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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6 Bab

제1181화

이육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어미도 예전엔 이 깊은 궁에 갇혀 지내는 것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다. 허나 너를 위하여 이 자리에 남았지. 훗날 네가 이 강산을 짊어질 수 있을 때가 오거든, 나는 네 어미를 데리고 천하의 절경들을 두루 살펴볼 것이다.”이영은 미간을 찌푸리며 아버지의 걸음을 따라 나섰다.“헌데, 그것이 외삼촌께서 경성을 떠나신 일과 무슨 연관이 있습니까?”그녀는 용강한을 좋아했다.그리고 그 사실은 그도 잘 알고 있었다.그 이후로 용강한은 말없이 경성을 떠났고, 그녀는 그와 다시 마주하지 못하였다.그 모든 일이 이영의 가슴 속에 응어리로 맺혀 있었다.이육진은 말을 이었다.“이번에 네가 시군을 정하게 되면서, 나와 네 어미도 수년 간 준비해 온 일을 드디어 실행에 옮기기로 하였다.”“하필 그 즈음, 용 대인 역시 경성을 떠나겠노라 다짐한 것이지.”이영은 입을 열었으나 차마 말이 이어지지 않았다.어찌되었든 용강한이 경성을 떠난 데에 자신이 일정 부분 영향을 끼쳤으리라.허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정 대인의 말처럼, 용강한은 스스로를 피해 달아나는 중일지도 모른다.어쩌면, 아직도 소우연을 완전히 놓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용 대인은 네 어미를 평생토록 마음에 품고 살아오신 분이시다. 우리가 먼저 경성을 떠나기 전에 그분이 자리를 뜨신 것은, 괜히 감정에 휘말리지 않기 위함이었을 것이다.”그제야 이영은 모든 것이 이해되기 시작했다.정말 그랬던 것일까?확신할 순 없었으나, 그 답만은 스스로 납득하기 가장 쉬운 진실이었다.그 순간, 이육진의 따스한 손이 그녀의 어깨를 가만히 눌렀다.“영아, 사사로운 일에 마음을 쓰지 말거라. 너의 한마디, 너의 결정 하나하나가 상운국의 백성에게 복이 되기도 하고, 화가 되기도 하느니라.”“명심하겠습니다, 아바마마.”이영은 마음속이 한결 가벼워졌다.며칠 동안 심초운의 기색이 좋지 않았던 것도 떠올랐다.자신이 그를 시군으로 택하지 않은 것이 그에게 꽤나 큰 상처였던 모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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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82화

그는 내금위의 군복을 입고 있었다.넓은 어깨에 잘록한 허리, 예를 갖춰 고개를 숙일 때 드러나는 손은 뼈마디 하나하나가 단정하고 정갈하였다.허나 그렇게 단정한 사내가 용강한처럼, 천뢰를 부릴 줄 아는 이었다.그녀는 오래전 용강한이 천뢰를 부를 때, 하늘이 갈라지는 광경만을 본 적이 있었다.그러나, 그가 천뢰를 내리는 그 순간은 끝내 보지 못하였다.하지만 심초운이 천뢰를 내리는 모습은 그녀가 직접 두 눈으로 똑똑히 목도하였다.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인처럼, 허공에 떠올라 초연히, 아무렇지도 않게 천뢰를 이끌어내며 한 점 상처조차 입지 않았다.“나와 함께 전각 안으로 들어가자.”이영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네? 전각 안으로요?”심초운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그는 늘 황태녀의 곁을 지키는 호위무사일 뿐, 조정 안으로 들어가는 일은 감히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이영은 고개를 끄덕였다.“너, 평생을 걸고 내가 너를 받아들이는지 지켜보겠다 하지 않았느냐.”“예?”“지금 그 기회를 주마.”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망설임 없이 근정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금오가 내리쬐는 황금빛 햇살이 근정전의 대문 위로 쏟아지고, 지나는 자들의 옷자락마다 은은한 금빛이 감돌았다.심초운은 그제야 어렴풋이 그녀가 하려는 말을 짐작하였다.하지만 마음속 한구석은 여전히 믿기 어려웠다.“어서 가시지요!”“그래요, 황녀 마마께서 시군으로 도련님을 택하셨답니다!”당안과 송이가 환한 얼굴로 그에게 달려와 축하의 말을 전했다.그는 마치 구름 위를 걷는 듯하였다.모든 것이 몽롱하고 비현실적인 기분이었다.그렇게 그는 정신을 가다듬고 그녀를 따라 근정전 안으로 들어섰다.과연, 황제가 친히 그를 시군으로 책봉하였다.감은을 올리자, 황제는 곧장 호부에 명하여 혼례 준비를 시작하라 명했다.조정의 문무백관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황태녀와 시군에게 축하 인사를 올렸다.드디어 그가 오래도록 바랐던 순간이 온 것이었다.그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번졌다.곧이어 부친 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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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83화

심초운은 살며시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이영은 잠시 그 손끝을 내려다보다가, 이내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작게 중얼거렸다.“참, 바보 같긴…”심초운은 여전히 부드럽게 웃고 있을 뿐이었다.이영은 그의 손을 살짝 뿌리치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참, 너한테 물어보자꾸나. 오늘 아침, 아바마마께서 그러셨다. 외삼촌께선 아직 어마마마를 놓지 못하셨다고.”“아바마마와 어마마마께서 도성을 떠나신다 하니, 함께하지는 못하겠고… 그래서 미리 자리를 피하셨다 하시더구나.”심초운은 잠시 고개를 기울여 생각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전에야 상상조차 못 했지만… 누님의 말을 듣고 보니, 어쩌면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이영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결국… 외삼촌의 그 청아한 풍모며, 세속을 초탈했다던 그 말들은 다 허울이었던 셈이지.”그리고는 문득 심초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오라버니와 외삼촌이 닮았다고 생각한 적 없느냐?”그녀의 눈동자가 그의 얼굴을 이리저리 훑었다.“사실 너도 그래.”“기분이 가라앉을 땐… 꼭 그 둘처럼, 조용하고 어두운 기운이 몸을 감싸지.”심초운은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반문했다.“저는 그러지 않았는걸요…”그러나 이영은 말을 끊으며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너도 똑같다. 도인들이란 겉으론 세상을 다 내려놓은 듯 보이지만, 결국 도문 앞에도 들지 못한 채 방황하는 이들일 뿐이지.”심초운은 말없이 입을 다물었다. 반박조차 하지 못한 채 말이다.이영은 시선을 피하지 않고 또렷이 말했다.“외삼촌은 어마마마를 연모하셨다. 그리고 넌… 나를 원하고 있지.”심초운은 입술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침묵이 곧 진실을 말해주고 있었다.이영은 말을 이어갔다.“오라버니는 처음엔 불문에 들더니, 이제는 도문이라지? 아마 오라버니는 남녀 간의 정이라는 게 뭔지도 모를 것이다.”그 말에 심초운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아영의 말엔 언제나 설득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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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84화

심초운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잠시 생각을 가다듬은 그는 조심스레 말했다.“사부님께서 감정의 인장을 황자 마마께 넘기셨다는 건… 그분이 바로 다음 감정이 되실 분이란 뜻입니다.”이영의 눈빛이 가벼이 흔들렸다.“감정이 된다면… 혼인도, 자식도 가지실 수 없는 것이냐?”그렇게 되면, 상운국 같은 대국에서 겨우 자신과 이진만이 황실의 혈맥을 잇게 되는 것이었다.심초운은 잠시 침묵하다가,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누님, 황자 마마께서 감정이 되시는 건… 그저 평범한 이가 감정이 되는 것과는 다릅니다.”“어떻게 다르다는 거지?”이영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그 말이 이상하게 들렸던 것이다.“어찌하여 다르단 말이냐?”심초운은 그녀의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먹을 내려놓았다.“누님은 황제십니다. 황제가 허하면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더구나… 본디 그분이 황위에 올라야 마땅했던 분이었습니다. 그분의 지위를 두려워하십니까?”“아니.”“그럼, 혹 그분의 자식이 누님의 자손과 황위를 다투게 될까 걱정이십니까?”이영은 입을 떼려다 말고, 이내 고개를 저었다.그 황위란 것은 본디 이육진도, 이천도 달가워하지 않은 것이었다.심지어는 자신도 그리 탐내는 자리는 아니었다.그저, 심초운의 말에 이끌려 무심코 상상하게 되었을 뿐이었다.“그렇다 하여 내가 오라버니를 억지로 혼인시키는 건… 또 도리가 아니지 않느냐.”심초운은 어깨를 으쓱였다.“그러니… 황자 마마께서 스스로 원하셔야 하는 일입니다. 그게 가장 어렵지요.”이영은 말없이 심초운을 바라보았다.그 시선이 점점 흐려지고, 어딘지 아련한 기운이 스며들었다.심초운은 본디 그녀를 깊이 사랑하고 있었다.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녀의 눈빛, 그 눈가의 아른한 미소, 모든 것이 그를 숨막히게 만들었다.이영은 평소 겉으로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이였다.기쁘다 해도, 슬프다 해도 그저 담담했었다.그런 그녀가 어찌 겉으로 감정을 들어내는 것일까. 그는 본능적으로 숨을 들이켰다.“누, 누님… 어찌 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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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85화

본능처럼 빠져들었다. 그녀가 거절하지 않는 걸 확인하자, 그는 떨리는 손으로 그녀를 조심스럽게 끌어안고, 서서히 그녀의 단맛을 탐해 갔다.마치 오렌지즙보다 달콤하고, 참외보다 향긋하며, 치자꽃처럼 신선한 향이 퍼졌다.온몸이 부풀어 오르는 듯한 감각, 너무나도 황홀하여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았다.이 순간에 시간이 멈춘다면, 영원히 이대로 서로를 품에 안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이영은 뼈가 녹아내린 사람처럼 맥이 풀렸고, 신음 섞인 말소리는 입술을 떠나기도 전에 그의 키스에 삼켜졌다.그의 서툰 입맞춤에 정신이 아득해지고, 어느새 그녀의 입술은 그의 리듬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그의 입술은 세상 모든 진미보다도 달았다.“숨이… 안 쉬어져.”마침내 그녀는 치아 사이로 그렇게 속삭였다.심초운은 그제야 그녀를 놓았다.마주한 두 눈 사이로, 그녀 눈동자에 어린 부끄러움이 고스란히 비쳤다.늘 희로애락을 감추며 위엄을 지키던 황태녀는 사라지고, 지금 이 순간의 그녀는 오롯이 그만의 여인이었다. 아니, 아직은 아니었다.그는 이제 시군으로 책봉되었을 뿐이었다.다음 달 그녀와 함께 혼례를 치르고 나서야 진정 그녀의 사내가 되는 것이었다.이번 생, 그녀 곁에 당당히 설 자격을 얻는 그날까지… 그는 기다릴 것이라 다짐하였다.“송구합니다. 제가… 너무 마음이 앞섰습니다.”청아하고 반듯한 얼굴이었건만, 그의 목소리엔 깊고 짙은 감미가 어려 있었다.이영은 곱고 맑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감히… 나한테 이래도 되는 줄 아나보구나?”“누님… 누님 앞에선, 도무지 제 마음을 누를 수 없습니다.”심초운은 여전히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고, 그의 눈빛은 더욱 깊어졌다.이영은 그를 바라보며 생각했다.이제는 예전처럼 거리감을 두고 있던 냉철한 사내가 아니었다.가슴이 두근거리고, 문득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진정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기쁨을 숨기지 못하고, 그 손끝 하나에도 정신이 멍해지며, 평생 곁에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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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86화

“아… 누님…”심초운은 말을 더 잇지 못한 채 입술만 달싹였다.그런 말을 감히 어찌 입에 올릴 수 있단 말인가.“제가… 최선을 다해 보겠사오나, 만일 황자마마께서 끝내 뜻을 굽히지 않으신다면…”“그건 네가 알아서 할 일이다.”이영은 다소 성이 난 듯 입꼬리를 내리깔았다.허나 심초운이 보기엔 그 모습마저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세상 누구도 모르는, 오직 자신만이 알 수 있는 이영의 그 귀엽고 발랄한 모습.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르고, 저절로 웃음이 났다.그러나 그녀가 내건 조건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심초운의 마음은 한껏 무거워졌다.“노력하겠습니다.”그는 깊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하였다.“그럼 난, 네가 성공하기를 기다리마.”이영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나직이 속삭였다.심초운은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한 후, 복잡한 마음을 안고 금융궁을 나섰다.기쁨과 고민이 뒤섞인 채, 발걸음엔 묘한 여운이 남았다.한편 이영은 자신의 입술을 가만히 매만지며 방금 전의 입맞춤을 떠올렸다.그제야 비로소 아바마마와 어마마마께서 어찌하여 온종일 함께 할 수 있었는지, 심지어 자식들인 자신과 진이를 한동안 잊은 듯한 모습까지 보이셨던 그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그 감정은 단연코 중독적이었다.문득, 다시금 심초운을 불러내어 몇 번이고 입을 맞추고 싶다는 충동이 솟구쳤다.아니, 수차례 입을 맞춘다 하여도 그 간질거리고 아련한 감각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마치 온몸이, 그 자체가 무언가를 더 갈망하고 있다는 듯이 말이다.잠깐 부끄러움이 스쳐갔으나, 그것도 찰나였다.이육진은 늘 그녀에게 말했다.“너는 이 나라의 황태녀다. 이 천하는 네 것이니, 하고 싶은 대로 하여라.”이영은 천천히 숨을 들이쉬며, 뜨거워진 감정을 억눌렀다.그리고는 자리로 돌아와, 심초운이 공들여 갈아놓은 진한 먹을 들고 주서들을 검토하기 시작했다.한편, 금융궁을 막 나서던 심초운 앞에 어딘가 숨어 있다가 모습을 드러낸 초구가 다가왔다.“도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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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87화

“……”“……”장 태의가 조심스레 불렀으나, 심초운은 이미 자리를 떠나고 없었다.초구는 눈을 껌뻑이다가 슬며시 다가서며 입을 열었다.“약이 조금 필요합니다.”장 태의는 의아한 기색으로 고개를 갸웃했다.“어디 다친 것이냐?”초구는 어딘지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화본에서 보았사온데… 남녀가 입을 맞춘 뒤, 바르는 약이 있다 하더이다. 혹 그런 약이 있습니까?”“……”장 태의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였다.그 말에 장 태의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였고, 묘한 눈빛으로 초구를 바라보았다.그 시선에 초구는 당황한 나머지 손으로 아래를 감싸며 급히 외쳤다.“그런 눈으로 보지 마시옵소서! 저 아닙니다!”그제야 장 태의는 불현듯, 심초운의 살짝 붉게 물든 입술이 떠올랐다.어린 시절부터 황태녀와 함께 자란 청년이니, 이제 시군의 자리까지 허락되었다면, 입을 맞추는 정도는 아무 허물도 될 수 없지 않겠는가.혹 황태녀께서 그 이상을 바라신다 하여도, 천하 누구도 나무랄 수는 없을 터였다.장 태의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잠시 기다리시오.”초구는 재차 조급히 말했다.“부디 서둘러 주시옵소서. 도련님께서 곧 궁 밖으로 나갈 것 같습니다.”“알겠소, 알겠소.”잠시 후, 장 태의는 어린아이 주먹만 한 크기의 백자병 하나를 내밀었다.“이 약은 폐하와 황후 마마께서도 종종 애용하시는 귀한 것이니, 효과는 내가 보장하마.”초구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심스레 물었다.“저 어느 부위든 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러니까… 사적인 곳에도…”장 태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모두 사용 가능하오. 남녀 간의… 정이 지나친 뒤에 쓰기에도 좋다 하더이다.”남녀 사이의 은밀한 사정쯤은 이미 익숙한 듯, 장 태의는 흔들림 없었다.초구 역시 태감답게 눈치가 빠르고 제법 익숙한 표정이었다.“감사합니다.”초구는 그 귀한 약병을 소중히 품에 안은 뒤, 황급히 몸을 돌려 심초운을 쫓아갔다.숨을 몰아쉬며 달려가던 초구는 곧 심초운을 발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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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88화

심초운은 손을 뻗어, 낯빛이 잿빛이 된 초구의 눈앞에서 가볍게 흔들었다.“이 일은 반드시 이루어야 한다. 실패는 용납치 않겠다.”“아…”“응?”초구는 얼굴을 찡그리며 못마땅한 듯 입을 열었다.“도련님, 그리까지 하실 일은 아닙니다. 황실의 자손이 줄었다 한들, 도련님과 황녀 마마께서 좀 더 힘쓰시면 되는 일 아니겠습니까? 두 분께서 아이를 더 많이 낳으시면 될 일입니다.”그 말에 심초운은 잠시 멍해져 눈을 깜빡였다.어찌 보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그러나 곧, 황제와 황후가 평생 자식을 세 명밖에 낳지 못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게다가 이영과 황자는 쌍생이라, 결국 황후는 단 두 번만 출산하였던 셈이었다.그제야 심초운은 문득 깨달았다.누님께선 혹 출산의 고통을 두려워하고 계신 것일지도 모른다.무엇보다 황태녀의 자리에 있으면서, 해마다 태기를 품고 출산을 반복한다면 어찌 국정을 온전히 다스릴 수 있겠는가.그가 곁에서 돕는다 한들, 세인의 눈초리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심초운은 스스로 알고 있었다.그가 품은 마음은 순전한 사랑 하나, 이영의 남자가 되어 평생 그녀 곁에 남고 싶은 바람뿐이었다.아이를 얻겠다는 야망도, 대의를 위한 계산도 아니었다.여인의 출산은, 열에 아홉이 목숨을 내거는 일이라 하였다.차라리 그 고통을 자신이 감내하면 모를까, 이영 혼자 그 고통을 오롯이 감당하게 할 순 없었다.“너는 모른다.”심초운은 결연한 눈빛으로 초구를 바라보며 낮게 이르렀다.“어찌 되었든, 반드시 방법을 찾아라. 실패한다면…”초구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실패하면 어쩌실 건데요?’속으로는 궁시렁거렸지만 감히 입 밖에 내진 못했다.그러자 심초운이 주저 없이 입을 열었다.“이 일을 이루지 못한다면, 나 역시 마마의 침소에 오를 수 없을 것이다. 알겠느냐?”“……”초구는 입을 꾹 다물고,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 분명히… 이해했습니다.”심초운은 백자병을 품에 넣고 걸음을 옮겼다.초구는 제자리에 멈춰 선 채, 멍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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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89화

찰나에, 심초운이 손을 거두더니 몸을 숙여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이런… 입맞춤이 이토록 중독적일 수가 있는가?아니다.이 입맞춤은 처음부터 중독이었다.입술이 맞닿는 순간, 심장과 오장육부를 꿰뚫는 전류가 흐르듯, 전신이 전율로 물들었다.마치 임맥과 독맥이 동시에 뚫리는 듯, 속이 다 시원히 뚫리는 느낌이었다.“심초운…”역시나, 이 아이가 ‘누님’이라 부를 때는 언제나 일이 수월하게 흘러가지 않는다.심초운은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그녀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네.”그 눈동자엔 아직도 감정이 남아 있어, 마치 길을 잃은 짐승처럼 순하고 해맑았다.그 모습에 이영은 결국 나무랄 말을 잇지 못했다.잠시 머뭇거리던 이영이 입을 열었다.“아직 상소문이 남았는데… 너 때문에 날 무능한 황태녀로 만들 작정이냐?”심초운은 살짝 웃음을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럴 일 없습니다, 누님.”오늘자 상소문을 스윽 훑어본 그는 조심스레 덧붙였다.“오늘 중으로는 마무리하실 수 있을 듯합니다.”이영이 눈썹을 들어 물었다.“내게 쉴 틈도 없으란 말이냐?”“쉬실 시간도 있습니다. 저와 함께 있는 이 시간이 바로 누님의 휴식이지 않습니까.”그 말에 이영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심초운, 요즘 대체 무얼 하고 돌아다니는 것이냐?”“예?”“예전과는 참 다르구나.”심초운은 눈을 껌뻑이며 고개를 갸웃했다.“무엇이 달라졌습니까?”“예전의 넌 이렇게 나를 똑바로 보지도 못했지.”그 말에 심초운은 스스로도 깨달은 듯, 고개를 숙이며 조용히 웃었다.과연 그랬다.그는 늘 조심스러웠다.마음이 들킬까 두려워, 매사에 삼가고 조심했다.그녀가 시군을 고르겠다고 나섰을 때, 그는 비로소 절실하게 두려움을 느꼈다.그 후로 아버지, 사부님, 초구까지… 그를 위해 손을 내밀어준 이들이 있었다.그제야 그는 알게 되었다.행복이란 누군가가 건네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손을 뻗어 쟁취해야 하는 것임을 말이다.그리고 지금 이처럼 하루하루 그녀와 함께하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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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90화

“안 써도 된다고?”이영은 고개를 살짝 기울인 채 그를 바라보았다.“정녕 아프지 않느냐?”심초운은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아프지 않습니다.”“허면, 네 뜻대로 하여라.”이영은 더이상 묻지 않았다. 조용히 고개를 돌려 붓을 들고 다시금 상소문을 살피기 시작했다.심초운은 그녀가 눈살을 모으고 글을 읽는 그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그의 마음 한 자락에 말로 다 할 수 없는 연정이 조용히 피어올랐다.그녀가 황제가 아니었다면, 둘만의 시간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바로 그 순간, 심초운은 깨달았다.이육진이 어째서 그토록 이른 시기에 황위를 이영에게 물려주시려 하셨는지를 말이다.진정으로 사람을 사랑한다면, 그 사랑을 쥔 손이 한순간도 떨어져 있기를 바라지 않게 되는 법이니 말이다.황자가 혼례를 올리고 황위를 잇게 된다면, 자신은 단지 이영의 시군이 될 것이다.그러면 그녀와 함께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을 터.그 생각만으로도, 그는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두 시진이 지나고, 해는 서쪽 하늘에 기울어 붉게 물들었다.이영은 마침내 모든 상소문을 다 읽고 붓을 내려놓았다.가볍게 두 팔을 들고 기지개를 켰다.심초운은 급히 책을 덮고 그녀 곁으로 다가가 공손히 물었다.“많이 피곤하셨습니까?”이영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 곁으로 걸음을 옮겼다.그러고는 아무 말 없이 그의 허리를 감싸안고 가슴에 얼굴을 기대었다.“괜찮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심초운은 움직이지 않고, 그녀가 잠시 기댈 수 있도록 그대로 서 있었다.창밖의 바람은 서늘했고, 방 안은 고요하였다.“영화궁으로 가자.”그녀가 먼저 말을 꺼냈다.“저도 함께 가는 것입니까?”“그래. 예전엔 네가 시군이 아니었을 때에도 아바마마와 어마마마께서 자주 함께 들라 하셨다. 하물며 지금은 시군이 되었거늘, 어찌 빠질 수 있겠느냐.”심초운은 고개를 숙였다.“누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이영은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내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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