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Chapter 1611 - Chapter 1620

1644 Chapters

제1611화

숙희는 그가 당황하면서도 애써 태연한 모습을 보이자, 눈가의 웃음이 더욱 깊어졌다. 마치 매우 재미있는 것을 발견한 듯했다.그녀는 바위에서 뛰어내려 그에게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하며 그를 쳐다보았고, 목소리를 약간 낮추었다. 그녀는 호기심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솔직히 말해 보십시오. 오늘 돌이 쏟아져 내릴 때, 도령님이 달려가던 속도는 무척 빨랐습니다!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셨습니까? 혹시 우리 아씨께서 다치면 대군께서 도령님의 가죽을 벗기시기라도 할까 봐 겁먹으신 겁니까?” 그녀는 굳이 태연한 어투로 위험했던 순간에 대해 물으며 그 순간 숨이 멎기 직전이었던 자신의 감정을 애써 숨기려 했다.영칠은 순간 가까이 다가온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웃음으로 가득 찬 그녀의 두 눈이 코앞에 있었다. 심지어 그녀에게서 풍기는 풀 내음과 땀 냄새가 섞인 희미하고도 상큼한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이는 그의 주위를 감돌던 차가움과는 크게 달랐다. 순간 그의 호흡이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미세하게 멈췄고, 이유 없이 심장도 한 박자 늦게 뛰었다.그는 시선을 내리깔며 그녀의 너무나 솔직한 눈빛을 피했다. 목소리는 아까보다 더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곡주님을 보호하는 것, 그것은 본능이오.”더군다나, 그는 최지습의 관리 아래에 있던 몸도 아니었다.“오, 본능이라...” 숙희는 일부러 어투를 길게 늘였다. 그녀의 눈빛이 교활하게 반짝였다. 마치 그의 약점이라도 잡은 듯했다. “보아하니 영칠 도령님의 본능은 자기희생이로군요?”그녀는 말을 하며 무심코 그의 등 뒤 옷자락 아래로 희미하게 비치는 붕대 자국을 훑어보았다. 놀리던 어조도 살짝 수그러들었고, 묘한 진심이 더해졌다. “그럼 다음번에 본능이 발동하기 전에 조금은... 자신을 좀 돌보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등 뒤의 상처, 척 보기에도 아파 보입니다.”마지막 문장에 목소리가 작아졌고, 알 수 없는 안쓰러움이 묻어났다.영칠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러나 숙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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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12화

당국, 황궁, 어서재.단향이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가운데, 주위에는 형언할 수 없는 위압감이 감돌았다.황제는 서안 앞에 앉아 있었다. 나이가 50에 가까워져 귀밑머리가 하얗게 드리워졌으나, 그 매와 같은 눈빛은 여전히 날카롭고 강렬했다. 그는 좀처럼 보기 드물게 칭찬 어린 눈빛으로 앞에 공손히 서 있는 둘째 황자 우문호를 바라보고 있었다.“매추락골의 일은, 네가 아주 잘 처리하였다.” 황제의 목소리는 낮고 느렸고, 굳이 화를 내지 않아도 그 위엄이 느껴졌다.우문호는 작게 몸을 숙였다. 그의 자세는 겸손했지만, 눈빛에는 억누르기 힘든 득의양양함과 야심이 담겨 있었다. “송구하옵니다. 모두 폐하의 덕이 하늘과 같으시고, 전략을 미리 짜 두신 덕분에 소자가 기회를 보아 실행에 옮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폐하의 근심을 덜고, 당국의 우환을 제거하는 것은 소자의 본분입니다.”그의 목소리는 평온했고, 내면의 격한 감정을 완벽하게 감추었다.황제에게 이토록 대놓고 인정과 칭찬을 받은 것은, 그의 목표에 성큼 한 걸음 더 다가선 것이었다.“음,” 황제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일의 후속 조치는 짐이 네게 전권을 맡길 것이다. 필요한 인력과 자원은 병부에 직접 청하여 조달하도록 하여라.”“소자, 명을 받들겠습니다! 폐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우문호는 속으로 솟구치는 환희를 애써 억누르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그는 어서재에서 물러 나와 궁궐의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길을 걸었다. 오후의 햇살이 그의 용이 수놓인 비단 옷 위로 떨어져 눈부시지만 서늘한 광채를 반사했다.우문호의 걸음은 침착했고, 입가에는 뜻을 이룬 듯한 냉소가 번져 있었다.우문각 그 멍청이가 온갖 수를 써도 해내지 못했던 일을, 그는 한 번에 처리했다.이로써 황제는 이미 그와 그 멍청이의 차이를 확인했을 것이다.오늘은 그저 병부에서 그쳤지만, 다음에는 6부, 심지어는 그 이상의 권한도 이제는 멀지 않았다!그는 매우 좋은 기분으로 저택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선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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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13화

목몽설이 마침내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이전에는 밝고 생기 넘치던 그녀의 눈동자가, 지금은 재로 뒤덮인 것처럼 차갑고 낯설었다.“전하께서 큰 뜻을 펼치시게 된 것,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다만 신첩이 오늘 몸이 불편하여 입맛이 없을 듯하고, 술은 더더욱 마시지 못할 것 같습니다. 혹여 전하의 흥을 깨뜨린 것은 아닐까 염려됩니다. 전하께서는 혼자 드시거나, 아니면... 전하와 함께 마음껏 취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가시는 편이 좋겠습니다.”그녀의 말은 예의 있고 완벽했으나, 단어 하나하나가 얼음송곳과 같았다. 그에게 명확한 선을 그었고, 천 리 밖으로 그를 밀쳐내는 냉담함이 담겨 있었다.우문호는 그녀의 창백하고 냉정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 담긴 처절한 고독함, 심지어는 그를 향한 일말의 혐오감을 느꼈다. 그녀를 달래 주려던 그의 마음은 순식간에 거대한 좌절감과 분노로 가득 찼다. 소매 속 그의 손은 천천히 주먹을 쥐었고,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변했다.그는 그렇게 그 자리에 서서 그녀가 다시 시선을 창밖으로 돌리는 것을 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경직되어 있었다. 마치 그를 다시 쳐다보는 것이 견딜 수 없는 고통인 것처럼 보였다.방안은 죽음과 같은 침묵에 빠졌다. 오직 물시계의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물방울 하나하나가 우문호의 점점 차갑게 식어가는 심장을 때렸다.그는 문득 교외 숲속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그녀가 온 힘을 다해 자신을 등에 업고, 한 걸음 한 걸음, 비틀거리며 어둡고 축축한 숲속에서 길을 찾아 헤맸었다.나뭇가지가 그녀의 치맛자락과 팔을 긁었지만, 그녀는 싫은 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 그저 끊임없이 말했다. “잠들지 마십시오! 우리는 반드시 나갈 수 있을 겁니다!”그녀의 등은 매우 여위었지만, 이상하리만큼 따뜻하고 단단했다. 이는 절망 속에서 그의 유일한 버팀목이자 열원이었다.그때 그녀의 가쁜 숨소리, 울음 섞인 목소리로 애써 태연하게 그를 격려해 주던 말, 그리고 머리칼에서 풍기던 희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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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14화

다음날, 하늘이 막 밝아질 무렵, 산골짜기의 모닥불은 이미 꺼져 있었다.“우문호가 우리가 매추락골에 묻혔다고 믿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다. 하지만 우리가 계속해서 함께 움직인다면, 늦든 빠르든 그 자의 눈에 띄게 될 것이다. 반드시 여러 무리로 나누어 흩어져서 움직여야 한다.”최지습이 낮은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모두가 잠시 침묵하다 고개를 끄덕였다.곧 분산 계획이 정해졌다.소하와 임신 중인 고지운이 함께, 경씨는 숙희와 함께 가기로 했다.호랑이 군은 두 무리로 나누어, 각각 소하와 경씨를 따르기로 했다.다만 경씨는 나이가 많고 팔 하나를 잃었기에, 호랑이 군의 보호가 있다 해도 김단은 여전히 걱정되었다.그녀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영칠을 바라보았다. “영칠 도령, 경씨 도령과 숙희와 한 조로 가주십시오.”영칠이 격하게 고개를 들었다. 가면 아래 눈빛에 약간의 의아함이 드러났다. “곡주님! 소자의 임무는 곡주님의 안전을 호위하는 것입니다! 어찌...”“명령입니다!” 김단이 그의 말을 끊었다. 어조는 단호했지만, 그를 보는 눈빛은 다소 누그러졌다. “제 곁에는 다른 군사들이 있습니다. 도령님이 경씨 도령과 숙희를 따라야 제 마음이 놓입니다.”가장 중요한 것은, 그녀가 숙희와 영칠 사이에 생긴 아주 미묘한 변화를 읽어냈다는 것이다.두 사람 다 말은 하지 않았으나, 어젯밤 숙희가 일부러 영칠에게 약을 가져다준 것과 오늘 아침 영칠이 숙희 곁을 지날 때 은밀하게 부축해 준 것으로 알 수 있었다.그들의 눈빛과 몸짓이 이미 그들의 마음을 배신하고 있었다.영칠을 숙희와 함께 가게 하는 것은, 전적으로 안전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영칠은 입을 굳게 다문 채, 무의식적으로 숙희를 바라보았다. 마침내 그는 고개를 숙였다.“명령을 받들겠습니다.”최지습은 영칠을 바라보았다. 그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말을 이었다. “유모는 어린 서달을 돌봐야 하니 우리와 한 길을 가는 것이 당연하겠지. 그리고 소한은...”말을 하며 최지습은 멀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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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15화

지난 며칠 동안 유모는 줄곧 모두와 함께 동굴 속에 숨어 있었고, 어젯밤 동굴을 나선 후에도 따로 행동한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어떤 소식이든 외부에 전할 기회가 전혀 없었다.김단은 그 말을 듣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빛에는 복잡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그녀는 유모의 손을 잡고 나지막이 말했다. “고생하였네. 우리가 안전하게 조선의 안정한 땅에 도착하면, 사람을 시켜 유모를 가족들에게 돌려보내 줄 것이네. 더 이상 유모를 이 일에 엮이지 않게 할 걸세.”유모는 김단의 진심 어린 눈빛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빛 역시 감회가 남달랐다. “곡주님과 대군 자가의 앞길이 내내 평안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김단은 입꼬리를 올려 웃었고, 고개를 들어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감탄하듯 말했다. “분명 그럴 것 일세. 우리 모두 무사할 거야.”그녀가 마차로 돌아왔을 때, 소한은 여전히 구석에 앉아 있었다.김단은 그를 흘깃 보더니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마차에서 내려 좀 걷지 않으시겠습니까?”“음, 조금 피곤하오.”그의 목소리는 약간 쉬어 있었다. 듣기에도 정말 극도로 지친 듯했다.김단은 눈살을 찌푸리며 그의 앞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손을 내밀어 그의 맥을 짚었다.맥박은 평온했고, 이전 며칠보다 훨씬 좋았다.얼굴색은 여전히 창백했지만, 이전보다는 훨씬 나아졌다.그런데도 지금 소한이 이렇게 피곤해하는 것은, 혹 몸속의 공명곡이 발현했기 때문은 아닐까?김단은 그렇게 생각하며 곧바로 단도를 꺼내 자신의 손목 위로 대고 그으려 했다.이 모습을 본 소한은 갑자기 크게 놀라며 빠르게 손을 뻗어 김단의 손목을 붙잡았다. “무슨 짓 이오?!”바로 그때, 마차 휘장이 걷혔다. 이 광경을 본 최지습의 눈빛도 싸늘하게 변했다.김단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독을 억제하려는 것입니다.”“필요 없소.” 소한의 목소리는 낮고 가라앉았다. 약간 쉰 듯한 목소리에는 분명 무언가 숨기고 있는 것이 있는 듯했다.하지만 그의 눈빛은 흔들림 없이 단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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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16화

최지습의 조처라면 김단은 늘 마음을 놓았다.임학이 변방에 나가 있는 것 또한 이미 최지습이 미리 일러 둔 바일 터였다.그렇다면 그들의 후퇴로는 한 겹 더 굳건해졌다.마차는 험한 샛길을 덜컹이며 나아갔다.서달은 유모의 품에 안겨 이미 곤히 잠들었고, 가볍고도 부드러운 숨소리가 차칸에 잔물결처럼 퍼졌다. 마치 사람을 어루만지는 자장가 같았다.하루 종일 마차에 앉아 있었던 탓에 피로가 밀려왔는지, 김단의 고개가 서서히 기울어 최지습의 어깨에 닿았다. 그리고 깊은 잠에 빠졌다.고른 숨결, 눈썹 아래로 떨어지는 긴 속눈썹의 그림자. 그러나 꿈속에서도 미간은 옅게 찌푸려 있었다. 지워지지 않는 근심이 맴도는 듯했다.최지습은 몸을 아주 조금 고쳐 앉아, 그녀가 더 편히 기대도록 했다.세상 귀한 보물을 다루듯 손길은 조심스러웠다.차가운 차벽과 흔들림을 막아 주려는 듯, 그는 팔을 그녀의 어깨와 등에 살며시 둘렀다. 눈길에는 연정과 연민이 가라앉아 있었다.그러나 이 온기와 고요는, 마주 앉은 소한에게는 형벌과도 같았다.그의 시선은 두 사람에게 못이 박힌 듯 떨어지지 않았다. 달아오른 바늘 한 자루가 눈밑을 꿰뚫어 심장 끝까지 박혀 드는 것만 같았다.목울대까지 치밀어 오르는 뜨겁고 시린 파도가 간신히 삼켜져, 입안에 남는 것은 쓴맛뿐이었다.눈을 돌려야 했다.하지만 눈길은 말을 듣지 않았다.탐하듯, 동시에 괴로워하듯, 잠든 얼굴에 머물렀다.언제였던가. 그녀의 모든 다정이 자신을 향해 있던 때가 있었다.지금 그녀는 다른 사내의 품에 아무런 경계 없이 기대고 있다.질투는 덩굴처럼 미친 듯이 자라 그의 심장을 휘감았다.조여들수록 숨이 막혔다.덩굴에는 ‘체념’과 ‘자조’라 이름 붙인 가시까지 돋아 있었다.그가 무슨 자격으로 질투한단 말인가.그녀를 밀어낸 이가 바로 자신이 아니었던가.스스로 두 사람의 인연을 끊어 버린 것도, 결국 그녀를 잃어버린 것도 그 자신이었다.그 깨달음이 찬물처럼 머리끝부터 끼얹어졌다. 몸이 서늘해졌다.그러나 질투의 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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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17화

생각이 거기 미치자, 목몽설의 연지를 바르던 손이 힘이 빠진 듯 아래로 떨어졌다.‘후회’라는 고통이 가슴을 휘몰아치며 몸속 깊이 파고들었다.그때 시녀 하나가 급히 들었다. 좌우의 사람을 물리고, 겉보기엔 평범한 연지합을 두 손에 받쳐 들고 다가와 낮게 말했다.“마마, 바깥에서 어린 시녀가 전해 놓고 갔사옵니다. 옛사람께서 보내셨다 하며, 반드시 마마 손에 직접 올려야 한다 하였사옵니다.”이 시녀는 친정에서 데려온 몸종으로, 지금 둘째 황자 관저에서 그녀가 믿을 만한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목몽설은 그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눈살을 모았다. 그리고 연지합을 받아 들었다.옛사람이 보낸 것이라면, 평범한 연지일 리 없었다.알 수 없는 긴장이 가슴을 죄었다. 그녀는 합 바닥을 손끝으로 더듬다가 아주 작은 장치를 찾아냈고, 살짝 누르자 딸깍하는 소리와 함께 밑층이 튀어 올랐다.안에는 연지가 없었다. 특이한 질감의 박견 한 타래가 곱게 말린 채 들어 있었다.목몽설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서둘러 박견을 꺼내 펼쳤다.한 줄을 보는 순간, 얼굴빛이 새하얘지더니 박견을 쥔 손이 걷잡을 수 없이 떨려 왔다.젹혀 있는 글귀는 짧았지만, 그 몇 자가 벼락처럼 머릿속을 쳤다.“매추락골의 일은 미완. 물고기는 벌써 그물을 찢고, 갈라져 달아남. 부디 안중하시라.”필적은 일부러 감추어져 출처를 가늠할 수 없었다.짧은 문장을 그녀는 세 번이나 되읽었다. 매 글자가 햇빛처럼, 며칠째 가슴을 뒤덮던 먹구름과 절망을 가르며 스며들었다.그들은 죽지 않고 살아남았던 것이다! 김단과 최지습 모두가 무사했다. 기적처럼 모두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가까스로 지켜 낸 냉정과 껍질이, 한순간 밀려든 환희에 산산이 무너졌다.목몽설은 문득 입을 손으로 막았다. 참지 못하고 비명이 새어 나올까 봐서였다. 죽은 듯했던 그녀의 눈동자에 찬란한 빛이 스치더니, 이내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쏟아져 내렸다. 슬픔이 아니라, 말로 할 수 없는 다행과 걱정 때문이었다.잘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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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18화

열흘 뒤.소하와 고지운을 실은 마차가 변방의 작은 고을 서운진에 들어섰다.고을은 크지 않았으나 여러 상로가 교차하는 터라 제법 소란스러웠다.마차가 여인숙 뒷마당에 멈췄다. 멈추자마자 고지운에게서 억눌러 온 신음이 새어 나왔다.허리와 등이 아파왔고 아랫배의 아이가 괜히 들썩여 얼굴이 창백해졌다. 관자에 진땀이 맺혔다.소하는 그녀의 기색을 보고 미간을 좁히고는 낮게 물었다.“어디가 아프오? 많이 불편하오?”고지운은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면 말했다.“괜찮습니다. 오래 앉아 있어서 그런가 봅니다.”목소리는 작았다. 마차 밖 사람들이 들을까 조심하는 기색이었다.하지만 호랑이군은 귀가 밝았다.다섯번째 도령이 마차벽을 뚝딱 두드리더니 발을 멈추고 말했다.“부인께서는 잠시 내려 걸음을 옮기시어 바람을 쐬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계속 차 안에만 계시면 아이에게도 좋지 않겠습니다.”소하는 곧장 답하지 못했다.드러나는 위험을 누구보다 잘 알았지만, 그녀의 몸이 더 걱정됐다.잠시 저울질한 끝에 낮게 말했다.“좋소. 이 뒷마당에서만 잠깐만 거닐어 보오. 나는 전청에 가서 신선한 과일 정과가 있는지 살펴보고 오겠소. 메스꺼움이 좀 누그러질 것이오.”일곱번째 도령이 바로 나섰다.“여기서 부인과 같이 계세요. 제가 사 올게요!”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사라졌다.소하는 감사 인사조차 건네지 못했다.그 대신 고지운의 너울을 씌우고 얇은 면사를 빈틈없이 다듬어 내려 확인했다.이상이 없는 것을 살핀 뒤에야 그녀를 조심스레 부축해 마차에서 내려주었다.뒷마당은 과연 고요했다.구유 곁의 말들만 여물을 씹는 소리를 냈다.고지운은 허리를 짚고 소하와 함께 천천히 걸었다.바깥의 서늘한 공기를 들이마시자 가슴속 막힌 기운이 조금 풀렸다.배도 겨우 숨을 돌린 듯했고,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조금만 더 걷고 마차로 돌아가려던 참이었다.그때 일곱, 여덟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곁문을 헤치고 우르르 들어왔다.밀고 당기며 꺄르르 웃는 소리만 가득했고, 마당에 사람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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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19화

‘찢’ 하는 가벼운 소리가 스치더니, 한낮의 밝은 햇빛이 거침없이 쏟아져 내렸다. 순간, 놀란 고지운의 얼굴이 햇살 아래 훤히 드러났다.오똑한 콧대, 깊게 패인 눈매, 길고 말린 속눈썹.호박빛을 머금은 담갈색 눈동자에는 서역의 결이 뚜렷했다.아이들이 얼어붙었다.날마다 보던 이들과 전혀 다른 빼어난 아씨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그제야 고지운은 자신의 얼굴이 드러났음을 깨달았다. 허둥지둥 손으로 얼굴을 가렸지만 이미 늦었다. 그녀의 진짜 모습은 아이들의 눈에 선명하게 박혀 버린 뒤였다. 소하는 즉시 앞으로 나서 그녀를 감싸며 마차 쪽으로 데려갔다.호랑이군의 기색도 단단히 굳었다.낮은 목소리가 잇달아 흘렀다.“지금 바로 떠나야 합니다.”마차는 속력을 끌어올려 서운진을 벗어났다.모두가 알고 있었다. 가장 큰 위험의 씨앗은 이미 뿌려졌다.우문호에게 소식이 닿기 전에 반드시 변경에 도착해야 했다.며칠 뒤.당국 황도, 둘째 황자 관저 서재.우문호는 문서를 넘기고 있었다.그때 우달이 소리 없이 들어와 낮게 아뢰었다.“전하, 변경의 눈에서 급보가 올라왔습니다. 며칠 전 서운진에 수상한 일행이 나타났는데, 그중에 산모가 한 명 있었습니다. 아이에게 잡아당겨진 너울에 얼굴이 드러났고… 이족으로 보였다고 합니다.”우문호의 붓끝이 딱 멎었다.검은 먹방울이 한 점, 선지 위에 탁 떨어져 크게 번졌다.이족의 산모라니.고지운인가.살아 있었다고?매추락골에서의 계책은 빈틈이 없었다.어떻게 빠져나왔단 말인가.“그 밖에 수상한 점은 있었느냐?”우달이 미간을 낮추며 말했다.“듣자 하니 그 산모 곁에 있던 몇 사람은 수련이 된 자들로 보였다고 합니다.”“그 여인 말고는 없었느냐?”우문호가 다시 물었다.그의 뜻은 달랐다.다른 자들은 어디에 있느냐는 말이었다. 이를테면 김단.우달이 고개를 저었다.“매추락골 이후에 흩어져 달아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탁.두터운 손바닥이 책상을 내리쳤다.우롱당했다는 분노와 서늘한 살기가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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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20화

목몽설의 심장이 미친 듯 뛰었다. 얼굴은 잿빛으로 질렸지만 애써 태연을 가장했다.“매추락골의 일 말씀이십니까? 전하께서 김단 일행을 없애신 그 일을 두고 하시는 건가요?”“못 알아듣겠소?”우문호가 그녀의 손목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성큼 다가온 그는 수틀 앞에 앉아 수를 놓던 그녀를 그대로 끌어올렸다.“그 돌궐 여인이 들켰소. 최지습 일행은 애초에 죽지 않았소. 아직도 나를 속일 작정이오? 말하시오. 처음부터 알고 있었소?”손목의 통증에 목몽설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그러나 그녀는 입술을 굳게 깨물고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죽지 않았다면 하늘이 눈을 뜬 까닭이겠죠. 우문호, 그대는 악행을 쌓아 왔습니다. 언젠가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그 말에 우문호의 가슴속 미미한 정은 완전히 꺼졌다.분노와 배신감이 모든 것을 삼켰다.그가 손을 홱 놓았다.시선은 얼음처럼 차갑고 잔혹했다.“좋소. 아주 좋소.”“목몽설, 그대가 빌어 보오. 그들이 다시 내 손에 걸리지 않기를. 걸린다면, 그대 눈앞에서 하나씩 죽이겠소.”말을 던지듯 내뱉고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사납게 걸음을 돌려 관저 밖으로 내달렸다.“입궁한다. 윤허를 청해 내가 직접 변경으로 간다!”우문호의 포효가 앞마당을 가르며 울렸다.“최지습이 살아서 당국을 벗어나게 두지 마라!”그 소리가 멀어질수록 목몽설의 심장도 더 세차게 죄였다.그녀는 목소리를 낮추어 가까이 서 있던 시녀에게 일렀다.“어서 전갈을 보내라. 신분이 이미 드러났다고 전해.”그 ‘그들’이 누구인지는 굳이 밝힐 필요가 없었다.시녀는 깊이 허리를 굽혀 응하고 급히 물러났다.한편.가슴을 졸이며 각자 길을 달리던 일행이 흩어진 지 거의 반 달.당국 변경에 가까운 황량한 작은 성에서 마침내 서로를 다시 만났다.무사한 얼굴을 확인하자 그제야 굳었던 마음이 조금 풀렸다.고지운은 살짝 수척해졌지만 뱃속의 아이는 평온했다.김단과 숙희는 동시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고지운은 먼 길의 티가 그대로 남은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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