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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화. 거짓말 속의 날짜

作者: 안나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06 18:01:57

연수는 문서 하단에 적힌 날짜를 다시 확인했다.

2006년 5월 12일.

하정우 산업의 핵심 기술을 태성그룹 계열사로 이전하기로 결정했다는 날짜였다.

연수는 가방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평창동 서재에서 촬영한 사진을 열어 뒷면에 적힌 날짜를 확인했다.

2006년 8월 26일.

아버지와 강 회장이 공동 문화행사장에서 나란히 찍힌 날이었다.

사진 속 두 사람 앞에는 기술협력 계약서가 놓여 있었다.

아버지는 강 회장 곁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억지로 웃음을 지은 얼굴이 아니었다.

무언가를 설명하는 아버지의 표정에는 새로운 사업을 앞둔 기대감이 선명하게 담겨 있었다.

이민우가 가져온 문서대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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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미한 실루엣의 그대에게   142화. 이민우의 덫

    진혁에게서 CK 물류에 관한 보고가 도착한 것은 새벽 두 시가 넘어서였다. 박성규가 남긴 수첩 속 메모. M-17 / CK 물류 / 지하 보관실. 그 짧은 문장을 시작으로 진혁은 폐업 법인의 기록과 토지대장, 건물 소유권 변경 내역을 밤새 추적했다. CK 물류는 서류상으로 십 년 전에 폐업한 회사였다. 하지만 도심 외곽에 자리한 물류 터미널은 철거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었다. 현재 소유자는 이창석이나 이민우와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작은 투자 법인이었다. 문제는 그 투자 법인의 대표가 실체를 확인하기 어려운 인물이라는 점이었다. 대표자는 오랫동안 해외에 체류 중이었고, 국내에서 회사를 운영한 기록도 없었다. 그럼에도 세금과 건물 관리비, 화재보험료는 단 한 번도 연체되지 않았다. 누군가 건물을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사라지지 않게 관리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진혁이 마지막으로 찾아낸 기록은 더욱 수상했다. 정우 산업이 파산한 직후, 수십 개의 문서 상자가 CK 물류로 옮겨졌다는 운송 기록이었다. 운송 지시자의 이름은 지워져 있었지만 도착지는 분명했다. 지하 보관실 M-17. 그리고 그날 이후 그 공간이 다시 열렸다는 공식 기록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태성은 진혁이 보내온 자료를 몇 번이고 살펴봤다. 모든 단서가 지나치게 완벽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그래서 더욱 의심스러웠다. 마치 누군가 자신들이 그곳까지 찾아오기를 기다리며 길을 닦아놓은 것 같았다. 태성은 옆에서 자료를 읽고 있던

  • 희미한 실루엣의 그대에게   141화. 장부를 기다리는 자

    “또 무슨 일이 생기는 건 아니겠죠?” 박성규의 아내가 불안한 얼굴로 두 사람을 바라봤다. 연수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사모님과 가족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하겠습니다.” 태성도 단호하게 말했다. “오늘 저희가 찾아온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조치하겠습니다.” “필요하시면 안전한 거처도 마련해드리겠습니다.” 여자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오랜 시간 누구도 믿지 않고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러나 잠시 후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태성은 카세트테이프와 수첩을 증거물 보관 봉투에 조심스럽게 넣었다. “원본은 최대한 훼손되지 않도록 전문 기관에 복원과 감정을 맡기겠습니다.” “복사본을 먼저 만들고, 원본은 사모님 동의 없이 사용하지 않겠습니다.” 여자는 박성규의 사진을 한 번 바라본 뒤 말했다. “가져가요.” “그 사람도 이걸 숨기기만 하려고 남긴 건 아닐 테니까.” 연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깊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아버지의 진실만 밝히는 게 아니라 박 상무님의 진실도 함께 밝힐게요.” 박성규의 아내는 씁쓸하게 웃었다. “우리 남편이 잘못이 없었다고 말하지는 마요.” 연수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 사람도 돈을 받았고, 다른 사람의 회사를 망가뜨리는 일에 가담했어요.” 여자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겁을 먹었다

  • 희미한 실루엣의 그대에게   140화. 원본 장부

    [박성규: 이건 너무 위험합니다.] 지지직거리는 잡음 사이로 들려온 목소리에 거실 안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박성규의 아내는 두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카세트플레이어를 바라봤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남편의 목소리를 단번에 알아본 듯했다. 잠시 후 다른 남자의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이창석: 무엇이 그렇게 위험하다는 거지?] 연수의 눈빛이 흔들렸다. 목소리의 주인은 이민우의 아버지, 이창석 회장이었다. [박성규: 정우 산업의 기술을 그렇게 넘기면 강 회장님이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이창석: 강 회장은 늙었어.] 잠시 종이가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창석: 사람을 믿는 버릇도 여전하고.] [박성규: 그래도 이건 강 회장님이 승인한 일이 아닙니다.] [이창석: 승인한 것처럼 만들면 되지.] 연수의 손끝이 차갑게 식었다. 태성은 탁자 아래에서 그녀의 손을 더욱 단단히 잡았다. [이창석: 정우 산업의 기술을 별도 법인으로 넘겨.] [이창석: 개발권까지 우리가 가져오면 강 회장은 나중에 보고만 받으면 돼.] [박성규: 하정우 사장이 계속 면담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연수의 숨이 멎는 듯했다. [이창석: 막아.] 낮고 태연한 한마디였다. 그러나 그 짧은 명령 하나가 하정우의 마지막 희망을 완전히 끊어놓았다. [박성규: 그 사람이 직접 강 회장님을

  • 희미한 실루엣의 그대에게   139화. 오래전 묻힌 목소리

    태성과 연수는 조심스럽게 집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은 오래되고 좁았다. 가구는 낡았지만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벽 한쪽에는 젊은 시절 박성규와 아내가 함께 찍은 사진이 걸려 있었다. 사진 속 박성규는 지금까지 서류에서 보았던 딱딱한 얼굴과 달리 밝게 웃고 있었다. 여자는 두 사람을 낮은 탁자 앞에 앉혔다. 그리고 한동안 안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연수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움켜쥐었다. 태성이 탁자 아래에서 그녀의 손을 조심스럽게 감쌌다. 따뜻한 체온이 전해졌다. 연수는 그의 손을 마주 잡았다. 잠시 후 박성규의 아내가 오래된 철제 상자 하나를 들고 나왔다. 상자는 녹이 슬어 있었고 작은 자물쇠가 달려 있었다. 여자는 목에 걸고 있던 열쇠로 자물쇠를 열었다. 상자 안에는 낡은 수첩과 사진 몇 장, 오래된 카세트테이프 하나가 들어 있었다. 테이프의 라벨에는 날짜가 적혀 있었다. 2006년 4월 17일. 정우 산업이 부도 처리되기 약 한 달 전이었다. 연수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이게…….” “남편이 감옥에 가기 전에 맡긴 거예요.” 박성규의 아내가 말했다. “언젠가 자신이 죽고 난 뒤 누군가 이걸 찾으러 올 거라고 했어요.” 그녀의 시선이 태성에게 향했다. “강 회장이 아니라 그 아들이 올 거라고 했죠.”

  • 희미한 실루엣의 그대에게   138화. 박성규 유족

    비가 그친 뒤에도 하늘은 여전히 잿빛이었다. 낮게 내려앉은 먹구름 사이로 희미한 햇빛이 번지고 있었지만, 젖은 도로 위에는 아직 차가운 빗물이 고여 있었다. 태성이 운전하는 차는 서울을 벗어나 강원도 원주 외곽으로 향하고 있었다. 조수석에 앉은 연수는 무릎 위에 놓인 낡은 서류 봉투를 몇 번이고 내려다봤다. 봉투 안에는 진경이 이민우의 집무실에서 몰래 촬영한 문서들이 들어 있었다. 박성규 상무의 자금 운용 기록. 정우 산업의 기술 이전 승인서. 하정우가 강 회장과의 면담을 요청했던 기록. 그리고 가장 마지막 장에 적혀 있던 한 줄. 박성규 사망 전, 가족에게 개인 물품 전달. 음성 기록 보관 가능성 있음. 그 짧은 문장이 태성과 연수를 이곳까지 오게 했다. “많이 긴장돼?” 운전대를 잡은 태성이 조용히 물었다. 연수는 잠시 창밖을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요.” “무서우면 차에 있어도 돼.” “아니요.” 연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제 아버지에 관한 일이잖아요.” 그녀는 서류 봉투 위에 손을 올렸다. “아빠가 마지막까지 밝히고 싶어 했던 진실이라면, 저도 직접 확인하고 싶어요.” 태성은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 대신 운전대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이번 일은 연수의 과거인 동시에 자신의 가족이 외면했던 과거이기도 했다.

  • 희미한 실루엣의 그대에게   137화. 아버지가 남긴 마지막 목소리

    태성은 그녀가 떠난 자리를 한동안 바라봤다. 용서할 수 없는 일은 분명히 남아 있었다. 연수가 받은 상처도, 회사가 입은 손해도, 진경이 저지른 잘못도 한순간의 참회로 사라질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태성은 그녀가 내민 진심까지 거짓이라고 부정할 수는 없었다. 진경은 자신을 스스로 심판대 위에 올려놓았다. 그것은 용서받기 위한 계산이 아니라, 더는 자신의 잘못에서 도망치지 않겠다는 마지막 용기였다. 태성은 테이블 위에 남겨진 서류를 다시 펼쳤다. 진경이 가져온 자료는 명백했다. 정우 산업을 무너뜨린 자금의 흐름. 박성규가 기술 자료를 빼돌린 과정. 이민우의 아버지가 개입한 정황. 그리고 강 회장에게 전달되지 않았던 하정우의 면담 요청서까지. 이 자료라면 이민우가 만들어놓은 거짓의 사슬을 끊을 수 있었다. 태성은 문서를 날짜순으로 다시 정리했다. 그러던 중 마지막 장에 끼워진 작은 메모 한 장을 발견했다. 그것은 정식 보고서가 아니었다. 누군가 급히 적어놓은 듯한 짧은 기록이었다. 박성규 사망 전, 가족에게 개인 물품 전달. 그 아래에는 현재 거주지로 추정되는 주소가 적혀 있었다. 강원도 원주 외곽의 오래된 주택이었다. 태성의 시선이 마지막 문장에 멈췄다. 음성 기록 보관 가능성 있음. 태성의 눈빛이 흔들렸다. “음성 기록…….” 박성규가 생전에 남긴 녹음 파일이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 안에는 정우 산업의 파산과 이민우 아버지의 거래를 증명할 목소리가 담겨 있을지도 몰랐다. 태성은 곧바로 진혁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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