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Chapter 1391 - Chapter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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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91화

“여기… 틀림없이 혈인 자리오.” 여섯번째 도령이 낮게 말했다.모두 뜻을 알아차리고 곧장 나아가 가져온 돈혈 통을 들어 그 구멍을 겨누고 기울였다. 되직한 암붉은 액이 바닥 모를 검은 구멍으로 콸콸 흘러들며 둔탁한 울림을 냈다.한 통, 두 통, 세 통, 네 통… 돈혈이 끊임없이 부어지는데도 석주는 잠든 거대한 짐승처럼 미동도 없이 꿈쩍하지 않았다. 공기에는 비릿한 누린내가 점점 짙어져 속을 뒤집히게 했다. 사람들의 가슴도 통마다 비워질수록 서서히 가라앉았다.이제 마지막 한 통만 남자 눌린 기운이 극에 달했다.“어찌 하오? 이 마지막 통뿐이오. 내가 지금 나가 더 구해 올까 하오?” 일곱번째 도령이 물었다.최지습이 미간을 잠시 어둡게 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늦을수도 있다. 네가 돌아올 즈음이면 아래의 피가 이미 굳어 버렸을 수도 있다.”이 말에 모두가 눈살을 찌푸리며 당장 어찌할 바를 몰랐다.그때 두번째 도령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 “더 부으시오! 그래도 아니면 우리 손을 베어 인혈을 더하자는 것이오! 오늘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괴물을 열어야 하오!”조금 전 영아의 백골로 가득했던 밀실이 이미 모두의 가슴에 불을 붙여 놓았던 것이다. 다른 호랑이군도 잇달아 고개를 끄덕이며 죽기를 각오한 결연함을 얼굴에 띠었다.마지막 돈혈 한 통이 들어 올려져 다시 구멍으로 쏟아졌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흘렀으나 아무 반응도 없었다…역시 안 되는 것인가.김단은 미간을 바짝 좁히며 생각했다. 혹 이 금역 보장의 전설이 애초에 허망한 거짓이었던가. 모든 것이 처음부터 끝까지 요망서의 복수 계책이었던가.바로 그때였다. 우르르르르—!지심 깊은 데서 솟는 듯한 거대한 굉음이 돌연 울렸다. 거대한 석주가 격렬히 떨리며 더디게 아래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발아래 땅도 함께 요동쳤고, 천정에서 잔돌과 먼지가 우수수 쏟아졌다. 별안간 터져 나온 이 동요는 마치 지룡이 몸을 뒤집듯 사나워서, 모두의 기혈을 뒤흔들고 간담을 서늘케 했다.됐다!그들은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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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92화

차갑디찬 절망이 지하의 한기 같은 물결로 삽시에 김단의 온몸과 골수까지 밀려들어 심장 깊숙이 스며들었다.눈앞의 괴이한 무늬로 가득 새겨진 석주는 임종의 마지막 탄식 같은 둔탁한 울림과 함께 끝내 제자리로 내려앉아 틈새 하나 허락하지 않은 채 모든 희망을 무정히 짓부수었다.바로 그 순간, 김단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단 하나였다. 소한을 어찌한단 말인가.석주가 움직이지 않으니 보장은 열리지 않는다. 자옥정초를 얻지 못한다면, 소한의 몸에 도는 독을 무엇으로 풀겠는가.시선이 문득 곁에 선 다섯번째 도령의 허리춤에 매단 장검으로 떨어졌다.차갑게 번뜩이는 금속의 빛이, 광기처럼 타오르는 눈동자 속에서는 오히려 유일한 활로로 보였다.어디서 솟았는지 모를 힘이 치밀어 올라 그녀는 모든 것을 잊은 듯 곧장 달려들었다.“단이! 무엇을 하는 것이오!”다섯번째 도령이 놀라 막아서려 했으나, 김단은 이미 장검을 뽑아 들어 잰걸음으로 몇 보 물러섰다.거친 검자루를 쥔 손가락에 냉기가 파고들었다. 그 차디찬 감촉이 오히려 기이한 각성을 데려왔다.망설임 한 치도 없이, 번득이는 칼날을 상처가 남아 있는 왼손목으로 거칠게 내리그었다.“칙—!”살이 갈라지는 소리가 죽음처럼 고요한 밀실에 유난히 날카롭게 울렸다.그러나 그녀는 스스로를 베지 못했다.최지습의 팔이 그녀의 손목 앞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이제 그 잔혹한 상처가 그의 단단한 팔뚝 위를 가로질렀다. 살결이 뒤집히고 뼈가 드러났으며, 어둑한 피가 거세게 솟구쳐 팔을 타고 굽이치며 흘렀다. 떨어지는 방울마다 먼지 깔린 바닥에 번져들어 작은 웅덩이 같은 어두운 자국을 잇달아 만들었다.김단의 동작이 허공에서 굳어 붙었다. 보이지 않는 서릿발이 순식간에 덮친 듯했다.방금 선혈을 머금은 장검이 손을 떠나 쾅 하고 차가운 석지에 떨어져, 공허하고 절망스러운 울림을 길게 토했다.모든 몸짓과 모든 광기는 그 눈부신 선혈 앞에서 완전히 얼어붙었다.“백도령!”누군가 놀라 외쳤다.정신을 차리자마자, 김단은 비틀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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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93화

그렇지 않았더라면, 이미 다친 그 손목의 힘줄이 단박에 끊어져 영원히 손을 쓸 수 없게 되었을 것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스치자, 그는 빛을 잃은 눈빛으로 고개를 숙여 낮은 목소로 내뱉었다.“보아하니 이곳의 장치는 참으로 달빛과 연관되어 있구나. 오늘은 더는 방도가 없으니, 일단 나가서 길게 도모하자.”김단이 상처를 누르는 손은 더욱 심히 떨렸고 눈물은 끝내 더 거세게 차올랐다.그는 이토록 깊은 상처를 입고도 오히려 그녀를 위하였고, 무너지는 마음을 달래려 애썼다.그의 마음이 강철 망치처럼 내리쳐, 그녀의 죄책감 가득한 가슴을 으스렀다. 숨통이 탁 막히는 느낌이었다..그녀는 있는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목이 메어 온전한 말 한 마디도 내지 못한 채, 가볍게 흔들리는 그의 몸을 온 힘으로 부축했다. 마치 지금 그녀가 붙잡을 수 있는 유일한 구원이 그뿐인 듯이.일행도 뒤이어 밖을 향해 발을 옮겼다.무거운 발자국 소리가 그윽하고 적막한 암도에 메아리쳤고, 억눌린 숨소리와 옷깃 스치는 소리가 뒤섞여 흘렀다.암도는 길고도 답답하여 끝이 없는 듯하였다.얼마나 걸었는지, 앞에서 마침내 희미한 빛이 새어 나왔고, 이어 석문이 무겁게 갈리는 소리가 들려왔다.뼛속을 파고드는 겨울밤 바람이 와락 들이치며 스산한 한기를 실어 왔다.“나왔다!” 누군가 한숨을 놓듯 낮게 외쳤다.한 칸 뜰을 사이에 둔 석문 밖에서 목설하와 목몽설이 발끝을 세우고 금역 쪽을 초조히 굽어보고 있었다.요동치는 횃불빛이 낡은 집의 출구를 다시 밝혀 주자, 목몽설의 낯에 순식간에 생환의 기쁨이 번졌다.“나왔다! 나왔다!”그러나 그 기쁨은 한 찰나에 그쳤다.횃불빛이 또렷이 그려 낸 최지습의 형상은 반신이 피로 흠뻑 젖어 있었고, 불빛 속 그의 안색은 섬뜩할 만큼 창백하였다.그의 곁의 김단은 얼굴 가득 핏물과 눈물 자국이 얼룩져 있었고, 눈빛은 초점을 잃어 혼이 빠져나간 사람 같았다.모두가 비틀거리며 석문을 빠져나오자, 목설하가 숨을 거칠게 들이켜며 놀라움과 믿기지 않음이 뒤섞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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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94화

그러나 그녀는 최지습에게 생명의 위태로움은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이미 환생단을 삼켰고, 보혈익기의 귀한 단약도 여러 알 더 먹었다. 내일 눈을 뜨면 틀림없이 기운이 되살아날 것이다.하지만 그것으로 마음속의 무거운 자책과 미안함이 조금도 가벼워지지 않았고, 오히려 덩굴처럼 더 옥죄어 왔다.그녀는 아예 방금 그 금지된 구역의 어둑한 빛 아래서 스스로 완전히 정신을 잃었으며, 절망의 귀물에 홀린 것만 같다고까지 생각했다. 그 석주는 분명 제자리에 완전히 내려앉아 기계 장치가 닫히고 잠겼는데, 설령 자신의 피를 한 방울 남김 없이 모두 쏟아 부은들 어떻게 다시 털끝만큼이라도 올라갈 수 있었겠는가.그녀는 정말로 너무 경거망동하였다. 자옥정초를 얻지 못한다는 까닭 하나로, 소한이 독발해 쓰러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하나로… 하마터면 최지습의 팔을 제 손으로 끊어 버릴 뻔하였다. 수차례나 그녀 앞을 막아서 그녀를 온전히 지켜 준 그 사람의 팔을.이 생각에 이르자, 뜨거운 눈물이 또다시 주체하지 못하고 눈가에 가득 고였다.김단은 허겁지겁 손을 들어 소매 끝으로 얼굴에 맺힌 눈물을 마구 훔쳤다. 그러고 나서야 두 번째 도령을 향해, 울음보다 더 애처로운 웃음을 겨우 지어 보였다. 목소리는 메마른 듯 갈라져 나왔다.“예, 그이는 아무 일 없을 것입니다. 도령들께서는 먼저 돌아가 쉬십시오. 여기는 제가 지키고 있겠습니다.”이 말에 두번째 도령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그녀의 창백한 얼굴과 피가 스며드는 손목의 붕대를 번갈아 보며 염려스럽게 입을 뗐다.“허나 그대는…”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다섯번째 도령이 그의 팔을 홱 잡았다. 그는 눈짓으로 그를 제지한 뒤, 김단을 향해 한결 가벼운 듯하면서도 단호하게 말했다.“좋소, 여기는 그대에게 맡기겠소, 단이. 우리는 먼저 물러가겠소. 무슨 일 있으면 언제든 부르시오.”그렇게 말한 뒤, 두번째 도령과 다른 호랑이군을 이끌고 주저 없이 밖으로 물러났다.문을 나서자마자, 두 번째 도령이 다섯 번째 도령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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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95화

그런데 그녀는 그를 위해 무엇을 했던가. 떠올려 보아도 아무것도 없었다. 오늘은 오히려 자신의 손으로 칼끝을 그에게 겨누고 말았다. 그 생각이 독사처럼 파고들어, 그녀의 심장을 집요하게 갉아먹었다.“내일도 중대한 일이 남아 있사옵니다.”영칠의 낮고 안정된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그는 말로 다독이는 것이 큰 효험이 없음을 알아채고 말을 바꾸었다.“약왕곡의 주인께서 몸을 먼저 보중하셔야, 뒤이어 닥칠 형세를 감당하실 기력이 서옵니다.”그 말은 희미한 전류처럼 절망과 죄책에 짓눌려 마비된 김단의 신경을 스치고 지나가, 마치 강심제 한 방울을 흘려넣은 듯 그의 가슴에 힘을 불어넣었다.그래, 그렇지. 자옥정초는 아직 손에 넣지 못했다. 소한은 생사의 벼랑 끝에서 그녀의 구원을 기다리고 있다. 최지습은 그녀를 위해 이토록 혹독한 대가를 치렀는데, 어찌 여기서 스스로를 한탄하는 수렁에 빠져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일어나야 한다. 마음을 가라앉혀야 한다. 금역의 그 저주스러운 세 번째 관문을 어떻게 넘어설지, 냉정히 궁구해야 한다.새벽빛이 두터운 구름을 가까스로 헤집고 나와, 창백하고 싸늘한 빛줄기를 몇 가닥 흘려내렸다. 목씨 관저 의논당 안은 마치 살얼음 위처럼 무겁게 얼어붙은 기운이 감돌아, 숨쉬기조차 버거웠다. 자단 목재로 짜인 장의 양편에는 목씨 가문의 핵심 인물들이 하나둘 빠짐없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목씨 가문의 가주 목설하는 주좌에 단정히 앉아 있었다. 그러나 고요한 얼굴 아래, 붉게 충혈된 눈과 이마 사이 깊게 드리운 피로가 밤새 한숨 붙이지 못했음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그 아래 바짝 앉은 목몽설의 고운 눈썹과 눈매에는 감당하기 힘든 근심이 어려 있었고, 시선은 자꾸만 굳게 닫힌 당문으로 치달았다. 꼭 중대한 소식을 기다리는 사람 같았다.목설원과 몇몇 장로들은 좌우에 나뉘어 앉아, 일그러짐 하나 없는 얼굴로 객좌에 선 김단을 날 선 눈빛으로 거듭 훑었다.당 안 공기에는 보이지 않는 긴장이 짙게 깔려, 손만 대도 곧 터져 나올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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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96화

김단은 차갑게 조각된 목의자에 앉아, 등줄기를 꼿꼿이 세운 채 억지로 버티는 굳은 기색을 풍겼다.수수한 옷으로 갈아입은 그녀의 얼굴빛은 종잇장처럼 창백했고, 눈두덩 아래 짙게 드리운 그늘은 밤새 한숨조차 이루지 못한 초췌함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바람만 스쳐도 금세 꺾일 듯 위태로워 보였다.무릎 위에 포개어진 두 손은 무의식중에 단단히 맞잡혀 있었고, 마디마다 푸른빛이 감돌았다. 손가락 사이에는 여전히 어젯밤 끝내 지워지지 않은 듯한 어두운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어젯밤…”김단은 깊게 숨을 고르며 목에 걸린 떨림을 억눌러 담담히 말하려 애썼다. 그러나 첫마디에 묻어난 쉰 기색과 끝맺음에 번진 미세한 떨림은, 팽팽히 당겨진 신경과 큰 소모를 가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그녀의 시선은 장내에 드리운 무거운 얼굴들, 저마다 가늠하는 눈빛과 노골적인 적의를 하나하나 스치다가 마침내 주좌에 앉은 목설하에게 가 닿았다.“금역 가장 깊은 곳, 셋째 장치 앞에서… 저희가 분명… 장치를 건드렸사옵니다.”홀 안의 숨결이 문득 멎었다.수없이 많은 눈길이 송곳처럼 날카롭게 꽂혀 그녀를 겨눴고, 공기는 마치 쪽쪽 빨려나간 듯 숨 막히게 비워졌다.김단은 그 눌림을 아랑곳하지 않는 듯, 아득한 꿈을 되짚듯 또렷이 말했다.기묘한 무늬가 빼곡히 새겨진 거대한 석주, 그 위로 스며든 희미한 달빛을 감지하자 깊은 어둠 속에서 우우 울며 서서히 솟구치던 형상, 그리고 달이 삼켜져 빛이 끊기는 그 순간, 절망스러운 굉음과 함께 무정히 제자리로 내려앉던 광경까지.이를 듣던 목몽설은 손수건을 힘주어 움켜쥐며, 애틋함과 아찔한 두려움이 뒤섞인 목소리를 토해냈다.“누가 알았겠사옵니까… 어젯밤에 하필 월식 같은 이변이 있으리라고요. 한끝만 더하면… 정말 한끝만 더하면 보장을 열 수 있었사옵니다. 참으로 하늘이 사람을 놀리는 듯하옵니다.”“그렇다면… 그 셋째 장치는 혈인만으로는 모자라고, 달빛까지 있어야 한다는 말이오?” 한 장로가 마른 목으로 더듬였다.“어쩐지… 어쩐지 조훈에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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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97화

희생이라는 말마디를 그는 끝내 입에 올리지 못했으나, 다 하지 못한 뜻은 납덩이처럼 무겁게 각자의 가슴을 짓눌렀다.목설하는 팔걸이에 올린 손을 알아채기 어려울 만큼 힘주어 움켜쥐었다. 곧 눈을 들어 목진강의 분노 어린 시선을 정면으로 받아냈다. 그리고는 또렷하게, 마치 한 글자 한 글자 새기듯 말을 내리꽂았다.“나는 물론 알고 있다. 알기에 더욱 밝혀야 한다. 우리 모두가… 그 빌어먹을 조훈에… 속아 온 것이다.”그 음성에는 기만당한 분노와, 해방에 가까운 고통이 뒤섞여 있었다.목진강은 큰 망치에 얻어맞은 듯 두 눈을 크게 부릅뜨더니 비틀거리며 털썩 의자에 주저앉았다. 떨리는 입술 끝에서 더는 한 마디 말도 이어지지 않았다.목씨 가문의 여인들의 피가 필요치 않다니.그렇다면 그의 딸, 손녀, 금역으로 보내졌던 그 살아 있던 생명들… 그들이 흘린 피와 목숨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이 시각 의논당에 모인 모든 목씨 사람들의 얼굴에도, 목진강과 다르지 않은 표정이 떠올랐다. 신념이 무너져 내린 뒤의 허망과 고통, 그리고 믿기 어려운 경악이었다.늘 세상을 가볍게 대하던 목설원조차 미간을 깊게 찌푸리고 손에 든 접부채를 무의식중에 움켜쥐었다. 언제나 웃음기를 머금던 그 눈길에, 처음으로 깊고도 아린 통증과, 결코 만나지 못한 어느 이를 향한 그리움이 스쳤다.김단은 허리가 꺾인 듯 넋이 빠져 버린 목씨 일족을 바라보며, 마음에 한 줄기 쾌감조차 남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가슴에 남은 것은 오직 묵직하게 가라앉는 비애뿐이었다.그녀는 깊이 숨을 들이쉬고 등을 곧추세워 담담히 입을 열었다.“목 가주, 여러 장로님들… 아뢰옵고 싶은 일이 한 가지 더 있사옵니다.”잠시 숨을 고른 뒤, 그녀의 목소리에는 영혼 밑바닥에서 솟아난 자비와 분노가 엷게 떨렸다.“금역의 첫 번째 밀실에는… 수많은 영아의 유골이 쌓여 있었사옵니다.”그리고 마침내 힘주어 덧붙였다.“그 불쌍한 아이들… 부디 사람을 보내어 정히 거두어 주시어, 땅에 모셔 편히 쉬게 하여 주옵소서.”공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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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98화

외인이라는 두 글자는 차디찬 독침처럼 김단의 귓속을 또렷이 찔렀다.참으로 모진 풍자였다.처음에는 오직 그녀의 피만이 열쇠라 여겼을 때, 그들은 다투어 그녀를 목씨 혈맥으로 인정했다.하지만 진상이 드러나 돈혈 같은 짐승의 피만 있으면 된다고 하자, 그녀는 순식간에 경계의 선 밖으로 밀려난 외인이 되어 버렸다.이익에는 눈 밝고 화에는 등을 돌리는 목씨 가문의 몰정한 낯빛이 이 순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목몽설은 분노에 얼굴이 창백해지며 주먹을 굳게 움켜쥐었다. 고운 눈동자에는 숨길 수 없는 혐오가 서려 있었다.목설하의 얼굴에는 깊은 난처함이 드리워졌다. 그가 김단을 외면하려는 것은 아니었으나, 이 순간만큼은 가주로서 종문의 이익을 앞세워야 했다.그는 잠시 깊이 생각하더니 마침내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무거운 체념이 묻어나는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삼숙의 근심도… 일리가 있도다.”“목 가주!”김단이 참지 못하고 낮게 부르짖었다. 가슴속 마지막 희망의 불씨가 꺼져 가고 있었다.바로 그때, 줄곧 침묵하던 목설원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접부채 끝으로 탁상을 가볍게 두드려 맑은 소리를 내고는 김단을 바라보았다. 복사꽃 같은 눈매에 통찰의 빛이 번뜩였다.“단이는 어찌하여 금역의 보장에 그토록 마음을 두오? 몸을 아끼지 않고 스스로 화를 무릅쓰고, 심지어…”목설원의 눈길이 뜻있게 김단의 붕대 감긴 손목을 스쳤다.“어찌하여 이토록 모든 것을 내던지오?”그녀는 몸을 약간 앞으로 기울이며, 달래듯 탐문하는 낮은 음성으로 이었다.“혹… 그 보장의 심연에, 그대가 기어이 얻어야 하는 무엇이 있는 것이오?”한마디에 의논당의 목씨 사람들 모두가 일제히 경계심을 일으켰다.그러하다. 어찌하여 외인인 김단이 금역의 보장에 이리도 집착하는가.최지습은 그녀의 연인이다. 분명 어제 막 중상을 입었거늘, 어찌하여 지금 그녀는 금역의 일만을 걱정하는가.목몽설을 제외한 모든 이의 시선에 크고 작은 의심과 적의가 어리자, 김단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끝내 실상을 밝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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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99화

김단의 말은 얼음에 담가 둔 송곳처럼 서늘하고 날카로워, 이 의논당에 모인 목씨 가문의 안일한 자들 가슴을 정곡으로 찔렀다.그 한마디 한마디가 날카로운 갈고리처럼 머릿속을 파고들어, 피비린내 나는 끔찍한 장면이 눈앞에서 벌어지는 듯 소름이 치밀었다.의논당의 공기는 문득 얼어붙었다. 보이지 않는 한기와 서릿발이 자리를 뒤덮었다.목씨 사람들의 낯빛엔 곧장 잿빛 그늘이 드리웠다.목진강의 얼굴빛이 퍼렇게 질리며 굳어졌다. 보이지 않는 바늘에 찔린 듯 몸을 곧추세우더니, 억지로 허세를 섞은 소리를 내뱉었다.“흥, 우리 목씨가 은전이 모자라더냐. 영웅첩을 널리 돌려 강호의 일류 고수들을 모아 길잡이로 세우면 그만일 터. 우리를 위하여 뛰는 강호의 호걸이야 수두룩하다. 이 세상 길은 은전으로 닦아낼 수만 있다면, 우리 목씨에겐 결코 천애절벽이 아니니라.”그 말 끝에, 김단은 비웃음을 얕게 흘렸다.“일류 고수라니. 셋째님, 그대가 이 황금 새장에 너무 오래 갇혀 있었던 모양이오. 바깥의 이리와 범이 사람을 어떻게 갈기갈기 찢어 삼키는지 잊은 것이오?”그녀의 목소리는 한층 높아졌다.“세상에서 살의를 부추기고 양심을 휘씻는 데 가장 능한 것이 바로 은전이오. 누가 흔들리지 않았다면, 다만 그 은전의 무게가 아직 모자라 사람의 마지막 금선을 짓누르지 못했을 뿐.”독을 머금은 한칼 같은 그녀의 눈길이 창백해진 얼굴들을 천천히 훑고 지나갔다. 눈길이 닿을 때마다 등줄기를 타고 냉기가 도두 섰다.“누가 장담하오. 금역 깊숙한 천문 같은 재물이, 그 이른바 고수들을 남을 뜯어먹는 흉수로 바꾸지 않으리라.”김단의 목소리는 낮아졌으되, 서늘함은 더욱 짙어졌다.“그들이 십세를 탕진하고도 남을 보화를 눈앞에서 보게 되면, ‘남의 돈을 받았으면 화를 막는다’는 말이 그들 눈에 과연 몇 닢짜리 동전 값이나 되겠소?”그녀는 잠깐 말을 멈추어 그 상상이 스스로 부풀어 오르게 하더니, 다시 또박또박 말했다.“그때가 되면, 목씨 가문 위아래가 모조리 도륙당해 닭과 개 한 마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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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00화

“그를 믿으라 하오?” 냉눈질로 지켜보던 목설원이 다시 입을 열었다. 손에 든 금장 접부채로 손바닥을 가만히 두드리니 딱딱한 울림이 번졌다. 평소 웃음 머금은 도화빛 눈매가 가느다랗게 실처럼 좁혀지며, 표면의 장난스러움과 이면의 예리한 심문의 기색이 동시에 번뜩였다.“단이는 우리 집안사람임은 틀림없소. 평양원군의 신분 또한 천근만근처럼 무거운 법. 그러나 사람속은 격막 하나를 사이한 듯 가장 헤아리기 어려운 것. 하늘을 뒤엎을 만한 천금이 눈앞에 쏟아지면 백성의 목숨은 개미와도 같아지오. 우리더러 어찌 그이를 믿으라 하오.”김단의 낯빛이 문득 굳었다. 설명하기 어려운 분노와 실망이 가슴 밑바닥에서 치밀었다. 그녀는 줄곧 목설원이 겉으로 보이는 한량이 아님을 알았으나, 이토록 냉혹하여 인명을 하잘것없는 것으로 치부하는 말이 그의 입에서 나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그녀가 막 준엄히 반박하려는 찰나, 의논당 문밖에서 전장의 쇳내를 실은 낮고도 꿰뚫는 음성이 들려왔다. “나 최지습은 수년 전장을 떠돌며 시체의 산과 피의 바다, 통곡으로 뒤덮인 들판을 숱하게 보아 왔다. 목씨 가문 둘째 도령 또한 그와 같은 지옥을 몸소 겪어, 부모가 어린 자식을 잃고 아내가 남편을 잃으며 아이가 기댈 울타리를 잃는 참상을 보았다면, 어찌 ‘백성의 목숨이 개미와 같다’는 따위의 말을 내뱉을 수 있겠는가.”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최지습이 벌써 발걸음을 옮겨 들어왔다. 하룻밤 가다듬은 탓에 과다출혈로 창백하던 기색에 약간의 생기가 돌았고, 걸음은 묵직하였으며 목소리에는 기운이 넘쳤다. 보기로는 상처가 큰 탈은 없는 듯했다.김단의 덜컥 올려 있던 마음이 순식간에 제자리를 찾았다. 따스함이 먼저 솟구쳤으나 곧 더 깊은 미안함이 밀려와 그것을 덮었다. 그녀 때문이 아니었다면 그가 이 지경에 이르렀을 리 없었다.최지습은 곧장 김단 곁으로 다가섰다. 시선을 떨구어 그녀의 얼굴에 닿는 순간, 눈서리가 스르르 녹아 부드러운 온천이 된 듯, 그에게서 위무의 옅은 미소가 번졌다.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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