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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폭군의 장군 황후: Chapter 1281 - Chapter 1290

1290 Chapters

제1281화

봉구안의 발길질에 봉안진은 정신이 번뜩 들었다.그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주씨가 생전에 남긴 수첩을 주워 들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내 잘못이야... 모두 다 내 잘못이야...”떨리는 손으로 수첩을 다 주운 그가 고개를 들었을 때, 문가에 서 있는 어린 딸이 보였다. 작고 슬픈 얼굴로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었다.“아버지, 어머니는 어디 갔어요?”봉안진은 갑자기 얼굴을 손으로 가리더니, 어깨를 들썩이며 울기 시작했다.차마 딸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어떻게 말하겠는가. 자신의 어리석음이 그녀의 어머니를 죽음으로 내몰았다고...봉구안이 돌아서서 네댓 살 된 아이를 안아들었다. 그리고 한 걸음씩 주씨에게 다가갔다.“연아야, 네 엄마는 잠이 들었어. 아주 오래오래 잘 거야.”연아는 멍하니 움직이지 않는 어머니를 바라보다가, 이내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렸다.아직 너무도 어린 나이였기에 생이별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어른의 거짓말이 더는 통하지 않았다.어렴풋이 느껴졌다. 엄마는 다시는 깨어나지 않을 거라는 걸 말이다.아이의 비통한 울음소리는 봉안진의 가슴을 더더욱 찢어지게 만들었다.그와 주씨는 부모의 뜻에 따라 혼인을 맺은 사이였다.누구와 결혼했든 서로 예의를 지키며 살아갔을 것이다.그들은 봉구안과 황제처럼 불꽃같이 사랑한 사이는 아니었다.황제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 후궁을 해산시켰고, 흉조라 불린 쌍생아마저도 기꺼이 받아들였다.하지만 그는 그저 평범한 남편이었고, 주씨 역시 평범한 아내였다.가문이 어울려 혼인했고, 특별할 것 없는 나날을 함께 보내왔다.요란한 사랑보다는, 그저 오래 함께하는 삶을 바랐다.혼인 초엔 달콤한 시간도 있었다.그러나 연아가 태어난 뒤, 부부는 점점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어갔다.그는 누구를 깊이 사랑해 본 적 없었다. 주씨는 분명 현모양처였지만, 그의 마음속 깊이까지 들어오지는 못했다.그래서 어느 날, 누군가의 꾀임에 넘어가 하룻밤을 보냈을 때도… 아내가 알게 될까 두려운 것보다, 그 단조로움을 깰 수 있다는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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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82화

봉장미는 서여국으로 떠나고 싶었다.오직 그곳에서만 마음 편히 숨 쉴 수 있고, 과거의 일들로부터 자신을 조금이나마 놓아줄 수 있으리라 여겼다.서여국이라면 그녀가 모욕을 당하더라도, 그 누구도 그녀를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남제에서는 거의 모든 이들이 그녀에게 ‘책임’을 묻고 있었다.이런 마음을 봉구안에게 털어놓자, 봉구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충분히 이해했다.봉장미가 보다 안정된 곳에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길 바랐다.그래서 그녀는 동생의 결정을 지지했으며, 다만 송려와 충분히 상의하라고 당부했다.그 하루 사이에 너무 많은 일이 벌어졌고, 봉구안은 몸과 마음 모두에 깊은 피로가 깃들었다.소욱이 그녀를 먼저 궁으로 데리고 돌아갔다.영화궁에 도착해, 곁에서 얌전히 기다리던 아들을 보자 그녀의 마음은 문득 아릿해졌다.졸음을 겨우 참아가며 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던 아들을 안아 들고, 봉구안은 조용히 그의 머리 위에 입을 맞췄다.곁에 서 있던 소욱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로했다.“장미의 병세는 그리 심각하지 않아. 게다가 곁에 송려가 있잖아.”봉구안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한편, 봉가 저택에서는 봉장미의 출국 의사를 들은 송려가 침묵에 잠겨 있었다.예상은 했지만, 막상 현실이 되니 마음이 복잡했다.그는 조심스레 그녀를 끌어안아 품에 기대게 했다.봉장미는 아무런 저항도 없이 그의 품에 안겨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서방님, 전 서여국에 꼭 가야 해요. 만약… 서방님께서 저와 함께 가시기 어렵다면, 그땐…”그녀는 끝까지 말하지 않았다.송려를 얽매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하지만 그녀가 남제에 억지로 머무른다면, 끝없이 상처받을 뿐이었다.언젠가 그녀의 과거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늘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송가는 장주의 명문가 출신이었다.자신이 송가의 명예를 해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은, 그녀에게 큰 짐이었다.그때 송려가 단호히 그녀의 말을 끊었다.“천 리, 만 리… 어디든지 너와 함께 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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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83화

봉장미가 연아를 데려가고 싶어 한 이유는 단순했다.“언니, 오라버니는 연아를 제대로 돌볼 수 없어요.”“저는 아이의 친고모예요. 누구보다 잘 보살필 수 있어요.”“게다가 저와 서방님은 아이가 없잖아요. 저도 곁에 아이가 있었으면 해요.”봉구안의 표정이 점점 엄숙해졌다.“오라버니는 뭐라고 했느냐? 동의했느냐?”봉장미는 그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언짢은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요즘 오라버니는 멍하니 지내면서, 연아를 주가에 맡기려 해요. 주 부인은 외손녀를 기꺼이 돌보겠다고 하셨지만, 주 대인과 다른 식구들은 불만이 많더라고요.”“그날 연아가 그들에게 밀려나는걸 보는데… 정말 마음이 아팠어요. 그래서 오라버니에게 말했어요. 차라리 제가 데려가겠다고요.”“그랬더니 한마디 말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바로 데려가라고 했어요.”봉구안은 침울한 눈빛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이 일이 너무 쉽게 결정된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그녀는 여전히 이 일이 좀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하였다.“우선 좀 더 생각해보자.”봉장미가 고개를 끄덕거렸다.봉안진이 지금 내리는 결정은, 상실감에서 비롯된 일시적인 감정일 가능성이 컸다.그가 훗날 후회하게 되면, 아이와 장미 모두에게 큰 상처로 남을 것이다.그녀는 그를 궁으로 불러들였다.봉안진은 살이 빠져 초췌한 얼굴로 영화궁에 나타났다.그의 눈빛엔 공허함이 깃들어 있었다.그가 주씨에게 느낀 감정은 뜨거운 사랑보다는 가족 같은 깊은 정이었다.늘 곁에 있었기에 그 소중함을 몰랐고, 이제야 빈 방과 차가운 대청을 보며 절감하고 있었다.봉구안은 그의 상태를 곧바로 간파했다.이런 사람이 지금 내리는 결정이 과연 현명할 수 있을까.“지금 아이를 넘기려는 결심은 감정 때문입니다. 훗날 후회하게 되면, 연아는 또 한 번 상처받게 될 겁니다.”봉안진은 풀린 눈으로 대답했다.“마마께서는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저는… 앞으로 평생, 연아를 다시 보지 않을 생각입니다.”그는 연아를 볼 면목도, 용기도 없었다.아이를 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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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84화

봉 부인이 영화궁에 들어선 건, 손녀 유아를 위해서였다.봉구안을 보자마자 그녀는 애절하게 말했다.“마마, 유아는 안진이의 친딸입니다. 그 아이는 이미 아내를 잃었습니다. 그런데 마마께서 어떻게… 아이까지 생이별하게 하시렵니까?”“부디 폐하와 마마께서 뜻을 거두어 주시옵소서!”그녀는 말을 마치고 절을 올리려 했으나, 봉구안이 손을 들어 막았다.“어머니, 오해가 있으신 듯합니다.”“유아를 장미에게 보내기로 한 건 저나 폐하의 명령이 아닙니다. 그건 오라버니께서 스스로 요청하신 일이에요.”“그럴 리가 없습니다! 안진이가 어찌 그런 결정을…”봉 부인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봉구안을 바라봤다.하지만 딸이 거짓말을 할 리는 없었다.그녀는 혼란과 불안 속에 겨우 말을 이었다.“마마, 그게 사실이라면… 저는 안진이가 목숨을 끊을까 봐 두렵습니다.”“그 아이는… 정이 많은 아이입니다.”자식을 가장 잘 아는 건 부모다.봉 부인의 불안은 결코 기우가 아니었다.봉구안은 즉시 사람을 시켜 참장부로 향하게 했다.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백이 급히 돌아와 보고했다.“마마, 대인께서… 독을 드셨습니다!”“다행히 신속히 발견해 의원이 해독제를 먹였습니다.”“신속하게 대처한 터라,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 하였습니다.”봉 부인은 기절할 듯 아들을 부여잡고 통곡했다.“안진아, 어찌 이렇게 어리석을 수 있느냐!”“네가 잘못되면, 어미는 어찌 살라고 그러느냐…”봉안진은 창밖을 멍하니 바라봤다.어둠이 스며든 창문 너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그는 그저… 주씨에게 진 빚을 갚고 싶었을 뿐이었다.황궁.오백은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낱낱이 봉구안에게 보고하였다.소욱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사내가 되어 그리도 쉽게 죽음을 결정하다니…”그는 봉안진의 이런 비겁한 태도에 크게 실망하였다.봉안진이 정말 죽은 아내를 깊이 사랑했다면, 애당초 외실을 두지 않았을 것이다.이런 자제구레한 일들로 봉구안의 마음을 어지럽히다니. 그는 그런 봉안진이 매우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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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85화

봉명헌은 단 몇 마디로 봉 대인의 분노를 정확히 가셨다.비교해보니, 오히려 큰아들 봉안진이 나아 보일 정도였다.그러나 나이는 속일 수 없는 법.지금의 봉 대인은 봉명헌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두부를 만들며 단련된 팔 힘으로 봉명헌은 봉 대인을 단단히 제압했다.그 결과, 봉 대인은 몹시 굴욕적인 자세로 벽에 눌려 팔이 꺾인 채 버둥댔다."이놈아! 내가 네 아버지다! 감히 나에게 손을 대? 하늘이 무섭지도 않느냐?!"봉 부인은 더는 기대하지도 않았다. 봉 대인이 자식을 올바로 다잡을 수 있을 거란 희망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그녀는 즉시 봉안진을 안으로 들여보냈다.봉 대인이 겨우 진정되고 나서야 봉명헌이 그를 놓아주었다.이번 봉 대인의 귀환은 단지 큰아들을 꾸짖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주가를 직접 찾아가 사과하고, 명분을 세우기 위함도 있었다.자식 교육을 제대로 못한 건 결국 부모 책임이라 그는 생각했다.만약 자신의 딸이 시집에서 모욕당하고 목숨을 잃었다면, 자신도 결코 가만있지 않았을 것이다.그리하여 봉 대인은 그 길로 바로 주가 저택으로 향했다.주씨 집안은 이미 봉 대인이 올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봉 대인은 체면을 중시하는 사람이었다. 아들이 그 지경이 되었는데 안 찾아올 리 없었다.앞 대청.봉 대인은 모든 예를 갖추어 절도 있고 정중하게 인사했다.그러나 주가 일가는 사랑하는 딸을 잃은 슬픔에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단, 주 대인을 제외하고는 말이다.주 대인은 황후의 체면과 두 집안의 향후 관계를 고려하여 겉으로는 평온한 태도를 유지했다.“사돈어른, 우리끼리 솔직히 말해봅시다. 남자라면 누구나 삼처사첩 있는 법입니다.”“탓할 게 있다면, 외실이 지나치게 야망이 컸다는 것뿐이지요.”“사위어른께서도 요즘 많이 힘드셨을 테니, 저희가 그 마음 압니다.”“우리 집에 아직 시집가지 않은 딸이 하나 있는데, 첫째 딸과도 조금 닮았습니다. 그 아이를 참장부에 들여보내 봉 서방을 위로하게 하면 어떻겠습니까?”그 말을 들은 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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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86화

봉장미가 봉구안에게 보낸 편지에는 남제가 서여국에 네 개의 성을 요구했지만 서여국이 그 요구를 수차례 미루고 있는 이유가 적혀 있었다. 남제의 서쪽 경계를 공짜로 강화해 줄 수는 없다는 것이 서여국의 속셈이었다.그러나 봉장미는 분명히 말했다.만약 자신이 황제가 된다면, 가장 먼저 할 일은 그 네 개의 성을 남제에 내주는 것이라고.편지를 읽은 소욱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장미는 기억을 되찾고 나니까 더 똑똑해진 것 같구나.”봉구안은 그 말에 부정하지 않았다.“봉가에서 길러낸 황후의 재목이라면 영리해야지, 그렇지 않고서야 궁궐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어요? 장미가 꾀가 있는 건 오히려 다행이에요. 그래야 자신을 지킬 수 있으니까요.”소욱의 눈빛이 짙어졌다.“그 아이가 너까지 계산에 넣어도 괜찮단 말이지? 유아를 굳이 데려가려는 이유, 너도 알고 있잖아. 그 아이는 원하는 건 다 말하고, 장애물은 네가 치워주길 바라고 있어.”봉구안의 눈빛이 점점 무거워졌다.그녀는 조용히 소욱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친자매 사이에 뭘 따진단 말이에요.”“그리고 저도 사심이 있어요. 숙가의 혈맥이 끊기는 건 너무 아까워요. 유아가 봉안진 곁에서 외롭게 자라느니, 차라리 넓은 천지를 안겨주고 싶어요. 그 아이는 형수가 목숨 바쳐 지켜낸 아이니깐요.”소욱은 그녀가 이토록 냉정하고 단호하다는 사실에 한숨을 쉬었다.“다만 이해가 안 가는 건, 장미가 처음부터 황제 자리를 노렸다면 왜 지금껏 입도 뻥긋 안 했냐는 거야. 서여국엔 이미 새 황제가 있는데, 장미가 그냥 돌아가겠다고 나서면 피바람이 불지 않겠느냐?”봉구안은 담담하게 말했다.“그 아이는 더는 아이를 가질 수 없어요. 서여국 조정에서 그 아이를 완전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건 그 문제 탓이죠. 하지만 지금은 유아가 있어요. 혈통과 후계 문제가 해결되면 누가 반대하겠어요? 모든 게 나 하늘의 뜻이었던 거죠.”소욱은 그녀의 손을 가볍게 잡았다.“그럼 너라도 편하겠지. 더는 서여국 쪽에서 널 건드리지 않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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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87화

송려는 봉장미를 바라보았다.자신이 언제나 지켜온 아내.그녀를 마주한 그의 마음 한편에 허전함이 스며들었다.“무슨 일이든, 나한테 숨기면 안 되는 거야.”그 한마디에 담긴 실망은 결코 작지 않았다.봉장미는 눈물 한 방울을 떨어뜨리며 고개를 숙였다.“제가 잘못했어요.”“그치만 상황이 너무 불확실해서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어요.”“언니 답장을 받은 다음에 상의하려고 했던 거예요.”“서방님, 제발 이 일로 절 미워하지 말아 주세요. 언니에겐 폐하가 계시고, 어머니에겐 자식이 저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지만… 저에겐 오직 서방님뿐이에요.”“온 마음을 다해 절 아껴준 분은… 서방님뿐이에요.”“서방님만은 영원히 절 떠나지 않을 거잖아요, 그렇죠?”그녀의 애절한 목소리에, 송려는 끝내 모질게 대할 수 없었다.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넌 아직도… 내가 알고 있던 장미가 맞는 거니?”과거의 그 천진하고 순수한, 눈에 오직 자신만 담고 있던 장미.그 장미가 정말 여기에 있는 걸까.봉장미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답했다.“당연하죠. 전 한 번도 변한 적 없어요.”“서방님은 영원히 제 남편이에요.”“제가 황제가 된다 해도, 후궁에는 서방님 한 사람뿐일 거예요.”“이번 일은 제가 정말 잘못했어요.”"그렇지만… 그만큼 서방님을 사랑해서예요. 서방님을 잃을까 봐, 너무 무서웠어요.”그녀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송려의 손을 잡고 자신의 뺨에 갖다 댔다.눈빛은 뜨겁고 타오르는 불꽃같았고, 그를 꿰뚫듯 강렬했다.“서방님, 폐하께서 언니를 아끼시듯… 저도 서방님께 늘 그렇게 아껴지길 원해요.”하지만 그 말에 송려의 눈빛엔 미묘한 불쾌감이 스쳤다.“장미야, 그런 건 비교할 게 아니야.”그러나 비교는 언제나 불만에서 시작된다.송려는 바로 물었다.“설마… 나한테 불만이라도 있는 거야?”봉장미는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그럴 리가요!”“서방님이 절 위해 얼마나 많은 걸 해주셨는지… 저 다 알아요.”“제가 그런 일을 겪었을 때도 끝까지 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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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88화

서왕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완부옥의 시선을 피했다.급히 겉옷을 걸쳐 온몸의 흔적을 가린 그는 대충 둘러대기 시작했다.“이건… 혹시나 내가 필요할가봐… 미리 준비해둔 거야.”완부옥은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그래요?”그녀는 곧장 약환 하나를 꺼내더니, 그걸 서왕의 입에 억지로 밀어 넣으려 했다.“그럼 아깝게 버리지 말고, 이 약이 얼마나 효과가 좋은지 제가 직접 확인해 보죠.”서왕은 황급히 그녀의 손목을 붙잡고 약환을 빼앗아버렸다. 그러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알겠다. 사실대로 말할게. 이건… 피임약이다.”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완부옥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분노가 한순간에 치솟았다.“이런 천벌받을 놈! 감히 이런 걸 먹고 있었단 말이에요?”“왜 아직도 임신이 안 되나 했더니… 뒤에서 이런 짓을 하고 있었군요!”그녀는 홧김에 피임약 병을 통째로 엎어버렸다.서왕은 속이 쓰렸다. 이 약은 꽤 비쌌단 말이다.완부옥은 손목을 틀어 그의 목을 움켜쥐며 거칠게 소리쳤다.“온몸이 썩은 놈아! 내 아이 내놔!”“내 몸만 실컷 즐기고, 이제 와서 책임은 안 지겠다는 거야?”“오늘 반드시 본때를 보여줄 거야. 이래야 정신을 차리지!”그녀는 그를 놓지 않고 점점 더 강하게 목을 졸랐다.서왕은 간신히 목소리를 짜냈다.“너… 정말… 나를… 죽일 셈이냐!”완부옥은 검은 머리카락이 어깨 위로 흘러내렸고, 물어뜯긴 붉은 입술은 요염하게 빛났지만, 그 표정은 마치 지옥에서 기어 나온 악귀 같았다.그녀는 지금 진심으로, 그의 목숨을 노리고 있었다.방 밖에 있던 호위병들은 안에서 들려오는 고성과 소란에 귀를 쫑긋 세웠다.유화는 놀라 급히 문 앞으로 달려갔다.“전하! 괜찮으십니까?”방금 왕비마마가 하신 말로 보아하니, 전하께서 그… 기능이 없으신 건가?그렇다고 해도, 사람을 죽이는 건 아니지 않나!치료할 수도 있는 거잖아!그리 생각하였다.유화는 잔뜩 긴장하며 안절부절못했다. 혹시라도 왕비가 정말 힘 조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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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89화

누군가 대중 앞에서 장공주를 거절했다. 그 일이 오히려 태후의 흥미를 자극했다.봉구안도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았다.그 남자는 침착하고 단단해 보였다. 감정이 드러나지 않아, 마치 돌기둥처럼 단단했다.장공주는 면전에서 면박을 당한 듯 기분이 상했다.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이름이 무엇이냐?”그는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정중하게 말했다.“장공주님께 아룁니다. 제윤이라 합니다.”봉구안은 이 제윤이라는 인물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그는 황성 동영의 정예병 중 한 명으로, 용맹하고 냉정한 자였다. 다만 집안에 늙은 부모가 있어 그를 변경으로 보내는 것을 꺼려 했고, 그래서 황성에 남아 있게 된 인물이었다.사실, 오늘 입궁한 장병들 대부분은 자신들이 부마 후보로 뽑혔다는 걸 알고 있었다.봉구안이 이들에게 가정사와 혼인 여부를 묻기도 했고, 장공주 또한 자주 군영에 나가 무예 연습을 구경했으니, 속셈은 다들 알고 있었던 셈이다.하지만 그중에서도 오직 훈련만이 삶의 전부인 이들이 있었다. 제윤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그는 이번 입궁이 정무를 위한 것이라 믿었고, 장공주가 부마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에서야 모든 걸 깨달았다.‘당당한 칠척 장부가 어찌 여인을 모시겠는가.’그것도 장공주 같은 고귀한 인물이더라도, 자신은 그런 삶을 원하지 않았다.제윤의 태도는 단호했고, 그 의연함은 오히려 장공주의 심기를 건드렸다.그녀는 입꼬리를 비틀며 비꼬듯 말했다.“어머나, 누가 보면 내가 너희들을 강제로 납치라도 하는 줄 알겠구나.”그가 싫다면 싫은 거지. 꼭 제윤이어야 할 이유도 없었다. 그러나 자존심이 상한 건 분명했다.제윤은 말없이 예를 올렸다.“그렇다면 소신은 물러가겠습니다.”그렇게 끝났으면 좋았겠지만, 제윤은 돌아서기 전 봉구안을 향해 입을 열었다.“황후 마마, 소신은 본래 마마께서 진심으로 사방의 장병들을 훈련시키려 하신다고 믿었습니다.”“하지만 만약 이 선발이 단지 부마 후보를 가리기 위한 것이라면, 앞으로 소신은 군영 훈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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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90화

소욱의 반응은 무심했지만, 그 시선은 여전히 봉구안에게 머물러 있었다.“그래서, 공주가 제윤을 꾸짖는 걸 그냥 내버려 둔 것이냐?”봉구안은 고개를 들고 곧바로 그를 바라보았다.“폐하도 이미 알고 계셨군요?”소욱은 가볍게 웃었다.“내 눈을 피할 수 있는 일이 어디 있겠느냐?”“그럼 왜 물으셨어요?”“네 입으로 좀 더 이야기하게 하려고.”소욱은 아들의 턱을 들어올렸다. “아들아, 네 어머니 좀 봐라. 요즘 말이 너무 없지 않느냐? 나에게 감미로운 말 한마디 해준 지도 오래된 것 같구나.”그는 아들에게 고자질이라도 하듯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었다.봉구안은 화가 치밀면서도 웃음을 터뜨렸다.“알겠어요. 폐하께서 듣고 싶으시다니, 오늘 밤엔 제대로 말해드리죠.”그때 마침 유모가 둘째를 안고 들어왔다.작고 어린아이가 넓은 면포에 감싸여 머리만 삐죽 내밀고 있었는데, 꼭 커다란 찹쌀떡 같았다.봉구안이 아이를 받아 안자, 놀랍게도 아이는 먼저 팔을 뻗어 봉구안의 목을 끌어안았다.조그만 눈썹을 찌푸리며 옹알대는 모습이 꼭 목욕이 불편했다고 항의하는 것 같았다.“힘들었니? 괜찮아, 어미가 닦아주면 괜찮아질 거야.”봉구안의 어조는 살뜰하고 다정했다.소욱이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그런 부드러움이었다.소욱은 실망한 듯 품에 안은 첫째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봐라, 네 동생은 이제부터 네 어미의 총애를 독차지할 작정이구나.”그 말이 끝나자, 큰아들이 정말로 끄덕끄덕 고개를 움직였다.소욱은 깜짝 놀라며 웃음을 터뜨렸다.“구안아, 봤느냐? 방금 첫째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내 말을 다 알아듣는 것처럼 말이야.”봉구안은 둘째의 몸을 닦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고개를 끄덕인 게 아니라, 머리가 불편해서 그런 거예요.”이렇게 어린 아이는 머리카락도 얼마 없는데, 소욱은 여전히 내공으로 말리고 있었던 것이다.“!!!”그는 황급히 내공을 거두며 중얼거렸다.“요즘 내가 바보가 된 것 같다…”봉구안은 들고 있던 면포를 그의 얼굴에 던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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