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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41화

“전씨 할머니께서 창빈 씨한테 정해주신 며느릿감이 설마 원림성 A시에 있는 어느 재벌가 아가씨는 아니겠지?”성소현이 고개를 끄덕였다.“예정에게서 들었는데 그렇대.”예준하는 잠시 말이 없더니 웃으며 말했다.“할머니도 손주도 다 즐거워하는 모양이니 우리는 그저 청첩장 받아서 축하주 마시면 될 일이군.”“그러게. 우리야 그날만 기다리면 되지. 우리 엄마는 전씨 할머니께 우리 둘째 오빠 며느릿감도 한 번 알아봐 달라고까지 부탁하셨어.”예준하가 웃었다.“도와주시기는 하겠지만 전씨 가문의 도련님들만큼 효과가 있지는 않을 거야. 자기 오빠는 전씨 가문의 사람이 아니니까 할머니 뜻을 그대로 따르지는 않을 것 같아.”“하느님께 맡기는 수밖에 없지. 어쨌든 나는 이미 새언니도 있고 조카도 있으니까. 몇 년 뒤에 큰오빠네가 둘째를 낳아서 조카딸까지 생기면 나는 조카에 조카 딸까지 다 갖게 되는 거네. 오빠 결혼 문제는 부모님이 알아서 걱정하실 일이야.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오빠가 들을 사람은 아니잖아.”성주현은 성소현을 무척 아끼기는 했지만 인생의 큰일 앞에서는 유독 고집이 셌다. 그의 부모님조차 좌우지 못 하는데 하물며 여동생인 그녀의 말이 통할 리 없었다.“큰오빠가 과연 둘째를 더 낳을 생각이 있을지도 모르겠어. 새언니가 임신하는 게 너무 힘들다면서, 예전에는 유산 고민까지 했을 정도였거든. 다들 말려서 그만두기는 했지만 새언니가 아이를 낳을 때까지 내내 긴장하고 있었거든.”지금은 온 가족이 성기현의 아들을 끔찍이 아끼고 있었고 성기현 역시 아이를 사랑하긴 했지만 가족들과 비교하면 그가 아들에게 보이는 애정이 가장 옅어 보였다.성소현은 가끔 성기현 부부 사이의 감정이야말로 진짜 사랑이고 조카는 뜻밖에 찾아온 존재 아니냐며 농담처럼 말하곤 했다.예준하는 그저 웃을 뿐 아무 말도 보태지 않았다.덧붙일 말도 마땅치 않았다.그는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릇을 정리했고 성소현은 식탁을 닦았다.곧이어 두 사람은 함께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굳이 도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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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42화

다행히 해성에 사 둔 집은 이미 명의 이전까지 모두 끝난 상태였다.도씨 가문 바로 옆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멀지도 않았다.차로 몇 분이면 닿는 거리였고 직선거리로 따져도 1, 2킬로미터 남짓이었다.지금 전이혁은 차 안에 앉아 있었다.조수석에는 꽃다발과 붉은색의 큼직한 케이스 하나가 놓여 있었는데 도아영을 위해 준비한 보석 세트였다. 그리고 뒷좌석에는 따로 사 둔 피부관리 제품과 화장품, 명품 가방과 옷까지 가득 실려 있었다.그러나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회사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불과 10분 전, 그의 가장 큰 경쟁자인 김태경이 차를 몰고 그대로 도씨 그룹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김태경은 깔끔한 양복에 비서를 한 명 데리고 있었고 협력 건으로 방문했다는 명분도 갖추고 있었다.그럼에도 전이혁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전이혁은 전태윤을 설득해 해성에 대한 투자를 늘려 제법 규모가 있는 자회사를 하나 세운 뒤 직접 책임지고 운영하고 있었다.그도 도씨 그룹과 협력을 논의하고 싶었지만 도씨 그룹에서는 왜 그를 회사 안으로 부르지 않는지 알 수 없었다.도아영이 막은 것은 아니었다.지금 도씨 그룹에서 최종 결정을 쥐고 있는 사람은 도아림이었고 그가 회사에 들어오지 못하는 것도 바로 그녀의 뜻이었다.전이혁은 휴대전화를 꺼내 도아영에게 전화를 걸었다.한참이 지나서야 통화가 연결됐다.“아영 씨, 언제 퇴근하세요? 영화표를 예매해 놨는데 요즘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이래요. 같이 영화 한 편 볼래요?”이미 저녁 시간은 훌쩍 지났고 도아영이 식사를 마쳤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하여 그는 영화 얘기만 꺼냈다.“그렇게 빨리 끝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오늘 야근한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아직도 회사 앞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오늘 밤부터 기온이 많이 떨어진대요. 며칠 동안은 연휴 지나고 가장 춥다고 하니까 더 기다리지 마시고 얼른 돌아가서 쉬세요. 괜히 또 몸 상하실라.”도아영은 전화를 받으며 창가로 걸어가 아래를 내려다봤다. 하지만 사무실이 워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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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43화

전씨 할머니가 한 번만 해성으로 와서 전이혁의 사정을 조금만 거들어 줬어도 도씨 가문은 체면상 할머니의 말을 외면하지 못했을 것이다.그러면 그를 향한 견제도 지금보다는 한결 나아졌을 터였다.하지만 할머니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아니, 오히려 그를 가장 독하게 몰아붙이는 사람은 다름 아닌 전씨 할머니였다.통화를 하는 동안에도 전이혁은 속으로 전씨 할머니를 몇 번이나 흉봤는지 모른다.그 무렵 예진 리조트에 머물던 할머니는 연달아 재채기를 몇 번 했고 놀란 할머니는 얼른 예지연에게서 떨어지며 혹시라도 감기가 옮을까 봐 한 발 물러섰다.그러고는 재빨리 예씨 가문의 넷째 며느리 정겨울에게 진찰을 부탁했다.감기 기운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약을 챙겨 먹고 말끔히 나은 뒤에야 아이를 안겠다는 생각이었다.정겨울은 전씨 할머니의 맥을 짚어 본 뒤 말했다.“할머니는 몸이 아주 좋으세요. 웬만한 중년은 물론이고 젊은 사람들보다도 더 건강하신데요.”그런데도 할머니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분명 어느 불효자식이 속으로 나를 욕하고 있을 게야. 틀림없이 넷째일 거다.”요즘 가장 고생하는 사람이 넷째 손자였으니 전씨 할머니를 마음속으로 원망하지 않을 리 없다고 여긴 모양이다.정겨울은 말없이 웃기만 했다.전이혁은 차에서 내려 고개를 들어 도아영의 사무실을 바라봤다.그는 회사 앞에서 기다릴 때마다 건물 층수를 세어 가며 사무실 위치를 확인하곤 했고 그렇게 여러 번 반복하다 보니 이제는 한눈에 그 층을 알아볼 수 있었다.그 층의 불은 여전히 켜져 있었다.하지만 거리가 너무 멀어 도아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그가 아무리 눈이 좋아도 먼 곳까지 꿰뚫어 볼 수는 없었다.“난 안 추워요. 집에 돌아갈 생각도 없고요. 설령 영화를 못 보게 되더라도 여기서 퇴근하실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전이혁은 쉽게 물러날 사람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지금 김태경이 도씨 그룹 안에 들어가 있는 상황이었다.그는 속으로 확신했다. 김태경을 맞아 협력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은 분명 도아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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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44화

사무실 안은 난방이 잘 돌아가고 있어 춥지 않았다.도아영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지금은 곤란해요. 고객이 있어서 이만 끊을게요. 얼른 돌아가세요.”말을 끝내자마자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전이혁이 집요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문득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가 궁금해져 도아영은 날짜를 확인했다.설날 연휴가 끝나고 출근한 지 아직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시간이 매우 늦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도아림의 말이 떠올랐다. 최소 반년은 버텨야 한다고 했다.괜히 희망을 주지 말고 충분히 애를 태워야 한다고 말이다.그래야 전이혁이 애태우는 처지가 되어 고생해 보고 나중에 조금의 여지를 줘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고 했다.완전히 주도권을 쥘 수 있을 만큼 관계를 다진 뒤에야 그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게 맞고 그다음에야 둘만의 시간을 거쳐 혼인신고와 결혼식까지 생각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아무리 서둘러도 2년이란 시간을 잡아야 한다는 말이었다.어차피 전씨 할머니가 전이혁에게 정해 준 1년이라는 기한은 이미 훌쩍 지났다.사실 도아영은 전이혁을 원망하지는 않았다.여러 신분을 가지고 있었던 쪽은 그녀였기 때문이다.아직도 자신이 바로 ‘여우’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지 않았다.전이혁이 거절했던 건 도아영이었지 ‘여우’가 아니었다.하지만 그 ‘여우’ 역시 결국 그녀 자신이었고 나눌 수 없는 한 사람이었다.전이혁은 그 사실을 몰랐을 뿐이었다.엄밀히 따지면 속은 사람은 전이혁 쪽이었다. 진실을 모른 채 이리저리 휘둘렸으니 화가 나야 할 쪽도 그였다.도아림의 조언이 전부 틀린 것은 아니었지만 도아영은 그 말을 그대로 따를 생각은 없었다.몇 달만 더 지나면 전이혁과 한번 솔직하게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었고 그 뒤에야 다시 함께할 수 있을지를 결정하려 했다.그녀는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전이혁이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도 분명했다.비록 그가 처음 마음을 준 대상이 ‘여우’였지만 그 ‘여우’가 바로 그녀였으니 결국 같은 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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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45화

도아영은 김태경을 바라보며 웃었다.“태경 오빠가 전이혁 씨 편을 들어 주실 줄은 몰랐어요.”김태경도 빙그레 웃었다.“우리 사이가 무슨 진짜 경쟁자도 아니잖아. 나는 너를 늘 동생으로만 생각했어. 너도 나를 좋아한 적 없고 우리 결혼 얘기는 부모님들 바람뿐이었지. 내가 그동안 보인 태도도 그냥 네가 하자는 대로 맞춰 준 거야. 전이혁 씨 좀 자극해 보려고. 내가 봐도 전이혁 씨가 너한테 제일 잘 어울리더라. 두 가문끼리 서로 잘 어울리고.”지금 김씨 가문의 재력과 위치는 도씨 가문과 비교하기 어려웠다.최하임의 집안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최하임의 집안 사정이 눈에 띄게 기울자 김태경의 부모는 태도를 금세 바꾸며 더는 두 사람의 관계를 지지하지 않았다.두 사람이 오래도록 애매한 상태로만 지내며 확실한 결과도 없었던 탓이기도 했다.형제라고 하기에는 서로 마음이 남아 있었고 연인이라고 하기엔 사랑이라는 말을 한 번도 꺼낸 적이 없었다.도아영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나와 이혁 씨 사이 문제는 그렇게 심각하지 않아요. 손에 있는 업무만 조금 정리되면 그 사람과 솔직하게 이야기해 볼 생각이에요. 오빠와 하임 언니와는 정말 이대로 끝내실 거예요? 잡아 볼 생각은 없어요? 혹시 하임 언니가 집안 회사를 살리려고 사랑하지도 않은 사람과 결혼하게 되면 어쩔 거예요?”김씨 가문이라면 최하임의 집안을 도울 여력은 있었다. 문제는 그들이 정말로 손을 내밀 의지가 있느냐였다.도아영은 이미 큰언니와 이 문제를 두고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도씨 그룹이 여력이 되는 한 최하임의 집안도 한 번쯤은 도와주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도아영의 어머니 역시 최씨 가문을 걱정하고 있었다.황서진과 최하임의 어머니는 수십 년을 함께해 온 친구 사이였으니 외면하기가 쉽지 않았다.겉으로는 황서진이 도아영과 김태경을 엮으려는 듯 보였지만 속으로는 도움을 주려 하지 않는 김태경 어머니의 태도에 조금 서운함을 느끼고 있었다.집안이 어려워지자마자 선을 긋는 모습이 아무래도 지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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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46화

경쟁자가 아직 나오지도 않았는데 전이혁이 먼저 떠날 리가 없었다.그는 차 안에 조용히 앉아 줄곧 도아영을 기다렸다.그리고는 자주 외투를 끌어당겨 여몄다.차 안에는 난방이 켜져 있는데도 이상하게도 계속 추워 손을 비비곤 했다.관성 쪽도 요 며칠 기온이 내려갔다고 했다. 설이 지나면 잠깐 다시 추워지는 시기가 해마다 찾아오는데 이번에는 그 기세가 더 매서워진 모양이다. 심해 사흘 전까지만 해도 반팔로 지낼 만큼 더웠는데 이틀 동안 비가 내리자 기온이 급격히 떨어졌다.하여 사람들은 하는 수 없이 급히 두꺼운 외투를 다시 꺼내 입었다.해성은 원래도 추운 편이지만 요 며칠은 특히 더 추웠다.그때 회사 안에서 경비원 한 명이 나왔다.전이혁은 그를 바로 알아보았다.도씨 그룹 경호 부서의 책임자였다.그 경비원은 전이혁의 차 앞으로 걸어와 창문을 두드렸다.창문을 내리자 찬바람이 그대로 들이쳐 전이혁은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다.추운 것만도 모자라 바람까지 거셌다. 마치 날카로운 칼날이 사방에서 들이치는 듯해 스치기만 해도 얼굴이 얼얼할 정도였다.경비원은 모자를 끌어당겨 드러난 귀를 가렸다.“전이혁 씨, 저희 부대표님께서 안으로 들어오셔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다만 1층 VIP룸에서 기다리셔야 하고 위층으로는 올라가실 수 없습니다. 아직 야근 중이셔서 많이 바쁘셔서 따로 마중 나올 시간은 없다고 하셨습니다.”그 말을 듣는 순간 전이혁은 신기하게도 추위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역시 도아영이었다. 그가 밖에서 찬 바람을 맞으며 기다리는 것을 보고만 있을 리 없었다.“알겠습니다. 일에 방해되지 않게 VIP룸에서 기다리겠습니다.”전이혁은 한층 들뜬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차를 몰고 들어가도 괜찮을까요?”이미 들어오라고 한 마당에 차를 끌고 들어오느냐 마느냐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경비원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네, 그렇게 하셔도 됩니다.”모든 직원이 야근 중인 것은 아닐 테니 주차 자리도 남아 있을 터였다.전이혁은 경비원에게 인사를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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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47화

“전이혁 씨.”전이혁이 회사로 들어서자 프런트 직원 한 명이 다가왔다.밤이라 근무 중인 직원은 그녀 혼자였다.이미 도아영의 연락을 받아 둔 터라 프런트 직원은 전이혁을 보자 예의를 갖춰 인사한 뒤 곧바로 1층 VIP룸으로 안내했다.“부대표님께서 밖이 많이 추워서 VIP룸에서 잠시 쉬시라고 하셨습니다. 몸을 좀 녹이시고 따뜻한 물도 한 잔 드신 뒤에 돌아가시라고 전하셨어요.”전이혁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저는 여기서 부대표님께서 퇴근하실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프런트 직원은 가볍게 웃고는 더 말하지 않았다. 전할 말은 이미 전했고 그 뒤는 전이혁의 선택이었다.전이혁이 꽃다발을 안고 크고 작은 선물들을 들고 있는 모습도 이제는 낯설지 않았다.그는 올 때마다 늘 손에 한가득 들고 왔고 빈손으로 온 적이 없었다.예전에도 늘 그랬다.외모도 훌륭하고 집안도 좋으며 여자에게는 유난히 다정하고 세심한 남자였다.그런 사람의 마음을 끝까지 밀어낼 수 있는 여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그래서 지난해 도아영 역시 마음이 흔들리고 말았다.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도아영이 마음을 열자 전이혁은 마치 모든 것이 장난인 듯 관성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 일로 도아영은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직접 관성까지 찾아갔고 집으로 돌아온 뒤에는 한동안 눈에 띄게 기운이 없었다.직원들은 저마다 그 뒤에 어떤 일이 있었을지 짐작하며 수군거렸지만 누구도 감히 도아영에게 직접 묻지 못했다.올해 초, 전이혁이 다시 나타나 도아영을 향한 구애를 시작하면서 직원들은 비로소 작년의 뒷이야기를 알게 되었다.알고 보니 그는 지금 또다시 지극정성인 얼굴로 도아영에게 다가가고 있었던 것이다.그런 전이혁의 모습이 오히려 직원들의 마음에 걸렸다. 이번에도 진심이 아니라 잠깐의 열정에 불과한 것은 아닐지, 그런 의심이 자연스레 따라붙었다.도아영이 전이혁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고 단호하게 선을 긋는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그저 재미난 구경거리라도 발견한 듯 지켜볼 뿐이었다.그 모습을 지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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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48화

도아영은 김태경이 선을 넘을까 봐 마음이 쓰였다.웃으며 이야기하고 식사 한 번 하는 정도라면 괜찮았지만 더 이상의 신체 접촉은 원하지 않았다.전이혁 때문이 아니라 최하임 때문이었다.도아영에게 김태경은 최하임의 남자였고 최하임을 언니라 부르는 이상 김태경은 자연스레 형부 같은 존재였다.“여기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영 씨, 일은 다 끝나셨죠? 배고프시면 제가 야식 좀 대접하겠습니다.”전이혁은 김태경에게 그 자리를 내줄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야식을 살 사람은 어디까지나 자신이어야 한다고 여겼다.도아영이 대답하기도 전에 김태경이 먼저 입을 열었다.“전이혁 씨가 식사 대접하신다고요? 그럼 그 호의를 받아들이는 게 좋겠네요. 아영아, 우리 전이혁 씨한테도 한 번 기회를 드리자. 마침 우리도 배고프잖아.”그 말인즉, 전이혁에게 자신과 비서까지 함께 대접하라는 뜻이었다.애초부터 빠질 생각이 없는 철저한 ‘동행’ 선언이었다.전이혁은 망설임 없이 받아쳤다.“좋습니다. 그럼 제가 오늘 대접하겠습니다.”그리고 다시 도아영을 향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아영 씨, 가실 거죠?”도아영은 담담한 표정으로 답했다.“태경 오빠가 배고프시다고 하시니 그러면 다 같이 나가서 야식 먹죠.”그 말을 듣는 순간 전이혁의 표정이 환하게 풀렸다.“그럼 제가 대접하겠습니다. 아영 씨, 먼저 이쪽으로 오세요.”전이혁은 도아영을 이끌고 VIP룸 안으로 들어갔다.그는 몇 걸음 옮긴 뒤에야 손을 놓으며 곧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던 꽃다발을 집어 그녀에게 내밀었다.도아영은 꽃다발을 한 번 바라보더니 다시 테이블 위를 가득 채운 선물들로 시선을 옮겼다.그녀는 이내 미간을 살짝 좁히며 말했다.“전이혁 씨, 올 때마다 이렇게 많은 선물을 들고 올 필요 없어요. 저는 필요하지 않아요. 전부 가져가세요.”“아영 씨, 그냥 소소한 것들이에요. 아영 씨 취향에 맞춰 골랐는데 제 마음이기도 합니다. 받아 주세요.”도아영은 잠깐 망설이다가 꽃다발만 받아 들었다.“꽃은 받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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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49화

김태경은 속으로 비웃었다.‘뭐야... 속 좁게! 한 발도 다가가지 못하게 하네.’그러다 그는 문득 최하임이 떠올랐다.만약 최하임 곁에 누군가 들러붙는다면 자신 역시 전이혁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그렇게 생각하자 전이혁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전이혁 씨, 많이 기다리셨죠?”김태경이 미소를 지으며 전이혁에게 물었다.도아영 곁에 붙지 말라면 굳이 고집부릴 이유도 없었다.귀국한 뒤 도아영과 전이혁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본 김태경은 이미 알고 있었다.그들 집안 어른이 아무리 나서서 판을 흔들어도 자신과 도아영이 이어질 가능성은 없다는 것을.도아영은 주관이 뚜렷한 사람이라 가족이라는 이유로 원치 않는 결혼을 강요받으려 하지 않았다.김태경은 오히려 오빠인 자신이 도아영보다 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전이혁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아영 씨를 만날 수만 있다면 기다리는 시간이 얼마나 되든 상관없습니다. 그런데 형은 왜 하필 밤에야 일을 보러 오신 거예요?”김태경이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물론 기다림 자체가 문제는 아니었다. 도아영이 만나 주기만 한다면, 기회를 주기만 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요즘 일정이 빡빡해서요.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되었네요. 아영이랑은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라 언제 와도 상관없죠. 아영아, 맞지?”김태경은 도아영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도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아영아, 내 차에 타.”김태경이 다시 말했다.그 순간 전이혁이 한 손을 뻗어 도아영의 손을 붙잡았다.“아영 씨는 제 차에 탈 거예요.”김태경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린 채 도아영을 바라보았다. 선택은 그녀에게 맡기겠다는 듯한 시선이었다.도아영은 전이혁의 손을 조용히 떼어 내며 담담하게 대답했다.“괜찮아요. 나도 차 있어요.”그녀는 누구의 차도 탈 생각이 없었다.직접 운전하는 편이 훨씬 편했다.가고 싶은 곳으로 원할 때 떠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도아영은 꽃다발을 안은 채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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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50화

“피부 관리도 좀 하셔야죠.”말을 마친 전이혁은 준비해 온 피부관리 세트 몇 개를 꺼내 웃으며 도아영에게 내밀었다.“아영 씨가 평소에 쓰는 브랜드예요. 이 중 한 세트는 이번에 나온 신제품이라서 한 번 사용해 보세요. 요즘은 남자든 여자든 자기 관리는 기본이잖아요. 저도 이 브랜드 남성용 제품을 쓰는데 괜찮더라고요.”전이혁은 자신의 얼굴을 한 번 쓸어내리듯 만지며 말했다.“아영 씨, 제 피부도 나쁘지 않죠? 한 번 만져보세요. 부드러워요.”도아영이 피식 웃었다.“괜히 만졌다가 전이혁 씨가 자기를 책임지라고 하면 곤란해요. 그러면 정말 빠져나갈 구멍이 없을 것 같은데요.”전이혁의 얼굴이 순간 붉어졌다.“제가 그렇게까지 뻔뻔한 사람은 아니에요.”마음 같았으면 그녀에게 매달리고 싶었으나 그 생각까지 말할 수는 없었다.결국 도아영은 그가 내민 피부관리 제품들을 받아들였다.전이혁은 그제야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김태경의 눈동자는 잠시 반짝였다.그는 곧 화제를 바꿔 도아영과 이야기를 이어 갔다.두 가문이 진행 중인 사업 협력에 관한 이야기라 전이혁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김태경은 대화 도중 전이혁을 향해 간간이 도발적인 시선을 던지기도 했다.전이혁은 속으로 김태경을 몇 번이나 씹어 넘기듯 욕했다.그 탓인지 김태경이 연달아 재채기했다.“오빠, 감기 걸린 거 아니에요?”도아영이 걱정스레 물었다.김태경은 전이혁을 힐끗 보며 웃었다.“감기는 아닌 것 같아. 누군가 속으로 나를 욕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래서 재채기가 멈추질 않나 봐.”전이혁은 말없이 찻잔을 비웠다. 그리고 다시 차를 따라 도아영과 김태경의 잔에도 조금씩 더 채워 주었다.“재채기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죠. 그걸 전부 제가 욕해서 그렇다고 하기는 어렵지 않습니까? 제가 왜 태경 형을 욕하겠어요? 형은 저와 아영 씨 오빠잖아요. 굳이 태경 형을 욕할 이유는 없죠. 아영 씨 가족은 저에게도 가족인데 저는 제 가족을 욕하는 사람은 아닙니다.”김태경은 잠시 말이 막혔다.눈앞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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