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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41화

결국 정겨울은 김청산에게 “훈육”을 당하고 말았다.그녀는 김청산에게 예훈을 더 이상 깨물지 않겠다고 약속해서야 비로소 이 사건을 넘길 수 있었다.친엄마 품으로 돌아오자 꼬마는 엄마를 향해 환한 미소로 반겨주었고 정겨울의 마음은 순식간에 녹아내렸다.‘스승님이 나에게 주던 애정을 이 녀석에게 다 뺏긴 이유를 이제 알겠네. 귀엽기 그지없는 녀석!'예씨 가문이 풍성한 점심을 차려놓자 모두 잠시 앉아 있다가 함께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식사 후 모연정과 정겨울은 하예정과 함께 정원을 거닐며 산책했다.하예정은 잘 먹는 편이지만 배가 부르자 속이 더부룩해져 움직이면서 소화하려고 했다.소화가 잘되면 또 먹고 싶어 하는 임신부였다.모연정이 웃으며 말했다.“지금 이 시기는 태아가 급성장하는 단계라 영양분을 많이 필요로 하니까 돌아서면 배고파질 때예요. 임신부들은 다 그런 거죠. 적게, 자주 먹어야 하죠. 저는 예정 씨보다 더 많이 먹었어요. 출산하니 체중도 바로 정상으로 돌아오더라고요.”모연정은 쌍둥이를 임신했기에 두 아이에게 더 많은 영양이 필요했다. 그녀는 임신 기간 내내 먹고 마시는 것에 매달려야 했던 기억이 났다.마치 토끼처럼 입이 멈추는 법이 없었다.정겨울이 말을 이었다.“저는 별로 느낌이 없었어요. 너무 바빠서 그랬나 봐요.”그녀는 임신 중에도 환자들을 치료하느라 분주했다.모연정이 정겨울을 보며 어이없는 듯 웃어버렸다.정겨울은 임신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더니 어색하게 웃으며 모연정을 살짝 때리며 자기를 놀렸다고 투정을 부렸다.“태윤 씨가 예정 씨를 데려다주기로 하지 않았어요?”모연정이 화제를 돌렸다.“우리 남편은 급히 출장 가야 해서 못 왔어요. 저는 몇 분의 할아버지들과 함께 왔으니 그도 안심할 거예요.”오히려 더 안심하는 모양이었다.하예정의 얼굴은 곧 어두워졌다.두 친구가 말을 잇기 전에 하예정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사실 저도 알고 있거든요. 태윤 씨가 저를 속이고 있다는걸요. 모두가 저만 속이고 진실을 숨기고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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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42화

2년간의 성장을 거쳐 하예진은 더욱 뛰어난 능력을 갖추게 되었고 이경혜의 젊은 시절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모연정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하예정은 고개를 돌려 정겨울을 바라보며 물었다.“겨울 씨, 언제 관성으로 출발할 거예요? 오늘 밤? 아니면 내일?”정겨울은 솔직하게 대답했다.“오늘 밤으로 생각 중이에요. 큰 어르신께서 이 순간을 수십 년간 간절하게 기다리셨거든요. 그 믿음 하나로 지금까지 살아오셨어요.”정겨울은 피식 웃으며 덧붙였다.“근데 제가 간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어요?”“신의님도 막 돌아오셨는데 또 바로 떠나실 리 없고 우리 비서 할아버지는 연세도 많고 질환도 많으셔서 의사 선생님이 항상 곁에 있어야 하니까. 신의님도 안 가시면 겨울 씨가 가는 거겠죠. 대충 생각하면 알 수 있잖아요. 그리고 기타 어르신들도 내일쯤 귀가하신다고 하시면서 실제로는 강성으로 다시 가실 거잖아요.”아무도 하예정에게 이 이야기를 해준 적 없었고 전부 그녀의 추측과 분석이었다.정겨울이 감탄하며 말했다.“예정 씨는 너무 똑똑하네요. 상황 판단도 잘하네요. 태윤 씨가 예정 씨를 그렇게 사랑하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어요. 안심해요. 아무 일도 없을 거니까. 사악한 것이 정의를 이길 수 없다는 걸 믿어봐요. 제가 곁에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다치더라도 제가 반드시 살려낼게요. 예정 씨가 아끼는 사람 중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관성으로 모셔와서 예정 씨와 함께 설날을 보낼 수 있도록 할게요.”모연정도 상황을 지켜보더니 이내 눈치채며 하예정을 위로했다.“예정 씨는 편하게 태교에만 집중해요.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다른 건 몰라도 몇 분의 어르신이 가시면 절대 문제없을 거예요. 우리 큰오빠네 부부도 요즘 한가하신 것 같은데 제가 바로 연락해서 큰오빠랑 형수님도 가보시라고 할게요. 재미 좀 보게요. 우리 형수님은 이백훈 어르신의 제자시거든요. 어르신들이 강성에 간다는 걸 알면 꼭 가실 거예요.”모연정의 친오빠 부부는 결코 평범한 인물들이 아니었다.“연정 씨,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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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43화

모연정이 말을 이었다.“아이들은 살찌는 거 걱정 안 해도 돼요. 애들은 원래 활동량이 많아서 금방 살이 빠지거든요. 용정이도 한때 통통해졌던 적이 있었는데 그냥 잠깐이더라고요. 금방 원래 체형으로 돌아왔어요. 우빈이도 꾸준히 무술을 배우고 폭식만 하지 않으면 살찔 염려는 없을 거예요.”그녀는 하예정을 향해 따뜻하게 말했다.“예정 씨, 겨울 씨의 말도 일리가 있어요. 다들 원래 이런 일에 관심이 많아서 제가 부르지 않아도 스스로 찾아갈 성질이니까 너무 부담 느낄 필요 없어요.”모연정은 하예정이 강성 상황을 지나치게 걱정하지 않도록, 또 자신의 오빠 부부를 보낸 것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하는 중이었다.단순히 지루해하던 형수님께 재미있는 일거리를 제공한 것뿐이었으니까.“네. 걱정 안 할게요. 우리 언니가 설날에 돌아오기만 기다릴 거예요.”하예정은 고마움에 머리를 끄덕였다. 전태윤이 일부러 그녀를 이곳에 데려와 모연정 일행과 만나게 한 깊은 뜻을 이제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모연정 일행의 배경은 실로 막강했다. 전씨 가문의 큰며느리로서 큰이모 외에 든든한 후원자가 없는 하예정에게, 이 친구들은 진정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었다. 어려움을 겪을 때면 한 명도 빠짐없이 손을 내밀어주는 진정한 친구들.전태윤은 먼 미래까지 하예정을 위해 생각해 주었다. 그의 모든 계획은 오직 그녀를 위한 것이었다.아내의 미래를 위해, 더 편한 길을 걷게 하려고 모든 것을 생각해두고 길을 닦아두었으니 이런 남편을 만난 것은 전생에 나라를 구하지 않고서야 얻을 수 없는 복인듯했다.전태윤의 그런 마음을 이제야 알아챈 하예정은 문득 강성으로 날아가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러나 결국 참아냈다.하예정만 무사하고 그들 사랑의 결실을 잘 지키는 것이 바로 전태윤에게 최고의 보답이었다.곧 세 사람은 아이들의 환한 웃음소리를 들었다.용정이가 우빈을 데리고 밖으로 뛰쳐나왔다.두 아이는 각자 손에 바람개비를 들고 달리며 회전하는 바람개비를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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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44화

“맞아요! 동명 오빠는 친구들한테 배운 대로만 했죠.”“이모!”“모 엄마!”두 꼬마가 달려왔다.“용정아, 그 바람개비는 어디서 났어?”모연정은 알고 있으면서도 일부러 물었다.“우빈이가 저한테 선물해 준 거예요. 엄마, 제 바람개비가 예쁘죠? 오늘 바람도 세서 정말 재미있어요. 연이라도 있으면 더 좋았을 텐데.”용정은 우빈에게서 선물을 받아 들뜬 모습으로 계속 말했다.“엄마, 우빈이가 저한테 장난감도 주고 맛있는 거랑 예쁜 그림책도 줬어요!”모연정은 미소를 지으며 용정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그럼 우빈한테 고맙다고 말은 했어? 네가 준비한 선물은 줬어?”“네! 물론이죠. 우빈이도 제가 준 선물을 매우 좋아해요.”우빈이 말을 이었다.“모 아줌마, 용정이가 준 선물은 정말 특별해요.”용정이가 준 선물은 일반 매장에서는 살 수 없는 물건이었다. 용정의 스승님들이 직접 만든 수공예품으로 실물과 똑같이 생긴 작은 동물들이었다.우빈은 그것을 무척 좋아했다.만약 하예정이 그것을 본다면 그녀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말할 게 뻔했다. 하예정은 예전에 부업으로 수공예품을 만들어 온라인에서 판매한 적이 있었다.지금도 전태윤과 전이진의 사무실에는 하예정이 만든 작품들이 놓여 있었고 전씨 할머니한테도 선물한 적 있었다.“서로 주고받은 선물을 마음에 들어 한다니 다행이네. 그럼 어서 가서 놀아.”모연정의 부드러운 말에 두 아이는 다시 뛰어갔다.용정이 우빈에게 말했다.“우빈아, 같이 산 아래로 가자! 다들 네가 오는 걸 알고 지금 기다리고 있어.”용정이가 말한 ‘그들'은 산 아래에 사는 노동자들의 아이들로 두 꼬마보다 조금 연상이었다. 비록 몇 번밖에 함께 놀지 못했지만 금세 친구가 되어 함께 뛰어다녔다.다만 어린애들답게 금방 싸우기도 했다. 보통 30분도 채 놀지 못해 다투곤 했지만 5분도 지나지 않아 다시 화해하기 일쑤였다.“우리도 산 아래로 내려가 볼까요?”정겨울이 제안했다.그러나 모연정이 말렸다.“예훈이 낮잠 자야 할 시간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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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45화

하루가 순식간에 지나간 듯했다.어느새 저녁이 다가왔다.하예정은 점심에 잠시 쉬다가 오후에는 정겨울의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정겨울이 여러 알 수 없는 약병들을 가방에 쑤셔 넣는 모습을 지켜보던 하예정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서렸다.“이건 제가 외출할 때 항상 챙기는 약들이에요. 습관적으로 가지고 다니는 건데 다른 생각은 하지 마요.”정겨울은 어쩔 수 없이 설명을 덧붙였다.“비서 할아버지께서 평소에 드시는 약도 다 챙기려고요. 할아버지 약도 거의 다 떨어져서.”하예정은 입술을 깨물며 침묵을 지켰다.정겨울은 허리를 펴고 하예정의 어깨를 ‘탁' 치며 말했다.“정말 걱정되면 저랑 같이 가는 건 어때요?”“겨울 씨!”모연정이 낮고 굵은 목소리로 정겨울을 타일렀다.하예정의 몸은 이곳에 있지만 마음은 이미 강성으로 날아간 지 오래였다.게다가 이제 와서 하예정을 데려가자니...하예정을 데려가면 전태윤 일행이 집중력을 잃을 뿐만 아니라 상황도 혼란스러워질 게 뻔했다.“저는 걱정도 안 하고 따라가고도 싶지 않아요. 그냥 심심해서 겨울 씨가 짐 싸는 거 구경한 것뿐이에요. 맞다. 태윤 씨에게 전해줄 말이 하나 있어요. 그를 보면 제가 예진 리조트에서 기다린다고 전해줘요.”정겨울은 하예정의 거짓말을 알고도 모르는 체했다.하예정이 임신 중인 것도 있지만 설사 임신하지 않더라도 전태윤의 아내 사랑이 얼마나 지독한지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아내가 위험에 처하는 건 절대 용납하지 않을 사람이었다.하예정의 무술 실력이 꽤 좋은 편인 건 사실이지만 전태윤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라면 결코 아내의 손을 빌리지 않았다.하예정을 사랑하게 된 그 날 전태윤은 약속했다. 평생의 행복과 평안을 선물하겠다고.그는 평생을 바쳐 그 약속을 지키려고 마음먹었다.“만나면 꼭 전해줄게요. 예정 씨가 기다린다고.”“고마워요.”“친구 사이에 뭐하러 이런 말까지 해요!”정겨울은 약품 진열대 앞으로 걸어갔다. 그녀의 각종 약품이 정리된 곳이었다.그녀는 진열대에서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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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46화

하예정과 여운초의 관계가 아무리 좋아도 그녀와 심효진의 관계를 뛰어넘지는 못했다.심효진의 사소한 일이라도 하예정은 전부 알고 있었다. 어쨌든 십 년 넘게 함께한 절친이었고 한 몸처럼 가까운 사이였으니까.“저도 알아요. 우리 스승님도 운초 씨를 진찰해 보셨는데 따로 약을 처방해 주셨는지는 모르겠어요. 아직 여쭈어보지 못했거든요. 하지만 괜찮아요. 지난번에 보낸 약의 분량대로 다시 가져다주면 될 거예요.”여운초의 눈은 거의 다 나아지고 있었다.다만 체내의 한기를 완전히 제거하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할 뿐이다.여운초에게 약을 지어줄 때마다 정겨울은 그녀가 안쓰러워 마음마저 아렸다.추미자는 정말이지 너무 잔인한 여자였다.전남편을 사랑하지 않았다 해도 여운초는 그녀의 친자식이고 열 개월을 품어 낳은 피붙이였다.여운초는 추미자를 많이 닮았다고 했다.여운별보다도 더 닮았지만 추미자는 여운초를 예뻐하지 않았다. 오히려 미워하면서 원망도 했고 여운초를 죽여 전남편의 핏줄을 끊어버리고 싶어 했다.추미자와 전남편의 결혼은 전남편의 잘못이 아니었다. 이는 집안에서 정해준 혼인이었고 그녀 자신이 거부하지 못했으면서 전남편에게 화를 풀었을 뿐만 아니라 시아주버니인 여태웅과 결탁해 남편을 죽인 뒤 바로 여태웅의 품에 안겼다.여씨 가문은 전성기 때 자산이 수천억을 넘는 확실한 재벌 가문이었다.하지만 추미자는 관성 상류 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했고 사람들의 미움까지 받았다.그 이유는 바로 그녀와 여태웅의 관계 때문이었다.추미자는 결혼 전부터 여태웅과 엮여 있었는데 정작 여태웅의 동생과 결혼해 여태웅의 제수가 되어버렸다. 그러다가 여태웅의 동생이 죽자 그녀는 서둘러 여태웅과 재혼했고 여씨 가문의 모든 것도 점차 여태웅의 손아귀에 들어갔다.상류 사회의 부인들이라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그녀들은 추미자의 행동을 경멸하며 그녀의 비위를 맞추려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지위와 체면이 있는 부인들은 추미자를 외면해 버렸다.추미자는 일찌감치 가장 아끼는 딸 여운별을 전씨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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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47화

정겨울이 하예정에게 물었다.“집에 가져갈 게 있으면 말해요.”하예정은 고개를 저었다.“저도 오늘 막 와서 가져갈 건 없어요.”전태윤이 그녀와 우빈을 데리러 오면 그때 시댁 식구들을 위한 선물을 사 가려고 했다.정겨울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아! 예정 씨는 오늘 온 거죠? 저도 짐을 다 챙겼으니까 우리 얼른 내려가서 밥 먹어요. 식사 끝나면 출발해야 하거든요.”모연정도 하예정에게 말했다.“가요. 내려가요. 넷째 도련님께서 오늘 직접 요리하신다고 하니까 우리 겨울 씨네 댁에서 한 끼 해결해요.”예씨 가문의 여러 식구는 서로 사이가 아주 좋아 자주 함께 모여 식사를 했다. 하여 젊은이들이 누구 집에 가더라도 굶을 걱정이 없었다.이런 분위기는 전씨 가문과 비슷했다.정겨울이 입을 열었다.“직접 요리한다고 해봤자 평범한 집밥 몇 가지일 뿐이에요. 새로 바뀌는 메뉴도 없어요.”모연정이 농담을 던졌다.“그래도 전부 겨울 씨 입맛에 맞게 하는 거잖아요. 메뉴가 바뀌면 겨울 씨가 오히려 걱정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밖에 다른 여자가 생겼나 하고.”세 여자는 문을 나서며 계속 수다를 떨었다.정겨울은 자신 있게 대답했다.“우리 남편에게 하늘만큼 큰 용기가 있어도 밖에서 뒹굴 용기는 없을 거예요. 게다가 저처럼 똑똑하고 미모의 아내가 있는데 밖의 잡초 따위를 볼 여유가 어디 있겠어요?”만약 예준일이 감히 바람을 피운다면 그녀는 단숨에 그의 생식 기능을 상실하게 하여 평생 여자를 못 만나게 할 각오였다.정겨울은 이미 그녀의 수술칼이 죽음보다 더 날카롭다고 말해둔 적이 있다.한 방이면 그를 영원한 내시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고 말이다.모연정은 시동생이 정겨울에게 늘 괴롭힘을 당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입을 틀어막고 낮은 소리로 웃었다.하예정이 말을 보탰다.“겨울 씨 남편은 겨울 씨만 봐도 행복해 죽을 판인데 바람 따위 필 리가 없어요. 그분이 겨울 씨를 보는 눈빛이 너무 열정적이라서 우리가 곁에서 보다가도 민망해서 오래 못 서 있을 정도거든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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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48화

예준일은 마치 홀아비처럼 집에 남아 정겨울이 돌아오는 날 만을 기다려야 했다.이번에도 먼 길을 떠나는 아내가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는 일이다.정겨울이 이번에 출장 가는 이유는 단 하나, 바로 한성근의 전속 의사 겸 간호 역할을 하기 위함이었다.다른 세외고수들도 함께하는 자리라 예준일도 뭐라 말할 수 없었다.“비서 할아버지께서 성씨 가문에 무사히 돌아가시면 바로 돌아올게요.”정겨울은 남편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제가 없는 동안 훈이 좀 잘 돌봐줘요. 생각해 보면 우리 아들 참 불쌍해요. 금수저로 태어났지만 엄마는 항상 자리를 비우고 보모 손에만 맡겨지니... 당신도 평일에는 바쁘니까 밤에라도 좀 신경 써줘요.”예준일이 대꾸했다.“뭐가 불쌍해? 그 훈이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세상 반을 가진 거나 다름없는데. 오히려 행복한 놈이지. 게다가 스승님께서 항상 옆에서 돌봐주시잖아. 나라는 아빠가 안중에도 없는데 내가 왜 필요해? 스승님이 달래서 재우면 그만이야.”김청산이 돌아오니 예준일의 삶은 한결 편해졌다.솔직히 그는 김청산이 예진 리조트에 정착했으면 했다. 그들 부부가 함께 장인을 모실 수 있을 테니까.어르신은 평생 자식 없이 정겨울이라는 제자 하나만을 딸처럼 키우셨는데 은퇴한 지금, 딸과 사위의 집에서 편히 지내시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게다가 김청산이 예진 리조트에서 살면 예훈이도 잘 돌봐주었기에 아빠인 예준일이 신경 쓸 일도 없어져 아내와의 둘만의 시간을 더 많이 가질 수 있었다.그야말로 일거양득이었다.장인어른께 효도하겠다더니 결국 자신이 편한 것만 생각하는 거였다.흠... 부부가 한 집안에 든 게 우연이 아니었나 보다.“지금은 일이 있어 따라갈 수 없어. 바쁘지 않으면 같이 갔을 텐데.”예준일이 아쉬워하자 정겨울은 단호히 말했다.“당신도 회사 일이 바쁜데 따라오지 않아도 돼요.”아마 정겨울은 자유로운 날개에 너무 익숙해진 모양이었다. 그들 부부가 함께 휴가를 떠날 때를 제외하면 어디로 가든 예준일이 따라오는 것을 무척 싫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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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49화

강성의 한 병원.방금 식사를 마치고 병실 밖을 산책하려던 이윤미는 문 앞에서 정군호와 정일범 형제들과 마주쳤다.그들도 막 병실로 들어오려는 참이었다.정일범은 손에 보온 도시락 몇 개를 들고 있었고 정일군과 정일호는 함께 과일이 가득 담긴 큰 바구니를 들고 있었다.정군호는 큰 꽃다발을 안고 있었다.이윤미를 본 순간 그들은 본능적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낯선 눈빛이었다.“왜 또 오셨어요?”이윤미가 차가운 표정으로 먼저 입을 열었다.그녀는 옆으로 물러서서 가족들이 병실로 들어갈 길을 내주었다.방윤림은 화장실에서 도시락 용기들을 씻고 있었다.이윤미는 하루 세끼를 오직 방윤림이 준비한 것만 먹었다. 그가 가져오는 음식을 제외한 다른 사람이 가져온 것은 입도 대지 않았다. 다시 한번 이은화에게 당할까 두려워 배달음식도 감히 먹지 못했다.병원에서 며칠을 누워있었지만 의사들은 여전히 이윤미가 어떤 약에 중독됐는지 검출하지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의사들이 매수당해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것으로 의심했다.‘요즘 의학이 이토록 발달했는데... 며칠이나 검사했는데도 내 몸속에 잔류 물질이 무엇인지 아직도 못 찾았다고? 그럴 리가!'그들의 말은 일단 믿지 않기로 했다.이윤미의 몸은 이미 80% 회복된 상태였다. 그 약이 자신을 그냥 잠들게 하고 사지를 무력하게 만들 뿐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는 것만 알면 그뿐이었다.그녀는 독을 씻어내기 위해 매일 깨어난 후 물을 많이 마셨고 그렇게 며칠만 버티면 서서히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아무래도 이윤미에 대한 모정이 남아있는 모양이었고 진짜로 죽이려는 것은 아닌 듯했다.이은화는 이윤미가 자신의 친딸이 아니었으면 진작 몇 번이고 죽였을 거라고 말했었다.병실 문 앞에 서 있는 네 사람을 본 방윤림은 무표정으로 인사만 하고는 씻은 도시락 용기들을 들고 작은 휴게실을 지나 병실 안으로 들어가 긴 카운터 위에 도시락을 올려놓았다.그 카운터는 침대 끝에 놓여 있었는데 침대와는 조금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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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50화

아이러니했다.피붙이 가족들은 그녀를 함정에 빠뜨리려 했지만 적대 관계인 하예진 일행은 오히려 그런 음흉한 수를 쓰지 않았다.정군호가 입을 열었다.“윤미야, 이건 나와 네 오빠들의 작은 성의야. 우리는 한 가족이고 네가 입원했으니 어찌 안 와볼 수 있겠어? 아버지도 나이가 들어 체력이 달리고 게다가 앞서 오랫동안 입원까지 했으니 널 돌볼 여력이 없구나. 하지만 네 오빠들은 젊고 힘이 있으니 얼마든지 널 돌봐줄 수 있어. 오빠들이 널 돌보는 게 불편하다면 네 형수님을 불러와 함께 있게 해도 되잖아. 자꾸 방 비서님에게 폐 끼치지 말고. 방 비서님은 어쨌든... 외간 남자잖니.”정군호는 일부러 ‘외간 남자’라는 단어를 강조했다.딸에게 방윤림과 거리를 둘 것을 상기시키려는 의도였다.병원 사람들은 사정을 모르고 아마 방윤림을 이윤미의 남편으로 여기고 있을지도 모른다.정군호는 방윤림을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가주 곁에 있는 특별 비서들을 증오했다. 그가 매번 도혁찬을 볼 때마다 공손하게 예의를 차리고 때로는 형제처럼 친하게 대했지만 사실 그의 마음속에서 가장 혐오하는 인물이 바로 도혁찬이었다.그리고 가장 증오하는 사람 역시 그였다.이유는 간단했다.도혁찬은 전군호보다도 이은화에게 더 체면이 섰고 그녀의 신뢰와 의존을 훨씬 더 받고 있었으며 무슨 일이든 도혁찬과 상의했다.그러나 정작 남편인 그에게는 무엇이든 철저히 숨겼다.정군호가 아는 것들은 이은화가 알려준 것이 전부였고 이은화가 원하지 않는다면 그는 절대 알 수 없었다.그리고... 방윤림이 이윤미를 바라보는 눈빛 속에 감추어진 감정을 정군호가 모를 리 없었다.정군호는 딸이 방윤림과 어떠한 관계든 맺는 것을 원치 않았다.방윤림은 아무것도 없는, 그냥 이윤미의 곁에 붙어 있는 개에 불과했다.정일범도 말을 이었다.“맞아, 윤미야. 형수님들을 불러와서 너를 돌보게 하자. 같이 있으면 수다도 떨고 집안 이야기도 나눌 수 있잖아. 방 비서님도 바쁠 텐데 자꾸만 신세를 지게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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