 말을 들었을 때, 이유영은 마치 우스운 농담을 듣는 듯했다.“형님이 돌아오신 후에 처리하는 게 어떻겠습니까?”용준은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 하지만 그 공손함 속에는 이유영을 절대 안으로 들여보내지 않겠다는 단호함이 있었다.이유영은 이미 화가 머리끝까지 난 상태였다.진영숙이 월이를 데려가려 한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부터 그녀의 분노는 가슴 깊이 타오르고 있었다.“지혁 씨.”그녀는 차가운 목소리로 지혁을 불렀다.지혁은 그녀의 뒤에 있다가 곧장 앞으로 나섰다.“네, 아가씨.”“전 들어가야겠어요.”이유영이 내뱉은 짧은 문장은 얼음처럼 차가웠다.용준은 지금까지 이유영의 이런 목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을 것이다. 그 냉혹함에 그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다.“네!”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지혁은 곧장 앞으로 다가섰다. 분위기는 마치 폭발할 듯한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이유영은 어지럽게 엉킨 현장을 냉정히 바라보며 우아하게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용준은 지혁을 막으려
이유영이 집으로 돌아온 뒤, 임소미는 사람을 시켜 조사를 시작했고 이유영이 강이한 곁에서 결코 평온한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이내 알게 되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였는지는 알지 못했다.며칠 동안 진영숙의 광기에 가까운 모습을 목격한 뒤에야 그녀는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의 남편이 왜 서주로 떠나서 죽음을 가장했는지를.모두 이 여자 때문이었다. 진영숙이 그토록 괴롭게 만들었던 것이다.남편뿐만 아니라 지금 강이한의 행방조차 그녀는 알지 못했다. 여자로서 그 책임은 결코 작지 않았다.임소미는 감정을 가라앉힌 후에야 이유영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진영숙이 사실은 월이를 데려가려 했다는 것을.“며칠 동안 데려가겠다고 했다고요?”“그래서 내가 화가 났던 거야.”진영숙의 행동을 보면 며칠은 말뿐인 핑계였다.그녀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임소미는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이제 아무것도 없고 오직 손녀만 남았다고? 과연 손녀의 의미를 알고는 있는 사람인가?’이유영은 말없이 얼굴을 굳혔다.진영숙은 아이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집착하고 있었던 것이다.“유영아, 이번 일은 그녀에게 연민을 가질 필요 없어.”임소미의 목소리엔 단단한 결심과 냉기가 섞여 있었다.진영숙은 자신이 모든 걸 잃었기 때문에 아이라도 데려가고 싶다고 했지만 그런 상실에 대해 임소미는 전혀 동정하지 않았다.“알겠어요, 엄마. 제가 처리할게요.”이유영은 어머니를 안심시켰지만 그녀의 목소리 역시 차가웠다.“어떻게 처리할 거니?”‘어떻게 처리할까?’이유영의 눈빛이 점점 깊어졌다.그녀는 당연히 생각한 방법이 있었다.임소미를 진정시킨 뒤, 이유영은 백산 별장을 나섰고 밖에선 지혁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아가씨.”“풍산 그룹으로 가요.”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마음이 무거웠다. 가능하다면 평생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그곳은 과거가 덕지덕지 붙은 장소였고 이유영은 그것들과 멀어지고 싶었다.“윙윙윙.”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발신자는 박연준이었고 이유영은 망설임
이유영에게는 참으로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그녀는 임소미의 품에 파고들며 가느다란 팔로 어머니의 허리를 꼭 안았다.“엄마, 미안해요. 제가 잘못했어요.”그녀는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었다.오래전 소은지는 이렇게 말했었다. 강이한은 연애 상대론 괜찮지만 결혼은 다르다고.그때 변호사였던 소은지는 경제력이나 사회적 지위가 맞지 않는 결혼이 얼마나 불행한지를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녀가 강이한과 결혼을 결심했을 때, 소은지는 그녀를 말렸었다. 소은지는 그녀의 결혼을 말렸던 유일한 사람이었다.결국 소은지의 말은 모두 옳았음이 증명됐다.끝났다고 믿었던 그 관계는 여전히 그녀의 삶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고 심지어 가족들까지도 그 여파에 시달리고 있었다.그때, 등에 따뜻한 손길이 느껴졌다.“괜찮아. 엄마가 있잖아. 앞으로는 아무도 너를 괴롭히지 못할 거야.”이유영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고 눈물이 눈가에 가득 차올랐다. 참으려 해도 눈물이 뺨을 따라 끝없이 흘러내렸다.예전에도 어머니는 그녀를 이렇게 품어주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그녀의 세계는 완전히 무너져 버렸고 그 이후로 어떤 일이 일어나면 모두 혼자 견뎌야만 했다.임소미가 감싸안아 주자 이유영의 마음은 다시금 따뜻함으로 물들어갔다.그리고 이 감정은 그녀의 마음 깊은 곳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앞으로는 아무도 엄마를 괴롭히지 못하게 할 거예요.”그녀가 말한 '아무도'는 명백히 진영숙을 가리키고 있었다.그렇게 오랫동안 떨어져 지낸 사람에게서 다시 이런 고통이 돌아올 줄은 몰랐다.“엄마가 널 지켜줄게. 꼭 지켜줄게.”임소미는 그 말을 반복하듯 속삭였다.오늘 밤, 임소미의 마음속에 일어난 파장은 누구도 헤아릴 수 없었다.진영숙이 막말을 퍼붓고 손까지 쓰는 모습을 보며 이유영이 강씨 가문에서 겪었을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를 임소미는 문득 깨달았다.사모님의 우아한 모습은 진영숙에게서 찾아보기 힘들었다.불편한 감정이 들 때마다 손부터 나가는 사람이었고 그런 사람과 살아야
이유영이 돌아오고 그녀는 진영숙과 임소미 사이에서 벌어진 격렬한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두 명의 도우미가 진영숙을 붙잡아 끌어내고 있었다.임소미의 얼굴은 창백했고 가슴은 거세게 요동치고 있었다.그녀는 순간적으로 분노가 솟구쳤다.임소미는 이유영을 보자마자 재빨리 붙잡고 말했다.“너 먼저 위로 올라가.”“무슨 일이 있었어?”이유영이 물었다.정씨 가문에 돌아온 지 오래된 만큼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가 어떤 사람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우아하고 온화한 사람인 만큼 지금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임소미가 대답하기도 전에 진영숙이 화를 내며 소리쳤다.“이유영, 넌 누가 너한테 눈을 기증해 줬는지 모르지? 강이한이 네게 빚을 졌다고 하지만 사실은...”“입 다물어!”진영숙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임소미가 단호하게 그녀의 말을 끊었다.이유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조용히 서 있었고 진영숙은 여전히 무언가 더 말하고 싶어 했지만 더는 이어가지 않았다.그녀는 분노로 가득 찬 눈으로 이유영을 노려보았고 그 눈빛엔 전례 없는 증오가 서려 있었다.예전에 강이한과 결혼했을 때도 진영숙은 이유영을 이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한 번도 따뜻한 시선을 준 적이 없었다.그리고 지금, 용성시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그 증오가 더욱 깊어진 듯했다.“유영아, 너 먼저 위로 올라가.”“엄마.”“올라가!”임소미는 이유영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격하게 소리쳤다.임소미가 이런 식으로 이유영에게 말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지금의 상황이 임소미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었는지 그대로 드러났다.이유영은 무언가 더 묻고 싶었지만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에 말문이 막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뒤돌아 안으로 들어갔다.그 순간, 진영숙은 자신을 붙잡고 있던 도우미들의 손을 뿌리치고 이유영의 뒷모습을 향해 소리쳤다.“이유영, 강이한은 너에게 빚진 게 없어. 강이한은 오히려 너 때문에 모든 걸 잃었어. 너야말로 가장 잔인한 사람이야. 네 눈조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