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Chapter 421 - Chapter 430

430 Chapters

제421화 고등학교 졸업사진

민여진은 임재윤이 화가 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성격상 그는 침착함을 유지하고자 스스로를 억누르고 있을 것이다. 이런 임재윤이 어떻게 소유욕이 강한 박진성일 수 있는지 민여진은 이해할 수 없었다.민여진은 그 여인의 말이 너무 신경 쓰였다. 임재윤은 그 누구여도 되지만 절대로 박진성이어서는 안 된다.민여진은 깊이 숨을 들이쉬고는 조현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들리자마자 전화를 받은 조현준이 물었다.“여진이야?”“네, 현준 오빠.”“방금 전에 임재윤이 전화받았었어.”“네. 나한테 얘기했어요.”“이렇게 늦은 시간에 너의 전화를 받았다는 건 둘이 이 시간까지 함께 있다는 거네?”그녀는 말을 돌렸다.“현준 오빠, 혹시 전화한 이유가 뭔지 알려줄 수 있어요? 제가 부탁한 일, 진전이 있는 거죠?”본론에 들어가자 조현준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조금 진전이 있었어. 당장 박진성의 최근 사진은 없지만 내 친구한테 박진성의 고등학교 졸업사진이 있어. 그래서 너한테 물어보려고, 그 사람 고등학교 시절이랑 지금 차이가 많이 나?”“차이? 모르겠어.”민여진이 박진성에게 첫눈에 반한 건 그가 대학에 다닐 때였고, 그때 그는 이미 자선사업에 나섰던 때였다.“그렇지만... 그가 대학에 다닐 때 모습은 기억나. 23살 때와 비교하면 전체적으로 좀 더 부드럽고 온화한 느낌이었어.”“23살 때?”조현준이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여진아, 박진성은 지금 27살이야.”“알아요.”민여진은 그 이후로 앞을 볼 수 없었고 그래서 기억 속에는 23살의 박진성만 남아 있었다. 그녀는 설명했다.“나도 박진성이 23살 때 한 번 본 기억뿐이에요.”“그럼 문제네. 나는 그 졸업사진에서 뭔가를 발견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민여진은 조심스럽게 물었다.“그 졸업사진, 임재윤과 비교해 보면 차이가 있어요?”조현준은 솔직하게 대답했다.“내가 보기엔 차이가 있어. 하지만 그 차이는 소년과 성인의 차이 같은 거야. 사진이 흐릿해서 잘 보이지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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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2화 내가 부족한 거니

“네, 현준 오빠.”조현준이 뜸을 들이며 말했다. “이 일은 아무래도 내가 잘못한 거 같아. 너에게 말해야 할 것 같아서.”민여진이 다그치며 물었다. “무슨 일인데 그래요?”“너도 알다시피 내가 처음 전화를 했을 때 임재윤이 받았잖아, 그런데 내가 사실 좀 쓸데없는 말을 했어.”“어떤 말?”“응, 여진이 네가 그가 함께 있는 건 일시적인 감정에 불과할 거고, 곧 헤어질 거라고... 그리고 우리 사이에 비밀이 있다고도 했어.”민여진은 그제야 아까 임재윤의 반응이 이해가 됐다. 조현준이 계속 말했다. “비록 임재윤을 좋아하진 않지만 그래도 너의 남자친구한테 이런 말을 하면 안 됐어. 내가 너무 감정적으로 행동했어, 미안해.”“현준 오빠, 다음부터는 이렇게 하지 말아 줘요. 오빠가 그런 얘기나 할 사람은 아니잖아요.”조현준은 씁쓸한 웃음밖에 안 나왔다.“내가 왜 그런 말 할 사람이 아닌데? 여진아, 나는 그냥 평범한 사람이야. 내가 사랑하는 여자가 만난 지 두 달도 안 된 남자랑 사귀게 된다면 불편하고 질투도 나는 그런 평범한 사람...”“현준 오빠...”조현준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정신을 가다듬었다.“미안해. 전화하기 전에 술을 좀 마셨더니 얘기가 길어졌네. 신경 쓰지 마. 다른 용건 없으면 이만 끊을게.”조현준이 먼저 전화를 끊었다. 민여진은 휴대폰을 들고 멍하니 서있다가 임재윤이 아직 밖에 있다는 생각에 휴대폰을 내려놓고 문 앞으로 가서 문을 열며 조심스럽게 불렀다. “재윤아?”복도의 담배연기를 맡은 민여진이 놀라서 물었다.“담배 피우고 있었어? 병원에서 담배를... 아니, 지금 너의 몸은 담배를 피우기에 적합하지 않아.”“나 걱정해 주는 거야?”임재윤의 반문에 민여진은 잠시 멈칫했다가 이내 말했다. “너는 내 남자친구잖아, 당연히 걱정되지.”“난 네가 그 전화 끊고 나면 나랑 헤어지겠다고 말할 줄 알았어.”민여진은 깜짝 놀랐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민여진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임재윤은 그녀를 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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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3화 그가 좋아하는 담배 브랜드

민여진은 목에 가시가 걸린 듯한 느낌이었다. 왜 그 여인이 임재윤을 박진성이라고 말했을까? 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재윤아, 내가 약속할게, 쉽게 너에게 이별을 고하는 일 따윈 없을 거야. 지금은 단지 이해 안 되는 부분이 좀 있어서 그래. 조금만 기다려줄래? 내가 해결하고 진심으로 너를 받아들일 때까지. 온전히.”임재윤은 그녀를 더 꽉 안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의 가슴에 머리를 파묻고 있던 민여진이 뭔가 떠오른 듯 다시 말했다. “아! 그리고 현준 오빠가 너에게 이상한 얘기했다면서?”임재윤은 숨을 고르고 아무렇지 않은 척 답했다.“난 신경 안 써.”민여진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 “신경 안 쓴다고? 진짜 신경 안 썼다면 아까 그 반응이 나왔을 리가 없잖아. 나랑 현준 오빠는 정말 친구일 뿐이야. 내가 오빠한테 뭐 좀 부탁한 게 있어, 그것뿐이야. 현준 오빠도 자기 잘못 인정하고 나한테 사과했어.”임재윤은 그녀의 몸을 더욱 감싸안고 있다가 한참 후에야 휴대폰 화면을 두드렸다. “난 괜찮아. 진짜로, 여진아. 나는 그냥 나 자신이 한심해서 그래. 내가 더 잘했더라면 여진이 네가 그 사람한테 부탁할 일 없었을 텐데.”“바보.”민여진은 손으로 그의 등을 쓰다듬어 주며 살포시 안겼다. 갑자기 진시우가 나타나 인기척을 내며 말했다. “두 사람, 조금만 자제하는 게 어때? 복도에 아직 다니는 사람도 있는데, 혹시라도 아이들이 보면 어쩌려고?”진시우의 등장에 민여진은 당황하며 임재윤을 놓았다. 임재윤이 물었다.“이렇게 늦게 무슨 일이야?”진시우는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너랑 여진 씨 알콩달콩 하는 시간을 내가 방해했다고 아주 대놓고 사람을 쫓네? 아무리 그래도 내가 두 사람 사이 큐피드 같은 존잰데 용건 없이 왔어도 이 태도는 아니지, 안 그래?”임재윤이 더 말이 없자 진시우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들어가서 얘기하자. 안진 마을 프로젝트 관련 얘기야.”민여진도 따라 들어가려다가 갑자기 멈췄다. 그녀는 주변을 더듬어 쓰레기통을 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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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4화 그는 부러워할 수조차 없어

진시우가 나가자 임재윤은 민여진의 손에 묻은 먼지를 발견하고 물었다. “손이 왜 이렇게 더러워?”민여진은 종이로 대충 닦으며 설명했다. “바닥에 휴대폰을 떨궈서 찾다가 먼지가 묻었나 봐.”“다음엔 나한테 말해. 바닥은 더럽고 차가워.”임재윤은 얼른 물티슈를 가져와서 열심히 민여진의 손을 닦아주었다. 민여진은 웃으며 말했다. “너 아까 시우 씨랑 얘기하고 있었잖아. 평소 같으면 당연히 너한테 도와달라고 했지.”임재윤은 그녀의 손이 깨끗해질 때까지 여러 번 닦고 나서야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앞으로 진시우가 있어도 신경 쓰지 말고 말해. 나한텐 일이나 친구보다 여자친구가 먼저야. 진시우도 부러워할걸? 물론 부러워할 수조차 없겠지만.” 그 말에 민여진은 얼굴이 빨개져서 고개를 숙이고 이불을 펴기 시작했다. 그날 저녁, 민여진은 깊은 잠에 빠졌다. 다음 날 아침 진시우가 언제 왔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깊은 잠에 곯아떨어졌다.깨어나 보니 임재윤이 간호사에게 죽을 데워달라고 부탁하고 있었다. “지금 몇 시야?”민여진은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9시야.”“왜 나를 깨우지 않았어? 이렇게 오래 잤다니.”“며칠 전부터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잖아. 이렇게 깊이 자는 게 정말 오랜만이니까 좀 더 자게 놔두는 게 당연하지.”열 시간을 잤어도 여전히 머리가 무거운 게 아마 감기인 것 같았다. 그녀가 씻고 돌아와보니 죽이 이미 데워져 있었다. 임재윤은 옆에서 민여진이 먹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가 그녀가 다 먹자 종이를 들고 입가에 묻은 죽을 세심하게 닦아주었다. “내가... 내가 혼자 할게...”민여진은 종이를 받아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왜 또 부끄러워해?”“옷 세탁해 올게.”그녀는 머리를 떨구고 황급히 병실을 나섰다. 밖으로 나오니 쿵쾅거리던 심장이 조금 진정되었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 어제 그 종이를 만지작대던 민여진은 큰 결심을 하고 세탁실로 가던 방향을 틀었다. 민여진은 엄기준 사무실 앞에서 심호흡을 하고 문을 두드렸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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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5화 담배꽁초 위의 꽃

엄기준은 의아했다. 통증완화나 용모 회복에 관한 질문일 줄 알았는데 담배 브랜드를 확인해달라는 부탁은 정말 예상 밖이었다. 민여진도 어처구니없는 부탁인 걸 아는지라 부끄러워하며 해석했다. “가끔 이 담배 냄새를 맡으면 향이 꽤 좋다고 느꼈었어요. 그래서 무슨 브랜드인지 알면 사서 임재윤에게 선물하려고요.”“아하, 그렇군요.”엄기준이 웃으며 말했다. “두 분 연인이 되더니 더는 사랑을 숨길 수 없는가 보군요.”민여진은 얼굴이 빨개졌다. “엄 선생님, 어떻게 아셨어요?”“제가 바본가요? 어제 약 바꾸러 왔을 때도 손 꼭 잡고 있었잖아요.”민여진은 어제 두 사람이 손을 계속 잡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숙였다. 엄기준은 웃으며 말했다. “뭐가 그렇게 부끄러워요? 저는 두 분이 곧 맺어질 걸 알고 있었어요.”그 말과 함께 엄기준은 담배꽁초를 들고 자세히 살펴보았다. “임 선생님?”한참 말이 없자 민여진이 급히 물었다. “이 담배는 제가 본 적이 없어요.”양성에서만 유통되는 담배였고 아직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들니 그럴 만도 했다.민여진은 긴장해하며 물었다. “담배에 라벨이 있나요?”“있어요.”엄기준은 확대경을 들고 살펴보며 말했다. “꽃이 있고, 그 위에 작은 글씨가 있네요. 잠시만요.”“꽃?”민여진은 머리가 멍해졌다. 박진성이 피우던 담배의 필터 부분에 꽃 모양이 있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차가운 기운이 몸을 감싸오자 민여진은 갑자기 물러서고 싶어졌다. 만약 이게 정말 박진성이 피우던 담배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건 독일에서 온 임재윤이 절대 피울 수 없는 담배인데... 그렇다면 임재윤은 박진성이 되여버리고 만다. 그럼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할까? 민여진의 얼굴은 창백해지고 손바닥은 땀으로 젖어들었다. “엄 선생님, 갑자기 알고 싶지 않아졌어요.”그와 동시에 엄기준이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알 거 같아요!” 엄기준은 민여진을 바라보고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민여진 씨, 얼굴이 왜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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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6화 믿음이 사라졌어

민여진의 몸은 기운이 빠진 듯 축 처져 있었다.그녀는 기억하고 있었다. 임재윤이 피워 물던 담배, ‘엽랑’. 그건 분명 네 개의 꽃잎이 접힌 모양이었다. 피지 않은 상태로 영원히 시들지 않는다는 의미를 가진 상징한다고 했다.‘그렇다면 재윤이가 피우는 담배는... ‘엽랑’이 아니라는 건가?’눈물이 갑자기 눈가를 타고 흘러내렸고, 옆에 있던 엄기준이 깜짝 놀라 물었다.“민여진 씨, 왜요? 어디 아파요?”민여진은 눈을 감은 채 손바닥을 꼭 쥐고 고개를 끄덕였다. 몸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지만, 애써 웃으며 말했다.“아니에요, 그냥 이 담배 브랜드를 못 구해서 속상해서요.”기준은 부드럽게 웃으며 그녀를 달랬다.“그 담배, 임재윤 씨 주려고 산 거 아니었어요? 그 사람이 당신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담배가 뭐가 중요해요. 길가에 핀 꽃을 건네도 분명 기뻐할 사람이에요.”민여진은 억지로 눈가를 닦고 웃어 보였다.“맞아요. 그럼... 다른 선물을 생각해 봐야겠네요.”“그래요, 그게 좋죠.”진료실을 나서는 순간, 민여진의 마음속에 묘한 안도감이 스쳤다. 하지만 그건 잠깐일 뿐, 곧 무겁고 차가운 감정이 다시 가슴을 눌렀다.그 담배가 ‘그 담배’가 아니라 해서, 임재윤이 박진성이 아니라는 증거는 안 되니까. 그저 지금, 이 순간만 그가 박진성이 아니기를 바라는 희망일 뿐이었다.그녀는 빨랫감을 들고 복도를 따라 걷고 있었다. 그때 멀리서 빠르게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고, 곧 익숙한 온기가 손을 덥석 감쌌다.“여진아, 어디 갔었어?”기계음 섞인 익숙한 목소리. 그런데 손에 전해지는 온도와 표정에 그의 조바심이 고스란히 느껴졌다.“세탁실 갔다 왔는데 널 못 봐서... 왜 갑자기 엄 선생님한테 간 거야? 어디 아파? 어디 불편해?”조금씩 쏟아지는 임재윤의 질문에 여진의 마음이 천천히 녹아들었다.그녀는 조심스레 웃었다.“아픈 건 아니고... 얼굴에 살짝 따끔거리는 데가 있어서. 그냥 확인차 물어봤어.”“따끔거려? 엄 선생님은 뭐래?”“정상적인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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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7화 이곳에 박진성이 있다

그동안 그는 늘 그녀 손을 직접 잡아끌곤 했다.민여진의 걸음이 문득 멈췄다. 눈동자에 스치듯 묻어난 아쉬움을 감추지 못한 채, 임재윤이 먼저 팔을 내밀자, 그녀는 살짝 손을 올리려다 말고 그의 손끝에 시선을 고정했다.임재윤은 그녀를 기다리듯 걸음을 멈췄고, 민여진은 조심스럽게 손을 거두며 말했다.“이렇게 가는 게 더 편할 것 같아.”그의 눈빛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그러곤 말없이 그녀 손가락 사이로 손을 끼워 넣었다.두 사람은 그렇게 천천히 병원을 나섰다.병원 근처에는 식당이 꽤 많았다. 그들은 그중 비교적 깔끔해 보이는 곳을 골라 들어가 룸으로 자리를 잡았다.룸 안은 적당히 따뜻했고 분위기도 조용했다.자리에 앉자 민여진이 물었다.“못 먹는 거 있어?”“없어. 다 잘 먹어.”민여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직원에게 시그니처 메뉴를 물어 몇 가지를 주문했다.그러다 채소 나물볶음이 눈에 띄자 잠시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보였다.그러자, 직원이 덧붙였다.“이거 저희 가게 인기 메뉴예요. 나물 싫어하지 않으시면 꼭 드셔보세요. 후회 안 하실 거예요.”민여진은 별다른 표정 없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속으론 잘 알고 있었다.박진성이 가장 싫어하는 음식이 나물이라는 걸.민여진이 요리를 아무리 잘해도, 박진성은 나물만큼은 입에 대지도 않았다. 맛이 비리다며 손사래 쳤고, 억지로 먹이면 끝내 화를 냈다. 기분이 아무리 좋을 때라도 예외는 없었다.“그거 하나 추가해요.”민여진은 별생각 없다는 듯 무심하게 말했다.임재윤도 반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몇 가지를 더 시켰고, 룸 안에선 에어컨이 돌아가는 바람에 금세 공기가 더워졌다.민여진은 겉옷을 벗으며 말했다.“너 독일 오래 살았다며. 한국 음식 괜찮아? 안 맞으면 말해. 다른 걸로 바꾸자.”“괜찮아. 엄마가 한국분이어서 집에서 늘 한식 먹었거든.”“그럼 다행이고.”말끝을 흐리며 웃은 민여진은 잠시 뜸을 들이다 자리에서 일어섰다.“나 잠깐 다녀올게.”임재윤도 같이 일어서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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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8화 결국 마주하게 될 운명

“무슨 농담이야? 진짜라니까! 원래 우리 식당 예약 다 찼었거든. 그런데 그 사람이 늦게 왔는데도 자기 이름 한마디 하니까 매니저가 바로 프라이빗 룸으로 모셨어. 그 정도 대우받을 사람, 진짜 박진성 말고 누가 있겠냐고?”“말도 안 돼... 양성 사람이 여기까지 왜 와?”“나도 풍문으로 들은 건데, 치료받으러 왔다더라.”두 사람의 수군거림이 이어지는 동안,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민여진은 온몸이 식어가는 느낌을 받았다.‘박진성이 여기 식당에 있다고...?’순간 눈동자가 크게 수축했다. 이런 우연이 진짜 있을 수 있을까?이 근처에 식당이 얼마나 많은데, 하필 여기에, 그것도 같은 시간에?그때, 민여진은 문득 식당에 들어설 때의 장면이 떠올랐다. 자신과 임재윤이 도착했을 때 자리가 없다던 직원, 그리고 뭔가 귓속말을 하더니 곧바로 마련된 프라이빗 룸...가슴 한가운데로 싸늘한 기운이 흘러들었다.이런 건 우연이 아니다. 모든 게 절묘하게 맞아떨어질 땐... 그건 운명이다.민여진은 두 손끝에 힘을 주며 그 두 직원 앞으로 다가갔다.감정을 억누르지 못한 그녀의 눈동자엔 핏발이 서 있었다.“저기요... 방금... 박진성 씨가 여기 계신다고 하셨죠?”직원 둘은 당황한 눈치를 보였지만, 직업 특성상 섣불리 대답하지 않았다.그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응대했다.“무슨 일 있으신가요?”민여진은 숨을 몰아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그 사람... 박진성 씨, 지금 어느 방에 있어요?”이번엔 직원의 표정이 확 굳어졌다. 직원의 태도는 단호했다.“죄송합니다. 저희는 고객님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야 하기에, 그런 정보는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돈 드릴게요.”민여진은 온몸에 소름이 돋아 손끝까지 차가워져 있었다.“얼마든지 드릴 수 있어요. 제발... 부탁이에요. 박진성 씨가 어느 방에 있는지만 알려주세요. 딱 그것만이라도...”그녀의 눈빛엔 간절함이 담겨 있었지만, 직원 중 한 명은 냉소적인 말투로 쏘아붙였다.“돈? 지금 장난하세요? 보아하니 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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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9화 누구야? 나와!

고 대표가 호탕하게 웃었다.“저야말로 영광이죠. 하지만 박 대표님, 몸이 우선 아닙니까? 요즘 계속 병원에 계신 것 같은데, 상태는 어떠세요?”“꽤 잘 회복됐습니다. 이제 수술도 가능한 상태예요.”“고생 많으셨겠어요. 박 대표님이 잠시 자리를 비우신 사이, 양성은 완전히 판도가 바뀔 뻔했다니까요. 얼마 전까진 박 대표님이 중병에 걸렸다는 얘기도 돌았고, 그 틈을 타서 올라서려는 인간들도 여럿 있었죠. 언론에서는 별별 걸 다 들쑤셔 놨고요. 박 대표님이 제 쪽으로 오셔서 다행입니다. 그 상태로 계속 양성에 계셨으면, 병원 문 앞에 기자들이 진을 쳤을 거예요.”박진성은 별말 없이 손만 씻고 있었다. 그러자 고 대표가 말을 이었다.“그... 문채연 아가씨하고의 약혼은 그렇게 미뤄진 겁니까?”“네.”박진성이 담담히 답했다.“무기한으로 연기된 상태입니다.”“아쉽게 됐네요. 전 박 대표님의 결혼식에서 술 한잔할 날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말입니다.”고 대표는 물을 틀며 손을 씻었다.“그래도 몸 다 낫고 나면 바로 예식 올리셔도 되잖아요. 그땐 사업도 성공하시고, 아들딸도 안으시고... 남자로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오는 거죠!”“아들딸이요?”박진성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손끝에서 시선이 올라와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바라봤다. 수트를 잘 차려입었지만, 지친 기색과 병색은 숨길 수 없었다. 하지만 지나치게 잘생기고 공격적인 인상 탓에, 초췌해 보이긴커녕 오히려 어딘가 음울한 미적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그는 눈을 내리깔며 스스로를 비웃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그건 좀 어렵겠네요.”고 대표는 웃으며 답했다.“아직 젊으시잖아요, 박 대표님.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마세요. 허리를 다치셨다지만, 다 회복되면 그 기백, 다시 뽐내실 수 있습니다! 하하하!”“띠리리리!”갑작스러운 벨 소리가 등 뒤 칸막이에서 날카롭게 울렸다.민여진의 동공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숨이 턱 막히고 등에선 땀이 흘러내렸고, 공포에 귀까지 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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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0화 박 여사의 등장

차가운 땀이 속옷까지 흘러내렸다. 뒷덜미며 관자놀이, 손끝까지 땀이 번졌고, 민여진은 몸을 꽉 움켜쥐었다.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조금 전, 박진성이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다가왔을 때, 그것은 단순한 거리 이상의 느낌이었다.분명 문이 있었고 그는 눈에 띄지 않았지만, 그의 존재감이 공기를 찢고 밀려 들어와 그녀를 짓눌렀다.숨이 막힐 만큼 강렬했다.그가 손을 뻗는다면, 그의 손이 문을 뚫고 나와 자신의 목덜미를 움켜쥘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공포였다.무너지는 정신. 머릿속이 순식간에 하얘졌다.그가 떠난 뒤에야 비로소 민여진은 자신이 얼마나 두려웠는지를 자각했다.힘이 풀린 몸이 주저앉았고, 그녀는 자신을 감싸안은 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숨결 하나하나가 가슴을 찌르고, 진정되지 않는 심장이 고막을 울렸다.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전화벨이 다시 울렸다.민여진은 휴대폰을 들었다.“여보세요?”아무 말도 없었다. 대신, 미세하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상대는 임재윤이었다.‘그럼... 방금 전 걸려 왔던 두 통의 전화도, 다 재윤이었던 거야?’박진성의 반응으로 봐선, 방 안에 임재윤이 있다는 걸 그도 모르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게다가 그가 직접 전화를 걸며 동시에 고 대표와 얘기를 나눌 수는 없었을 테니까.생각이 이어지자, 이마가 더욱 지끈거렸다.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임재윤의 전화는 그녀를 끌어 올리는 손길이었다.지옥 끝에서 잡아당긴, 마지막 희망의 끈.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숨을 쉴 수 있었으니까.“임재윤... 너지?”다시 휴대폰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맞았다.그녀는 가쁜 숨을 진정시키며, 가능한 한 평온한 목소리를 냈다.“미안, 몸이 좀 안 좋아서 화장실에 오래 있었어. 몇 분만 더 기다려줘. 금방 돌아갈게.”툭.조용히 울리는 응답.전화를 끊은 민여진은 손을 씻으러 문을 열고 나섰다.그 순간,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심장이 철렁 내려앉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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