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대표님과의 치명적인 밤들의 모든 챕터: 챕터 1361 - 챕터 1370

1416 챕터

제1361화

유호천은 차 안에서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다가 결국 문을 열고 성큼성큼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소지연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작은 한숨을 내쉬고 급히 하이힐 소리를 내며 뒤따랐다.미리 약속이 되어 있었는지 병실 앞에는 장미자와 유한수가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두 사람이 함께 나타나자 유한수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는 차가운 웃음을 흘리며 아들을 바라봤다.“나는 네가 네 할머니가 병이 났어도 안 돌아올 줄 알았다. 그래도 겨우 네가 유씨 집안 자식이라는 걸 기억은 하는 모양이구나?”“여보!”장미자가 급히 제지했다.“애가 온 것만으로도 다행인데 지금 이런 말을 해서 뭐해?”“흥, 아직도 감싸고 도는군.”유한수는 비웃으며 말했다.“당신이 그렇게 버릇을 잘못 들여서 지금처럼 윗사람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구는 성격이 된 거야.”“여보!”장미자가 눈살을 찌푸리며 단호하게 끊었다.“오늘 오기 전에 이런 말은 하지 말자고 했잖아!”그러고는 곧장 유호천을 향해 몸을 돌렸다.“어서 들어가 보렴. 네 할머니가 안에 계셔. 괜히 더 지체하지 말고 들어가 봐.”유한수와 유호천이 더 마주 서 있다간 또다시 언성이 높아질까 두려웠다.유호천은 병실 문을 잠시 바라보다가 평소 같으면 반박했을 그가 드물게 아무 말 없이 문을 밀고 들어갔다.장미자는 소지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가 품에 안고 있는 꽃다발을 흘깃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너도 들어가. 할머니께 네 얼굴을 보여드려야지.”소지연은 조용히 응하며 장미자와 유한수에게 고개 숙여 인사한 뒤 병실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안으로 들어서자 침대 앞에 선 유호천이 망설이는 듯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자 흰머리가 희끗한 정현숙 할머니가 산소호흡기를 단 채 눈을 감고 누워 있었다.비록 눈을 감고 있어도 얼굴에는 오랜 세월 집안을 일으켜 세운 사람만의 강인한 기운이 남아 있었다. 젊은 시절부터 전국적으로 자선 사업에 힘쓰며 이름을 떨쳤던 인물. 바로 그 정현숙이 이제는 병상에 누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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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62화

소지연을 본 정현숙의 눈빛이 순간 환하게 빛났다.“어서 이리 와서 나 좀 보자꾸나.”소지연은 꽃을 병상 머리맡에 내려두고 차분히 고개 숙여 인사했다.“할머님, 빨리 건강 회복하시길 바랍니다.”정현숙은 힘겹게 웃음을 지었다. 병색이 짙어 목소리도 나지막했지만, 그 눈빛은 여전히 따뜻했다. 정현숙은 손을 뻗어 소지연을 곁에 앉히더니 잠시 찬찬히 얼굴을 살펴보고 고개를 끄덕였다.“네가 지연이지?”소지연은 놀란 듯 입술을 깨물었다.“저를 아세요?”정현숙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알다마다. 네 사진이 지금도 호천이 방 서랍에 들어 있더구나.”뜻밖의 말에 소지연은 놀라서 유호천을 흘끗 바라봤다. 순간, 그의 얼굴이 붉게 물들며 난감한 기색이 스쳤다.“할머니 이런 얘기는 왜 하세요.”“왜 못 하겠니?”정현숙은 오히려 태연히 웃으며 소지연에게 시선을 돌렸다.“사진으로만 봤을 때는 몰랐는데 직접 보니 훨씬 예쁘구나. 우리 손주에게 과분할 정도야.”“할머니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유호천은 믿기지 않는 눈빛으로 할머니를 바라봤다. 그의 혼사 문제는 늘 부모가 결정권을 쥐고 있었고 정현숙은 특별히 의견을 내지 않았기에 더 의외였다.기쁨이 스며든 시선으로 소지연을 돌아봤지만, 그녀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오히려 고개를 숙인 채 깊은 생각에 잠긴 듯했다.그런 소지연을 본 정현숙은 손등을 토닥이며 다정히 말했다.“얘야, 시간 될 때마다 와서 나 좀 보아주겠니?”소지연은 바로 고개를 들어 또렷하게 대답했다.“물론이죠. 할머님을 찾아뵙고 말씀 나눌 수 있다면 제겐 큰 영광이에요.”“허허, 그 말만으로도 마음이 놓이는구나.”정현숙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앞으로 내가 말이 많아도 귀찮아하지 말아다오.”“그럴 리가요.”소지연은 미소로 답하며 더욱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그러자 정현숙은 다시 손주를 향해 눈썹을 모았다.“호천아, 이렇게 좋은 아이는 서둘러 아내로 맞아야지.”유호천은 본능적으로 소지연을 바라봤다. 그 마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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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63화

병실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안에서 정현숙의 단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너희는 정말 날 후회만 남긴 채 눈감게 만들 작정이야?”“어머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아까까지만 해도 유호천에게는 엄하게 굴던 유한수는 산소호흡기를 낀 정현숙 앞에서는 기세가 꺾여 조심스러운 태도로 대했다.유한수가 말을 이었다.“저랑 미자가 의논했어요. 어머니 퇴원하시면 호천이랑 지연이 결혼식 올리려고 합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그 정도는 돼야지!”정현숙은 차갑게 코웃음을 치다가도 곧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지금 우리 집안이야, 아무것도 안 해도 평생 먹고살 돈은 넉넉하다. 그런데도 너희는 어쩌자고 호천이가 몇 년을 마음에 품어온 애를 떼어놓으려 하느냐.”정현숙의 목소리가 낮아졌다.“너희도 예전에 반대를 무릅쓰고 끝내 붙어 있지 않았니?”“어머니!”유한수는 유호천이 들을 까 봐 병실 문 쪽을 흘끔 돌아봤다.“이 얘기는 왜 꺼내세요?”장미자는 그런 유한수를 비웃듯 흘겨보고는 정현숙에게 고개를 돌렸다.“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오기 전에 이미 다 얘기 나눴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우리도 잘 알아요. 어머니는 그냥 건강 회복에만 전념하세요.”문이 완전히 닫히지 않아, 안에서 오가는 대화가 고스란히 밖으로 새어 나왔다. 유호천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소지연을 바라봤고 소지연은 고개를 저어 그를 진정시키려 했다.정현숙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야지. 난 더는 모르겠다. 다만 하루빨리 우리 손자의 결혼식 떡이라도 맛보는 게 소원이다.”정현숙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됐어, 이제 나가 보렴.”“네.”유한수와 장미자가 병실에서 나오자 문 앞에 서 있던 유호천과 소지연과 눈이 마주쳤다.유한수는 잠시 표정이 굳더니 유호천을 향해 물었다.“방금 네 할머니 말씀 다 들었지?”“네, 다 들었습니다.”“그럼 됐다.”유한수는 숨을 고르듯 헛기침을 하고 말을 이었다.“너희 나이도 적지 않은데 더 미룰 게 뭐 있겠느냐. 결혼해라. 그게 할머니의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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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64화

“원래는 언젠가 쓰게 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빨리 쓰게 될 줄은 몰랐네.”유호천이 말끝을 올리며 환하게 웃었다. 반짝 드러난 고른 치아와 어딘가 어설픈 웃음은 그동안 보여주던 제멋대로의 도련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오히려 순박해 보이는 그 표정이 조금은 우스꽝스럽기까지 했다.옆에서 지켜보던 유한수와 장미자는 말없이 서 있었지만 두 사람의 눈빛 속에는 차츰 감동이 번져갔다.“그럼.”잠시 머뭇거리던 소지연은 결국 손을 내밀었다.결혼이라는 건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 없었지만 상황이 여기까지 흘러온 이상 이번만큼은 마음을 내주기로 했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지금만은 용기 내고 싶었다.소지연이 내민 손을 유호천이 두 손으로 소중히 감싸 쥐고 반지를 천천히 그녀의 왼손 약지에 끼워 주었다. 반지는 손가락에 꼭 맞았고 다이아몬드는 불빛을 받아 찬란하게 빛났다. 마치 두 사람 앞에 새로운 길이 열리는 듯 눈부시고 몽환적이었다.그 순간을 깨트리듯 유한수가 무뚝뚝하게 입을 열었다.“됐구나. 결혼하기로 했으니 이제는 준비할 게 많을 거다.”현실적인 말이 분위기를 끊었지만 이내 장미자가 앞으로 나와 가방에서 카드를 꺼내 소지연에게 내밀었다.“이건 네 예물이야.”여전히 군림하듯 한 태도였지만 말투는 이전보다 훨씬 누그러져 있었다.“비록 네가 지금 혼자 있지만 우리 유씨 집안이 괜히 사람 얕잡아보는 집안은 아니다. 줄 건 제대로 줘야지.”그러면서 아들을 흘겨보며 비꼬듯 덧붙였다.“괜히 어떤 사람이 우리가 며느리 얕본다고 말하지 않게 말이다.”직접 이름을 언급하지 않아도, 그 말이 자신을 겨냥한 것임을 유호천은 알 수 있었다. 그는 가볍게 헛기침을 하고 소지연에게 고개를 끄덕였다.“엄마 말대로 받아.”하지만 소지연은 카드를 바라보다 고개를 저었다.“제게 돈을 주시는 건 저를 인정하셨다는 뜻인 거 잘 압니다. 하지만 이 돈은 받을 수 없어요.”장미자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이 안에 20억이 들어 있어. 적다고 생각해?”“아니에요. 저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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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65화

“네가 남자로서 책임을 지려는 모습, 아주 좋아.”유호천은 유한수가 이렇게 자신을 인정해 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늘 차갑고 엄한 얼굴만 보아왔기에 순간 눈빛이 흔들렸다.입술이 미세하게 떨리자 유한수는 손을 들어 조용히 제지하듯 흔들었다.“결혼식 날짜는 나랑 네 엄마가 할머니와 상의해서 정하마. 너랑 지연이는 집에 가서 짐 챙기고 들어와 살아라. 그래야 준비도 수월하지.”유한수는 장미자를 돌아봤다.“당신 생각은?”장미자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호천아, 아빠 말대로 해.”그동안 장미자는 소지연을 탐탁지 않게 여겼지만 오늘은 달랐다. 무엇보다 유호천이 전보다 한층 성숙해 보이는 게 마음에 들었다.“가서 짐 정리해. 우리 둘은 여기 남아서 할머니를 보살펴야 해.”사실상 내쫓는 말투였다. 유호천과 소지연은 더 머물지 않고 병실을 나왔다.차 안.소지연은 조수석에 앉아 옷자락을 만지작거리며 말없이 창밖을 바라봤다. 마음속이 복잡해 자신도 어떤 생각에 잠겨 있는지 알 수 없었다.신호에 걸려 차가 멈추자 유호천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손을 들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무슨 생각해?”소지연은 고개를 저었다.“아무것도 아니야.”청혼을 받아들인 걸 후회하진 않았다. 다만 앞으로의 삶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가슴을 짓눌렀다. 유호천의 집으로 들어간다는 게 결코 쉽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알았기 때문이다.“너희 집은...”소지연이 입을 뗐다가 곧 손사래 치며 말을 접었다.“아니야, 그냥 가자.”유호천은 금세 눈치를 챘다.“네가 걱정하는 거 알아. 혹시라도 집에서 너한테 함부로 할까 봐 두렵지? 걱정하지 마. 부모님이 받아들였다는 건 이제 괴롭히지도 않을 거란 뜻이야. 게다가 내가 있잖아. 절대로 널 상처받게 두지 않을 거야.”유호천의 진지한 눈빛이 마음을 울렸고 소지연은 입술을 깨물다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이미 활시위를 당긴 이상, 되돌아갈 수는 없었다. 선택한 길이라면 더 이상 머뭇거릴 필요 없다고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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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66화

초여름이 막 시작된 터라 햇볕은 뜨겁지 않았고 산들바람이 불어 나무에 돋아난 새잎을 살짝 흔들었다. 정원은 고요하면서도 한가로운 평화로 가득했다.하녀가 꽃차 두 잔을 내오자 윤하경과 소지연 앞에 은은한 향기가 퍼졌다. 윤하경은 소지연이 물잔 가장자리를 손가락으로 빙글빙글 돌리는 모습을 보고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왜 그래? 무슨 고민 있어? 아니면 호천이 부모님이 또 뭐라 하셔?”소지연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얘기는 윤하경 앞에서만 할 수 있었다. 그녀는 손으로 턱을 괴고 힘없이 말했다.“결혼 허락받고 나서는 딱히 뭐라고 하시는 게 없어. 심지어 아저씨와 아주머니도 예전 같지 않고 오히려 날 챙겨주려고 하셔. 솔직히 아직도 믿기지 않아. 예전에는 나한테 상처 주는 말만 하셨는데 지금은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어. 가끔은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닐까 싶다가도 장미자 같은 사람이 굳이 나한테 연기할 이유는 없을 것 같아.”윤하경은 꽃차를 한 모금 마시며 고개를 갸웃했다.“그럼 뭐가 그렇게 걱정돼?”소지연은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숙였다.“그냥... 너무 꿈같아서. 그리고 넌 알잖아. 유씨 집안 같은 데에 난 어울리지 않아.”윤하경은 그녀의 말을 끊고 손을 꼭 잡아주었다.“무슨 소리야. 네가 뭘 부족해? 네가 바로 최고야. 우리 눈에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람이 너라고. 그러니까 네가 가진 건, 다 누릴 자격이 있어.”윤하경은 소지연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부족한 환경에서 자란 소지연이 갑자기 유씨 집안 같은 대가문으로 들어가려니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게다가 유호천은 강현우처럼 강단 있는 성격이 아니고 유씨 집안은 워낙 큰 집안이니 더 걱정되는 것도 당연했다.윤하경은 잠시 생각하다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어쨌든 나는 언제나 네 편이야. 만약 호천이가 너 배신하면 내가 가만 안 둔다? 그땐 내가 직접 호천이 손발 묶어버릴 거야!”“푸흣.”소지연은 그녀의 심각한 표정이 우스워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너 지금 표정 좀 봐. 강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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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67화

“아니야.”윤하경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강현우를 바라봤다.“정말 유씨 집안에서 지연이를 며느리로 맞으려는 거 맞죠? 괜히 장난처럼 하는 건 아니겠죠?”너무 갑작스러운 변화라 윤하경조차 실감이 나지 않았다. 유호천의 사촌인 강현우라면 분명 속사정을 알 거라 생각했다.강현우는 손가락 끝으로 윤하경의 코를 살짝 튕기며 웃었다.“쓸데없는 걱정하지 마. 전에 고모가 지연이 마음에 안 들어 했던 건 사실이지만 이제 결혼을 허락했으면 다시 말 바꿀 일은 없어.”그는 윤하경의 허리를 감싸안고 한 발씩 계단을 오르며 덧붙였다.“유씨 집안이 어떤 집인데. 청첩장까지 돌려놓고 체면 깎일 일을 하겠냐. 그러니까 괜한 상상은 그만해.”그 말을 듣자 윤하경은 마음이 한결 놓였지만 곧 감회가 밀려왔다.“원래 제 결혼식 때 지연이가 들러리를 서주기로 했는데... 결국 제가 아니라 지연이가 먼저 가네요. 역시 인생은 뜻대로 안 되는 거 같아요.”그저 무심코 뱉은 말이었는데 강현우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윤하경은 그를 돌아보며 고개를 갸웃했다.“왜 그러세요?”강현우는 묵직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벽 쪽으로 다가가 윤하경을 몰아세우듯 두 손으로 가두고 낮게 속삭였다.“결혼 얘기... 미처 생각 못 했던 건 사실이야. 미안해.”윤하경은 피식 웃으며 손바닥으로 그의 입술을 가볍게 막았다.“저 그런 뜻으로 한 말 아니에요. 괜히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세요.”강현우가 여전히 믿지 못하는 눈빛을 보이자 윤하경은 그의 목에 팔을 두르며 부드럽게 속삭였다.“그냥 시간이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에요. 그런데... 현우 씨, 설마 지연의 결혼식에 저 못 가게 하실 건 아니죠?”갑작스러운 화제 전환이었다. 요즘 강현우가 유난히 자신을 곁에 두려 했던 걸 생각하면 혹시나 반대할까 걱정됐다. 하지만 지연의 결혼식만큼은 꼭 가고 싶었다. 그 오랜 세월 마음을 터놓을 수 있었던 단 하나의 친구였으니까.강현우는 못 말리겠다는 듯 손을 들어 윤하경의 작은 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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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68화

오건우는 평범한 도망자가 아니었다. 강현우에게 정신병원에 끌려갈 당시만 해도 돈과 권력을 움켜쥐고 있던 인물이었다. 그런 사람을 붙잡는 건 보통의 수배자와는 차원이 달랐다.우지원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감히 강현우 앞에서 그런 말은 꺼낼 수 없었다. 그는 답답한 한숨을 내쉰 뒤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부하들이 눈에 들어왔다.“뭘 그렇게 쳐다봐?”우지원은 눈매를 가늘게 좁히더니 단호하게 말했다.“여덟 날이다. 땅을 파서라도 오건우 반드시 찾아. 못 찾으면 죽도록 혼날 줄 알아.”부하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감히 대꾸하지 못했다. 순간 우지원이 성질을 억누르지 못하고 옆에 서 있던 부하의 뒤통수를 탁 내리쳤다.“못 들었어? 누가 먼저 찾든 상관없다. 찾는 놈은 상금 1억 챙길 수 있어.”돈 얘기가 나오자 시무룩하던 얼굴들이 금세 활기를 띠었다. 부하들은 다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목소리를 높였다.“알겠습니다! 꼭 찾아내겠습니다!”...유씨 집안의 결혼 소식은 경성에서 단숨에 화제가 됐다. 원래부터 이름값이 있는 가문이라, 며느릿감이 누구냐는 호기심이 쏟아졌다. 그러나 소지연이 평범한 집안 출신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현대판 신데렐라’라 부르며 수군거렸다.심지어 누군가는 소지연의 과거를 캐내려 했고 급기야 아버지의 전과까지 끌어내 기사로 내보냈다.아침 일찍, 유호천은 소지연을 끌어안고 2층에서 내려왔다. 거실에선 유한수와 장미자가 나란히 앉아 아침을 먹고 있었는데 두 사람 모두 표정이 좋지 않았다. 한 사람은 휴대폰을 다른 한 사람은 신문을 들고 있었다.“엄마, 오늘 예복 보러 가기로 했죠?”유호천이 소지연과 함께 식탁 앞으로 다가가며 물었지만 대답이 없었다. 잠시 후에도 반응이 없자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되물었다.“아버지, 어머니 무슨 일 있으세요?”유한수는 신문을 탁 던지며 낮게 말했다.“이거 좀 봐라. 오늘 아침 기사다.”신문 위를 내려다본 유호천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 옆에서 함께 본 소지연은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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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69화

유호천의 말은 단호했고 그건 진심이었다. 그는 장미자와 유한수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며 말했다.“아버지, 어머니 지연이 집안 사정은 예전부터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 일 때문에 예전에 부딪힌 적도 있었고요. 하지만 제가 지연이를 선택했다는 건, 어떤 상황이 와도 평생 아내로 지키겠다는 뜻이에요. 두 분이 며느리로 인정하시든 안 하시든, 저는 지연이와 함께할 겁니다.”확고한 눈빛에 유한수는 미간을 좁히며 되물었다.“누가 네게 그걸 문제 삼기라도 했냐?”유호천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유한수는 탁자 위의 신문을 가리켰다.“내가 묻는 건 저 기사를 낸 언론을 어떻게 처리할 거냐는 거다.”“그 얘기였습니까?”유호천이 멍하니 되묻자 유한수는 싸늘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우리 집안이 한번 허락한 혼사를 손바닥 뒤집듯 할 거라 생각했어? 이미 허락한 이상 물러설 일은 없어. 하지만 이런 때에 며느리를 모욕하는 기사가 나오다니 분명 뒤에 누가 있다. 찾아내서 본때를 보여줘.”장미자도 고개를 끄덕이며 거들었다.“결혼식 앞두고 이런 짓을 하다니 눈치도 없는 인간들이네. 호천아, 네가 직접 처리해.”뜻밖의 반응에 유호천은 잠시 놀란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혹시 또다시 반대할까 마음을 졸였는데 오히려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을 들은 것이다. 곧 놀람을 수습하고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확실히 해결하겠습니다.”말을 마친 그는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밖은 초여름답게 날씨가 변덕스러웠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쨍쨍하던 하늘이 순식간에 비로 뒤덮였다. 흰 장막처럼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던 유호천은 얼굴을 굳히며 휴대폰을 꺼내 소지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예상대로 받지 않았다....그 시각, 윤하경은 아침 식사를 하다 기사를 접했다. 읽는 순간 손이 덜덜 떨려 소지연에게 전화를 걸려 했는데 벨이 울리기도 전에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도우미가 문을 열자 비에 흠뻑 젖은 소지연이 들어섰다. 젖은 머리칼이 뺨에 달라붙어 있었고 눈빛에는 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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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70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소지연의 마음은 여전히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어쩌면 자신은 애초에 행복을 누릴 자격이 없는 사람일지도 몰랐다. 주명화의 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평생 행복을 누릴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마음을 파고들었다.그러자 소지연의 입가에 쓸쓸한 미소가 걸렸다.윤하경은 그 말이 못마땅해 눈썹을 치켜세웠다.“무슨 소리야? 네 아빠가 한 짓이 너랑 무슨 상관인데?”그녀는 목소리를 높이며 억울함을 대신했다.“내 눈에는 네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람이야.”소지연은 힘없이 웃었다.“아마도 그렇게 생각해 주는 건 너뿐일 거야.”그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윤하경은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돌렸다.“누구세요?”“사모님, 유호천 도련님이 오셨습니다. 소지연 씨를 찾으셨습니다.”가사도우미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윤하경은 잠시 고민하다가 눈가가 붉어진 소지연을 보고 단호하게 말했다.“없다고 하세요.”“그게...”가사도우미가 머뭇거리기도 전에 문이 벌컥 열렸다.유호천이 문턱에 서 있었고 그는 소파에 앉아 있는 소지연을 보자마자 다급히 외쳤다.“지연아, 왜 그렇게 서둘러 나간 거야?”소지연은 애써 침착한 표정을 지으며 돌아봤다.“여기에는 왜 왔어?”그녀는 입술을 꾹 누르며 말을 이었다.“가서 부모님께 전해. 나 같은 사람, 유씨 집안 문턱에 설 자격 없어. 그러니... 결혼은 취소야.”윤하경은 놀란 눈빛으로 소지연을 보았다. 그러나 곧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했다.자신과 너무나 닮은 성격을 가진 친구였다. 이런 상황에서 결혼을 접겠다고 나서는 건 충분히 예상 가능한 선택이었다.유호천은 당황한 얼굴로 다가와 소지연 앞에 멈췄다.“무슨 헛소리야? 누가 결혼 취소한대?”소지연은 쓴웃음을 지었다.“네 집안이 체면 때문에 그런 일은 못 할 거야. 그래서 내가 먼저 말하는 거야. 네 부모님이 애써 고민할 필요 없도록.”유호천은 얼굴을 굳히며 다가가더니 그녀의 손목을 붙잡아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부모님은 그런 뜻 아니야. 그 기사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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