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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hat ng Kabanata ng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Kabanata 1171 - Kabanata 1180

1190 Kabanata

제1171화

“나는 그냥...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갈등하지 말고.”이불 아래, 정은이 조심스럽게 재석의 손을 감쌌다.“갈등 같은 거 없어요. 그냥... 한 번 해보려고요. 정말 오해가 풀릴 수도 있고,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수도 있으니까요.”‘그 사람은 당신 어머니니까.’‘그래서 나, 한 걸음 내디뎌보는 거야.’정은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강서원 여사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유형의 어른이 아니었다는 것을.몇 마디 대화, 몇 번의 만남으로 그 사람이 가진 프레임이 바뀔 리 없다는 것도.‘사람 마음속의 선입견은 산처럼 단단해.’‘내가 그 앞에 선다고 해서 저절로 무너질 리 없지.’‘당신을 위해서라면, 그 산을 옮기는 시늉이라도 해볼게.’정은은 그저 모든 게 순조롭길 바랄 뿐이었다.조씨 가문의 본가.강서원은 말없이 소파에 앉아 있었다.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조명을 켜지도 않은 채.긴 한숨 끝에 연달아 따뜻한 차를 석 잔이나 들이켰다.가을밤, 창문 틈으로 스며드는 공기는 어느새 겨울의 기운을 머금고 있었다.차가운 기운이 발끝을 감쌌다.조기봉이 물컵을 들고 1층으로 내려왔다가, 소파에 앉아 있는 사람 그림자에 놀라 멈칫했다.“여보, 뭐야? 이 시간에 안 자고 뭐 하는 거야? 불도 안 켜고...”그는 다가와 조명을 켰고, 강서원이 얇은 실내복 차림이라는 걸 확인하곤 서둘러 숄을 꺼내 어깨에 덮어주었다.“왜 그래, 무슨 일 있어?”조기봉이 옆에 앉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한참을 침묵하던 강서원이 입을 열었다.“여보... 재석이, 날 많이 미워하는 걸까요?”살짝 떨리는 여자의 목소리에 조기봉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이 사람이 이렇게 약한 모습 보이는 건 처음이네...’‘심지어 나한테도 한 번도 이런 적 없었는데...’“또 재석이랑 무슨 일 있었어?”조심스럽게 떠보는 조기봉.“아니요.”강서원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러곤 천천히 일어나 말했다.“가서 잡시다. 많이 늦었어요.” 계단을 오르는 아내의 뒷모습이 왠지 모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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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72화

“내일이요?”정은은 잠깐 멈칫했다.‘아직 확실히 대답한 것도 아닌데... 다른 날로 해도 되지 않을까?’하지만 곧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아니에요, 그냥 내일 가요.”“그래.”재석은 말없이 베란다로 나가 전화를 걸었다. 아마 본가에 연락하는 듯했다.정은은 조용히 그의 등을 바라보았다.‘이 사람... 지금은 마음이 꽤 가벼워진 표정이네.’‘그동안 나한테 얼마나 조심스러웠는지 아니까...’‘이렇게라도 마음 덜어줄 수 있어서 다행이야.’다음 날 재석의 본가에 가기로 했기에, 전날 사놓은 식재료는 요리할 수 없게 됐다.정은은 그것들을 하나하나 포장해 냉동실에 정리했다.“과일 좀 사러 갈까요?”현관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온 정은이 말했다.“처음 정식으로 회장님, 사모님 뵙는 거니까, 기본 예의는 지켜야죠.”“그래.”둘은 마트로 향했다.“우리 아버지는 차를 좋아하시고, 어머니는... 음, 그냥 과일이면 괜찮을 거야. 차는 집에 있는 거 챙겨가면 되고.”“네, 그렇게 해요.”정은은 따로 반대하지 않고 조용히 따랐다.‘괜히 무리해서 뭘 더 준비했다가 분위기 어색해질 수도 있으니까.’다음 날, 가을 햇살이 맑고 시원하게 내리쬐는 아침.정은은 카멜 컬러의 트렌치코트에 검은 스키니진을 매치하고, 깔끔하게 묶은 포니테일에 은은한 메이크업으로 단정함을 더했다.게다가 오랜만에 꺼낸 굽 있는 구두까지.‘오늘은 나름대로 격식을 갖추는 날이니까.’그 모습을 본 재석이 다가와 입을 맞추려 하자, 정은이 손으로 남자의 입을 막았다.“잠깐만요...”“왜? 뽀뽀도 안 돼?”“립스틱 묻잖아요.”“난 상관없는데?”“나는 상관있어요. 망가지면 다시 바르기 귀찮아요.”“그럼 다시 발라주면 되잖아.”“웃기지 좀 마요.”정은이 먼저 현관문을 열고 나섰다.재석은 피식 웃으며 문을 닫고 따라나섰다.“기다려! 같이 가!”...오전 11시.검은 폭스바겐 차량이 조씨 가문의 본가 안으로 천천히 들어섰다.정은에게는 첫 방문이었다.정은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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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73화

“와! 재석아, 들었어? 들었지? 역시 정은 씨가 눈치가 있지. 오빠 소리 듣자마자 피로가 싹 풀린다.”지훈은 ‘지훈 오빠’ 소리에 절로 어깨가 펴졌다.곧이어 정은은 조기봉과 강서원에게도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회장님, 사모님, 처음 뵙겠습니다.”강서원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오늘 그녀는 짙은 파란색 비단 원피스를 입고, 머리를 단정하게 틀어 올려 은색 비녀로 고정해 두었다. 평소보다 날이 서 있지 않았고, 대신 여유 있고 기품 있는 분위기가 느껴졌다.“정은 씨, 우리 아들 여자 친구가 회장님, 사모님이라고 부르면 너무 거리감 느껴지잖아요. 좀 더 따뜻하게 불러야죠.” 정은은 잠시 놀랐지만, 이내 고개를 살짝 숙이며 부드럽게 말했다.“네, 어머님, 아버님. 저도 편하게 대해주시면 더 감사할 것 같아요.”강서원이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정은아. 다들 문 앞에 서 있지 말고, 안으로 들어가자.”거실로 들어가자 강서원이 정은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모두 소파에 나란히 앉자, 가사도우미가 정성스레 손질된 과일 플레이트를 가져왔다. 재석은 양손 가득 선물과 과일 봉투를 들고 뒤따라 들어왔다.정은은 타이밍 맞춰 말했다.“처음 인사드리는 자리라, 작은 선물을 준비했어요. 별건 아니지만, 정성을 담았습니다.”“아휴, 이 친구 참... 너무 예의 바르네.”“아닙니다. 아버님, 제가 당연히 챙겨야 하는 겁니다.”짧은 인사를 나눈 뒤, 식사가 준비되었다는 가사도우미의 말에 강서원이 일어나며 모두를 다이닝 룸으로 이끌었다. “식사 준비됐어. 정은아, 이쪽으로 와서 내 옆에 앉으렴.”강서원은 정은의 손을 살짝 잡고 곁에 붙어 앉게 했다. 마치 도망칠까 봐 붙잡아두는 것처럼. 그러고는 지언 옆자리를 가리키며 재석에게 말했다.“너는 저기 지언이 옆에 앉아. 여기 말고.”재석은 잠시 멈칫했고, 표정이 금세 굳어졌다.강서원의 미소가 살짝 어색해졌다.“왜? 같이 앉았다고 엄마가 정은이한테 무슨 짓이라도 할까 봐? 나, 네 엄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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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74화

정은은 말을 멈췄다가, 이내 정정하듯 조심스레 말했다.“감사합니다, 어머님.”그러자 지훈이 재빨리 받아쳤다.“괜찮아요, 호칭이야 뭐... 부르기 편한 대로 부르면 되죠.”강서원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그래도 약간의 차이는 있지. 지금 정은이는 우리 막내아들의 여자 친구잖아. 재석이가 정은이보다 두 살 많기도 하고, 또 집에서는 막둥이고. 당연히 좀 더 친근하게 불러야지.”말을 멈춘 그녀가 두어 초 뒤에 덧붙였다.“세월 참... 어느새 아들이 여자 친구를 데려올 나이가 됐네. 우리가 안 늙을 수가 있나?”조기봉이 헛기침하며 말했다.“자자, 일단 식사하자. 음식 식겠다.”“맞아요, 맞아요.”사람들이 젓가락을 들고 본격적으로 식사를 시작했다.아무도 모르게, 재석은 조용히 정은의 그릇에 담긴 훈제 삼겹살 한 조각을 자기 쪽으로 옮겼다.가장 아래쪽의 기름진 부분만 조심스레 떼어내고, 살코기만 다시 정은의 그릇에 살짝 올려놓았다.“됐어, 먹어.”재석이 나지막이 말했다.“고마워요.”정은은 조용히 웃으며 답했다.‘이런 사소한 배려 하나에도 마음이 간질간질해진다.’두 사람은 자신들만 아는 은밀한 행동이라 생각했지만, 이미 가족들 눈에 모두 들어가고 있었다.지언은 갑작스레 눈꺼풀이 씰룩거렸고, 시선은 저절로 강서원의 얼굴로 향했다.강서원은 여전히 웃는 얼굴로 반찬을 집고 있었고, 표정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진짜... 보통 분이 아니시네.’지언이 시선을 돌리는 찰나, 지훈과 딱 마주쳤다.두 사람은 짧은 눈빛을 주고받고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고개를 숙였다.식탁 위 음식들을 보면, 강서원이 꽤 신경 쓴 게 분명했다.L시 지역 특유의 반찬 몇 가지가 정갈하게 차려져 있었고, 하나같이 손이 많이 간 흔적이 느껴졌다.맛도... 왠만한 맛집보다 나았다.대화는 많지 않았지만, 그만큼 식사는 집중도 높았다.정은은 남은 새우 세 마리를 재석이 손질해 주는 대로 다 먹은 뒤, 젓가락을 내려놓았다.“재석 씨, 이젠 본인 것도 먹어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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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75화

차를 우리는 건, 그 시절 정은이 시간을 보내는 몇 안 되는 방법 중 하나였다.물론, 단순한 시간 보내기만은 아니었다. 그 안에서 정은은 확실히 ‘작은 즐거움’을 느꼈다.우릴 줄 아는데, 맛까지 모를 리가 없었을 것이다.그래서 단번에 알 수 있었다.이건, 최상급 녹차였다.정은이 첫 모금만에 눈치를 채자, 조기봉은 예상보다 깊은 반응에 흥미가 더해졌다.“한 단어로 이 차를 표현한다면, 뭐가 어울릴까?”정은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우아함’요.”조기봉이 눈썹을 살짝 들어 올렸다.“왜 하필 ‘우아함’이야?”정은은 조심스럽게 설명을 이어갔다.“이 녹차는 ‘군산 은침’이에요. 싹이 통통하고 길이도 균일하죠. 안쪽은 은은한 금빛이고, 바깥은 흰 솜털이 부드럽게 감싸고 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흔히 ‘금빛 속살에 흰 비단옷을 입은 차’라고도 해요.”정은은 잠시 숨을 고르고, 이어서 말했다.“어떤 책에서는 이 차를 ‘용정차’랑 비슷하다고 하면서도, 잎이 더 넓고 색도 더 푸르다고 했어요.”“또 어떤 고문에서는, 은쟁반 위에 올린 초록 달팽이라는 표현도 있었고요. 그 정도로 정갈하고 고운 차예요. ‘우아함’이라는 말, 딱 어울리지 않나요?”“좋아! 정말 잘 말했어!”조기봉은 감탄하며 거의 자리에서 일어날 뻔했다.지훈이 낄낄 웃었다.“정은 씨, 우리 아버지도 군산 은침은 ‘우아한 차’라고 표현하거든요. 보통 아버지랑 정말 친한 분들이 집에 오실 때만 내놓는 귀한 차예요.”지언도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맞아요, 둘째 말이 사실이에요. 정은 씨, 혹시 다도나 차 관련해서 따로 배우셨어요? 전문가 같은데요?”정은은 슬쩍 고개를 돌려, 내내 말없이 조용히 있던 강서원을 바라봤다.“그 정도까진 아니고요... 그냥 관련 책 몇 권 읽고, 자격증 몇 개 딴 정도예요.”“헐, 자격증까지 있다고요?”지훈이 놀라 눈을 크게 떴다.‘그 정도면 전문가 맞지...’바로 그때, 강서원이 조용히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맞아, 나도 직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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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76화

“재석, 오늘 대체 왜 이래?”지훈이 재석을 서재로 끌고 들어가더니, 문을 ‘탁’하고 닫아버렸다.재석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뭐가 왜인데?”“밥 먹을 때 네 여자 친구 강 여사 옆에 못 앉게 하질 않나, 밥 다 먹고 강 여사가 정은이랑 집안 둘러보겠다니까 너도 따라가겠다고 하지 않나...”“야, 우리 강 여사 무슨 맹수야? 정은이 잡아먹기라도 할까 봐서 그래?”‘그럴 리 없잖아...’ 재석은 조용히 눈썹을 찌푸렸다.“정은이 처음 오는 거니까 좀 어색할까 봐. 옆에 앉아야 챙겨주기도 쉽잖아. 그리고 같이 집안 구경하자고 한 거, 내가 따라간다고 한 게 뭐가 문제야?”지훈은 들을수록 어이없다는 듯 눈이 점점 커졌다.마침내 헛웃음을 터뜨리며 소리쳤다.“문제지, 이 사람아! 강 여사가 정은이랑 단둘이 이야기 좀 해보려고 기회를 만든 건데, 네가 굳이 따라붙으면 분위기 깨잖아!”재석은 순간 할 말을 다 잃었다.그런데 옆에서 듣고 있던 지언이 눈치를 챘는지 입을 열었다.“그만해라, 둘째야.”“형, 나 진짜 이해가 안 가서 그래. 이게 지금 단순한 문제냐고!”지훈의 목소리에 점점 열이 올랐다.“재석이가 모르고 그랬을까? 어릴 때 IQ 검사했을 때 얘가 너보다 20점 높았던 거 기억 안 나?”“뭐? 지금 그 얘기는 왜 꺼내?”지훈은 억울하다는 듯 입을 쩍 벌렸다. ‘내가 뭐 틀린 말 했냐고...’하지만 재석은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조용히 입을 열었다.“어머니가 정은이 마음에 안 들어 하는 건 나도 알아.”“야, 근데 너 그걸 뻔히 알면서도 왜...”그러다 문득 깨달은 듯, 지훈의 목소리가 툭 끊겼다.“잠깐, 설마... 진짜로 우리 강 여사가 정은이한테 뭐라고 할까 봐 걱정돼서 그런 거야?”‘와, 진짜네. 강 여사가 이거 알면 집안 뒤집히겠어.’‘아들이 친엄마를 그렇게 경계하다니.’지훈이 바로 반박했다.“그러니까 네가 그렇게 티 내면서 감싸고 돌면, 강 여사 눈엔 더 거슬리잖아?”그 순간, 재석이 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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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77화

정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진심을 담아 말했다.“어머님, 정말 대단하세요. 능력 있으시고요.”‘이렇게 넓은 본가에, 정원까지...’‘직접 손에 흙 묻히지 않아도, 이런 집을 설계하고 운영하려면 머리로 일해야 하는 건데...’ ‘솔직히 몸 쓰는 일보다 머리 쓰는 일이 더 어려운 법이지.’강서원은 그 말을 듣고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칭찬은 누구나 기분 좋게 할 터였고, 그녀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땐 말이지, 집안일 하나하나 챙기랴, 세 아들 옷 입고 밥 먹고 공부하는 거 다 보랴, 남편하고 관계도 신경 쓰랴...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잠시 말을 멈춘 강서원은 멀리 어딘가를 바라보며 살짝 웃었다.그 미소에는 조금의 회한과 지침이 담겨 있었다.“다들 재벌가 며느리 하면 편하고 여유로울 거라 생각하지만, 나는 직장 다닐 때보다 더 힘들었어.”정은은 그 말이 뜻밖이었다.“직장을 다니셨어요?”강서원은 두 손바닥을 펴 보이며 웃었다.“그럼. 나도 한때는 월급 받던 사람이었지. 대학 졸업하고 부동산 회사에 들어가서, 영업부터 시작해서 5년 만에 팀장이 됐고, 그다음엔 퇴사하고 나와서 개인 사업을 시작했어.”“저는 그냥...”정은은 무심결에 중얼거렸다.“나도 우리 동서인 백 여사처럼 금수저일 줄 알았다고?”강서원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아니야, 나 백 여사처럼 대단한 집안 출신 아니야.”“우리 집은 그냥 평범한 중산층. 아버지는 건축연구원 공무원, 어머니는 국립대 교수. 맞벌이였지만, 외동이라 사랑은 워낙 많이 받고 자랐지.”“대학 졸업 전까지는 내 인생 로드맵이 딱 정해져 있었어. 직장 다니면서 실무 배우고, 나중엔 내 사업을 차릴 거였지. 진짜, 사장님이 되는 게 목표였거든.”그 시절의 강서원은 누구 아내도, 누구 며느리도 될 생각이 없었다. 누군가의 사람으로 불리는 게 아니라, 자기 이름 석 자로 살아가고 싶었다.하지만 인생은, 언제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다.“계획은 언제나 변수를 이기지 못하더라. 나도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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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78화

강서원은 잠깐 멈칫했다.정은의 맑고 단단한 시선과 마주친 순간, 본능적으로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정은이 잔잔하게 입을 열었다.“어머님, 저를 데리고 이렇게 둘러보신 건... 사실 저랑 단둘이 이야기하고 싶으셨던 거죠?”강서원은 더 이상 숨기지 않았다.“그래, 맞아. 너라는 사람을 제대로 보고 싶었고... 무엇보다, 재석이가 없는 자리에서 이야기하고 싶었거든.”정은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그래서, 직접 보시고 나니까 어떤가요? 또... 그 얘기라는 건 대체 뭔가요? 왜 재석 씨는 들으면 안 되는 건데요?”‘이 아이, 생각보다 훨씬 단도직입적이네.’‘감정에 휘둘리지도 않고, 중심도 잘 잡고 있어.’강서원이 피식 웃었다.“너 솔직하구나. 그리고 아주 냉철해.”“예전에 내가 동서 백지영이랑 있었던 작은 갈등 때문에 너까지 괜히 엮어서 오해했어. 그건 내가 편협했던 거고, 미안해.”잠시 숨을 고른 강서원은 다시 입을 열었다.“그렇지만, 너도 알다시피 사람 마음이란 건 참 복잡해. 처음 본 날부터 이상하게 마음이 가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이유 없이 거리감이 느껴지는 사람도 있어. 그런 감정은 굳이 설명이 안 돼도... 이해하지?”정은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네, 이해해요. 누군가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건 결국 개인적인 감정이니까요. 어머님이 저에 대한 첫인상이 안 좋으셨던 것처럼, 저도 처음엔 어머님이 무척 까다롭고 거리감 있는 분이라고 생각했어요.”강서원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떨렸다.‘이렇게 대놓고 말하는 건 또 처음이네...’사실 예상은 했지만, 직접 그렇게 말로 들으니 뭔가 기분이 묘했다.그렇다고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왜냐면, 자신 역시 정은에게 그렇게 말했으니까.단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자신은 ‘어른’이고, 정은은 ‘아이’라는 것.정은의 이런 솔직함은 ‘예의 없음’이나 ‘거침없음’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었다.그래서일까... 강서원은 괜히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하지만 바로 표정을 다잡고 말했다.“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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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79화

상위에 있는 자는 언제나 하위의 마음을 쉽게 흔든다.지위로만 따지면, 연애 관계 안에서야말로 정은이 상위자였다.재석의 웃음과 눈물, 재석의 감정선 전체를 정은이 쥐고 흔들 수 있었다.즉, 그렇게 똑똑하고 당당하던 재석이, 정은 앞에서는 늘 한발 물러서 있고, 무슨 일이든 다 들어주려 한다.만약 정은의 사랑도 그만큼 뜨겁고 진심이었더라면, 강서원의 마음도 좀 더 평온했을 것이다.하지만 분명히, 정은은 아니었다.정은은 너무도 명확하고 이성적이었다.감정에 함몰되기보다는, 한 걸음 물러서서 상황을 보는 사람.미련한 사랑 따위는 하지 않는, 계산과 통제가 몸에 밴 여자였다.‘끝까지 전부를 내주는 건, 내 멍청한 아들 조재석뿐이었지.’강서원은 정은을 뚫어지게 보며 입을 열었다.“정은아. 여자로서 말하자면, 난 네 그 이성적인 면이 솔직히 부러워. 감정을 주도하고, 남자를 움직일 줄 아는 여자? 그건 능력이야.”“솔직히 말해서, 나라도 그랬을 거야. 누구나 원하잖아? 무조건 내 편이 되어주는 남자, 내 감정에 전부를 맞춰주는 사람.”“그러니까 너도 틀린 건 아니야.”“하지만...”강서원의 시선이 날카로워졌다.“나는 재석이 엄마야. 내 아이가 그렇게 가슴을 열고, 모든 걸 다 주고 있는데, 그만큼의 이해나 양보도 받지 못하는 걸 보면... 정말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아. 그래서 말인데... 나도, 틀린 건 아니야.”정은은 그 말을 듣고도 한참 말이 없었다. 잠시 조용한 침묵 끝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아니요.”정은은 고개를 저었다.“맞는 건 맞고, 틀린 건 틀린 거예요. 왜냐면 진실은 하나니까요.”정은의 눈동자가 강서원을 정면으로 응시했다.그녀의 말은 조용했지만, 그 안엔 흔들림 없는 힘이 담겨 있었다.“제가 커리어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해서, 재석 씨를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에요. 또, 커리어를 내려놓는다고 해서 그게 진짜 사랑이라는 보장도 없고요.”“어머님도 잘 아시잖아요. 사랑이라는 감정이, 시간이 흐르면서 얼마나 쉽게 변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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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80화

점심과 같은 자리 배치.정은은 재석 옆, 그 옆엔 지훈.조기봉과 강서원은 마주 앉아 있었다.아마 저녁 반찬이 입맛에 더 잘 맞았던 걸까... 아니면, 오후에 강서원과 충분히 대화를 나눈 덕분에 마음이 한결 편해진 탓일까...정은은 점심때보다 훨씬 많이 먹었고, 무심결에 밥 한 공기를 더 비워냈다. 게다가 반찬에도 손이 자주 갔다.재석이 챙겨주는 음식까지 더해지니, 결국, 정은은 배를 두드리며 속으로 탄식했다.‘과했네. 너무 맛있어서 정신 못 차렸어.’정은은 괜히 코끝을 만지작거리며 민망한 듯 웃었다.점심땐 무슨 말을 들을지 몰라 조심스럽기만 했는데... 지금은 마음이 훨씬 가벼웠다.‘차라리 ‘싫다’는 걸 들은 게 나아. 분명해졌으니까.’강서원이 자신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난 순간, 정은은 의외로 안심했다.‘그래, 준비는 진작부터 되어 있었으니까.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아.’“자, 정은아. 차 한 잔 더 줄게.”조기봉이 직접 우려낸 첫 잔을 정은에게 내밀며 부드럽게 웃었다.정은은 두 손으로 공손히 잔을 받았다.“감사합니다, 아버님.”식사도 배불리 했겠다, 따뜻한 차 한 잔은 딱 좋았다.입가심에도, 속을 달래기에도 완벽했다.그때, 지언이 자리를 조용히 일어나더니 거실 가운데로 나왔다.그리고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흠, 갑자기 생각난 게 있어요. 다들 모인 김에 간단히 얘기할게요.”조기봉과 강서원은 눈을 마주쳤다.‘뭐지?’지훈은 형의 엄숙한 태도에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왜, 이렇게 대놓고 얘기하려는 거 보니까... 설마 형도 결혼 발표?”지언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응.”“하...?”지훈은 그 자리에서 굳고 말았다.눈이 동그래진 채, 입이 반쯤 벌어진 모습.‘진짜...?’조기봉과 강서원 역시 얼떨떨한 얼굴이었다.“지언아, 지금 장난하는 거니? 뭐라고 말 좀 해봐.”하지만 지언의 표정엔 전혀 장난기가 없었다. 오히려 단단히 마음을 먹은 듯, 또렷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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